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23일 목요일

홍문종 생각 - 도발에 임하는 우리의 자세


도발에 임하는 우리의 자세  


일본 극우 정치인들의 후한무치한 도발행태가 ‘점입가경’이다.  
총리를 필두로 내로라하는 정치인들이 경쟁이라도 하듯 막말을 쏟아내니 하는 말이다.
종군위안부 문제를, ‘모든 전쟁터에 존재했던 불가피한 현상’으로 밀어붙이는가 싶더니 급기야 A급 전범 위패가 있는 야스쿠니 신사와 미국의 알링턴 국립묘지가 동급이라는 우김질도 서슴지 않는다. 특히나 일본 전역에 한국인 매춘부가 우글거린다는 비하발언은 우리 가슴에 치명적인 대못 하나를 박아놓았다.
하다못해 유엔까지 나서서 ‘위안부 모욕을 막기 위한 국민교육을 시행하라’고 권고하는 지경에 이르렀지만 정작 당사자격인 일본은 꿈쩍도 안하는 모습이다.
역사의 숱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조작과 왜곡을 일삼는 버릇을 놓지 못하는 이 질 나쁜 '이웃’을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온종일 머릿속을 맴돌더니 화두가 되어 버렸다.  

선거를 앞두고 당선에 모든 걸 걸어야 정치적 애로를 모르지 않지만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다.
열정, 균형적 감각과 함께  정치인이 갖춰야 할 3대 기본 자질로 '책임감'을 강조했던 막스베버의 주장이 아니더라도  정치인의 책무의식이  가치영역에 미치는 영향력은 실로 크다 할 것이다.
그러나  아베가 됐건 하시모토가 됐건 이시하라가 됐건  이들의  발언에서는 최소한의 책임감도 보이지 않는다.   다만 천박한  포플리즘만 난무할 뿐이다. 
결말도 뻔하다. 이런  불편한 배설물들이  종국엔  나치즘, 파시즘으로 진화를 거듭해가며 일본은 물론 지구촌 전체의 미래를 위협하는  귀결로 이어질게 너무도  너무도 명약관화하니 걱정이다.   
특히  개인의 입신양명을 목적으로 한 망언이라면  단언컨대 이들은 씻을 수 없는 죄를 짓고 있는 셈이다.  조만간 역사의 심판대에 올라서서  분신처럼 새겨진 주홍글씨를 부여잡고 통탄의 눈물로 일그러질 자신들의 미래를 짐작이나 하고 이러는 거냐고  묻고 싶은 충동이 인다.  
  
무엇보다 그들의 이중성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겠다. 
강국인 미국 앞에서는 충직하게 우방의 도리를 다하는  척  얄팍한 처세에 익숙한 그들을 보면   철저한 약육강식 지배구조에 길들여진 한 마리 충견을 보는 듯하다.
이는 일본인 의식 저변에 깔려있는 ‘black ship’ 트라우마와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인에게는 미국의 DNA야말로 범접할 수 없는 숭배대상이라고 믿는 신드롬이 생겼다. 메이지 유신을 촉발시킨 ‘검은함대'의 위력도  미국을 대표로 하는 서방세력 앞에 무조건 굴종해야 한다는 일본의 생각을 굳히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한 듯 싶다. 
강력한 '매질효과'라고나 할까.   

그러나 우리를 대하는 일본의 태도는 어떤가.
끝 간 데 없이 콧대를 세우며  독도를 자기 땅이라고 우기고 있는 현실만 봐도  일본은 우리를 무시하고 있다.  강자 앞에서 조아리던 머리를 쳐들고 안하무인 격으로 우리를 홀대하고 있는 정황이 역력하다. 
 동네북처럼 이리 휘둘리고 저리 휘둘려도 제대로 항의도 못하는 우리의 현실을 이대로 절대 간과해서는 안되는 이유다. 
그렇다고 마음대로 응징에 나서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감정적으로 대응하기엔   우리 국력이 취약하다. 
아프지만  인정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다. 

