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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9월 25일 일요일

홍문종 생각 - 열망의 힘

열망의 힘

박정희 전 대통령이 생전에 품었던 핵보유에 대한 열망은 참으로 컸던 것 같다.
미국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핵무기 개발 프로젝트(코드명 ‘890’)를 가동시키다 돌아가셨다.   
이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움직임을 담은 미 중앙정보국(CIA)의  당시 보고서를 통해 공개된 사실들이다.  그 중 북한의 지속적인 도발위협과 힘의 논리에 지배받던 국제사회 분위기가 박 전대통령의 핵무기 개발의지를 자극하는 계기가 된 것 같다고   분석한  상황은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약소국 리더의 고독한 노심초사가 엿보였기  때문이다.
핵을 갖고자 했던 박 전 대통령의 ‘시도’들은   허무하게 막을 내리고 말았다.
뒤를 이은 5공의  핵 포기선언과 6공의 비핵선언 등도 한 몫 했다.   원자력 발전 시설에 대한 달콤한 기대감이 함께 있었다.  그렇게  우리를 핵무기 불임국 붙박이로  못박는  백기투항이   서서히 진행됐다.
 
그 때  박 전 대통령이   자신의 꿈을 이뤘다면   우리 역사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불발로 그친 박 전 대통령의 핵무기 개발 프로젝트에 자꾸만 미련이 남는다.
핵무기로 자주국방을 실현해서 미국의 그늘을 벗어나고자 했던    그의 선택은  성공했다면  분명 우리에게  획기적인  기회가 됐을 것이다.    특히 핵의 실제적인 활용보다는 전시효과만으로도 상당한 전쟁 억제력을 발휘할 수 있는 측면을 고려한다면 단언컨대 우리의 남북 대치 상황에도 상당히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에 아쉬움이 커지는 것 같다.

실제로 지금까지 우리가 전쟁 등 위기 국면에 처하게 된  과정만 해도  대부분  미국과의 관계가 원인이었던  적이 많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우방국에 등 돌리는 일쯤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이른바 국제사회의 냉혹함이다.   그 때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것 같지도 않다. 
가쓰라-태프라 밀약으로 일제 강점기를 초래하거나 얄타회담에서 무성의한 태도로 일본 대신 한반도 분단을 주도한 것도 미국이었다. 6.25 전쟁을 부른 에치슨라인이나 판문점 도끼만행사건에 단초를 제공한 주한미군 철수 움직임만 해도 국제사회에서 불안한  우리의   처지나  초긴장 국면일 수 밖에 없는 남북관계의 특수상황을 배려하지 않았던 미국의 홀대가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오늘의 한국이 있기까지 제일  많이 기여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응분의 대접을 받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싶다. 박 전대통령의 시해배경에 미국을 연관시킨 각종 루머들이 나름의 생명력을 유지하며 오랜 시간 이어지고 있는 현상과도 무관하지 않다.  심지어 박 전 대통령이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시해를 당하고 결국 미국의 의도대로 대한민국 비핵화가 실현됐다는  소문이   잦아들 기미가 없는 것도 같은 이유일 거라는 생각이다. 

그동안 누누이 얘기했지만 어떤 상황에서건 철저하게 이타적 입장을 고수하는 건 누구에게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국가 간 정치 행위에 있어서는 이타적 경지는커녕 조금 치의 손해를 감수할 의사가 없다고 보는 게 정확하다. 오로지 정글의 법칙만이 제대로 적용할 수 있는 유일한 법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특히나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특정한 과거의 인연조차도 현실적인 관계에서 참고사항 정도면 몰라도  사실을 가르는  결정적 기능을 기대하는 기준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아주  중요한 기준이고 잊지 말것을  당부하는 바이다.  과거 우방국으로서 장제석 총통과 함께 나눈 우호적 교류에도 불구하고 공산국가인 중국을 선택하기 위해 대만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던 우리의 경험을 상기하면 그 답이 명료해질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핵무기로 상징되는 자주국방 의지는 높이 살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무엇보다 소멸직전의 위기 국면에서 핵무기 하나로 현란하게 국제무대를 주무르는  솜씨는  자주국방의 프리미엄을 활용한 좋은 본보기인 셈이다. 
그렇다면 소고기 파동이나 FTA 등 사회적 갈등국면을 바라보는 관점을 달리해야겠다.  
좀 더 절박한 마음으로 현실을 직시하며   주어진  생존과 미래를 준비하다보면 의외로  문제해결이 빨라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그런 측면에서 박 전대통령이 품었던 미완의 꿈을 그리워하는 이들이  앞으로 더 늘어날 거라는 전망이다.
그가 품었던 꿈과 희망이 30년 세월을 훌쩍 뛰어넘은 지금도 여전히  뜨거운  영향력으로  우리의 가슴을 점령하고 있으니 하는 말이다.
                        (2011. 9. 26)               
                                   ....홍문종 생각            

2011년 8월 8일 월요일

홍문종 생각 - 동해여 영원하라.



