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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5월 15일 일요일

홍문종 생각 - 낀 세대

 
낀 세대
스승의 날은 교육자의 길을 걷고 있는 내게 남다른 감회를 선사한다.
제자들의 방문을 받고 은사님을 찾아뵈면서 스승인 동시에 제자가 되어 추억 속에 흠뻑 빠져드는 호사가 허락되는 날이기도 하다. 이날만큼은 모두가 40년 세월의 간극을 훌쩍 뛰어넘는다. 지금의 우리보다 더 젊은 선생님들과 까까머리 중학생인 우리들이 한데 어우러져 추억의 공간을 채우는 꿈같은 시간이다.
안타까움이 있다면 흐르는 세월을 어쩌지 못해 유명을 달리하시는 은사님이 늘고 있는 현실이다. 십수년 전, 스승의 날을 맞아 은사님들을 처음 모실 때만 해도 제법 잔치 분위기가 나는 규모였는데 갈수록 단촐해지는 느낌이다.
한 분 두 분 그리운 얼굴들이 생과 사의 인연을  달리하며  우리 곁을 떠나시기 때문이다. 
올해만 해도 매년 모셔오던 이동범 교장선생님의 빈자리를 지켜봐야 하는 슬픔이 있었다.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그런 이유로 올 스승의 날은 더 없이 쓸쓸하게  보내야 했다.  
김기열 선생님이 선약 때문에 불참하시니 조성복, 장신재 두 분 선생님만 모시는 자리가 되고 말았다.
그나마 두 분 은사님들이  아직은 건강하고 의욕적인 모습이셔서 위안이 되긴 했지만.
특히 중3때 담임을 맡으셨던 장신재 선생님(언젠가 김한길 전 의원이 잊지 못할 스승으로 지목하던 분이다)은 칠순의 연세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강단 있는 모습을 보여주셨다. 백수에 돌아가신 당신 은사님 경우를 들어 50대인 우리들은 아직 아이(?)에 불과하니 지금부터 새로운 삶을 준비해도 늦지 않았다고  격려하셨다.
무엇보다 예전부터 나의 가능성을 확신하고 계셨다며 무한 신뢰와 사랑의  덕담을 아끼지 않으셨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더니 오래 동안 익혀온  묵은 꿈이   '결실'로 실현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단숨에  파죽지세의 기세를 충전해준  축복이었다.
 
君師父 一體라며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던 때도  있었다.
그 시절을 비교하면 지금은 스승의  위상이  말이 아닌 상황이라 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삭막하고 힘겨운 일상에서 차지하고 있는 스승의 역할은 여전히 지대하다. 
어떤 인연이냐가  한 사람의 인생에  중요한 결정이 되는 점도 별반 달라진 것 같지는 않다.
위대한 인물 뒤에는 반드시 그보다 더 위대한 스승이  인격적 감화와 사상적 영향을 미치는 과정이 있었다.    
플라톤에게 소크라테스, 아난에게 석가, 안연에게 공자, 안연에게 퇴계선생이 스승으로 존재한 인연도 우연이 아닌 것이다.   

이번 기회에   자신의  현재를  위해  헌신하신 스승의 존재를  되돌아보는 건 어떨까 싶다. 
감사한 마음으로 은사님을 찾아뵙고   또 다른 가르침을 받을 수만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일은 없다.
누군가 나를 가르치고 이끄는 존재가 곁에 있다는  건 그 자체만으로도  행복이라는 사실을 알 게 될 것이다.  
다만  좋은 스승과 제자 관계에   빠져서는 안될 덕목이 있는데  그것은 신뢰다.
스승이  제자를  잘 알고 있고  제자는 스승을 인격적, 도덕적으로 신뢰할 수 있다면  그 외의  일은  아무것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사제 관계 속에서 다  자동적으로 해결될 수 있다.  
그만큼 스승의 존재는   '슈퍼 울트라 짱'이다. 

오랫만에 만나는 제자들을 통해서도 새삼  깨닫는 바가 적지 않다.
그들의 얼굴을 점령해가고 있는 주름살을 보면서 세월의  변화를  실감하고 있지만   세월이   바꿀 수 있는 건 외형 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가끔씩  '아 , 원래 얘가  이런 사람이었나' 싶을 만큼  '완전한 변신'으로  놀라게 하는  제자를 만나기는  하지만  그것은 아주 예외적인 케이스에 불과하다.    
어느 형태든  '그 녀석'의 현재와 과거가 상호  연관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을 본다. 
학교 다닐 때의 품성이 지금까지 남아있는 걸 보면서  숱한 세월도  인간의 기본적 품성이나 성향을 어쩌지 못하는 강력한 자연의 법칙을 실감하게 된다.   
어찌보면 참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 것들이 인연을 이어주는 매개가 되고 있으니 말이다.


