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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2일 토요일

홍문종 생각 - 우담바라의 꿈

우담바라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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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화하는 꽃들의 잔해로 어지러운 아침.
이른 봄기운에 화드득 불려나오더니  추위에 떨고 있는 꽃잎의  현실이 안타깝다.   
주위를 에워싸던 그 뜨거운 환호들은 어디로 갔는지  쓸쓸함만 가득하다.
발밑을 구르는 꽃 조각 사이로 어떤 이의 쓸쓸한 뒷모습이 오버랩 되는 것도 우연은 아닐터다. 
    
​
“다음엔 무엇을 철수할 것인가? 그러다 여의도에서 철수하는 것 아니냐...”
입장이 입장인지라 독한 말 화살을 날리긴 했지만 솔직히 이렇게까지 빨리 무너질 줄은 몰랐다.
'소멸'이 보다 명확해진 현실이 주는 허탈감이 생각보다 크다.   
그동안 내 안의 오래 묵혔던 꿈을  투영시키며 받던 위로가 제법이었나 보다.
​
처음 정치하는 사람이 외치는 신선한 희망과 비전에 기대를 품었던 게 사실이다. 
​치기어린 미숙함조차   시작하는 이의 신선한 열정으로 받아들였다.  
​그의 소망이 대한민국 정치발전에 활력을 주고 이끌어가는  실체로  자리잡게 되길  기도했다.  
​그러나  남은 건 현실과의 타협에 뒷덜미를 잡힌 필부의 모습 뿐이다. 
 더 이상 눈길을 끌지 못하는 늙은 작부의 갈수록 두꺼워져가는 화장발처럼  그렇게 또 하나의 기성집단으로 전락해서 안쓰러움과 역겨움을 자아내고 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담바라의 개화를 이야기 하고 싶다.
천년의 칩거를 털고 고목에 싹을 틔우자는  거룩한 음모로 말이다.
펄펄나는 생기운으로 새로운 신드롬의 출몰을 고하는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2014. 4. 11)
                                                                          ...홍문종 생각​

 

2013년 3월 6일 수요일

홍문종생각 - 김종훈 그리고 안철수


김종훈 그리고 안철수

  
김종훈 전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내정자와 안철수 전 교수, 이들의 엇갈린 거취가 화제다.
한 사람은 미국으로 떠났고 또 한 사람은 미국에서 돌아온다는데 정가에 미치는 파장이 녹록치 않은 분위기다.  
  
대통령이 삼고초려까지 해가면서 영입에 공을 들였던 장관 내정자가 정치공세를 견디지 못하고 떠나는 모습을 참담한 심정으로 지켜봤다.  우리의 무지가 부끄러웠다.  1000억 원 대의 국적포기세까지 감내해가며 조국을 위해 헌신하려던 한 인재의 열정을 좌절시켰다는 자괴감에서다.
생각하면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에 내정되고 20여일도 채 안 되는 기간 동안 그를 참 많이도 괴롭혔다는 생각이다. 이중국적이라고, 스파이라고 한참을 흔들어대더니 1조원대의 재산가에게 부동산 보유를 문제 삼기도 했다.  그렇게 어이없는 이유들로  조국의 미래를 위해 밀알이 되고 싶었던 이는 자신의 꿈을 포기했다며  이 땅을 떠났다.  
‘김종훈 파동’이 유학시절, 미국 차이나타운에서 만난 중국인의 푸념을 새삼 떠올리게 한다. 한국에서 중국집을 운영했었다는 그는 대부분의 중국인들이 세계 곳곳에서 성공한 화교로 자리 잡는데 유독 자신만큼은 실패했다며 한국사회의 배타주의를 성토했었다.
결국 시대착오적 징고이즘이 문제라는 생각이다.
세계 경영을 부르짖으면서 성공신화의 주인공이었던  ‘김종훈’을 미국으로 떠나보내는  우리사회의  이중적  사고체계가 우려된다. 특히 모든 국가가 촘촘히 얽힌 시장경제를 바탕으로 국경없이 살고 있는 이 시대에 말이다.
인재들에게 문을 열지 않는 한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해 인재를 놓치는 일이 다시 되풀이되지 않도록 교훈으로 아프게 새겨야할 대목이다.


또 한사람, 미국 외유(?)를 마치고 정치권 입성을 위해 워밍업 중인 안철수 전 교수 얘기가 남아있다.
그는 이미 진보정의당 노회찬 의원의 의원직 상실로 보궐선거가 예정된 서울 노원병에 출마선언을 한 상태다.  역시나 절묘한 시점의 타이밍 정치 실력을 발휘했다는 평가다.
그러나 그의 정치복귀는 여전히  흔쾌하지 않다.  단순한 정치공세가  아니기에 한마디 던지고 싶은 충동에 자꾸 의미를 두게 되는 것 같다.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세밀한 전문성이 요구되는 환경이다. 그런데도 유교적 사고에 사로잡혀 모든 것을 정치로 귀결시키려는 현상이 근절되지 않아 안타깝다. 국가 경쟁력은 구성원 저마다 타고난 기술을 개발해서 긍정적인 방법으로 기여할 때 가장 극대화 될 수 있다. 그런 차원에서 정치가 중요한 건 맞지만 모든 이들의 최선인지는 제고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안 전교수의 정치권 진입을 우려하게 되는 이유다.
기우일수도 있지만 일찌감치 IT 분야에서 일가견을 이루었던 그가 정치판을 기웃거리다 추락한 수많은 정치낭인처럼 된다면 국가적 손실도 만만치 않을 테니 하는 소리다. 
‘김종훈’ 못지않은 전문적 소질은 이미 인정받은  그다.  그의 달란트가 국가의 미래발전을 위해 기여된다면 정치보다 더  효율적인 용도로 쓰일 수 있을 텐데   반대의 경우  정치가 그의  존재감을 소멸시킬 기폭제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걱정이  여운을 남긴다.  
   