 동해여 영원하라.


                                                                         -홍문종-


미국과 영국이 일본 손을 들어
일본해란다
입장이나 요구는 아랑곳 안하고
동해가 일본해란다

정부만 탓하기도
외교만 나무라기도
이것이 아직도 세계속에
위상이요 현주소 인 것을...

문무백관이 아니고
양반 어르신들이 아닌
행주치마로
농민들의 곡괭이로 지킨나라

한류의 열풍이 지구촌을 놀래키고
IT와 자동차가 세계 구석구석 퍼져나가도
아직은 더 땀 흘려야 함을
갈 길이 더 많이 남아 있음을

백악관이 술렁이고
유럽증시가 흔들려도
은근과 끈기로 지켜낼
자랑스런 한민족

21세기
미국과 유럽
일본과 중국을
뛰어 넘을 한반도

장마가 끝이나고
태풍이 지나가면
청명한 가을 하늘이 밝아오고
새로운 기운이 동방의 불꽃을 올리리니

반만년의 역사
백의 민족
대한민국이여
비상의 꿈을 펼쳐라.


 
                         

(2011. 8.9)

2011년 5월 6일 금요일

홍문종 생각 - 문제는 '검은 의도'다

문제는 '검은 의도'다
 
‘죽은’ 빈 라덴이 ‘살아있는’ 미국을 궁지에 몰아넣는 형국이다.
오사마 빈 라덴의 최후 정황이 진실게임 양상으로 번지면서 미국이 수세에 몰리고 있다.  빈 라덴이 무기를 들고 저항하다가 사살됐다는 미국의 당초 발표를 반박하는 여러 정황들이 제기되면서 미국의 빈 라덴 제거 작전이 온당하게 진행됐느냐는 국제사회 반발이 역풍 조짐을 보이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이로 인해 미국의 처지가 말이 아니게 됐다.
법치주의를 신봉하면서도 체제에 반하는 빈 라덴에게 만큼은 입맛대로 법을 적용했다는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 되고 말았다. 덕분에 미국은 인류 역사상 최악의 테러리스트를 제거하고도 칭찬은커녕 국세사회 여론을 살피며 이런 저런 해명을 해야 하는 궁색한 처지로 전락했다.
빈 라덴 최후가- 굴종하는 듯한  나약한 태도를 보였다거나 자기 부인을, 혹은 여자 경호원을 인간방패로 삼아 저항했다거나 하는 등- 확인되지 않은 채 인구에 회자되는 상반된 설이 정리가 된 건 아니다. (조만간 진실이 밝혀질지 아니면 역사의 수레바퀴가 한참 돌아간 이후에나 밝혀질지 알 수 없지만 지금으로선 섣부르게 판단하기보다 유보하는 게 낫지 않을까)
 
빈 라덴 시신 사진을 공개하지 않겠다는 미국의 발표에도 불구하고  보기에도 끔찍한 그의 사후 모습이 인터넷 공간을  돌아다니고 있다.
그  사진을 접하면서 죽음 앞에서 인간은 어떤 심정이 될까를 생각했다. 
죽음의 공포 앞에서 적나라한 인간적 본능을 드러냈던 기왕의 사례들이 아니더라도 살려달라고 목숨을 구걸하고 싶은 최소한의 갈등은 있지 않을까 싶었다.  조선 개국 당시 역모 고려의 충신 포은 정몽주 선생이 그 오랜 시간을 두고 인품을 칭송받는 이유도 지조와 절개를 위해 자기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릴 수 있는 용기는 쉽지 않은 결단이기 때문이리라. 
문득 나라면 어떻게 처신했을까에도 생각이 미쳤다.
어차피 극복할 수 없을 정도로 불리한 정황이라면,  그 무엇보다 역사의 평가를 의식해서 더 당당한 모습이 되고자 준비하게 될 것 같다. 거취를 결정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최소한 나를 따르는 사람들과 역사 앞에 어떻게 남게 될 것인가를 가장 큰 판단의 근거로 삼겠다는 평소 소신대로 말이다.
 
