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9월 13일 화요일

홍문종 생각 - 선언의 미학

선언의 미학
사람들에게 충격이긴 충격이었나 보다.
만나는 사람마다 ‘강호동’ 이야기를 꺼내는 기현상이 추석 연휴내내 이어졌다. 
대부분  갑작스런 잠정은퇴 선언에 대한 갑론을박이었지만 간단치 않은 그의 인기를 실감하게 했다. 
특히 그의 신속한 자성이,  위장전입이나 세금탈루 등에 대한 들끓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자리보전하고 있는  고위 공직자들의 면면과 비교되는 현상은 흥미를 더했다.   
생즉사 사즉생의  아주  간단한  삶의  진리가 교차 실현되는 현장을  목도한  가벼운 흥분도  있었다.
 
사람들은 제각각의 위치에서 강호동 사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중 잠정 은퇴 기자회견 이후 급격히 확산되는 기류를 보이고 있는 동정여론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연 수익이 300억 규모라는데 세무처리를 본인이 직접 처리하기보다 분명 회계사나 세무사의 도움을 받았을 거라는 전제로 강호동을 두둔하는 움직임이 적극적이었다. 실무자 차원의 잘못을 은퇴라는 결론으로까지 몰고 가는 건 지나치다는 논리도 나름 설득력을 얻고 있는 듯 싶었다.
반면에 국민MC로 불릴만한 인기를 누리고 있기 때문에 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는 게 당연하다는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 아무리 양보해도 수억원을 추징당한 현실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것이고 어떤 형태든 강호동에 대한 처벌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틀린 말은 아니라는 생각들을 하고 있었다.
특히 그동안 그의 인기를 뒷받침 했던 연예인답지 않게 투박하고 순수한 시골청년 같은 이미지를 잃게 한 이번 사건은 강호동의 앞으로의 입지를 어렵게 할 거라는 걱정은 당사자로선 상당히 무게를 갖고 고민해봐야 할 대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부이긴 하지만 이번 사건이 울고 싶은데 뺨 때리는 격으로 강호동의 (예정돼 있는 종편행을 포함한) 다음 행보를 위한 호재라는 주장까지 대두됐다. 말하자면 그의 은퇴선언은 ‘꿩먹고 알먹겠다’는 꼼수가 아니냐는 식이다.
그러나 좋건 싫건 하나의 스타상품으로 존재하는 그로서는 개인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극히 제한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강호동의 잠정 은퇴 기자회견은 그를 돕고 있는 전문가 그룹이 고도의 전략으로 만들어 낸 또 한편의 드라마라는 사실을 염두에 둬야 하는 이유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잠정은퇴 결정이야말로 잘 계산되고 준비된 고도의 전략일 가능성은 있다. 지금 시점에서 결정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선택으로 말이다.
 
살다가 덜컥수에 덜미를 잡히는 경우가 강호동 같은 인기연예인에게만 일어나는 게 아니다.
스타나 정치인은 물론 잘 나가는 삶이거나 평범한 삶이거나 감기처럼 슬그머니 인생에 덫으로 다가오는 복병과의 조우에서 예외가 되는 대상은 없는 것 같다.
다만 똑 같은 횡액도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극명하게 그 인생이 갈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음이 다행이라면 다행이겠다. 실제로 어려운 처지라도 상황판단을 잘해 이를 극복하면 더 큰 가능성의 기회를 포착할 수 있었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그 결과는 대부분 뻔했다. 이는 유승준, 엠씨몽, 신정환 등 인기 절정에서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진 스타들의 사례에서도 입증된 바다.
이들에게는 나름의 문제로 팬들의 차가운 외면을 받자마자 활동 공간을 잃어버린 스타라는 공통점이 있다. 상황을 잘 극복하지 못한 케이스에 해당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건 싫건 크건 작건 실수건 고의건 난관은 극복의 대상이라는 생각이다. 결국은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중요하다.
 
개인적으로는 그의 불운이 안타깝다는 생각이다.
오랜 시간 자기관리에 철저했고 늘 준비하고 노력하던 사람이었기에  그의 진정성에 더 무게를 두고 싶다. 
이 혼돈의 시기를 지혜롭게 대처해서 변함없는 모습으로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이기도 하다. 
그래서 몇 가지 조언을 주고 싶다.
일단은 ‘잠정’ 기간을 조금 길게 잡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빠른 시간 안에 누구나 깜짝 놀랄 만큼의 ‘통큰 기부’를 실천하면 어떨까 싶다. 개산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모르지만 50억 100억 정도를 어려운 이웃을 위해 쾌척할 것을 고려해보기 바란다.
그리고 컴백할 때는 노약자, 장애인 등 소외 그룹을 위해 텔레비전에 중계되지 않는 무료공연을 기획해보기를 권한다. 여력이 된다면 해외 교포를 위해 뭔가를 계획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다. 특히 미국이나 유럽 등 화려하고 잘나가는 지역이 아닌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오지의 교민들을 찾거나 아프리카 난민 구호를 위한 활동을 펼치는 건 어떨까 싶다.