적어도 지난 대선 때 같은 모습이라면 안 전 교수는 특출한 정치적 소양을 갖추지 못한 게 분명하다. 그의 이름을 걸고 나온 서적에서도 그가 국가나 민족, 그리고 정치에 대해 오래 고민한 흔적을 볼 수 없었다. 아예 관심이 없거나 남의 일처럼 여긴 흔적이 곳곳에 역력했다. 누가 봐도 ‘안철수 현상’을 주도하기엔 너무도 빈약한 정치력이었다. 그런데도 대선 후보로 나선 건 그가 정치를 너무 만만히 봤고 엉뚱한 욕망을 다스리지 못한 결과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단언컨대 정치는 한 개인의 입신양명을 위한 도구로 사용될 수 없는 신성한 영역이다. 인기투표로 그 결과가 좌지우지 되어서는 안된다.  무엇보다도 대다수의 정치인들이 오랜 시간동안 여러 경로를 거쳐 국가의 미래나 민족의 안위를 포함한 정치적 소양을 나름대로 단련해 온 고수들이라는 사실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 차원에서 진실로 고언하건데 지금이라도 안 전 교수는 철저한 자기점검을 거치길 바란다.
최소한 3회 이상, 지금 시점에서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심사숙고한 이후에 거취를 정하는 것이 옳다. 그것이 국가와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 싶다.

그래도 걱정은 남는다.
인기에 떠밀리건, 사람에 떠밀리건, ‘떠밀려나오는 안철수’ 컨셉은 여전히 그의 정치적 내공을 의심하게 만드는 요소다.   또 다른 걱정은  ‘김종훈’처럼 어느 날 갑자기 훌쩍 정치판을 떠나는 무책임한 그의 뒷모습을 보게 되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다. 
부디 안 전 교수의 성숙해진 내공을 볼 수 있는 선거전이 되길 기대한다.                                          

(2013. 3. 6)
....홍문종 생각 

2011년 11월 17일 목요일

홍문종 생각 - 제자리가 제일이다

제자리가 제일이다

요즘 들어 신문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는 주요 이슈는 단연 ‘한미 FTA 협상과 안철수 현상’이다.
하나는 ‘국익’을, 또 다른 하나는 ‘대통령 선거’를 모토로 한 의제인데 대한민국 사회의 관심이 온통 이 둘에 쏠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FTA 샅바싸움으로 일촉즉발 전운이 감도는 정치권은 안철수 변수로 요동치는 가운데 선거정국을 시계제로로 밀어붙이는 형국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논란의 와중에 FTA와 안철수를 잇는 ‘끈’ 하나가 생각의 고리를 끊고 튀어 나온다.
반가운 마음에 블로그 주제로 잽싸게 건져 올린다.

한미 FTA는 개혁개방의 관점에서 해석돼야 마땅하다.
역사는 미래를 내다볼 줄 아는 선진의 힘으로 작동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 그만 협상에 종지부를 찍고 또 다른 아젠다 발굴에 관심을 돌려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새 흐름을 막는 걸림돌로 인구에 회자되는 천덕꾸러기로 전락할 요소도 있다. 우리가 대원군의 쇄국정책으로 개방의 기회를 놓쳐 정지돼 있는 동안 일본은 문호를 열고 선진문명을 선점했다. 그렇게 돌이킬 수 없는 우열의 간극이 생성된 것이다.

지금으로선 FTA 협상이 우리에게 어떤 대차대조표를 가져다 줄 지 알 수 없다. 다만 이익과 불이익의 경계가 최대한 공평해지도록 배려하는 독려는 있어야겠다. 이익이 나는 쪽은 불이익 측이 가능성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도록 살펴야할 책무를 지는 것도 좋겠다.
같은 맥락으로 안철수의 역할론을 짚어본다.

그는 자신에게 의미 있고, 재미있고, 잘 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하는 것이 불확실한 21세기를 살아나가는 키워드라고 했다. 그늘지고 힘든 이들을 위해 돈을 쾌척하고 자신의 기량 껏 봉사하는 것을 자신의 사회적 채무로 규정하기도 했다. 세상은 그런 그를 각종 여론조사에서 경쟁력 있는 대선주자로 올려놓고 기대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일련의 행보로 짐작컨대 그 자신의 속뜻과 얼추 맞아떨어지는 진로같다.
그런데 나는 안철수가 자신에게 맞지 않은 길을 선택하고 있다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
4선 국회의원으로 정치판에서 영욕의 길을 걸었던 이태섭 전 국회의원은 미국 MIT에서 촉망받던 과학도였다. 그가 만일 정치가 아닌 과학도의 길을 택했다면 대한민국의 스티브잡스가 될 수도 있었다는 생각을 한다. 한 때 인터넷 대통령으로 추앙받던 문국현 전 유한캠벌리 사장은 국회의원으로서의 꿈을 채 피우기도 전에 범법자의 신분이 됐다.
이왕 얘기 나온 김에 성공한 학자였지만 정치권에서는 별 재미를 보지 못한 이수성,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 등도 같은 맥락에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인물들이다.

