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찬가
‘죽다 살아나다’
그제 저녁부터 오늘 낮까지의 내 근황을 묘사한 가장 정밀하고 정확한 표현이다.
정말 죽을 뻔 했다.
토하고 설사하고 또 토하고 설사하고...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로 가늠할 수 없는 고통에 밤 새 시달렸다. 먹은 음식이 잘못된 건지 그동안 누적된 피로와 마음을 불편하게 하던 고민들이 일으킨 반란의 결과인지 알 수 없지만 심각한 토사곽란에 덜컥 발목을 잡힌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밤새 시달릴 때는 아무 생각도 없더니 막상 중요 스케줄 마다 괴력이 발휘된 상황이다. 병원으로 실려가 주사와 약으로 기력을 보충해서 그 힘으로 예약된 스케줄을 차질없이 진행할 수 있었던 것이다. 비록 행사에 참석하고 나면 기진맥진 축 늘어진 중환자가 되는 상황의 연속이었지만 말이다. (내가 무대체질이라는 것도 이번에 확실히 알았다)
그렇게 아무도 못 말리는 2박3일 동안의 활약상 끝에 ‘나는 지금 살아있다’.
죽었다 살아난 사람들은 대부분 삶에 대해 새로운 정감을 갖게 된다더니 내 경우가 그랬다.
고비를 넘기고 새로 맞는 아침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났을지 모를 육신의 고통이 의외로 소중한 경험이 되는 것 같다.
삶과 죽음에 대해 되새기는 기회를 통해 삶을 좀 더 진중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됐다.
신선한 공기, 햇살 한 조각조차 생의 찬미로 이어지고 신에 대한 감사가 절로 나온다.
그 동안 마음을 가리던 근심 걱정이 우중충함을 벗어 던지고 말개진 얼굴로 나를 축복하고 있다. 새로운 희망으로 충만해진 자신감이 있는 한 그 어떤 어려움도 두렵지 않다는 생각이다.
그렇게 살아있음이 이토록 행복하고 아름답다는 것을 미처 모르던 과거를 뒤로하고 삶의 의미를 되새기고 있는 중이다.
통제할 수 없는 통증이 밀려드는 순간, 이렇게 혼자 죽을 수도 있겠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
지근거리의 가족에게조차 아무런 도움을 청하지 못하고 소리 없이 생의 공간에서 지워질지 모른다는 좌절감은 차라리 공포 그 자체였다.
죽음을 감지하는 순간, 전 생애가 파노라마처럼 머릿 속을 스쳐갔다. 전광석화 같은 속도였다.
가장 큰 안타까움은 애착을 갖고 있는 그 어떤 대상도 삶을 마감하는 순간 나와 함께 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인간의 고독을 자극하는 원초적 고립의 근원이 거기 존재하고 있었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내 생애에 담겨있던 오욕칠정이 일시에 정리되는 듯 했다.
죽음은 인간이 가진 나름의 특별함이 몰수되는 시작에 다름 아니라는, 허무하지만 틀림없는 결론이었다.
천하의 스티브 잡스도 삶을 마감하는 순간부터 더 이상 자신의 특별함을 주관할 수 없었다.
그것은 우리가 눈 앞에서 보고 있는 현실이기도 했다.
이번 우환은 죽음을 가까이 살필 기회였다는 측면에서는 긍정적 여지가 적지 않다. 죽음이 피할 수 없는 필연적 운명인 현실을 직시하고 그 앞에서 증폭되는 고독의 무게를 체험할 수 있었던 것도 그렇고 또 죽음이 누구에게나 예외일 수 없는 보편적 명제임에도 불구하고 누구도 개입할 수 없는 명백한 삶의 진실을 깨닫게 하는 통로라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흑자라는 생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죽음에 이를 수 밖에 없다.
그런 한계가 존재하기에 인간이 진지해질 수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솔직히 구원을 확신하는 기독교 신자로서의 신념에도 불구하고 삶의 저편은 여전히 두렵고 궁금하고 신경 쓰이는 공간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부족한 신앙심 탓인지 부실한 내공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내 삶과 죽음의 영역에 대해 좀 더 확실한 확신과 정의로 재정립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는 것만은 사실이다.
나의 삶이 오늘을 기점으로 더 많이 진지해질 것 같은 예감이다.
고독한 것은 인간만이 아니다.
따지고 보면 이 세상 모든 삼라만상 그 어느 것도 고독하지 않는 게 없다.
저마다 독자적으로 고독의 영역을 고수하는 처지라면 특정한 대상에 대한 애정이나 애착행위는 무의미하다는 결론을 수긍해야 할 것이다. 모든 대상을 동일하게 사랑하고 사유의 대상으로 삼는 게 맞다.
그런데도 나는 여전히 개별적인 애착의 대상을 내려놓지 못하고 서성거리는 마음이다.
내가 사랑하고 좋아하고 귀하게 여기는 것들을 대상으로 한 관심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여러 가지 설득력 있는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당분간 풀지 못한 숙제로 남겨둘 것 같다.
문득 이 세상을 소풍 다녀가듯 아무것도 움켜쥐지 않고 그 무엇에도 마음을 심지 않은 채 가볍고 무심히 살다 간 천상병 시인을 생각한다.
그는 정녕 행복했을까?
그는 진정 자유로웠을까?
역설적이지만 토사곽란 정도의 아픔으로 결코 가볍지 않은 사유의 공간에 머무르면서 삶의 깊이를 업그레이드 시킬 수 있었던 건 나름 큰 축복이라는 생각이다.
(2011. 10. 30)
....홍문종 생각
2011년 10월 30일 일요일
2011년 10월 26일 수요일
홍문종 생각 - 칭찬받아 좋은 날
칭찬받아 좋은 날
모교(서울 대광 중고등학교)의 64주년 개교 기념일에 모교를 빛낸 동문상을 받았다. 8년 선배인 무학교회 김창근 목사님, 5년 선배인 대우건설 서정욱 사장님, 그리고 2년 선배인 차병원과 중문의대 차광열 이사장님과 함께였다.
졸업한 지 38년 만에 선후배 동문의 축하를 받으며 시상대에 오르는 기쁨이 생각보다 컸다. 지금까지 세상을 살아오면서 이런 저런 인연으로 상을 받은 경험이 적지 않지만 그 어떤 상보다 나를 설레게 했다. 특히 국회의원도 아닌데 받는 상이어서 더욱 큰 의미로 다가왔다. (국회의원 시절에는 상을 받아도 개운치 않은 경우도 왕왕 있었다) 단순히 상 받는 기쁨으로만 정리되지 않는 묘한 감흥이 ‘모교의 선물’을 더 각별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평소 아끼던 후배들과 친구들의 축하도 행복했지만 무엇보다 부모님께서 기뻐하시는 모습이어서 그 의미를 더했다. 저녁에 귀가하니 온 가족이 케잌을 사다놓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부모님께서는 내가 국회의원 당선됐을 때보다 더 들뜬 모습으로 ‘모교에서 칭찬받은 아들’을 자랑스러워하셨다.