스승의 날,
구구절절 옳으신 선생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건  특별한 행복이다.  
또 감사할 일이다. 특별히 나처럼 스승이기도 하고 제자이기도 한 낀 세대 입장에서는  더욱 그런 것 같다.  
지금 이 순간  이 낀 세대의 바람을 피력하자면
1.  말씀 잘 받들어서  선생님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훌륭한 제자가 되고 싶다는 것
2. 내 제자들에게도   그  가르침 대로 용기와 희망을 주는 선생이 되고 싶다는 것.      
3. 사랑을 전하는 제자이고 스승이 되고 싶다는 것.
                                               (2011.5.15)                    
                                            .....홍문종 생각                  

2011년 2월 6일 일요일

홍문종 생각 - 개헌, 지금은 아니다

개헌, 지금은 아니다

대통령에 이어 여당 내 주류 진영이 본격적인 개헌 세몰이에 나서는 모습이다.
35명의 여당 의원들이 모여 개헌 추진의 뜻을 함께 하는 간담회를 열었다는 소식도 들린다.
주체가 누가 됐건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기 위한 정치적 토대를 만들기 위해서’ 라는 개헌의지를 반박할 생각은 없다. 그 역시 국가와 국민을 위한 충정에서 비롯됐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녹록한 상황은 아닌 것 같다.
무엇보다 개헌 적기를 놓쳤다는 생각이다.
싸늘한 민심도 어두운 전망에 일조하는 분위기다.

대통령 자신의 임기를 줄이는 살신성인의 자세로 정권 초기에 개헌을 추진했다면 혹 얘기가 달라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의 개헌 언급은 정부와 여당의 흑심으로 의심받을 수 밖에 없는 불리한 정황이다.
1948년 첫 헌법이 제정된 이래 9차례에 걸친 개정 과정에서 단 한차례만 빼고는 전부 정략적인 의도로 개정되는 과정을 지금껏 지켜본 셈이니 오죽할까 싶다. 더구나 구제역 피해, 물가폭등, 전세대란 등에 짓눌려 있는 국민들이다. 그런 국민들 귀에 정치권의 개헌 논의가 제대로 들어올 리 만무다.
늘 그렇듯 기득권 다툼을 위한 이전투구로 싸잡혀 욕먹기 딱 좋은 구조다.
이 같은 정황은 개헌을 찬성하는 의원들이 안고 있는 고민거리일 것이다. 설 연휴 동안 지역 민심을 체감했다면 그 공포심(?)은 더 할 것이다. 대부분의 민심이 개헌과 동떨어져 있을 텐데 조만간 선거를 앞두고 있는 입장으로는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닐 터일테니 말이다. 국민의 뜻에 부합하지 않는 정치행위에 뭐라고 마땅히 변명할 거리도 별로 없을 것이다.
정치권에 대한 깊은 불신도 만만치 않은 장벽 중 하나일 것이다. 국민에게 불신을 받는 의원들이 권력과 관련된 개헌을 이야기하면 외면당하기 쉬울 거라는 한숨도 무리가 아니라는 생각이다.

문제는 정치권이 국민으로부터 얼마나 신뢰를 받고 있느냐에 달려있다.
신뢰를 잃어버린 정권을 향한 국민의 냉담함이 얼마나 매몰찬지 앞서의 여러 정권들을 통해 익히 경험한 바다. 그런데도 실패의 역사는 늘 똑같이 반복되기 일쑤니 모를 일이다.
이번에도 익숙한 풍경이 개헌 정국을 둘러싸고 펼쳐지고 있다. 일련의 개헌 주장 논거를 보면 참여정부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개헌 실패를 '반면교사'가 아닌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는 우를 범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
참여정부 때도 원포인트 개헌 제안이 실패한 적이 있다. 결정적 이유는 노 전 대통령을 신뢰하지 않고 등을 돌렸던 민심에 있었다. 당시 청와대나 대통령이 수없이 진정성을 강조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은 개헌 추진 배경에 뭔가 있을 거라며 정략적 노림수에 대한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그렇게 되기까지 정계개편 논의에 개입하는 등 정파적으로 비칠 수 있는 행보를 보였던 노 전대통령의 자업자득인 측면도 적지 않았지만 말이다.

