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1월 30일 수요일

홍문종 생각 - 사전 준비 효과

사전 준비 효과

청와대 만찬에 다녀왔다.
방한 중인 멜라스 에티오피아 총리와 아프리카 문화예술계에 관계하는 국내외 인사들을 위한 자리였는데 나는 ‘아프리카 예술박물관’을 운영하는 인연으로 초청대상이 됐다. 그동안 정치적 동기로 청와대를 방문하는 몇 번의 기회가 있었지만 문화예술 관련해서는 처음이었다. 그래서인지 약간은 색다른 기분이었다.
대통령도 만났다.
그런데 할 말이 많아 보였고 실제로 많은 말을 했던 YS나 DJ 등 두 역대 대통령과는 많이 달라보였다. (YS는 거의 한 시간 가까이 열심히 일하는 대통령을 이해하지 못한다며 국민에 대한 서운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뭔가 많이 지치고 피곤해 보여 왠지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그런 내 느낌이 전달됐던 걸까? 때마침 테이블에 동석한 대변인이나 수석 등 보좌진들이 살인적인 스케줄 속에서 항상 주빈으로 처세해야 하는 대통령의 피곤한 일상을 화제로 삼았다. 대통령의 고독한 뒷모습을 들여다 본 듯해서 나도 모르게 측은지심이 발동됐다.

때가 때인지라 어디를 가도 차기 대선 주자들에 대한 하마평이 넘친다.
다음엔 과연 누가 대통령이 될지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그 중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는 인사는 단연 안철수 씨다.
많은 이들이 말하고 있듯 안철수 현상은 정치권의 부패와 무능의 산물로 기존 정치에 신물이 난 국민 염원이 만들어 낸 로망이다. 그 중심에 안철수 씨가 서 있는 것이다.
숱한 갑론을박이 ‘안철수’ 언저리를 맴도는 가운데 그의 행보에 많은 이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게 사실이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안철수 식 정치 실체가 드러나지 않은 상황이다. 그의 멘토 그룹조차도 안철수 정치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의 관측대로라면 그의 대선 출마는 기정사실이 될 것 같다. 조만간 그의 입장이 구체화 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실체도 없는 안철수 씨를 관련짓지 말라는 일부 친박 인사들의 과민한 반응은 별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
피선거권을 제한받지 않는 한 대선에 출마할 수 있다. 한나라당 박근혜 전대표나 손학규 민주당 대표, 또 그 밖의 잠룡 누구라도 대선 경쟁의 주체로 나설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진 마당이다.

중요한 건 제대로 된 인물을 가려낼 수 있는 현명하고 올바른 국민적 안목이다.
그러나 못지않게 중요한 게 있다면 대통령 직무를 보좌하는 참모진들의 역량이다.
그동안의 대선 후보군 면면을 살펴보면 대통령이 되기 위한 준비가 미흡했던 안타까움이 있다.
개인의 기량 때문이라기보다 국가적 여건이 대통령이 되기 전 부터 제왕학 훈련을 통해 ‘대통령감’을 양산해낼 정도가 될 수 없었다.
그렇다면 대통령 직무수행을 돕는 인재 확보가 그 괴리를 메울 수 있는 또 다른 최선이라는 생각이다.
워낙 비밀에 싸여있고 의사결정이 단순하지 않은, 그래서 매 사안마다 어렵고 고독한 결단이 요구되는 대통령 직무의 특성 상 준비된 인재는 생각 이상의 능력과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특히 호흡이 맞는다면 대통령 업무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는 직항로가 될 수 있다.
인재확보를 위한 사전 노력은 아무리 챙겨도 부족하지 않은 부분이다. 그렇지 않아도 불량 참모가 국정을 농단하거나 대통령을, 그리고 국민을 어려움에 빠뜨린 경험이 적지않은 우리다.

따라서 내년 대선을 통해 꿈을 이루고자 한다면 ‘어떻게 유권자의 마음을 끌까, 어떻게 해야 표를 많이 얻을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것 못지않게 어떤 인재를 국정운영 파트너로 삼을까에 대해서도 심사숙고해야 한다.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개인적으로 마냥 즐겁고 행복한 것만은 아닌 만큼, 현실을 미리 파악하고 이에 따른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는 안목도 인재의 사전 확보를 통해 거둘 수 있는 효과다.
이른 바 창살 없는 감옥을 소화할 수 있는 내공의 단련과정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는 유리한 차별요소를 가지고 있다.
유일하게 직간접적으로 대통령 수업을 받은 측면은 남다른 경쟁력을 갖췄다 할 수 있다.

