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 11일 금요일
홍문종 생각-자연의 역습
대참화다.
140년 만이라는 최악의 강진과 쓰나미가 일본을 초토화 시켰다.
도시 전체가 순식간에 혼돈으로 뒤엉키며 무기력하게 무너져 내리고 있다.
무섭고도 놀라운 전경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재산피해도 피해지만 희생된 인명 규모가 시간이 지날수록 늘고 있으니 걱정이다.
재난 영화의 한 장면처럼 자연의 역습에 처절히 찢긴 도시의 모습이 무언의 압력이 되어 공포를 조장하는 것 같다. 상상 속에 머물러 있던 노아의 홍수, 소돔과 고모라나 폼페이 최후 당시의 엄청난 공포 상황을 체감하는 기분이다.
자연 재앙의 무서움을 뼈저리게 실감하면서 스스로를 되짚어 살피게 되는 마음이다.
일본의 이번 참사를 두고 여러 해석이 분분하지만 결국 결정적인 문제는 인간으로부터 시작됐다는 결론이다. 무지에서였건 오만에서였건 자연의 경고를 귀담아 듣지 않았던 인간의 불찰을 이번 사태의 주범으로 지목한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 인간이 그동안 자연에 했던 몹쓸 짓이나 하늘의 뜻을 어기고 인간 위주의 삶을 살았거나 했던 행위들에 대한 반성과 두려움을 갖게 하는 계기로 작용되는 것 같다.
교회에서 장로직분을 맡고 계신 어머니는 “패역한 세태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라고 이번 사태를 걱정하셨다. 제각각 외국에 나가있는 아이들은 전화로 ”기도를 많이 해야 하나 봐요“라고 하거나 ”기도를 많이 해 달라“며 안위를 전해왔다. (동경에 있는 딸은 다시 통화를 시도하니 연결이 안돼 못내 불안한 심정이다) 또 누군가는 ‘말세 징조’로 못을 박기도 했다. 분명한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번 재난을 일본에 국한된 불행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두려움을 갖게 됐다는 사실이다.
두려움의 강도는 대상을 알 수 없는 불시의 역습일 때 극대화 되는 성향이 있다. 언제 시작될지, 어떤 과정을 거칠게 될지 어느 정도의 강도일지 더구나 해결책도 불투명한 상태에서 당하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지난 밤 잠자리를 설친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어느 세대를 막론하고 말세의 기록이 존재했던 것 같다.
누구도 말세에 대한 두려움에서 자유롭지 못한 현실의 반증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마야의 달력이나 주역론,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을 비롯해서 심지어 성경에도 지구 최후의 모습이 기록돼 있을 정도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하늘의 존재에 대한 개념은 점점 더 확실해지는 것 같은데 하늘의 뜻에 대해서는 여전히 오리무중에 빠져있다. 공자는 나이 50에 하늘의 뜻을 알았다고 했는데 이 나이가 되도록 여전히 하늘의 뜻을 묻고 있는 나는 뭘까, 싶기도 하다. 하늘의 뜻이 헷갈릴 때가 많아질수록 어쩌면 죽는 순간까지 하늘의 뜻을 다 헤아리지 못하게 될지 모른다는 걱정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갈수록 분명해 지는 건 있다.
자기 마음에 비춰 하늘의 이해를 구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 하늘이 내 편을 들어 도와 줄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는 경우가 그것이다. 아마도 그런 순간이 저마다에 있어서 하늘의 뜻이고 하늘의 소리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갈수록 커지는 것 같다.
마구잡이로 돌아가는 세상일을 보면 정말 말세에 이르렀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죽음으로 생을 마감하게 돼 있는 인간의 숙명적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말세가 우리의 운명을 결정짓거나 특별한 삶의 지침을 만들어낼 수는 없다는 생각이다.
종말론 여부와 상관없이 자신에게 주어진 마지막을 염두에 두고 자신의 생을 진지하게 관리해야 할 책임이나 의무를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하늘의 뜻에 합당한 참 인생을 살아가는 비결이 아닐까 싶다.
