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6월 10일 목요일

홍문종 생각-나로호에서 길을 찾다

나로호에서 길을 찾다



한국 최초의 우주발사체인 나로호의 2차 발사가 실패로 끝났다.

지난 해 1차 발사 실패에 이은 두 번째 좌절이다.

나로호의 성공이 대한민국을 우주 강국의 반열에 올려줄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지라 국민 실망이 이만 저만이 아닌 것 같다.

나로호의 성공을 가로막는 기술적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 이번 실패에서 실질적으로 우리가 반성할 부분은 무엇인지 나는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실적에 급급한 나머지 정말로 중요한 부분을 간과하다가 초래하게 된 실패가 아닌지에 대해서는 좀 더 면밀한 점검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일본의 교육학자들은 학생들에게 인간의 기본적 도리와 공중도덕을 가르치는데 모든 에너지를 쏟는 것으로 폐허가 된 일본을 세계 제2의 경제대국으로 끌어올렸다고 자랑한다.

세계 속의 강국으로 부상하려면 기본적인 공부에 더 치중해야 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우리의 교육 현실과는 대조적이다. 실제로 수학이니 물리니 기초학문 분야에 비해 돈이 되는 의학이나 전자공학에 치우쳐 있는 우리의 학문 환경이 우려를 낳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이대로 간과할 수 없다는 위기감도 있다. 학창시절을 어떤 식으로 보냈건 좋은 대학에 가면 그만이라는 의식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적 달성만 하면 된다는 왜곡된 가치관으로 진화하는 바람에 남의 업적이나 성공을 가로채 수천억짜리 기술을 단독 몇 십억에 팔고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강심장들이라니.

조금 지난 얘기긴 하지만 노벨상 커뮤니티에서 한국은 다른 사람의 기술을 모방하는 데는 비상한 재주가 있지만 독창적이거나 창의적 창조 능력은 부족한 편이어서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기 어렵다고 했다는 소리 역시 우리 교육현실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일전에 홍콩의 가전제품 매장에서 중국제품이 삼성이나 엘지 못지않은 가격으로 거래되는 의외의 장면을 목격했다. 어찌된 일이냐고 화교인 주인에게 물었더니 중국은 한국에서 못하고 있는 우주선도 쏘아올리고 원자폭탄도 있는 나라라고 오히려 나를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쳐다보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일본은 이미 수많은 인공위성 발사에 성공했고, 2008년에는 중국과 인도가 각각 세계에서 세 번째로 우주 유영에 성공했거나 달 궤도선을 발사에 성공한 바 있다.



세계적인 IT강국이고 자동차 건설 등의 기술이 세계 탑클래스에 속한다고 자부하는 대한민국의 실질적 현실의 일단을 경험한 사건이 뼈 아픈 현실인식으로 다가왔다.

그나마 자체 기술도 아니고 러시아의 감수와 지도를 받아가며 만든 나로호다. 나로호 나로호를 연호하던 국민적 기대에도 불구하고 끝내 날아오르지 못한 미완의 도전이 과학적으로 우리보다 후진국이라고 생각하는 중국이나 인도 등에 웃음거리로 전락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을 느끼게 한다.



나로호 실패가 완벽하고 끈기있는 철저함과 기본을 중시하는 가치들이 우리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국민정신이 될 수 있도록 그 중요성을 다시한번 되짚게 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정말 사소하게 생각하고 간과했던 일들 때문에 우리가 치러야 할 대가가 얼마나 큰 결과로 되돌아오는지에 대해 깊은 성찰도 반드시 필요하다. 과학 뿐 아니라 도덕이든 사회정책이든 그 어떤 분야에서도 더 이상 주먹구구식, 전시행정식, 단기이익 창출식의 접근법은 지양되도록 해야겠다. 대한민국의 21세기 도약을 위해서라도 필히 정착시켜야 할 사회적 약속이 되어야 할 것 같다.

자, 다시 힘을 내어 길 잃은 나로호에서 다시 길을 찾아 나서자.
(2010 .6.9)

....홍문종 생각

2010년 6월 9일 수요일

홍문종 생각-고독 헤는 밤

고독 헤는 밤



알 수 없는 지독한 우울함에 시달리는 듯한 목소리를 들었다.