무엇보다 절대적으로 명심해야 할 일이 있다.
꼼수를 쓰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세간의 의혹처럼 이번 잠정은퇴 결정이 종편행을 위한 전략적 차원의 접근이었다면  애시당초 포기하는 게 낫다. 잠깐의 영달을 위한 꼼수가 영구 퇴출과 사회적 매장을 자초하는 지름길이 될테니까. 
 이는 강호동 자신이  스스로에게 채운  족쇄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의미에서 실수는 인간의 몫이고 용서는 하나님 몫이라는 생각한다.   실수 없는 인간은 없고 용서받지 못하거나 극복하지 못할 난관은 없다는 뜻이다. 

강호동 당신의 건강과 행운을 빈다.  
낙담해서 자포자기로 자신의 귀한 인생을 절망의 구렁텅이로 모는 우를 범하지 않길 바란다.
더불어   그대를 향한 팬들의  순수한 기대치를  저버리는 일이 없기를 당부드린다.
                         (2011.9.13)             
                            ....홍문종 생각           

홍문종 생각 - 다시 출발점이다

다시 출발점이다 

민족 고유의 대 명절 추석이다.
어린 시절 손꼽아 헤아리며 기다리던 설렘이 아니더라도 흩어져 살고 있던 형제자매들이 부모님을 찾아뵙고 햇곡식 햇과일로 정을 나누는 추석 명절은 모두에게 따뜻하고 아름다운 추억으로 자리매김 돼 있을 것이다.
그런데 갈수록 추석 명절이 예년만 못하다는 생각이다.
마음의 부담이 크다.
허심탄회하게 명절을 즐길 여유를 허락받지 못하는 느낌이다.
특히 추석 명절을 온전히 즐기지 못하는 없는 이들의 현실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물질은 더할 나위 없이 풍요로워졌는데도 근심에 찌든 표정들이 자꾸 늘고 있는 예사롭지 않은 현상이다.
실제로 주위에서 행복 코드를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 괄목할만한 성과지표로 상승곡선을 그리며 국제무대에서 경제대국의 위상을 인정받는 우리의 현주소가 무색할 지경이다.
점점 더 간극을 넓혀가는 빈익빈 부익부 여파가 큰일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추석 연휴를 맞아 출국하는 해외여행객 숫자가 기록을 갱신했다는 소식이나 고가의 선물이 날개돋힌 듯 팔려나가 명절 특수를 톡톡히 보고 있는 유명 백화점의 즐거운 비명은 침체된 재래시장의 풀죽은 분위기나 추석 차례상 준비만으로도 가쁜 숨을 몰아쉬어야 하는 소시민의 서글픈 현실과는 극단적으로 대비되고 있는 현실만 봐도 예사롭지 않다는 생각이다.
 
예전엔 그랬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으라고 할 정도로 일년 중 풍요의 정점을 누리는 시기답게 너나없이 행복에 들뜬 마음으로 명절을 기다렸다. 배고픔을 일상으로 받아들이던 사람들에게조차 소망이 허락되는 분위기였다. 기력을 북돋는 에너지원으로서의 역할을 다 했다. 있는 사람들은 있는 사람들대로, 없는 사람들은 없는 사람들대로 저마다가 갈구하는 최소한의 기대치를 충족시킬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희망을 품을 수 있었다.
정말로 너나없이 가난했던 시절엔 명절 풍경이 이렇게까지 각박하진 않았던 것 같다.
우리   지역만 해도  명절이면 동네 어머니들이 함께 음식을 만들어 지금의 마을회관 기능인 공청에 상을 차려놓고 동네의 어려운 이들을 대접하던 풍습이 있었다. 부족한 가운데 십시일반 이웃과 나눌 줄 아는 정과 여유가 있었기에 풍요가 넘치는 지금보다 더 살만한 세상이었다.
젊은이들은 젊은이들대로 어른들을 섬겨야한다는 마음가짐을 당연시했다.
당시 의정부지역 대학생 모임에서 회장을 맡고 있었는데 추석 명절을 맞아 친구들과 동네 경로당을 돌며 온갖 재롱(?)을 동원한 맹활약으로 어르신들을 기쁘게 해드렸던 기억이 아련하다. 돈은 없었지만 온몸을 날려 최선을 다하겠다는 순수함이 있었기에 가능한 추억이지 싶다.
 
