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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적 거래
최근 논란을 빚고 있는 양준혁, 강병규 사이의 트윗 설전이 걱정을 낳고 있다.
양씨에 대한 악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낸 채 양준혁 야구재단에 의혹을 제기한 강씨의 트윗이 발단이 됐지만 이전투구의 양상으로 확전되는 상황으로 보면 간단히 수습될 것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치열하게 전개되던 두사람의 공방전은 ‘똥개는 짖어도 기차는 달려갑니다’는 멘션을 끝으로 양씨가 대응을 멈추면서 일단락되는 듯 하지만 만만치 않은 파장이 걱정인 것만은 사실이다.
전반적으로 한솥밥을 먹으며 취득한 내부 정보를 앞세워 공세를 펴는 강씨에 등을 돌리는 분위기지만 이런 저런 내막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양씨나 강씨나 싸잡아 비난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결국 이전투구에 눈이 멀어 공멸을 자초하는 어리석은 군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실패작이 되어버린 형국이다.
그들의 패착이 예사롭게 넘겨지지 않는 건 정치권 작태와 하등 다를 바 없다는 자괴감 때문일 것이다.
상대를 헐뜯어 자신의 것을 채우려는 천박한 탐욕이 판을 치기로 말하자면 더욱 그렇다.
독일의 저명한 사회과학자 막스 베버는 정치인에게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이 필요하다며 ‘악마적 거래’의 당위성을 강조했지만 갈수록 얼굴 바꾸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현실을 지켜보기가 여간 고역스럽지 않다.
차라리 여의도 입성을 위해 치열하게 벌어지는 생존경쟁은 나름의 정당성이 인정된다는 측면에서 봐줄만 하다. 그러나 뒤통수를 향해 쏟아지는 뜨거운 질타는 아랑곳없이 오로지 여의도 재입성을 위한 현역의원들의 몰염치한 행각은 심히 역겹다. 최고의 엘리트라는 자부심이나 자존감은 헌신 버리듯 던져버린 지 실로 오래다. 신의를 저버리고 동료를 끌어내리고 그저 나만 오르면 된다는 식이다. 오로지 권력의 빨대로만 존재하는 허상에 자족하는 그 모습이 실로 안타까울 뿐이다.
며칠 전 설 연휴 첫 날 택시영업을 위해 의정부를 찾은 김문수 도지사와 점심을 함께 하면서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어제의 동지가 적진에 서서 날선 비판으로 아킬레스건을 공격하는 비정함 넘치는 정치판 속성을 생각하면 당연한 연상일 지도 모르겠다.
김지사와는 소위 말하는 당시 신한국당 입당 동기로 15대 국회를 통해 정치에 입문한 인연이 있다.
김지사는 부천에서 어려운 상대를 꺾고 나는 야당 원내대표로 내정되었다는 현역의원을 누르고 여의도에 입성했는데 동기라는 동질감 때문인지 많은 시간을 꽤 가까이 보낸 기억이 난다. 특별히 의원회관도 같은 층에 있어서 어쩌다 간식거리를 싸들고 가면 벌써 두목감이라고 놀려대던 그의 모습이 정답던 미소와 더불어 아직도 머릿속에 또렷하다. 그가 처음 도지사 선거에 나섰을 때 도당위원장직을 맡고 있었던 터라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아 열심히 뛰어다닌 기억도 새롭다.
사실 국회에 있을 때부터 그를 많이 좋아했다.
같은 70년대 학번으로 나이로는 5년 연상이었던 그에게 매료됐다. 아마도 학창시절을 치열하게 보낸 그에게 보내는 일종의 경외감이었을 것이다. 어쩌다 그가 고문당한 이야기를 들려줄 때면 온 몸으로 전율을 느끼며 참으로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이런 정도의 의지라면 이 세샹에 그가 뚫지 못할 난관은 결코 없을 거라는 생각도 했었다. 별로 흠잡을 데가 없는 게 흠이 될 만큼 매사 빈틈이 없는 그의 단정함도 좋았던 것 같다. 워커홀릭이라는 별칭이 딱 어울릴 만큼 그는 정말 일만 하는 사람이었다. 술도 잘 못 먹고 골프도 안치고 여자 친구도 없어 보였다.