더 이상 잘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는 좌절감에 갇혀 버렸다는 호소였다. 아무도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고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것 같은 상실감이 자신을 벼랑 끝으로 밀어내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절박한 목소리만으로도 그가 얼마나 극심한 외로움에 시달리고 있는 지 알 것 같았다.


당사자로선 죽을 것 같지만 정작 병명조차 제대로 부여받을 수 없어 가중처벌의 혹독함이 더해지는 고독증후군의 증세가 새삼 상기됐다.


고독의 마수에 걸린 그의 현실이 몇 마디 어설픈 위로로 도움을 줄 수 없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에 나는 침묵을 택할 수 밖에 없었다. 고독이 동반되지 않은 삶은 개 돼지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며 고독의 가치를 높게 평가한 사상가나 철학가가 있었다는 말을 해 주고 싶었지만 고통 앞에서 무슨 힘이 될까 싶었다.





내게 있어 고독은 오래 묵은 친구 같은 존재다.


보통 하루면 기십명을 만나야 하는 나의 일상을 염두에 둔다면 군중 속 고독인 셈이다.


사람들과의 어울림도 좋은 편이고 친구관계도 원만한데 많은 사람을 만날수록 혼자라는 생각에 빠져들 때가 많으니 가히 병이라면 병이라고 하겠다.


초등학교 때부터 전학을 많이 다니다 보니 홀로 있던 시간이 많아서 생긴 습성일까 싶었는데 결국 나의 의식 밑바닥에 꽁꽁 매어놓은 강력한 자아가 나를 고독의 세계로 떠다미는 결정적 인자라는 선에서 결론을 지었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심야를 좋아하고 그 동반자인 고독을 즐긴다. 유학준비를 하던 5년과 10년의 유학생활 동안 집중하기 쉽다는 이유로 밤새우기를 일상화하면서 생긴 습성과 무관하지 않다. 나이가 들면서 고쳐보려고 노력을 안 해 본 것도 아닌데 결국은 원점이어서 습관으로 받아들인 지 오래다.





고독하다는 건 아직도 스스로에게 희망이 남아있는 징조라고 어느 시인은 노래했다. 어쩌면 그 자신 지독한 우울증에 시달리던 끝에 얻을 수 있었던 '득도의 현장'일 수도 있다. 실제로 고독이 우리에게 인생 전반에 대해 돌이켜 성찰 시키고 현실인식을 가다듬을 수 있게 하는 순기능으로 작용하는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굳이 고독을 좌절의 끝으로 몰고가서는 안되는 정황에 다름 아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적절한 대응이 가능하다면 고독은 고통을 주는 '가해자'가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실제로 고독을 컨트롤 하는 힘이 있다면 그 결과는 크게 달라질 수 있음이 입증된 바 있다. 이 시대를 이끌었던 위대한 지도나나 철학자들이 고독의 극한 상황을 뛰어넘어 자신이 가고 싶은 길을 걸어간 정황은 수두룩하다. 그들의 선례가 고독을 더 이상 기피 대상으로만 삼을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웅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고독이 희망의 또 다른 이름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내일은 내일의 해가 떠오르게 돼 있다.


고독해서 너무 외로워서 우울의 늪에 빠져 죽을 것 처럼 고통스럽다는 친구에게 이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야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달뜬다. 태양이 떠오르기 전에 행여 해가 사라질까 봐 근심하거나 단정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다고 말해주고 고독을 매개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엄청난 힘의 배경도 설명해줘야겠다. 우리가 가진 이 내면의 보석이 얼마나 귀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 존재인지도 열심히 공들여 알려야겠다.


고독을 희망의 키워드 삼아 헤아리는 이 밤, 가슴에 들어와 박히는 총총한 기운이 새롭다.

( 2010. 6. 9)
....홍문종 생각

2010년 6월 8일 화요일

홍문종 생각-정치권에 告함

정치권에 告함



선거는 끝났는데 정부 여당의 선거참패 여진은 심각한 양상으로 진화하고 있는 중이다.