어찌됐든 대한민국 21세기를 이끌 중요한 선택이 바람직한 결과로 이어지길 바란다.
좋은 대통령을 모시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만들다보면 언젠가는 우리 역사의 위대한 대통령을 남기게 될 날이 올 것이다.

(2011. 11. 30)
...홍문종 생각

2011년 11월 29일 화요일

홍문종 생각 - 여검사, 너 마저?

여검사, 너 마저?


최근 검찰을 떠난 두 전직 여검사의 엇갈린 행보가 화제다.
벤츠와 법인카드, 샤넬가방 등을 대가로 한 부당거래로 물의를 빚은 李모씨와 검찰이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지키지 못해 검사로서의 자긍심이 무너졌다는 쓴 소리로 주목을 받은 白모씨가 그 당사자다.
특히 대가성 뇌물과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와의 부적절한 처신 등으로 여론의 질타를 받고 있는 李모씨의 경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검찰조직에 또 다른 상처를 안겨주는 핵폭탄이 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금품 로비 리스트가 담긴 ‘이국철 비망록’에 11명에 달하는 검사장급 이상 고위직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 곤혹스러운 검찰 입장이 더 난감하게 됐다. ‘스폰서 검사’ ‘그랜저 검사’로 대변되는 오명과 비리의 악몽이 되살아나게 될까 전전긍긍하는 초조함이 역력하다.

이대로 영원히 검찰의 미래가 존재하지 않는 건 검찰의 바라는 바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검찰이 국민 눈 밖에 난 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고 검찰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련의 일들 역시 대부분 검찰의 설자리를 축소시키는 악재들뿐인 현실이니 답답하긴 할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라.
절대적인 국민 성원이 검찰을 받쳐주던 때가 있었다.
참여정부 당시 대선자금을 수사하면서 성역없이 칼을 들이대는 검찰에 가장 먼저 환호하고 힘을 실어준 건 국민이었다. 검찰이 본연의 업무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이자 국민이 먼저 알아보고 나선 것이다. 송광수 검찰 총장은 대번에 국민 영웅으로 부상하고 ‘국민의 검찰’이라는 이름의 팬클럽이 결성됐다. 팬을 자처하는 이들이 소임을 다해 일하라고 검찰에 보약을 보냈다는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일장춘몽으로 끝나긴 했지만 결국 환대도 멸시도 스스로 하기에 달려있다는 걸 입증한 사례다.

진실로 검찰이 개혁되기를 원한다면, 진실로 검찰이 국민이 사랑받는 기구로 거듭나길 바란다면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를 신설해야 한다.
이 제안은 새삼스럽지 않다. 현실적 대안이라는 공감대에도 불구하고 빛을 보지 못한 오래된 정책이다. 거듭되는 탈락에도 불구하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끊임없이 그 필요성이 제기되는 건 효율성에 대한 확신이 그만큼 크다는 반증이다.
검찰이나 국회의원 등 고위공직자의 지나친 권력은 제한해야 한다.
대통령 직속기구로 두고 검찰 총장이 아닌 대통령의 직속기구로 운영한다면 방만한 권력남용을 견제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있다. 이 경우 검찰이나 국회가 대통령에 예속되는 어려움이 없지 않지만 지금으로선 과도기적이기는 하지만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라고 본다.

검사 임용제도에 대해 좀 더 세심한 보안도 검찰의 신뢰회복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고시성적 외에는 그 어떤 것도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 현재의 임용제도는 제고돼야 한다. 어떤 형태로든 좋은 검사가 되기 위한 일정한 트레이닝 과정을 거쳐야하는 건 물론이지만 그보다 앞서 검사로서 마땅한 자질과 인성을 검증하는 것도 임용조건에 주요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법을 전공하지 않은 입장에서 검찰의 생리를 잘 모르고 하는 소리가 될지 모르지만 일반 기업 채용과정에서도 면접이 차지하는 비중이 막대한 현실에 비하면 대한민국 최고 기관인 검찰의 인재 채용과정에서 이런 측면이 등한시 되고 있는 건 아닌지 반성의 여지가 있다는 생각이다. 공정성의 담보가 문제가 될 수 있겠지만, 최소한 임용대상자의 생활환경이나 자질을 체크하는 과정이 경시된 채 그저 지식 위주의 평가 기준은 심각한 후유증이 예상된다는 점에서 그렇다.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하는 풍토가 불합리함을 야기하는 원인이 되는 만큼 이 역시 하루빨리 개선점을 찾아야 마땅하지 않을까 싶다.