그런 점에서 바쁜 일상을 핑계로 하늘의 뜻을 헤아릴 여유를 갖지 못하거나 그 자체를 귀찮아하는 모습을 주목한다. 자기 자신의 삶을 진지하게 영위하고자 하는 노력 자체를 경시하는 풍조로 이어진다는 측면에서 한번쯤 되짚어 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을 전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
하늘의 진노는 무섭다.
더 이상의 피해가 확산되지 않기를 기도하는 수밖에 없는 인간의 한계를 절감하게 되는 경험이다.
(2011.3.12)
.....홍문종 생각
2011년 3월 10일 목요일
홍문종 생각 - 장&하이 스캔들
두 개의 성 스캔들이 연일 대한민국을 달구고 있다.
‘상하이 스캔들’이니 ‘장자연 리스트’니 하는 막장 드라마가 그것이다.
‘장자연 리스트’는 남자들의 그릇된 성문화에 인권을 유린당하던 여배우가 죽음으로 자신의 처지를 알린 피맺힌 기록이라면 ‘상하이 스캔들’은 그 자신의 성을 무기 삼아 대한민국 엘리트 남자 여럿을 손아귀에 넣고 흔드는 파렴치한 행각을 들킨 이국 여성의 기록이다.
상대 남자들의 경우, 대한민국 상위 1%니 엘리트니 그럴듯한 미사여구로 자신을 치장할 정도의 사람들이었지만 모두가 성적 본능 앞에서 수성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 사실이 백방에 알려지면서 이제 명함도 못 내밀 처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스캔들 정국을 보면서 오래 전 들었던 한 선배 국회의원의 조언을 생각했다.
탁월한 선견지명에 경의를 표하는 마음까지 함께 담아서.
초선 국회의원 시절, 선배 의원들로부터 조언을 듣는 기회가 많았는데 국회 부의장을 연임하셨던 C 전의원이 해주신 말씀이다. 이른 바 ‘국회의원이 되면 3가지 ’끝‘을 조심해야 한다’는 요지의 조언이었는데 말(혀끝), 뇌물(손끝), 그리고 여자(신체의 주요부분 끝)을 경계해서 낭패 당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말씀이셨다.(그러면서도 세상의 절반인 여성과의 동반은 불가피한 일이고 어느 경우에는 여성의 긍정적인 특성을 감안하면 관계설정 방식에 따라 여성이 더 훌륭한 파트너가 될 수도 있다는 귀띔도 덧붙이셨다)
그 때는 웃고 넘겼지만 선배님이 당시 우리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조언을 해주셨는지 알겠다. 실제로 지금 눈앞에서 그 ‘세 끝’ 중 하나를 잘못 관리하는 바람에 패가망신 위기에 전전긍긍하거나 이미 패가망신이 진행 중인 소위 잘난 남자’들의 모습을 목도하고 있으니 말이다.
성 스캔들은 인류사회와 그 궤를 같이 해왔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밀접한 존재임을 보여준다.
3천년 전, 에게해를 배경으로 10년동안 치러졌던 트로이 전쟁은 트로이 왕자 파리스와 스파르타 왕비 헬레나가 벌인 불륜의 도피 행각이 발단이 됐다. 사랑 때문에 자명고를 찢어 조국을 배반하고 적진의 연인을 도운 낙랑공주의 슬픔도 일종의 성스캔들로 인해 빚어진 비극이다. 클레오파트라나 측천무후처럼 여성이 性으로 남권 사회를 지배했던 사례가 적지 않게 동서고금을 넘나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솔직히 인간의 본능 앞에서 성 모럴이 무기력한 존재감을 내보이는 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성에 대한 사회적 기준이 시대에 따라 그 가치관을 달리해 왔던 배경도 성모럴 해이를 부축인 측면이 크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사랑이라는 이름이 붙고 보면 무조건 매도할 수만도 없다는 망설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더라도 도처가 치열한 포르노의 경쟁처처럼 되어가고 있는 작금의 상황은 심히 우려스럽다.