각별한 관심으로 이웃의 형편을 살피는 배려심이 필요한 때다.
나만 배부르고 나만 만족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은 천민주의의 소산이다.   
이번 추석만큼은 골치 아픈 정치문젤랑 잊어버리자. 경제 고민도  접어버리자. 교육 현장의 산적한 문제도 일단은 깡그리 로그아웃 시켜버리자.
그러고 나서  상대적 박탈감으로 그들의 삶이 더 힘들어지지 않도록 추슬러 보자. 
진정한 의미의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하는 것으로 한가위 명절의 참의미를 새겨보자.   
그런 의미에서  어려운 이웃들에게 시선을 돌리는  마음의 여유부터 챙기면 어떨까 싶다.
어려운 이웃의 삶을 돌아보겠다는 다짐부터 하자.   
그렇게 아파트 장벽을 부수는 소통의 힘으로 사람사는 세상을 복구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도록 하자. 

다시 출발점이다.
이 모든 출발점들이  이번 한가위를 맞는 우리들에게 주어진 지상 최대의 과제물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2011. 9. 11)                 
                              ...홍문종 생각                 

2011년 9월 11일 일요일

홍문종 생각 - 위기라고?

위기라고?
안철수 현상이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존재감만으로 정치권을 패닉상태로 몰아넣고 있는 게 사실이다.
우선 당장 코앞으로 다가온 서울시장 보궐선거 판을 통째로 흔드는 괴력이 심상치 않다.
이는 그의 지지를 지렛대 삼아 5%대 군소 후보에 불과했던 박원순 변호사가 여론조사에서 유력 정당 후보군을 제치고 압도적인 1위로 급부상한 현실이 입증하는 바다.
현상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분분하지만  기성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오랜 불만이 분출된 결과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시대정신이 바뀌고 있는 기류도 빼놓을 수 없는 요인이다.
이번 현상으로 당사자인 안철수 보다 더 많이  주목받는  인물이 있다.
바로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다.
안철수 돌풍 이후 그녀의 사소한 동정에까지 언론의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고 있다.
심지어 그녀가 던진  썰렁한 농담까지도 담론의 중심에 놓일 정도다.
악의적인 별명이  작명될  정도로 줄기찬 공세가 이어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안風에 부동의 1위였던 박근혜 대세론이 무너지고 있다고, 박근혜의 견고한 성이   안철수의  맹공에 맥을 못추고 종말을 향해 치닫고 있다고.
기다렸다는 듯이 박근혜 전 대표의 대권 가도에 적신호가 켜졌다는 분석들을 내놓고 있다.
과연 그럴까?
 
개인적인 생각은 다르다.
안철수 현상이 박근혜 전 대표 개인에게는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는 판단이다.
라이벌의 출몰이 치열한 생존 본능과 승부 근성을 자극하며 자칫 대세론에 안주할 수도 있을 그녀를 채근하고 있는 현상이 그것이다.
그녀의 움직임이 달라진 게 사실이다.
훨씬 분주해졌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건 현장 행보를 통해 소통을 모색하고 나선 그녀의 변화다.
실제로 그녀는 국민이 힘들어 하는 부분에 대해 좋은 답안이나 정책을 찾기 위해 앞으로 현장을 자주 찾겠다는 결심을 밝혔다.
라이벌로 인한 자극이 초래한 긍정적인 변화가 아닐까 싶다.

라이벌의 존재가 삶의 차원을 높이는 원동력으로 작용한 사례는 숱하게 많다.
대표적인 사례가 평생을 정치적 라이벌로 애증이 교차했던 DJ와 YS다. 두 분의 경쟁심은 이 땅에 민주화를 정착시킨 거대한 결실을 맺었다. 영원한 숙적의 대명사 고려대와 연세대의 팽팽한 기싸움이 관중석의 흥미를 배가시켰고 현대와 삼성   두 재벌 기업의 라이벌 의식은 대한민국 발전의 초석이 되었다. 체육계나 연예계에서도 라이벌의 순기능을 발견하기가 어렵지 않다. 태진아와 송대관,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 강호동과 유재석 등도 동일 영역에서 서로의 기량을 성장시킨 좋은 라이벌 관계의 대명사다.
결과적으로 안철수 돌풍은 박근혜 전 대표에게 기회를 제공했다.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 정치권에 분노하는 민심의 냉엄한 현실을 미리 알게 해 준 셈이니까.
답을 알았으니  반성하고 보완해서 더 좋은 정치인으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하면 되니까 얼마나 다행인가.
 