절대권력은 반드시 부패하게 돼 있다는 건 역사가 입증한 바다.
약일 수도 있지만 독이 되기도 하는 권력의 속성을 봐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절대권력의 유일한 성지를 꼽는다면 아마도 검찰이 아닐까 싶다.
끊길 새 없이 터져 나오는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검찰의 뒤틀린 행태가 개선되지 않는 건 절대권력의 아우라 때문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실제로 그 절대권력이 국민으로 부터 신뢰받지 못하는 검찰을 만들어냈다. 검찰총장이 바뀔 때마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과 신뢰받고 깨끗한 검찰의 길을 걷겠다는 의지를 보이지만 현실이 늘 그 나물에 그 밥인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검찰 자신은 스스로의 현실을 어떻게 보고 있는 지 궁금하다.
설마 부패의 온상이라고 손가락질 받아도 권력만 손에 쥐고 있으면 행복하다고 자족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결국 조직의 정화는 스스로의 용단으로부터 출발하는 게 맞다.
그래야 결정적 힘이 발휘된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이국철 비망록에서 로비대상자로 거론되는 11명 검찰 고위인사의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싶다.

(2011.11.29.)
....홍문종 생각

2011년 11월 28일 월요일

홍문종 생각 - 매 맞는 공권력

매 맞는 공권력


지난 주말 FTA 반대 시위현장에서 발생한 종로 경찰서장 폭행 사건을 둘러싸고 진영논리가 뜨겁다.
정부 여당과 경찰은 공권력 침해라며 강경 대응방침을 천명하고 나서는 가하면 야당과 집회관계자들은 시위대를 자극해서 폭력을 유도한 경찰에 책임이 있다며 반발하는 모습이다.
특별히 어느 한 쪽을 두둔하거나 폄훼할 의도로 이 문제를 거론하는 건 아니다. 어느 쪽 주장이 설득력을 갖게 될지는 결국 시간이 해결할 일이 아닐까 싶다.
다만 공권력에 대한 폭력문제 만큼은 다른 각도에서 다뤄져야 한다고 본다.
이번 폭행사건은 시위현장의 특성 상 흥분이 고조될 수 있고 군중심리 등으로 부풀려진 감정의 과잉현상이 초래한 부정적 결과물일 수 있다. 그렇더라도 정상참작의 여지가 없다는 생각이다.
서울 한복판에서 매맞는 공권력이라니 어이가 없다.

미국의 데모 현장을 보면 우리 정서로는 이해하기 힘든 일들이 많다.
일단 법을 어기면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성역없이 공권력의 엄격한 제제가 가해지는 모습부터가 낯설다. 미국사회에는 원칙적인 법 집행을 능가할 그 어떤 권력이나 여론이 존재하지 않는다. 실제로 시위현장에서 국회의원이 체포되거나 대통령 자녀들이 질질 끌려 나가는 모습은 낯선 풍경이 아니다. 2011년도 연방 정부 예산 통과를 항의하던 워싱톤 DC 시장이 수갑이 채워진 채 체포됐는데 그에게 적용된 죄목은 ‘불법 시위 및 통행방해죄’였다. 수단 정부의 인권탄압을 항의하던 하원의원들도 불법시위를 벌인 혐의로 무더기로 잡혀갔다. 역시나 수갑이 채워진 채였는데 그들 중엔 서열 10위권 내의 여당실세도 포함돼 있었다.
우리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어찌 보면 살벌할 수도 있을 미국의 시위문화에서 고급스런 안정감이 감지되는 건 그다지 생경한 일이 아니다. 수갑을 채우는 경찰이나 체포돼 끌려 나가는 시위대 사이에 상당히 안정적인 교감이 이뤄지고 있기에 가능한 정서이기 때문이다. 시위대는 스스로의 불만을 표출하다 체포되는 상황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다. 이는 법을 준수하면 경찰이 민중의 지팡이의 역할을 다하고 불법적이면 준엄한 법의 집행자로 바뀌는 룰을 정확히 알고 있는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게다가 그 범주 안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서로의 방식을 충분히 수용할 수 있는 여유로움이 있기에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거기에 비하면 우리 시위 문화는 상당히 감정적이다.
서로의 뜻이 어우러지고 하나가 될 경우 폭발적인 시너지를 낼 수 있는 풍부한 감성은 우리 국민이 갖고 있는 정서적 강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냉정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감정적인 정서에 치우치게 되면 이번처럼 경찰서장 폭행이라는 부정적인 에너지로 표출될 때도 있다.
월드컵 당시 붉은 악마로 상징되는 대한민국의 응원문화는 우리의 국민적 열정이 집단 에너지로 산화돼 이뤄낸 쾌거다. 전 세계가 경이로움으로 우리를 바라보던 때의 감격이 지금도 생생할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렇게 뜨거운 국민적 기질이 또 다른 차원으로 세계를 놀라게 할까봐 걱정이다. 특히나 외국에 ‘치안이 잘돼 있는 나라’ 이미지로 호감도를 올리는 우리의 관광 홍보 전략을 감안한다면 단순한 기우가 아닐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하기야 국회의원들이 망치를 들고 국회 기물을 부수거나 본회의장 안에서 최루탄까지 터뜨리는 마당에 시위문화가 무슨 의미일까 싶지만 아무리 봐도 이건 아니다.