이명박 대통령도 개헌 정국을 주도하는 듯한 언급 보다는 조금 다른 각도로 지난 반 방송 좌담회 기회를 활용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대통령께서 진정으로 개헌을 국익을 위한 기회로 생각하신다면 이런 내용으로 국민적 동의를 구해보는 건 어떨까 싶다.
" 개헌이 국익을 위해 굉장히 중요한 아젠다임에도 취임 초에는 다른 일들이 많아서 손댈 수 없었다. 그런데 굉장히 민감한 주제가 되다보니 지금의 내게 굉장히 벅찬 과제가 되어버렸고 자칫 정치적 의도를 의심받는 환경에 처하게 됐다. 그래서 다음 정권이 개헌문제를 해결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생각이다. 다음 정권의 개헌 작업에 일조하는 의미로 개헌에 대한 모든 가능성과 찬반 논리 등을 집대성해서 개헌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지침서를 만들어 보겠다"
만약 이런 식의 처세를 보이셨다면 대통령을 향한 정략적이거나 정파적이라는 의구심도 불식시킬 수 있고 또한 마무리할 일들 많은 임기말을 다른 전임 대통령들 보다 훨씬 알차게 보낼 방법이라고 본다. 특히 임기 말 과제를 마무리 못하고 물러나는 불행한 결과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가장 획기적인 안전장치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개헌의 당위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다만 그 진정성에 신뢰가 실리지 못한다면 문제가 되는 것이다.
진정성을 평가받고 싶다면 다음 정권에서 개헌 추진이 용이할 수 있도록 지금은 필요한 여건을 미리 준비해 놓는 정도로 방향을 재 설정하는 게 현명하다. 혹여라도 전략적인 접근으로 개헌 정국을 돌파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무모함에 불과하다.
파국을 각오한다면 모를까.
개헌 정국으로 가뜩이나 지쳐있는 국민들을 흔드는 불행한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2011. 2. 7)
....홍문종 생각

2010년 11월 3일 수요일

홍문종 생각 - 신뢰의 리더십에 주목하자


신뢰의 리더십에 주목하자



누군가의 호의로 ‘신뢰의 속도’ 저자, 스티븐 MR 코비의 조찬 강연회에 참석했다.

신뢰 전문가로 국제적 명성을 떨치고 있는 그는 초베스트셀러 '7-habits'로 우리에게 익숙한 스티븐 코비의 아들이기도 해서 친근감이 더해지는 인물이었다.

이른 새벽시간인데도 참석한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낯익은 정관계 인사들도 눈에 띄었다.



코비는 신뢰가 있으면 일의 속도가 빨라지고 비용이 절감되는데 이것이 곧 국가 경쟁력이 된다는 내용을 기조로 신뢰의 핵심 개념을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신뢰는 도덕이 아니라 경제적 동력이고 리더십의 으뜸 요인이다. 또 배움을 통해 개선이 가능한 기술이기도 하다.

그는 ‘평판을 쌓는 데는 20년이 걸리지만 무너뜨리는 것은 5분도 걸리지 않는다’는 워렌 버핏의 어록이나 ‘식량, 군대, 신뢰 등을 핵심요소로 하는 정치에서 군대나 식량은 경우에 따라 포기할 수 있지만 지도자의 신뢰 만큼은 조직의 생존을 위해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덕목’이라고 강조한 공자의 가르침을 인용해가며 신뢰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신뢰지수가 낮은 대한민국 사회에 대한 우려도 표명했다. 하지만 우리의 성품과 역량으로 볼 때 고신뢰 사회로 갈 수 있는 기회가 아직 유효하다는 덕담으로 희망의 여지를 남겨주는 센스를 잊지 않았다. 조직과 리더가 신뢰를 쌓기 위한 기회를 실기하지 않는다면 대한민국 사회는 충분히 신뢰회복의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요지였다.




여러 면에서 유익했던 그의 강연은 가슴에 와 닿는 부분이 많았다.

특히 ‘내가 누구를 신뢰하느냐 보다 누가 나를 신뢰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대목이 인상 깊었다. 덕분에 ‘나는 누구인가’라는 자문이 하루 종일 화두가 되어 내 머리 속을 맴돌았다.

교육자로서 정치인으로서 얼마나 신뢰받고 있는지 나의 현실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신뢰의 빛나는 가치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의 신뢰지수가 저조한 현실은 안타까운 일이다. 인간관계에 있어 가장 많이 거론되는 단어가 신뢰임을 감안한다면 아이러니한 현상이기도 하다.

형성과정은 물론 증명하는 일 또한 쉽지 않은 점도 문제라면 문제다. 그렇기 때문에 신뢰의 가치가 정금처럼 빛날 수 있게 됐는지 모르지만.

사회가 도약하기 위해서는 신뢰를 바탕으로 한 사회적 완성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은 불문가지다. 신뢰의 가치관 정립을 위한 좀 더 적극적인 노력들이 있어야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막연히 개인의 가치나 사회의 도덕적 규범으로 판단하기보다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경쟁력 측면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인식이 있어야겠다.



신뢰를 주제로 한 코비의 강연에 청중이 몰리는 현상도 어쩌면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그만큼 신뢰의 리더십을 갈구하는 대중의 갈증이 반영된 현상은 아닐까 싶다.