결국  문제 해결의 키는 국력이 쥐고 있는 셈이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 참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참으면서  가슴에 피멍을 들이는  이 굴욕을 결코 후대에 물려주지 않겠다는 의지를 뜨겁게 다져야 한다.  일본은 물론 전 세계가 대한민국 위세에 눌려 감히 말도 못 꺼내는 그 순간이 올 때까지 국력을 위해 뭉쳐야 한다.  그것이 지금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바람직한 자세가 아닐까 싶다.


(2013. 5.22) 
....홍문종 생각  

2013년 5월 12일 일요일

홍문종 생각 - 지도자의 새로운 덕목


지도자의 새로운 덕목

 
대학원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10여년 유학생활도 했으니 당연할 수도 있지만, 평소 영어를 잘 한다는 소리를 듣는 편이다. 심지어 ‘너처럼 영어를 잘하는 한국인은 처음 봤다’고 놀라워하는 원어민도 있었다. (덕분에 현지에서 목사님이나 선교사님 통역을 도와드릴 기회가 많았는데 ‘종교적 자유의 대부’로 유명한 故 제리 팔웰 (jerry falwell) 목사님도 그 중 한 분이셨다)
그럼에도 영어는 여전히 내게 핸디캡으로 작용하는 존재다. 강단에서 영어로 가르치거나 이국에서 연설할 기회가 적지 않은데 상황마다 천당과 지옥의 간극을 보이니 하는 소리다.  모국어가 아닌 현실적 한계라고 위안하기도 하지만 솔직히 입맛이 쓸 때가 많다.

그런 배경 때문인지 주변인들의 영어실력을 눈 여겨 보게 된다.
그 중 생각나는 몇 분의 영어 실력에 대해 촌평해보겠다. (여담일 뿐이니 나무람 없이 웃고 넘겨주시기 바란다)
지금껏 만났던 사람 중에서 영어 통역을 제일 잘했던 이로 기억되는 인물은 DJ의 하버드 연설을 통역했던 최성일 교수다. 평소 호흡을 잘 맞춘 탓인지 DJ의 숨소리까지 통역하는 실력을 보여줬다.
그런데 완벽한 ‘콩글리쉬’로 좌중을 사로잡는 카리스마하면 단연 DJ다.
80년대 무렵, ‘나이트라인’이라는 미국의 유명 방송에 출연한 DJ가 라이브로 진행되는 영어를 다 알아듣는 모습에 놀란 적이 있다. 그러나 의중을 전하는 그의 영어는 옥중에서 독학한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DJ의 영어실력은 대통령이 된 후에도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미국을 방문한 DJ의 영어연설을 한 상원의원 방에서 들었는데 미국인인 그도 한국인인 나도 알아듣지 못했다. 나중에 상원의원이 내용을 말하기에 어떻게 알았느냐고 물었더니 미리 배포된 텍스트를 보여주었다. 상대적으로 YS의 경우, 직접 영어를 구사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어 그의 실력을 평가하기가 애매하다.  다만 하버드에 있을 때 그곳을 방문한 YS의 대화를 들은 적이 있는데 당시 통역사가 대충대충 건성으로 통역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던 정경이 떠오른다. 
유학시절 같은 클래스에서 수업을 들었던 반기문 유엔사무총장(그 당시 이미 외교관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의 영어실력을 평가하자면 영어울렁증에 시달리던 동세대에 비하면 거의 최고였다. 하지만 그 역시 그 때만해도 ‘콩글리쉬’ 반열을 벗어날 정도는 아니었다. 동문수학했던 박진 전 의원의 영어는 뛰어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잉글리쉬에 근접한 콩글리쉬로 영어를 잘하는 외국인 정도의 평가가 적합하다는 생각이다.
현역 국회의원 중에서는 길정우 의원과 이재영(비례대표) 의원이 대단한 실력을 갖고 있다. (미국에서 공부했다는 한 다선의원은 내가 보기에 별로인 실력인데  본인 생각은 다른 것 같다. 그래서 볼 때마다  진실을 말해야하나 말아야하나 늘 갈등하게  만든다) 전직 의원 그룹에서는 오세응, 유재건 의원이, 그리고 이홍구 전 총리가 그 세대 기준으로는 훌륭한 영어 실력을 보여주셨다.