갈수록 그 강도를 더해가고 있는 성 범죄 현황도 이런 환경과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정제되지 않은 성관련 문화의 남발이 성적문란을 부축이는 주범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강한 자극에 단련되다보니 점점 더 큰 강도의 자극이 필요한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현상과 다르지 않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장자연 리스트를 통해 드러나는 갖가지 엽기적인 성적문란 작태도 이 같은 분위기로 인해 야기된 필연적 현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개인의 성적 자유를 억압하자는 고루한 주장을 펴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만 개인의 성적 자유가 사회적 가치를 흔드는 일이 일어나서는 안된다는 생각만큼은 분명히 갖고 있다.
빠르게 급변하는 사회적 여건에 무조건 순응한다고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인간으로서 갖춰야 할 최소한의 금도만큼은 불문율로 지켜야한다.
그것이 인간 스스로의 존엄성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라는 절박감을 놓지 말자.
차별화된 인간의 영역을 함부로 훼손하게 되는 결과로 남게 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으로 대처했으면 한다.
구체적인 정황이야 결말을 지켜봐야 하겠지만 지금 나오는 내용만 가지고도 벌어진 입을 다물 수 없는 지경인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한편으로는 리얼하게 드러나는 남자들의 뻔뻔하고 어이없는 ‘짓’에 수치심을 느끼고 있다. 개탄스런 현실 앞에서 분노가 치민다.
그렇다고 연일 방송과 신문 지면을 도배하며 중계되고 있는 두 사건의 전말을 나까지 나서서 전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부도덕성의 임계점을 넘은 우리 사회의 性 현실을 단적으로 드러낸 사건이라는 점에서 가볍게 넘길 수 없는 마음이다.
우선은 두 스캔들에 대한 관계 당국의 철저한 수사의지가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관계 당국은 관련 인사들을 어떤 형태로라도 비호할 생각은 일찌감치 포기하는 게 좋을 것이다. 장자연 편지에서 필체가 틀리느니 어쩌느니 하는 경찰 측 발표나 상하이 스캔들 연루자가 이러저러한 핑계를 끌어대는 모습에 행여 다른 의도가 포함돼 있지 않기 바란다. 온 국민이 눈에 불을 켜고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다.
정당한 수사 결과를 기대하는 국민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를 바란다.
그것이 이번 스캔들로 상처입은 국민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는 생각을 결코 잊지 말아야겠다.
(2011.3.11)
....홍문종 생각
2011년 3월 8일 화요일
홍문종 생각 - 新 손자병법
며칠 전 수도권 일대에서 휴대전화와 네비게이션 등의 수신 장애로 일대 혼란에 빠진 일이 있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북한이 발사한 GPS 교란전파가 그 원인이어서 충격을 주고 있다. GPS 교란 전파를 발사해서 위성 장비는 물론 포병부대 계측기의 장애까지 유도할 정도라면 항공기나 금융망 사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동안 군사력에 있어 북한이 우리와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자만심에 빠져있었던 우리로서는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 아닐 수 없다. 급기야 우리 정부가 북한의 GPS 전파 교란 행위에 대한 제재를 국제사회에 호소하겠다고 나선다는데 깔보던 상대에게 얻어맞고 구조를 청하는 모습이어서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됐다. 북한 붕괴가 초읽기에 들어간 상태라며 느긋하던 우리의 모습을 생각하면 말이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했는데 적을 제대로 알지 못한 우리로서는 패배를 자초한 우를 범한 셈이다.
그 어느 때보다 안보 불안에 대한 우려가 높은 시점이어서 인지 이번 사태를 우려스럽게 바라보는 시각이 많다. 적지 않은 국민들이 북한의 전자전을 불안해하는 것도 사실이다.
자동차나 전자 시장이 우위를 점하면서 스스로의 경제력을 과신했던 점이 화를 자초한 측면이 있다. 특히 여권 내 정치권 인사들의 도를 넘는 북한 경시 의식이 내부의 문제점 해결을 간과하도록 부축인 경향이 크다고 할 것이다.
무엇보다 탱크나 전투기 등 대칭전력은 몰라도 특수부대, 핵, 전자전 같은 비대칭전력 만큼은 북한이 우리를 위협할 수 있는 경지에 올라있는 현실을 제대로 인식해야겠다.
북한의 트레이닝 상황은 우리가 예측하거나 상상하는 것 보다 훨씬 더 견고하게 트레이닝 된 상태가 아닐까 싶다.
