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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6월 13일 목요일

홍문종 생각 - 부산 방문

부산 방문  


부산은 찾을 때마다 정체모를  설렘의 파동을  느끼게 돼 각별한 도시다.   
해운대와 광복동 거리에 새겨진  지난 날 추억과 무관하지 않을 것 같은데  나만의 정서는 아니지 싶다.
그런 부산을 오늘은 당 지도부의 일원으로 현장최고위원회 등 정치활동을 위해 방문했다.
하지만 강행군하는 일정에 밀려 바다에 눈길 한 번 제대로 던져보지도 못하고 돌아와 아쉬웠다. 
  
  
부산은 누구랄 것 없이 가덕도 신공항에 대한 기대감으로  후끈 달아올라 있었다.     
지역 정치인들도  신공항 건설에 대한 희망과 염원을  이구동성  경쟁적으로 쏟아내는 분위기였다.  그동안  서울 다음가는  도시로서의 위상에 걸 맞는 대우를 받지 못했다는 불만의 발로일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모의원은 서울과 부산의 차이를 베트남에까지 견주며 부산에 대한 처우개선(?)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개인적으로도 충분히 공감이 가는 이야기였다.   

부산의 도약을 위한 국가적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라는데  이견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특히 아시아 물류의 중심지, 동북아 허브 기능을 갖춘 부산의 도시적 위상에 걸 맞는 도시환경 조성과 인프라 구축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다고 생각해 온 터다.



그런 측면에서 가덕도 신공항 건설이 부산의 기회가 될  여건이 무르익은 셈이다.   
대선공약인 만큼 그 어느 때보다 실현가능성이 높아진 점도 기대치를 키우는 분위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공항 건설이 결코 만능 해결사가 아닌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성급한 결론은 금물이다. 자칫 분란만 자초할 수 있다.
기대치에 들뜬 나머지 반드시 짚어야 할 사안들을 소홀히 해서 생각지도 못한 역작용에 직면하게 될까봐 우려돼 하는 말이다.
  
 진정 부산의 도약을 원한다면 여러 노력이 더 필요하다는 조언을 해주고 싶다.   
특히 신공항 건설처럼 거액의 예산이 요구되는 국책사업은 정치논리나 지역이기심에 급급해서는 안된다.
국익이 최우선적으로 고려되는 게 마땅한 도리이고 무엇보다 과정에서의 인내와 배려 역시  중요한 덕목이다.
그런 다음 합리적인 결론이 도출될 때까지 냉철하고 공정한 공론과정을 거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이다.   상식선에서 처리하면 문제될 게 없다.  
다만 이를 간과한다면 돌이킬 수 없는 갈등과 혼란에 직면하게 될 수도 있다.  


세상이 달라졌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비행기로 40분, KTX로 2시간, 더 이상 두 도시를 분리할 명분이 없음을 입증하는데 이보다 더 명확한 기록이 있을까 싶다.  특히 태평양 시대를 목전에 둔 시점을 감안할 때 더욱 그렇다.
이제는 서울의 경쟁력만으로는  확실히 부족하다.    
그런 차원에서 부산 발전을 모색하고자 하는 노력은 국가 전체의 부흥을 위한 적절한  시도라고 생각한다.  
 서울과 부산을 거점도시로 삼아 지구촌 무대에 대한민국을 선두주자로 내세울 기회가 아닐까 싶다.  
타이밍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다.  


서울과 부산이 공조하는 쌍끌이 작전으로 대한민국의 도약을 견인할 수 있다는 ‘근거없는 자신감’ 덕분에  한층 더 충만해진   하루였다.                                      

(2013. 6.13) 

....홍문종 생각                                   

2013년 5월 23일 목요일

홍문종 생각 - 도발에 임하는 우리의 자세


도발에 임하는 우리의 자세  


일본 극우 정치인들의 후한무치한 도발행태가 ‘점입가경’이다.  
총리를 필두로 내로라하는 정치인들이 경쟁이라도 하듯 막말을 쏟아내니 하는 말이다.
종군위안부 문제를, ‘모든 전쟁터에 존재했던 불가피한 현상’으로 밀어붙이는가 싶더니 급기야 A급 전범 위패가 있는 야스쿠니 신사와 미국의 알링턴 국립묘지가 동급이라는 우김질도 서슴지 않는다. 특히나 일본 전역에 한국인 매춘부가 우글거린다는 비하발언은 우리 가슴에 치명적인 대못 하나를 박아놓았다.
하다못해 유엔까지 나서서 ‘위안부 모욕을 막기 위한 국민교육을 시행하라’고 권고하는 지경에 이르렀지만 정작 당사자격인 일본은 꿈쩍도 안하는 모습이다.
역사의 숱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조작과 왜곡을 일삼는 버릇을 놓지 못하는 이 질 나쁜 '이웃’을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온종일 머릿속을 맴돌더니 화두가 되어 버렸다.  

선거를 앞두고 당선에 모든 걸 걸어야 정치적 애로를 모르지 않지만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다.
열정, 균형적 감각과 함께  정치인이 갖춰야 할 3대 기본 자질로 '책임감'을 강조했던 막스베버의 주장이 아니더라도  정치인의 책무의식이  가치영역에 미치는 영향력은 실로 크다 할 것이다.
그러나  아베가 됐건 하시모토가 됐건 이시하라가 됐건  이들의  발언에서는 최소한의 책임감도 보이지 않는다.   다만 천박한  포플리즘만 난무할 뿐이다. 
결말도 뻔하다. 이런  불편한 배설물들이  종국엔  나치즘, 파시즘으로 진화를 거듭해가며 일본은 물론 지구촌 전체의 미래를 위협하는  귀결로 이어질게 너무도  너무도 명약관화하니 걱정이다.   
특히  개인의 입신양명을 목적으로 한 망언이라면  단언컨대 이들은 씻을 수 없는 죄를 짓고 있는 셈이다.  조만간 역사의 심판대에 올라서서  분신처럼 새겨진 주홍글씨를 부여잡고 통탄의 눈물로 일그러질 자신들의 미래를 짐작이나 하고 이러는 거냐고  묻고 싶은 충동이 인다.  
  
무엇보다 그들의 이중성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겠다. 
강국인 미국 앞에서는 충직하게 우방의 도리를 다하는  척  얄팍한 처세에 익숙한 그들을 보면   철저한 약육강식 지배구조에 길들여진 한 마리 충견을 보는 듯하다.
이는 일본인 의식 저변에 깔려있는 ‘black ship’ 트라우마와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인에게는 미국의 DNA야말로 범접할 수 없는 숭배대상이라고 믿는 신드롬이 생겼다. 메이지 유신을 촉발시킨 ‘검은함대'의 위력도  미국을 대표로 하는 서방세력 앞에 무조건 굴종해야 한다는 일본의 생각을 굳히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한 듯 싶다. 
강력한 '매질효과'라고나 할까.   

그러나 우리를 대하는 일본의 태도는 어떤가.
끝 간 데 없이 콧대를 세우며  독도를 자기 땅이라고 우기고 있는 현실만 봐도  일본은 우리를 무시하고 있다.  강자 앞에서 조아리던 머리를 쳐들고 안하무인 격으로 우리를 홀대하고 있는 정황이 역력하다. 
 동네북처럼 이리 휘둘리고 저리 휘둘려도 제대로 항의도 못하는 우리의 현실을 이대로 절대 간과해서는 안되는 이유다. 
그렇다고 마음대로 응징에 나서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감정적으로 대응하기엔   우리 국력이 취약하다. 
아프지만  인정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다. 

결국  문제 해결의 키는 국력이 쥐고 있는 셈이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 참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참으면서  가슴에 피멍을 들이는  이 굴욕을 결코 후대에 물려주지 않겠다는 의지를 뜨겁게 다져야 한다.  일본은 물론 전 세계가 대한민국 위세에 눌려 감히 말도 못 꺼내는 그 순간이 올 때까지 국력을 위해 뭉쳐야 한다.  그것이 지금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바람직한 자세가 아닐까 싶다.


(2013. 5.22) 
....홍문종 생각  

2013년 1월 28일 월요일

홍문종 생각 - 정두언 의원


정두언 의원

  
정두언 의원, 그와는 학연이나 지연은 물론 정치적으로도 특정할 만한 연결고리가 거의 없는 편이다. 실제 3선이 되도록, 그와 더불어 동료의원의 연을 나눈 건 이번 19대 국회가 처음이다.

구태여 따지자면 사사롭게 떠오르는 인연은 몇 있다.
그와는 유난히 장례식장에서의 조우가 많았다.    사회적으로 겹치는 친분 때문인지 그는 아산병원이나 삼성병원, 서울대학병원 등지의 장례식장에서 가장 많이 마주치는 인사 중 한 명이었다.
빙모님 상을 치르던 어느 땐가는 생각지도 않았던 그의 조문을 받고 내심 놀란 기억도 있다.   당연한 상황일 수도 있었지만 당시의 정치적 역학관계를 고려할 때 한참 실세(?)로 통하던 그의 출현은 내게 의외일 수밖에 없었다.
(오래 전 일이지만) 정 의원 보좌진과의 인연도 있다.   어느 해던가, 선거 때 상대방 편에서 집요하게 나를 괴롭히던 한 인사로부터 새롭게 정 의원을 보좌하게 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제 같은 편이 되었으니 도움을 드리고 싶다는 요지였는데 확실히 정치에는 영원한 적도 없고 동지도 없다는 사실을 각인시켜줬다.

그런 정두언 의원이 법정구속 됐다.
그 소식을 접하는 순간, 제일 먼저 혹한의 추위가  걱정됐고 그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게 무얼까  조급해졌다.  솔직히 재판이 진행되는 중에도 무죄를 주장하는 그의 말을 믿고자 하는 마음이 컸다.   시름에 잠긴 그에게   ‘사실이 밝혀질 것이고 앞으로도 좋은 정치인으로 남을 수 있으니 힘내라’는 취지의 메시지를 보낸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특별하지 않은 인연치고는 확실히 과도한 관심을 그에게 보낸 셈이다. 

어쩌면 의원의 어느 날 의총 발언이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동료의원들 앞에서 그는 ‘시대적 소명’을 다하지 못한 자의 설움과 피해의식을 토로했다.   지금의 고통이 데모에 참여하지 않은 원죄 때문에  응분의 댓가를 강요당한 결과라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 때였던  것 같다.  동병상린의 공감대로  환치된  그의 넋두리가  내 가슴에 꽂힌 건.    
그렇게 그의 아픔이 보였다. 

정두언 의원 같은 정치인이 새누리당의 지평을 넓힐 수 있는  자산이라고 생각한다.
그 독특한 캐릭터, 출신성분, 그리고  경험들이 긍정적으로 평가된다면   틀림없이 좋은 인재로 거듭날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앞으로 남은 그의 재판 과정이 공정하게 진행되길  바란다.   혹여 그를 향한 세상의 질타가 지나치게 가혹하거나  상상에 매몰된 폭력 때문에 그의 진심이  외면당하는 불상사가 없기를 간구한다. 

“정 의원, 어쩌다 정치에 뛰어들어 고생이 많네.
특히 MB 대통령 만들기에 일등공신으로 기여한 기억 때문에 회한이 많을 걸세.
그러나 어쩌겠나, 참고 견딜 수밖에.
절망은 금물이네.
길고 긴 인생 행로에서 불가피한 돌발변수 때문에 무너질 수는 없지 않은가.
지금의 먹구름은 잠시의 머무름일 뿐, 머잖아 강력한 태양의 원기 앞에서 형체도 없이 소멸될 무상한 것들임을 잊지 말게나.
정치를 하건 안하건 우리에게 주어진 날들은 아직 많네.
정 의원이나 나나 소신껏 스스로의 길을 정진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네.
때가 되면  정 의원과 더불어 가슴을 열고  좀 더 나은 정치를 궁리하고 싶네. 