죽어서도 뉴스의 중심에 서 있으니 빈 라덴은 정말 대단한 존재다. 
개인적으로는 미국이 빈 라덴의 사후 가치를 크게 상승시킨 주역이 됐다는 점에 주목하게 된다. 
국제법으로 보호받아야 할 그의 권리를 생략해버린 미국의 판단 덕분에 빈 라덴은 알카에다의 ‘전설’로 그 지위를 굳힐 수 있게 됐다.   미국은 본의 아니게 평소 가장 가까운 심복에게 총알 두 방이 장전된 권총을 맡겨두고 체포당하느니 차라리 자기를 쏴달라는 당부를 남겼다는 빈 라덴의 유언을 충실히 이행해 준 당사자가 된 셈이다.
최근 빈 라덴이, ‘전범’으로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지극히 평범한 자신의 실체를 전 세계 사람들에게 까발려 실패한 영웅으로 전락한 사담후세인과 비교되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무엇보다 빈라덴 최후에 대한 여러 설들이 자기 의도대로 각색하려는 미국의 의도로 파생된 거라면  걱정이다.
빈라덴의 유훈 정치가 오히려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에 대한 적개심을 끌어 모으고 이슬람을 결집시키는 계기로 작용할 수도 있다.  만약  빈 라덴을 폄훼하고  미국을 위한 계략의 일환으로  등장시킨  시나리오라면  지금 미국을 향해 불고 있는 역풍의 조짐이 광풍으로 변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우리에게 있어 일본 만행의 극단적 사례로 꼽히는 명성황후 시해사건도 비슷한 케이스가 아닐까 싶다.  
명성황후 시해에 관한 소문은 일제 36년 식민 잔혹사와 더불어 일본에 대한 적개심을 민족적 각성으로 일깨운 촉매제 역할을 톡톡히 해낸 게 사실이다. 
항상 주장하는 바이지만 이슬람교과 기독교, 아랍과 서방 간의 문제는 어느 한 쪽이 일방적인 힘이나 매도나 폄하 등의 기획력으로 해결될 대상이 아니다.  유일한 해결 방법은 바로 평화와 공존 뿐이다. 그러기 위해서 과감하게 인정할 건 인정하고 양보할 건 양보해야 한다.
이런 문제들이 선결되지 않는 한 빈라덴이 죽거나 오바마의 재선이 탄탄일로에  올라있는  상황 자체가 인류 역사를 위해서는 그다지 좋은 사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문제는 상황을 이용해 원하는 바를 취하고자 하는 ‘검은 의도’의 보이지 않는 손놀림이다.
국 알카에다의 ‘광기’나 미국의 ‘광기’나 옳지 않은 동기로 출발한다면 인류에게 똑같은 피해를 유발하는 시한폭탄의 존재일 뿐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겠다.
옥석을 구분하는 안목이 그래서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빈 라덴의 죽음이 3차 대전의 도화선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 우려된다.
지나친 비약이었으면 좋겠지만 불안한 건 사실이다. 
                                                         (2011. 5. 7)                      
                                    ....홍문종 생각                      

2010년 11월 12일 금요일

홍문종 생각 - 잔치는 끝났다

잔치는 끝났다

서울 G20 정상회의가 막을 내렸다.
우리로서는 역시 미국과의 FTA 협상이나 북한을 의제로 한 중국과의 대화를 비롯해 미국과 중국의 환율 줄다리기가 어떤 결과로 매듭짓게 될 지에 촉각을 곤두세웠지만 별 다른 이슈없이 끝나버린 것 같다.