북한이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런 정황들만으로 북한의 '포기‘를 낙관할 수 없다는 것을 이번에 확실히 체득했다는 생각이다.
지금 전체적으로 국민들이 불안해하고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는 정도가 생각보다 심각하다.
실질적인 국민 만족도나 국가에 대한 헌신도가 굉장히 떨어져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런 측면에서 일정정도 정부의 대북전략 수정이 불가피하다고 본다.
일방적인 퍼주기도 문제지만 무시 일변도의 강경 대응 역시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늘에서 감 떨어지듯, 시간이 지나면 북한을 흡수통일 할 수 있게 될 거라는 계산은 시대착오적이었다는 점이 보다 명백해졌다고 할 수 있으니 말이다.
민간단체가 구상하고 있는 많은 계획들도 다시한번 심사숙고해서 실행에 옮겨야 할 것이다.
자칫 독이 올라있는 북한을 자극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솔직히 있다. 더구나 북한 측이 이번 행사에 대해 조준사격 운운하며 반발하고 있는 만큼 자제가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무엇보다 지역주민들이 불안해하고 있다.
벼랑 끝에 몰린 북한을 자극하기 보다 적당히 '치고 빠지는' 지혜로운 처신이 가능한 新 손자병법이라도 강구할 수 있었으면 한다.
미국이나 중국 등 주변국들의 첨예하게 얽혀있는 이해관계도 면밀하게 검토해야 할 대상임을 잊지 말자.
지나친 염려일지 모르겠으나 ‘중국은 북한 편을, 미국은 남한 편을 들어 줄 것’이라는 고정된 생각조차 위험할 수 있다.
우리의 예상보다 훨씬 복잡한 계산들로 인한 변수의 고려 없이 우리의 미래를 재단할 수 없음이다.
그 어느 때보다 우리 내부의 문제들을 둘러보고 심도있게 고민해 볼 시점이다.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주거나 기득권을 강화하려는 꼼수나 부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사심을 버리고 진정성 있는 자세로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머리를 쥐어짜도 모자랄 판에 더 이상 몰염치한 모습으로 도탄에 빠진 국민들을 실망시키는 정치권이 되어서는 안되겠다.
(2011. 3. 8)
...홍문종 생각
2011년 3월 6일 일요일
홍문종 생각 - 희망설계
희망설계
중국 전국인민대표(우리의 국회 기능) 2900여 명 중 38명이 억만장자라는 뉴스가 인터넷에 떴다. 그러려니 할 수도 있는 일이 굳이 해외 뉴스로까지 부각된 배경엔 중국 사회의 부패한 현실을 질타하는 시각이 들어있는 듯하다.
그렇지 않아도 ‘되는 일도 없고 안되는 일도 없다’는 중국 관가에서 무소불위의 힘을 발휘하는 ‘꽌시’ 관행은 유명하다. 인맥으로 기존의 법질서를 능가하는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관행이 암묵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다섯 명만 거치면 최고위층을 접촉하는 일쯤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부패에 찌든 특권층 부패와 빈부격차에 대한 불만으로 중국민들의 불만이 거의 폭발 직전에 놓여있는 상황이다.
이런 사정이고 보니 중국 당국이 중동의 '시민혁명' 여파를 우려하며 긴장감을 감추지 못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는 생각이다. 최근 원자바오 총리가 전인대회 업무보고를 통해 지도층의 부정부패 척결의지를 표명하고 분배 정책으로 빈부 격차를 해소하는 등 민생을 챙기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나선 것도 민심수습 차원일 가능성이 크다.
부정부패의 어두운 고리에서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전방위적으로 이뤄지는 총체적인 부정부패는 갈수록 그 강도를 더해가고 있다. 급기야 이로 인한 사회적 혼란이 극에 달한 느낌이다.