정부와 국민의 관계가 존속하는 한 어떤 형태로든 시위문화는 존재할 수 밖에 없다. 더구나 민주사회에서 다수의 의견을 표출하는 수단으로 자리잡은 이상 이런 식의 불상사는 항존하게 돼 있다.
그렇다면 올바른 시위문화 정착을 위해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 시위를 통해 의견을 표출하는 방법이나 시위현장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금도를 비롯한 각종 룰에 대한 교육도 그 일환이 될 것이다. 준법 투쟁 등 구체적인 시위 관련 사안을 사회 교과서의 한 부분으로 넣어서라도 가르쳐야 한다.
의사를 표현하는데 있어 통제되지 못해 과격해진 감정이 허용되는 사회라면 그로인한 혼란은 불을 보듯 환하다. 우리가 지향하고 있는 일등 대한민국의 길도 요원해 질 수 있다.
혹여 시위하는 입장에서 배부른 자들의 지나치게 통속적이고 일방적인 잣대라고 비난할 수도 있겠다. 정말 혁명적으로 바뀌어야 할 상황인데도 계속 강자의 논리만 부각되고 존중받는 사회가 정상적이냐며 상황인식 부재라는 우려와 반박이 쏟아질 수도 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적 불만을 혁명적 상황으로 몰고 가려는 시도가 최선이 아니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국가 사이의 분쟁을 전투로 해결하는 게 능사가 아니듯이 말이다.
항상 주장하듯 위대한 나라는 위대한 국민이 만들었다.
위대한 국민, 위대한 나라가 되기 위해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이 아직은 많지만 그렇지만 우리는 꿋꿋하게 해낼 수 있다. 해결할 수 있는 자신감과 역량이 있다.
다만 매맞는 공권력 문제가 우리의 '위대한' 프로젝트를 가로막는 불상사가 되는 일은 없어야겠다.

(2011. 11. 28)
....홍문종 생각

2011년 11월 27일 일요일

홍문종 생각 - 문화 경쟁력

문화 경쟁력


크라운 해태제과 윤영달 회장님의 초대로 모처럼 의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양주 아트벨리에서 ‘양주풍류악회’ (은퇴한 국악 명인으로 구성된) 공연을 통해 궁중음악 향연에 동참할 기회를 얻은 것이다. 국악계에서 내로라하는 명성답게 문외한인 내게도 상당한 내공이 느껴지는 수준높은 공연이었다. (공연이라기보다 명인들의 리허설 장면 관람을 허락받았다는 표현이 더 옳을 듯하다)

궁중음악엔 지휘자의 지시대로 움직이는 서양음악과는 달리 당김과 받침만으로도 끌어주고 치워나가면서 가슴 속 내밀한 부분까지 헤집어 포착한 흥과 가락을 일사분란하게 표출하는 감동이 있었다. 서로에 대한 신뢰가 없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조화로움이었다. 설움인지 통한인지 모를 감정들이 어깨춤에 실려 배출되면서 오래 묵은 체증이 해소되는 이 느낌도 우연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뒷 줄 왼쪽부터 해금 이기설, 강사준, 정수년, 대금 홍종진,
피리 곽태규, 정재국, 장고(회장) 김정수, 해설 황준연
앞 줄 왼쪽에서 세번째 크라운해태 윤영달 회장님



