2013년 12월 19일 목요일

홍문종 생각 - 무임승차

무임승차 


오늘 일과의 종착지는 63빌딩이었다.
모임이 파한 뒤 여의도순복음교회 인근까지 가야하는데 자동차 대신 걷기를 택했다.
(사색과 건강,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 이런 식의 선택을 즐기는 편이다)
그런데 도중에 돌발상황이 생겼다.
출발 때부터 조금씩 날리던 눈발이 굵어지면서 부담을 주기 시작한 것이다.
갑자기 쏟아지는 눈 때문인지 빈 택시도 보이지 않고 해서 한 정거장 거리인 목적지까지 버스를 타기로 했다.
버스는 금방 도착했다. 그래서 반가운 마음으로 버스에 올랐는데 아뿔사!! 이번에는 버스비가 문제였다. 수중에 잔돈이 없었다. 엉거주춤 만 원짜리를 내밀었더니 거스름돈이 없다는 단호한 대답이 버스에서 도로 내리라는 압력이 되어 내 등을 떠밀었다.
여전히 택시는 없고 버스도 탈 수 없고... 그렇게 잠시 난감한 순간이 흐르고 또 다른 버스가 도착했다.  
버스에 올라 사정을 얘기하자 이번 기사님은 잔돈이 없는 나를 도로 내리게 하지 않았다.  
본의 아니게 무임승차를 하게된 것이다.
   
짧은 동안의 해프닝이었지만 생각의 여지를 크게 남기는 경험이었다.
특히 ‘과감한 실행’에 우선가치를 두는 부분 등에 대해 생각이 깊어지게 했다.
내 경우, 잔돈 때문에 근심하기보다 일단 버스에 올라 상황을 설명하는 것으로 문제 해결을 앞당길 수 있었다. 눈을 피해 목적지를 가야하는 내 입장에서는 차비를 만원 내느냐 공짜로 타느냐 여부보다 버스로 한정거장 구간의 거리를 이동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었다. 기꺼이 만원을 차비로 지불할 용의가 있었는데도 버스이용에 어려움을 겪은 건 실행보다는 생각에 몰두하다 기회를 놓쳤다.
나라 일을 하면서 특별히 필요로 하는 예산규모가 명확하지 않으면 일단 저지르고 보는 게 어떨까 갈등하거나 지레 포기하게 되는 현실에 직면하게 될 때가 많다. 청년 창업을 돕는 프로젝트만 해도 불확실한 집행비용에 따른 불안감이 사업결정을 망설이게 만드는 게 사실이다. 젊은이들에게 창조경제 참여기회를 제공하는 측면에서 본다면 무한한 가치를 갖고 있지만 역시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때로 제동을 걸게 우리를 조종하기도 한다. 그러나 일단 저지르고 사후 수습책을 마련하는 쪽으로 방법을 찾는 쪽이 훨씬 생산적이라는 생각이다. 기왕에도 기대보다 훨씬 더 큰 보람으로 보답하는 경우가 많았다.

또 다른 하나는 각박해질 대로 각박해진 우리 사회에 대해 성찰할 기회를 얻었다는 점이다.
처음 버스기사님은 눈 내리는 늦은 밤, 강변에서 만 원짜리를 들고 잔돈이 없어 난감해 하는 손님을 배려하지 않았다. 악의적으로 무임승차하겠다는 것도 아닌데 단호하고 매몰찬 행동과 말투로 마음의 빗장을 닫아버렸다.
시혜를 베풀 입장이 아니라면 적어도 거스름돈을 포기하라는 식의 절충으로 고충을 해결해 줄 순 없었을까?
그렇게 묻고 보니 단순히 개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는 반론이 고개를 들었다. 내가 마주한 건 너나 할 것없이 각박하고 여유없이 돌아가는 우리 모두의 자화상이었다.
물론 기사님은 버스회사 종업원 입장에서 성실하게 운행수칙을 준수해야 할 책임이 있는 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즈니스 역시 사람이 하는 일이라 ‘배려담긴 친절’이 기업경영에 기계적인 원칙보다 더 큰 보탬을 주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한 순간의 감동이 해당 버스회사의 기업 이미지 상승으로 연결된다면 그 효과는 ‘차비’와 견줄 수 없는 막대한 가치 창출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비단 산술적 계산이 아니더라도 우리 사회의 선한 동기는 긴요한 자원임에  틀림없다.   최소한 지금보다는 좀 더 살만한 세상의  토대가 된다는  차원에서. 

 대체로 샌치해지기 일쑤인 눈 오는 밤,  조금은  심각한 생각에  잠겨있다.  뜻하지 않은 버스 무임승차가 인간심리에 대한 고찰과 스스로를 성찰할 수 있는 화두를 던져준 덕분이다.
서로를 향한 따뜻한 마음만 있어도 이 삭막한 모래밭 풍경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또 다른 희망을 부르고 있다.
감사하다.                                                           

(2013. 12. 18)     

...홍문종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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