그러나 환부를 알았으니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반성없는 정치권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 같다. 
자성은커녕 모든 우환을 다 ‘네 탓’으로 돌리며 상대를 향한 삿대질을 멈추질 않고 있으니 하는 소리다. 한시라도 빨리 환골탈태로 참회하고 최선을 다하는 진정성을 보여도 시원찮을 판에 여전히 미몽을 헤매는 정치권을 보면 입맛이 쓰다.
여당은 여당대로 야당은 야당대로 스스로의 환부를 외면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고성을 담 밖으로 넘길 정도로 여전히 뻔뻔하고 당당한 모습을 고수하고 있다. 
한술 더 뜨는 청와대의 아전인수도 딱하기는 마찬가지다.
‘올 것이 왔다’고 마치 남의 일처럼 말하는 그 표정이 너무도 천진난만(?)해서 당혹스러웠다. 스스로가  부끄러운 처지에 놓여 있는지를 모른다는 사실이 그렇게 서글플 수도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답이 안나온다.
솔직히 어찌해야 할까 싶은 심정이다.
 
PS: 연일 박근혜 위기론을 설파하는 언론의 조준은 재설정이 불가피하다는 생각을 덧붙이고자 한다. 안철수 현상을 박근혜 개인보다는 대한민국 정치권 전체의 위기 차원으로 염려하는 게 옳은 수순이다. 정제되지 않은 여론을 정략적으로 편집 보도하는 언론의 행태 역시 정치권 못지않은 혐오대상으로 분류되고 있는 민심의 현주소를 아프게 받아들이길 바란다. 
또 하나,  박근혜 전 대표의 라이벌은 안철수 교수라기 보다  안철수로 대변되는 정치현상이라고 해야 더 정확하다는 사실을  분명히 해두고 싶다.
                                   (2011. 9. 10)                   
                                      ...홍문종 생각                        

2011년 9월 7일 수요일

홍문종 생각 - 안철수 현상의 본질

  안철수 현상의 본질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대학원장의 서울시장 불출마 선언을 바라보는 시선이 복잡하다.
대승적 차원의 통 큰 결단인지 좀 더 큰 판을 노린 고도의 꼼수인지를 헛갈려 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안 원장에 대한 이런 저런 반론이 제기되기도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를 향한 대중의 관심이  여전히 뜨겁다는 사실이다. 
새로운 돌풍을 예고하는 조짐으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불출마 선언 직후 진행된 대선 후보 가상대결에서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를 제친 결과로 대번에 대선 주자 반열에 오른 현상 등이 그것이다.
기성정당의 위기가 장외 선수의 몸값 띄우기를 주도하는 아이러닉한 현실에 다름 아니라는 생각이다. 그만큼 국민 상처가 깊고 큰 반증일 것이다. 기존 정치에 대한 실망과 좌절이 얼마나 컸으면 정치문외한에 불과한 그에게 이렇게까지 매달릴 수(?) 있을까 싶다.
  