그날을 위해 부디 영육간 건강을 잃지 않길 바라네.
다시 만나세“                                                                         

(2013.1.26.)   
...홍문종 생각    

2012년 11월 12일 월요일

홍문종생각 - 보고서1

보고서 1


오늘은 여러분께 그동안 19대 국회에서 활동해 온 실적을 보고 드리고 칭찬도 받고 싶어 블로그를 노크합니다.

국토해양위원회 일원으로  그동안 단골 삭감 메뉴였던 경기북부 SOC 예산을 무려 4천억이나 증액해서 상임위 의결을 이끌어냈습니다.
솔직히  나름 ‘밥값’을 했다는 생각에 많이 기쁩니다.
보람도 느낍니다.

상습정체 해소를 위한 호원 IC 조기 개설비를 당초 30억 정부안에서 200억으로 증액 의결했고 의정부는 물론 경기북부 교통인프라 개선을 위한 구리-포천 민자고속도로 보상예산도 당초 869억에서 2천939억으로 올렸습니다. 이 밖에도 국도 3호선 대체우회도로 건설비(357억), 국지도 56호선 확장공사비(140억), 덕양-용미구간 확장사업비(50억), 내각-오남 국지도(52억), 국도 39호선(166억원), GTX 사업비(300억) 등까지 총 4천여 억 규모의 예산 증액 실적을 올렸는데 국토위 전체 증액예산이 4조임을 감안하면 여러분께 ‘잘했다’ 칭찬 받을 만하지 않습니까?  

'정신일도 하사불성'
지난 총선 당시 여러분께 드린 약속을 생각하고 반드시 그 약속을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고군분투했습니다.
그렇게 했더니 이뤄지더라고요.
자체 제작한 다큐멘터리를 통해 국회는 물론  장관, 
공기업 임원들에게 경기 북부의 낙후된 실태를 알리고 이에 관한 정책자료집으로 예산증액의 당위성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해나갔습니다. 정부예산 증액을 위해 수차에 걸친 상임위 질의는 물론 해당 부처 장차관과의 면담도 불사해가며  뜻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지금 이 순간, 성공의 경험들이 앞으로 더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되어 제 안의 것들을 가득 채워 줍니다.  든든한 우군을 지원받은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외곽순환도로 경기구간 요금차별 개선, 지하철 7호선 연장사업 등 앞으로도 해야 할 일이 산더미인데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욕 안먹는 정치인이 되도록 더 잘하겠습니다. 
지켜봐주는 것만으로도  정말 큰 힘을 주시는 여러분이십니다.

진정 사랑합니다.         
                                                                       

 (2012. 11. 10)
 ....홍문종 생각

2012년 8월 28일 화요일

홍문종 생각 - 메시아

메시아


"여러분이 수백만 명 가운데 나를 찾아냈다는 건 우리 시대의 기적이다.
           그리고 나는 여러분을 찾아냈다.      이것이 독일의 운명이다“
1937년, 히틀러는 이런 자신감으로 독일 국민을 선동했다.  대중은  열광하며 히틀러의 등극을 환영했다.  대단한  메시아  신드롬이었다.  
그러나 그 시혜(?)는 그다지 길지 않았다.
  
그리고 2012년,  대한민국 대선 판을 부유하는 메시아 신드롬의 편린들을 보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메시아를 향한 대중의 열망이 뜨겁다.  정치적 리더십이 부재한 시대적 상황의 특징이다.
저마다 분분한 해석을 내놓으며 메시아의 출현을 기다리고 있다.   
걔중에는 존재 자체를 원천적으로 부정하는 냉소주의와  근접한 조건이면 메시아로 인정해서 의지해보자는 절충주의, 또는 시대정신을 메시아로 동일시하며 이를 화두삼아 정진하자는 열혈주의의 기대감이  눈길을 끈다.  
덩달아 대권을 향해 메시아적 인자를 갖춘 적임자를 자처하는 이들의 발걸음도 분주해졌다.
과포장된 능력을 지속적인 자기최면을 통해 진짜 메시아라고 확신을 굳혀가는  모습들도 엇비슷하다.
국회의원이 되려면 논두렁 정기라도 받아야 한다는 말도 그래서 생긴 듯하다.

이런 정황에서  안철수 현상을  되짚어 보는 일은 흥미롭다. 
최근 룸싸롱, 최태원 SK 회장 구명 등으로 촉발된 ‘거짓말 논란’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데  얼마만큼의  영향력인지   가늠해 보는 일이 그것이다.
안 원장은 몇 가지 사안에서 그동안 숭고일변도(?)였던   자신의 언행과 엇박자를 내면서 곤경에 처했다. 
재벌그룹의 부도덕을 강도 높게 비판했던 그가 재벌가 자제들과의 모임을 만들고 , 재벌 구명 운동을 벌이거나  공동사업을 구상하는 이중성을 보였다.   술집은 커녕 술도 못마신다는  손사레도   거짓이었다.   ‘안철수 원장과 여자가 있는 룸싸롱에서 함께 술을 마셨다’는  증언이 담긴  월간지 기사가 나가자 인터넷 포탈 사이트에 ‘안철수 룸싸롱’이 순식간에 1등 검색어에 등극하는 기현상이 단적으로 대변하는 대목이다. 

물론 룸싸롱에서 술 마실 수 있다. 재벌 친구 구명운동 했다고 죽을 죄를 지은 것도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안철수 원장만큼은 예외일 수 밖에 없다. 지나치게 강도높은  도덕적 기준치로   스스로의 정치적 위상을 올리는 대신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직격탄도 피할 수 없게 됐다. 
텔레비전에 나와 단란주점이 뭐하는 곳이냐며 순진무구한 표정을 짓거나 재벌의 불공정 행위를 강하게 비판하는 정의감으로 대중에게 메시아적 이미지 심기에 성공한 그로서는  예상치 않은 부채가 부담스러울 것이다.  그는 확실히 이미지 메이킹 만으로 특별한 투자 없이 유력 대선주자 반열에 오르는 특수를 누렸다.    
의도했건 안했건 지나치게 완벽한 메시아적 이미지에  매달린 과욕이 화근이었다는  생각이다. 
차라리 처음부터 인간의 정서와 얼굴을 가진  메시아 설정으로 국민 앞에 나섰다면  어땠을까? 
실없는 줄 알지만 아쉬움이 남는다.

예단할 순 없지만 이번 논란이 그동안 승승장구하던 안원장의 진로를 방해할  징후는 여전히 유효한 게 사실이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이제라도 그가 메시아의 컨셉을 바꾸면  좋겠다. 
최소한 국민이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원하는 메시아의 유형은 하늘에서 강림하기보다는 더불어 살면서 고통을 이해해주는 이웃의 모습이다.   더 나아가 그 고통을 승화하고 정제시키는 작업을 통해 실패의 흔적을  백신으로 만들어  대한민국 정치 발전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하는  메시아를 원할 것이다.  국민을 어려움의 질곡으로부터 해방시키는 지도자야말로  진정한 메시아의 현신이고   국민이 가장 바라는  모습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안원장 뿐 아니라  대통령 선거에 나서는   모든 이들에게 간곡히 부탁하는 바이다.    
"국민을 바라보고 국민을 두려워하는  정치를 하세요. 
과거의 오류에 옭아매기보다 어떻게 극복하고 승화시킬 수 있었는지 그 과정에 포인트를 맞춰보세요. 
특히  잘나고 빛나는 이력보다는 포기와 좌절을 딛고 새로운 메시아적 이정표 창출로 스스로의 길을 얼마나 열어나갈 수 있었는지,  불굴의 투지에 대해  더 많이 얘기해 보세요"     

그렇게  뚜벅뚜벅  나가다 보면   어느 결에 더 크게 국민적 기대감을 충족시키고 있는 스스로를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진짜   메시아가  되어  환호 받는   스스로를  만나게  될 것이다.   
참으로 가슴 떨리고 신나는 일 아닌가.                               
  
(2012. 8.29)
 ....홍문종  생각




  

2011년 8월 28일 일요일

홍문종 생각 - 虛曠(허광)



虛曠(허광)


                                                                            - 홍문종 -

 

하루종일
머리가 쑤시더니
갑자기
마음이 터져버렸다

비운 것이
아니고
비워
진 것이다

터진가슴
벌렁가슴
솟대가슴
쓰러 내려도

가슴이
아프다
정말
뼈속까지 아프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더한
찢어짐

에 이 세상에
비로 왔는지
알 수 없어
더 지치러지다

그렇게  
피 땀 흘려
발버둥
쳐 보건만

던져진
세상에
버려진
탕아 조차도

머리두고
쉴 곳이 있어
행복해
보이거늘

뜰 太陽
불 商風
떠 오르니
쉴막에 누인다.


흰 옷을 입었나이다
용서하소서
용기를 주소서
용기를 주소서



  (2011.8.29) 

2011년 2월 24일 목요일

홍문종 생각 - 청년에게 희망을

청년에게 희망을

사상 최대의 청년실업률을 기록하고 있는 결코 간단하지 않은 현실이다.
청년 실업이 금기의 선을 넘어선 후유증을 체감하고 있다.
도처에 갈 길을 잃고 방황하는 젊은 무리들이 널려있다.
그들의 안타까운 모습이 시대의 우울을 더하고 있는 요즈음이다.
선배 세대로서 그들에게 좀 더 희망찬 출발을 마련해주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마음이 무겁다.
졸업을 하고 사회로 나서는 제자들에게 건네는 축하 인사조차 조심스러울 정도다.
졸업이 풍찬노숙의 사지로 내모는 또 다른 음모의 시작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솔직히 있다.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는 취업 현장의 경쟁률도 가슴을 덜컥 내려않게 만든다.
9급 공무원 공채 경쟁률이 93:1을 기록했다는데 아마도 많은 이들에게 예사롭지 않게 들렸을 것이다. 정년 보장의 틀이 무너진 취업환경이 상대적으로 남녀차별이 적고 신분이 보장되는 공무원 직종을 선호하게 만들었을 테지만 그만큼 심각한 청년 실업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 반증일 것이다. 교육 일선에 있는 입장으로서는 젊은이들이 하고 있는 고민의 일단을 보는 것 같아 걱정이 앞서는 게 사실이다.

지구촌 곳곳이 청년 실업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형국이다.
주지하다시피 이집트의 30년 독재를 무너뜨린 촉발점은 일자리를 얻지 못한 한 청년의 절박한 구호에서 시작됐다. 청년 실업이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고 우리에게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는 반증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관점을 달리할 필요가 있다. 청년 실업 자체보다는 한국사회가 가지고 있는 구조적인 병폐부터 해결하는 게 더 바람직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할 수만 있다면 빈부격차부터 해소하는 게 왕도다.
가장 무서운 절망은 빈곤의 악순환 앞에 수많은 젊은이들이 꿈을 포기하고 무릎을 꿇게 되는 일이다. 젊은이들을 좌절에 빠뜨리고 의욕을 떨어뜨리는 빈부격차부터 바로 잡아야한다. 따라서 이를 해소하기 위한 노력은 아무리 많아도 부족하다고 본다.
도대체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평생 집하나 제대로 장만할 수 없다면, 아무리 노력해도 자기 자식하나 제대로 교육시킬 여건이 안된다면, 그 어떤 최선의 노력으로도 낙오 대열에서 벗어날 방도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면 무엇으로 꿈을 세울 수 있겠는가.
결국 결혼문제가 됐건 자식문제가 됐건 취업문제가 됐건 인생의 그 어떤 문제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나설 수 없게 되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 할 것이다. 좌절로 인한 깊은 상처가 한 인간의 삶 전부를 망가뜨릴 수 있는 치명적 독성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사정이 이럴 진데 아무리 세계는 넓고 할 일이 많다고 외쳐본 들 약발이 먹힐 리 없다.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는 젊은이들의 현실이 안쓰럽다.
경기불황과 청년실업도 모자라 사회적 부양책임도 이들 세대에 떠넘긴 꼴이 됐다. 저출산 고령화 사회로의 진입이 그들의 어려움을 가중시키는 직격탄이 되고 있는 것이다.
무슨 일이든 가볍게 시작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후원과 따뜻한 격려로 몸과 마음을 가볍게 해줘야 하는데 출발도 하기 전, 무거운 짐부터 지워준 꼴이 됐다.
안팎으로 살기 힘들다는 아우성이 넘치고 있다.
다른 나라와의 생존 경쟁이 즉각적인 현실로 반영되는 이 시점에서 차세대를 책임질 젊은이들에 대한 관심이야말로 미래를 위한 가장 적극적인 투자가 아닐까 생각된다.
지금은 대한민국 전체가 ‘청년 프랜들리’ 정신으로 그들을 돌봐야 할 때다.
젊은 세대들이 창업 등 새로운 시도를 통해 과감히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질 수 있도록 이들을 뒷받침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나 여건을 만들어 주도록 관심을 가져야겠다.
그들의 고충에 귀를 기울이고 짐을 덜어주자.
우리 모두 젊은이들이 마음 놓고 자기 포부를 펼칠 수 있는 든든한 뒷배가 되도록 하자.
무엇보다 계층 간 격차를 줄이기 위한 국가적 차원의 노력이 젊은이들이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갖게 하는 큰 지원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이 땅의 청년들에게 희망을 주도록 하자.