그 와중에 어머니께서는 ‘아버지 덕분이라고 아버지에 대한 감사를 잊지 말라는 당부를 챙기시는 한편, 내 아이들에게는 ‘내가 낳은 자식이지만 너희 아버지는 정말 훌륭한 사람’이라는 단골 레퍼토리로 아들자랑을 겸한 세뇌작업을 잊지 않으셨다.
돌아보면 중고등학교 시절을 비교적 평온하게 보낸 기억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순탄대로였던 건 아니었다.
이유를 따지자면 사연 많은 나의 인생 역정(?)과 무관하지 않다.
나는 모교(대광중학)과의 인연을 입학이 아닌 전학으로 시작했다. 당시 명문으로 꼽히던 수송 초등학교(지금은 중구청으로 쓰이고 있고, 학교는 없어졌다)를 졸업했지만 원하는 중학교 진학에 실패하고 낙향의 길을 걸어야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1년여를, 학교에서 돌아오면 집안 농사를 돕고 소꼴도 베던 친구들이 대부분이었던 의정부 중학교에 몸담고 있다가 서울로 귀환한 게 대광과의 첫 조우였다.
과외와 번쩍거리는 구두로 대변되는 당시의 학교 환경은 내게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부각되기에 충분한 자극이었다. 고관대작 자제들이 우글거리던 명문 초등학교를 졸업했다는 자부심(?)을 재생시켜주기도 했다.
그렇다고 나의 서울 정착이 그렇게 순조로웠던 건 아니다.
친구들의 놀림은 물론 1년 동안 팽팽 놀다가 전학한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했다.
누구도 의정부에 쌓아올린 내 튼실한 기반을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의정부 골목대장 감투도 별 반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서울에 올라와 문전박대를 당하는 상황이었으니 한동안은 생존을 위해 세 과시로 존재감을 증명하는 처지를 감내할 수 밖에 없었다. (오늘 나의 수상을 축하하러 온 친구 중에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나하고 최소한 열 번 이상 싸우고 각별한 사이가 된 친구의 얼굴도 있다)
사실 모교의 동문 중에는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명사들이 많다.
의사나 교수, 목사 등 전문분야에서 두드러진 명성을 얻고있거나 주목받는 사업가들로 성공한 동기들도 많다. 불멸의 야구선수 김재박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별히 나를 ‘자랑스런 동문’으로 지목한 것은 앞으로 모교에 애정을 갖고 모교 발전을 위해 열심히 일해 달라는 주문이 아닐까 싶다.
행사 일정보다 조금 일찍 도착해 학교의 이곳저곳을 돌아보면서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학교는 오랜 세월에도 불구하고 거의 변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내가 학교 다닐 때보다 훨씬 퇴락한 느낌이었다. 별로 달라진 것이 없는 모습들 때문에 더욱 초라해 보였다. 40여 년 전만 해도 중고등학교에 드물었던 강당이 있었고 최첨단 어학실과 과학실 그리고 스팀 난방장치 등의 최첨단 시설로 호화 귀족학교 소리를 듣던 위세를 찾아볼 수 없어 안타까웠다.
어떤 식으로든 모교의 과거 명성을 되찾는 데 수고를 아끼지말아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후배들을 위해 강의 일정을 잡아달라는 교장선생님의 청을 받고 이제는 말이 아니라 실천하는 삶으로 본을 보여주는 선배가 되겠다고 새롭게 새긴 다짐도, 나이가 더 들어버리신 은사님들을 바라보면서 더 자랑스러운 제자가 되어야겠다는 생각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칭찬으로 행복한 하루였다.
역시나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는 것 같다.
학교 행사 말고도 전쟁기념관에서의 리더십 강연, 주요 모임의 대표자 회의 등 유난히 일정이 빽빽한 하루였지만 온 종일 들뜬 기분으로 지낼 수 있었다. 모교에서의 감흥이 준 에너지 때문이다.
지금부터 시작이라는 생각으로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
(2011. 10. 25.)
....홍문종 생각
모교(서울 대광 중고등학교)의 64주년 개교 기념일에 모교를 빛낸 동문상을 받았다. 8년 선배인 무학교회 김창근 목사님, 5년 선배인 대우건설 서정욱 사장님, 그리고 2년 선배인 차병원과 중문의대 차광열 이사장님과 함께였다.
졸업한 지 38년 만에 선후배 동문의 축하를 받으며 시상대에 오르는 기쁨이 생각보다 컸다. 지금까지 세상을 살아오면서 이런 저런 인연으로 상을 받은 경험이 적지 않지만 그 어떤 상보다 나를 설레게 했다. 특히 국회의원도 아닌데 받는 상이어서 더욱 큰 의미로 다가왔다. (국회의원 시절에는 상을 받아도 개운치 않은 경우도 왕왕 있었다) 단순히 상 받는 기쁨으로만 정리되지 않는 묘한 감흥이 ‘모교의 선물’을 더 각별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평소 아끼던 후배들과 친구들의 축하도 행복했지만 무엇보다 부모님께서 기뻐하시는 모습이어서 그 의미를 더했다. 저녁에 귀가하니 온 가족이 케잌을 사다놓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부모님께서는 내가 국회의원 당선됐을 때보다 더 들뜬 모습으로 ‘모교에서 칭찬받은 아들’을 자랑스러워하셨다.
그 와중에 어머니께서는 ‘아버지 덕분이라고 아버지에 대한 감사를 잊지 말라는 당부를 챙기시는 한편, 내 아이들에게는 ‘내가 낳은 자식이지만 너희 아버지는 정말 훌륭한 사람’이라는 단골 레퍼토리로 아들자랑을 겸한 세뇌작업을 잊지 않으셨다.
홍문종 총장,
김창근 무학교회 목사, 서종욱 대우건설 사장
돌아보면 중고등학교 시절을 비교적 평온하게 보낸 기억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순탄대로였던 건 아니었다.
이유를 따지자면 사연 많은 나의 인생 역정(?)과 무관하지 않다.
나는 모교(대광중학)과의 인연을 입학이 아닌 전학으로 시작했다. 당시 명문으로 꼽히던 수송 초등학교(지금은 중구청으로 쓰이고 있고, 학교는 없어졌다)를 졸업했지만 원하는 중학교 진학에 실패하고 낙향의 길을 걸어야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1년여를, 학교에서 돌아오면 집안 농사를 돕고 소꼴도 베던 친구들이 대부분이었던 의정부 중학교에 몸담고 있다가 서울로 귀환한 게 대광과의 첫 조우였다.
과외와 번쩍거리는 구두로 대변되는 당시의 학교 환경은 내게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부각되기에 충분한 자극이었다. 고관대작 자제들이 우글거리던 명문 초등학교를 졸업했다는 자부심(?)을 재생시켜주기도 했다.
그렇다고 나의 서울 정착이 그렇게 순조로웠던 건 아니다.
친구들의 놀림은 물론 1년 동안 팽팽 놀다가 전학한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했다.
누구도 의정부에 쌓아올린 내 튼실한 기반을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의정부 골목대장 감투도 별 반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서울에 올라와 문전박대를 당하는 상황이었으니 한동안은 생존을 위해 세 과시로 존재감을 증명하는 처지를 감내할 수 밖에 없었다. (오늘 나의 수상을 축하하러 온 친구 중에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나하고 최소한 열 번 이상 싸우고 각별한 사이가 된 친구의 얼굴도 있다)
사실 모교의 동문 중에는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명사들이 많다.