엊그제 텔레비전을 통해 지켜본 박근혜 대통령의 미 의회 영어 연설은 생각보다 뛰어난 실력이어서 놀라웠다. 확실하게 마스터한 ‘정통종합영어’로 완벽한 발음과 문장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에서 평소 대통령의 성실함과 진지함이 고스란히 묻어나기도 했다.   
박 대통령의 영어 실력이야말로  이번 방미일정  곳곳에서 빛을 발하며  기능이상의 역량을 발휘한 숨은 공신이라는 생각이다.   통역 없는 직접 대화로 오바마 대통령을 비롯한 많은 미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던 박대통령의 외교현장은 우리 모두가 공중파를 통해 목격한 그대로다.  
 무엇보다 언어야말로 세밀하고 직접적인 교감을 통해 상호간 이해의 영역을 넓힐 수 있는 가장 기초적인 소통수단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하는 계기가 됐다.  지도자의 덕목으로 외국어가 비중있게 다뤄져야 할 당위성에 대해서도 새삼 주목하게 해 주었다. 
  
아무리 살펴도 당분간 세계 공용어로서 영어가 차지하는 위상에 변동이 생길 것 같지는 않다.  좋건 싫건 영어를 공부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건만 아직도 영어 공포증에 시달리는 이들이 많다. 무섭다고 피해서 해결될 일도 아니니 차라리 즐기는 마음으로 정복에 나서라고 권할 수 밖에 길이 없다는 결론이다.
모두가 아시겠지만 영어엔 왕도가 없다. 호락호락하지도 않다.
그렇게 고약한 영어의 주인이 되려면 우선은 스스로가 미국인으로 빙의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그런 다음엔 완전히 정복 될 때까지 온 몸으로 외우고 또 외우고 외우고 또 외우는 반복으로 끝없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내겠다는 단단한 각오가 필요하다.   
"There is no royal road in English!!"                     

(2013. 5. 12)   
...홍문종 생각    

2013년 5월 5일 일요일

홍문종 생각 - 아베의 굴욕


아베의 굴욕 


지역구 출신 정치인이라면 국가와 지역의 이해관계를 놓고 고민하게 되는 경험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특히나 이제 막 정치를 시작한 경우라면 그 선택이 용이하지 않은 현실을 절감하게 될 때가 많으리라 짐작한다. 정치적 선택에서 국익을 우선시해야 하는 건 너무도 당연하지만 지역구 표심에서 자유롭지 않은 현실적 한계가 주는 압박 또한 녹록치 않음이다.  일테면 각 지자체마다 빚에 시달리면서도 문화시설이나 체육시설에 과잉, 중복 투자를 멈추지 않는 현상 등을 그 비슷한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정치적 입지를 구축하게 되면서부터는 사적 이해관계 보다 광의의 목적과 가치 기준에 무게를 두게 된다.  일종의 책무 의식이랄까, 정치적 자존감이 작동되는 효과일 것이다.

연일 극단의 수위를 갱신하는 망언으로, 주변국을 자극하고 있는 아베 일본 총리의 정치적 노림수를 보고 있자니 솔직히 편치 않다.  무엇보다 세계의 우려와 지탄에도 불구하고  국수주의 퍼레이드를 중단할 기미가 없다는 측면에서  더욱 그렇다.   
아베는 일본 각료와 의원들이 집단으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망동을 방조하는 것도 모자라 급기야 그 자신 ‘일왕 만세’를 연호하는 모습까지 언론에 노출시켰다.  독선도 이런 독선이 없다.  시대착오적 교만이 아니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출범 4개월을 맞는 아베 내각이 70% 국민의 지지를 얻고 있는 현상은 어떻게 해석되고 있을까?  
오랜 불황으로 추락한 국민적 사기를 추스르고 일본 경제를 재반등시키겠다는 아베의 전략이 주효한 덕분이긴 하지만   ‘아베노믹스’ 의 탄탄대로를 보장할 정도는  아니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실제 일본 언론이 조사한 결과를 보면 적지 않은 수의 국민들이 개정에 반대하고 있다.  평화헌법 96조 개정에 대한 의견을 묻는 여론조사에서 국회의원 74%가 찬성(반대 22%)한 반면 일반 국민은 54%가 반대(찬성 38%) 입장을 표명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조사 결과는 현재의 아베 정부 인기가 평화헌법 개정이나 국회의원, 각료의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 등 국수주의 행보와 무관한 것임을  뒷받침하는 것이어서 주목할 만하다.   
  