(2011.2.25)
....홍문종 생각

2010년 12월 19일 일요일

홍문종 생각 - 새 하늘 새 땅

새 하늘 새 땅


점입가경이다.

정치권이 국회 집단난투극에 이어 엇갈린 ‘고소고발전’으로 2라운드를 펼치고 있다.

자유선진당은 민주당 관계자들을, 민주당은 한나라당 관계자들을 각각 고발하고 나섰다.

한나라당 한나라당대로 당 홈페이지에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의 국회폭력 현장'이란 제목의 동영상을 공개하면서 야당의 대응수위에 따라 고소 고발 방침을 정하겠다고 으름장이다.

오로지 당리당략과 이전투구만 존재하는 게 분명하다. 국민은 안중에도 없다.

‘구헌정 질서를 파괴하고 국회를 유린한, 묵과할 수 없는 사건이라는 판단 하에’ ’이 땅에 의회 민주주의를 제대로 정착시키고 실질적인 법치주의를 회복하기 위해‘ 고소를 하는 거라는데, 끌어다대는 이유가 참 현란하기도 하다.

자숙한다며 머리를 조아리던 며칠 전 모습이 과연 진실이기는 할까 싶다.



한심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국민 앞에 증거라고 내 놓은 동영상도 저마다의 의도대로 ‘손질한’ 상태다.
혹세무민이 따로 없다. 국민을 어떻게 보고 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염치도 없이 저마다 자기들이 피해자라는 주장이다. 목소리 높이고 떼를 쓰면 가해자가 피해자로 바뀌기라도 하는 것처럼 우김질이다.

치고 들어가야 할 쪽이 있고 막아야 하는 쪽이 있다면 피해자를 가리는 일은 너무나 쉽다. 국회 예산안 처리과정에서도 예산처리의 책임을 지고 있는 여당 측이 더 적극적일 수밖에 없다는 건 거의 상식선이다. 답답한 사람이 우물을 판다고 물리적인 ‘가해’를 통해서라도 일을 성사시키려는 여당 측 행보는 누구나 예측 가능한 범주였다.

그런데도 이런 저런 수상쩍은 ‘꼼수’로 비상 정국의 책임을 최소화하려는 여당 일각의 ‘바람’과 '시도'는 좀처럼 잦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뜻대로 되기가 슆지 않을 텐데.



물론 여야가 충돌하는 과정에서 한나라당에서 주장하는 상황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국민들에겐 가해자와 피해자의 영역이 구분된 마당이다. 더구나 여당의원들이 다시는 날치기를 안하겠다며, FTA 추가 협상안도 여야 합의 없이는 처리하지 않겠다고 다짐함으로써, 가해자라는 사실을 스스로 고백해 놓은 정황이다.

그런 것을 책임 소재를 미루며 다투고 있다.

정작 피해 당사자인 국민은 가만히 있는데 ‘가해자’들이 서로 손가락질하며 ‘보상’요구로 시끄럽게 하고 있는 것이다.

본질을 한참 비껴간 몰염치가 아닐까 싶다.

국민 앞에 석고대죄로 반성하고 사태를 수습하려는 정치권의 의지를 보고 싶다.

정치에 염증을 느끼며 너나 없이 싸잡아 보기싫다고 야단치고 있는 마당에 서로를 향한 손가락질에 매달려 있는 모습을 바라보는 심정이 어떨까 짐작이나 해봤는지.



뜻밖의 돌발적 변수가 상수로 존재하기 때문에 정치는 생물이라고 한다.

언제 어떻게 어떤 이유로 뒤집힐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게 정치판이다.

그런 측면에서 기성 정치인들에게 있어 다음 선거판은 그 어느 선거보다 재앙에 대응하는 철저한 준비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그 크기와 여파가 어느 정도인지 조차 감이 잡히지 않는, 인위적으로 피할 수 없는 숙명 같은 부담이 그저 걱정스럽기 만한 그런 정황 말이다.

방송 등 언론 매체에 노출 빈도가 많았거나 당내 중책을 맡았던 다선의원일수록 긴장 모드가 필요하다. 만일 그 흐름을 감지하지 못하고 있다면 대한민국의 현실 정치를 모르고 있는 것이다. 현실정치 감각이 그만큼 둔하다는 것이고 뒤쳐져 있다는 뜻이다.

적절하게 대비하지 못하면 분명 성난 민심의 질책 앞에 초라한 낙오자로 남게 될 것이 분명하다.



성경에 절묘한 우연이 있다.

40년 동안이나 광야를 헤매며 오랫동안 준비했던 모세는 정작 젖과 꿀이 흐른다는 새 땅을 멀리서 바라만 보았을뿐 밟아보지 못했고, 여호수와와 광야에서 새로이 태어난 사람들의 몫이 됐다.

정치권 역시 하늘과 땅이 새롭게 열리는 시점이다.

이에 대한 새로운 준비가 필요하다.

새로운 땅과 하늘은 그렇게 새로운 시대를 새롭게 준비한 지도자의 몫이 될 것이다.


(2010.12.17)
.....홍문종 생각

2010년 12월 4일 토요일

홍문종 생각 - 용이 되다

용이 되다


12월 4일, 오늘은 유난히 촘촘한 일정으로 진행된 하루였다.
사실 일주일 전부터 오늘의 벅찬 스케줄을 걱정했고 당일인 오늘 아침에는 이른 시간 일어나 동선 처리를 구상하고 연구할 정도로 부담스러웠던 일과였다.
서로 반목하던 지인들을 화해시키는 일과를 필두로 사촌과 친구 아들의 혼사가 치러지는 2곳의 결혼식장을 찾았고 외빈으로 초대받은 의정부 중.공고 동문회와 경민고 동문회에 참석해서 축사를 했다. 그리고 연이어 일정이 잡힌 스탠포드와 하버드 동문회와 미 8군 샤프사령관이 주관하는 송년모임, 죽마고우들의 모임에 이르기까지 거의 살인적인 일정이었으니 왜 아니겠는가.

그러나 하루 일과를 마감하고 돌아보니 그 어느 때보다 마무리가 잘 됐다는 생각이다.
포만감에 행복하기까지 하다.
사촌동생이 아들을 장가보내는 식장에서는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친지들과 안부를 나눌 수 있었고 아들 결혼식에서는 오래된 인연들이 진정성을 담아 건네는 정겨운 덕담들이 마음을 훈훈하게 했다. 지역 동문회 모임에서는 어린 시절을 함께 했던 친구들을 만날 수 있어 좋았고 사회 곳곳에서 성공을 거두고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지역 출신 인사들이 마음을 뿌듯하게 만들었다. 스탠포드와 하버드 동문회에서는 이국 땅에서 고충을 나누며 열정을 쏟던 동무들과의 젊은 날 추억이 떠올라 행복했다. 그리고 마지막 일정으로 잡혀있던 절친들과의 만남에서는 모든 걸 내려놓고 편안하게 즐길 수 있었다.
그러나 성공적인 마무리가 되기까지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생각이다.

솔직히 오늘 아침만 해도 우중충한 날씨 탓인지 무거운 마음이었다. 개운하지 않은 뭔가에 짓눌린 기분이었다.
그러나 하나 둘 모임이 진행될수록 가슴 속 먹구름이 걷히면서 내가 세상에 존재해야 할 이유와 그리고 사명들이 또렷해졌다. 그리고 기운이 나기 시작했다.
모임마다 많은 사람들이 나의 정치적 행보에 관심을 보이며 기대감을 보여줬던 정황이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정말 오늘은 가는 곳 마다 유난히 내게 집중하는 분위기였고 고스란히 에너지가 되어 나의 의욕을 자극하고 독려했다. 그리고 뭐든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충만하게 채워줬다. 덕분에 대한민국 미래 발전에 나의 역할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무럭무럭 피어올라 설레기까지 했다.
역시나 내게는 못 말리는 정치적 DNA 인자가 들어있는 게 틀림없다.

연말연시가 되면 갖가지 형태로 많은 모임이 진행된다.
그 모임들을 통해 지금껏 살아온 삶의 궤적을 돌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비디오를 돌려보듯 지난 시간을 현실에 비춰보며 현재를 점검하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잡을 수 있다는 의미에서 말이다.
그러나 생각처럼 모임이 좋은 결말만 있는 건 아니다.
가끔 지나친 망년회 음주가 돌이킬 수 없는 사건사고로 이어지는 소식을 듣게 되는데 이번만큼은 무탈하게 넘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물론 망년회라는 이름으로 만나는, 술에 취해 과거를 잊자는 그런 취지의 송년 모임도 카타르시스를 위해 필요하기는 하다. 그러나 어차피 망년회를 하는 그 순간조차도 곧바로 과거로 편입되는 게 인간사임을 감안할 때 차라리 미래 도약을 위한 발판이 되는 송년모임이 생산적이지 않을까 싶다.
특별히 모임을 통해 어려워진 경기에 풀죽은 이들을 기운 차리게 할 수 있다면 더 할 나위없는 성공이라 하겠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모임을 주도하는 이들의 철학과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할 것이다.
좌중을 어떤 형태로 이끌어 가느냐에 따라 모임의 분위기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의 각 모임을 주재했던 회장단 여러분께 감사하고 싶다.
내게 참으로 큰 행복을 줬다. 용이 되어 승천하는 기세를 느끼게 했다.




(2010. 12. 4)
....홍문종 생각

홍문종 생각 - 용이 되다

용이 되다

12월 4일, 오늘은 유난히 촘촘한 일정으로 진행된 하루였다.
사실 일주일 전부터 오늘의 벅찬 스케줄을 걱정했고 당일인 오늘 아침에는 이른 시간 일어나 동선 처리를 구상하고 연구할 정도로 부담스러웠던 일과였다.
서로 반목하던 지인들을 화해시키는 일과를 필두로 사촌과 친구의 혼사가 치러지는 2곳의 결혼식장을 찾았고 외빈으로 초대받은 의정부 중.공고 동문회와 경민고 동문회에 참석해서 축사를 했다. 그리고 연이어 일정이 잡힌 스탠포드와 하버드 동문회와 미 8군 샤프사령관이 주관하는 송년모임, 죽마고우들의 모임에 이르기까지 거의 살인적인 일정이었으니 왜 아니겠는가.

그러나 하루 일과를 마감하고 돌아보니 그 어느 때보다 마무리가 잘 됐다는 생각이다.
포만감에 행복하기까지 하다.
사촌동생이 아들을 장가보내는 식장에서는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친지들과 안부를 나눌 수 있었고 아들 결혼식에서는 오래된 인연들이 진정성을 담아 건네는 정겨운 덕담들이 마음을 훈훈하게 했다. 지역 동문회 모임에서는 어린 시절을 함께 했던 친구들을 만날 수 있어 좋았고 사회 곳곳에서 성공을 거두고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지역 출신 인사들이 마음을 뿌듯하게 만들었다. 스탠포드와 하버드 동문회에서는 이국 땅에서 고충을 나누며 열정을 쏟던 동무들과의 젊은 날 추억이 떠올라 행복했다. 그리고 마지막 일정으로 잡혀있던 절친들과의 만남에서는 모든 걸 내려놓고 편안하게 즐길 수 있었다.
그러나 성공적인 마무리가 되기까지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생각이다.

