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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 16일 일요일

홍문종 생각 - 내 친구, 이영훈 목사


내 친구, 이영훈 목사 

대선 일정 때문에 여전히 바쁜 주일,
의정부에 있는 본 교회 참석이 어려워 여의도 순복음교회를 찾았다가 뜻밖의 호사(?)를 누렸다. 
그곳에서 당회장으로 시무 중인 친구, 이영훈 목사의 환대를 받은 것이다.
그와는 중 고등학교를 함께 다닌 인연을  40년 우정으로 이어가고 있는 사이다. 
그리고 또 하나,  동창들로부터 가장  많은  성원을 받는 대상이라는  공통점도 있다. 
친구들 걱정의 정도에 굳이 순위를 매기자면 내가   우선순위인 것  같기는 하다. 아무래도 정치를 하는 내가 더 위태로운 환경에 놓여있다는 우려가 작용한 탓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이영훈 목사에  대한  동창들의 관심은  나를 향한 그것과는 확실히  다르다. 
험한 환경에서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는 정치적 삶으로 척박하게 살아가는 나를  친구들은 늘 조마조마해 하며 걱정스런  눈치다.   반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종교 지도자로서  교계를 이끌어가는 그에게는  존경어린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는 여전히 소탈하고 겸손한 친구의 얼굴로 나를 반겼다.   다만 후광처럼 빛나는 아우라가 충실히 영적 지도자의 길을 걷고 있는 달라진 그의 현실을 느끼게 했다.
그는 세계 최대 규모의 성전을 가득 메운 신도들 앞에서 중 고등학교 동창이고 새누리당 국회의원이라는 소개말로 기꺼이 우리의 오랜 인연을 알렸다. 그리고 힘 있게 전하는 말씀으로 내 마음을 충만하게 채워 주었다. 나를 위한 설교가 아닌가 싶을 만큼 깊은 울림을 주는 설교는 신선한 자극으로 나를 일깨웠다. 예배를 마치고도 내 손을 붙잡고 간절히 기도하면서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이 잘 되기를 축복해줬다.
나 역시 짧은 기도로나마 그가 영적인 지도자로서의 역할을 잘하게 해달라고  간구했다.

학창시절 명랑하면서도 수줍음 많던 모습은 이제 볼 수 없지만 교계의 거목으로 우뚝 선  친구가 진정 자랑스러웠다.  그리고 그런   친구를 갖고 있다는 자부심이 내게 새로운 에너지를 불어넣어 주었다.
우정이 내게 준 또 다른 선물이었다.                                   

 (2012. 12.17) 
 ....홍문종 생각  

2011년 12월 23일 금요일

홍문종 생각 - 어떤 인연

어떤 인연


언제나 얼굴에 미소가 떠나지 않아 마주하면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는 지인이 있다.
오늘 우연히 그를 만났는데 할 얘기가 있다고 차 한 잔 나누자며 내 손을 잡아끌었다.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인연’에 대한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고 싶은 것이었다.
그는 군 복무 3년 동안 단 한 번의 휴가도 나가지 않을 정도로 군 생활에 열심을 다했다.
누군가의 지시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저 국가에 최선을 바쳐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단다.
그런 그를 눈여겨보던 상관이 같은 부대 육군 대위였던 박지만씨에게 소개를 했고 그 인연으로 모 건설회사에 취직할 수 있었는데 그로서는 결코 잊을 수 없는 감사함을 가슴에 품는 계기가 됐다.
그러던 중 10년 전 우연히 박지만 씨의 누나인 박근혜 전 대표가 큰 뜻을 두고 있는 정황을 알게 되면서 동전을 모으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적지 않은 액수가 됐다.
그는 그 돈을 이번에 박 전 대표를 돕는데 사용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비록 조그만 성공이지만 자신의 ‘오늘 날’은 좋은 인연을 맺은 좋은 사람들로부터 좋은 영향을 받은 덕분이라는 생각을 늘 하고 있고 나 역시 자신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이라는 게 그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결론이었다.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그의 진심을 받아들였는데 에너지가 잔뜩 채워지는 기분이었다.