아베의 '야망'은 지극히 위험하다.  
 정치무대에 복귀한 흥분과 성공하고야 말겠다는 집착 때문에  그는  국제사회의 문제아를 자처하는 꼴이다.   최소한 ‘1년 천하’로 그치고 만  2007년  당시의  '쓴 기억'만 되돌려도 충분한 반면교사가 될 수 있을 텐데  조급한 그에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실제 아베는 집권 2년차로 접어들던 2007년 9월, 총리직에서 물러나야했다.  민생문제에 쏠려있는 민심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개헌문제를 밀어붙이다 궁지에 몰린 결과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국수주의를 등에 업은 아베의 광폭행보에 호감을 보이지 않는다. 
 내부결집에 유용했는지  몰라도  일본의 미래에 치명적 타격이  될 거라는 우려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실제  근시안적 판단이 종국엔 일본을 돌이킬 수 없는 회한에 빠뜨리고 말거라는 걱정이 아베를 국제 사회 의 공적으로  몰아가는 분위기다.  
정작  당사자만 국제사회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는 현실을 잘 모르고 있는 듯 하다.

어느 나라가 됐건 더 이상의 '아베' 출몰을  용납해서는 안된다.   

이익을 위해서라면 스스로는 물론 국가의 체면조차 아랑곳 않는  반인류적 패륜이 더 이상 지구촌을 교란하도록 놔둘 수 없음이다.  특히  국가의 명운을 담보삼아 자신의 입지를 세우과 하는 탐욕은 더 이상 설자리가 없도록 해야한다 .
아무리 생각해도 더불어 사는 국제사회의  평강을 위해  가장 바람직한 선택일 것 같다. 
             

(2013. 5. 3)

...홍문종 생각 

2013년 5월 1일 수요일

홍문종 생각 - 갑장, 빌게이츠


갑장, 빌 게이츠


며칠 전 국회를 찾은 빌 게이츠를 만났다.
그러나 그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컸던 걸까?
생각보다 그는 스마트해 보이지 않았고 에너지가 넘치지도 않았다. 여행에 따른 피로감 때문인지 후줄근해 보이기까지 했다. 이른 아침부터 자신의 강연을 듣기 위해 나온 국회의원들에게도 시큰둥했고 질문도 본인이 원하는 것만 선택해서 답변하는 등 자유로운(?) 영혼을 구사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개발 국가를 위한 백신 개발로 질병없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그의 열정은 충분히 뜨겁고 아름다웠다.
그는 강연을 통해 적절한 백신 보급으로 최빈국 어린이들이 건강을 지켜, 빈곤극복의 토대가 마련될 수 있도록 스마트원조 체계 구축하자고 강조하면서 대한민국의 역할을 주문했다. 백신 보급을 확대한 결과 1960년대 연간 2000만 명에 이르던 5세 미만 영아 사망자 수가 2011년에는 700만 명 미만으로 줄었다는 성과도 설명했다.
백신개발을 위한 75%를 뺀 나머지 25%는 미국의 교육체계 향상을 위해 활용하겠다는 철학과 신념도 밝혔다. 언젠가 교사를 대상으로 한 동영상 강연에서도 비슷한 소신을 밝히는 모습을 본 적이 있기에 그에 대한 신뢰가 커지는 느낌이었다.