흔히들 ‘정치인은 교도소 담장 위를 줄타기 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현실적으로 부정부패의 유혹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권력의 속성을 드러낸 단적인 표현이라는 생각이다. 실제로 수없이 많은 정치인들이 담장 위에서 교도소로 추락해 영어의 몸이 되었고 지금도 적지 않은 수의 전직 정치인이 수감돼 있는 현실이고 보면 틀린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현직에 있을 당시 일명 ‘함바집 대형 로비 사건’에 연루돼 파문을 일으킨 한 경찰 총수의 경우, 조사하는 과정에서 경찰 수뇌부들이 줄줄이 굴비 엮이듯 얼굴을 드러내 경악을 금치 못하게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충격적인 건 아무래도 사법부 부패가 아닐까 싶다.
최근 기업회생의 고삐를 쥔 광주지법의 부장판사가 친형을 소속 관리 감사로 선임, 직권을 남용한 혐의가 알려졌는데 ‘스폰서 검사’ 사건에 비하면 빙산의 일각이지만 사회적 파장은 더 컸다고 할 수 있다.
사법부의 비리는 여타 비리와는 다른 상징적 측면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많이 정화되었다고는 하지만 정치권과 경제계에 요구하는 도덕적 잣대는 낮은 기준치인데 반해 사법부에는 확실히 현격히 다른 국민적 요구가 작용하고 있는 듯 하다. 그것은 사법부가 이 사회를 지탱하는 마지막 보루의 하나라는 인식이 작용하기 때문인 것 같다.
파문의 당사자인 광주지법 부장판사의 한심한 작태는 여러 면에서 문제를 이어갈까 걱정스럽다. 지금까지 재판정에 섰던 수많은 사람들이 법원과 판사들의 부당성에 대해서 어떤 식으로 문제를 제기하거나 비난한다 해도 스스로를 해명할 방법이 없음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언제부터 누구의 잘못으로 시작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도덕 불감증이 사회악의 근원이 되고 있다는 생각이다. 특히나 연일 사회적 이슈의 중심에서 사회적 비난의 대상이 되는 일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계속해서 반복하는 행태는 심각하다 할 것이다.
막스 베버는 자본주의에 가장 유해한 것은 천민정신이라고 했는데 그의 혜안에 공감한다.
부정부패, 부와 권력의 편중, 그리고 기득권의 천박한 탐욕이 지배하는 국가가 희망의 여지를 가질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는 시민 혁명의 시발지인 튀니지를 시작으로 알제리, 이집트 등 국민 저항에 두손을 들고 쫓겨나는 국가수반의 부패 정도가 베일을 벗길수록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하는 현실을 통해서도 확인되는 바다. 부패한 권력을 향유하다 망명지인 낯선 이국 땅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은 필리핀 마르코스 전 대통령이 낙후된 필리핀 경제의 원흉으로 지목되는 현상과 같다.
중국 국민당 장제스 군대가 공산군에게 무참하게 패배한 것도, 세계 4위인 막강한 전력의 50만 월남군이 18만 월맹군에 일패도지한 것도 모두 지도층의 부정부패가 결정적 패인으로 작용했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사회적 책무를 느끼는 나로서는 여러 가지가 고민스럽다.
한기총이나 조계종 내분으로 불거진 종교계의 권력 다툼이나 스스로를 면제해주는 ‘로비법안’을 통과시켜버린 몰염치한 국회의원들의 행각 등 어느 곳도 제 정신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지 않아 걱정이다.
그렇더라고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는 일이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부정부패의 고리를 결연히 끊어 버리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다시 시작해보는 거다.
우선은 지금까지 무엇을 잘못했는지 돌아보고 문제가 있다면 혁명적으로 개선하겠다는 의지로 새 출발할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갖추도록 하자.
각자의 분야에서 자기 역할을 다하는 것에서부터 우리의 미래를 향해 시작해 보는 거다.
그렇게 처음부터 차근차근 백지 위에 대한민국의 희망을 설계해 보자.
마음을 모아보자.
(2011. 3. 6)
....홍문종 생각
2011년 3월 4일 금요일
홍문종 생각 - 춘래 불사춘
춘래 불사춘
봄이 왔다.
山은 물 올리느라 수런거리는 나무들의 기척으로, 江은 따뜻한 햇살에 젖어 반짝이는 짤랑거림으로 봄을 노래하고 있다.
완연한 봄이다.
혹독했던 겨울 추위가 언제 적 기억인지 싶게 가물가물 하다.