그날 점심 자리에서도 그의 전향 동기가 화제에 올랐는데 오래 전 확신에 차 있던 그대로였다. 소련은 물론 동유럽 전체가 공산주의 붕괴를 맞고 있는데 낡은 사상을 붙들고 있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는 취지를 심플하게 설명했다. 그리고 이른바 친북이니 종북이니 하는 사람들이 왜 북한의 인권이나 연평도 문제에는 입을 닫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질책을 했다.
그는 정치현안에 대해서도 거침이 없었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 만들었던 FTA를 반대하는 야당의 처사를 이해할 수 없다며 손학규 전 지사에게도 섭섭함을 드러냈고 민주통합당 문성근 최고위원에게는 젊은 시절 아버지 문익환 목사가 반체제 운동에 주력할 때에는 어디서 뭐하다가 (이제서야 현실정치에 뛰어들었다고) 일종의 프리라이더 아니냐는 아쉬움을 표출했다. 한나라당에 대해서도 걱정이 많은 듯 했다. 특히 비대위원들의 활동상황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내가 “경기도지사 재선거하는 일은 없게 해 달라”고 당부하자 “지금 한나라당이 이 모습가지고 대선에서 이길 수 있겠는가”라는 대답으로 여운을 남기는 모습을 보였다.
재차 “그래도 박근혜 비대위원장으로 갈 수 밖에 없지 않느냐”고 반문하자 그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그답지 않은 침묵이었다.
.........
그러고 점심시간이 끝났다.
그는 택시손님이 없어 오늘 사납금이나 제대로 채울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너스레를 떨더니 점심값을 지불하고 다시 일하기 위해 일어섰다. 그의 등 뒤에 대고 “도지사 다시 뽑는 일만은 제발 없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화두처럼 던졌는데 역시나 묵묵부답이었다.
그렇게 총총히 사라지는 뒷모습이 아쉬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앞날을 진심으로 기원했다.
진실로 간절하게 빌었다.
우리의 인연이 뭇 사람들이 흔히 그렇듯 바닥을 보이는 악연으로 이어지는 일만은 없기를.
(2012. 1.23)
....홍문종 생각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
누군가에게 자기가치를 인정받는 기쁨만큼 큰 행복이 있을까 싶다.
용량을 헤아릴 수 없는 무한대의 에너지로 누구든 단숨에 에너자이저로 만들 수 있는 묘약이 된다.
결정적인 영향력이 가능하다는 측면에서 결코 소홀할 수 없는 동기임에 틀림없다
생전의 스티브 잡스도 자기 시계가 멋지다고 칭찬한 사람에게 그 자리에서 2000달러짜리 고급시계를 풀어 선물한 일화를 남겼다. 자신의 디자인 안목을 인정해 준 경의의 표시였단다. 잡스 신화를 가능케 한 ’특별한’ 그의 성정을 드러내는 일단이라지만 ‘선비는 자신을 알아주는 이를 위해 목숨도 내 놓을 수 있다’는 동양사상과 궤를 같이한다는 점에서도 주목하게 된다.
훗날 중국 제나라 제후가 된 ‘강태공’도 자신을 알아준 문왕을 만나기 전까지 낚시질로 세월을 보냈다. 70세에 이르도록 자신의 철학을 현실에 옮겨줄 주군을 찾아 미늘이 없는 민낚시에 매달려 허송세월했는데 인정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삶의 변수인지를 웅변하는 사례라 하겠다.
요즘 들어 그런 식으로 나를 격려하고 힘을 주는 인연들이 부쩍 늘어난 느낌이다.
목욕탕에서 행사장에서 내가 발걸음 하는 곳곳에 그런 이들이 포진하고 있다. 오랜시간 나를 만나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던 것처럼 착착 호흡을 맞추며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잦아진 것이다. 그저 감사하고 기뻐하기보다 무거운 책임감과 마음 빚으로 받아들이는 생각이 더 크지만 고무되는 현상이다.