의사나 교수, 목사 등 전문분야에서 두드러진 명성을 얻고있거나 주목받는 사업가들로 성공한 동기들도 많다. 불멸의 야구선수 김재박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별히 나를 ‘자랑스런 동문’으로 지목한 것은 앞으로 모교에 애정을 갖고 모교 발전을 위해 열심히 일해 달라는 주문이 아닐까 싶다.
행사 일정보다 조금 일찍 도착해 학교의 이곳저곳을 돌아보면서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학교는 오랜 세월에도 불구하고 거의 변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내가 학교 다닐 때보다 훨씬 퇴락한 느낌이었다. 별로 달라진 것이 없는 모습들 때문에 더욱 초라해 보였다. 40여 년 전만 해도 중고등학교에 드물었던 강당이 있었고 최첨단 어학실과 과학실 그리고 스팀 난방장치 등의 최첨단 시설로 호화 귀족학교 소리를 듣던 위세를 찾아볼 수 없어 안타까웠다.
어떤 식으로든 모교의 과거 명성을 되찾는 데 수고를 아끼지말아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후배들을 위해 강의 일정을 잡아달라는 교장선생님의 청을 받고 이제는 말이 아니라 실천하는 삶으로 본을 보여주는 선배가 되겠다고 새롭게 새긴 다짐도, 나이가 더 들어버리신 은사님들을 바라보면서 더 자랑스러운 제자가 되어야겠다는 생각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칭찬으로 행복한 하루였다.
역시나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는 것 같다.
학교 행사 말고도 전쟁기념관에서의 리더십 강연, 주요 모임의 대표자 회의 등 유난히 일정이 빽빽한 하루였지만 온 종일 들뜬 기분으로 지낼 수 있었다. 모교에서의 감흥이 준 에너지 때문이다.
지금부터 시작이라는 생각으로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
(2011. 10. 25.)
....홍문종 생각
2011년 10월 22일 토요일
홍문종 생각 - 비움의 미학
비움의 미학
리비아의 카다피, 독재자의 비참한 말로가 연일 화제다.
그의 최후를 둘러싼 뒷얘기가 무성하게 흘러나오고 있는 것이다.
사인에 대해서도 추측이 난무하고 있는데 현재로서는 그의 체포를 우려한 심복이 자구책 차원에서 그를 쐈다는 얘기가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 같다.
카다피가 시민군에 체포돼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동영상이 공개되기도 했다.
한때 아랍 통합의 주역으로 영웅시되던 인물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무기력하고 굴욕적인 그의 처신을 볼 수 있었다. 하수구에 숨어있다 붙잡히자 시민군을 향해 “제발 쏘지 말라”며 목숨을 구걸하는 모습은 측은지심을 자아내기까지 했다. 심지어 시신이 정육점 냉동고에 전시돼 조롱거리가 되고 있다.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할 독재자의 운명이 아닌가 싶다.
다른 사람에 비해 상가를 찾는 일이 많은 나로서는 본의 아니게 죽음의 현장을 자주 접하게 되는 셈이다. 조문 때 마다 느끼는 바지만 각양각색의 죽음과 그 죽음을 기점으로 발생하는 적나라한 뒷담화들이 인생 본연의 모습을 설명해 준다는 생각이다.
작고하기 3일 전까지 흔들리는 손을 간호사를 통해 제어시킨 채 결재 판에 사인했다는 자수성가 재벌 회장이나 숨이 끊기는 마지막 순간까지 술을 포기하지 못했던 애주가의 못 말리는 사연, 또 죽음을 목전에 둔 그 순간, ‘엄마’를 찾은 실향민이나 ‘남편’의 이름을 불렀다는 젊은 새댁의 안타까운 절규도 우리로 하여금 저마다 다른 유형의 인생을 짐작하게 해주는 일종의 뒷담화다.
유명인들이 죽음의 순간 남긴 말들은 나름의 무게를 갖고 인구에 회자되기도 한다.
신은 죽었다고 외치던 니체는 매독에 걸려 길거리를 배회하다 스스로를 변장한 신이라고 주장하는 말을 마지막으로 삶을 마감했다. 종교개혁자 캘빈은 “사람이란 아무것도 자랑할 게 없다. 목숨이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붙어있는 것일 뿐”이라는 유언을 남겼다. 중국을 움직였던 모택동은 죽은 뒤에도 10억 중국인과 함께 있고 싶다며 화장한 유골을 전 국토 위에 뿌려달라고 했다. 32세 젊은 나이에 순국한 안중근 의사는 천국에 가서도 우리나라의 독립과 자유 회복을 위해 힘쓰겠다는 말로 결연한 투사의 결기를 보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나는?
삶의 마지막 순간 무슨 말을 남기게 될런지.
그러나 금방 답을 낼 수 있을 것 같던 처음과는 달리 쉽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오늘 낮 오래 전 작고하신 분을 추모하는 자리에서도 떨쳐지지 않던 생각이다.
추도식의 주인공은 어지간한 사람이면 기억해낼 정도로 유명세 떨치는 삶을 살았지만 ....
사는 일도 죽는 일도 그다지 쉽지만은 않다는 생각이다.
분명한 것은 생전엔 물론 죽음 이후에도 향기를 잃지 않는 인생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 측면에서 사람들이 김수환 추기경이나 법정스님, 옥한흠 목사님 등 참된 삶으로 사표가 되신 종교지도자들을 만날 수 있었던 건 크나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세인들이 그들의 삶을 숭배하며 자발적인 존경을 보내는 이유도 같은 맥락으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잘 알지 못하고 또 상상하기도 용이하지 않은 카다피의 죽음에 사람들은 저마다의 해석을 달아 김정일이나 카스트로를 연관 짓는 모습들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른 사람보다는 스스로의 삶에 대한 의제를 바탕으로 한 절실한 관심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싶다.
푸르던 나뭇잎이 어느 새 누렇게 변해 땅위에 떨어지고 있다.
인간의 유한한 생명에 대한 경고를 몸짓으로 보여주는 낙엽의 퍼포먼스다.
계속되는 사인에도 불구하고 미욱하기만 한 인간은 본질을 외면하고 있다. 70년도 미처 다 채우지 못한 카다피의 삶이 그랬던 것처럼 이리 쫓기고 저리 쫓기며 비참한 결론을 향해 내달리고 있는 형국이다.
모두에게 찬란한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것으로 고별사를 진행하는 앞산의 단풍이 참으로 눈부시다.
오롯이 비워냄으로 해서 전부를 채우는 삶의 진리를 전하고 있다.
모든 걸 내놓고도 초연할 수 있는 낙엽의 여유로움에 귀도 기울이고 눈도 맞춰보겠다.
그렇게, 향기로운 언어를 마지막 메시지로 담을 수 삶의 주인이 될 수 있기를 간구해야지.
(2011.10.22)
....홍문종 생각
리비아의 카다피, 독재자의 비참한 말로가 연일 화제다.
그의 최후를 둘러싼 뒷얘기가 무성하게 흘러나오고 있는 것이다.