안철수 식으로 따진다면 미국의 스티브 잡스나 빌 게이츠가 대통령 후보 0순위로 나섰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현실을 존중하고 지켰다.
정치를 하고 싶었던 스티브 잡스에게 “애플의 스티브 잡스지 정치인 스티브 잡스는 아니라고 만류하며 정치권에 발 들이지 않은 일이 스티브 잡스가 제일 잘한 일이라고 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물론 로스페로나 도널드 캠프 같은 미국 재벌들이 대통령이 되지 못하는 배경으로 남자들의 질투심을 지목하기도 한다. 돈 있으면 됐지 무슨 정치권력까지 넘보냐는 식의 시기심이 있단다.
우리의 현실이라고 다른 것 같지 않다. 실제로 FTA 등 주요 정치현안에 침묵으로 일관하는 그에게 대중이 짜증 섞인 질타와 의혹의 눈초리를 내보이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날카롭고 집요한 질문이 이어질 텐데 그 때마다 침묵이나 미소로 넘길 수는 없는 일이다. 가혹한 채찍질로 그의 말문을 열기 위한 노력들이 시도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정치지도자로서의 소신이나 철학을 밝히라는 요구를 외면하는 일이 계속된다면 대중은 더 이상 그를 연호하지 않게 될 것이다.

인간은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통해 타인을 행복하게 하고 스스로도 행복해질 수 있다. 특히 여태까지 잘 해왔던 일이면 금상첨화다.
내가 만일 안철수의 친구라면 그에게 망설임 없이 권하겠다.
지금껏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가야할 길이라 생각하면 스스럼없이 도전했던 것처럼 그의 길을 가라고. 아무래도 정치보다는 기존의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게 훨씬 나을 거라고.
더구나 FTA 정국에서 대한민국 IT 업계는 5천년 역사 이래 최고의 기회를 맞고 있다. IT의 성공이 대한민국 미래를 결정짓게 된다 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엄청난 경쟁력과 함께 떠오르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 점에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선택은 돋보인다.
내 알기로 반기문 총장이 대통령 적임 후보로 정치권으로부터 러브콜 대상이 됐던 건 지난 정권 때부터의 일이다. 그러나 그는 쇄도하는 유혹에도 불구하고 흔들림 없이 유엔 사무총장 선거에 전심전력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사무총장 연임을 위해 분주하던 올해에도 그의 대통령 출마설이 꼬리를 물었다. 당시 방한 중이던 그는 자리를 함께 한 우리들에게 (사무총장)연임에 방해가 되니 제발 국내 선거에서 거론되지 않게 해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지나놓고 보니 그의 유엔사무총장 연임은 본인을 위해서나 국가를 위해서나 정말 탁월했다. 그가 지금 유엔을 무대로 보여주는 활약상은 한국의 대통령은 물론 그 어떤 정치 지도자보다 더 중요하고 의미있는 일이다.

그의 부친은 교수들이 정치판에 들어가는 것이 좋게 보이지 않는다며 지금까지 존경을 받고 살아온 아들이 정치판에 잘못 들어가 욕을 먹게 될까 노심초사하는 심정을 토로했다. 아들의 성격 자체가 정치판 보다는 공부하고 학생들 가르치는 일에 맞는데 그런 아들을 정치판에서 난리를 쳐서 끌어들여 고민하게 만드는 게 안타깝다는 취지의 발언도 남기셨다.
나도 같은 생각이다.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순진무구(?)하고 창조적 아이디어가 많은 이들에게 무덤이 되고 자긍심이나 자존심 따위는 아랑곳 없는 곳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분명 그의 역할이 있지만 정치권 진입은 좀 더 많은 고민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아직은 설익은 과즙을 맛보는 어설픈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결국은 시행돼야 할 FTA를 잘 추슬러서 우리 사회에 그늘진 곳까지 잘 비춰지도록 노력하는 것처럼 안철수 역시 뭔가 해야한다면 제일 잘 할 수 있는 최적의 자기자리를 찾으라는 조언을 남기고 싶다.

(2011.11.17.)
...홍문종 생각

2011년 11월 14일 월요일

홍문종 생각 - 화학적 변화라야 한다

화학적 변화라야 한다


신당설이 무성하다.
안철수 신당이니 박세일 신당이니 여야를 막론하고 실체도 불분명한 각종 설들이 그야말로 ‘설설’ 끓고 있는 정국이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치열한 경쟁 국면이 펼쳐지는 정치의 계절이 임박해졌음을 알리는 신호탄에 불과하다. 선거 국면에 출마를 원하는 사람들이 넘치다 보니 기존 정당 외의 수요가 요구되는 건 지극히 자연스런 현상이다. 거기에 국민 신뢰를 잃어버린 현 정치권에 대한 물갈이 요구가 높아진 점도 그 어느 때보다 신당 창당 명분을 뒷받침하고 있는 분위기다.
개인적으로 한국의 정치상황에 다당제가 적합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어차피 국민에 의한 상향식 공천이 어렵다면 다당제야 말로 정당공천의 폐해를 어느 정도 줄 일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다. 유권자로서는 선택의 폭이 늘거나 다양한 욕구를 반영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정치인에게도 좀 더 명확하게 개인적 소신을 펼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다는 점에서 다당제에 긍정적 측면이 많다.