-이 명함이다-
이른 시간 실로 오랜만에 찾은 약수터에서도 그런 에너지를 공급받는 경험을 했다.
예전에는 가까이 지냈지만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한 지인과의 인연을 통해서다.
약수터에 도착하니 새벽 운동을 하는 사람들 속에 반가운 얼굴들이 많았다. 그 지인도 있었다. 그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는 나를 붙들고 이런 때가 올 줄 알았다면서 온 몸으로 기뻐하는 모습을 보였다. 나 역시 소박하지만 열정적인 그의 성품을 좋아했던 터라 반가웠다. 이런 저런 안부를 묻는 와중에 자신의 지갑을 뒤적이던 그가 뭔가를 꺼내 불쑥 내밀었다.
아! 그것은 국회의원 선거에 처음 나섰던 1996년, 15대 총선 당시 사용했던 선거용 명함이었다.
젊고 앳되지만 세상을 접수하겠다는 의지만은 결코 만만해 보이지 않는, 오래 전 내 얼굴이 담긴 명함이 그의 손에 들려있었다. 무엇보다 선거 때 받아서 지갑에 넣은 이후 ‘단 한 번도 그의 지갑을 떠난 적이 없는’ 명함이라는 그의 설명이 내 마음을 숙연하게 했다.
그 극진한 정성이 놀라워 형언할 수 없는 감동에 빠져있는데 그가 다시 약수터 주변의 한 나무를 가리켰다. 20년 전 내가 심은 나무였다. 그는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는 그 나무를 볼 때마다 나를 생각했다며 웃었다.
약수터를 떠나 산을 내려오는 내내 생각했다.
아, 내가 뭐 길래 이런 사랑과 성원을 받고 있는가.
그동안 내가 이런 분들을 위해 한 일은 무엇이고 또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온 종일 진한 감동과 함께 내 머릿속을 맴돈 생각이기도 하다.
돌이켜보니 그는 예전 선거 때도 끊임없는 독려로 나를 깨어있게 한 훌륭한 조력자였다.
약수터에서 나무를 볼 때마다 나를 기억했다는 그의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닐 것이다.
날마다 쏟아냈을 무언의 간구가, 그 성원의 무게가 얼마일까 헤아리려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역사는 영웅의 독과점 결과가 아니다. 아무리 잘난 인물도 혼자만의 힘으로 뜻을 이뤄낸 사례가 없다.
시대적 상황과 민중의 요구, 또 조력자와 추종자들의 결집된 힘이 있을 때 비로소 영웅이 만들어지고 역사도 완성될 수 있었다.
성웅으로까지 추앙받고 있는 이순신 장군의 업적만 해도 그를 위해 열과 성을 다했던 유성룡, 이원익, 한효순, 정경달, 정탁 등 유무명 인사들의 조력이 아니었다면 결코 구체적인 성과를 만들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세계를 정복한 몽고의 영웅 징기스칸도 일찍이 추종자의 역량과 역할을 아는 리더였다. 적진의 노에출신 모칼리나 자신을 죽음직전까지 몰아갔던 제베를 자신의 추종자로 만든 것은 징기스칸의 뛰어난 리더십의 일면을 보여주는 사례라 하겠다.
더 이상 내 조력자들을 간과하는 어리석음은 없어야겠다. 그들을 알아보는 안목이야말로 뜻을 펴기 위해 세상에 나서려는 지금의 내게 가장 우선적으로 필요한 각성이었던 것을 이제 알겠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데 하물며 내 꿈을 위해 함께 해 줄 사람들이다.
조력자들과 함께 이번에는 반드시 오래동안 다져온 꿈을 이뤄보리라 다시한번 결기를 다지는 밤이다.