의정부중학교 동창들을 만나는 자리에서도 사람사이의 인연에 관한 이야기가 화제에 올랐다.
같은 동창 중에도 좋은 영향을 주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나쁜 영향을 주는 친구가 있다. 좋은 친구들이 모이면 좋은 결과가 배로 쌓이지만 나쁜 인연은 정 반대로 상처를 주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우리 의정부중학교 동창들은 수십 년 째 무탈하게 좋은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는 자부심이 주를 이루는 대화였다.
무엇보다 친구의 정겨운 표정이 세상을 살아가는 뒷심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시간이 되었다.
일전에도 밝힌 적이 있지만 나는 의정부 중학교를 입학해서 서울 대광중학교를 졸업했다. 도중에 서울로 전학을 간 나는 엄밀하게 따지자면 동창회에서 성골(?)성분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런데도 언제나 변함없이 나를 반겨주는 친구들이 고맙다.
해가 갈수록 그들의 존재가 소중해지는 걸 보면 우리가 좋은 인연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이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숱한 인연을 접하게 된다.
선한 인연도 만나고 악한 인연도 만난다. 좋은 인연인 것 같으면서도 나쁜 인연이 되고 나쁜 인연인 줄 알았는데 좋은 인연으로 매듭짓게 되는 경우도 많다. 마음먹은 대로 조절이 가능한 것도 아니다.
다만 좋은 인연 나쁜 인연 가리기에 앞서 저마다 상대방에게 소중한 인연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스스로의 노력이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북한은 우리에게 어떤 인연일까를 생각해 본다.
남한에서 본 북한과 북한에서 본 남한은 늘 상반된 시각으로 서로의 존재를 인지한다.
물론 남한은 보수냐 진보냐에 따라, 북한은 김정일 왕당파냐, 일반 주민이냐에 따라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조문’ 행위 하나도 같은 마음이 되지 못하는 현실을 보면 서로 간에 얼마나 깊은 골을 형성하고 있는 지 알 수 있다.
비단 조문 건 뿐만이 아니다. 사사건건 남한이 북한을, 북한이 남한을 수용하지 못하는 건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다.
그만큼 남과 북은 서로에게 특수한 상황이고 까다로운 상대일 수 밖에 없다.

돌이켜보면 외세와 손잡았던 역사의 불유쾌한 흔적이 적지 않다.
신라는 삼국 통일을 위해 당나라를 끌어들였고 백제는 일본을, 고구려는 만주를 끌어들였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로 남게 된 우리의 서글픈 운명도 그런 식으로 이뤄졌다.
우리가 미국을, 북한이 중국을 등에 업고 그어놓은 38선이 60년 세월이 훌쩍 넘도록 두 동강이 난 한반도를 혈육을 그리워하는 애끓는 한으로 가득 채우고 있는 현실이다.
미국이나 중국과의 관계가 아무리 중요한 들 남북한의 인연만큼 더 소중하고 의미 있는 인연이 존재할까 싶다.
이제는 긍정적인 인연이 되기 위한 남북의 인위적인 노력이 필요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다. 우리의 적극적인 역할이 남북간 경색의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2011년이 또 지나가고 있다.
흰 눈까지 더하니 저무는 한 해가 더 실감나게 느껴지는 이 밤이다.
돌아보니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수많은 인연을 맺었다.
그 중에는 좋은 인연도 있고 아쉬운 인연도 있다. 모두가 소중한 인연들이다.
그들의 얼굴 하나하나를 떠올리며 좋은 인연들에게는 깊은 감사를, 아쉬운 인연들에게는 좀 더 최선을 다하자는 다짐을 날리는 눈발 속에 새겨본다.

(2011. 12. 23)
..홍문종 생각

2011년 8월 1일 월요일

홍문종 생각 - 친구

친구
 
근래 들어 옛 친구들과의 추억을 더듬는 아버지의 모습을 자주 뵙게 된다.
특히 옛 사진첩을 들여다보며 속절없이 지나가버린 시간을 아쉬워하는 눈치시다.
며칠 전에도 빛바랜 사진 한 장을 펼쳐놓고 오래 생각에 잠겨 계신 아버지의 모습이 그렇게 쓸쓸해 보일 수가 없었다. 40여 년 전 우리 집 안마당을 배경으로 아버지를 비롯한 20여명의 친구 분들이 함께 한 순간을 담은 사진이었는데 꿈인가 싶게 지금의 나보다 훨씬 젊은 모습의 아버지가 거기서 웃고 계셨다.
아버지는 사진 속 친구 분들을 하나하나 짚으시며 이름을 뇌이셨다. 같이 들여다보고 있던 내게 미국에 계신 한 분을 제외하고는 전부 유명을 달리했다고 얘기해주시는 아버지의 표정이 더 없이 허탈해보였다.
 