물론 경계해야 할 폐단이 없지는 않다.
다당제로 인해 국론분열이 심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조선 멸망을 초래한 주범으로 지목되는 조선시대 당파 분쟁이 그 좋은 본보기다.
우리 역사를 폄하하기 위한 일본의 의도가 깔려있긴 해도 조선 사회를 피로 물들인 각종 사화의 배경이 되었던 사색당파의 치열한 기싸움은 확실히 문제였다. 건전하지 못한 경쟁심이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 뿐 아니라 조선의 멸망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같은 배를 타고 있는 사람들이 하나의 자리를 놓고 싸울 때 그 싸움은 치열해질 수 밖에 없고 결국 그 치열함이 사람들의 이합집산을 이끄는 동인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지난 역사를 통해서도 분열이 집단이나 개인을 파멸로 이끌었다는 사실을 통감할 수 있다. 그런데도 패착의 결과를 피하지 못하는 불운이 지금껏 반복되고 있으니 정말 아이러니다.

대권을 꿈꾸는 이들을 둘러싼 암중모색도 갈수록 치열해지는 기색이다.
후보 흔들기도 본격화되는 조짐이다. 이는 내년에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설 생각을 갖고 있는 이들 모두에게 적용될 일종의 통과의례가 될 것이다.
이회창 전 총재의 실패가 주는 교훈도 챙겨둘 가치가 있다.
주지하다시피 대선 가도에서 이 전 총재가 다 된 밥을 먹지 못한 데는 IJ와 JP 영입 불발이 결정적 패인이었다. JP를 영입하라는 조언은 충정도 출신인 내가 왜 그를 데려와야 하느냐는 스스로의 과신 때문에, IJ 포용론은 결국 찻잔 속 미풍에 그칠 것이라는 잘못된 참모들의 전략이 막아버렸다. 그 결과 이 전 총재는 두 번씩이나 다 된 선거를 놓친 비운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다.
반면, YS 집권이 3당 통합이고 DJ 집권은 DJP 연합의 산물이었다. 이보다 앞서 민주화 물결에도 불구하고 노태우 집권이 가능했던 건 야권 분열이 가져다 준 선물이었다.
이 같은 역사적 정황은 2012년, 큰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이 반드시 명심해야 할 대목이라고 생각한다.

정치권에 대한 국민 불신이 하늘을 찌르는 형국이다.
때만 되면 쇄신과 개혁이라는 화두를 들이밀고도 여전히 쇄신과 개혁을 당면과제로 내세우고 있는 한나라당이나 내부분열로 동력을 상실하고도 통합을 앞세운 정치적 수사로 사분오열로 찢긴 약점을 해소하지 못한 민주당이나 국민 앞에서 궁색하기는 마찬가지다.
기존 정치에 대한 불신이 새 인물에 대한 갈증을 자극하는 현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성급한 반가움이 검증되지 않은 인물에 대한 판단을 흐리게 했고 그 결과 ‘열광적 등장과 실망스러운 퇴장’이 반복됐다. 박찬종 변호사나 문국현 유한킴벌리 전 사장의 좌절을 떠올리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최근 급부상하고 있는 안철수 신당도 성공 여부와 상관없이 비슷한 과정의 산물이라는 생각이다.

오죽하면 실체 없는 신당에 기대게 됐을까를 헤아리면 국민 앞에 한없이 죄스러워지는 마음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미몽에서 깨어나지 못한 정치권의 시대착오적 인식이 안타깝다.
신당 창당이나 명망가 위주의 신진 수혈로 면피하려는 의도로 화를 자초하는 형국이다.
겉모습이 아니라 정신상태가 문제인데 무조건 껍데기만 바꾸려고 한다. 국민은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진정성 있는 정치를 원하고 있는데 인기몰이식 땜방질로 얼렁뚱땅 위기 국면을 넘겨보고자 하는 꼼수가 역력하다.
착각도 이런 착각이 없다.

지금은 인물영입보다는 유능한 인재들이 관심을 갖는 정당으로의 환골탈태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화학적으로 변하지 않으면 국물도 없다는 비장함으로 2012년을 바라봐야 할 것이다.

(2011.11.14.)
....홍문종 생각

2011년 9월 11일 일요일

홍문종 생각 - 위기라고?

위기라고?
안철수 현상이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존재감만으로 정치권을 패닉상태로 몰아넣고 있는 게 사실이다.
우선 당장 코앞으로 다가온 서울시장 보궐선거 판을 통째로 흔드는 괴력이 심상치 않다.
이는 그의 지지를 지렛대 삼아 5%대 군소 후보에 불과했던 박원순 변호사가 여론조사에서 유력 정당 후보군을 제치고 압도적인 1위로 급부상한 현실이 입증하는 바다.
현상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분분하지만  기성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오랜 불만이 분출된 결과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시대정신이 바뀌고 있는 기류도 빼놓을 수 없는 요인이다.
이번 현상으로 당사자인 안철수 보다 더 많이  주목받는  인물이 있다.
바로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다.
안철수 돌풍 이후 그녀의 사소한 동정에까지 언론의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고 있다.
심지어 그녀가 던진  썰렁한 농담까지도 담론의 중심에 놓일 정도다.
악의적인 별명이  작명될  정도로 줄기찬 공세가 이어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안風에 부동의 1위였던 박근혜 대세론이 무너지고 있다고, 박근혜의 견고한 성이   안철수의  맹공에 맥을 못추고 종말을 향해 치닫고 있다고.
기다렸다는 듯이 박근혜 전 대표의 대권 가도에 적신호가 켜졌다는 분석들을 내놓고 있다.
과연 그럴까?
 