솔직히 오늘 아침만 해도 우중충한 날씨 탓인지 무거운 마음이었다. 개운하지 않은 뭔가에 짓눌린 기분이었다.
그러나 하나 둘 모임이 진행될수록 가슴 속 먹구름이 걷히면서 내가 세상에 존재해야 할 이유와 그리고 사명들이 또렷해졌다. 그리고 기운이 나기 시작했다.
모임마다 많은 사람들이 나의 정치적 행보에 관심을 보이며 기대감을 보여줬던 정황이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정말 오늘은 가는 곳 마다 유난히 내게 집중하는 분위기였고 고스란히 에너지가 되어 나의 의욕을 자극하고 독려했다. 그리고 뭐든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충만하게 채워줬다. 덕분에 대한민국 미래 발전에 나의 역할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무럭무럭 피어올라 설레기까지 했다.
역시나 내게는 못 말리는 정치적 DNA 인자가 들어있는 게 틀림없다.

연말연시가 되면 갖가지 형태로 많은 모임이 진행된다.
그 모임들을 통해 지금껏 살아온 삶의 궤적을 돌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비디오를 돌려보듯 지난 시간을 현실에 비춰보며 현재를 점검하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잡을 수 있다는 의미에서 말이다.
그러나 생각처럼 모임이 좋은 결말만 있는 건 아니다.
가끔 지나친 망년회 음주가 돌이킬 수 없는 사건사고로 이어지는 소식을 듣게 되는데 이번만큼은 무탈하게 넘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물론 망년회라는 이름으로 만나는, 술에 취해 과거를 잊자는 그런 취지의 송년 모임도 카타르시스를 위해 필요하기는 하다. 그러나 어차피 망년회를 하는 그 순간조차도 곧바로 과거로 편입되는 게 인간사임을 감안할 때 차라리 미래 도약을 위한 발판이 되는 송년모임이 생산적이지 않을까 싶다.
특별히 모임을 통해 어려워진 경기에 풀죽은 이들을 기운 차리게 할 수 있다면 더 할 나위없는 성공이라 하겠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모임을 주도하는 이들의 철학과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할 것이다.
좌중을 어떤 형태로 이끌어 가느냐에 따라 모임의 분위기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의 각 모임을 주재했던 회장단 여러분께 감사하고 싶다.
내게 참으로 큰 행복을 줬다. 용이 되어 승천하는 기세를 느끼게 했다.


(2010. 12. 4)
....홍문종 생각

2010년 11월 4일 목요일

홍문종 생각 - 아니면 말고?

아니면 말고?



70년대 당시 대학을 다니던 우리세대에게는 사실상 학교 교육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만 해도 대학에서 제대로 된 수업을 받아 본 기억이 거의 없다. 사실 공부는 스스로 알아서 하는 것이라지만 오랜 세월이 지나 미국에 가서야 정신을 차리고 체계적인 공부를 진행할 수 있었다. 오로지 생존을 위해 굴종을 감내해야 했던 현실 앞에서 한없이 무기력해지던 시절의 이야기다. 심지어 스스로를 길 잃은 세대로까지 자조하는 분위기가 주를 이루기도 했다.

당시의 미국 대학 입학사정관들이 이른 바 입학 사정회에서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없었던 한국학생들의 처지를 언급한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았는데 그 역시 우리 세대가 느껴야 했던 시대적 아픔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만 능력이 되면 외국으로 이민을 가고 싶은 희망자들이 장사진을 쳤던 그 시절 풍경을 아마도 지금 자라나는 세대는 도저히 공감할 수 없을 것이다.



오바마가 미 공화당 교육예산 삭감을 비판하면서 한국교육의 우수성을 예찬했다는 소리가 들린다.

오바마의 지적대로 우리의 ‘오늘’이 있기까지 교육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는 데 100% 동의한다. 게다가 세계 어느 곳에서도 그 유래를 찾을 수 없을 만큼 엄청난 대한민국 학부모의 교육열이 끼친 영향력 또한 지대하다고 할 것이다.

결국 지금의 대한민국 위상은 그러한 동력들이 모여 이뤄낸 공동작품인 셈이다.

그런 맥락에서 386 세대에 대한 부러움과 기대감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우리보다 체계적으로 공부했고 대한민국이 세계를 향해 나가기 시작한 시점과 맞물려 대학을 다닌 그들 세대가 우리들 보다는 우수하고 잘 준비되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만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으로 자기주관이 뚜렷하지 않거나 세대간의 질서의식이 결여 되어 있다는 우려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나름의 장점도 없지 않아 큰 걱정거리는 아니라는 판단이다.



386 세대인 민주당 강기정 의원이 영부인을 직접 지목, 남정태 대우조선해양 사장 연임로비 관련 의혹을 제기하면서 뉴스메이커가 됐다. 이로 인해 여야 간은 물론 정부와 청와대까지 진흙탕 싸움에 나서는 모양새가 되고 말았다.

결론으로 말하면 강의원의 이번 발언은 어떤 식으로 접근해도 사려깊지 못했다는 생각이다.

더구나 그가 정황으로 제시한 1000불짜리 AMEX 수표가 제한적으로 사용되는 현실적인 여건 때문에 뇌물로 이용될 수 없다는 여당 측 반박에 ‘후속 액션’ 없이 입을 다물고 있는 점도 스스로의 입지를 축소시키는 정황이라 하겠다.

대통령 가족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차원에서만 보더라도 386세대에 대한 기대감을 허물기에 충분하다고 본다. 만약 이번 파란이 치고 빠지기 식으로 의도적으로 전형적인 구태 정치를 답습한 형태였다면 386 정치인에 대한 가중된 '냉소'는 불가피하지 않을까 싶다.

왜냐하면 그들은 앞서 간 그 어느 세대보다 여러모로 교육의 혜택을 받은 세대이기 때문이다. 일테면 교육받은 값어치를 해야 하는 책무를 진 세대라고나 할까.



정치공세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이번 사건에서 한나라당도 과거 지사 떄문에 자유롭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한나라당 의 과거 발언 몇 가지만 들추더라도 영부인에 대한 도를 넘었던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나라당의 강의원 비난은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한나라당은 강의원을 공박하기 전에 스스로를 향한 자성의 목소리부터 내는 것이 필요한 수순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래야 국민 공감대를 얻을 수 있다.



이번 강의원 파장이 정략적인 정쟁에 그칠 것이 아니라 폐쇄적인 우리 정치의 진일보를 위한 교두보로 만들면 어떨까 싶다. 사실 대한민국에서의 낙후된 정치 수준은 심각한 상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정쟁 현장이 대한민국 국격을 떨어뜨리는 주범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을 정도다. 오죽하면 이제 정치만 제자리를 찾으면 된다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겠는가.

나 역시도 초선의원 시절 DJ에 대한 폭로성 발언을 중진의원들로부터 주문 받았던 경험이 있다. 조금은 지나치다 싶어 어물어물하다가 넘어가기는 했는데 누구도 '문제의 발언'을 하는 사람이 없었던 것으로 보아 결과적으로는 잘 한 일인 것 같다.


무분별한 정치공세가 우리 정치현장에 더 이상 발붙일 수 없는 새로운 정치문화를 조성하는 노력이 있어야겠다.

우선 정치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쟁취해야 할 대상이라는 관념부터 바뀌어야한다.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는 의지만 있다면 불가능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무엇보다 정쟁을 바라보며 불안해하는 국민 입장을 생각하자.

이번 사건도 진실게임 수준이지만 사안이 사안인지라 진실의 향방보다 국민적 자존심에 더 큰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하지 말자. 국익에도,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되는 제로섬 게임으로 정치일정을 낭비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정치인들이 최소한 선거 때 유권자에게 표를 구하는 초심으로 정치마당에 나선다면 지금처럼 동네북처럼 욕을 먹는 풍토도 개선될 수 있다.

모쪼록 미국도 부러워하는 우리의 교육수준이 정치권의 구태까지 정화시키는 기폭제로 작용했으면 싶다.


(2010. 11. 5)
...홍문종 생각

2010년 11월 2일 화요일

홍문종 생각 - 가을 밤에

가을 밤에



寒雨夜鳴竹 (한우야명죽) 차가운 밤비가 대를 두드리고

草蟲秋近床 (초충추근상) 가을 풀벌레는 평상 가까이에서 운다.

流年那可住 (유년나가주) 흐르는 세월을 어찌 멈출 수 있으리오

白髮不禁長 (백발불금장) 자라나는 흰머리를 막을 길이 없구나

-송강 정철, 우추(雨秋)





세월 참 빠르다.

싸늘한 찬바람에 돌아보니 2010년이 이제 두 달도 채 못 남았다.

침침해지는 눈과 무성해지는 흰머리가 속절없이 흐르는 세월의 무상함을 가르쳐주고 있다.

누구도 이길 수 없는 냉엄한 현실을 깨닫게 한다.

송강 정철의 넋두리에 마음을 실었더니 쓸쓸함만 더 키우는 꼴이 됐다.



오늘도 정신없이 분주하게 하루 일과를 마쳤다.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은 희망찬 미래를 기약하면서도 돌이켜보면 아쉬움 투성이다.

보람되면서도 아쉽고, 속이 꽉 찬 듯 싶으면서도 공허하기 짝이 없다.

아무리 영악하게 대처한다 해도 빠른 세월을 통해 인간이 감지하게 되는 건 역시 아쉬움이다. 사람이 죽으면 남는 다섯 가지 ‘~걸’에 대한 농담에서도 인간의 아쉬움이 진하게 묻어나는 것 같다. ‘좀 더 베풀 걸, 좀 더 들을 걸, 좀 더 노력할 걸, 좀 더 다가갈 걸 (한가지는 생각이 안 난다)라고 하며 지난 삶을 후회하게 된다는 농담이다. (썰렁했나?)



역시 인간은 누구도 완벽한 삶을 살 수 없다는 게 맞다.

피라미드, 타지마할 묘, 중국의 명 십삼릉 등만 해도 그렇다.

인간의 흔적이 묻어나는 그곳은 인간이 얼마나 버둥거리다 갔는지 짐작 할 수 있게 해주고 아무리 애를 써도 결국 불로초를 구하지 못한 진시황처럼 죽을 수 밖에 없다면 죽음을 받아들이는 자세까지도 연습 대상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세월은 간다. 우리도 간다.

가는 세월은 막을 수 없다. 우리가 가는 것을 막을 수 없다.

그러나 활용하기에 따라 삶이 지혜의 보고가 될 수도 있다.

오늘따라 유난히 추운 날씨 탓인지 한 장 남은 달력이 주는 스산함이 깊다.

발길에 차이고 이리저리 뒹구는 낙엽을 바라보면서 인생에 대한 이런 저런 상념에 잠기게 되는 가을밤이다.


(2010. 11. 2)
....홍문종 생각

2010년 10월 28일 목요일

홍문종 생각 - 관점이 다르니

관점이 다르니



살면서 의중을 온전히 드러낼 수 없어 곤혹스럽게 될 때가 많다.

며칠 전 내 블로그 독자와 나눈 대화 시간도 그런 순간 중 하나라 할 수 있겠다.

그는 내 블로그에 포스팅 된 글에 꽤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러면서 ‘대부분의 글들이 특정 사안에 딱 부러진 입장을 보이지 않고 두루 뭉실 넘어가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지 않는' 점에 대해 불만을 표명했다.