특히 당내 쇄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담장을 넘어 저자거리까지 들릴 정도로 격앙된 분위기다. 공천 파행에 따른 후유증도 선거 패배의 핵심 요인으로 지목되어 논란을 빚고 있다. 여기저기서 잘못된 공천에 대한 불만이 쏟아지는 가 하면 공천을 사유물인양 전횡한 몇 몇 국회의원들의 도덕성이 도마 위에 오르기도 한다. 시간이 지나도 공정하지도 타당하지도 않은 공천의 문제점을 성토하는 열띤 분위기는 잦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당초 정당 공천권이 도입된 배경은 정당의 공신력을 담보로 책임정치를 실현하고 유권자의 선택을 돕는다는 좋은 취지였다. 최소한 원래 취지대로 운영됐다면 순기능이 훨씬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 날 정당공천의 현실은 오염 그 자체라고 해도 할 말이 없을 만큼 크게 망가졌다. 음모와 협잡에 둘러싸여 무기력을 남발하고 있다. 공천이라는 용어 자체가 무색할 만큼 각종 전횡으로 선거 후유증을 양산하는 주범으로 전락됐다.

밀실에서, 힘으로 밀어붙이는 '사천‘이 활개를 치면서 그만큼 퇴행하고 있는 정치현실이 안타깝다. 사실 여부를 확인할 길 없지만 심지어 대통령이 공천 반장이라는 소문까지 나도는 판이다.



약관의 나이 대에 정치를 시작하면서 제일 먼저 공천제도에 대한 회의를 품었던 나다. 지구당위원장에 임명되던 취임 연설에서도 ‘내가 윗선에서 점지하는 마지막 위원장이 될 거라며 상향식 정치가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을 겁 없이 쏟아냈던 기억이 난다.


대한민국 정당 구조에 있어서 제일 먼저 공천제도가 손질돼야 한다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개인적으로 정치권에 돌아간다면 제일 먼저 실현하고 싶은 일이다. 세상은 자꾸 변하고 있는데 정치권만 귀를 닫고 있는 이 부조화의 고리를 언젠가는 내 손으로 끊어버리고 말겠다는 각오를 늘 마음 속에 다지고 있다.

모든 후보는 당원이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는 상향식 공천제도의 정착이 정치 발전의 기초가 된다는 생각이다. 이로 인해 크고 작은 부작용이 불가피하겠지만 정당의 민주화를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절차다. 제대로 정착된다면 지금의 공천제도보다는 백번 천 번 나은 제도가 될 것이다.

지금의 공천 행태의 대대적인 개선 없이는 누구도 국민으로부터 인정받는 정치인이 되기는 쉽지 않다.



이번 선거 때는 물론 4년 전 공천심사위원장직을 맡고 있었을 때도 특수한 전략지역이나 중앙당 관심지역을 제외한 모든 지역에 경선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견해를 피력한 바 있다. 내 의견에 귀를 기울였다면 최소한 이번 선거에서 경기 북부로는 파주, 고양, 의정부 경기 남부에서는 수원, 용인, 성남, 하남 등의 실패는 피할 수 있었다는 게 내 판단이다.

단순히 승패를 떠나서라도 상향식 공천은 당원들이 자기 손으로 후보를 결정하고 그 선택에 승복하는 정치 문화에 익숙해진다면 정당의 하부 구조가 단단해져서 정당의 자생력을 키우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더불어 기본적으로 상명하달에 익숙해 있는 정당의 나쁜 관행들을 척결시킬 수도 있다.

이것은 한나라당 민주당 할 것 없이 모든 정당에 공히 필요한 얘기다. 특히 정당의 하부구조가 약한 한나라당에게는 체질개선의 시작이 중요한 변화의 단초가 된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처럼 쏠림 현상도 덜 할 것이고 정국의 안정적인 운영도 가능하게 된다. 정례행사처럼 중간선거만 끝나면 대통령 레임덕이 오고 임기 1년여를 앞두고는 대통령이 당에서 퇴출되는 수모를 겪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화장실 갈 때 틀리고 올 때 틀리는 사람 마음에 있는 것 같다.