개인적인 생각은 다르다.
안철수 현상이 박근혜 전 대표 개인에게는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는 판단이다.
라이벌의 출몰이 치열한 생존 본능과 승부 근성을 자극하며 자칫 대세론에 안주할 수도 있을 그녀를 채근하고 있는 현상이 그것이다.
그녀의 움직임이 달라진 게 사실이다.
훨씬 분주해졌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건 현장 행보를 통해 소통을 모색하고 나선 그녀의 변화다.
실제로 그녀는 국민이 힘들어 하는 부분에 대해 좋은 답안이나 정책을 찾기 위해 앞으로 현장을 자주 찾겠다는 결심을 밝혔다.
라이벌로 인한 자극이 초래한 긍정적인 변화가 아닐까 싶다.

라이벌의 존재가 삶의 차원을 높이는 원동력으로 작용한 사례는 숱하게 많다.
대표적인 사례가 평생을 정치적 라이벌로 애증이 교차했던 DJ와 YS다. 두 분의 경쟁심은 이 땅에 민주화를 정착시킨 거대한 결실을 맺었다. 영원한 숙적의 대명사 고려대와 연세대의 팽팽한 기싸움이 관중석의 흥미를 배가시켰고 현대와 삼성   두 재벌 기업의 라이벌 의식은 대한민국 발전의 초석이 되었다. 체육계나 연예계에서도 라이벌의 순기능을 발견하기가 어렵지 않다. 태진아와 송대관,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 강호동과 유재석 등도 동일 영역에서 서로의 기량을 성장시킨 좋은 라이벌 관계의 대명사다.
결과적으로 안철수 돌풍은 박근혜 전 대표에게 기회를 제공했다.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 정치권에 분노하는 민심의 냉엄한 현실을 미리 알게 해 준 셈이니까.
답을 알았으니  반성하고 보완해서 더 좋은 정치인으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하면 되니까 얼마나 다행인가.
 
그러나 환부를 알았으니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반성없는 정치권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 같다. 
자성은커녕 모든 우환을 다 ‘네 탓’으로 돌리며 상대를 향한 삿대질을 멈추질 않고 있으니 하는 소리다. 한시라도 빨리 환골탈태로 참회하고 최선을 다하는 진정성을 보여도 시원찮을 판에 여전히 미몽을 헤매는 정치권을 보면 입맛이 쓰다.
여당은 여당대로 야당은 야당대로 스스로의 환부를 외면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고성을 담 밖으로 넘길 정도로 여전히 뻔뻔하고 당당한 모습을 고수하고 있다. 
한술 더 뜨는 청와대의 아전인수도 딱하기는 마찬가지다.
‘올 것이 왔다’고 마치 남의 일처럼 말하는 그 표정이 너무도 천진난만(?)해서 당혹스러웠다. 스스로가  부끄러운 처지에 놓여 있는지를 모른다는 사실이 그렇게 서글플 수도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답이 안나온다.
솔직히 어찌해야 할까 싶은 심정이다.
 
PS: 연일 박근혜 위기론을 설파하는 언론의 조준은 재설정이 불가피하다는 생각을 덧붙이고자 한다. 안철수 현상을 박근혜 개인보다는 대한민국 정치권 전체의 위기 차원으로 염려하는 게 옳은 수순이다. 정제되지 않은 여론을 정략적으로 편집 보도하는 언론의 행태 역시 정치권 못지않은 혐오대상으로 분류되고 있는 민심의 현주소를 아프게 받아들이길 바란다. 
또 하나,  박근혜 전 대표의 라이벌은 안철수 교수라기 보다  안철수로 대변되는 정치현상이라고 해야 더 정확하다는 사실을  분명히 해두고 싶다.
                                   (2011. 9. 10)                   
                                      ...홍문종 생각                        

2011년 9월 7일 수요일

홍문종 생각 - 안철수 현상의 본질

  안철수 현상의 본질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대학원장의 서울시장 불출마 선언을 바라보는 시선이 복잡하다.
대승적 차원의 통 큰 결단인지 좀 더 큰 판을 노린 고도의 꼼수인지를 헛갈려 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안 원장에 대한 이런 저런 반론이 제기되기도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를 향한 대중의 관심이  여전히 뜨겁다는 사실이다. 
새로운 돌풍을 예고하는 조짐으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불출마 선언 직후 진행된 대선 후보 가상대결에서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를 제친 결과로 대번에 대선 주자 반열에 오른 현상 등이 그것이다.
기성정당의 위기가 장외 선수의 몸값 띄우기를 주도하는 아이러닉한 현실에 다름 아니라는 생각이다. 그만큼 국민 상처가 깊고 큰 반증일 것이다. 기존 정치에 대한 실망과 좌절이 얼마나 컸으면 정치문외한에 불과한 그에게 이렇게까지 매달릴 수(?) 있을까 싶다.
  
