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히 가세요
하와이에 있는 동안 양정규 전 의원님의 부음을 접했다.
가끔 병원에 다니신다는 말씀은 들었는데 그토록 위중한 상태였는지는 몰랐다.
생자필멸이라지만 가깝게 지내던 이들의 부고는 늘 처음 겪는 것처럼 날 선 아픔으로 다가온다. 헌정회 회장으로 늘 왕성하게 활동하시던 모습을 지켜봤던 터라 이렇게 서둘러 우리 곁을 떠나게 될 줄은 몰랐기에 더 서운하고 황망해지는 마음이다.
고인과는 15대 국회에서 동료의원으로 처음 인연을 맺었다.
보통은 국회를 떠나면 소원해지기 일쑤인데 우리는 얼마 전까지 자주 만나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나누는 만남으로 그 인연을 이어갔다. 적지 않은 나이 차이에도 격 없는 대화가 가능했던 건 넉넉하게 주위를 품어주시던 양 전의원님의 인품 덕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헌정회 회원이신 아버지와도 허물없는 사이로 지내셨던 터라 ‘아버지는 형님뻘이고 아들은 막내 동생 같으니 웃기는 족보’라는 우스개로 우리를 웃겼던 일도 있다.
정감 넘치던 고인의 웃음소리가 지금도 들리는 듯하다.
고인은 주변 사람들의 일이라면 언제나 발 벗고 나서길 망설이지 않던 사람이었다.
언젠가 제주도에 경민 학교 연수원을 지을 때도 정 많은 품성을 유감없이 발휘하시며 세심하게 도와주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고인 덕분에 당시 도지사까지 나서서 연수원 진행 과정에 각별한 관심을 보여 주었다.
너나없이 모든 사람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며 공감하는 그를 보면 다선의원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곤 했다. 분명 누구에게나 주어지지 않는 능력이었다.
고인을 우리는 양두목이라고 부르며 따랐다.
느닷없이 맞게 된 두목의 부재로 마음 둘 곳을 찾지 못하겠다.
정치는 물론이고 세상 일을 격의없이 상의드릴 수 있었던 큰 어른을 잃은 상실감이 만만치 않은 파동으로 내 마음을 흔들어댄다.
그래도 안녕히 가시라는 인사는 드려야겠지.
두목님처럼 지역이나 연령이나 신분차이를 가볍게 뛰어넘고 모든 사람과 아우를 수 있는 사람으로 살겠다는 다짐하나 얹어서.
우리의 영원한 두목님.. 영면하소서. (2011. 10. 14)
.....홍문종 생각
2011년 10월 14일 금요일
2011년 9월 16일 금요일
홍문종 생각 - 보이는 것의 실상
보이는 것의 실상
가히 초절정의 건망증이었다.
밤하늘에 걸린 달을 바라보는데 더 이상 환하고 둥근 한가위 보름달 자태가 나오지 않는 실상이 궁금했다. 추석 지난 지 며칠이나 됐으니 보름달이 일그러지기 시작하는 지극히 당연한 상식을 순간적으로 잊고 있었던 탓이다.
그래도 잊을 걸 잊어야지.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하고 태양의 광선을 받아 빛나는 특성 상 태양·지구· 등의 위치에 따라 그 모습이 바뀔 수 밖에 없는 ‘달의 운명’을 수없이 입에 달고 살던 나로서는 참으로 어이없는 해프닝이라는 자책마저 일었다.
깨달음이라고나 할까?
달이 차면 기울고 또 다시 차오르기를 반복하는 과정을 떠올리다가 생각이 달라졌다. 이 세상 모든 진리의 실체와 우리가 받아들이는 실체는 다를 수도 있다는 생각의 변화가 그것이다.
실제로 달은 한결같은 실체로서의 스스로를 견지하고 있는데 공기 때문이건, 구름 때문이건, 공전 때문이건 단지 우리 눈에만 변화무쌍한 모습으로 비춰지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자 우리가 지금까지 상식으로 규정하고 받아들인 모든 것들이 갑자기 모호해졌다. 판단의 근거가 실체의 기준인지 , 그것을 대상으로 한 시각인지, 그 마저도 실체와의 사이에 놓인 장애요인을 감안한 부분인지, 더 나아가 보고 싶은 부분으로만 판단되고 있는 건지 도무지 선명하게 잡히는 대목이 없다.