무엇보다 50대 이후를 어떻게 살까 고민하다가 기부의 삶을 선택했다는 그의 고백은, 동년배인 내게 더 큰 자극으로 와 닿았다. ‘오늘날의 나는 미국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고 그런 환경을 조성해준 국가에 기부해야 한다’는 생각이 그를 기부의 삶으로 이끌었다는 메시지가 특별했다. 우리에게도 자신을 만들어 준 모국을 위해 전 재산 95%를 기부한다고 나서는 ‘부자’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부러움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빌 게이츠가 전하는 ‘부(富)를 쓰는 방법’도 인상적이었다.
스스로를 위해 미친 듯이 다 써 버리거나 자식에게 물려주거나 사회에 환원하는 3가지 방법 밖에 없는데 앞서의 두 선택은 무의미하거나 자식을 망치게 할 수 있다는 우려에 사회 환원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는 내용이었다.
빌 게이츠 강연은 사람과 주변 환경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환기시키는 계기가 됐다.
역시 가장 큰 재산은 사람이었다.
빌 게이츠가 그토록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정작 교육받을 대상이 없다면 아무리 완벽한 교육 프로그램이라도 제 역할을 발휘할 도리가 없다. 또 미국이라는 환경이 아니었다면 오늘 날 빌게이츠는 결코 존재할 수 없었을 거라고 확신한다.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였다면 대학을 중퇴한 빌게이츠에게 기회가 제공됐을까 솔직히 의문이다. 천재성을 발휘할 여건을 만들어 줬기에 빌 게이츠가 거둔 성공의 모든 것이 가능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자칫했으면 십중팔구 평범한 샐러리맨으로 살고 있거나 더 비관적 표현을 동원한다면 대학마저 중도 포기한 사회부적응자로 낙인찍힌 삶을 영위하고 있을 수도 있었다.

그러고 보면 미국이 달리 ‘기회의 땅’으로 자리매김 된 게 아니었지 싶다.
대학을 중퇴했다고 한 사람의 인생을 ‘실패’로 규정하지 않는 미국사회의 거시적 안목과 관용이 빌 게이츠 같은 거물을 배출한 일등 공신이라고 생각한다.
반복되는 과정에서 거듭되는 실패를 수용하고, 특히 성실한 실패에 대해 너그러운 사회만이 ‘인재’를 소유할 자격이 있다는 생각이다. 그런 노력 없이 그 무언가를 기대한다는 건 하늘에서 감 떨어지길 기다리는 어리석음과 다르지 않다.

분명한 건 우리에게도 무수한 빌 게이츠가 있다는 사실이다.
그 우수한 인재들을 ‘발굴’보다는 ‘양성’에 초점을 맞춰 재목으로 만들어내자.
그렇게 대한민국 재창조의 첫걸음을 떼 보자는 얘기다.

(2013. 4. 25)
...홍문종 생각

2013년 4월 18일 목요일

홍문종 생각 - 인연이여, 날아라


인연이여, 날아라 


이번 4.24 재보궐 선거는 그 어느 때보다  각별한 관심으로  지켜보고 있다.  
서울, 충남, 부산 등지의 우리당 후보 선거사무실을 찾아다니며  열심히 응원하기도 했다.
정치적으로도 당연한  도리지만 그럴만한  이유가 더 있었다.
출마한 세 분의 후보 모두 개인적으로 인연의 무게가 적지 않은 터라 ‘미니전국투어’(!)에 나서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충남 부여청양 선거구의 이완구 후보와는 박성범 전의원과 함께 ‘지구당 위원장’ 동기로 인연을 시작한 사이다.  
문민정부 시절이었는데, 그 때만 해도 여당 지구당 위원장하면 대통령이 청와대로 불러 임명장을 주고 신문에도 대서특필될 정도로 대접을 받는 자리였다.    
그러나 기자들은 누구도 우리 셋의 정치적 미래를 밝게 전망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박성범 전의원은 그 지역 터주대감 격인 정대철 의원과, 이완구 후보는 당시 자민련 조부영 부의장과, 그리고 나는 문희상 현 민주당비대위원장과 대진표를 짜고 있었으니 당연한 전망이었다. (그러나 그 해 총선에서 세 명 모두 여의도 입성에 성공하는 쾌거를 거뒀다) 
그런 인연으로 찾아간 이완구 후보는 특유의 너털웃음으로 먼 길을 왔다며 반겼다.
그러면서 나와의 에피소드를 우리 일행에게 소개하며 덕담을 하셨다.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는데 15대 국회 시절 동료의원들과 일본 하시모토 류타로 총리 관저를 방문했던 때의 얘기였다.  당시 이완구 의원이 다리를 꼬고 앉아있던 내게 ‘곧 총리가 나오니 정좌를 하라’고 권했는데 나는 ‘대한민국 대통령이면 몰라도 일본 총리 앞에서 다리 꼬고 앉은 게 무슨 잘못이냐, 내 마음대로 앉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이 후보는 “그 때는 홍의원이 독립운동가 후예라는 자부심과 절취부심하며 일본식민시대 관련 논문을 쓸 만큼 몸에 밴 반일정서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고 나를 두둔했다.
30대 혈기의 치기어린 객기였을까?
돌아보니 약간은 머쓱했지만  그래도  그리움을  불러일으키는 추억을 재생시켜주신 이후보께 감사했다.     
      