안철수 현상의 본질은 위기에 처한 정당정치에 있다. 
무소속이나 시민후보를 자처하는 안 원장도 그렇고 박 변호사도 탈 정치권 인사라는 사실 만으로 막대한 프리미엄이 붙는 분위기다. 실질적인 가치보다 무게가 더해 판단되는 현상이 진실여부와 상관없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정당 내부보다는 바깥에서 몸을 풀고 있는 사람들이 훨씬 그럴 듯 해 보이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은 현상이다. 이 모두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 기존 정당의 자업자득 측면이 강하다.
실제로 출마를 염두에 두고 있는 인물군들이 정당의 러브콜에 일정 정도 선을 긋고 관망하는 상황도 예년과 많이 다른 모습이다. 선거 때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어떻게 해서든 정당 공천을 얻어내려던 정경을 떠올리면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당정치의 근간이 흔들려서는 안된다는 생각이다.
대의정치 명분 말고도 정당정치가 내포하고 있는 덕목이 많다. 특히 정치인에 대해 국민이 직접적 통제할 수 있는 창구가 된다는 측면에서 더욱 그렇다. 단순한 교육과 훈련을 통해 정치적 소양을 길러내는 목적보다 더 유의미한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정당의 이념과 정강 정책에 따른 개별 행위에 대해 국민의 견제와 비판, 또는 지지가 가능하도록 하는 정치참여 허용을 통해 책임정치 실현의 주체가 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정당정치의 중요한 기능이기도 하다. 
중국 공산당 리더십의 산실로 대변되는 '상하이방(上海幇)'의 역할에서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밑바닥부터 행정 경험을 쌓고 많은 훈련과 상호 경쟁을 자원으로 삼아 능력있는 인재를 배양해내는 상하이방은 정당정치의 성공사례로 손꼽히는 케이스다.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정치 현실에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안철수 원장의 결단이 요구된다. 
정치권에 대한 좀 더 진지한 접근과 행보를 고민하라는 주문을 그에게 하고 싶다.  
더 이상 장외에서   '순도'를  앞세워 천상천하 유아독존 경지를  즐기는  걸 당연시해서는 안 되겠다. 본격적으로 주변 정리를 마치고 정치판에 과감히 뛰어들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폭발적인 기대감으로 성원을 보내고 있는 국민에 대한  도리라는 생각이다.
새로운 패러다임을 실천하려면 정당 결성이 즉답이다.  
최우선 적으로 정강정책을 내걸어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을 모으는 일부터  권면하는 바이다.  정치 신인도 좋고 기존 정당에서 뜻이 맞는 사람들도 무방하다.  그들의 처음 열정을 결집시킬 수 있는 안건이면  된다.  그렇게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을 묶어 적극적인 결사체로 만들고  정치적 이상을 달성하기 위해 책임감과 인내심으로 어려움을 함께 나누겠다는 개인적 각오를 공동체적 동기로 승화시켜 거듭나야 한다.  
안 원장이 지금 받고 있는 국민적 지지는 기존정당들이 미처 수렴하지 못한 민의를 반영할 수 있는 새로운 정치세력의 출몰을 원하는 국민적 열망이다.  이 점을 간과한다면 영원히 그 답은 없다.  

정치의 핵심은 세력화다.
오세훈 전 시장의 ‘도중하차’만 해도 그를 위한 적극적인  지지세력이 존재했다면 조금 다른 상황으로 전개되지 않았을까 싶다.  정치 세력화 과정은 백신 만드는 일과는 다른 점이 많을 것이다. 개인기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돌발 변수 등 정치공학적   측면도 감안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어려울 때  이해로  보호해주는  동료나 집단의 힘이 필요하다는 현실 인식이 가능해졌을 때 비로소 땅에 발을 붙인 정치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기존의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놓치고   있는 부분을 보완하는 것도  진정한  의미의 혁신이라는 점을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런 다음 자신의 세세한 부분까지 전부 도마 위에 올려놓고 검증받겠다는 각오를 보여라.
그것이 안 원장 자신을 위해서도 그렇고 국민들에게도 바람직한  절차라고 생각한다. 
 
아직은 모든 게 불투명하다.
그런  가운데 국민을 대상으로  백신실험 하듯 이리 튀고 저리 튀는 안철수식 자유는 아직은 우리 사회에 낯설다.   정치인으로서 정제되지 않은 창의성은 신선하고 청량감을 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신뢰성 부실로 이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자칫   이방인의  방종으로  비춰지기  쉽다.  녹록지 않은  저항감이다. 
국민 스스로도 부화뇌동 하기보다  그가 과연 정치적 대안이 될 수 있는 인물인지 여부를  꼼꼼하게 짚어보도록 하자.  무조건적인 열광이  오히려 모두의 안녕을 헤치는 흉기가 될 수도 있음을 알자. 

무슨 일이 있어도 그 도도한 흐름을 멈추지 않는 역사의 주인은  바로 우리 자신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되겠다.
                           (2011.  9.  7)                      
                                       ...홍문종 생각                    

2011년 9월 4일 일요일

홍문종 생각 - 안철수 신드롬

 안철수 신드롬 
 
서울시장 보궐선거전이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출마 가능성이 제기되면서부터다.
폭발적인 반응을 끌어내며 돌풍의 주역으로 부상하는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단숨에 10.26 보궐 정국을 소용돌이로 몰아넣는 형국이다.
정작 당사자는 출마여부를 결정짓지 못하고 목하 고민 중이라는데  대단한 위력이다.
가히 안철수 신드롬이라 할 만하다.  후보 경쟁력을 묻는 각종 여론조사마다 압도적인 표차이로 선두를 달리며 기존 정당의 유력후보들을 맥 빠지게 만들고 있으니 하는 말이다.