안철수 현상의 본질은 위기에 처한 정당정치에 있다. 
무소속이나 시민후보를 자처하는 안 원장도 그렇고 박 변호사도 탈 정치권 인사라는 사실 만으로 막대한 프리미엄이 붙는 분위기다. 실질적인 가치보다 무게가 더해 판단되는 현상이 진실여부와 상관없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정당 내부보다는 바깥에서 몸을 풀고 있는 사람들이 훨씬 그럴 듯 해 보이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은 현상이다. 이 모두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 기존 정당의 자업자득 측면이 강하다.
실제로 출마를 염두에 두고 있는 인물군들이 정당의 러브콜에 일정 정도 선을 긋고 관망하는 상황도 예년과 많이 다른 모습이다. 선거 때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어떻게 해서든 정당 공천을 얻어내려던 정경을 떠올리면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당정치의 근간이 흔들려서는 안된다는 생각이다.
대의정치 명분 말고도 정당정치가 내포하고 있는 덕목이 많다. 특히 정치인에 대해 국민이 직접적 통제할 수 있는 창구가 된다는 측면에서 더욱 그렇다. 단순한 교육과 훈련을 통해 정치적 소양을 길러내는 목적보다 더 유의미한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정당의 이념과 정강 정책에 따른 개별 행위에 대해 국민의 견제와 비판, 또는 지지가 가능하도록 하는 정치참여 허용을 통해 책임정치 실현의 주체가 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정당정치의 중요한 기능이기도 하다. 
중국 공산당 리더십의 산실로 대변되는 '상하이방(上海幇)'의 역할에서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밑바닥부터 행정 경험을 쌓고 많은 훈련과 상호 경쟁을 자원으로 삼아 능력있는 인재를 배양해내는 상하이방은 정당정치의 성공사례로 손꼽히는 케이스다.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정치 현실에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안철수 원장의 결단이 요구된다. 
정치권에 대한 좀 더 진지한 접근과 행보를 고민하라는 주문을 그에게 하고 싶다.  
더 이상 장외에서   '순도'를  앞세워 천상천하 유아독존 경지를  즐기는  걸 당연시해서는 안 되겠다. 본격적으로 주변 정리를 마치고 정치판에 과감히 뛰어들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폭발적인 기대감으로 성원을 보내고 있는 국민에 대한  도리라는 생각이다.
새로운 패러다임을 실천하려면 정당 결성이 즉답이다.  
최우선 적으로 정강정책을 내걸어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을 모으는 일부터  권면하는 바이다.  정치 신인도 좋고 기존 정당에서 뜻이 맞는 사람들도 무방하다.  그들의 처음 열정을 결집시킬 수 있는 안건이면  된다.  그렇게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을 묶어 적극적인 결사체로 만들고  정치적 이상을 달성하기 위해 책임감과 인내심으로 어려움을 함께 나누겠다는 개인적 각오를 공동체적 동기로 승화시켜 거듭나야 한다.  
안 원장이 지금 받고 있는 국민적 지지는 기존정당들이 미처 수렴하지 못한 민의를 반영할 수 있는 새로운 정치세력의 출몰을 원하는 국민적 열망이다.  이 점을 간과한다면 영원히 그 답은 없다.  

정치의 핵심은 세력화다.
오세훈 전 시장의 ‘도중하차’만 해도 그를 위한 적극적인  지지세력이 존재했다면 조금 다른 상황으로 전개되지 않았을까 싶다.  정치 세력화 과정은 백신 만드는 일과는 다른 점이 많을 것이다. 개인기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돌발 변수 등 정치공학적   측면도 감안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어려울 때  이해로  보호해주는  동료나 집단의 힘이 필요하다는 현실 인식이 가능해졌을 때 비로소 땅에 발을 붙인 정치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기존의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놓치고   있는 부분을 보완하는 것도  진정한  의미의 혁신이라는 점을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런 다음 자신의 세세한 부분까지 전부 도마 위에 올려놓고 검증받겠다는 각오를 보여라.
그것이 안 원장 자신을 위해서도 그렇고 국민들에게도 바람직한  절차라고 생각한다. 
 
아직은 모든 게 불투명하다.
그런  가운데 국민을 대상으로  백신실험 하듯 이리 튀고 저리 튀는 안철수식 자유는 아직은 우리 사회에 낯설다.   정치인으로서 정제되지 않은 창의성은 신선하고 청량감을 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신뢰성 부실로 이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자칫   이방인의  방종으로  비춰지기  쉽다.  녹록지 않은  저항감이다. 
국민 스스로도 부화뇌동 하기보다  그가 과연 정치적 대안이 될 수 있는 인물인지 여부를  꼼꼼하게 짚어보도록 하자.  무조건적인 열광이  오히려 모두의 안녕을 헤치는 흉기가 될 수도 있음을 알자. 

무슨 일이 있어도 그 도도한 흐름을 멈추지 않는 역사의 주인은  바로 우리 자신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되겠다.
                           (2011.  9.  7)                      
                                       ...홍문종 생각                    

2011년 9월 4일 일요일

홍문종 생각 - 안철수 신드롬

 안철수 신드롬 
 
서울시장 보궐선거전이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출마 가능성이 제기되면서부터다.
폭발적인 반응을 끌어내며 돌풍의 주역으로 부상하는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단숨에 10.26 보궐 정국을 소용돌이로 몰아넣는 형국이다.
정작 당사자는 출마여부를 결정짓지 못하고 목하 고민 중이라는데  대단한 위력이다.
가히 안철수 신드롬이라 할 만하다.  후보 경쟁력을 묻는 각종 여론조사마다 압도적인 표차이로 선두를 달리며 기존 정당의 유력후보들을 맥 빠지게 만들고 있으니 하는 말이다.