회한과 불안에 서성거리던 그 숱한 불면의 밤들을 일방에 날려버리는 봄의 위력을 본다.
그러면서 시간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말로 현실의 무게를 덜어낼 줄 알았던 선인들의 지혜에 무릎을 치게 된다.
이렇게 봄이 오게 돼 있는 것을.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그동안 거의 잊고 살았던 것 같다.
이는 인간사를 통해서도 흔히 하게 되는 경험이다.
사단이 난 다음에서야 뒤늦게 허겁지겁 아둔한 자신의 실책을 후회하는 패착의 역사가 어제 오늘 만의 일이 아니다.
정의와 진리가 반드시 이기게 돼 있고 민심을 거스르는 정권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순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 보아 온 우리의 오랜 불문율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춘래 불사춘, 여전히 동토의 왕국이니 큰일이다.
물가대란, 전세대란 때문에 뒤숭숭한 민심이 가뜩이나 그늘진 마음을 심란하게 한다.
삶에 지친 이들의 원성이 하늘을 찌르고 있건만 정부 부처에서는 별다른 대처 방안을 내놓지 못하는 형국이다. 과도한 고환율, 수출 드라이브 정책에만 집착하고 있는 모습이다. 마치 경제지표 하나에 정권의 성공 여부가 달려있는 것처럼 말이다.
환율 덕분에 대기업들이 해외에서 엄청나게 벌어들이고 있다지만 따지고 보면 좋아할 일이 아니다. 주식의 50%를 해외 주주가 점유하고 있는 대기업 실상을 감안하면 결과적으로 우리의 국부 유출일 뿐이다. 과도한 수출 드라이브 정책은 중소기업을 피폐하게 만드는 주범이 되고 있다.
엇박자 행정의 폐해를 아무리 외쳐도 귀 기울이려는 의지조차 없으니 큰일이다.
아무런 제약도 없이 활개를 치도록 방기하고 있다.
가난하고 힘없어 버려진 이웃들의 볼멘소리가 내 마음에 깊은 우물을 파 놓았다.
점점 더 극명해지는 사회적 양극화와 갈수록 그 깊이를 더하고 있는 소외계층의 결핍감은 어떤 식으로든 해결해야 할 문제다.
급기야 더 이상 손바닥으로 가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른 분위기인데 당국의 대응은 지나치게 안일하기만 하다. 겨울이 봄 햇살을 이기지 못하고 밀려나듯 더 이상 지탱될 수 없는 불균형들이 나라 전체의 어려움을 초래하는 소용돌이가 될 것 같아 초조하기까지 하다.
이런 걱정들이 어설픈 예측으로 끝나게 되길 바라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는 문제이니만큼 기우로 그치게 될 것 같지는 않다. 마땅한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다. 설사 적합한 해결책이 있다고 해도 자기 아집에 갇혀 자꾸 실기하고 있는 모습이 안타깝다.
민심이 이 정부를 떠나는 것 같아 걱정이다.
차기 리더들의 화끈하고 간결한 해법을 기대하면서 그 기대감으로 상실감을 달래고 있는 것 같다.
복지가 차기 대선의 화두가 된 만큼 민심이 차기 리더들에게 요구하는 가장 민감한 주문은 아무래도 지역과 계층 간 격차해소를 위한 해법이 되지 않을까 싶다.
달리고 싶은데 달리지 못하고 있다.
화두가 분명하고 그 화두의 해결 없이는 대한민국의 21세기는 없다는 생각을 수없이 하고 있으면서도 미적거리고 있는 개인적 상황이 불만스럽다. 유래 없는 한파를 뛰어 넘어 우리 곁을 찾아온 봄의 실체를 보면서도 나는 지금 스스로에게 누를 끼치고 있는 셈이다.
개인적 소신과 신념을 방치하고 있는 스스로의 미욱함을 변명할 여지가 없으니 답답하기만 하다.
굳이 이유를 들자면 미진한 여진을 탓할 수 있으려나.
(2011.3.5)
...홍문종 생각
2011년 3월 3일 목요일
홍문종 생각 - 용틀임 시작이다
오늘 하버드대 케네디 스쿨(행정대학원) 동문 모임에서 감투를 썼다.