우울한 아버지의 기분을 바꿔준 건 친구 분들의 병문안이었다.
구순을 바라보는 연배인 만큼 그야말로 몇 분 안 남은 친구들의 방문에 아버지는 들뜬 기색이 역력하셨다. 수 일 전, 친구들이 방문하신다는 전갈을 받으실 때부터 . 머리도 다듬고 염색도 하시고 당일 일정을 일일이 챙기는 것은 물론 점심메뉴까지 내게 직접 지시할 정도로 신경을 쓰시며 친구들과의 만남을 고대하는 기색이셨다.
더구나 폭우 때문에 일정이 며칠 연기되자 더 간절해지신 눈치셨다.

 

공자는 有朋이 自遠方來하니 不亦樂呼아’ (먼데서 뜻이 통하는 친구가 나를 찾아오니, 이 또한 즐거운 일이 아닌가!)라고 했다.  역시나,  한 사람의 인생에 미치는 친구의  영향력을 일찌감치 내다볼 줄 알았던  혜안이 무릎을 치게 만든다. 
실제로 친구분들의 방문으로 아버지는  기분이 좋아지신  눈치다.
 아버지를 대번에 혈기 넘치는 청년으로 만들고 열정과 카리스마 넘치던 시절로 되돌려 놓았다. 와병 중 잠시 내려놓았던 활기도 되찾게 해줬다, 적지 않은 세월을 함께 나눈 추억의 내공은 역시 간단하지 않았다.
어르신들은 대한민국 격동기의 한 때를 평정하시던  분들답게   여전히 살아있는 안광과 기품있는 외모로 주위를 압도하셨다.   내게도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다.   
친구들과의 대화에 몰입하시며 신명을 내는  아버지의 모습이  고마움과 반가움으로 다가왔다. 
 
아버지와 친구 분들 사이를 오가는 대화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동란을 겪은 세대가 갖는 조국에 대한 생각은 우리의 것과 또 달랐다. 단순한 세대차이로 일축하기엔 선이 굵은 자극이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조국의 존재는 사랑은 물론 언제든지 헌신할 수 있는 대상이었다. 민족중흥을 얘기하며 눈물을 글썽이는 모습에서는 청년 못지않은 열망과 신념이 엿볼 수 있었다.
아버지 세대가 조국에 바친 헌신의 에너지가 없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존재할 수 없었을 거라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우리가 누리는 오늘의 안락은 맨 땅에 헤딩하듯 황무지를 개간해나갔던 그들의 신화가 초석이 되었던 것이다. 그들의 노고를 필설로 다 드러낼 수 없지만 분명한 건 조국이 그들에게 제대로 된 대가를 지불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순의 노구인 그들은 아직도 국가와 민족을 위해 기꺼이 피땀을 흘릴 수 있다는 각오를 말하고 있었다.
 
감사함과 부끄러움이 교차하는 묘한 감동이 일었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현재가 저절로 얻어진 것이 아니라 어르신들이 청운의 열정을 조국에 바친 결과라는 생각에 미치자 숙연해졌다. 너나없이 늙고 병들고 세상을 하직하게 되는 게 세상 이치이고 누구나 예외없이 적용되는 운명의 수순임에도 불구하고 천년만년 살 것처럼 자신의 처지를 망각하게 되는 인간의 아둔함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했다.
그리고 기도처럼 가슴에 새겼다. 지금 누리고 있는 우리의 위상이 거저 얻어진 게 아니듯 우리의 미래 또한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지금 우리가 만들어가는 하루하루가 10년 20년 뒤 우리의 현실을 결정짓는 중요한 근간이 된다는 것을.
더불어 항상  스스로를 향해 되새기곤 하는 질문을  다시 던져본다.   
과연 우리의  지금 모습을 묻는 후대의  날카로운질문 앞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이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아쉬운 석별의 정을 남긴 채 손님들은 떠나셨다.
그들을 배웅하면서 구순 노인의 뒷모습이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그들이 나누는 우정 때문에, 아직도 식지 않은 조국과 민족에 대한 열정 때문에 그렇게 아름다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부디 오래오래 건강하소서.     (2011. 8. 2)     
                   ....홍문종 생각                            

2010년 11월 26일 금요일

홍문종 생각 - 행복하지?