(2012.1. 22)
...홍문종 생각
흑룡, 2012
홍문종
흑룡은 날고
세월은 가고
시간은 줄고
미련은 늘고
벗들은 줄고
주름은 늘고
기억은 줄고
체중은 불고
민첩은 줄고
간 세월은 없고
온 기억은 있고
한 걱정은 가고
한 사랑은 있고
먼 기쁨은 갔고
건 믿음은 있고
헌 사람은 갔고
새 사람은 있고
흑룡이 나니
대지가 아니
하늘이 맞니
우리가 맞니
한 생명을 주니
큰 지혜를 얻니
또 사명을 받니
이 천십이 년이
(2012.1.22)
자유도 자유 나름
민족 최대 명절인 설날이다.
본격적인 민족 이동이 시작됐지만 오히려 무겁게 가라앉은 분위기다.
설날을 맞아 세뱃돈으로 한 밑천 잡으려던 아이들의 계획도 차질을 빚게 생겼다. 헐렁해진 지갑 탓에 예년보다 세뱃돈규모를 줄이겠다는 계획이 많다니 하는 말이다.
경기불황이 아이들에게까지 직격탄을 날리는 형국이어서 이래저래 착잡하다.
작금의 상황이 우리만의 문제라기보다 세계적 불경기 국면인 추세를 감안한다면 선전을 하고 있는 셈이라는 게 정부 측 주장이다. 세계 여러 나라, 특히 유럽 국가들이 고전하고 있고 그 여파로 세계 경제가 어려워진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위로가 되는 건 아니다. 상대적으로 운신의 폭이 좁을 수밖에 없는 서민의 삶을 생각하면 막막하기만 하다. 특히 서민가계의 부담을 덜어줄 마땅한 해법을 찾지 못하는 좌절은 생각보다 깊은 상처를 남기고 있다. 명절을 맞는 설렘이 없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
무엇보다 재벌가의 절제되지 않는 탐욕이 제일 심각하다. 창의경영 보다는 중소기업 적합업종에 손을 뻗어 그들의 설자리를 빼앗는 재미에 빠져있는 재벌들이 문제다. 심지어 재벌가 딸들이 소매업종인 빵 사업에 경쟁적으로 뛰어들면서 동네 빵집이 몰살되고 있다는 비난은 괜한 것이 아니다.
한심하고 부끄럽다.
꼭 이렇게까지 추태를 부려야하나 싶다.
일찍이 아담 스미스는 자신의 저서 국부론을 통해 개인이나 기업가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설파했다.
개인의 이기적인 사익추구 보장이 보이지 않는 손의 조정을 거쳐 부의 극대화는 물론 양질의 상품제공 기반으로 연결된다는 그의 이론은 꽤 오랫동안 지존의 지위를 유지해왔다.
그러나 오늘 날 시장경제 현실을 보면 반드시 그렇지 않다는 생각이다. 공정한 규칙을 외면하고 과도하게 사적 이익만 추구한 시장의 자유가 어떤 문제점을 초래하게 되는지를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다.
자율에만 의존하기엔 지나치게 불평등한 시장구조가 마음에 걸린다. 불평등한 구조가 부의 양극화 현상을 초래하고 있는 문제점이 눈에 들어온다. 결과적으로 그가 주장한 ‘자유’는 무분별한 사욕추구의 장이 아니라 창의경영과 사회적 책임이 전제된 의미였던 셈이다.
개인적으로 자유로운 시장경제 체제를 주장하고 있다. 정당한 부라면 적극적으로 인정해야 하고 더 나아가 국제 경쟁력을 위해서라도 어느 정도 부의 집중화를 막는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이른 바 1% 계층이 누리는 엄청난 부의 집중화 현상을 보면서 99%를 향해 그냥 참고 노력하고 기다리라고 하는 건 많이 잔인하다. 좀 더 허리띠를 졸라매라고 요구하기엔 그들이 처한 어두움의 실체를 외면하기 어렵다. 자유도 자유나름이다.