다른 나라에 비해 현격히 낮게 평가되고 있는 신뢰 관련 수치도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실제로 우리는 지금 신뢰 상실의 후유증을 깊이 실감하고 있다.

도처에 아무 것도 믿을 수 없다는 한숨소리다.

서로를 향한 불신의 ‘독’이 저마다의 부메랑이 되어 상처를 헤집고 있지만 속수무책일 정도로 빠르게 황폐화 되고 있는 현실을 목도하고 있다.

심지어 일종의 성역이었던 부모 자식 사이조차도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 부모자식 간 불화가 참사로 이어져 신문의 사회면을 장식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런 대한민국을 구명하고 치유할 수 있는 건 오로지 신뢰회복 뿐인 것 같다.



우리의 현실을 보다 냉정하게 진단할 시점이다.

어떻게 하면 서로 신뢰하고 의지할 수 있는 사회를 구축하게 될 지에 대해 깊이 고민하는 국가 지도자의 진정성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상황이다.

그렇다고 지도자 한사람의 노력에만 기대자는 얘기가 아니다. 모두의 공동 관심으로 신뢰를 키우고 우리사회를 도약시키고자 합심하는 노력이 있어야겠다.

일에 대한 분명한 목표와 책임의식 그리고 반드시 결과물을 낼 수 있는 신뢰의 리더십으로 대한민국의 21세기를 견인해 줄 지도자를 갈망한다.

모두가 거의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지 않을까 싶다.


(2010. 11. 3)
....홍문종 생각

2010년 8월 2일 월요일

홍문종 생각 - '투캅스; 이야기

'투캅스' 이야기



배우 안성기와 박중훈이 능청스런 명품 연기로 콤비를 이뤘던 ‘투캅스’는 재미있게 봤던 영화 중 하나다. 그런데 오늘 텔레비전 뉴스를 통해 만난, 영화가 아닌 현실에서 맹활약(?) 중인 ‘투캅스’들은 씁쓸함을 남긴다.

경찰과 불법업소 주인 사이의 먹이사슬로 얽힌 뒷거래에 관한 사건인데 발단은 유흥업소를 운영하면서 세금 43억여만원을 포탈하고 미성년자를 고용해 성매매를 알선한 죄로 업주가 구속되면서부터다. 이런 불법행위에도 불구하고 10여 년간 경찰의 단속대상이 되지 않은 사실이 불거지면서 무려 66명의 경찰이 관련 혐의로 감찰 조사를 받은 것이다.

그 결과 6명의 경찰이 해임되거나 파면되고 33명이 감봉 또는 견책조치 됐는데 이마저도 ‘제식구 감싸기’라는 질타를 받고 있으니 경찰 체면이 말이 아닌 상황이다.



불법을 단속해야 할 경찰이 문제 업소와 결탁해 뒤를 봐주는 ‘유착형 비리’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사행성 게임장 업소를 대상으로 단속 부서 요원들이 업주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단속 정보를 사전에 유출시키는 방법으로 보호하는 정도는 새삼 놀랄 일도 아닐 정도고 심지어 폭력조직이 운영하는 안마시술소에서 금품을 받아온 경찰이 성매매 신고자의 신원을 유출시켜 보복폭행을 당하게 하는 일까지 있으니 그 치부의 수위가 어느 정도인지는 짐작할 만하다.

문제는 이처럼 망가진 경찰조직이 우리사회의 원천적 자본이랄 수 있는 신뢰에 직접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측면이다. 실제로 우리의 신뢰지수는 크게 나빠져 있는 상황이다. 세계가치관조사(World Value Survey) 결과 한국인은 10명 중 3명만이 남을 믿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이는 신뢰지수가 가장 높은 스웨덴(6.8명)의 절반에도 못 미치고, 중국(5.2명), 베트남(5.2명)보다도 낮은 수치다.

우리 사회의 불신의 정도가 얼마나 심각해져 있는지 짐작 할 수 있을 것이다.



부패경찰의 타락상에 대한 사회적 지탄은 상상 이상이다.(그 중에 묵묵히 자기 본분을 지키며 최선을 다하는 분들이 없는 건 아니다) 이래놓고 무슨 수사권 독립을 얘기하고 있느냐는 개탄의 목소리 앞에서 자신들을 위한 항변에 나설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지 궁금하다.

국회에서 행정자치위원회 활동을 통해 경찰 업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3D직종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불분명한 출퇴근 시스템이나 머리와 몸을 동시에 쓰면서 받는 스트래스 등을 생각한다면 너무나 힘든 직업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래서 경찰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경찰을 적극 옹호하는 親경찰론자였던 내가 오늘만큼은 그들을 변명해 줄 아무 말도 찾을 수 없었다. 나 자신의 치부를 들킨 것 처럼 부끄러웠다.