그의 충고에 특별한 오류가 있는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또 정확한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가 원래 사람이 무른 측면이 있기는 하지만 사상가와 현실정치인의 처지는 다를 수 밖에 없다는 취지로 정치하는 사람의 현실적인 한계를 설명했으나 역부족이었다. 어떤 설명도 명확히 다른 잣대를 들이대고 있는 그를 온전히 이해시킬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는 내게 확신을 바랬지만 그 역시 어려운 일이었다.



세상사 마다 극명한 시각차를 보이는 건 아니다.

그러나 관점에 따라 역사나 시대적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는 건 여러 경험들을 통해 익히 알려진 바다. 똑같은 사실도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의 결과가 나오게 돼 있다. 그런 상황을 감안하면 사물에 대해 어떤 식으로 진단을 내리고 매듭을 짓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이 절감된다.

한일 양국에서 극명하게 엇갈린 시각으로 평가되고 안중근 열사와 이토 히로부미의 사례만 해도 그렇다.

우리에게는 애국자로,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는 안중근 열사는 일본인의 시각으로 보면 그저 무모한 ‘테러리스트’일 뿐이다. ‘나쁜’ 일본인을 제거한 쾌거가 일본에서 오늘 날의 일본을 만들어 낸 위대한 지도자의 안타까운 희생으로 기려지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우리가 ‘의거’로 칭송하는 안 열사의 숭고한 행적이 일본에서는 무모하고 비뚤어진 영웅심의 발로 정도로 폄훼되고 있는 것도 관점의 차이에서 비롯된 당연한 결과다.

누가 맞고 틀린지를 단정 지을 수 없는 애매함이 거기 있다.

안중근 열사와 그의 아들 안중생의 삶도 비슷한 경우의 수를 보인는 건 아이러니다.

국가적 영웅으로 추앙받는 아버지 안중근과 그런 아버지를 부정한 변절의 댓가로 가족의 영위를 책임져야 했던 아들 안준생의 엇갈린 운명에 대한 평가는 극명한 시각차를 보이고 있다.

혹자는 안중생을 '호부견자‘로 낙인찍고 외면하지만 또 다른 관점에서 그는 자신의 선택이라기 보다 아버지의 선택 때문에 희생된 불우한 ’영웅의 후손‘으로 동정을 받고 있는 게 사실이다.



어떤 책임감과 사명감을 가지고 어떤 방향으로 삶을 임해야 할지는 참으로 중요한 방편이라는 생각이다. 그것들을 어떤 방법으로 추진할 것인가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고 시대를 보는 밝은 안목 역시 제대로 된 삶을 살기 위해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실제로 우리의 역사 속 인물들이 남긴 삶의 궤적을 통해서도 그들이 얼마나 다양한 방식을 동원해 자신의 목표 달성을 위해 노력했는지 알 수 있다.

준비하면서 때를 기다릴 줄 알았던 고려 태조 왕건의 인내심, 피비리내 나는 전쟁을 불사하면서 권력을 쟁취한 태종 이방원, 파락호의 손가락질을 마다하지 않던 흥선 대원군의 무서운 위장술, 자신의 신념을 위해 목숨 정도는 초개처럼 내던질 수 있었던 포은 정몽주의 절개 등이 지금 내 머릿 속에 떠오르는 성공사례다.

여건과 방법은 달랐지만 그들 모두 자신의 삶을 제대로 운영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인물들이다.

후대가 그들의 삶의 궤적을 기리는 것만 보아도 틀린 정황은 아닐 듯 하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유형으로 내 삶을 운영하고 있는 것일까?

시대를 잘 살기 위해서는 자신이 살고 있는 주변 여건이나 주어진 역할 등에 대한 끊임없는 성찰과 고민이 있어야 한다. 또 시대를 마감한 이후 어떤 식으로 평가되고 기억될 지 의식하는 것도 인간의 삶을 바로잡아 주는 훌륭한 자극제가 될 수 있다.

지금 이 순간 딱히 ‘이것’이라고 할 만큼 명확하게 손에 잡히는 결론은 없다.

하지만 인간에게 있어 삶의 궤적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는 알겠다. 제대로 된 ‘흔적’을 위해선 신중한 사고는 물론 굉장히 많은 노력이 필요할 테지만 말이다.

어찌 보면 별 생각없이 사는 것 같아도 하나하나가 너무나 소중한 저마다의 인생인 것을.



블로그 인연 때문에 제대로 산다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은 현실을 다시 한번 절감하게 되는 달 밝은 밤이다.



(2010. 11. 28)
....홍문종 생각

2010년 9월 1일 수요일

홍문종 생각 - 문제는 문제다

문제는 문제다


주객이 전도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차명계좌에 연루시킨 발언으로 경찰청장 인사청문회에서 탈락될 위기에 처해있던 조현오 청장은 무사히 취임식을 마친 반면 정치권은 격한 표현을 주고받으며 설전 중이다.

‘차명계좌’ 논란이 당사자를 제쳐두고 엉뚱한 곳으로 불똥이 튀어 발화하고 있는 것이다.

진원지는 ‘조청장 임명이 차명계좌 존부에 대한 대통령의 자신감’이라고 자극한 한나라당 홍준표 최고위원이라고 할 수 있다. 발끈한 친노 인사들이 유시민 전 장관의 ‘철없다’는 공박을 필두로 연일 홍의원에게 맹비난을 쏟아내며 활극을 벌이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친노 인사는 아니지만 손학규 전 지사도 ‘전직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부관참시까지 하는 패륜적인 언행을 서슴지 않고 있다’고 현직 대통령을 비난하며 차명계좌 정국에 가세했다. 이번에는 한나라당 측에서 손학규 전 지사를 향해 역공을 취하는 모양새다.




손학규. 홍준표, 유시민.

차명계좌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이들 세 사람은 공교롭게도 이런 저런 동기로 개인적 인연이 깊다고 생각하는 인물들이다. (손학규, 홍준표는 15대 국회에서, 유시민은 16대 국회에서 만났다.) 그래서였는지 갑자기 떠오른 그들에 대한 단상을 오늘의 블로그 소재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15대 국회에 들어간 이후 당시 299명의 국회의원 전체 명단을 놓고 한 명 한 명 짚어가며 그들에 대한 나름의 비밀 비망록을 작성한 적이 있다. 이 '금서'는 지금도 가끔 들춰보는 은밀한 개인적 영역인데 이들 세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유난히 길게 코멘트 돼 있다. (그에 앞서 개인적인 내 약점을 고백하자면 호불호로 사람을 가르긴 하지만 전반적으로 사람을 너무 좋아한다)



손학규 전지사와는 15대 국회의원 시절부터 특별히 친하게 지낸 사이다. 이른 바 기층민에 대한 실질적인 경험이 풍부했던 그의 삶은 나의 그것과 많이 달랐지만 말이다. 특히 수배자가 되어 도피하던 시절의 얘기를 들을 때면 확실히 나와 다른 세계를 사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수배자 시절 약사였던 부인과 몰래 데이트하던 그의 모험담을 가슴 졸이며 들었던 기억도 난다.

해외 유학파, 교직 경력, 기독교 등 동질감을 주는 배경들이 그에 대한 친밀의 강도를 높여줬던 것 같다. 국회를 떠난 뒤로도 경기도당 위원장 시절, 경기도지사였던 그와 대화를 나눌 기회가 많았는데 인간적으로나 도덕적으로 큰 흠을 발견할 수 없었다.

남의 말을 안 듣는다거나 인간사이의 끈끈한 의리가 부족하다는 점을 들어 이기주의, 독단주의, 엘리트주의 등등 그에 대한 비난이 없는 건 아니지만 확신을 가질만한 직접적인 정황증거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그에 대해 특별히 나쁜 기억을 담고 있지 않다. 게다가 (내가 평소 존경하는) 연세대 K교수 같은 젊은 교수 그룹이 그를 희망으로 생각하는 모습을 지켜본 터이기에 그가 좋은 정치리더라는 기존의 생각에 변함이 없다.



홍준표 선배는 15대 국회에 함께 입성했다. 또 홍씨 종친회나 대한민국 대표적 선배문화를 자랑하는 K대 학연 등으로도 여느 정치인보다 깊은 연을 맺고 있었던 사이다.

홍선배는 사석이라면 발언을 독점한다는 비난을 받을 수 있지만 통찰력 있는 안목과 식견으로 좌중을 좌지우지 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나이 중 사나이다. 경상도 특유의 시원함으로 그를 좋아하는 후배들이 많았다. 언제 어느 상황에서도 위축되지 않고 언제나 당당하게 자기를 잃지 않는 그의 모습이 좋았다. 불굴의 의지라고 할까, 적은 체구의 그가, 하고 싶은 말들을 팍팍 쏟아내는 모습은 (나하고 다르기 때문에 더욱) 매력적인 건 물론이고 어느 경우 카타르시스까지 느끼게 해줬다. 초선의원 시절, 이회창 총재에게도 하고 싶은 말을 직설적으로 잘했다. 내 금서에도 그런 그의 용기를 높이 평가돼 있다.



유시민은 국회에서 만나기 전, 책으로 만났던 사람이다.

그가 쓴 책을 읽으면서 삶의 대한 고뇌를 많이 했다는 느낌과 앞으로 사상가나 저술가로서 가능성을 보이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런 그를 보궐선거로 들어간 16대 국회에서 동료로 만났다. 본회의장에서 같이 의원선서를 하는데 양복을 입지 않은(흰 면바지 차림이었다) 그 때문에 논란이 일어났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는 어떤 경우 얄미워 보일만큼 말을 잘했다. 내가 보기에는 그의 정치적 스승인 故 노무현 대통령보다 더 논리적인 언변, 이른 바 휘발성 있는 연설기량이 돋보이는 정치인이다.



국회는 광의의 정치판 일부분인 만큼 설왕설래로 부산한 분위기가 바람직하다고 본다. 아무 말없이 침묵하는 것 보다 좀 심하더라도 치고 박고 싸우는 것이 더 낫다는 얘기다. 더 좋은 정책 대안이나 사회적 정의를 판단하는 기능이 있는 만큼 각자의 시각을 통해서 서로를 검증할 기회를 갖는 것이 생산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 며칠 ‘차명계좌’를 공통분모로 한 싸움에서 오고가는 말들은 이해는 가지만 지나치다는 생각이 든다. 체통을 잃고 싸움에만 매몰되고 있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극단적인 예가 될지 모르지만 본능에 충실한 경기 룰로 진행되는 격투기를 보는 것 같다.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는 있지만 잘 정돈된 단아함은 포기해야 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그러나 골프나 테니스처럼 신사적인 규칙을 적용해 진행한다면 격투기의 동물적 분위기는 조금은 순화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정치공세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감정이 격해졌어도 용어 선택에는 보다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다. 흥분했다고 본능에 지배받는 원초적 모습을 드러내는 건 본인은 물론 지켜보는 국민의 격도 나락으로 떨어뜨린다.

하물며 대한민국을 대표할 수 있는 핵심 정치의 위치에 있는 이들이다.

보다 성숙하고 정제된 용어 선택으로 대한민국의 격을 한 단계 더 끌어올려야 하는 책임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한 분들의 막말 공방은 그래서 더 불편하게 만든다.



‘철없다’나 ‘패륜’ ‘부관참시’ 같은 ‘막말’보다 더 격조있는 용어를 선택할 수는 없었을까?

해외 유학파 교수 출신인 손학규 전지사, 재치와 위트가 넘치는 홍준표 최고위원, 그렇게 글 잘 쓰고 말 잘하는 유시민의원, 이들의 면면을 보면 능력이 없어서 못하는 건 아닐 진데 아쉽다.

정치판 운명은 결국 정치판을 지켜보고 있는 국민 판단에 의해 결정되기 마련이다. 한치의 오차도 없이 방심하지 말고 오로지 두려움으로 서슬 퍼런 민의를 섬겨야 하는 이유다.

“아직도 정치판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있을까요?”

전철에서 우연히 듣게 된 한 시민의 육성을 그대로 전해주고 싶다.

이 말을 저승사자의 그것처럼 무겁게 받아들이는 정치인은 과연 얼마나 될 것인가.

문제는 문제다.