확실히 ‘뜨는’ 후진타오와 ‘지는’ 오바마였다.
1년 전만 해도 환심사기 경쟁이 벌어지던 오바마는 찬밥 신세로 전락했고 자신만만한 후진타오는 기세 등등한 모습으로 뉴스의 중심이 됐다.
그들의 비교되는 행보가 빠르게 재편되는 국제질서의 냉엄한 현실을 대변하는 듯 했다.
새로운 경제질서를 재편하기 위한 민첩한 움직임이 거기 있었다.
미국을 흔들어대며 명실상부한 G2의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중국은 더 이상 우리의 만만한 ‘이웃’이 아니었다.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새로운 고민거리를 던져주고 있었다. 단순히 언제 저렇게 컸나 싶어 부러웠는데 그런 중국을 옆에 두어야 하는 우리의 운명을 생각하니 그마저도 사치스러운 현실이 자각됐다.
반면에 호기로었던 팍스 아메리카나의 영화가 언제인가 싶게 영향력을 잃어가는 미국의 퇴락은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우리와의 FTA 협상 과정에서도 선진강국의 너그러운 면모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자기 발등의 불이 다급해서인지 지나치게 옹색하고 옹졸한 모습이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지고 있는 미국의 현실을 말해주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 역시 이처럼 냉혹하게 돌아가는 국제사회 속에서 생존하기 위한 자구책을 고민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이다.
우선은 외교의 다각화가 필요하다. 미국와 일본 위주로 고정됐던 외교채널을 바꾸는 시도가 있어야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 다양한 외교상대를 찾아내고 다양한 아젠다를 발굴해서 교류의 폭을 넓히려는 노력이 이어져야겠다.
그러나 현실은 생각보다 훨씬 척박하다. 유럽이나 브라질, 러시아 등 새롭게 관계를 구축해야할 나라들과의 외교 물꼬를 틀 수 있는 ‘인프라’가 전무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무엇보다 이들 나라들과의 인연을 시작할 인적자원 양성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대한민국의 미래와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는 북한문제 역시 우리의 당면과제 중 하나다.
현재 북한에 관심을 갖고 있는 나라는 중국, 미국, 일본 정도다. 특히 북한에 보이는 중국의 관심도는 날로 증가하는 형국이어서 우리 역시 이 부분에 대해 집중적인 대응책이 있어야 겠다.

서울 G20 정상회의 평가에 대한 논란이 분분한데 지나치게 소모적인 논쟁일 뿐이다.
이미 파장한 잔치상 메뉴 가지고 뒤늦게 갑론을박 해봤자 뭐가 달라지겠나.
지금 우리 처지가 쓸데없는 논란에 에너지를 소모할, 그렇게 한가한 상황도 아니지 않는가.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국제질서 속에서 그나마 제자리를 차지하려면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현실을 자각해야 한다. 더 나아가 이번 기회에 우리도 세계무대를 주도할 수 있는 방법도 모색해야 할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보자면 사회통합이 우리가 풀어야 할 가장 시급한 화두가 아닐까 싶다.
빈부격차 해소를 위한 일단의 노력들이 화두를 푸는 정답일 것이고 그 일을 가장 잘 할 수 있는 곳은 정치권이라고 생각한다.
정치권이 사회통합의 기수로 나서길 바란다.
대신 지금 이대로의 모습으로는 안된다.
임무 수행에 지장이 없으려면 지금보다 한참은 업그레이드 돼야 한다.
거의 개과천선 차원 쯤은 돼야 할 듯 싶다.


(2010. 11. 13)
....홍문종 생각


2010년 9월 2일 목요일

홍문종 생각 - 볼모를 자처하지 말자

볼모를 자처하지 말자



러시아의 천안함 조사결과가 공표되지 않는 것은 MB와 오바마의 정치적 타격에 대한 우려 때문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그레그 전 주한 미 대사가 믿을만한 ‘러시아 친구’로부터 확인했다며 공표한 내용이니 만큼 단순히 흘려버릴 수도 없게 됐다.

그레그는 ‘뉴욕타임스’와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 기고 글을 통해 중국과 러시아의 입장과 함께 대체적으로 미국과 우리가 주도한 천안함 진상 조사결과를 불신하는 국제사회 기류를 전했다. (이러다 국제사회에서 북한이 아닌 우리가 왕따 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그래그가 아니어도 지난 6월 초 한국을 방문해 자체 조사를 벌인 뒤 천안함 침몰이 북한의 어뢰 공격이 아닌 기뢰 폭발에 의한 것이라는 결론을 내린 러시아 조사단 보고서의 한글 요약본이 국내 언론에 보도된 바 있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해군 전문가로 구성된 러시아 조사단은 폭발에 앞서 배가 좌초된 흔적이 있고 스크루에 엉킨 어망에 걸려 올라온 기뢰가 원인일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그레그는 또 천안함 사태를 기화로 가속화 되고 있는 대북제재 현상이 ‘전통적인 치킨게임’을 닮아간다고 불안해하는 우리 내부 정서도 전했다. ‘북한으로 이어지는 모든 다리를 불태우고 강경 일변도로 출구 없이 치닫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정책 방향을 우려’하는 국내 고위 외교관의 코멘트를 인용했는데 사실이라면 간단히 넘길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다.