그야 말마따나 재벌 2, 3세가 국가와 민족이라는 큰 테두리를 잊고 소프트머니 배팅만 생각하거나 계열사 숫자 늘리기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둥 부의 사적 영역에만 치중하는 모습이라면 그들이 속한 미래는 뻔하다. 주어진 부를 지키지 못하는 것은 물론 조직의 화합과 단결마저 무너뜨리기 십상이다.
정치권까지 나서 재벌의 사익 남용을 막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고민하고 있는 작금의 현실을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안되겠다. 부의 편중화가 얼마나 심각하면 그랬을까를 염두에 둔다면 반드시 스스로를 자정하겠다는 움직임에 함께 하는 용기를 보고 싶다.
내년에는 고민거리 없이 좀 더 편안하게 지낼 수 있는 설 명절을 맞고 싶다.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평등하게 사람대접 받을 수 있는, 더불어 사는 여유도 함께.
(2012.1.20.)
... 홍문종 생각
떠날 때를 알아야
떠날 때를 알고 떠나는 사람의 뒷모습은 아름답다고 했던가.
그렇지 않으면 비루함만 남게 된다는 걸 미처 몰랐는데 이번에 알게 됐다.
돈봉투 사건을 처리하는 박희태 국회의장의 미숙한 처신을 통해서다.
국민적 관심으로 새벽부터 북새통을 떨던 박희태 의장의 공항 회견은 ‘역시나’로 끝났다.
‘기억이 희미해서 (돈 봉투 사건) 잘 모르겠고, 사죄하는 마음으로 4월 총선 불출마, 수사결과에 책임지겠다’가 전부인 의장의 신상발언에 정치권 전체가 부글거리고 있다.
본회의 사회권을 부의장에게 넘기고 사퇴압력에 시달리는 입법부 수장의 모습이 현실정치의 실체를 대변하고 있는 것 같아 한없이 씁쓸했다.
국회의원이 되어 첫 등원하던 날 ‘귀는 열 되 입은 닫으라, 지역구 활동은 열심히 하되 중앙에서의 움직임은 신중에 신중을 더하라, 많이 보고 기억에 담되 잘못된 정치를 닮지는 말라’며 정치선배로서 당부하시던 아버지의 말씀이 새삼 떠오른다.
자신의 선거 경험담을 털어놓던 선배의원(당의 최고 책임을 맡기도 했던 다선의원)의 얼굴도 생각난다.
오래 전 일이긴 하지만 첫 선거에선 30억이 남았고 두 번째 선거에선 10억 정도, 그 다음엔 본전이었다가 정치환경이 맑아지고 부터는 더 이상 남고 부족하기를 따지지 않게 됐다는 나름의 ‘산 증언’을 들려주었다.
15대 총선의 개인적 경험에 비춰 봐도 선거자금 운용이 무척이나 여유로웠다는 기억이다. 선배의원들이 이제 막 국회에 입성한 초선의원들에게 용돈하라며 일, 이백만원 씩 주머니에 넣어주는 풍경이 일상처럼 펼쳐지던 시절의 이야기다.
모르긴 몰라도 6선 의원의 관록을 자랑하는 박의장에게는 결코 생경하지 않은 경험일 것이다. 고액의 후원금을 거두어들이거나 선배의원들이 후배들에게 용돈을 챙겨주는 일들이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 정도 위치에 있다 보면 워낙 챙기고 수발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어서 실제로 본인은 모를 수도 있겠다 싶다.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선거를 치르다 보면 ‘돈봉투 상황’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그의 말이 진실이라고 믿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옹색한 변명으로 일관한 박의장의 기자회견은 당혹스러웠다.
스스로에게 족쇄를 채우는 자충수로 득보다 실이 컸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는 생각이다. 모르쇠 전략이 그 자신에게는 한 숨 돌릴 기회가 됐는지 모르지만 한나라당 깃발로 선거에 나서려는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가혹한 형벌이 되고 있는 지 현실을 알지 못하는 것 같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했다.
“솔직히 오래 전 일이라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잘못했습니다.