공연에 대한 감회 못지않게 윤영달 회장과 나눈 대화가 유의미했다.
윤회장은 ‘한국의 21세기는 아트’라는 지론으로 문화 후원에 남다른 열정을 기울이는 분이다. 양주 아트벨리는 크라운 해태제과에서 인근의 모텔 대여섯개를 매입해서 조성한 문화공간으로 그의 열정이 토대가 된 구체적 결과물 중 하나라 하겠다. 얼마 전에는 국악에 대한 열정으로 국악인 활동을 꾸준히 후원한 공로로 20번째 ‘몽블랑 문화예술 후원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에 따르면 세계의 모든 제품들은 똑같은 기계와 기술로 생산된다. 각국의 제품들이 더 이상 변별력을 갖기 어려운 이유다. 제품에 문화나 예술혼을 불어넣는 식의 새로운 시도만이 차별화에 성공하는 방법이다.
그래서 그는 직원들에게 예술을 배우게 하고 체험시키는 과정에 공들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고 한다. 예술적 감각이야말로 21세기 경쟁력에 있어 가장 확실한 승부수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란다.

윤회장의 주장은 상당부분 일리가 있다. 21세기를 주도하고 싶다면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그의 말마따나 평범한 제품에 예술적인 가치를 부여한다면 사람들의 욕구나 취향을 더 반영한 제품 생산이 가능해지고 이것이 21세기 경쟁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비슷한 내용을 접한 기억이 있다.
일본 제품이 한국 제품과의 경쟁에서 뒤지는 이유에 대한 전 주한 일본대사의 설명을 통해서다.
그는 지나치게 질적 가치를 강조하는 일본제품이 고급화에는 성공했지만 경쟁력이 취약하다며 실용성 문제를 원인으로 지목했다. 반면 현실성에서 우위를 점한 한국 제품들은 21세기가 요구하는 감각과 흥취를 잘 표현할 수 있어서 경쟁력에서 앞섰다고 했다.

그와 더불어 아트벨리와 아프리카 예술박물관 발전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시간이 더없이 즐거웠다. 좋은 이웃을 만난 것 같아 행복했다. 무엇보다 문화 전령사로서 뚝심을 보이시는 윤회장에게 맏형같은 듬직함이 느껴져 좋았다. 쌈박질하는 정치판 때문에 깊어진 한숨 속에서 문화의 향취로 세상을 정화시키려는 윤회장 같은 이의 열정이 있어 그나마 세상이 살만하다는 생각이다.
특별한 관심으로 궁중음악의 진수를 맛볼 수 있게 해 준 그에게 깊은 감사의 말씀 올린다.

(2011.11.26.)
...홍문종 생각

2011년 11월 25일 금요일

홍문종 생각 - 감사의 힘

감사의 힘

연일 끔찍한 사건의 연속이다.
사소한 이유로 자식이 부모를, 남편이, 아내가 배우자를 죽이는 극단의 사건이 줄을 잇는다. 악연의 퍼레이드에 더 이상 놀랄 가슴도 남아있지 않다.
눈 감아버리고 싶을 만큼 충격적인 상황들을 오히려 덤덤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스스로가 놀랍다. 우리가 지금 엄청나게 불행한 시대를 살고 있다는 반증인 것 같아 씁쓸하다.

이번에는 고3 아들이 어머니를 죽였다.
8개월 동안이나 시신을 방치한 채 집에서 함께 지내다가 발각됐다.
전국 1등을 강요하는 ‘엄마’의 폭력이 무서웠다는 게 살해 동기란다.
어머니가 아들에게 요구한 건 오로지 1등이었다. 공부만이 아들의 성공적 미래를 보장할 수 있다는 자신의 믿음을 확신했던 것 같다. 지나치리만큼 아들의 공부에 집착했다. 어머니는 ‘밥을 굶기고 잠을 안 재우고 골프채로 때리는’ 식의 체벌로 아들의 선전을 독려했다. 아들의 성공을 바라는 나름의 사랑법이었을 것이다. 아들 역시 그런 어머니의 명을 거스르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전국 1등이 아닌 성적으로 어머니를 설득할 수 없다는 좌절감이 아들의 이성을 앗아갔다. 이들 모자의 엇갈린 사랑법이 좋은 결말을 내지 못한 것이다. 어머니는 차디찬 시신으로, 아들은 어머니를 살해한 패륜아로, 서로의 운명을 구겨버리는 존재가 되었다.
복잡해진 사회적 상황만 탓하기엔 18세 범인의 나이테가 너무나 푸르러서 마음이 아프다.