이우철 동문과 최홍건 동문 등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신임회장에 피택된 것이다.
사실 이 두 분은 선임 회장인데다 하바드 재학 시 막역한 관계가 작용돼 평화적인(?) 정권교체가 이뤄진 셈이라고 할 수 있다. (하바드 시절 20대인 나와 30대인 이우철 회장님 그리고 최홍건 회장님은 40대였지만 세대차이 없이 매일 붙어 지내다시피 한 사이다)
회장직을 수락하는 순간 두 가지 상념이 머릿 속을 스쳐갔다.
‘이제 나도 (동문 회장을 맡을 정도로) 나이를 먹었구나’하는 현실인식과 ‘일복이 터지겠군’ 하는 책임의식의 발로가 그것이었는데 앞으로 회장 임무를 제대로 수행해내겠다는 각오를 다지게 했다.
개인적으로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치열한 경쟁 구도를 거친 건 아니지만 상당한 의미를 부여할 정도는 되는 결과라고 생각됐기 때문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하버드 교정을 떠난 지 어언 30년이 지난 이 시점에서 동문 회장으로 추대될 정도가 됐다는 건 최소한 그동안의 내 삶이 함부로 살지 않았다는 증표가 아닐까 싶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 삶에 영향을 미친 몇 건의 이벤트가 있었다.
하버드와의 인연도 그 중 하나다.
1982년, 찰스강을 건너 하버드 야드로 들어설 때의 그 벅찬 감동은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는 생생한 기억이다.
물론 그 때 말고도 크고 작은 울림으로 내 삶의 과정을 충만하게 채워주던 감동의 순간은 많았다. 하버드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을 때라던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을 때, 그리고 한나라당 경기도당 위원장이 됐을 때도, 그리고 어릴 때로 돌아가면 선거에서 이겨 의정부시 대학생회 회장(40여년 전에는 그런 타이틀도 있었다)이 됐을 때의 감격 등이 그런 순간이다. (그런데 내 인생을 돌아보면 결과물보다 성취하기까지의 드라마틱한 과정이 감동을 극대화시키는 특이한 경우가 적지 않은데 기회가 되면 따로 피력해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버드와 대면하던 그 첫 순간은 유난히 강렬한 삶의 기억이 되어 저장돼 있다. 밤을 새워 공부하던 기억조차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있는 그 시절, 그 때처럼 열심히 공부에 매진했던 적은 없는 것 같다. 청춘의 정열과 함께 했던 시기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과 고건 전총리 등 많은 인재들과 동문수학하며 귀한 인연을 맺었고 DJ, YS를 비롯해서 케네디, 두카키스, 아키노 등 수많은 국내외 저명인사들을 접하며 꿈을 키우던 청년 시절의 내가 있던 그곳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 같다.
지금부터 앞으로 내 삶의 15년을 어떻게 운용하느냐에 따라 인생의 승패 여부가 결정되는 것이고 또 그것이 생의 마지막 날 내가 받아들 성적표가 되지 않을까 싶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날, 지금부터 내 인생의 프라임 타임이 시작되고 있다는 이 느낌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용틀임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나의 열정과 진정성을 무기 삼아 이 용틀임이 확실한 방점을 찍는 모멘텀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문득 하버드에서 꿈을 키우던 그 시절의 ‘홍문종’으로 되돌려지기라도 한 것처럼 가슴이 뛴다.
PS:뛰는 가슴을 안고 도봉산에 올라 내 남은 생애와 그리고 나와 연관된 모든 인연들을 위해 기도했다.
하느님, 도와 주세요 라고.
(2011. 3. 3)
...홍문종 생각
2011년 3월 2일 수요일
홍문종 생각 - 同志
이석제 전 감사원장의 부음을 신문 부고란을 통해 접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을 5.16 거사에 나서도록 설득한 인물로 알려진 그는 개인적인 친분보다는 가친께서 동향인이라는 이유로 관심을 갖는 분이어서 알고 있는 정도다.
별세 소식이 전해지자 갑자기 그의 삶이 조명되고 세간의 이목이 쏠리는 분위기다.
처음에는 초야에 묻혀 조용한 노후를 보내던 고인의 생전을 감안하면 유별나다싶을 정도여서 의아했다.