사인에 대해서도 추측이 난무하고 있는데 현재로서는 그의 체포를 우려한 심복이 자구책 차원에서 그를 쐈다는 얘기가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 같다.
카다피가 시민군에 체포돼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동영상이 공개되기도 했다.
한때 아랍 통합의 주역으로 영웅시되던 인물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무기력하고 굴욕적인 그의 처신을 볼 수 있었다. 하수구에 숨어있다 붙잡히자 시민군을 향해 “제발 쏘지 말라”며 목숨을 구걸하는 모습은 측은지심을 자아내기까지 했다. 심지어 시신이 정육점 냉동고에 전시돼 조롱거리가 되고 있다.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할 독재자의 운명이 아닌가 싶다.
다른 사람에 비해 상가를 찾는 일이 많은 나로서는 본의 아니게 죽음의 현장을 자주 접하게 되는 셈이다. 조문 때 마다 느끼는 바지만 각양각색의 죽음과 그 죽음을 기점으로 발생하는 적나라한 뒷담화들이 인생 본연의 모습을 설명해 준다는 생각이다.
작고하기 3일 전까지 흔들리는 손을 간호사를 통해 제어시킨 채 결재 판에 사인했다는 자수성가 재벌 회장이나 숨이 끊기는 마지막 순간까지 술을 포기하지 못했던 애주가의 못 말리는 사연, 또 죽음을 목전에 둔 그 순간, ‘엄마’를 찾은 실향민이나 ‘남편’의 이름을 불렀다는 젊은 새댁의 안타까운 절규도 우리로 하여금 저마다 다른 유형의 인생을 짐작하게 해주는 일종의 뒷담화다.
유명인들이 죽음의 순간 남긴 말들은 나름의 무게를 갖고 인구에 회자되기도 한다.
신은 죽었다고 외치던 니체는 매독에 걸려 길거리를 배회하다 스스로를 변장한 신이라고 주장하는 말을 마지막으로 삶을 마감했다. 종교개혁자 캘빈은 “사람이란 아무것도 자랑할 게 없다. 목숨이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붙어있는 것일 뿐”이라는 유언을 남겼다. 중국을 움직였던 모택동은 죽은 뒤에도 10억 중국인과 함께 있고 싶다며 화장한 유골을 전 국토 위에 뿌려달라고 했다. 32세 젊은 나이에 순국한 안중근 의사는 천국에 가서도 우리나라의 독립과 자유 회복을 위해 힘쓰겠다는 말로 결연한 투사의 결기를 보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나는?
삶의 마지막 순간 무슨 말을 남기게 될런지.
그러나 금방 답을 낼 수 있을 것 같던 처음과는 달리 쉽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오늘 낮 오래 전 작고하신 분을 추모하는 자리에서도 떨쳐지지 않던 생각이다.
추도식의 주인공은 어지간한 사람이면 기억해낼 정도로 유명세 떨치는 삶을 살았지만 ....
사는 일도 죽는 일도 그다지 쉽지만은 않다는 생각이다.
분명한 것은 생전엔 물론 죽음 이후에도 향기를 잃지 않는 인생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 측면에서 사람들이 김수환 추기경이나 법정스님, 옥한흠 목사님 등 참된 삶으로 사표가 되신 종교지도자들을 만날 수 있었던 건 크나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세인들이 그들의 삶을 숭배하며 자발적인 존경을 보내는 이유도 같은 맥락으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잘 알지 못하고 또 상상하기도 용이하지 않은 카다피의 죽음에 사람들은 저마다의 해석을 달아 김정일이나 카스트로를 연관 짓는 모습들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른 사람보다는 스스로의 삶에 대한 의제를 바탕으로 한 절실한 관심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싶다.
푸르던 나뭇잎이 어느 새 누렇게 변해 땅위에 떨어지고 있다.
인간의 유한한 생명에 대한 경고를 몸짓으로 보여주는 낙엽의 퍼포먼스다.
계속되는 사인에도 불구하고 미욱하기만 한 인간은 본질을 외면하고 있다. 70년도 미처 다 채우지 못한 카다피의 삶이 그랬던 것처럼 이리 쫓기고 저리 쫓기며 비참한 결론을 향해 내달리고 있는 형국이다.
모두에게 찬란한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것으로 고별사를 진행하는 앞산의 단풍이 참으로 눈부시다.
오롯이 비워냄으로 해서 전부를 채우는 삶의 진리를 전하고 있다.
모든 걸 내놓고도 초연할 수 있는 낙엽의 여유로움에 귀도 기울이고 눈도 맞춰보겠다.
그렇게, 향기로운 언어를 마지막 메시지로 담을 수 삶의 주인이 될 수 있기를 간구해야지.
(2011.10.22)
....홍문종 생각
2011년 10월 21일 금요일
홍문종 생각 - 정치 리모델링
정치 리모델링
서울시장 선거전 분위기가 갈수록 태산이다.
양 후보 진영의 상대후보 흠집내기가 도를 넘는 형국이다.
폭주하는 네거티브에 후보들이 더할 나위없이 형편없는 인격체로 추락하는 모습이다.
그렇게 갈기갈기 찢기다간 누가 시장으로 선출된들 제대로 된 대접을 받을 수 있을까 싶다.
이들의 공방대로라면 서울 시민들은 부적격자를 시장으로 선택하게 되는 어이없는 결론이다.
하는 행태를 보면 이번 선거 역시 실패의 조짐이 역력하다.
후보들의 볼썽사나운 대응이 정당정치의 위기국면을 부채질하고 있다.
모두가 국민 신뢰는 안중에도 없다.
정치권은 민심에 귀를 닫고 민심은 정치권을 외면한 가운데 그들만의 리그로 치르는 선거가 성공을 거둘 리 만무다. 더구나 역대 어느 선거도 특별히 뜨거운 성원이나 박수갈채 속에서 치러진 기억이 없다.
탐욕스런 선거판에 보내는 국민 냉소가 시베리아 냉기를 능가할 정도로 싸늘하다.
며칠 전 만난 하버드 동창회 회장단 모임에서도 흉흉해진 저자거리 민심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인사들이 전하는 민심의 현장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정부 실책에 대한 불만의 정도가 생각보다 깊고 크다는 데 모두가 공감하는 분위기였다.
최소한 한번만이라도 자성의 기회를 할애했다면 정치권 전체가 이렇게까지 난국에 처하는 일만은 막을 수 있었을 텐데.
중학교 3학년 때 학생회장 선거가 있었다.
찬조연설자로 나섰던 한 친구의 재기발랄한 코멘트가 지금도 기억에 남아있다. 단상에 나서자마자 그는 자기가 지지하는 후보가 친구들에게 돼지라고 놀림을 받고 있다는 말로 좌중을 웃겼다. 그러더니 정색을 한 표정으로 돼지의 강점을 강조했다.
“그런데 여러분, 실제로 돼지는 깨끗한 걸 좋아합니다. 다른 가축에 비해 협동심도 있고 사람에게도 정말 많은 것을 주는 유익한 가축입니다.”라며 상대방을 비판하거나 몰아붙이지 않고도 자기가 선택한 후보를 회장에 당선시키는 수완을 발휘한 것이다.