(2010. 9. 1 )

....홍문종 생각

2010년 8월 30일 월요일

홍문종 생각 - 無信不立

無信不立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등장했던 40대 총리 내정자가 청문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끝내 낙마했다.

총리가 되기엔 지나치게 흠집 많은 과거가 문제였다. 무엇보다 거짓으로 위기를 모면하려 했던 부정직성이 치명타로 작용했다.

탐욕에 대한 경계를 강조한 마이클 샌덜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감명 깊게 읽었다고 밝힐 때만 해도총리내정자는 기개와 자신감 넘치는 유망주였다. 그러나 정작 그는 자신의 삶을 정의롭게 관리하지는 못했다. 아무도 그의 장밋빛 미래가 제대로 관리되지 않은 스스로의 삶에 발목을 붙잡힐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던 터다.

그가 사퇴의 변으로 남긴 ‘無信不立’이 새삼스러운 무게로 이목을 끈다.

조금이라도 더 일찍 깨달았다면 그의 입신양명이 순조로웠을까?



며칠간 떠들썩했던 것과는 달리 또 다른 총리 후보와 장관감의 자질을 검증해야 하는 후속 청문회는 형식적으로 끝나게 될 공산이 커 보인다. 이미 전쟁이 끝나 공격하는 쪽이나 방어하는 쪽 모두 후속 총리 인선에 그다지 관심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일정치의 목적을 달성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차제에 본래의 취지가 퇴색된 청문회제도에 대한 보완 조치는 불가피하다는 생각이다. 청문회는 원래 고위공직자 후보의 국정철학이나 각 분야별 추진사업의 소신 등을 검증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다. 그런데 작금의 청문회는 모든 국민들에게 제대로 살아온 자신의 행적을 담보로 앞으로 맡은 직책을 어떤 식으로 운영해보겠다는 경쟁력을 내보이는 본래의 목적은 아랑곳없이 복마전 양상을 띤 인간도살장으로 전락해 버렸다. 그 결과 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한 사람은 통과하지 못한 대로 통과한 사람에게도 상처만 남게 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정책 질의는 간 곳 없고 후보자 비리에 관련된 의혹제기나 이를 추궁하는 목소리, 그리고 거짓말 답변이 난무하는 19금 화면이 된 지 오래라는 소리다.



그래도 청문회 대상이 될 정도면 대부분 사회적으로 성공을 거둔 인재그룹이다. 걔 중에는 미래를 향해 꿈을 키우는 청소년들의 롤모델로 자리잡은 인사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 그들이 청문회 검증대를 거치면서 당사자는 물론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에게까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고 있는 것이다.

명색이 고위 공직에 앉겠다고 나선 사람들의 면면이다. 그런데도 절제하지 못하고 ‘범죄자’ 수준의 탈불법을 불사하면서까지 탐욕을 부리는 모습이 안방에 중계되고 있는 판이니 이를 지켜보는 국민 심정은 오죽할까 싶다.

자칫 그들의 오염된 행적이 국가 전체의 도덕 불감증으로 번지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의 청문회 과정을 변경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낱 노래자랑이나 퀴즈대결도 여러 번의 예선 절차를 거쳐 본심에 오른 사람들만 공중파를 탄다. 하물며 국가 대사라고 할 수 있는 고위 공직자의 자질을 검증하는 자리다.

고위 공직후보가 청문회 석상에 얼굴을 내밀기 전 도덕성을 비롯한 개인적 자질 검증을 위한 예선전을 별도로 진행할 필요가 있다. 최소한 도덕적 하자가 있는 청문 후보는 막을 수 있는 예비 청문회 개념의 절차가 있어야 한다고 본다.

인사권자의 고유권한을 침해하자는 의도는 없다. 다만 인재등용의 과오를 최소화 시킬 수 있는 합리적인 사전 절차를 거치자는 소리다. 국민에게 선보이는 후보만큼은 도덕성 문제로 시비 대상이 되는 일 자체는 없도록 하자는 것이다.



고교 시절의 주차위반 경력까지도 문제를 삼는 미국의 엄격한 공직 인선 기준은 진실로 부러운 사회적 합의다. 그토록 까다로운 사전 절차를 거치는 만큼 청문회 석상에서 낯 뜨거운 설전이 오가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테니 말이다. 우선은 후보 당사자부터 결격사유를 가지고 있다면 아예 무모한 욕심을 내지 않고 알아서 빠지는 점도 우리와 다르다. 아무리 뒤가 구려도 일단은 잡아떼고 거짓말로 덮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만신창이가 될 때까지 버티기 작전으로 일관하는 우리의 현실과는 너무나도 대비된다.

그렇게 해서 자리에 오른 들 제대로 된 명예나 권위를 갖게 될 리 만무다. 그런데도 움켜 쥔 주먹을 풀 생각을 하지 않는 공직후보들의 모습이 그렇게 추하고 몰염치하게 보일 수 없다. 최소한 국민이 느낄 자괴감만이라도 안중에 있었다면 조금은 달라질 수 있지 않았을까?



청문회를 당리당략을 위한 정략적 도구로 활용하려는 생각은 위험하다.

온갖 설화에도 불구하고 경찰청장에 ‘당첨’된 조현오 후보를 놓고 여야가 주고받는 속 들여다보이는 설전에서도 그 기류가 감지된다.

후보는 명확하게 차명계좌 여부를 밝히라는 성화에도 불구하고 청문회 내내 알쏭달쏭한 태도를 견지했다. 여당 홍준표 최고위원은 ‘노전대통령의 차명계좌에 관한 조청장 발언이 사실이기 때문에 청문회를 통과했다’고 말을 얹었다. 야당 역시 특검을 요구하면서도 그다지 대차게 밀어붙이는 기세가 아니다. 손학규 전대표가 '부관참시'라고 목청을 높이고 유시민 전의원은 뜸들이는 한나라당 홍준표 최고위원을 향해 '철없다'고 일갈하며 선동정치를 벌이고 있지만 공허함만 키울 뿐이다.

갈수록 국민 의혹만 부풀리는 대응은 전직 대통령이나 현직 대통령 모두에게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다. 적당히 눙치며 몰아갈 사안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전직 대통령의 역사적 평가와 직결되는 문제이고 야당도 원하고 있는 사안인 만큼 특검을 비롯한 어떤 방법을 통해서라도 제대로 규명돼야 할 일이다. 일이 불거져 나온 이상 그냥 덮고 지나 갈 수 없는 일임에 틀림이 없다.그런데도 표류하고 있다. 이상한 일이다.



이대로 가다간 신뢰를 잃은 의회정치가 표류하게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당리당략의 늪에서 실종되고 있는 의회정치의 암담한 현실이 보인다.



무신불립의 경고는 국회의원들에게도 뼈아픈 얘기임을 각성해야 한다.

무엇보다 대다수의 국민들이 누구를 위한 청문회인가에 대한 의구심을 품기 시작한 변화를 주지할 필요가 있다. 청문위원으로 나온 국회의원들의 행태를 보며 오직 당리당략과 본인들의 의원직 유지에만 관심이 몰려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정황을 놓치지 말라는 소리다.



좀 더 품격있는 질의와 답변이 오가는 이상적인 공직자 인사청문회를 지켜보고 싶은 국민의 열망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발등의 불이되면 돌이킬 수 없게 된다.

시간이 많은 것도 아니다.


(2010. 8. 31)

....홍문종 생각

2010년 8월 29일 일요일

홍문종 생각 - 賞을 주지는 못할 망정

賞을 주지는 못할 망정


선관위가 지난 지방선거 당시 트위터에 경품을 걸고 20대 투표를 독려한 유명인사들을 선거법으로 처벌하겠다고 나서 인터넷이 들끓고 있다.

선관위가 내세우고 있는 처벌근거는 ‘투표유도죄’(선거법 230조 제1항 위반)이다.

선관위의 의지대로라면 임옥상(판화작품 1000점), 권해효(공연 '러브레터' 초대권), 박범신(소설 '은교' 10권), 안도현(시집 '연어 이야기' 30권), 김용택('그 여자네 집' 10권), 이세돌(기념사진 및 사인), 드림팩토리(이승환 10집 앨범) 등 적지 않은 인사들이 '투표를 하게 하거나 하지 아니하게 할 목적으로 선거인 등에게 금전, 물품, 향응 등 그 밖의 재산상 이익을 제공하거나 제공을 약속‘했다고 처벌대상이 된다.

지난 6.2 지방선거에서 20대의 투표율이 높았던 게 사실이다. 정치 냉소로 그동안 정치적 상황에 무관심했던 20대들을 투표장으로 끌어낸 건 아무래도 경품 이벤트의 영향이었다.

그래도 그렇지 세상에 선관위가 투표 독려했다고 처벌 운운하다니 자가당착이다.

해프닝의 진원지가 의심스러질 수 밖에 없는 대목이기도 하다.



호기로운 장담에도 불구하고 선관위가 쉽사리 뜻을 이루게 될 것 같지는 않다.

개인적 이해관계 없이 투표독려 했다고 처벌한다는 것은 처벌규정을 적용할 명분부터가 불분명하다. 법의 형평성 측면에서도 맞지 않다. 이들을 처벌하려면 우선 문화상품권을 주겠다며 대대적으로 투표참여 캠페인을 벌였던 지자체나 선관위 스스로부터 처벌해야 하는 상황이다. 또 얼마 전 슬그머니 봐주고 넘어갔던 여당 여성 국회의원의 트위터 상 불법 사안의 재검토도 불가피하다.

우선 당장 네티즌들이 공정한 법 적용을 요구하며 눈에 불을 켜고 지켜보고 있는 마당이다. 무엇보다도 후반기 정권의 핵심지표로 기회균등과 상생의 토대 위의 공정한 사회를 표명한 대통령의 8.15 축사 잉크가 채 마르지도 않았다는 점도 부담이 아닐 수 없다.



과잉충성과 정치보복.

정권이 바뀔 때마다 빠지지 않는 정치적 악습이다.

여당이 특별히 요구하지 않아도 알아서 상을 차리는 사람들이 문제아다. 지나치게 넘쳐 탈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같은 부끄러운 행태까지도 지탄의 대상이 되어 손가락질 받는 사회적 합의를 이뤄야 한다. 그래야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 당시 야당 중진의원이었던 한 지인은 정권이 바뀌면 지금까지 한번도 경험하지 않았던 엄청난 보복정치의 폭풍을 겪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정치생리를 너무나 잘 아는 선견지명의 결론이었는지 모른다. 전투에서 지면 삼족을 멸하는 가문지화를 당하게 돼 있는데 그나마 숨이라도 붙어 있으면 다행인 줄 알라는 자조섞인 농담도 정치권 일각에서 떠도는 메뉴 중 하나다.

정권의 칼자루를 쥔 손에 따라 갑과 을의 입장이 바뀌게 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지금의 여당도 야당 하면서 겪었던 아픔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요즘의 여당을 보면 호된 시어머니 밑에서 고생했던 며느리가 막상 시어머니가 되면 더 혹독한 시집살이 메뉴를 들고 나온 형국이다.

나도 지난 시절 끔찍한 정치보복을 경험한 바 있지만 나 역시도 막상 상황이 되면 어떤 형태의 ‘가해자’가 될지 장담할 수 없다는 생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습의 반복으로 화를 자초하는 어리석음은 피해야 할 일이다. 또 구차한 과육을 위해 스스로의 가치를 헌신짝처럼 내버리는 일은 없어야겠다.



SNS 열풍이 사회적 트랜드를 주도하고 있는 요즘이다. 그 기능과 역할이 날로 확산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트위터 선거운동을 문제 삼는 건 시대의 흐름을 감지하지 못한 시대착오적 발상이다. 분명 문제가 있다. 문명의 이기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창의적 결과가 나오도록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걸림돌이 되면 안된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바른 말과 정의가 통하는 정치를 통해서만 이룩할 수 있다.

최소한 국기를 흔들거나 거짓말이 아니라면 사상과 신념에 따른 자기소신은 어떤 상황에서고 보장돼야 마땅하다.