인간은 미완의 존재다.
문제를 안고 살아야하는 운명인 만큼 더 없이 불완전하다.
해법을 찾자면 자족하면 된다.
결국 관점의 차이를 인정하고 주어진 상황에 자족하고자 하는 마음자세에서부터 인생의 해법이 시작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똑 같은 분량의 물이 병속의 있다. 같은 분량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이것밖에 안남아’ 부족하고 또 다른 이에게는 ‘이만큼이나 남아’ 풍족한 것으로 정의될 수 있다.
만족과 불만족의 차이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당사자의 마음 상태에 달려 있을 뿐이다.
마찬가지로 앞서의 불행한 모자도 어머니가 전국 1등에 못 미치는 아들의 부족한 실력을 탓하기보다 병치레 없는 건강에 방점을 두었다면 상황이 달라졌을 것이다. 체벌의 형태가 아닌 부드러운 스킨십이나 상호 교감으로 아들에 대한 사랑을 표현했다면 지금쯤 아들의 진로를 위해 가장 중요한 활약을 벌이고 있지 않을까? 그토록 사랑하는 아들이 차디찬 감옥에서 인생을 포기하는 불행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성경구절의 긍정적 효능이 과학적으로 입증됐다는 기사가 화제다.
화가 나고 스트레스가 쌓였을 때 감사한 마음이 뇌의 재설정 버튼을 누른 효과를 준다는 것이다. 두려움이 없어지는 건 물론이고 열정적이고 적극적인 마인드로 다른 사람과 활발한 교감을 나눌 수 있게 되면서 승리에 도취된 듯 감정의 선순환 효과를 누릴 수 있게 된다는 놀라운 정보다.
인간의 평화를 가장 강력하게 조정할 수 있는 힘이야말로 감사가 보여줄 수 있는 가장 긍정적인 순기능이 아닐까 싶다.

감사는 주어진 상황에 대한 자족감과 긴밀한 연관관계가 있다. 부모는 자식이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해 한다면, 자식은 자신을 위해 그토록 큰 사랑과 관심을 들이붓는 부모에게 감사할 수 있다면 불만이 비집고 들어설 틈이 있을 리 없다. 작은 일에 만족하고 감사할 수 있다면 부모 자식 사이는 물론이고 부부나 형제, 친구들이 미움과 반목으로 서로에게 독화살을 날릴 이유가 없다.
돌아보니 내 삶에도 감사할 거리가 넘친다.
힘들고 어려울 때 건강한 체력을 주셔서 감사하고 일할 수 있는 직장이 있고 늘 내 뒤를 든든히 받쳐주시는 양친 부모님 건강이 허락되는 상황 역시 크게 감사드릴 일이다.

감사는 역시 힘이 세다.
순식간에 동토의 왕국에 훈풍을 불어넣고 희망의 싹을 틔운다.
혼자만 알고 있기엔 이 기적같은 기능이 정말로 아깝다는 생각이다.
이 참에 감사 확산 운동이라도 펼쳐볼까 싶다.
최소한 우리 사회에 끔찍한 소식들이 판을 치지 못하도록 강력한 방어제 역할을 톡톡히 해낼 수 있을 것 같다.

(2011.11. 25)
....홍문종 생각

2011년 11월 24일 목요일

홍문종 생각 - 늙은 당나귀의 기지

늙은 당나귀의 기지


공지영, 그녀는 잘 나가는 베스트셀러 작가다.
최근 우리사회를 뒤흔든 영화 ‘도가니’의 원작자도 그녀다.
평소 공지영 작가의 소설을 즐겨 있는 편이다.
세상에 대한 신선하고 솔직한 시선이 느껴지는 그녀의 작품이 좋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다른 세 아이를 키우면서도 언제나 당당하게 스스로의 삶을 헤쳐 나갈 수 있는 그녀에게서 작가의 무궁한 저력을 엿볼 수 있어 즐겁다. 거기다 다른 이의 삶을 보듬는 그 여유로움이라니.
근래에 접한 작품은 그녀에게 ‘이상 문학상’ 수상의 영예를 안겨준 ‘맨 발로 글목을 돌다’라는 단편인데 작가의 존재감을 새롭게 각인시키는 수작이었다. 작가의 자전적 요소가 다분한 건 다른 작품과 다를 바 없지만 유난히 마음을 건드리는 여운 때문에 한참을 멍하니 있어야 했다.