행복하지?


동생 원종이의 5주기 추도식이 있었다.

눈물로 그의 마지막을 배웅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5년의 세월이 흘렀다.

부모님과 형제들, 그리고 동생의 몇 몇 친구들이 모여 생전의 그를 기리는 시간을 가졌다.

형제들 중에서 가장 강건했지만 건강을 잃고 유난히 힘든 삶을 살다가 떠난 동생이다.

인생의 마지막까지 병마의 고통에 시달리던 동생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부모님께는 물론이겠지만 내게도 아픈 손가락이 되어버린 동생이다.

그를 떠올릴 때마다 애잔한 울림이 가슴 한 켠을 적신다.

동생과 이승에서의 마지막을 나눌 수 있었던 기회를 놓쳤다는 스스로에 대한 회한 때문이다. 강원도에서 요양 중이던 동생에게 찾아간다고 해 놓고 약속을 지키지 못했는데 그게 그만 마지막 기회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정치의 중심에서 공인으로 활동하던 그 때, 나의 일상은 개인의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너무 분주했다. 동생이 보고 싶어 만나러 가다가 1시간 거리를 남겨두고 다음을 기약하며 되돌아올 수 밖에 없었던 나름의 사정이 있었다. 그 때가 마지막이 될 줄 알았다면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동생을 만나러 갔을 것이다.

동생이 그 때 출장 이발사까지 동원해 머리를 깎는 등 몸단장을 하며 형을 만난다는 기쁨에 들떠 있었다는 얘기를 동생 사후에 전해 듣고 가슴 찢어지는 통증이 어떤 것이라는 걸 알았다.

언제나 사랑으로 형을 기꺼워하던 동생에 비하면 나는 참 무심한 형이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하루를 온전히 동생에게 할애한 기억이 없다.

그럼에도 동생은 연년생의 박한 나이터울을 아랑곳하지 않고 타박없이 깍듯이 형으로 예우하고 정성을 다했다. 그런 동생을 생각하면 지금도 목이 멘다.




추도식을 마치고 동생 친구들과 식사 자리를 함께 했다. 그 자리에서 생전의 ‘동생’을 들을 수 있었다. 누구보다 따뜻하게 남을 배려할 줄 알았고 언제나 자신보다 남을 위해 나서기를 즐겨했던 동생에 관한 추억담들이 그들의 기억을 통해 쏟아져 나왔다.

그들은 또 동생이 생전에 형인 나를 얼마나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했는지도 들려주었다.

그리고 동생과 내가 많은 부분에서 닮았다는 이야기도 했는데 ‘잘 생긴 동생이 지하에서 노여워한다’는 농으로 넘기기는 했지만 한참동안 먹먹해진 가슴을 진정시켜야 했다.

그래도 동생이 친구들에게 상당히 괜찮은 인간으로 기억되고 있는 듯 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들의 기억 속에서만큼은 여전히 건재하게 그들과 함께 호흡하며 우정을 나누고 있는 듯 했다. 실제로 그들은 매 기일마다 빠지지 않고 동생을 찾아와 주었다.

문득 나의 사후에는 동생처럼 생전의 정을 잊지 못하고 찾아줄 지인들이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따뜻하게 대해 줄 걸, 세심하게 살펴줄 걸...

나날이 연로해지시는 부모님과 형제, 친지들, 그리고 지인들, 또 지금 당장 나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더 이상 부질없이 후회할 일은 만들지 말아야겠다.

세월을 이기는 장사 없고 누구도 하늘의 뜻을 거역할 수도 없는 이 엄연한 현실이 나로 하여금 인생의 각오를 숙연하게 간구하게 만든다.