안철수씨와 개인적 친분은 없다.
그렇지만 그가 한국사회에서 썩 괜찮은 행적으로 신뢰받는 저명인사 중 한사람이라는 사실에 동의한다.  그동안의 행적 만으로도 여러 면에서 존경할 만한 가치가 충분한 사람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사람들도 그의 존재가치에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시장 선거판에서 그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는 현실은 불편하다.  그가 인정받은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 분야의 다양한 능력들이 정치를 잘 할 수 있는 전제조건이나 자격 충족의 여건을 의미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안철수씨는 정치적 DNA가 풍족하지 않다는 노파심이. 그의 훌륭한 인품이  정치에 잘 맞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걱정에 걱정을 부르는 게 사실이다. 
분명한 것은 정치가 학문적 성과와 특별한 연계성에 주목할 수 있는 분야도 아니고 학자로서의 성공이 정치적 성공을 담보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특히 사물을 깊게 살피고 시시비비를 가리는데 지나치게 익숙한 학자의 특성 상 타협과 상생, 조화를 주요 가치로  내세워야 하는 정치를 소화해내기가 그다지 쉽지 않을 거라는 짐작이다. 
흔히 정치를  생물로 단정하게 되는 배경도  즉각적이고 투명하게 설명할 수 없는 곤혹스런 상황 논리 때문에 생겨난 게 아닐까 싶다.  공식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이론이 용인되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정치도 고도의 독자적인 전문성이 요구되는 영역이다.
필요한 절차와 과정을 생략하고 우연한 기회나 덤에 대한 기대로  나설 수 있는  작업이  절대 아니다. 물론 걔 중에는 혜성처럼 제도권에 화려하게 진입해서 인생을 꽃피운 사례가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아주 드문 일이다.
최종적인 성적표들을 보면 생각처럼 잘 적응해서 정치적 성공을 거둔 적이 별로 없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여러 여건이 나로 하여금  스물 이후부터 정치를 들여다보는 삶을  살게 했기에   내릴 수 있는 결론이다.
실제로 그랬다.
숱한 인재들이 정치판 부나방으로 소멸되는 모습을 지켜볼 기회가 남들보다 많았다. 
그 중 이태섭 전 장관의 경우는 개인적으로 제일 안타깝게 생각하는  선배 정치인이시다. 경기고 서울대를 우수한 성적으로 마치고 미MIT에서 최단기로 박사학위를 딸 만큼 공학도로서의 장래가 촉망되던 그가 정치권에 영입된 이후 어떤 모습으로 정치인생을 마감했는지 똑똑히 지켜봤기 때문이다.
그는 본래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명성에 훨씬 못 미치는 초라한 성적표로 정계를 은퇴했다.
국회의원 4선의 경력과 장관 경력이 도무지 위로가 되지 않는 상처를 스스로의 삶에 화인으로 남기면서 말이다.
그를 떠올릴 때마다 반문하게 된다.
만약 정치를 선택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더 행복했을까?
 
안철수의 인생진로가  지금의 궤적에서 바뀌지 않기를 바라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정치가 제자리를 찾아야  나라가 잘 되는 게 맞지만 그가 하고 있는 지금 그대로의 역할도 이 못지 않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자칫  그의 불안한 전향이  전도양양한  인재의 굴절로 이어져  세계로 뻗어나가고자하는 우리의 발목을 잡게  되는 결론이 된다면 이 보다 더 큰 손실은 없을 것이다.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 같은 인재들이 절실하게 필요한 이 때 안철수 아이콘이 우리에게 보여 줄 수 있는 미래 비전은  정치역역이  아닌  곳에 그 기회가  훨씬 많다는 생각이다.   그는 세계 유수의 실력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경쟁하는 모습만으로도  백 마디의 희망을 대변할 수 있는 귀한 자산이다. 
그런 경쟁력 있는 인물이 왜 꼭 정치를 해야 하는지 명확한 설득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그를  정치판에 가두는  무모한 모험에  방관해서는   안될 것이다.
 