그 다음 행선지는 부산 영도, 김무성 후보 사무실이었다.
소탈하고 괄괄한 성품의 김무성 후보처럼 활기와 자신감이 넘치는 분위기가 물씬 느껴졌다.      부친이 영도지역에서 40여 년간 사업체를 운영했다더니 그 영향도 있겠구나 싶었다. 언론 등에서 일찌감치  김후보의 당선을  예견하는  정서도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나라 생각, 대통령 생각, 당 생각, 영도 생각' 이라고 쓴 플랜카드 문구가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순간, 내 블로그의 '홍문종 생각'을 차용(?)했나 물으며 장난치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다.  
김 후보와는 형처럼 친구처럼 인연을 이어온 만큼  함께 한 추억도 적지 않다.  
언젠가 손학규, 김문수 당시 의원들과 백두산에 올랐는데 흐린 날씨에 가려 천지를 보지 못하게 된 적이 있다. 그러자 김무성 의원이 “백두산은 원래 거물들이 오면 모습을 안 드러낸다는데 우리가 거물들인가?“고 해서 모두가 함께 웃었던 기억이 난다.  
또 한 가지, 부산지역 의원들끼리 묘한 경쟁의식 같은 흐름 같은 게 있다고 생각했는데 예상대로였다. 특히 김 후보의 독특한 면모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 여전했다. 
 
서울 노원병은 맨 마지막으로 찾았다. 
허준영 후보는 대학동기다. 
또 과거 국회 행정자치위원으로 활동할 때는 경찰에 몸담고 있던 그를 만날 기회가 많았다. 지난 총선 때는 친구들로부터 둘 다 당선돼 공동위원장으로 홈커밍 40주년 준비를 알차게 해달라는 응원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나만 당선돼  외롭게 학교 행사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그가 다시 기회를 얻게 돼 기뻤다. 
‘상계동의 허준’이 되어 발로 뛰는 선거전을 펼치고 있는 친구가 믿음직스러웠다.
하지만 그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건 많지 않았다.  다만 이번엔 반드시 당선돼서 모교행사를 멋지게 준비하자는 격려로 표현하는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일방적으로 쏠리는 것 같지 않은 선거분위기가 내 마음에 온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세상 인연이 묘하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된다.  
이런저런 인연들로 얽힌 사람들이 주자로 나선 이번 선거는 확실히 유의미하게 다가온다. 
부디 좋은 결과로 19대 국회에서 그 인연의 무대를 옮겨 교류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내 인연들이여, 훨훨 날아  어서 국회로 오시라 "
                                                      

 (2013. 4. 18)     
....홍문종 생각        


2013년 4월 16일 화요일

홍문종 생각 - 우환


우환


요즘들어 갑작스레 집안에 우환이 많아졌다.
병원을 차려야한다는 농담이 나올 정도로 환자가 늘고 있다.
지난 달 허리 병으로 입원하신 어머님에 이어 이모님, 그리고 고종사촌 매형과 형님이 같은 병원에 누워계신다. 그렇지 않아도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고 계시는 아버님 때문에 심란한데 마음이 무겁다.
      