살아가면서 특히 인간관계에서 때를 놓치고 후회하는 일을 만들어서는 안되겠다는 다짐과 각오를 새롭게 세우게 됐다. 혹시 내가, 혹시 그들이 세상을 떠나 만나게 되지 못하게 된다면 그 때 안타까워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유행가 가사처럼 정말 있을 때 잘해야겠다.
더불어 저 세상에서는 원종이가 자신의 꿈을 활짝 펼치며 살고 있길 바란다.

원종아, 행복하지? 부디 행복해라.


(2010. 11. 26.)
...홍문종 생각

2010년 6월 9일 수요일

홍문종 생각-고독 헤는 밤

고독 헤는 밤



알 수 없는 지독한 우울함에 시달리는 듯한 목소리를 들었다.


더 이상 잘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는 좌절감에 갇혀 버렸다는 호소였다. 아무도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고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것 같은 상실감이 자신을 벼랑 끝으로 밀어내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절박한 목소리만으로도 그가 얼마나 극심한 외로움에 시달리고 있는 지 알 것 같았다.


당사자로선 죽을 것 같지만 정작 병명조차 제대로 부여받을 수 없어 가중처벌의 혹독함이 더해지는 고독증후군의 증세가 새삼 상기됐다.


고독의 마수에 걸린 그의 현실이 몇 마디 어설픈 위로로 도움을 줄 수 없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에 나는 침묵을 택할 수 밖에 없었다. 고독이 동반되지 않은 삶은 개 돼지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며 고독의 가치를 높게 평가한 사상가나 철학가가 있었다는 말을 해 주고 싶었지만 고통 앞에서 무슨 힘이 될까 싶었다.





내게 있어 고독은 오래 묵은 친구 같은 존재다.


보통 하루면 기십명을 만나야 하는 나의 일상을 염두에 둔다면 군중 속 고독인 셈이다.


사람들과의 어울림도 좋은 편이고 친구관계도 원만한데 많은 사람을 만날수록 혼자라는 생각에 빠져들 때가 많으니 가히 병이라면 병이라고 하겠다.


초등학교 때부터 전학을 많이 다니다 보니 홀로 있던 시간이 많아서 생긴 습성일까 싶었는데 결국 나의 의식 밑바닥에 꽁꽁 매어놓은 강력한 자아가 나를 고독의 세계로 떠다미는 결정적 인자라는 선에서 결론을 지었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심야를 좋아하고 그 동반자인 고독을 즐긴다. 유학준비를 하던 5년과 10년의 유학생활 동안 집중하기 쉽다는 이유로 밤새우기를 일상화하면서 생긴 습성과 무관하지 않다. 나이가 들면서 고쳐보려고 노력을 안 해 본 것도 아닌데 결국은 원점이어서 습관으로 받아들인 지 오래다.





고독하다는 건 아직도 스스로에게 희망이 남아있는 징조라고 어느 시인은 노래했다. 어쩌면 그 자신 지독한 우울증에 시달리던 끝에 얻을 수 있었던 '득도의 현장'일 수도 있다. 실제로 고독이 우리에게 인생 전반에 대해 돌이켜 성찰 시키고 현실인식을 가다듬을 수 있게 하는 순기능으로 작용하는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굳이 고독을 좌절의 끝으로 몰고가서는 안되는 정황에 다름 아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적절한 대응이 가능하다면 고독은 고통을 주는 '가해자'가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실제로 고독을 컨트롤 하는 힘이 있다면 그 결과는 크게 달라질 수 있음이 입증된 바 있다. 이 시대를 이끌었던 위대한 지도나나 철학자들이 고독의 극한 상황을 뛰어넘어 자신이 가고 싶은 길을 걸어간 정황은 수두룩하다. 그들의 선례가 고독을 더 이상 기피 대상으로만 삼을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웅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고독이 희망의 또 다른 이름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내일은 내일의 해가 떠오르게 돼 있다.


고독해서 너무 외로워서 우울의 늪에 빠져 죽을 것 처럼 고통스럽다는 친구에게 이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야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달뜬다. 태양이 떠오르기 전에 행여 해가 사라질까 봐 근심하거나 단정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다고 말해주고 고독을 매개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엄청난 힘의 배경도 설명해줘야겠다. 우리가 가진 이 내면의 보석이 얼마나 귀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 존재인지도 열심히 공들여 알려야겠다.