옆길로 새고 있는 한심한 현실이 선관위의 미래를 더 걱정하게 만든다.



투표 독려에 참여한 트위터리안 처벌을 적극 반대한다.

그들은 처벌이 아니라 賞을 받아야 할 사람들이다.

(2010.8.27)
....홍문종 생각

2010년 8월 25일 수요일

홍문종 생각 - 김연아에게

김연아에게



김연아와 오서 코치가 서로를 결별의 원인제공자로 지목하며 진실공방을 벌이고 있다.

결별 배경과 관련 김연아 어머니에게 섭섭함을 토로한 오서 코치의 인터뷰에 발끈한 김연아가 가세하면서 논란을 증폭시키고 있는 형국이다. 김연아는 자신의 트위터나 미니홈피를 통해 ‘거짓말하지 말라’며 오서를 맹비난하고 나선 것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찰떡궁합을 과시하며 사제지간의 각별함을 보이던 모습을 생각하면 씁쓸해진다.

이들의 환상적인 하모니는 이미 국제적으로 명성을 날린 바 있다. 서로를 의지하고 신뢰하던 이들의 관계는 모든 매체가 열광하며 보도할 만큼 애틋하고 각별했다. 김연아가 ‘무릎팍 도사’에 나와 오서의 헌신을 전하며 눈물을 흘리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랬던 그들이 결별과정에서 거의 막장 분위기로 서로를 탓하고 있는 것이다.



회자정리라고 했다.

인간의 모든 만남에는 반드시 이별이 따르기 마련이다. 삶의 과정에서 진행되는 선택적 영역이 될 수도 있고 죽음 앞에서 불가피하게 순응해야 하는 상황도 있을 수 있다.

인간관계의 진면목은 만날 때보다 헤어질 때, 그것도 좋게 헤어질 때보다 나쁘게 헤어질 때 나타난다.

그런 측면에서 김연아와 오서간의 결별 과정은 아쉬움이 크다. 여러 면에서 이번 싸움으로 김연아가 얻을 수 있는 건 별로 없을 것 같다. 특히 김연아의 직접 대응은 우려스럽다.

물론 그럴 만한 저간의 사정이 있을 수 있다.

그렇더라도 김연아의 직접적인 공세는 김연아 본인은 물론 이제 막 빙상왕국의 반열에 올라선 대한민국으로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오늘 날의 김연아가 있기까지 오서 코치의 역할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김연아와 오서는 최소한 4년 이상 호흡을 맞춰 ‘세계 정상’ 타이틀을 결과물로 만들어 낸 사이다. 무엇보다도 그냥 단순한 사이가 아니라 사제지간으로 통하고 있다.

그런 만큼 날 선 공격으로 오서를 밀어붙이는 김연아를 지켜보는 심정은 조마조마하다.

김연아의 어머니를 공격하면서도 제자의 미래를 축원한 오서와 비교돼 자칫 성공한 뒤 막말로 갚는 배은망덕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는 노파심 때문이다.



진실이 어디에 있는지 밝혀진 바는 없다.

잔인한 추론일지는 모르지만 이번 소동이 혹시 지나친 모정이 문제가 된 건 아닐까 싶다.

세계적인 골프 선수 성장한 박세리, 신지애에게는 딸을 위해 헌신을 다한 눈물겨운 부성애가 있다. 부모의 헌신보다 더 큰 동력이 없음을 입증하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과유불급에 대한 경계가 느슨해지면 문제가 커질 수 있다는 점이 부담으로 남는다.

김연아 어머니가 딸을 위해 헌신한 과정은 이미 널리 알려진 그대로다. 김연아의 어머니로는 흠잡을 데 없는 그녀다. 그러나 아무리 완벽한 모성애라고 해도 피겨여왕 김연아 코치역량까지 담보되는 건 아니다. 아이러니하지만 김연아의 빙상계 위상이 커질수록 어머니의 기능과 역할은 점점 줄어들 수 밖에 없다. 그 현실을 직시하고 순응해야 한다. 그것이 순리다. 어느 수준까지는 부모가 주는 심리적인 안정감이 큰 역할을 할 수 있지만 세계적인 선수가 된 다음부터는 좀 더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과정이 필요한 현실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또 한가지 걱정은 김연아 글의 여파다.

김연아는 지난 4년 동안 오서와의 사이에 수많은 문제들이 있었다는 뉘앙스의 글로 오서를 공격했다.

그렇다면 왜 하필 정상에 오르게 된 이후 그 불만을 털어놓게 됐는지에 대한 명확한 설명이 있어야 한다. 그것은 오랜 커플의 갑작스러운 갈등국면에 혼란을 느낄 팬들에 대한 배려는 팬들의 사랑을 받고 사는 선수로서의 의무다. 자기들만의 일이니까 밝힐 필요가 없다는 식의 대응은 오만하다는 새로운 불씨를 자초할 수 있다.

이번 갈등 국면이 정상에 올라있는 김연아를 겨누는 세력에게 호재가 될 수 있음을 감안한다면 분명 사려 깊지 못한 처신이었다. 차라리 허심탄회한 대화로 결별 수순을 밟았으면 좋았을 것이다.

오서를 직접 만나 그동안의 서운함을 털어놓고 이해를 구하는 식으로 조용히 둘의 관계를 아름답게 마무리 지었다면 이렇게 진흙탕싸움으로까지 확대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정상을 쟁취하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그보다 더 어려운 것은 정상을 지키는 일이고 또 아름다운 뒷모습을 남기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최근 정상의 김연아를 둘러싸고 터져나오는 불협화음이 걱정스럽다.

진작부터 김연아의 지나친 광고 노출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었던 터다. 지나친 상품화로 정상의 스타가 그 빛을 잃게 될까 우려하는 팬들의 걱정이다.

우리에게 있어 문제는 스타 부재현상이 아니다. 그나마 육성된 스타를 잘 보호해야 한다는 현실 인식이 필요하다.

김연아의 그 좋은 이미지가 상처를 입지 않은 채로 온전하길 바란다.

영원히 온 국민, 아니 온 세계인의 뇌리 속에 불멸의 김연아로 남았으면 하는 아쉬움에 몇 자 적었다..



(2010. 8. 26)

....홍문종 생각

2010년 8월 24일 화요일

홍문종 생각 - IBM의 선택

IBM의 선택



내가 대학 다닐 당시만 해도 IBM의 오랜 명성은 참으로 대단했다.

IBM 로고가 찍힌 타이프라이터는 신기하기 그지없는 존재였다. 그 육중하고 잘생긴 외형도 외형이지만 단 한번의 타이핑만으로 오타가 수정되는 기능은 경이롭기까지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IBM의 요새가 영원한 난공불락일 것으로 생각했다.

실제로 9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모든 ‘최고의’ 수식어는 IBM 전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고의 경영진, 최고의 기술, 최고의 엘리트 직원, 최고의 시장 점유율, 최고의 수익률 등을 자랑하는 컴퓨터 업계 지존으로서의 확고부동한 위치를 확보하고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만큼 자부심도 컸다.

그러나 자부심이 치명적인 '독성’으로 전환되는 것은 순식간의 일이었다. 자부심이 지나쳐 오만이 되고 그 오만함 때문에 퍼스널 컴퓨터 혁명이 진행 중이던 시장 변화를 감지하지 못한 탓이다.

치고 올라오는 경쟁사들에게 밀리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급기야 누적되는 적자가 초래한 경영위기 앞에서 IBM의 아성이 풍전등화의 신세로까지 전락하게 된 것이다.




위기에 처한 IBM을 구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두 CEO, 루 거스너와 새뮤얼 팔미사노 없었다면 IBM의 재기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루 거스너는 실속없이 방만하기만 했던 조직을 줄이는 등 혁신적인 기법으로 경영의 효율을 꾀해 IBM의 활로를 구축한 공로를 세웠다. 새뮤얼 팔미사노는 기존의 IBM 브랜드 정체성에 연연하지 않고 획기적인 체질개선을 감행하고 나섰다. PC 사업부문을 팔고 그 대신 컨설팅·소프트웨어 회사를 인수·합병하는 등 IT 서비스 회사로 탈바꿈 한 것이다. 2002년 프라이스워터하우스앤쿠퍼스(PwC)의 컨설팅 부문을 인수한 것을 시작으로 지난해까지 100개 이상의 소프트웨어·서비스 기업을 사들였다. 당시로서는 거의 도박수준의 결단이었다.



덕분에 IBM은 2008년 말 들고 나온 ‘스마터 플래닛(Smarter Planet)’이라는 캠페인을 통해 ‘지구촌’ 혁신의 리더를 자처하고 나설 만큼 회복돼 있다. 첨단 IT를 대중교통이나 식품유통, 수자원 보존, 의료 시스템, 에너지 산업, 건강관리 시스템 등 공공 및 민간 영역에 적용하는 데 IBM이 이를 주도하고 있는 것이다.

구체적 성과도 있다. 벌써부터 뉴욕시 범죄율 27%를 절감시키는 1등 수훈으로 눈길을 끌고 있는 상황이 그것이다.

조만간 IBM의 과거 명성을 되찾는 모습을 보게 될 것 같은 예감이다. 하드웨어와 파이낸싱, 컨설팅, 소프트웨어 등의 프로세스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느 IBM만의 특성을 살린다면 목표로 하고 있는 기업이나 정부가 필요로 하는 ‘End-to-End' 패키지 시스템 제공 실현이 멀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래를 통찰한 리더의 결단이 없었다면 IBM의 운명은 과연 어떻게 됐을까?

아마도 오늘 날 지구촌 혁신의 꿈을 주도하는 세계적인 IT회사로서의 자신감은 물론 IBM의 명운조차 불투명한 상태로 전락하고 말았을 것이다. 리더의 미래 통찰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전자산업의 메카였던 일본의 소니가 이제는 삼성이나 심지어 엘지에 굴욕을 당하고 현실 역시 시대를 앞서 읽지 못한 잘못이 크다. 모토로라나 노키아가 겪는 어려움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삼성이 제일제당 삼성물산에서 IT 삼성으로 주요 기업을 바꿔나가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다.

비단 기업에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국가가 됐건 개인이 됐건 혁신과 발전을 위한 끊임없는 노력 없이는 그 누구도 미래를 장담할 수 없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전 세계가 대한민국의 경이로운 발전상에 대해 주목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한 가지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게 있다. 지금까지의 대한민국 발전은 우리의 창의적 노력에 의한 결과물이라기보다 남들이 이미 만들어 놓은 것을 다만 ‘보기 좋고 편리하고 그리고 좀 더 값싸게 재가공한’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이제는 기존의 ‘솜씨’만으로 세계 시장에 명함을 내밀 수 있는 환경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IBM의 변신을 벤치마킹해야 할 이유다.

우리 안에 들어있는 구태는 과감히 버리고 우리가 주도할 수 있는 새로운, 우리 만의 독특한 ‘영역’을 내놓아야 할 시점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도전 정신과 진취적인 자신감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기도 하다. 가다가 작은 만족에 홀려 이 정도면 된다는 안일함은 과감히 던져야 한다. 그래야 우리의 미래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미래의 부는 저절로 굴러드는 호박이 아니다.

IBM의 선택에서 길을 모색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PS: 세계를 돌아다니다 보면 국가 지도자의 리더십이 얼마나 중요한지 절감하게 된다.

지금 머물고 있는 체코의 데친에서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

체코나 헝가리, 폴랜드 등의 시가지 정서에는 공통점이 있다. 지난 시절의 폐해가 남긴 흔적이 여전히 국민 정서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그것이다. 거리를 걷다보면 유머와 의욕을 잃은 표정들을 자주 만나게 되는데 한 나라의 흥망성쇄와 국가 리더십의 연관관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대표의 회동소식을 이국땅에서 전해 들었다.