그러나 타락했기 때문에 권한을 축소하거나 박탈하는 식의 대응은 적절한 해법이 아니라고 본다.

개선의 여지없이 외면한다고 해서 저절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미운자식 떡하나 더 주는 심정으로 더 적극적인 관심과 자극으로 경찰의 환골탈태를 유도하는 게 민주시민의 역할이 아닐까 싶다.

그런 관점에서 평소 경찰조직을 거듭나도록 하기 위한 방안으로 가지고 있는 개인적 소신을 피력하고자 한다.

무엇보다도 경찰의 분권화와 봉급 인상 문제가 가장 시급하다고 생각한다.

업무량에 비해 지나치게 미흡한 박봉이 부패에 둔감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판단 때문이다. 처우개선으로 경찰의 사기가 진작된다면 업무에 대한 자긍심이 부패의 자정지수를 높이게 되는 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 다음 관건은 자치경찰제 도입과 시행이다.

어떤 제도에서도 10%의 부패는 불가피할 지 모른다. 자치경찰제가 조직의 부패를 축소시키는데 기여할 수 있는 효과가 크다고 기대하진 않는다. 다만 자치경찰제 도입이 경찰조직의 대민 서비스에 대한 의식구조를 바꿔주고 그 질을 높일 수 있는 보완책의 일환으로는 활용 가치가 크다고 보기 때문에 자치경찰제 정착을 주장하는 바이다.

반면에 경찰대학은 한시라도 빨리 폐지돼야 한다는 쪽이다. 특히 혈연 지연 학연 등으로 움직이는 현상이 일상화 되어있는 우리의 사회적 구조에서는 경찰대학의 독식현상이 바람직하지 않게 보이는 건 사실이다. 구성원끼리의 긍정적인 경쟁구도를 위해서도 경찰대학 제도는 폐지돼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경찰의 제한적인 수사권도 걸림돌이다. 독과점 방지 차원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다. 이번 기회에 ‘수사권 이양’ 문제를 적극적으로 검토되었으면 좋겠다. 검찰과 경찰, 고비처 등의 조직이 서로 견제하고 경쟁하는 구도가 돼야 사정 기능도 강화할 수 있고 대국민 서비스의 질도 개선될 수 있다.

견제와 협력을 통한 책임과 의무가 만들어내는 환상의 콤비 플레이를 기대하는 건 지나친 낙관이려나?



당분간 국민의 뇌리 속에 박힌 경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어쩔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일부 경찰에 해당되겠지만 국민에게 준 상처는 정말로 많은 시간이 흐른 후에야 온전하게 치유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더라도 이를 해소하려는 지속적인 노력은 이어져야 한다. 각오와 결기의 중무장과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경찰 스스로 해결해내야 할 몫이라는 점을 잊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경찰이 민중의 지팡이인 본연의 모습으로 태어날 수 있기를 바란다.

부디 기대한다.
(2010. 8. 2)
....홍문종 생각

2010년 5월 1일 토요일

홍문종 생각- 신뢰

신뢰

관심을 끄는 외신이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웨삼 엘-하나피와 사비르한 하사노프의 이름을 갖고 있는 2명의 미국인이 예멘에서 컴퓨터기술 등으로 알-카에다를 지원한 혐의로 미 연방검찰에 의해 피소됐다는 CNN 방송을 통해 접했다. 30대의 이 두 젊은이들은 알-카에다가 테러집단이라는 사실을 알고서도 이들 대원을 접촉하거나 이들에게 전달할 디지털 시계 7개를 구매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멕시코인들이 상상을 초월하는 방법으로 아리조나 국경을 넘다가 체포되는 사건도 있다. 자동차 곳곳에 숨은 그림처럼 들어앉아 국경을 넘으려던, 목숨 건 이들의 밀입국 장면은 여러 문제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미국이 기회의 땅으로 존재하는 현실을 실감나게 했다.
앞서 영국의 데일리 메일 인터넷 판에서는 미 국민 70%가 가족보다 국가를 더 사랑한다는 시장조사 결과를 보도했다. ‘누굴 가장 사랑하느냐’는 (시장조사 전문기관) ‘입소스’ 질문에 ‘(배우자를 포함한)가족보다는 국가’라고 대답한 반응이 제일 높았다는 내용이었다.