형님이 뇌졸중으로 쓰러졌다는 소식에 많이 놀랐다.   
그러나 병상의 형님을 보는 순간 타임 테이블이 40여 년 전으로 되돌려졌다.    
언어를 잃은 와중에도 빛을 발하는 그의 백만불짜리 미소 때문이었다.
고모(형님의 어머니) 댁은 일일이 기억하기 어려울 만큼 식구가 많았다. 고모부는 성실하신 분이었지만 전쟁을 겪은 살림살이가 수월한 편은 아니었다. 그래서였을까? 고모는 늘 뚱한 표정이었다. 무뚝뚝한 고모의 미소는 특별했다. 어쩌다 한 번 웃으면 그동안의 서먹함이 단숨에 사라지게 하는 묘한 힘을 발휘했다.
그 양질의 유전인자를 물려받은 사람이 형님이었다.
어린 시절 고모님 댁을 자주 찾았던 건 열 살 넘는 나이터울에도 불구하고 나와 죽이 잘 맞는 형 때문이었다. 역할놀이를 하면서 놀았는데 형은 선량한 시민, 나는 뒷주머니를 노리고 쫓아가는 도둑역할을 했다. 또 해진 후 뒷산 개울에서 찬물로 목욕을 하며 덜덜 떨던 기억도 있다. 뭘 해도 마냥 즐겁기만 하던 그 시절 추억을 함께 하던 형이 어느 덧 칠순의 노인이 되어 병고에 시달리고 있는 현실이 허무했다.
추억의 꼬리가 매형의 병실로도 이어졌다.
마침 누나도 계셨는데 중학생 무렵, 어머니와 함께 내 방에 와서 내가 자는 줄 알고 결혼할 매형 얘기를 하며 ‘결혼작전’(?) 짜던 내용을 엿들었다고 했더니 펄쩍 뛰셨다. (아마도 당시 매형을 좋아하던 누나가 어머니께 지혜를 구하던 상황이 아니었나 싶다). 그러면서 “이 사람이 날 좋아했지 내가 언제 홍씨(누나는 이씨 성이고 매형은 홍씨)를 좋아했느냐”며 시치미를 뗐다. 
그러자 뇌졸 증세로 말하기가 어려운 매형이 손가락질까지 하면서 극구 부인하고 나서 모두를 웃게 했다.
그렇게 잠시 웃음기가 도는 사이, 조카들에게 ‘앞으로 니들이 잘해야 한다’는 내용의 일장연설을 남기고 병원을 빠져나왔지만 허전함이 여전히 가슴을 짓누르고 있었다.
      
병실의 어른들을 찾아뵈면서  운명 앞에서 더 겸허해지는 마음이다.  
어떤 인생도 생과 사의 구분에서 예외일 수 없다는 깨달음을 공고히 다지게 됐다.     
특히 주어진 내 삶에 최선을 다해야겠다 다짐하는데 면회 갔을 때 들었던 A의원의 탄식이 새삼 떠올랐다.   
고작 5년 권력에 불과한데 대통령 주변인들이 천년만년 불변의 권력으로 착각하고 있어 안타깝다는 토로였는데  내게도 영향을 미친 것 같다.    
5년이라는 한시적인 기간 동안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일, 권력에서 내려올 때 진정어린 박수갈채를 받을 수 있는 일....
그게 뭘까를 궁리하게 만들었으니.                                    

 (2013. 4. 16)   
 ...홍문종 생각     

2013년 4월 15일 월요일

홍문종 생각 - 포플리즘의 끝은 어디인가


포플리즘의 끝은 어디인가.