실제로 공천을 받는 입장이었을 때는 내 견해에 상당수 동의하는 듯 하지만 막상 공천을 주는 위치가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생각을 바꾸는 정치인들을 많이 경험했다. 입장이 바뀌면 가치 척도나 개념도 덩달아 바꾸는 게 세상상식이기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입맛이 씁쓸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마치 은급을 주듯 공천장을 하사(?)하는 달콤한 권력행사에 휘둘려 국민으로부터 줄 세우고 주는 공천, 돈 거래로 이뤄지는 공천의 주체라는 불명예스러운 딱지는 어쩌려는지 물어보고 싶다.

그리고 말해주고 싶다.

병 속에 갇혀 허우적 거리는 꼭두각시 인생에서 탈피하려면 반드시 빈 손이 돼야 한다는 것을, 버림으로써 무한대로 얻을 수 있는 게 존재하는 인생의 묘미를 가르쳐 주고 싶다.

우선 당장 움켜쥔 그 손을 활짝 펴고 자유를 얻자.

그 때서야 비로소 진정한 정치인으로 거듭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2010 .6.8)

....홍문종 생각

2010년 6월 6일 일요일

홍문종 생각 - 융통성 있는 정국운영이 필요하다

융통성 있는 정국운영이 필요하다



6.2 지방선거 패배에 대한 청와대 대응책이 논란의 중심에 놓여있다.

‘선거패배라는 상황 논리에 따른 인적쇄신이나 정부개편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쪽으로 정국운영의 해법을 내놓은 청와대의 대답이 세상에 알려지면서부터다. 세종시와 4대강 사업 등 민감한 이슈도 계획대로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듯 하다.

청와대의 이 같은 반응은 선거 이후 대대적인 물갈이로 민심달래기에 나설 것이란 당초 예상을 뒤엎은 것이어서 솔직히 걱정스럽다. 특히 언론 보도를 통해 회자되고 있는 ‘‘6∙2 지방선거 패배를 통해 드러난 민심을 겸허히 받아들여야겠지만 바람을 쫓아갈 수는 없다, 이리저리 끌려 다니면 안된다, 한번 정하면 꾸준히 가야한다’는 등의 청와대 관계자 코멘트들도 가슴을 무겁게 하고 있다.

아마도 이대로 밀릴 수 없다는 강경 기류가 청와대 의중을 견인하고 있는 것 같다.



역사적으로도 국가의 위기 사안 때마다 강경론과 온건론이 충돌했지만 대부분 강경론이 판을 주도하기 일쑤였다. 아무래도 목소리가 크고 선명해 보이는 강경파의 주장이 더 정의롭고 충직할 것 같은 착각이 작용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나 강경파의 득세는 '창대한 시작’에 비해 매번 초라한 성적표를 남겼다는 점에서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옛날 청나라 침입 당시에도 조정대신 중에는 목숨걸고 싸우자는 사람(척화파)이 있었고 화친을 주장하는 사람들(주화파)이 있었지만 척화파의 주장에 힘이 실렸다. 목숨 걸고 싸우겠다는 주장이 더 충성스럽게 보인 탓이다. 그러나 척화파의 호기는 결국 ‘삼전도의 굴욕’이라는 슬픈 역사의 한 페이지로 끝나고 말았다. 그들의 무모한 주장이 국가의 운명을 풍전등화의 위기 속으로 더 몰고 갔다는 질타에도 별다른 변명의 여지를 남기지 못했다.

이 때의 일화로, 척화파가 청황제의 통첩문을 찢어버리자 주화파인 최명길이 그걸 다시 붙이며 "나라를 위해 경같이 찢어버리는 사람도 있어야 하지만 저처럼 붙여야하는 사람도 있어야 합니다"라는 ‘최명길 어록’이 전해지고 있는데 현재의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큰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이번 청와대 입장에도 ‘선거로 드러난 민심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소통에 주력하자는 온건파의 주장보다 중간선거는 원래 그런 거라며 (정부의 입장을)더 세게 밀고 나가야 한다는 강경파에 힘이 실린 것으로 보인다. 이번 선거에서 논란이 된 4대강이나 세종시 정책을 제외하면 청와대나 내각이 책임을 물을만한 잘못이 없다는 의식과 대통령이 현장 행보를 강화한다면 민심을 회복할 수 있다는 청사진이 강경논리를 뒷받침하는 배경이 되고 있는 듯 하다. 또 인적 쇄신이 자칫 '4대강 사업'과 '세종시 수정안' 등의 정책 수정으로 비춰져 집권 후반 국정 운영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설득력을 얻은 것 같다.