국가가 우선이냐 개인이 우선이냐 하는 망설임은 우리에게 늘 딜레마로 상존하는 명제다. 서로에게 있어 필수불가결의 관계로 묶여있으면서도 늘 국익과 사익 사이의 갈등과 충돌에 노출될 수 밖에 없는 불가피함이라고나 할까.
개인의 행복이 국가의 폐망에도 불구하고 항구적으로 보장될 수 있다거나 국민을 불행에 빠뜨린 국가가 홀로 융성한 국운의 혜택을 누릴 수 있다고 믿는 경우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개인과 국가를 따로 떼어 생각하는 자체가 무모하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관련, 가까운 역사를 통해 찾을 수 있는 교훈도 적지 않다.
이완용 등 을사오적은 나라를 팔아 사익을 추구했고 안중근 의사 등 애국지사들은 국익을 위해 목숨을 내놓고 애국적 결단을 실행하신 분들이다.
이들에 대한 역사의 응답은 이미 보여지고 있는 그대로다.
을사오적은 매국의 댓가로 잠깐의 ‘행복’을 구가했을지 모르지만 1세기를 넘긴 지금까지도 그들의 후손은 ‘매국의 치욕’을 감수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애국지사들은 귀한 생명을 내놓기는 했지만 그들의 숭고한 자취는 후대에 길이길이 추앙되는 영예를 얻었다.

서두에 언급한 외신에서도 국가와 개인 간의 딜레마가 존재하는 미국의 현실이 보인다.
알-카에다를 지원하는 미 국민의 범죄 사건과 미국민 70%가 가족보다 국가를 우선시한다는 의식조사 결과가 공존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분명한 건 개인의 이익이 더 크면 나라를 배반할 수 있는 국민이 나올 수 있는 현실을 볼 때 무턱대고 국가와 민족을 위해 개인의 모든 것을 희생하라는 강요가 더 이상 능사가 될 수 없게 된 현실이다.
하지만 불법 이민자들에 대한 미국내 반감과 강력한 불법 체류 규제(아리조나가 최근 이 법안을 통과시켰다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목숨을 걸고 미국 땅에 진입하고 싶어하는 현상에서 미국의 또 다른 모습을 보게 된다.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아직은 미국이 자국민은 물론 세계로부터 신뢰를 잃지 않았다는 생각에서 비롯한 희망의 조짐 같은 것 말이다. 미국이 얻고 있는 이 신뢰가 위기와 실의의 미국을 견인할 수 있는 강력한 힘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있다.
많은 인명이 희생된 천안함 사태에 대해 국가가 최고의 예우를 다하는 것 역시 국민신뢰를 이끌어 내기 위한 일환일 것이다. 그러나 최고의 예우보다 더 빨리 그리고 더 크게 국민 신뢰를 얻을 수 있는 건 신속한 진상규명이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그것도 국민 대다수가 속 시원히 받아들일 수 있는 확실한 규명이 이뤄졌을 때 가능한 이야기라는 것도.
당국도 이 점을 중시해서 하루 빨리 국민안정을 되찾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주기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다.

개인과 국가가 운명을 함께 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필요한 이음새는 바로 ‘신뢰’다.
신뢰가 중시되는 이유일 것이다.
우리도 '신뢰'의 내공이 발휘되는 국력을 갖고 싶다. (2010.5.2)
...홍문종 생각


홍문종 네이버 블로그 : http://blog.naver.com/mjhong2004

2010년 4월 21일 수요일

홍문종 생각- 스폰서 검찰

스폰서 검찰



때 아닌 ‘스폰서’ 논란이 대한민국 최대의 막강 파워조직인 검찰청의 검사들의 혼을 빼놓고 있다.

비난과 조롱과 분노로 뒤엉킨 국민 여론이 폭포수처럼 검찰을 향해 쏟아지고 있으니 왜 아니겠는가.

검찰 주변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촌지와 향응, 심지어 성 접대에 이르기까지 상상을 초월하는 접대문화의 어두운 관행이 구체적인 제보와 치밀한 취재과정으로 그 실체를 드러내 충격을 주고 있다. 검찰 조직의 심각한 ‘부패현황’이 안방으로 정밀하게 중계되면서 물론 타성에 젖어 불감증에 빠져버린 검사들의 개념없는 행태도 여과없이 노출됐다.

덕분에 검찰의 체모는 말이 아니게 됐다. 정말로 쥐구명이라도 찾아들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25년간 검사들을 후원해왔다는 한 건설업자의 전방위적인 폭로가 공중파 방송을 탄 이후의 풍경들이다.



악어와 악어새 같은 검사와 스폰서의 어두운 역사로 사회적 파장이 일게 된 건 처음있는 일이 아니다. 갖가지 유형의 법조계 비리혐의로 세간에 각인된 사건만 해도 적지 않다.

지난해 6월 유력한 선배, 동기들을 제치고 검찰 총장 후보로 발탁됐던 천성관 서울중앙지검장을 낙마시킨 것도 스폰서와의 부적절한 관계였다. 사업가와의 돈거래나 동반여행 등에 얽힌 의혹이 인사청문회의 문턱을 넘지 못한 것이다.