비록 어린 친구였지만 여느 선거 참모 못지않게 우수한 전략을 썼다.
무엇보다 후보의 약점을 강점으로 부각시켜 유권자로 하여금 즐겁고 행복하게 선택할 수 있도록 배려한 전략은 오늘날 네거티브 독성에 찌들어 있는 우리의 정치현실에 가장 절실히 필요한 사례라 할 수 있겠다. 더도 말고 그 순기능적인 요소만이라도 벤치마킹 하면 어떨까 싶다.
며칠 있으면 이 혼탁한 선거전도 막을 내리게 된다.
누가 이길지 선거 결과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선거 이후의 문제다.
분열된 국민 정서를 봉합하고 국민들에게 새로운 희망과 가능성을 만들어 주는 작업을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한다. 그게 여의치 않으면 계속해서 파괴적이고 비생산적인 이전투구로 공론이 분할되는 소모전을 감수할 수 밖에 없다.
정치의 큰 틀을 바꾸는 수고 없이는 위기와 불안에 사로잡히는 삶이 이어지게 돼 있음을 명심할 일이다.
국민에게 고통을 주는 정치가 아닌 기쁨의 매개체가 되는 정치를 해보겠다는 의지도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모두가 정치 리모델링에 나서 보도록 하자.
(2011. 10. 20)
...홍문종 생각
서울시장 선거전 분위기가 갈수록 태산이다.
양 후보 진영의 상대후보 흠집내기가 도를 넘는 형국이다.
폭주하는 네거티브에 후보들이 더할 나위없이 형편없는 인격체로 추락하는 모습이다.
그렇게 갈기갈기 찢기다간 누가 시장으로 선출된들 제대로 된 대접을 받을 수 있을까 싶다.
이들의 공방대로라면 서울 시민들은 부적격자를 시장으로 선택하게 되는 어이없는 결론이다.
하는 행태를 보면 이번 선거 역시 실패의 조짐이 역력하다.
후보들의 볼썽사나운 대응이 정당정치의 위기국면을 부채질하고 있다.
모두가 국민 신뢰는 안중에도 없다.
정치권은 민심에 귀를 닫고 민심은 정치권을 외면한 가운데 그들만의 리그로 치르는 선거가 성공을 거둘 리 만무다. 더구나 역대 어느 선거도 특별히 뜨거운 성원이나 박수갈채 속에서 치러진 기억이 없다.
탐욕스런 선거판에 보내는 국민 냉소가 시베리아 냉기를 능가할 정도로 싸늘하다.
며칠 전 만난 하버드 동창회 회장단 모임에서도 흉흉해진 저자거리 민심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인사들이 전하는 민심의 현장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정부 실책에 대한 불만의 정도가 생각보다 깊고 크다는 데 모두가 공감하는 분위기였다.
최소한 한번만이라도 자성의 기회를 할애했다면 정치권 전체가 이렇게까지 난국에 처하는 일만은 막을 수 있었을 텐데.
중학교 3학년 때 학생회장 선거가 있었다.
찬조연설자로 나섰던 한 친구의 재기발랄한 코멘트가 지금도 기억에 남아있다. 단상에 나서자마자 그는 자기가 지지하는 후보가 친구들에게 돼지라고 놀림을 받고 있다는 말로 좌중을 웃겼다. 그러더니 정색을 한 표정으로 돼지의 강점을 강조했다.
“그런데 여러분, 실제로 돼지는 깨끗한 걸 좋아합니다. 다른 가축에 비해 협동심도 있고 사람에게도 정말 많은 것을 주는 유익한 가축입니다.”라며 상대방을 비판하거나 몰아붙이지 않고도 자기가 선택한 후보를 회장에 당선시키는 수완을 발휘한 것이다.
비록 어린 친구였지만 여느 선거 참모 못지않게 우수한 전략을 썼다.
무엇보다 후보의 약점을 강점으로 부각시켜 유권자로 하여금 즐겁고 행복하게 선택할 수 있도록 배려한 전략은 오늘날 네거티브 독성에 찌들어 있는 우리의 정치현실에 가장 절실히 필요한 사례라 할 수 있겠다. 더도 말고 그 순기능적인 요소만이라도 벤치마킹 하면 어떨까 싶다.
며칠 있으면 이 혼탁한 선거전도 막을 내리게 된다.
누가 이길지 선거 결과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선거 이후의 문제다.
분열된 국민 정서를 봉합하고 국민들에게 새로운 희망과 가능성을 만들어 주는 작업을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한다. 그게 여의치 않으면 계속해서 파괴적이고 비생산적인 이전투구로 공론이 분할되는 소모전을 감수할 수 밖에 없다.
정치의 큰 틀을 바꾸는 수고 없이는 위기와 불안에 사로잡히는 삶이 이어지게 돼 있음을 명심할 일이다.
국민에게 고통을 주는 정치가 아닌 기쁨의 매개체가 되는 정치를 해보겠다는 의지도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모두가 정치 리모델링에 나서 보도록 하자.
(2011. 10. 20)
...홍문종 생각
2011년 10월 18일 화요일
홍문종 생각 - 가을 남자
가을 남자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한결 섬세해진 마음결이 조심스러운 계절이다.
미세한 통증 하나에 가슴 전체가 순식간에 텅 빈 동굴로 초토화되거나 바스락 구르는 낙엽소리조차 예사로이 넘겨지지 않는 고감도 감성이 때때로 천형이 되어 신상을 들볶고 있다.
흐르는 세월에도 변하지 않는 가을의 내 모습이다.
그렇게 통과의례처럼 가을을 앓고 있는 것이다.
소스라치게 놀라 깨어나는 밤.
아직은 건재함에 안심하면서도 쫓기는 듯한 이 불안감은 뭔지 모르겠다.
불완전하기 짝이 없는 인간의 유한성을 알리는 신의 엄중한 경고일까?
감정과 감정 사이를 흐르는 심연과 날카로운 바위들에 놀라고 다치다 좌절하고 포기하는 나약한 모습은 도처에 깔린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세상을 비추는 거울 앞에 적나라한 나상으로 서 있노라면 세상의 명예도 권력도 그 무엇도 결국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자복이 절로 튀어나온다.
그러면서도 끝내 그것을 내려놓지 못해 불면을 키우고 있는 이 어리석음이 인간의 한계다.
알고 있으면서도 어찌할 수 없는.
이중적이지만 지극히 인간적이라는 변명으로 위안을 삼아보지만 엄청난 압박을 피할 수 있는 방패막이가 되기엔 한참은 역부족인 현실을 실감하게 된다.
잠 못 이루며 뒤척이다 고개 들어 가을 밤하늘을 쳐다보니 날 선 빛으로 박혀있는 달과 별이 눈에 들어온다. 얼마나 선명한 지 파르르한 떨림까지 전해질 기세지만 여느 때와는 달리 유난히 먼 거리에 놓여있는 느낌이다. 선명하다고 해서 거리가 늘어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단지 그것을 바라보는 마음의 거리가 달라졌을 뿐이다.