그러나 곧 의문이 풀렸다.
권력의 핵심 실세였음에도 평생을 흐트러짐 없이 살다간 그의 족적을 살피다보니 충분히 그럴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형적인 부와 화려함은 없었어도 향기 충만한 그의 삶은 충분히 성공적이었다.
그에게 군인으로서는 물론, 고위 공직자로서도 비범한 삶을 실천한 ‘참 인간’이라는 평가가 따라 붙고 있었는데 그를 기억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감하며 수긍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죽기를 각오하고 거사에 나설 혁명당시의 초심을 잃지 않고 박전대통령에게 직언을 서슴지 않는 가하면 청빈하고 유능한 공직자의 표본을 보여줬다는 평가가 그의 삶이 조명받는 이유인 듯했다.
실제로 그가 혁명 직후 총독부 시절 법과 군정 당시 영어로 만들어진 법 등 수천 건에 달하는 법령정비로 사법 사상 가장 중요한 개혁을 결행하거나 공무원직제, 연금법, 공무원공개채용, 승진시험 등을 도입하여 나라의 기강을 바로 세운 공적은 두고두고 회자될 가치가 충분한 업적으로 평가받고 있었다.
평생 자기 절제의 기조를 잃지 않았던 그의 삶은 부정부패와 무능에 찌든 국가와 민족을 구하기 위해서 혁명을 해야 한다던 자기주장의 당위성을 뒷받침하고자 했던 그의 의지라는 생각이다.
이런 그가 있었기에 박정희 전 대통령과 5.16 혁명이 많은 공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을 부흥시키고 기초를 놓았다는 당위성으로 평가받을 수 있게 된 건 아닐까 싶었다.
그러고 보면 인생에서 사람과의 인연이 얼마나 중요한 건지 다시금 되새기게 된다.
역사의 현장에도 뜻을 이루고자 했던 모든 시도에는 죽음을 불사하는 최선의 열정과 마음을 함께 한 조력자들의 결집된 힘이 존재했었음을 알 수 있다.
박 전대통령이 5.16 혁명을 성공시킬 수 있었던 배경에도 고인을 비롯한 동지들의 뒷받침이 있었다. 스탈린도 소련 공산당의 탁월한 이론가이자 저술가인 니콜라이 이바노비치 부하린의 조력이 없었다면 트로츠키와의 권력 투쟁에서 승기를 잡지 못했을 것이다. 체 게바라가 아니었다면 쿠바의 공산정권 수립은 어려웠을 것이고 오늘 날 북한의 김정일과 함께 지구상 가장 폐쇄된 국가의 독재자로 유명한 카스트로 역시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성계 역시 삼봉 정도전의 천재성이 도왔기 때문에 조선 건국의 꿈을 이룰 수 있었다. 정도전과의 콤비 플레이가 없었다면 그의 꿈은 한낱 물거품에 그치고 말았을지도 모른다. 세조가 정권 찬탈에 나서는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도 한명회를 비롯한 열렬 지지자의 성원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무슨 일이든지 목숨 바쳐 뜻을 같이 하겠다는 동지의 존재가 가장 필요하고 또 중요한 것 같다. 목숨을 바칠만한 명분과 이유를 갖추고 있어야 하는 건 물론이다.
21세기가 되면서 목숨 바쳐 추구해야 할 장엄한 국가적 아젠다의 명분이 희미해지면서 사람들이 승부근성을 잃고 점점 나약해지는 분위기다.
그러나 아직도 민족의 과제인 통일과업이 남아있는 우리로서는 경계해야 할 모습이기도 하다.
통일을 이루기 위해 어떤 형태로든 극복해야 할 북한의 존재를 한시라도 잊어서는 안되겠다.
고인이 신념을 위해 혁명을 결행하던 그때처럼 나라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릴 각오로 분연히 떨치고 나설 수 있는 진정한 용기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싶다.
그런 용기와 신념을 가진 지도자의 출몰이 너무나 간절해지는 이 즈음, 진정한 지도자의 사표를 남기고 떠난 고인의 명복을 빈다.
(2011. 3. 2)
....홍문종 생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