오바마가 이라크와의 전쟁 종료를 공식 선언했다. 7년 5개월 만의 종지부다.

그러나 ‘자유의 전쟁’ 운운하며 이라크와의 전쟁을 성공적으로 자평하는 미국의 호들갑은 공허하다. 이 전쟁이 세계 평화를 가장한 석유확보와 군수산업 활성화를 위해 이라크를 재물로 바친 음모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며 눈을 흘기는 세간의 정서를 모를 리 없건만 전쟁 종료를 알리는 미국의 표정이 순진무구하기까지 하니 어이없다.

명분없는 이 전쟁은 생각보다 더 깊은 파장을 예고하고 있다. 약육강식의 법칙이 본능적으로 적용되는 살벌한 생존경쟁이 정의로 대접받을 수 있고 질서와 규범이 될 수 있는 국제사회의 고무줄 잣대를 생생하게 체감시킨 전쟁이었기 때문이다.

미국 내 정서도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전쟁 종료를 앞두고 자국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미 국민 59%가 ‘이라크와의 전쟁은 미국의 실수’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무엇보다 전쟁이 끝났어도 도탄에 빠진 이라크 국민들의 불안한 삶이 구제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 현실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전쟁 때문에 피폐해진 삶을 숙명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이라크 국민의 ‘속울음’이 정녕 남의 일로 끝날 수 있을지 돌아봐야 한다는 생각이다.

적어도 우리만큼은.




갈수록 다극화 양상을 띠게 되면서 국제사회에 미치는 미국의 영향력은 줄고 있는 추세다. 이 같은 현상은 그동안 미국을 최고 우방국으로 했던 우리와 무관하지 않다.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국제사회의 현실성을 염두에 둔다면 우선 당장의 대대적인 변화는 아니더라도 외교방향의 점검이 필요한 시점인 것만은 확실하다. 우리 나름대로의 아젠다로 생존경쟁의 터널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는 방안과 역량을 강구해야 한다.

과거 열강의 이해다툼의 희생양이 되었던 쓴 경험을 가지고 있는 우리 아닌가.

그런 측면에서 러시아의 천안함 보고서에 대한 우리의 접근방식은 더없이 신중할 필요가 있다. 무조건 봉합하고 감추려드는 수세적인 입장보다 적극적인 선제공격도 해법이 될수 있다는 생각이다. 무성한 소문에 휘둘려 주도권을 놓친다면 그나마 어렵게 구축한 국제무대에서의 위상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도 있다.

러시아의 천안함 조사결과가 우리의 그것과 다른 부분이 있다면 더 적극적으로 따지고 설득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의 입장을 확인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러시아 보고서가 자칫 우리에게 큰 타격이 될 수도 있고 대북 제제가 북한의 중국 의존도를 높이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는 시각을 견지한 그레그의 주장을 대하는 데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그의 말대로라면 남북문제에 있어 우리 입장은 결코 여유롭지 않다.



이 시점에서 들리는 대통령의 러시아 방문 소식이 예사롭게 넘겨지지 않는다. (차라리 지나친 민감함 탓이면 좋겠다)

외교에 영원한 적도 친구도 없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어물거리다 국제정서에 휘말리게 될까 솔직히 걱정이다. 높아진 국제적 위상에 맞게 주변국을 리드하지는 못할 망정 다시 또 볼모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코 앞에서 느껴지는 백척간두의 위기감이 불안감을 부채질한다. 단순한 노파심이기를 바란다.

스스로가 아니면 누구도 우리를 대신해 줄 수 없는 비정함도 국제사회에서는 순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것이 현실이다.

남북문제가 선결되지 않는 한 돌파구를 찾을 수 없는 우리 민족의 특수성을 직시하자.

그 어느 때보다 고도의 외교력이 필요한 시점임을 절감하게 되는 이 아침이다.




(2010. 9. 2)

...홍문종 생각

2010년 8월 5일 목요일

홍문종 생각 - 오바마의 칭찬

오바마의 칭찬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난 해 1월부터 지금까지 342회의 연설에서 36번(참고로 미국의 주요 동맹국인 호주와 영국은 각각 6회와 9회, 일본과 프랑스는 17회, 싱가포르 1회, 대만 2회 정도다)이나 ‘코리아’를 언급한 것으로 조사됐다는 워싱턴포스트지의 보도가 있었다.