 
언론 인터뷰에 나설 때마다 ‘대박을 터뜨리고 싶은’ 갈등으로 망설인 경험이 적지 않다. 지명도를 높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속셈에 갑자기 머리가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종국엔 개인의 영달보다 국익을 우선하는 쪽으로 귀결되지만 유혹 앞에서 흔들림이 있는 건 사실이다.  개인적으로 속물근성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닌데 그런다.  
정치인으로 살면서 얻게 된 일종의 직업병(?) 아닐까 싶다.
  
얼마 전, 중국에 가서 왕자루이 외교부장을 만나고 돌아온 직후 출연한 TV 인터뷰에서도 비슷한 갈등이 있었다.  
당시는 북핵문제로 한창 민감한 상황이어서 북한통인 왕자루이와의 미팅 후일담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쏠리던 시점이었다. 인터뷰 내내 왕자루이에 초점을 맞춘 질의가 이어졌는데 선명한 답변 하나로 얻을 수 있는 정치적 효과를 생각하면 엄청난 유혹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알맹이를 빠뜨린 채 무미건조한 인터뷰로 끝내고 말았다.
정치적 욕심을 생각하면 아쉽기도 하지만  정치인으로서의 책무의식에 힘을 실은 결과였다.
민감한 내용이 미칠 파장을 고려하면 지금도 잘했다는 생각이다.

책임있는 자리에 있을수록 철저한 자기관리가 요구되는 건 자명한 이치다.
곧바로 뉴스가 되는 영향력을 생각한다면 발언에 무게를 두고 단어 선택 하나까지도 신중에 신중을 더해도 부족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임지지 못할 미사여구로 국민의 눈과 귀를 사로잡으려는 정치적 시도가  남발되고  있어 유감이다. 백가쟁명식 발언으로  사익에 연연해하는 풍경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요즘 들어 부쩍 심해진 느낌이다. 특히 정치적 이익을 위해 민심이반과 국론분열로 정치적 이익을 취하려는 정치인들이 많아졌다.
포플리즘 유혹에 취약할 수 밖에 없는 정치적 현실을 모르지 않지만 목불인견이어서 괴롭다.
  
개헌 논의만 해도 그렇다.  
‘5년 단임제도가 실효를 다한 만큼 동서화합과 통일에 대비한 헌법논의를 시작해 보자’라는 발언과 ‘현 정부의 문제가 크니 손끝에서 발끝까지 확 바꾸는 작업을 최우선 순위로 놓고 최선을 다하자’라는 발언이 주는 느낌은 크게 다르다. 무엇보다 뭔가 후련하게 해주는 자극이 있지만 구체적인 증거가 없어 뒷맛이 개운치 않은 뒤의 발언이 문제라는 생각이다. 무책임한 선동의 혐의가 짙다. 발언의 진의 여부를 가리는 일이야 부차적 문제로 놓더라도 근본적으로 공평하지 않은 출발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국민들에게 북핵 관련 상황을 전하는 과정도  다르지 않다. 
북한과의 상황을 똑같이 전하면서도 불안을 조장하는 정치인이 있고 안정감을 주는 정치인이 있다. 한쪽은 근거없는 주장으로 불안감에 떨게 하고 다른 쪽은 현실을 직시해서 대처방법을 모색하자고 주문한다.
그런데 현실은 패배주의적 사고가 지배하는 정치적 발언에 더 많은 관심이 쏠리기 마련이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그 폐단을 알면서도 충동적으로 인기영합주의를 선택하게 되는 이유일 수도 있겠다.
      
인사청문회가 됐건  정부조직법이 됐건   불안한 발언을 이어가는 정치인의 원맨쇼는 여전히 성업 중이다.   
 튀는 발언 하나로 정치적 성공을 거둔 사례 때문에 정치적 악순환이 거듭되는 형국이다.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지만  환심을 사기위해 이미지 조성에 신경을 써야하는 정치인의 비애를 알기에 편하게 타박도 못하겠다.  
염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건재를 믿는다.  
포플리즘에 천작하는 정치인들이야 그렇다 쳐도  그 의도를 꿰뚫는 국민적 혜안만 있으면 문제 없다.    
결국 국가의 명운이  국민  저마다에 달려 있음이다.                              

( 2013. 4. 14)   
...홍문종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