그러나 솔직히 세종시나 4대강 사업 추진에 있어 국민의 여론을 수렴하는 과정이 정부의 약점이 된다는 정부의 관점은 잘못됐다고 본다. 오히려 정부의 독자적 행보가 국가차원이나 국민 입장에서도 그렇고 정부여당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는 측면에서 재고의 여지가 많다.

적진을 향해 돌격하는 식의 정국운영 조언은 현 상황에 맞지 않는 지극히 위험한 발상이 아닐까 싶다. 적대국과의 대치 현황이 아닌 이상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융통성을 발휘한 결단이다. 제로섬 게임으로 몰아가기 보다는 윈윈 전략으로 정국을 차분히 풀어내는 게 더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어차피 권력은 유한한 것이다. 역사적으로 이미 끊임없이 증명된 바이기도 하지만 유한권력을 마치 무한한 것처럼 착각해서 빚어진 숱한 참사의 결론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제발 이번만큼은 무책임한 강공책으로 국사를 그르치는 일이 일어나서는 안되겠다. 대북 정책에 있어서도, 여야 관계에 있어서도, 국민 설득 과정에 있어서도 서로의 의식을 잘 알고 있는 만큼 신중에 신중을 더하는 여유로움으로 이 어려운 국면을 무사히 탈피할 수 있는 처방을 마련하기 바란다.

지금은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국정 운영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라는 인식을 다시 한번 되짚어 보는 건 어떨까 싶다.
(2010. 6. 7)

.....홍문종 생각

홍문종 생각-선생님, 안녕히 가세요

선생님, 안녕히 가세요


고등학교 은사님 부음을 받고 장례식장을 다녀왔다.
대광高 시절, 우리들에게 수학을 가르쳐 주셨던 이동범 선생님이 유명을 달리하신 것이다.
백병원에 차려진 빈소에서 선생님의 영정사진을 마주하니 학창시절 묵은 기억과 함께 사진 속 보다 훨씬 젊은 선생님의 옛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그 시절 선생님의 수업시간은 5분 먼저 시작해서 5분 늦게 끝나기로 유명했다. 10분 늘어난 1시간의 수학 수업은 우리학교의 불문률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불문률은 단 한번의 예외도 없이 진행됐다. 지나고 보니 그 '10분'은 우리에게 하나라도 더 가르쳐 주고 싶었던 선생님의 사랑과 열정이었다.


채플 시간에 간절히 기도하시던 선생님의 모습도 기억에 생생하다. 기도하는 선생님이 가르치는 학생이 어긋날 리 없다는 믿음으로 우리의 미래를 위해 기도를 멈추지 않으셨던 것 같다.


기회가 될 때마다 우리들에게 진정을 담은 기도에 대해 알려주고 싶어 하셨다. 눈물을 흘리며 우리의 장래를 위해 기도하시길 게을리 하지 않았던 선생님의 모습이 마치 어머니의 모습처럼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졸업 이후 오랫동안 뵙지 못하다가 10여년전 부터 매년 은사님들을 모시는 자리를 마련하고 있는데 그 자리에 참석하실 때 마다 적지 않은 연세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여전한 사랑을 전하시던 모습도 오래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선생님은 졸업생 중에서 대광을 빛낸 제자들을 줄줄이 호명하시는 기억력으로 우리를 놀라게 하거나 좋은 기도문이나 설교집을 가져와 나눠주시기도 하셨다.





모르긴 몰라도 최소한 선생님께 가르침을 받았던 학생이라면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을 품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평생 교직을 천직으로 여기고 제자들에게 남다른 애정을 쏟으신 선생님이시기에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선생님은 귀감이 될 만한 처신으로 수학의 인수분해나 미적분 수업만으로는 도저히 습득할 수 없는 삶을 교육하셨다. 자기 직업을 천직으로 여기며 열과 성을 다하는 생전의 선생님을 통해 우리가 얻은 참 삶의 가치는 결코 헤아릴 수 없다. 특히 교직에 종사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선생님의 가르침은 더없이 소중한 자원이 되고 있다. 교육현장에서 스승에 대한 존경심이 실종됐다고 우려하고 있지만 존경심은 강압에 의해 형성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측면에서 선생님의 가르침은 특별할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자신의 직업에 대해 진지하지 못하고 도외시 하는 요즘 세태 역시 선생님을 만났다면 분명 다른 결과를 가져왔을 거라고 생각한다.