검사가 과연 어떤 존재인가.

대한민국에서 제일 어렵다는 사법고시를 통과한 명실상부한 최고의 두뇌집단에 속하는 절대 권력체다. 특히 소위 그들만의 리그로 얼기설기 엮이는 혼맥, 인맥, 혈맥 등의 영향력 역시 만만치 않다.

그런 검사들이 그것도 고위급 검사들 까지 줄줄이 건설업자의 향응에 코가 꿰어 차마 보기 민망한 상황에 놓인 현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르겠다.

최고의 엘리트 집단이 부패하게 되면 나라의 존립근거가 흔들릴 만큼 위험해진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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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사건으로 검찰은 대다수 국민들로부터 경원시 당하고 있다. 설사 그렇다 한들 할 말도 없을 것이다. . 존경은커녕 실오라기만큼의 믿음마저도 냉랭한 눈길 속에 얼어붙어 버렸으니 오죽할까 싶다.

솔직히 개인적으로 이번 사건에 대해 총체적인 진단을 내놓을 만큼 잘 알고 있는 건 아니다.

분명한 건 엘리트 집단일수록 청렴함이 전제돼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래야 그 조직이 살아남을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 검찰이 얻을 수 있는 신뢰지수는 몇 점이나 될까 싶다. 모르긴 몰라도 그다지 후한 평점은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라는 생각이다.

타락의 조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청렴의 기준을 세울 수 있는 미국은 그나마 저력있는 국가다. 매사 자본 논리에 맞춰 돌아가는 제도적 단점을 뺀다면 그런대로 깨끗한 시스템을 유지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미국사회의 가능성을 보게 된다.

반면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받을 수 있는 집단이 선뜻 떠오르지 않는 우리의 현실은 답답함 그 자체다.



이번 사건은 대한민국 최고 권력 기관의 타락상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많은 우려와 불안을 낳고 있다.

외부인사가 주도하는 진상규명위원회를 설치하는 등 검찰의 발 빠른 진상 규명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은 의혹의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다. 아마도 이전 사건 당시 ‘제식구 감싸기’에 그쳤던 검찰의 전력(?)이 자초한 결과다. .

오히려 이번에도 변죽만 올리고 그칠 수도 있다며 특검설치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다. 자기 문제를 안고 있는 검찰에게 과연 타인을 정죄할 수 있는 기능을 맡길 수 있겠느냐는 우려까지 제기되고 있다.

검찰로선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와 다른 방식의 검사 임용제도를 연구해 보면 어떨까 싶다. 사시를 패스하고도 일정 기간 동안 숙련된 과정을 통해 자질을 향상시킨 후 검사에 임용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그것이다. 대신에 기존보다 훨씬 더 나은 대우와 명예로 보상해 준다면 검사의 질적 향상은 물론 우리나라 법조계에도 긍정적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큰 전환점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검찰의 기소 독점주의를 보완하는 차원에서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하거나 (현재 시범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국민배심원제도 확대를 고려해 보는 것도 처방이 될 수 있다.

특히 검사들의 범죄에 대해 가중처벌을 적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본다.



모쪼록 검찰이 이번 시련을 통해 새로운 모습으로 국민 신뢰를 회복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검찰도 검찰이지만 대한민국 운명을 위해서도 바람직한 일이다. 깨끗하고 새로운 기운으로 21세기를 주도하는 대한민국의 새로운 리더로 새겨질 수 있기를 바란다
.(2010.4.22)
....홍문종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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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월 23일 화요일

홍문종 생각- 신뢰 이야기

신뢰 이야기



세계 자동차 시장의 지존이었던 토요타 자동차 몰락의 단초는 ‘품질 결함’이었다. 대량 리콜 사태로 파생된 불신이 ‘1등 품질’을 기반으로 한 토요타의 명성을 순식간에 ‘사상누각’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최고 품질’ 약속을 저버린 토요타의 배신을 향해 내려진 소비자의 준엄한 심판인 셈인데 지극히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약속 불이행으로 인한 파행은 기업의 경우만이 아니라 개인적인 인간관계에서도 치명적으로 작용한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건 약속을 지키고자 노력하는 일은 정말로 중요하다. 복잡한 생활 속에서 약속을 온전하게 이행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지만 그렇다고 면책이 용납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엊저녁 친구들과의 ‘해프닝’은 약속에 대한 의미를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됐다.

꼭 만나야 할 용건으로 저녁 8시 죽마고우 둘과의 약속이 있었다. 다들 바쁜 친구들이라 겨우 조율해서 만든 일정이었다. 약속 장소는 군학협력 관계로 25사단장과의 사전 약속이 있었던 나 때문에 서울과 양주 중간 지점으로 정해졌다.