진지하게 고민해보고 결심이 서면   뜻을  밝히겠다고 본인의 의사를 밝힌 만큼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
그렇더라도 서울시장 출마를 만류하고 싶은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오로지   안위를 바라는 마음 하나만으로 그의 다음 행보를 지켜보는 눈들이 참으로 많다는 사실을 그가 알고 있었으면 한다.  노파심이면 좋겠지만 정치꾼들 등살에 손실되는 최악의 경우를 배제할 수 없다는 걱정은 나 한사람의 생각이 아니다. 
그의 결정이 본인은 물론 국가와 민족에 보탬이 되는 삶을 선택하게 되기를 바란다.
그가 제일 잘할 수 있는 방법으로.
                             (2011. 9. 4)                  
                                  ....홍문종 생각                       

2011년 9월 2일 금요일

홍문종 생각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몸짓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몸짓

오늘의  관심사는  2011 대구세계육상선수권 남자 1600m 계주에서 동메달을 딴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표팀의 쾌거다.   특히 예선전에서 팀의 일원으로 최선을 다해 기적을 일궈낸  '의족 스프린터' 피스토리우스의  모습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몸짓으로  나의  뇌리에 남아있다. 
뿐만 아니라  '장애,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의지의 문제일 뿐 누구나 나처럼 달릴 수 있다'며 그가 전한 감동 역시 예사롭지 않게 나의 감성을 자극하고 있다. 
그래서 일까?
스타트도 느리고 동작도 자유롭지 못한 그래서 힘은 배로 들고 스피드는 격감될 수 밖에 없는 의족의 한계를 극복하고 육상계에 한 획을 긋고 나선 인간 승리를 향한 경이에 찬 찬사를  아무리  쏟아내도 물리지 않는다.  
 피스토리우스에게  관심이 쇄도하고 있다.  비록 결승에서 직접 뛰지는 못했지만 사상 최초로 세계 선수권 무대에서 메달을 거머쥔 장애인을 향해 세계의 열광과 이목이 쏠리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는 생각이다.  
 
스티븐 호킹이나 헬렌켈러가 엄청난 장애를 극복하고 위대한 인간 승리를 보여줄 수 있었던 배경에는 자존감의 역할이 적지 않았다는 생각을 새삼하게 된다.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소중한 인생이기에 어떤 역경에도 굴복할 수 없다는 의지야말로 주어진 저마다의 길을 꿋꿋하게 갈 수 있도록 가장 힘 있게 채근하는 동력이 되는 것 같다.  어쩌면 자신에게 주어진 장애의 극복이 인류 역사에 위대한 인간으로 남을 수 있는 통과의례를 의미하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도 문득 하게 된다.
확실한 것은 장애가 인간에게 무엇인가를 성취하기 위한 구체적인 ‘자극’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자기의 부족함을 인식하고 그 부족함을 메우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하다보면 장애물도 뛰어넘게 되고 인간의 한계도 지워버리게 되는 일거양득 같은 거 말이다.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장애 위험에 노출될 확률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기한이 정해져 있지 않은 것일 뿐 누구도 예비 장애인의 운명에서 자유롭지 않은 것이다. 그 결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장애가 인간의 일상에, 불편 같은 평이한 모습으로 자리잡게 됐다. 장애가 우리의 의식에서 더 이상 특별한 징후로 작동하지 않는 것도 낯설지 않다.  장애는 특정인에 가해진 불운이라기보다 일상적으로 겪게 되는 불편함 같은 것이라는 것을  고스란히 받아들이게 됐다고나 할까.
 피스토리우스 경우만 해도 그렇다.
불편한 의족은 그로 하여금 세상을 뛰어넘겠다는 의지를 자극하는 동기가 됐다.
그리고 그는 마침내 뛰어 넘었다. 해 낸 것이다.
세상은 그의 부자유한 지체를 우려했지만 이제 상황은 모든 게 달라졌다.
허우대는 멀쩡하지만 마음이 병든 사람이라면 지극히 건강한 사고로 일반 대중을 리드하고 있는 피스토리우스와 더 이상 나란히 견줄 수 없게 된 것이다. 

앞으로 그가 어디까지 더 기록을 단축하고 얼마나 더 사람들에게 갈채를 받게 될지 모르겠다.
그러나 솔직히 더 이상 그의 상태에 관심을 기울이게 될 것 같지 않다.  그가 이미 우리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인내와 노력으로 우리가 흔히 말하는 한계를 뛰어넘었다는 생각 때문인 것 같다. 
그렇더라도  그의   존재가 뜀박질을 통해 인간의 위대함을 발견함과 동시에 우리의 태생적 한계들을 극복할 수 있게 인도해주는,   조금은 긴  호흡의 자극으로  남았으면   싶다.
훗날  인생을 마감할 때 내게 주어진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열심히 극복하고 살았노라고  떳떳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삶이고 싶은 개인적인 간구도 있다.
                         (2011.  9.  2)          
                           .....홍문종 생각                     