선생님의 가르침이 더욱 빛나는 것은 자기 실천을 통해 우리들을 교육하셨기 때문이다.


‘성실성'에 대한 교육만 해도 그런 식으로 이뤄졌다.


교단에 서기 시작해서 은퇴할 때까지 단 한 번의 지각이나 결석이 없는 전설을 남기신 만큼 성실성에 있어 누구도 선생님을 능가할 수 없었을 것으로 본다. 실제로 우리가 학교에 다닐 때 폭설 때문에 대규모 지각사태가 벌어졌는데 유독 선생님 혼자만 지각을 하지 않으셔서 다들 그 이유를 궁금해 한 적이 있었다. 그 때 ’눈이 오는 날엔 특별히 3시간 먼저 출근한다’는 선생님 답변에 모두가 뒤집어졌던 기억이 난다.








인간의 삶이 한계가 있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지만 그렇게 사랑을 주시던 선생님과의 이별은 아쉽기만 하다. 얼마 전 스승의 날 입원 중이시던 선생님을 찾아뵐 때만 해도 또렷한 정신으로 우리 일행을 일일이 알아보셨는데 영원히 우리 곁을 떠나셨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는다.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우리 이동범 선생님의 훌륭하신 모습을 꼭 전하고 싶다는 간곡함이 이 글을 기록하게 만들었다. 교단에 계신 선생님들께도 마찬가지 심정으로 우리 선생님을 전하는 바이다.


비록 거창한 유명세를 남기신 건 아니지만 '사표'가 우리 곁에 머물다 가신 흔적을 많은 이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지금 교단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또 이 시대 젊은이들에게 우리들 가슴 속에 등불처럼 살아계실 선생님의 존재를 전하고 싶었다.





혹시 이 블로그를 접하는 독자 중에 대광의 이동범 선생님을 기억하는 분이 계시다면 잠시나마 감사의 염으로 그분의 마지막을 배웅하시길 바란다. 7일 아침 백병원에서 영락교회 장으로 영면의 길을 떠나실 예정이다.


사랑하는 선생님, 안녕히 가세요.
(2010. 6. 5)


.... 홍문종 생각

2010년 6월 3일 목요일

홍문종 생각 - 불상사 보다 기회로

불상사 보다 기회로




거울을 바라보니 쓴웃음이 절로 나왔다.

엊저녁 모처럼 자전거를 탔다가 넘어지는 바람에 여기저기 상흔을 남긴 내 모습 때문이다.

이런 저런 스케쥴에 밀려 한동안 접할 기회가 없었지만 내게 있어 자전거는 거의 신체의 일부처럼 생각될 만큼 익숙한 존재였다. 그런 만큼 솔직히 자전거를 타다 넘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사고의 발단은 가벼운 마음으로 자전거에 올라 학교운동장을 돌다가 급기야 무작정 시내로 진출한 무모함이 화근이었다. 당연히 챙겼어야 할 헬멧이나 장갑 등의 보호장구를 외면한 것도 근거없는 자신감의 발로였을 것이다.

도로가에서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오랜만에 달리는 재미에 빠져 있을 때만 해도 마냥 상쾌한 기분이었다. 여전히 녹슬지 않은 자신의 실력에 도취돼 도로까지 나오길 잘 했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즐거움은 한적한 길을 찾아 강릉 수목원 방면으로 접어든 이후 10분이 채 안돼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자동차들이 질주하던 도로가를 벗어났다는 안도감이 불러온 방심의 파장 때문이었다.