결론을 말하자면 오래간만에 친구들을 만나는 기대감을 줬던 이 약속은 씁쓸한 여운만 남기고 깨져 버렸다. 자동차를 이용한 나와 A는 별 문제가 되지 않은 약속 장소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B에게 불편한 위치였던 게 화근이 된 것이다.

먼저 도착한 나와 A가 한 시간이 넘도록 기다려도 나타나지 않은 B에게 전화를 걸자 뜻밖에도 B는 화를 내고 있었다. 약속 장소를 찾다가(A가 약속 장소를 제대로 알려주지 않아서) 헤매던 끝에 타고 오던 택시를 돌려 집으로 돌아가며 화가 나 있었던 것이다.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싶으면서도 모처럼의 약속을 깨버리고 가버린 B의 처사가 안타까웠다. 만나서 분풀이(?)를 하는 한이 있더라도 함께 만났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 때문이었다.



혹자는 복잡하고 변화무쌍한 세상에서 약속의 중요성만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강박관념일수도 있다고 항변하기도 한다. 주위에서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약속이 어그러지는 경우를 수없이 봐왔기 때문에 이해가 가는 측면이 없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B가 약속장소에 왔어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오랜 세월 나눈 우정의 이름값만으로도 당연히 친구들과의 약속을 존중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 약속을 지키려는 피나는 노력이 더 높은 가치로 인정받고 평가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런 측면에서 친구사이의 참된 신뢰의 가치를 일깨워주는 일화 한 토막은 우리에게 많은 점을 시사해 준다.

옛날 그리스에 절친한 두 친구가 있었는데 그 중 한 친구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사형수가 됐다. 그런데 사형 직전, 모친이 위독하다는 연락이 전해졌다. 마지막으로 모친을 보고 싶다는 사형수를 위해 그의 친구가 볼모를 자청했다. 사형수가 시간안에 돌아오지 않으면 친구가 대신 사형당하는 조건으로 사형수는 4일간의 일정을 얻게 됐다. 그런데 사흘이면 다녀 올 거리인데도 불구하고 나흘째 되는 날이 저물도록 사형수는 돌아오지 않아 양속대로 친구가 사형을 당할 처지에 놓이게 됐다. 마침내 사형집행 시간이 되어 왕이 친구에게 "자 보아라, 네 친구는 너를 배신하고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도 너는 네 친구를 믿고 있느냐"라고 물었다. 그러자 친구는 "친구는 반드시 돌아올 것이다. 피치못할 사정이 있어 늦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드디어 사형을 집행하기 위해 교수대에 친구를 매달기 시작할 때 사형수가 헐레벌떡 뛰어 들어오면서 "이제 내가 돌아왔으니 내 친구를 풀어주십시오"라고 외쳤다. 왕이 늦은 이유를 물으니 돌아올 때 큰비로 강물이 불어나서 도저히 강을 건널 수 없어 늦었다"는 설명이 돌아왔다.

이에 감동한 왕은 두 사람 모두를 풀어줬다.

두 친구의 참된 우정과 서로를 신뢰하는 모습이 왕의 마음을 움직인 결과였다.

약속을 귀하게 여기고 지키고자 노력하는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도 희망이 될 수 있다. 서로에 대한 신뢰가 스스로의 가치를 올려주는 결과로 이어지는 이유다.

신뢰가 없어진 세상이 된다면 당장에 직면하게 될 문제점만 생각해 보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막말과 고성이 동원된 한나라당의 세종시 내전이 본격적으로 치닫는 정황이다. (이 와중에 정국 상황을 개인을 위한 기회로 삼고자 준동(?)하는 부류의 꼼수가 목격되기도 하니 한편으로 놀랍기도 하다)

세종시에 관한 민심의 향배는 이미 여론을 통해 결정돼 있는 상태다. 물량공세 등의 홍보전으로 부축일 수 있는 한계점을 넘어선 듯하다. 더군다나 신뢰는 유불리의 기준으로 처리할 수 있는 가치가 아니라는 사실을 토요타 사태에서 이미 경험한 바 있다.

문제는 세종시 처리과정에서 무엇보다 확실하게 반영돼야 할 가치 철학이고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이 대목이 외면되고 있는 현실이다.

이 대명천지에 그저 눈 감아 버린다고 진실이 사라질 수 있겠는가.



그리고 PS,

오늘 이 이야기를 전하는 건 헤어질 때 A가 내게 블로그 얘기를 하며 오늘 주제로 친구와의 약속 해프닝을 쓰라는 주문을 했고 나는 별 생각없이 쓰겠다고 한 ‘약속’ 때문이었다.

친구와 약속을 해서 쓰기는 했지만 쓰는 동안 민망함에 얼굴이 화끈거리기도 했음을 첨언하는 바이다.


(2010. 2.23)

...홍문종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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