오바마의 잦은 ‘한국 언급’은 한국에 대한 깊은 관심과 믿음이 반영된 결과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특히 오바마는 한국의 교육 시스템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실제로 오바마가 연설 석상에서 ‘코리어 벤치마킹’을 외쳐대는 모습은 그다지 생경하지 않다. 대통령 취임 이후 고국인 아프리카 첫 방문길에 나섰을 당시에는 자신이 태어났을 때만 해도 한국을 능가하던 케냐와 같은 아프리카 국가의 1인당 경제규모가 지금은 완전히 추월당했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아프리카 가나 의회 연설을 통해 ‘한국을 배우라’고 조언한 것도 오바마의 그 같은 심중이 반영된 결과로 해석된다.



본국인 미국은 물론 세계 여러나라를 향해서도 ‘대한민국’을 외쳐주는 오바마 덕분에 세계인에게 대한민국이 소개되는 효과를 톡톡히 본 셈이다. 세계 최강국 대통령의 칭찬이 싫지는 않다. 세계 시장에서 그만큼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다는 자부심에 솔직히 우쭐한 기분이 들 때도 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을 조금만 더 깊게 들여다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일그러진 대한민국의 실체가 곧바로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오바마가 경제발전의 롤모델로 추켜세우고 있는 우리의 경제 실상만 해도 그렇다.

전체적으로 커지고 있는 우리 경제의 파이의 대부분은 중소기업이 아닌 대기업의 몫으로 돌아가기 일쑤다. 금감원의 단속에도 불구하고 공공연하게 불공정 거래가 횡행하고 있다. 이런 불합리한 점들이 우리 경제가 안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점이다.

이를 선결하지 않고는 우리에게 진정한 의미의 경제발전이 존재할 리 없다.



한나라당 홍준표 최고위원도 엊그제 당 회의에서 안을 들여다보면 기층민들의 생활이나 삶의 질은 추락할 대로 추락하고 부의 편중에 대해 아무런 해법도 제시되지 못한 채 3%의 재벌들이 90%의 富를 독식하고 있는 한국 경제발전의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다.

과대포장은 교육현실이라고 다를 바 없다.

우리의 높은 교육열에 대한 오바마의 극찬에도 불구하고 양심상 우리교육에 대해 밝은 전망을 내놓지 못하겠다. 그 많은 후유증을 외면할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세계 제1의 대학 진학률을 자랑하는 건 맞다. 그렇지만 교육의 질을 담보하지 못하는 양적 팽창은 교육현장에 별다른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남다른 교육열은 오히려 학생들의 삶을 노예의 그것으로 전락시키는 주범이 되고 말았다.

독창성 없이 폐쇄적으로 운영되는 우리의 교육현실이 문제되지만 개선의 여지를 찾아볼 수 없다는 게 문제다.

이렇듯 엄청나게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는 우리 교육이 세계인의 부러움을 살만한 가를 생각하면 실소를 금치 못하겠다.



부의 편중현상으로 야기된 빈부갈등과 창의력 부재로 비전제시가 불가능해진 교육현장은 21세기 미래한국을 가로막는 명백한 걸림돌이다.

이를 제거하기 위한 각고의 노력 없이 우리의 미래는 단연코 없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획기적인 대책, 특별히 소외되고 버려졌다고 생각되는 지역에 대한 과감한 인프라 투자 등 정부의 관심이 절실하다. 계층 간의 갈등해소를 위한 해법 차원에서라도 정부당국의 고민이 있어야한다고 본다.

교육현안에 대해서도 남의 일처럼 구경만 할 게 아니라 실질적인 대안마련을 위한 구체적인 움직임이 있어야겠다. 대학이 됐건 중고등학교가 됐건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교육의 다양성 확보를 위해 최대한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교육정책은 어떨까 싶다.



현실을 직시하고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만이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다.

일단은 21세기 대한민국과 개인의 미래를 제대로 개척할 수 있는 자격증에 도전해보자.

다른 사람의 칭찬을 100% 즐길 수 있는 자격을 갖추자. 그것도 행복이니까.

시작이 반이라고 하니 낙관해도 좋을 듯 하다.
(2010. 8. 5)

....홍문종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