쌩쌩거리며 잘도 달리던 자전거가 노면 한 귀퉁이에 파인 웅덩이를 피하지 못하고 균형을 잃으면서 나는 순식간에 길 한복판에 내동댕이쳐지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바지는 찢어지고 얼굴에는 피가 흐르고 다리와 손까지 찰과상을 입은 것은 물론 잠시였지만 정신까지 아득해지는 난감한 처지로 전락한 것이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이번 해프닝으로 얻은 게 많다. 특히 몇 가지 사안에 대한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던 건 분명 소득이었다.

그 중 내 버킷리스트 1순위의 로망이라고 할 ‘오토바이’에 대한 관심을 이제 그만 접어야겠다고 스스로 결심하게 된 것은 파격적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솔직히 오토바이는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쉽사리 포기되지 않는 나의 오랜 꿈이었다. 그동안 ‘할리데이비슨' 전시장을 들락거리며 은밀한 스킨십으로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았던 것도 사실이다. ( 내 삶의 즐거움 하나가 시원섭섭함을 남기며 사라지긴 했지만 더 이상 돌아보지 않으려고 한다.)



어떤 일이든 지나친 과신은 해가 될 수 있다는 교훈을 공고히 체득할 수 있게 돼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상대방을 잘 안다고 해서 지나치게 방심하는 것 역시 오만함이다. 정제되지 않는 자부심 역시 낭패를 초래함에 있어 오만함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야당의 선전으로 끝난 선거 결과도 (자전거 사고 때와) 비슷한 상념에 빠지게 한다.

국민은 역시 준엄했다. 이번 선거로 지나친 자신감에 빠져 오만함을 보인 정부여당의 과속질주를 확실하게 심판했다. 그 어느 때보다 높은 투표율로 그동안 묵묵히 지켜보던 눈길을 거두고 한방의 강펀치로 상황을 정리한 것이다.

민의를 외면한 독주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셈이다.

정부 여당의 통렬한 자기반성과 국정운영의 새로운 방향설정 등으로 환골탈태 하지 않는 한 대한민국의 미래는 결코 없을 것이다. 야당 역시 여당의 참패를 그저 남의 일로 흘릴 게 아니라 반면교사로 삼아야겠다. 정당한 평가를 받으려면 말로만 국민의 공복을 외치기 보다 실천의 결과물을 반드시 내놓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할 것이다.

분명한 것은 불상사라고 포기하기 보다 새로운 기회 창출의 가능성으로 접근할 여지가 남아있다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생의 큰 수를 알려준 자전거 사고나 비록 쓴 맛이었지만 훗날을 위한 밑거름이 될 선거 결과는 나쁘지 않은 징조라고 생각한다. 그렇다. 감사함으로 받아들여야 할 좋은 기회였다.



실패는 병가지상사라며 여유로움을 잃지 않았던 선인의 지혜가 새삼스러워진다.
(2010. 6. 3)

....홍문종 생각

2010년 6월 2일 수요일

홍문종생각-꼴찌에게 갈채를!!

꼴찌에게 갈채를!!

떨어지는데 나처럼 이골이 난 사람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 경험으로 쌓아올린 내공으로 치자면 나를 능가할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다. 낙방에 있어 가히 지존(?)의 경지에 올랐다 할 수 있겠다.
몇 번이나 옮겨 다닌 초등학교 때부터 낙방의 역사를 쓰기 시작했다. 당시 막 붐이 일던 사립학교 입학을 위한 추첨에서 실패한 것이다. 중학교 시험에서도 낙방(당시 명문인 K중학을 가겠다고 하니까 엄마를 모셔오라던 담임선생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했다, 이를 필두로 학창 시절 다수의 반장, 회장 선거, 하버드 학생회장 선거(스탠포드 학생회장 선거에서는 성공했다), 박사학위 논문, 국회의원 선거 등에서 떨어진 무수한 낙방경험이 나의 이력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다.

그런만큼 낙방의 아픔이 얼마나 치명적인 스트레스로 되돌려지는지에 대해서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박사학위에 실패했을 때는 하버드 대학 기숙사 앞을 흐르는 찰스 강에 빠져 죽고 싶었다. 국회의원 낙선 때는 이렇게 열심히 직무에 최선을 다한( 초선의원 당시 4시간 이상을 잔 적이 없다) 나를 외면한 국민들이 너무 야속해서 마침 외국대학에서 온 초청장을 들고 이참에 진로를 변경해 버릴까 고민할 정도로 우울에 빠져 한참을 헤매기도 했다.
그 때마다 실의에서 벗어나도록 나를 독려했던 건 내 이웃의 삶이었다. 그들의 고통과 좌절에 비하면 내 아픔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과 내 힘으로 그 상처를 아물게 해서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는 소명의식이 나를 자극했고 다시 도전할 용기를 줬다.