안철수씨와 개인적 친분은 없다.
그렇지만 그가 한국사회에서 썩 괜찮은 행적으로 신뢰받는 저명인사 중 한사람이라는 사실에 동의한다.  그동안의 행적 만으로도 여러 면에서 존경할 만한 가치가 충분한 사람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사람들도 그의 존재가치에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시장 선거판에서 그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는 현실은 불편하다.  그가 인정받은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 분야의 다양한 능력들이 정치를 잘 할 수 있는 전제조건이나 자격 충족의 여건을 의미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안철수씨는 정치적 DNA가 풍족하지 않다는 노파심이. 그의 훌륭한 인품이  정치에 잘 맞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걱정에 걱정을 부르는 게 사실이다. 
분명한 것은 정치가 학문적 성과와 특별한 연계성에 주목할 수 있는 분야도 아니고 학자로서의 성공이 정치적 성공을 담보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특히 사물을 깊게 살피고 시시비비를 가리는데 지나치게 익숙한 학자의 특성 상 타협과 상생, 조화를 주요 가치로  내세워야 하는 정치를 소화해내기가 그다지 쉽지 않을 거라는 짐작이다. 
흔히 정치를  생물로 단정하게 되는 배경도  즉각적이고 투명하게 설명할 수 없는 곤혹스런 상황 논리 때문에 생겨난 게 아닐까 싶다.  공식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이론이 용인되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정치도 고도의 독자적인 전문성이 요구되는 영역이다.
필요한 절차와 과정을 생략하고 우연한 기회나 덤에 대한 기대로  나설 수 있는  작업이  절대 아니다. 물론 걔 중에는 혜성처럼 제도권에 화려하게 진입해서 인생을 꽃피운 사례가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아주 드문 일이다.
최종적인 성적표들을 보면 생각처럼 잘 적응해서 정치적 성공을 거둔 적이 별로 없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여러 여건이 나로 하여금  스물 이후부터 정치를 들여다보는 삶을  살게 했기에   내릴 수 있는 결론이다.
실제로 그랬다.
숱한 인재들이 정치판 부나방으로 소멸되는 모습을 지켜볼 기회가 남들보다 많았다. 
그 중 이태섭 전 장관의 경우는 개인적으로 제일 안타깝게 생각하는  선배 정치인이시다. 경기고 서울대를 우수한 성적으로 마치고 미MIT에서 최단기로 박사학위를 딸 만큼 공학도로서의 장래가 촉망되던 그가 정치권에 영입된 이후 어떤 모습으로 정치인생을 마감했는지 똑똑히 지켜봤기 때문이다.
그는 본래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명성에 훨씬 못 미치는 초라한 성적표로 정계를 은퇴했다.
국회의원 4선의 경력과 장관 경력이 도무지 위로가 되지 않는 상처를 스스로의 삶에 화인으로 남기면서 말이다.
그를 떠올릴 때마다 반문하게 된다.
만약 정치를 선택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더 행복했을까?
 
안철수의 인생진로가  지금의 궤적에서 바뀌지 않기를 바라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정치가 제자리를 찾아야  나라가 잘 되는 게 맞지만 그가 하고 있는 지금 그대로의 역할도 이 못지 않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자칫  그의 불안한 전향이  전도양양한  인재의 굴절로 이어져  세계로 뻗어나가고자하는 우리의 발목을 잡게  되는 결론이 된다면 이 보다 더 큰 손실은 없을 것이다.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 같은 인재들이 절실하게 필요한 이 때 안철수 아이콘이 우리에게 보여 줄 수 있는 미래 비전은  정치역역이  아닌  곳에 그 기회가  훨씬 많다는 생각이다.   그는 세계 유수의 실력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경쟁하는 모습만으로도  백 마디의 희망을 대변할 수 있는 귀한 자산이다. 
그런 경쟁력 있는 인물이 왜 꼭 정치를 해야 하는지 명확한 설득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그를  정치판에 가두는  무모한 모험에  방관해서는   안될 것이다.
 
진지하게 고민해보고 결심이 서면   뜻을  밝히겠다고 본인의 의사를 밝힌 만큼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
그렇더라도 서울시장 출마를 만류하고 싶은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오로지   안위를 바라는 마음 하나만으로 그의 다음 행보를 지켜보는 눈들이 참으로 많다는 사실을 그가 알고 있었으면 한다.  노파심이면 좋겠지만 정치꾼들 등살에 손실되는 최악의 경우를 배제할 수 없다는 걱정은 나 한사람의 생각이 아니다. 
그의 결정이 본인은 물론 국가와 민족에 보탬이 되는 삶을 선택하게 되기를 바란다.
그가 제일 잘할 수 있는 방법으로.
                             (2011. 9. 4)                  
                                  ....홍문종 생각                       

2010년 8월 13일 금요일

홍문종 생각 - 희망을 쏘자

희망을 쏘자



어릴 때 나는 엉뚱하게도 연극배우를 되고 싶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시작된 갈망이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계속됐으니 얼마나 깊이 소원했는지 짐작이 갈 것이다.