우리의 일상에서도 비슷한 경우를 발견하기가 어렵지 않다. 실제로 깨끗해서 선명한 대상에 거리감을 갖거나 경원시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판단의 오류가 선호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깨끗한 결론이나 대상을 도외시 하려는 건 배제돼야 할 속물근성이다.
새삼스런 깨달음이 힘이 되고 있으니 다행이다.
요즘처럼 어려운 시기이고 보면 ‘가을을 탄다’는 자체를 사치로 받아들일 수도 있겠다.
불황의 늪에 빠진 경제상황 때문에 약간의 냉기에도 쉽사리 움츠러들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둔감하게 지나치기보다는 더 적극적인 모습으로 가을과의 조우를 권면하고 싶다.평생을 무소유의 정신으로 살다간 법정 스님이 생전에 쓰신 글 중에 가을을 참 이상한 계절이라고 표현한 대목이 있다. 그러면서 푸른 하늘 아래서 시름시름 앓고 있는 가을 나무에게서 착해지고 싶게 만드는 충일의 순간을 포착한 적이 있음을 고백했다.
법정스님하여금 비어있음과 충만을 동일시하도록 작용한 권력이 있다면 오로지 가을뿐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계절의 변화와 가을의 서풍, 떨어지는 나뭇잎 등은 우리 자신을 한번쯤 돌아볼 수 있게끔 배려한 신의 선물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굳이 소크라테스의 말을 빌지 않더라도 인간이 살아가면서 평생 화두로 삼기에 부족함이 없는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답 구하기의 일환이라는 쪽에 무게를 싣게 된다. 어쩌면 인간 삶의 근원을 묻는 질문에 각 개인 저마다의 질문이 맞닿아 양산되는 수 만개의 서로 다른 대답들이야말로 가을앓이의 본질이라는 데 까지 생각이 미치게 된다.
올 가을 역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창조적인 노력을 기울일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내가 누구인가를 묻고 그에 대한 답을 내놓는 과정을 통해 지금까지의 내 인생을 수많은 사람들의 서로 다른 삶들과 견줘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정녕 감사해야 할 일이다.
가을남자 앞으로!!
세상이 아무리 슬프게 해도 그것에 스스로를 함몰시키는 불행은 자초해서는 안된다.
이 가을이 위축된 세상 모든 남자들에게 커다란 위안으로 존재할 수 있기를.
(2011. 10.18)
...홍문종 생각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한결 섬세해진 마음결이 조심스러운 계절이다.
미세한 통증 하나에 가슴 전체가 순식간에 텅 빈 동굴로 초토화되거나 바스락 구르는 낙엽소리조차 예사로이 넘겨지지 않는 고감도 감성이 때때로 천형이 되어 신상을 들볶고 있다.
흐르는 세월에도 변하지 않는 가을의 내 모습이다.
그렇게 통과의례처럼 가을을 앓고 있는 것이다.
소스라치게 놀라 깨어나는 밤.
아직은 건재함에 안심하면서도 쫓기는 듯한 이 불안감은 뭔지 모르겠다.
불완전하기 짝이 없는 인간의 유한성을 알리는 신의 엄중한 경고일까?
감정과 감정 사이를 흐르는 심연과 날카로운 바위들에 놀라고 다치다 좌절하고 포기하는 나약한 모습은 도처에 깔린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세상을 비추는 거울 앞에 적나라한 나상으로 서 있노라면 세상의 명예도 권력도 그 무엇도 결국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자복이 절로 튀어나온다.
그러면서도 끝내 그것을 내려놓지 못해 불면을 키우고 있는 이 어리석음이 인간의 한계다.
알고 있으면서도 어찌할 수 없는.
이중적이지만 지극히 인간적이라는 변명으로 위안을 삼아보지만 엄청난 압박을 피할 수 있는 방패막이가 되기엔 한참은 역부족인 현실을 실감하게 된다.
잠 못 이루며 뒤척이다 고개 들어 가을 밤하늘을 쳐다보니 날 선 빛으로 박혀있는 달과 별이 눈에 들어온다. 얼마나 선명한 지 파르르한 떨림까지 전해질 기세지만 여느 때와는 달리 유난히 먼 거리에 놓여있는 느낌이다. 선명하다고 해서 거리가 늘어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단지 그것을 바라보는 마음의 거리가 달라졌을 뿐이다.
우리의 일상에서도 비슷한 경우를 발견하기가 어렵지 않다. 실제로 깨끗해서 선명한 대상에 거리감을 갖거나 경원시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판단의 오류가 선호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깨끗한 결론이나 대상을 도외시 하려는 건 배제돼야 할 속물근성이다.
새삼스런 깨달음이 힘이 되고 있으니 다행이다.
요즘처럼 어려운 시기이고 보면 ‘가을을 탄다’는 자체를 사치로 받아들일 수도 있겠다.
불황의 늪에 빠진 경제상황 때문에 약간의 냉기에도 쉽사리 움츠러들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둔감하게 지나치기보다는 더 적극적인 모습으로 가을과의 조우를 권면하고 싶다.평생을 무소유의 정신으로 살다간 법정 스님이 생전에 쓰신 글 중에 가을을 참 이상한 계절이라고 표현한 대목이 있다. 그러면서 푸른 하늘 아래서 시름시름 앓고 있는 가을 나무에게서 착해지고 싶게 만드는 충일의 순간을 포착한 적이 있음을 고백했다.
법정스님하여금 비어있음과 충만을 동일시하도록 작용한 권력이 있다면 오로지 가을뿐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계절의 변화와 가을의 서풍, 떨어지는 나뭇잎 등은 우리 자신을 한번쯤 돌아볼 수 있게끔 배려한 신의 선물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굳이 소크라테스의 말을 빌지 않더라도 인간이 살아가면서 평생 화두로 삼기에 부족함이 없는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답 구하기의 일환이라는 쪽에 무게를 싣게 된다. 어쩌면 인간 삶의 근원을 묻는 질문에 각 개인 저마다의 질문이 맞닿아 양산되는 수 만개의 서로 다른 대답들이야말로 가을앓이의 본질이라는 데 까지 생각이 미치게 된다.
올 가을 역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창조적인 노력을 기울일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내가 누구인가를 묻고 그에 대한 답을 내놓는 과정을 통해 지금까지의 내 인생을 수많은 사람들의 서로 다른 삶들과 견줘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정녕 감사해야 할 일이다.
가을남자 앞으로!!
세상이 아무리 슬프게 해도 그것에 스스로를 함몰시키는 불행은 자초해서는 안된다.
이 가을이 위축된 세상 모든 남자들에게 커다란 위안으로 존재할 수 있기를.
(2011. 10.18)
...홍문종 생각
2011년 10월 17일 월요일
홍문종 생각 - 전령사가 되자
전령사가 되자
선거를 열흘 앞두고 정치판이 설설 끓고 있다.
온갖 험한 말들이 오고가는 선거 캠프는 딱 전쟁터 분위기다.
특히 목불인견 양상으로 치닫고 있는 서울시장 선거전이 더욱 그렇다.