제 주변에 일고 있는 이 모든 구설이 다 못난 저로부터 비롯된 불행이라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알고 지었건 모르고 지었건 또 관행으로 빚어졌건 그 모든 허물의 근원인 저에게 책임을 물어주시기 바랍니다.
그동안 선배정치인들이 후배들을 격려하는 의미의 후원금이 여야 가릴 것 없이 널리 알려진 정치권의 비밀이었다 해도 시대가 바뀌어서 이런 일들이 문제시 되는 세상이 되었다는 사실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은 저의 잘못이 큽니다.
불미스러운 중심에 서 있는 처지가 부끄럽기 짝이 없지만 저에 대한 단죄가 잘못된 구시대 정치 관행을 마감하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는 시금석이 될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을 감히 가슴에 품습니다.
이렇게 불명예스러운 상황에서 정치인생을 마감하게 되어 부끄럽고 죄송합니다.
부디 책임져야 할 모든 죄를 물어 저의 부덕을 나무라시고 처벌해주시기 바랍니다.
기꺼이 감수하겠습니다 “
이렇게 말하고 흔쾌히 의장직을 내놓았다면 그나마 실책을 만회할 수 있는 상책이 아니었을까 싶다. 적어도 역대 최악의 일그러진 입법부 수장으로 기록되는 불명예는 피할 수 있었을 거라 생각하니 아쉽다.
그나저나 사사건건 약방의 감초처럼 나서서 감 놔라 대추 놔라 훈수를 두던 이른 바 쇄신파 의원들이 이번 돈봉투 사건에 지나칠 정도로 조용해서 이상하다. 유난히 돈 봉투 사건에 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그들의 침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혼란스럽다.
(2012.1.19)
...홍문종 생각
곧 새벽이다
정치판을 지켜보노라면 대부분의 정치적 현상이 그다지 큰 이변 없이 예상대로 흘러가고 있음을 종종 목격하게 된다.
지난 일요일, 한 달 여 동안의 대장정을 마치고 막을 내린 민주통합당 지도부 선출 결과도 그랬다.
남의 당 일이긴 하지만 우선 당장 총선에서 대척점에 서게 될 운명이기에 야당 사정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예상치를 내놓곤 했는데 역시나 다르지 않은 결과였다. 대표에는 한명숙 전 총리가, 최고위원에는 문성근씨를 비롯한 박영선, 박지원, 이인영, 김부겸 의원이 선출된 것이다.
정치를 화려하고 드라마틱하게 만들 문성근, 신선하고 세대교체 주역으로 등극한 젊은 피 박영선과 이인영, 구민주당 세력을 받치고 있는 박지원 그리고 한나라당에서 이적한 김부겸 등 상당히 다양하고 짜임새 있는 라인업은 참으로 절묘하다. 일부에서 호남의 퇴조를 위기국면으로 해석하는 이도 있지만 호남색을 탈피하면서 전국정당으로 갈 기회를 얻은 측면은 전략적으로 엄청난 성공이라 할 것이다.
특히 한명숙, 문성근 등 친노 세력의 선전이 갖는 의미는 결코 적지 않다. 야세 확장에 상당한 탄력을 주면서 공신 역할을 톡톡히 하게 된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 중 한명숙 카드는 최근 무죄 확정 판결로 정치적 탄압을 이겨낸 상징성만으로도 야권을 결집시키는 데 있어 상당히 의미있게 작용하리란 생각이다.
그렇다고 민주통합당에 장밋빛 미래만 보장되는 상황은 아닌 것 같다.