그런 공지영 작가가 작품이 아닌 트위터 맨션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이의가 있다.
그녀는 한미 FTA 인준안 처리와 관련된 정치적 상황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민주당은 '민한당 이민우 총재 이후 가장 형편없는 야당'이라고 질타했고 손학규 민주당 대표에게는 ‘한나라당에서 파견 나온 거 맞냐’는 물음표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아무리 내가 좋아하는 공 작가라고 해도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다. 그녀 자신이 그동안 스스로의 작품을 통해 누누이 비판해왔던 또 다른 의미의 폭력을 휘두르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라고 볼멘 마음이 된다.
물론 작가 개인의 자유 영역이겠지만, 또 개인적으로 손 대표와는 정치적 노선을 달리하는 부분이 많은 게 사실이지만 그렇게 매도당할 정도로 형편없는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적지않은 교류를 통해 비교적 손 대표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내게 그는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영국 신사 같은 이미지로 남아있다.
그런 그이기에 한나라당에 있을 때 늘 아슬아슬했다. 그리고 민주당에 온전히 적응하기에는 그의 정치적 레토릭이 조금 부족하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한나라당에서 파견된 손학규’ 표현은 지나치다는 생각이다.
정치인이 자신의 정치적 행위에 책임을 지는 건 지극히 당연하다.
그러나 단편적인 정보로 특정인의 전부를 규정지으려는 시도는 폭력과 다르지 않다.
그 고충을 본인 역시 자유롭지 않은 공인의 삶을 경험했기에 모르는 바 아닐 것이다. 여러 소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질 때 당사자로서 동의할 수 있는 부분보다는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더 많았던 지난 삶을 떠올려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나 역시 겉으로 드러난 한 두 현상으로 부당하게 평가받아 억울했던 적이 많다. 그런 동병상린이 손 대표를 위한 항변에 나서게 했는지 모르겠다.

동창들이 쓰는 싸이트에 실렸던 늙은 당나귀 이야기가 떠올랐다.
어느 날 늙은 당나귀가 깊은 구덩이에 빠졌다.
이에 주인은 어차피 늙은 당나귀고 별 쓸모가 없다고 생각해, 이참에 흙으로 매장하기로 하고 동네 사람들의 손을 빌려 구덩이을 메우기 시작했다. 그런데 깜짝 놀랄 일이 일어났다. 당나귀가 자신을 메우기 위해 던져진 흙을 털어 바닥을 다져가며 올라오고 있었다. 자신을 사지로 몰아넣기 위해 던져진 죽음의 흙을 생환의 수단으로 활용한 기지가 당나귀의 목숨을 구한 것이다.
세상의 비난도 마찬가지 아닐까 생각한다. 포기하지 않는 의지만 있다면 어떤 비난이나 음모 조차도 생환의 발판을 채우는 성장촉진제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타인의 관심을 받고 표적이 되는 삶을 사는 이들은 남들의 비판을 기꺼이 감내할 수 있어야한다.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음이다.

결론은 결국 모든 건 마음먹기에 달려있는 것이다.
비난의 대상이 된다는 건 아직도 ‘살아있다’는 증거 아닌가.
이는 여러 모로 정치적 위기를 맞고 있는 손 대표에게, 어쩌면 순탄하지 않은 정치 일정을 견뎌온 나 자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다.
돌아보면 짧다면 짧고 길 다면 긴 정치 여정이었다. 환희에 빛나는 영광과 서러운 눈물을 담은 고난의 시간이 있었는데 내게 새로운 가능성을 심어준 것은 영광보다는 고난의 시간이었다는 생각이다.
분명한 건 나를 몰아대던 그 숱한 비난들이 지금 생각하니 세상을 향해 단단히 버틸 수 있는 고갱이를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나를 곤혹스럽게 했던 그 모든 이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이다.

(2011.11.24.)
...홍문종 생각

2011년 11월 23일 수요일

홍문종 생각 - 인분, 그리고 최루탄

인분, 그리고 최루탄


국회 본회의장에 최루탄이 터졌다.

한미 FTA 비준안 표결처리로 긴장이 감돌던 와중의 일인데 여당의 표결 강행에 야당 의원이 거사(?)를 일으킨 것이다. 45년 전 6대 국회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국회 오물 투척 사건’이 그것이다.
1966년 정부가 ‘삼성 계열사의 ’사카린 원료 밀수사건’을 미온하게 처리하는 것에 불만을 품은 김두한 의원이 싸들고 온 인분을 국무위원 석을 향해 날린 것이다.
‘인분 투척’은 본인을 포함한 관련자들이 옷을 벗거나 사법처리 되는 성과를 보인 반면, ‘최루탄 투척’은 FTA 저지에 별 영향을 주지 못하고 미완의 소동으로 끝날 조짐이다. (당사자 처벌 여부를 두고 설왕설래하는 분위기다. 그런데 두 사건의 결과가 달리 나온 건 인분과 최루탄의 효과적 차이에서 비롯된 것일까?)