그러면서도 장래희망을 묻는 질문에 ‘연극배우’라고 대답한 적은 없다. 꿈을 이루기 위해 직접 행동에 나선 기억도 없다. 속내를 감히 드러낼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당시 집안 분위기로는 말해봤자 소용없을 것이라는 스스로의 판단에 지레 포기가 됐기 때문이었다.

요즘이야 부모들이 자녀들의 연예계 진출에 더 적극적으로 팔 걷어 부치고 나설 만큼 세상이 달라졌지만 그 때는 달랐다. 춥고 배고픈 가시밭길의 연속이고 고생문이 훤하다는 사회적 인식 때문에 어느 부모도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만약에 당시 분위기가 요즘 같았다면 나는 연극배우가 될 수 있었을까?



요 근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이런 저런 일들을 보면서 희망을 북돋는 일과 꺾는 일의 차이가 얼마나 큰가를 새삼 느끼고 있다.

그런 점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새마을 운동은 희망 키워드의 대표적인 성공작으로 꼽을 만하다. 잘 살아 보자는 희망 독려로 국민들에게 열심히 일하면 가난을 물리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했고 또 결실을 거뒀다. 개발도상국으로서의 어려운 환경 속에서 오천년의 빈곤을 퇴치하고 우리도 잘 살수 있다고 희망을 심어준 것은 무엇보다 큰 업적으로 평가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도 우리의 새마을 운동을 벤치마킹 하고자 하는 국제사회의 발길이 끊이질 않고 있는 것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

반면에 대다수 젊은이들이 방황하고 있는 작금의 현실은 희망과 거리가 먼 풍경들이다. 젊은이들의 희망을 꺾고 강요하는 분위기 일색이다. 봉급을 한푼도 안 쓰고 오십년을 꼬박 모아도 강남의 집 한 채 마련하기 힘들고 젊은이들은 일하고 싶어도 일할 곳이 없는 사회가 바로 21세기 대한민국의 현실이라는 사실이 안타깝다.

희망의 메시지를 창출하지 못하는 무능한 위정자들의 안일함이 초래한 부작용에 다름 아니다. 국가의 무능이 국민의 희망을 꺾고 있는 현장인 것이다.

믿고 싶지 않지만 이대로 계속해서 ‘희망 꺾기’가 이어진다면 우리 사회가 어떤 모습으로 남게 될지 너무나 뻔하다.



사회건 개인이건 희망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이다

젊은이도 마찬가지다. 젊은이가 희망을 잃으면 이미 스스로의 역량을 포기하는 것이다. 희망과 함께였다면 어떤 위기가 와도 이겨낼 수 있고 가능성을 실현해 낼 수 있다는 측면에서 보자면 돌이킬 수 없는 손실이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희망을 잃지 않기 위한 노력은 더 없이 중요한 일이다. 희망을 독려할 수 있는 구체적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평소 생각하고 있는 ‘희망쏘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가장 좋은 희망쏘기는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지만 야구나 미식축구의 치어리더처럼 희망이 꺾이지 않도록 도와주는 사회적 분위기가 필요하다. 사람들이 계속해서 희망을 쏘아올릴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해주는 일이 필요하다. 지도자에게도 마찬가지다. 지도자로 하여금 희망의 끈을 놓지 않도록 독려하는 주변의 관심이 결정적인 도움이 될 수 있다. 때로는 허황되게 들리는 얘기일지라도 참고 들어주는 포용력이 희망을 성사시키는 결정타가 되기도 한다.

안철수나 빌 게이츠의 성공신화를 조금 더 과장해서라도 많은 이들에게 꿈을 주는 일은 유의미하다. 현재가 됐건 미래가 됐건 사회적 공조를 통해 롤모델의 스킬을 창조해내는 상황도 배제할 필요가 없다. 롤모델의 대상이 늘어나는 것도 바람직하다. 꿈을 실현한 성공담이 같은 성공을 이루고 싶은 이들에게 힘이 될 수 있도록 롤모델을 구축하는 건 어떻게 보면 사회적 책무 중 하나일 수 있다.

돈이나 힘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누군가의 적극적인 조력이 필요한 것도 아닌, 희망쏘기에 가장 필요한 사안이 있다. 그것은 바로 자신감과 배짱이다. 자신이 꾸고 있는 꿈을 사람들이 이해 못하거나 무시해도 개의치 않을 수 있는 배짱이나 자신감이 있어야 한다. 그렇게 거침없이 동네의 미래도 대한민국의 미래도 건설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희망을 쏘아 올리도록 하자.



연전에 작고한 장영희 교수가 생각난다. 고통받는 사람에게도 늘 그 나름의 기쁨이 있고 그래서 살아갈 힘이 나온다며 그 자신 늘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생전의 그녀다.

그녀는 이런 식으로 희망을 말하기도 했다.

"희망은 운명도 뒤바꿀 수 있을만큼 위대한 힘이다. 난 여전히 그 위대한 힘을 믿고 누가 뭐래도 희망을 크게 말하며 새봄을 기다린다."

그녀만큼 온전하게 희망을 품고 살았던 이는 보지 못한 것 같다.

그녀는 갔지만 그녀가 생전에 쏘아 올리던 희망은 여전히 남아있는 이들에게 위안을 주고 있다.

참으로 놀라운 희망의 힘이다.

우리도 그렇게 희망을 쏘자.
(2010 . 8. 12)

.....홍문종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