전대이후 최고위원 간의 첫 회의 테이블에서부터 감지되고 있는 서먹한 기류가 심상치 않다. 친노계와 민주계 사이의 갈등 조짐으로 확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게다가 통합진보당과의 야권연대 협상이 매끄럽지 않은 것도 자칫 민주당의 상승기류에 제동을 거는 악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동안 야권연대로 총선승리와 정권교체를 이뤄내자는 공동목표를 설정해 온 두 야당 사이가 확실히 전과 같지 않다는 분석이다. 전대 흥행으로 치솟은 민주당 지지도가 민주당 변심(?)의 원인이라는 호사가들의 입방아가 나돌고 있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실제로 민주통합당은 전당대회 특수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는 관측이다. 리얼미터의 주간 정례조사 결과, 34.7%의 지지율로 한나라당을 제치고 1위로 올라서 있으니 목에 힘을 줄 만 한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합민주당의 방심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민심은 냉정하고 안목도 높다. 민심을 두려워할 줄 아는 정치를 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느 결에 민심을 잃고 석고대죄를 외치게 될지 모를 일이다. 때를 놓치고 뜨거운 눈물을 흘리게 될 수도 있다. 지향하는 바가 다른 내가 민주당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고 있으니 뜨악하게 볼 수도 있겠지만 나름의 진실을 인정해주면 좋겠다.
실속 없는 헛발질로 모처럼 정치를 정화시킬 수 있는 기회를 떠나보내게 될까 두려운 마음이 있는 게 사실이다.
한나라당은 더 어려운 처지다.
어지간한 각오 없이는 결코 낙관할 수 없는 위기국면에 처해있는 상황이다.
이런 저런 당내 반발이 일고 있지만 민주당과의 승부를 위해서는 지금 진행되고 있는 비대위원회의 개혁작업이 순조롭게 결실을 맺도록 협조하는 게 최고의 선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위기에서 당을 구하고 조직원을 보호할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이다. 아무리 박근혜 위원장이 선거의 여왕으로 불리는 슈퍼스타의 자질을 갖고 있다하더라도 제대로 준비를 갖추지 못한 팀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플레이어 없이 '펠레' 한 사람으로 팀의 우승을 보장받으려는 어리석은 전략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팀을 정비해서 골키퍼나 레프팅 라이팅 센터 등 각각의 포지션을 받쳐줄 수 있는 용병을 라인업하는 일이 정말로 중요한 이유다.
그런 측면에서 정당마다 논의되고 있는 당 쇄신작업을 얼마나 다행으로 여기게 되는지 모른다.
일련의 개혁작업들을 정치발전의 초석을 놓는다는 자부심으로 지켜보고 있다. 그동안 정치권을 오염시켰던 나쁜 관행의 물을 빼고 있는 이 상황이 어느 측면에서는 통쾌하기도 하다.
물론 앞으로도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상처입게 될 가슴들이 적지 않을 것이고 그로인한 진통도 불가피할 것이다.
그럼에도 기쁜 마음으로 고통을 감내하겠다는 생각이다.
개인을 위한 것이라기보다 대한민국 미래를 위한 고통분담 차원에서 의연하게 극복해낼 생각이다.
희망의 새벽이 멀지 않았기에.
(2012 . 1. 16)
....홍문종 생각
미래를 꿈꾸자
'미래를 직시하고 상상력과 창의력을 활용하라'
‘현재에 만족하지 말고 더 다양한 분야에서 더 깊이, 더 넓게 가져가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자’
지난 12일 세계 최대 가전 전시회인 'CES 2012' 참관을 위해 라스베이거스를 찾은 자리에서의 삼성 이건희 회장의 어록이 언론 보도로 이목을 끌고 있다. 국내 제일의 재벌 기업을 이끌고 있으면서도 ‘정신 차리지 않으면 금방 뒤지겠다는 느낌에 더 긴장한다’는 그의 토로를 보며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궁금하다.
개인적으로는 고독한 삶의 그림자가 주는 깊은 울림이 생각의 여지를 갖게 했다. 이 시점에 있는 우리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적절한 조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상의 위치를 고수하기 위해 그가 흘렸을 눈물과 남모를 고독의 순간이 감지된 건 나의 지나친 민감함일까?
제대로 된 미래를 맞이하고 싶은 건 너나 할 것 없는 인간 본연의 본능일 것이다.
자신의 미래를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 발길이 문전성시를 이루는 점집 모습을 비추는 텔레비전 화면도 그 반증의 일환이라 하겠다.