또 간간히 주변 환경 때문이든 개인적인 특성 때문이든 실체를 놓치는 경우가 적지 않은 현실을 우리가 모르는 바도 아니다. 그럼에도 놓쳐버린 실체가 전부인 것처럼, 자신이 알고 있는 것만이 진리인 것처럼 행동하는 어리석은 인간의 모습이 도처에 깔린 현실이다.
달일까, 전기일까?
어느 쪽이 인간에게 더 유용하게 쓰일까?
갑작스런 정전사태가 정치권까지 술렁이게 했다는 소식에 떠올려 본 생각이다.
자연 앞에 문명의 소산을 비교하는 자체가 미련한 발상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럼에도 하나마나한 우문을 던지는 건 보조제 정도는 몰라도 절대로 자연의 대체제가 될 수 없는 문명의 이기가 가진 한계를 분명히 하고자 하는 의도에서다.
어떤 일이 있어도 인간은 자연을 능가할 수 없다는 건 여러 번의 재해 경험만으로도 충분하다. 지진이나 해일 등 최근 들어 잦은 출몰로 지구촌 전체를 충격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있는 자연 재해도 따지고 보면 다 우리 스스로가 자초한 결과다. 환경오염이나 우리 삶의 패턴을 풀어나가는 접근 방식에 인간의 겸허함이 필요한 이유이고 또 그것이 옳다.
한꺼번에 많은 고기를 잡으려면 촘촘한 그물만큼 좋은 수단이 없다.
그럼에도 일정정도 이하의 그물코 넓이를 단속하고 있는 건, 그것이 결과적으로 자연의 씨를 말리고 인간의 피해로 이어지는 폐단을 알고 있기에 나온 처방책일 것이다. 자연을 죽이고 양식장 등으로 그 간극을 메우려고 한들 과연 얼마만큼의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 너무도 뻔한 답이 말해주는 현실이기도 하다.
갑작스런 정전사태로 속출하는 개인이나 기업의 피해 상황이 짧은 순간의 단절만으로도 인간의 삶을 순식간에 혼란의 도가니로 몰아넣을 수 있는, 문명의 이기가 가지고 있는 유한성을 절감시키는 계기가 되고 있다. 사상 초유의 절전사태가 인간으로 하여금 삶의 우선권을 자연에 둔 재설계에 관심을 둬야 하는 현실 인식을 촉구하고 있는 형국이다.
결국 우리가 아는 실체라는 것들은 다 허상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인간이 가진 한계로는 해결할 수 없는 궁극적인 실체가 별도로 존재하는 것일까?
생각이 내달리다 보니까 태양이 없는 달은 우리가 아는 달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데까지 미치고 있다.
분명한 것은 공식적으로 드러낸 이름 외에도 시인을 비롯한 각종 예술분야의 작가군들이 불러주는 수없는 이름에도 불구하고 달의 실체가 오로지 하나라는 사실 뿐.
우리에게 통용되는 달의 실체는 태양과 함께 존재하는 것이고 태양의 존재가 빠진 달의 실체는 우리에게 영원히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다. 심지어 태양조차도 광활한 우주 나 은하계 영역으로 보자면 지극히 미미한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머리를 더 복잡하게 흔들고 있다.
달이 주는 원천적 아름다움에만 매몰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그때 그때 가슴으로 전달되는 의미를 받아들이고 음미할 수 있다면 더 이상 잡념의 구덩이를 헤매는 형벌에 시달리지 않아도 될 텐데....
나머지는 숙제로 넘겨야겠다.
여기까지만도 너무 벅찬 하루.....
(2011. 9 .16)
.....홍문종 생각
2011년 8월 13일 토요일
홍문종 생각 - 줄기세포
줄기세포
아무리 싫어하는 일본이라도 그들의 열린 자세가 많이 부럽다.
일본이 IPS(신형만능 줄기세포) 제작 기술에 관한 특허를 미국에 최초로 등록했다는 소식이다.