좋은 분위기와 유익한 대화가 있었다는데 두 지도자의 만남이 국민의 희망으로 거듭날 수 있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국민은 특정 지도자의 부속물이 아니라는 사실과 지도자가 국민에게 져야 할 막중한 책임이 다시한번 환기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순리를 거스른 지도자들이 역사 앞에서 준엄한 심판을 받았던 이전의 모습을 잊지 말아야겠다.

(2010.8.24)

.... 홍문종 생각

2010년 8월 13일 금요일

홍문종 생각 - 희망을 쏘자

희망을 쏘자



어릴 때 나는 엉뚱하게도 연극배우를 되고 싶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시작된 갈망이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계속됐으니 얼마나 깊이 소원했는지 짐작이 갈 것이다.

그러면서도 장래희망을 묻는 질문에 ‘연극배우’라고 대답한 적은 없다. 꿈을 이루기 위해 직접 행동에 나선 기억도 없다. 속내를 감히 드러낼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당시 집안 분위기로는 말해봤자 소용없을 것이라는 스스로의 판단에 지레 포기가 됐기 때문이었다.

요즘이야 부모들이 자녀들의 연예계 진출에 더 적극적으로 팔 걷어 부치고 나설 만큼 세상이 달라졌지만 그 때는 달랐다. 춥고 배고픈 가시밭길의 연속이고 고생문이 훤하다는 사회적 인식 때문에 어느 부모도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만약에 당시 분위기가 요즘 같았다면 나는 연극배우가 될 수 있었을까?



요 근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이런 저런 일들을 보면서 희망을 북돋는 일과 꺾는 일의 차이가 얼마나 큰가를 새삼 느끼고 있다.

그런 점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새마을 운동은 희망 키워드의 대표적인 성공작으로 꼽을 만하다. 잘 살아 보자는 희망 독려로 국민들에게 열심히 일하면 가난을 물리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했고 또 결실을 거뒀다. 개발도상국으로서의 어려운 환경 속에서 오천년의 빈곤을 퇴치하고 우리도 잘 살수 있다고 희망을 심어준 것은 무엇보다 큰 업적으로 평가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도 우리의 새마을 운동을 벤치마킹 하고자 하는 국제사회의 발길이 끊이질 않고 있는 것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

반면에 대다수 젊은이들이 방황하고 있는 작금의 현실은 희망과 거리가 먼 풍경들이다. 젊은이들의 희망을 꺾고 강요하는 분위기 일색이다. 봉급을 한푼도 안 쓰고 오십년을 꼬박 모아도 강남의 집 한 채 마련하기 힘들고 젊은이들은 일하고 싶어도 일할 곳이 없는 사회가 바로 21세기 대한민국의 현실이라는 사실이 안타깝다.

희망의 메시지를 창출하지 못하는 무능한 위정자들의 안일함이 초래한 부작용에 다름 아니다. 국가의 무능이 국민의 희망을 꺾고 있는 현장인 것이다.

믿고 싶지 않지만 이대로 계속해서 ‘희망 꺾기’가 이어진다면 우리 사회가 어떤 모습으로 남게 될지 너무나 뻔하다.



사회건 개인이건 희망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이다

젊은이도 마찬가지다. 젊은이가 희망을 잃으면 이미 스스로의 역량을 포기하는 것이다. 희망과 함께였다면 어떤 위기가 와도 이겨낼 수 있고 가능성을 실현해 낼 수 있다는 측면에서 보자면 돌이킬 수 없는 손실이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희망을 잃지 않기 위한 노력은 더 없이 중요한 일이다. 희망을 독려할 수 있는 구체적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평소 생각하고 있는 ‘희망쏘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가장 좋은 희망쏘기는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지만 야구나 미식축구의 치어리더처럼 희망이 꺾이지 않도록 도와주는 사회적 분위기가 필요하다. 사람들이 계속해서 희망을 쏘아올릴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해주는 일이 필요하다. 지도자에게도 마찬가지다. 지도자로 하여금 희망의 끈을 놓지 않도록 독려하는 주변의 관심이 결정적인 도움이 될 수 있다. 때로는 허황되게 들리는 얘기일지라도 참고 들어주는 포용력이 희망을 성사시키는 결정타가 되기도 한다.

안철수나 빌 게이츠의 성공신화를 조금 더 과장해서라도 많은 이들에게 꿈을 주는 일은 유의미하다. 현재가 됐건 미래가 됐건 사회적 공조를 통해 롤모델의 스킬을 창조해내는 상황도 배제할 필요가 없다. 롤모델의 대상이 늘어나는 것도 바람직하다. 꿈을 실현한 성공담이 같은 성공을 이루고 싶은 이들에게 힘이 될 수 있도록 롤모델을 구축하는 건 어떻게 보면 사회적 책무 중 하나일 수 있다.

돈이나 힘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누군가의 적극적인 조력이 필요한 것도 아닌, 희망쏘기에 가장 필요한 사안이 있다. 그것은 바로 자신감과 배짱이다. 자신이 꾸고 있는 꿈을 사람들이 이해 못하거나 무시해도 개의치 않을 수 있는 배짱이나 자신감이 있어야 한다. 그렇게 거침없이 동네의 미래도 대한민국의 미래도 건설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희망을 쏘아 올리도록 하자.



연전에 작고한 장영희 교수가 생각난다. 고통받는 사람에게도 늘 그 나름의 기쁨이 있고 그래서 살아갈 힘이 나온다며 그 자신 늘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생전의 그녀다.

그녀는 이런 식으로 희망을 말하기도 했다.

"희망은 운명도 뒤바꿀 수 있을만큼 위대한 힘이다. 난 여전히 그 위대한 힘을 믿고 누가 뭐래도 희망을 크게 말하며 새봄을 기다린다."

그녀만큼 온전하게 희망을 품고 살았던 이는 보지 못한 것 같다.

그녀는 갔지만 그녀가 생전에 쏘아 올리던 희망은 여전히 남아있는 이들에게 위안을 주고 있다.

참으로 놀라운 희망의 힘이다.

우리도 그렇게 희망을 쏘자.
(2010 . 8. 12)

.....홍문종 생각

2010년 8월 10일 화요일

홍문종 생각 - 가깝고도 먼

가깝고도 먼


가깝고도 멀다는 이웃나라 일본.

일본에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은 가풍 탓인지 개인적으로 일본을 친밀하게 느껴본 적은 없다. 무심히 외면할 수 있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럴 수 없게끔 늘 신경을 자극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일본 동경대학에서 객원연구원으로 있으면서도 항상 느끼는 감정이었다.

그럼에도 일본이 강국이라는 현실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일본이 우리를 압도하는 건 사실이다. 무엇보다 타인에 대한 배려가 몸에 밴 일본국민의 매너가 놀랍다. 선천적 기질처럼 여겨질 정도로 일상화 돼 있는 친절한 국민성에 일본의 노련한 저력이 다 들어있는 것 같다. 실제로 일본인의 사소한 일상에서 ‘선진국민의 여유로운’ 면모를 찾아내는 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번 일본 방문길에서도 그들의 친절한 국민성이 발휘하는 위력을 직접 체험한 바 있다.

그래서인지 일본을 바라보는 심정이 참으로 복잡다단해진다.

그들을 인정하면서도 반드시 뛰어넘고 싶은 오기가 작동한다는 측면에서 그렇다.



오사카에 가면 유니버셜 스튜디오를 보고 오라는 조언에 따라 하루 일정을 떼어 그곳에 갔다. 할리우드 영화를 모티브로 꾸며진 무비테마파크였는데 초대작 영화를 생생하게 재현한 놀이기구며, 볼거리, 먹을거리가 넘쳐나는 공간이었다.

오사카 특유의 살인적 더위와 6100엔이라는 고액의 입장료, 그리고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엄청나게 넘치는 인파가 유니버셜 스튜디오의 세계적 명성을 대변하는 듯 했다.

개인적으로는 각 영화에 사용됐던 세트장에 눈길이 갔는데 그것도 짧게는 30분, 길게는 1시간 30분까지 줄을 서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웬만한 인내심 없이는 구경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점심 먹는 상황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비싼 가격대와 길게 늘어선 줄은 여전했다.

한참을 줄 서서 배급받은(?) 닭 튀김 한 조각과 음료를 식판에 받쳐 들고 구내식당 같은 분위기 속에서 자리를 찾고 있는데 지나던 사람이 그만 내 식판을 치고 말았다. 그 바람에 음료가 쏟아져 나의 밥상을 엉망으로 만들고 말았다. 나를 친 중년의 이국 여인은 연신 ‘미안하다’고 했지만 이미 쏟아진 밥상이었다.

순간적으로 굉장히 난감해졌다. 저 긴 줄을 또 기다려 새 밥상을 차려야 할 것인지 아니면 그냥 먹어야 하는지를 결정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고민하고 있는데 식당 종업원이 달려와 연신 사과를 했다. 그리고는 이내 똑같은 메뉴가 담긴 식판을 가져다주고는 자기 일로 돌아갔다.

감동이었다. 그 짧은 순간의 감동이 줄을 서느라 곤두섰던 신경줄을 스르르 풀어냈다.

세계 각지를 다니며 이보다 더 복잡한 상황에서 식사를 하는 등 황당한 경우가 많았지만 일본 유니버셜 스튜디오에서의 이번 경험은 특별했다. 감동을 주는 것은 물론 일본이 강국이라는 사실을 절감시키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택시를 이용하면서도 일본의 선진국 면모를 느낄 수 있었다.

택시를 타고 목적지를 말하자 택시기사의 인상적인 안내 말이 이어졌다.

‘목적지까지 가는 데 두 가지 길이 있다. 길 하나는 10분 빠른데 고속도로를 타야하기 때문에 비용이 1000엔 정도 더 나온다. 나머지 구 길은 시간이 좀 걸리는 대신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바가지 쓸 염려를 하지 않아도 되겠구나 하는 안도감을 느끼게 하는 ‘배려’였다. 가끔씩 승객과 택시기사 사이의 요금 실랑이가 목격되는 우리의 현실과 비교되는 경험이었다.

일본어를 사용하지 않아도 간단한 영어로 택시기사들과의 소통에 무리가 없었다. 깨끗한 실내와 절도있는 매너, 휴대용 휴지까지 나눠주는 친절함 등은 결코 간단치 않은 선진국 일본의 풍모였다.

오사카 남방은 저렴한 가격대의 잡화점이 수천 개 쯤 늘어서 있는 거리다. 우리의 남대문 시장 같은 분위기라고 할까. 그곳에서 조그만 필기도구 하나를 구매하면서도 예사롭지 않은 상인들의 친절을 경험할 수 있었다.

사근사근한 종업원은 내가 구입한 상품을 정성스럽게 포장해서 케이스에 넣더니 다시 비닐로 겹겹이 재포장했다. 이유를 물었더니 비가 오니까 젖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는 답이 돌아왔다.

개인적으로 경험한 일본이 강국이라고 자인할 수 밖에 없는 여러 정황들이다.

솔직히 대한민국에서는 경험하기 힘든 선진국의 면모이기도 하고.



평소 친분을 나누고 있는 전직 SKY 대학 총장은 한국 식자층들이 중국의 당태종과 일본을 지나치게 얕잡아 보는 편견이 문제라고 했다. 특히 일본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절대 간단한 나라가 아닌데도 이를 간과하고 있다는 걱정이었다. 두려움의 대상까지는 아니겠지만 일본은 절대 무시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만큼은 잊어서는 안된다는 자신의 지론을 펼쳤다.

나 역시 두 번에 걸친 이번 여름 출장으로 일본이 간단치 않은 나라임을 절감하고 있는 중이다. 전직 일본 수상이 음주운전 때문에 지방의원직을 사퇴한 아들 일로 대국민 사과를 하는 일본의 모습에서 강력한 국가브랜드의 가치가 읽혀진다. 기본이 확실하게 지켜지는 사회적 합의가 일본을 지탱하는 근원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




일본을 제대로 알고 배워서 일본을 뛰어넘을 수 있도록 연구해 보자.

일본을 품는 그것이 우리가 선진국으로 오를 수 있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2010. 8. 11) .....홍문종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