미래 예측이 그다지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무리 먼 미래도 결국 가까운 미래의 연장선일 뿐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미래를 예견하는 일이 그다지 특수한 영역이 아니라는 내 주장에 동조하게 될 것이다.
과거는 미래의 거울이다. 결국 지나간 과거의 행적을 통해 미래를 찾을 수 있다.
미래를 결정하는 가장 확실한 인자는 자기 현실에 쏟는 투자량이다. 얼마만큼 현실을 충실히 채우기 위해 에너지를 쏟느냐에 달려있다.
학창시절 동창들의 경우를 봐도 그렇다. 고만고만한 성장 과정을 통해 자랐지만 저마다의 현실은 천차만별이다. 돌이켜보면 지금 우리들의 현실은 3,40년 전 한 교실에서 옹기종기 모여 있던 그 시절 저마다의 현실이 결정됐다는 생각이다. 과거의 그 어느 순간, 자신을 위해 얼마만큼 노력하며 투자하는 삶이었느냐에 따라 개인의 미래가 결정되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 아닐까 싶다.
아닌 게 아니라 이미 오래 전부터 지금의 내 모습을 예견하셨다고 말씀하시는 중학교 때 은사님도 계신다. 뵐 때 마다 금뱃지 정도의 작은 정치에 연연하지 말 것을 종용하시는 선생님의 관심이 내 가슴에 큰 여운을 남기며 새로운 에너지를 생성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매 순간마다 지금 자신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인가 점검하는 건 빼놓을 수 없는 인생 과정이라 하겠다. 언제 어디서든 지금 이 순간의 행동이 자기 인생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인식은 결코 잊지 말아야할 현실이다.
만반의 준비를 갖춘 수험생은 시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전쟁준비를 마친 군대 역시 전쟁터에서 비굴하게 꽁무니를 빼는 병사를 두려워할 일이 거의 없다.
그런 것이다. 위대한 미래는 그냥 주어지지 않는다. 그동안 우리가 피 땀 흘린 노력으로 대한민국을 개발도상국가에서 OECD 경제부국으로 만들어냈듯, 그 저력을 밑천 삼아 다시한번 우리의 미래를 신나고 멋진 현실로 빚어내자.. 세계를 리드하는 대한민국을 만들어보자. 결국은 우리에게 달린 일이다. 일등국가가 되기 위해선 그만큼의 역량을 뒷받침할 수 있는 일등국민의 존재가 반드시 필요하지만 우리라면 해낼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경계해야 할 요소가 없는 게 아니다. 현대를 사는 사람들이 보이는 지독한 이기주의와 철저한 현실주의 성향이 문제다. 그저 미래에 대한 꿈 따위는 아랑곳 없이 현실과 자신에만 집착하는 어리석은 우리들의 자화상을 돌아볼 일이다. 현실을 원망하고 저주하는 악순환의 굴레에 끼어 허덕이다가 대책없이 무너지는 좌절의 현장이 거기 있을 것이다. 그렇게 현재에 매몰돼 있다가 미래가 현실이 되는 시점이 되면 자신의 오류를 보려는 겸허함보다 남의 탓 하기에 바쁜 염치없는 교만함은 또 어쩌자는 건지.
반드시 지워버려야 할 걸림돌임을 알아야겠다.
우리가 희망하고 꿈꾸는 미래사회의 실현, 그다지 거창한 일은 아니다.
투명하고 깨끗한 운영으로 신뢰와 찬사를 받는 정치, 학생들과 교사가 즐겁고 행복한 교육현장, 정당한 근로대가로 일할 맛이 넘치게 하는 산업현장, 생각해보면 지극히 평범한 욕구가 어우러질 수 있는 사회를 필요로 할 뿐이다. 단지 그런 사회를 만들고 싶어하는 저마다의 관심이 함께 할 수 있으면 되는 것이다. 현실을 직시하고 시시비비를 가려서 우리의 에너지를 우리가 원하는 사회로 정조준하면 되는 간단한 작업이다.
(2012.1.15)
...홍문종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