미래 바이오 시장에서 대한민국과의 오랜 경쟁구도를 깨고 독보적인 주도권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국제적 경쟁에서 한발 앞서 나갈 기회를 놓쳐버렸다는 씁쓸함으로 그 소식을 접했다.
수년 전 ‘황우석 파동’을 겪은 우리로서는 일본의 성공을 바라보는 심정이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일본의 ‘일’자만 들어도 민감해지는 국민 정서를 감안하더라도 너무나 당연한 반응이 아닐까 싶다.
더구나 이번 기술이 황우석 박사의 연구가 난자문제로 시끄러울 즈음, 도쿄대 야마나카 신야 교수팀을 중심으로 시작된 연구의 결과물이라고 하니 아쉬움이 더욱 커지는 느낌이다.
물론 줄기세포에 대해 전문적 식견이 없는 나로서는 황우석 파동의 본질을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줄기세포 경쟁에서 일본에 밀리고 만 현실이 안타깝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특히 배반포 수립에 관한 3년 전 황우석 박사의 원천 기술이 국내외 학계에서 독보적인 기술로 인정받는 현실을 생각하면 자꾸 미련이 남는 것 같다. 그 때 당시 우리가 다른 선택을 했다면 줄기세포에 관한 우리의 국제적 위상은 많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다른 차원의 방식으로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힘을 모았다면 또 다른 미래가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았을까 하는 여진 때문이다.
흔히들 ‘모래알 근성’이라는 말로 한국인의 취약점을 지적하곤 한다.
개인적으로 동의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역사적 자취를 돌아봐도 내부 분열이 외세에 힘과 명분을 주는 계기로 작용해 자멸을 초래한 사례들이 적지 않다. 개개인은 탁월하지만 집단이 되면 단결하기 보다 상대방을 끌어내리는 모함과 질시로 공멸의 역사를 쓴 경우가 비일비재한 것도 사실이다.
오죽 하면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까지 생겼을까 싶다. .
개인의 독창성이나 창조성을 국가 차원에서 보호하거나 호응하며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양새다. 개인의 업적도 국가 차원의 이익으로 받아들이고 단결력을 과시하며 효율성을 높이는 집단적 노력을 당연시하는 분위기다.
아무리 싫어하는 일본이라도 그들의 열린 자세가 많이 부럽다.
상황이 이렇고 보면 줄기세포는 그렇다 쳐도 우리의 사회적 풍토가 또 다른 기회 상실을 야기하게 될까 솔직히 우려된다. IT 나 자동차 산업 등 기술적 우위를 점하고 있는 분야에서 선진 기술을 추월당하고 스스로의 발등을 찍게 되는 어이없는 상황을 배제할 수 없다는 생각이다. 과거에 비해 괄목할 만한 발전을 이뤘는지 모르지만 실질적으로 하고자 하는 의욕이나 이를 뒷받침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오히려 퇴보 상태에 머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차원에서 보자면 카이스트 등을 만들어 첨단 기술을 발전시키려 했던 과거의 노력들을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황무지를 개척하던 열정과 도전 정신의 되살림이 새로운 자극을 주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기대감으로 말이다.
늘 하는 얘기지만 21세기는 컬럼버스의 달걀처럼 신선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지배하는 시대라 할 것이다. 종국에는 신천지를 개발하듯 도전과 모험 정신으로 지구의 축을 뒤흔들 수 있는 민족이 미래사회를 주도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장기적인 안목으로의 준비가 필요한 이유다.
세계 두뇌 집단과 겨뤄도 손색없다고 평가받는 인재풀과 대한민국에 부여된 국가적 이미지만 놓고 봐도 우리의 자원은 더 없이 풍족하다. 세계 어떤 나라보다도 앞선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해보자.
우리의 가능성을 믿고 대한민국이 좀 더 유연하게 거듭날 수 있도록, 세계사의 중심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 우리 모두의 노력을 더해보는 거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힘껏 밀어부쳐 보는거다.
그렇게 우리 힘으로 한 번 해보도록 하자.
(2011. 8. 13)
....홍문종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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