오늘은 내 지역을 위해 일해 줄 선량을 뽑는 투표일이다.
오늘 중으로 선거 결과가 나오면 그동안 오늘을 위해 사력을 다해 달려온 사람들이 당선과 낙선의 엇갈린 희비 속에 서게 될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 경쟁이 치열한 만큼 당선의 기쁨을 누리게 될 사람보다 오늘 이후 자신의 인생 이력에 낙선 기록을 추가해야 할 사람들의 수가 훨씬 많을 것이다.
분명 세상의 모든 스포트라이트는 당선자들을 향해 몰리겠지만 나는 낙선한 분들에게 더 눈길이 간다. 그들의 미래가 이것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말해주고 싶었다. 오늘의 쓸쓸한 귀가 길이 머지않아 화려한 재기의 레드카핏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고,
그것이 뜬금없이 내 낙선이력을 장황하게 펼쳐놓은 이유이기도 하다.
‘고통’이야말로 인간의 완성된 삶에 없어서는 안될 필수 아미노산 같은 존재가 아닐까 싶다. 뜨거운 태양 빛이 과육의 달콤함을 빚어내는 천혜의 요소인 것처럼 말이다. 인간의 가치는 쓰러지고 고통받는 과정을 거친 이후 그 진정한 의미를 더하게 되는 것 같다. 나름대로 자신의 영역을 구축한 사람들의 고백이나 옆에서 지켜본 실제상황을 통해 확인된 바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일등보다는 꼴찌에게 관심을 갖는 사회가 더 희망적이라고 생각한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격언이 가장 잘 맞아떨어지는 분야는 역시 정치무대다.
실제로 칠전팔기의 성공신화를 쓴 정치인들이 부지기수다.
링컨은 셀 수 없을 정도의 낙선을 기록한 정치인이었고 처질 역시 정치생명을 끝내야 할 정도의 정치적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수시로 당적을 옮기는 등 지난한 역경의 길을 걸어온 인물이다.
그러나 역사가 그들을 ‘성공한 정치인’으로 평가하고 있는 것은 수없는 좌절에도 불구하고 끝내 자신의 목표를 이뤄낸 ‘결과’에 주목한 때문일 것이다. 결국 실패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실패한 이후 어떻게 자기 자신을 추스르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내 경우만 해도 지금 이 순간 남다른 정치적 굴곡으로 쉽지 않은 길을 걷고 있지만 가슴에 품은 꿈은 여전히 건재하다. 그 많은 좌절과 시련에도 불구하고 하버드 박사학위도 따냈고 재선 국회의원 경력도 얻어낼 수 있었듯 종국엔 내가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게 지난 시간의 실패가 내게 남겨준 유산이라고 생각한다.

낙선자 여러분.
오늘 설사 실패의 고배를 마셨다 해도 이것이 인생의 종지부가 아닌만큼 결코 실망하지 마시라.
여러분의 낙선은 분명 더 큰 출발을 위한 새로운 시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저마다의 가슴에 신념을 잃지 않는 한 그 어떤 마지막도 존재하지 않는다.
준비하고 노력한다면 틀림없이 지금보다 더 좋은 인생의 기회가 주어지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그러나 좌절을 딛고 일어설 때 주변인의 조력 여부와 상관없이 실제로 감당해야 할 사람은 자신이라는 사실 을 기억하길 바란다.
절대로 기죽지 마시라.
여러분 인생에 기필코, 반드시 새로운 세상이 전개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라. 그것이 자연의 필연 법칙이다. 여러분도 이 낙방거사의 충언을 귀담아 듣고 그 때를 위해 자중자애 하길 바란다.

꼴찌에게 갈채를 보낸다.
(2010. 6.2)
...홍문종 생각



홍문종 네이버 블로그 : http://blog.naver.com/mjhong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