초선의원 시절, 노동법을 통과시키던 때의 과정들이 데자뷰처럼 스쳐 지나간다. 새벽 시간, 야당 의원들의 눈을 피해 국회 뒷문으로 들어와 표결에 참여하고 안도의 숨을 쉬던 기억이 생생하다.
여당은 강행하고 야당은 거부하고....그 때도 야당은 의회 일정을 거부하고 장외로 뛰쳐나갔었다.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 전혀 낯설지 않은 국회의 현주소다.
‘인분’에서 ‘최루탄’으로 바뀌었을 뿐, 여야공수 상황만 뒤집혀 있을 뿐, 본질은 그대로인 채 정치가 흐르고 있는 것이다. 어찌 그 많은 세월이 흘렀건만 국회가 바뀌지 못했나하는 아쉬움이 있다.

너무 빤하게 의중을 드러내는 정치인들의 작위적인 작태를 보고 싶지 않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생각들이 내 안의 어떤 것들이 툭툭 건드리고 있는 느낌이다. 그래서였을까?
FTA 비준안이 처리되는 과정을 지켜보는데 갑자기 비감스러운 감정에 휩싸이는 경험을 했다.
그래도 국회하면 명색이 대한민국 사회의 최고 엘리트들이 모인 곳이고 둘째가라면 서러울 명망가들이 넘치는 지성의 집산지다. 그런 국회에서 들이미는 자화상이 지나치게 보잘 것 없다는 자괴감이 들었다.
민망하고 부끄러운 느낌이 울컥 서글픔으로 솟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차라리 눈 감아 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미 FTA 건만 해도 그렇다.
솔직히 정치인은 물론 대부분의 국민 모두, 또 다른 형태의 FTA 결말을 생각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모두가 어차피 통과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으면서 시치미를 떼고 저마다의 주어진 역할에만 충실했다. 이미 이런 식의 수순을 밟기 위해 서로가 명분쌓기에 급급했다는 사실은 새삼스럽지 않다. 이미 나와 있는 답안대로 찬성 배역은 찬성을 위해, 반대 배역은 처절한 연기로 더 적나라한 비통함을 표현해내기 위해 올인했다. 저마다 자기 말만 해대는 상황극에서 정치인들은 정치 대신 연기를 했다.
이 역시 암묵적인 합의사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다.

그렇게 마냥 느릿거리더니 이제와서는 다른 사람만 문제있다고 손가락질 해대기에 바쁜 모습이다.
참내, 반칙도 이런 반칙이 없다.
FTA가 합의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처리되면 국회의원에 불출마하겠다고 결기를 보이던 초선의원들은 다 어디로 갔나 싶다. 참여정부 시절 그렇게 열렬히 국익을 이야기하며 FTA 처리의 당위성을 역설하던 의원들이 지금에 와서는 단지 야당이라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변심을 합리화하는 모습은 또 어떻고.
무엇이 최루탄을 동원할 만큼 절박하게 했는지를 논의와 토론으로 설득하려는 노력대신 국회를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그렇게 만들어 놓고서야 결론을 내는 악습을 반복하고 있다.
고쳐보려는 의지는 별로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불합리한 요소가 국회 무용론을 외치며 새로운 정치 창출을 주장하는 장외 세력의 인기를 일정한 검증절차 없이 키우고 있는 건 아닌지 솔직히 걱정된다.

개인적으로 한미 FTA를 찬성한다.
국익을 위해 반드시 시행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하나다.
FTA 처리 과정에서 몰아붙여야 하는 한나라당의 안타까움도 백번 이해할 수 있고 반대할 수 밖에 없는 민주당의 고충도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고함치고 아우성치고 밤새 토론하고 또 토론할 지언정 국회에서 단상을 점거하고 기물을 부수고 경호권 발동하고 급기야 최루탄까지 터뜨리는 폭력은 어느 이유에서건 안된다. 반대만을 위한 반대 찬성만을 위한 찬성은 없어져야 한다. 무엇보다 정치적 쇼로 연명하려는 꼼수를 더 이상 선례로 남겨서는 안된다는 생각이다.
최소한 흑백 텔레비전, 아날로그 시대에나 통하던 방식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는 현실 인식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정치를 정화해 나가는 건 바로 국민의 몫이다.

(2011. 11. 23)
....홍문종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