고독을 희망의 키워드 삼아 헤아리는 이 밤, 가슴에 들어와 박히는 총총한 기운이 새롭다.

( 2010. 6. 9)
....홍문종 생각

2010년 5월 8일 토요일

홍문종 생각 - 다시 시작하자

다시 시작하자

정치적 도반의 ‘불운’ 앞에서 만감이 교차하는 밤이다.
어떤 식으로든 생각을 정리하고 싶은 마음에 새벽 2시, 거리를 헤매고 있다.

그동안의 과정이 3D 파노라마 영상이 되어 한꺼번에 스쳐간다.
나 스스로에게도 화가 나고 그에게도 화가 난다.
사나이 중 사나이고 의리파인, 그러나 유난히 적도 많고 탈도 많은 그의 ‘분루’를 보면서 뭐라고 위로의 말을 건네야 할지 모르겠다. 난감함이 머리속을 하얗게 비우고 말문마저 닫아버리는 느낌이다.
친구의 아픔이 내 아픔으로, 그의 속상함이 내 속상함으로 전해진다. 낙심 때문에 한없이 쓸쓸해진 그의 뒷모습이 눈에 밟혀 자꾸만 허둥거려지는 마음이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숱한 삶의 자취를 남기게 된다.
걔 중에는 어느 날 불쑥 운명을 가르며 찾아드는 ‘봉변’ 때문에 삶의 지표를 바꾸게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세상의 그 어떤 일도 일어나게 돼 있는데 우리는 왜 너나없이 자신의 인생만큼은 상당한 분량의 ‘불운’에서 제외될 수 있다고 믿게 되는지 모르겠다.
그러다 막상 억울하고 터무니없는 일 때문에 고통 속에 갇히게 되면 세상과 주변부터 야속해지는 게 사실이다. 팔다리가 다 잘려져 나가는 듯한 허전함에 온 몸이 떨리는 고통은 직접 당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실제로 도처에서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얼마나 많이 발생하는지 보게 된다. 터무니없는 건 그렇다 치고 도저히 수습이 안 되는 억울함은 억장을 무너뜨리기 일쑤다.

다행인 것은 결정적인 순간마다 인간에게 실패를 뛰어넘을 수 있는 의지가 작동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새로운 도약을 시작할 수 있는 힘의 근원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도 경험한 바다.
끈질긴 생명력으로 밀어붙이던 음해와 루머로 상심하던 불면의 와중에 손님처럼 찾아든 따뜻한 그 ‘기운’이 고통의 질곡에 빠져있는 내게 ‘용기’를 줬다. 고통을 실패로 인정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도록 내 삶을 다독이며 견인해 줬다.

그렇다.
중요한 것은 의리도 리더십도 영향력도 패배도 아니다. 실패 앞에서 ‘용기’를 잃지 않는 의지가 우선이다. 다시는 실패하지 않기 위해 중장기적인 준비는 물론 시대적 흐름까지 감안한 세심한 계획으로 시작하면 된다. 물론 도중에 생각이나 마음, 태도 등을 바꿀 수도 있다.
그렇게 포기를 거부하고 용기를 끌어 모으고 있는 자기 자신을 확인하는 일은 정말로 중요하다. 포기하지 않는다는 확신을 가질 때부터 반석 위에 ‘뜻’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반석은 또 다른 가능성의 디딤돌이 될 수도 있다.

“나에게는 아직도 열두 척의 함선이 남아있다”
성웅 이순신 장군이 품었던 희망의 본체에서 친구에게 해 줄 수 있는 위안의 말을 비로소 건져 올렸다.
적지 않은 소득이다.
-친구야, 아직도 선택할 수 있는 열두가지의 가능성이 남아있다. 힘을 내자. 그리고 다시 시작하자.
친구에게 전하는 위로이자 내 자신을 향한 당부를 곱씹으며 운무에 싸인 이 새벽을 마감한다.
(2010. 5. 9)
...홍문종 생각



홍문종 네이버 블로그 : http://blog.naver.com/mjhong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