2011년 9월 1일 목요일

홍문종 생각 - 폐지보다는 보완을

 폐지보다는 보완을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 사건의 파장이 엉뚱한 곳으로 번지는 양상이다.
문제의 ‘2억’이 후보매수를 위한 용도인지 아닌지에 대한 법적 판단과 상관없이 교육감 직선제 폐지론이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정부와 여당을 중심으로 교육감 선거제도를 위한 한 법 개정 추진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런닝 메이트 제도나 정당공천 제도가 대안으로 제시되거나 이에 대한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것도 그 일환이라 하겠다.
국회의원 시절, 교육관련 상임위 간사로 활동하면서 교육위원 선거 제도에 기초를 놓았던 인연 때문인지 이번 논란이   무심히  지나쳐지지 않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현행 교육감 선거제도를 반대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다.
교육감 직선제가 폐지되어서는 안된다.
대안으로 거론되는 러닝 메이트 제도나 정당 공천 제도는 순기능보다는 역기능이  많다는 점에서 재고의 여지가 있다.  자칫 정치가 교육의 상왕으로 군림하는 결과를 초래해서 교육자치를 실현하려는 원래 취지를 훼손하게 될 가능성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 않아도 교육감 선거에 나선 후보들이 조금이라도 입지를 키우기 위해 정치권 결탁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한 현실이고 또 그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들이 적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선거 과정에서의 이합집산이  불가피한 현실을 외면하고 있는 점도  그렇다. 
어차피 거치게 돼 있는 과정이라면 차라리  여건을  자유롭게 보장해 주는 게 옳지 않을까 싶다.
정치권과의 이합집산을 합법화하는 방법 등으로 최소한 선거 통장에 나타난 비용 정도는 보전이 가능하게 보장해주자는 것이다. 이는 비단 교육감 선거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모든 공직선거에도 확대 적용할 수 있다. 법적으로 허용된 선거비용 외에도 추가 지출 분에 대해, 단일화 파트너가 책임져도 실정법에 저촉되지 않도록 한다면 많은 게 달라질 수 있다.
 
후보매수 처벌에 대한 잣대를 들이대자면 형평성 측면에서 또 다른 문제점이 불거질 수 밖에 없다.
35년 전 학생회장 선거 당시, 부회장이나 부장 자리를 약속하고 우리 편으로 끌어들인 표가 적지 않았는데 이 역시 현재의 선거법 기준으로 보면 명백한 불법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관점에서도 불법으로 규정지을 수 있을지는 따져봐야 할 문제다.
마찬가지로  3당 통합, DJP 연합, 노무현 정몽준 사이의 단일화 작업 등 역대 대선 막후에서  결정적 영향력을 발휘했던 이 거대한 움직임들에 대한 역사적 해석도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싶다.
또 있다. 선거철이면  공공연한 비밀로 떠도는 각 대통령 후보 진영의  ‘새도우 케비넷’ 존재도  엄밀하게 따지자면 딱 떨어지는 선거법 위반이다.
 
교육감 직선제 폐지보다는 교육위원 제도 개편에 관심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싶다.
서울시의 경우 이참에 아예 교육위원 제도 자체를 폐지하고 서울시의회에 상임위 기능으로 따로 구성해 교육위의 전문성을 살리는 게 낫다는 생각이다.  솔직히 지금의 형태는 볼썽사납다.
더 나아가 교육감 밑에 있는 교육장도 선출직으로 바꿔 시장과 함께 임기를 보장해서 교육감의 권한을 많이 축소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교육장의 시의회 출석을 정례화 해서 보고 체계가 이뤄지게 하는 등의 방안으로 자치 교육을 발전시켜나가는 방안도 있다. 
현재 교육감에 문제의 소지가 있다고 해서  이를 기화로 교육감 선거를 없애거나 교육감을 끌어내리는 시도는 지나친 단견이다.  논란이 되고 있는 무상급식 문제만 해도 서울시나 경기도 등 대도시 단위로 가를 게 아니라 지역 특성에 맞게 좀 더 세분화된 기준을 마련해서 시행하면 좀 더 합리적인 방안이 도출 될 것으로 본다.
서울의 투표행태에서 이미 나타났듯 강북과 강남이 다르고 농어촌과 도시 지역이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좀 더 발전적인  방안이 모색될 수 있다. 
 
교육을 완전히 정치로부터 분리하려는 시도 자체가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어차피 교육도 거대한 국가조직 중 하나고 정치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데  무리수를  두면  오히려 또 다른 부작용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불합리한 점들은 좀 더 현실성 있게 바꾸려는 진정성이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어차피 교육감이던 국회의원이건  국민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게 돼 있다.     
그들의 최선을 이끌어 내는 건 국민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2011.  9.  1 )                  
                                .....홍문종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