후보 진영 간 비방과 폭로가 도를 넘는가 싶더니 급기야 고소 고발로 이어지면서 사생결단에 나서는 모습이다. 유권자는 안중에 없이 무슨 짓을 해서든 이겨야겠다는 이기심이 염치도 체면도 다 벗어던진 탐욕스런 원초적 본능만 남겨놓은 듯싶다. 선거 시작 때만 해도 정책 대결을 약속하며 화기애애한 모습을 보여주던 후보들이 며칠 사이에 원수도 그런 원수가 없는 양 으르렁거리고 있다.
후보의 학력 시비는 선거 때면 어김없이 부각되는 단골 메뉴다.
민감한 반응을 끌어낼 수 있는 매력 때문인지 네거티브 선거의 유혹에 자유롭지 못한 모습이다.
이번에는 해외 학력시비가 논란이 되면서 야당 후보의 도덕성이 도마 위에 올랐다.
하버드대에서 객원연구원이었다는 건지 객원 교수였다는 건지 갑론을박이 이어지다가 급기야 저마다 서로를 허위사실 유포로 맞고소하는 사태로까지 번지고 있다.
나 역시 학력 시비에 걸려 곤욕을 치룬 경험이 있기에 관심이 간다.
어느 선거 땐가, 미국 대학에서 받은 나의 석 박사 학위가 가짜라며 상대후보가 선관위에 고발을 했다. 그러나 이는 미국 대학의 학위운영 방식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무지에서 비롯된 해프닝이었다.
미국은 우리와는 확연히 다른 방식으로 학위제도를 운영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 경우 스탠포드 대학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으나 관련 논문은 쓰지 않았다.
스탠포드 대학 측은 그런 내게 석사 학위를 줬다. 결과적으로 박사과정 수료한 학력으로 석사 학위를 받은 셈인데 국내 대학 시스템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제도일 수 있다.
비슷한 이유로 상대후보의 공격을 받았던 하버드 대학 박사 학위 건도 마찬가지였다.
석사 학위는 케네디 스쿨이라고 불리는 행정대학원에서 받고 박사 학위는 교육대학원에서 받았는데 이를 두고 상대방은 하버드 박사 학위는 맞지만 석사 학위는 허위라는 주장을 폈다. 행정대학원과 교육대학원은 완전히 다른 소속이어서 두 학교에 제각각 문의해야 하는 절차를 어긴 상대방의 명백한 오류였다.
나중에 결백이 밝혀지긴 했지만 당한 입장에서는 엄청난 봉변이었다.
그런 관점 때문인지 이번 강용석 안형환 두 의원의 박원순 후보 해외 학력 문제 제기는 좀 더 시간을 두고 사실여부를 확인했어야 하는 건 아니었는지 아쉬움이 남는다.
이번 선거도 예외없이 진흙탕 싸움이 전개되고 있다.
연일 이어지는 원색적인 비방과 폭로, 흑색선전으로 정책선거는 실종된 지 오래다.
당선이 최고의 선이라는 그들만의 덕목을 충족시키기 위해 모두들 또 다른 제목의 석고대죄 역사 쓰기에 혈안이 돼 있는 형국이다. 그렇게 해서 캠프 살림이 조금은 나아졌는지 묻고 싶다.
음모와 탐욕이 넘치는 그들만의 드잡이에서 국민 심판에 대한 두려움은 찾아볼 길이 없다.
정치개혁을 요구하는 국민의 준엄한 명령은 또 다시 쇠귀에 경 읽기로 끝나고 마는가 싶어 아쉬움이 크다.
남 탓으로 돌릴 생각은 없지만 링 밖의 관전자로서는 발 구르는 안타까움을 전할 수 밖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이 각성하면 된다는 희망을 버리지 못하겠다.
OECD 경제 대국을 자처하면서도 후진성을 면치 못하는 이 한심한 정치현실을 바로 잡을 주체는 오로지 스스로라는 현실 인식을 가져야할 때다. 이번 선거를 통해 제대로 된 후보를 선출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자. 그것이 정치를 바로 세우고 주권재민의 민주주의를 가장 확실하게 실천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임을 알고 행하자.
흔히들 강한 것이 옳다고 말하지만 아니다, 그 말은 틀렸다.
진실이야말로 최대의 무기다.
깨어있을 때만이 스스로의 권리를 보장 받을 수 있음을 알자.
국민 모두가 정치현장에 새로운 가치관을 이식시키는 전령사가 되겠다는 각오로 새 역사 창출에 나서자.
이번 선거를 통해 실현해 보자.
(2011. 10. 15.)
....홍문종 생각
선거를 열흘 앞두고 정치판이 설설 끓고 있다.
온갖 험한 말들이 오고가는 선거 캠프는 딱 전쟁터 분위기다.
특히 목불인견 양상으로 치닫고 있는 서울시장 선거전이 더욱 그렇다.
후보 진영 간 비방과 폭로가 도를 넘는가 싶더니 급기야 고소 고발로 이어지면서 사생결단에 나서는 모습이다. 유권자는 안중에 없이 무슨 짓을 해서든 이겨야겠다는 이기심이 염치도 체면도 다 벗어던진 탐욕스런 원초적 본능만 남겨놓은 듯싶다. 선거 시작 때만 해도 정책 대결을 약속하며 화기애애한 모습을 보여주던 후보들이 며칠 사이에 원수도 그런 원수가 없는 양 으르렁거리고 있다.
후보의 학력 시비는 선거 때면 어김없이 부각되는 단골 메뉴다.
민감한 반응을 끌어낼 수 있는 매력 때문인지 네거티브 선거의 유혹에 자유롭지 못한 모습이다.
이번에는 해외 학력시비가 논란이 되면서 야당 후보의 도덕성이 도마 위에 올랐다.
하버드대에서 객원연구원이었다는 건지 객원 교수였다는 건지 갑론을박이 이어지다가 급기야 저마다 서로를 허위사실 유포로 맞고소하는 사태로까지 번지고 있다.
나 역시 학력 시비에 걸려 곤욕을 치룬 경험이 있기에 관심이 간다.
어느 선거 땐가, 미국 대학에서 받은 나의 석 박사 학위가 가짜라며 상대후보가 선관위에 고발을 했다. 그러나 이는 미국 대학의 학위운영 방식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무지에서 비롯된 해프닝이었다.
미국은 우리와는 확연히 다른 방식으로 학위제도를 운영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 경우 스탠포드 대학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으나 관련 논문은 쓰지 않았다.
스탠포드 대학 측은 그런 내게 석사 학위를 줬다. 결과적으로 박사과정 수료한 학력으로 석사 학위를 받은 셈인데 국내 대학 시스템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제도일 수 있다.
비슷한 이유로 상대후보의 공격을 받았던 하버드 대학 박사 학위 건도 마찬가지였다.
석사 학위는 케네디 스쿨이라고 불리는 행정대학원에서 받고 박사 학위는 교육대학원에서 받았는데 이를 두고 상대방은 하버드 박사 학위는 맞지만 석사 학위는 허위라는 주장을 폈다. 행정대학원과 교육대학원은 완전히 다른 소속이어서 두 학교에 제각각 문의해야 하는 절차를 어긴 상대방의 명백한 오류였다.
나중에 결백이 밝혀지긴 했지만 당한 입장에서는 엄청난 봉변이었다.
그런 관점 때문인지 이번 강용석 안형환 두 의원의 박원순 후보 해외 학력 문제 제기는 좀 더 시간을 두고 사실여부를 확인했어야 하는 건 아니었는지 아쉬움이 남는다.
이번 선거도 예외없이 진흙탕 싸움이 전개되고 있다.
연일 이어지는 원색적인 비방과 폭로, 흑색선전으로 정책선거는 실종된 지 오래다.
당선이 최고의 선이라는 그들만의 덕목을 충족시키기 위해 모두들 또 다른 제목의 석고대죄 역사 쓰기에 혈안이 돼 있는 형국이다. 그렇게 해서 캠프 살림이 조금은 나아졌는지 묻고 싶다.
음모와 탐욕이 넘치는 그들만의 드잡이에서 국민 심판에 대한 두려움은 찾아볼 길이 없다.
정치개혁을 요구하는 국민의 준엄한 명령은 또 다시 쇠귀에 경 읽기로 끝나고 마는가 싶어 아쉬움이 크다.
남 탓으로 돌릴 생각은 없지만 링 밖의 관전자로서는 발 구르는 안타까움을 전할 수 밖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이 각성하면 된다는 희망을 버리지 못하겠다.
OECD 경제 대국을 자처하면서도 후진성을 면치 못하는 이 한심한 정치현실을 바로 잡을 주체는 오로지 스스로라는 현실 인식을 가져야할 때다. 이번 선거를 통해 제대로 된 후보를 선출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자. 그것이 정치를 바로 세우고 주권재민의 민주주의를 가장 확실하게 실천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임을 알고 행하자.
흔히들 강한 것이 옳다고 말하지만 아니다, 그 말은 틀렸다.
진실이야말로 최대의 무기다.
깨어있을 때만이 스스로의 권리를 보장 받을 수 있음을 알자.
국민 모두가 정치현장에 새로운 가치관을 이식시키는 전령사가 되겠다는 각오로 새 역사 창출에 나서자.
이번 선거를 통해 실현해 보자.
(2011. 10. 15.)
....홍문종 생각
2011년 10월 14일 금요일
홍문종 생각 - 안녕히가세요
안녕히 가세요
하와이에 있는 동안 양정규 전 의원님의 부음을 접했다.
가끔 병원에 다니신다는 말씀은 들었는데 그토록 위중한 상태였는지는 몰랐다.
생자필멸이라지만 가깝게 지내던 이들의 부고는 늘 처음 겪는 것처럼 날 선 아픔으로 다가온다. 헌정회 회장으로 늘 왕성하게 활동하시던 모습을 지켜봤던 터라 이렇게 서둘러 우리 곁을 떠나게 될 줄은 몰랐기에 더 서운하고 황망해지는 마음이다.
고인과는 15대 국회에서 동료의원으로 처음 인연을 맺었다.
보통은 국회를 떠나면 소원해지기 일쑤인데 우리는 얼마 전까지 자주 만나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나누는 만남으로 그 인연을 이어갔다. 적지 않은 나이 차이에도 격 없는 대화가 가능했던 건 넉넉하게 주위를 품어주시던 양 전의원님의 인품 덕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헌정회 회원이신 아버지와도 허물없는 사이로 지내셨던 터라 ‘아버지는 형님뻘이고 아들은 막내 동생 같으니 웃기는 족보’라는 우스개로 우리를 웃겼던 일도 있다.
정감 넘치던 고인의 웃음소리가 지금도 들리는 듯하다.
고인은 주변 사람들의 일이라면 언제나 발 벗고 나서길 망설이지 않던 사람이었다.
언젠가 제주도에 경민 학교 연수원을 지을 때도 정 많은 품성을 유감없이 발휘하시며 세심하게 도와주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고인 덕분에 당시 도지사까지 나서서 연수원 진행 과정에 각별한 관심을 보여 주었다.
너나없이 모든 사람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며 공감하는 그를 보면 다선의원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곤 했다. 분명 누구에게나 주어지지 않는 능력이었다.
고인을 우리는 양두목이라고 부르며 따랐다.
느닷없이 맞게 된 두목의 부재로 마음 둘 곳을 찾지 못하겠다.
정치는 물론이고 세상 일을 격의없이 상의드릴 수 있었던 큰 어른을 잃은 상실감이 만만치 않은 파동으로 내 마음을 흔들어댄다.
그래도 안녕히 가시라는 인사는 드려야겠지.
두목님처럼 지역이나 연령이나 신분차이를 가볍게 뛰어넘고 모든 사람과 아우를 수 있는 사람으로 살겠다는 다짐하나 얹어서.
우리의 영원한 두목님.. 영면하소서. (2011. 10. 14)
.....홍문종 생각
하와이에 있는 동안 양정규 전 의원님의 부음을 접했다.
가끔 병원에 다니신다는 말씀은 들었는데 그토록 위중한 상태였는지는 몰랐다.
생자필멸이라지만 가깝게 지내던 이들의 부고는 늘 처음 겪는 것처럼 날 선 아픔으로 다가온다. 헌정회 회장으로 늘 왕성하게 활동하시던 모습을 지켜봤던 터라 이렇게 서둘러 우리 곁을 떠나게 될 줄은 몰랐기에 더 서운하고 황망해지는 마음이다.
고인과는 15대 국회에서 동료의원으로 처음 인연을 맺었다.
보통은 국회를 떠나면 소원해지기 일쑤인데 우리는 얼마 전까지 자주 만나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나누는 만남으로 그 인연을 이어갔다. 적지 않은 나이 차이에도 격 없는 대화가 가능했던 건 넉넉하게 주위를 품어주시던 양 전의원님의 인품 덕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헌정회 회원이신 아버지와도 허물없는 사이로 지내셨던 터라 ‘아버지는 형님뻘이고 아들은 막내 동생 같으니 웃기는 족보’라는 우스개로 우리를 웃겼던 일도 있다.
정감 넘치던 고인의 웃음소리가 지금도 들리는 듯하다.
고인은 주변 사람들의 일이라면 언제나 발 벗고 나서길 망설이지 않던 사람이었다.
언젠가 제주도에 경민 학교 연수원을 지을 때도 정 많은 품성을 유감없이 발휘하시며 세심하게 도와주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고인 덕분에 당시 도지사까지 나서서 연수원 진행 과정에 각별한 관심을 보여 주었다.
너나없이 모든 사람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며 공감하는 그를 보면 다선의원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곤 했다. 분명 누구에게나 주어지지 않는 능력이었다.
고인을 우리는 양두목이라고 부르며 따랐다.
느닷없이 맞게 된 두목의 부재로 마음 둘 곳을 찾지 못하겠다.
정치는 물론이고 세상 일을 격의없이 상의드릴 수 있었던 큰 어른을 잃은 상실감이 만만치 않은 파동으로 내 마음을 흔들어댄다.
그래도 안녕히 가시라는 인사는 드려야겠지.
두목님처럼 지역이나 연령이나 신분차이를 가볍게 뛰어넘고 모든 사람과 아우를 수 있는 사람으로 살겠다는 다짐하나 얹어서.
우리의 영원한 두목님.. 영면하소서. (2011. 10. 14)
.....홍문종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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