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7월 6일 수요일

홍문종 생각 - 아! 평창


아! 평창


                                                                                                                               홍문종
평창은 울었다

나도 울
었다

모두가 환희의 눈물을 흘렸다



비도 울었다

바람도 울었다

그리고 하늘도 기뻐 울었다



동방의 조그마한 나라

허리가 짤려 힘들어 하는 나라

아직도 전쟁의 상흔이 만져지는 나라



세계역사의 변방에 있던 나라

갈 길 잃어 신음하던 나라

존재가치를 의심받던 나라



힘을 합치려

땀을 흘리며

무수한 난관을 뚫고

같이 뛰었던 지난날들



다시 없을 기회를

세계사적 사명을

잊지말고 다시 초심으로 가다듬어


백의민족이여

동방의 불꽃이여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여

솟아나라! 전진하라! 그리고 세계를 호령하라!!!



*평창 소식을 듣고 단숨에 써 내려갔음.


(2011. 07. 07)

홍문종 생각 - 검색어 유감

검색어 유감

한나라당 전당대회가 끝난 지 만 하루가 지났다.
신데렐라 선발이라도 되는 양, 인터넷 뉴스 판이 온통 홍준표 한나라당 신임대표 관련 소식이다. 부친이 현대조선 경비원을 지냈고 어머니가 고리채 때문에 머리끄덩이를 잡혀 끌려 다닐 만큼 어려웠던 가정환경부터 시작해서 한나라당의 미래를 밝히는 당대표로서의 포부에 이르기까지 그와 연관된 모든 사항들이 빅 이슈가 되어 시시콜콜 전달되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건  집중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언론 환경과는 달리   정작 인터넷 실시간 검색어나 일간 이슈 검색란에서는 한나라당 전당대회나 홍준표 대표 관련 단어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다.
이 글을 쓰면서도 계속 확인해봤지만 여전히 같은 결과였다.
그에 반해 ‘해병대 총기난사 사건’, 혹은 ‘기수열외’라는 단어는 각 포털 사이트 인기 검색어에서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한나라당 전당대회를 치르던 날, 해병대 2사단의 강화군 소초 내무반에서 이름이 정확히 알려지지 않은 김모 상병이 총기 난사로 여러 명의 동료들을 희생시킨 불상사가 발생했는데 해병대의 고질적인 병폐로 꼽히는 '기수열외'가 원인으로 지목되는 이번 사건에 대한 세간의 관심은 거의 폭발적이었다. 그 뒤를 이은 인기 검색어는 대부분 연예인 관련어였고 시사관련 단어도 몇 개 눈에 들어왔지만 정치권 이슈는 보이지 않았다. 
정치권에 대한 무관심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현실이라고 하겠다.
  
언론의 요란한 도배질 보도에도 불구하고 이번 전당대회는 언론과 정치권만의 집안잔치로 끝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집권여당의 전당대회나 대표 선출이면 엄청난 정치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 데도 지나치게 밋밋한 여론의 반향이 실망스럽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인기 검색어 순위에도 오르지 못할 만큼 국민의 눈길을 끌지 못했다.
21만명이라는 대규모 선거인단도 그렇고 거의 한달 내내 텔레비전 토론을 통해 알린 선전 효과만 따져도 이해가 되질 않는 정황이다. 그 드라마틱한(?) 당 대표 선출이 연예인들의 신변잡기보다  더  국민적 무관심에 방치돼 있는  이 현실이 정치집단에 속해있는 내게 적지 않은 충격파로 다가온다.
 
복잡한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다.
철저한 무관심 속에 내동댕이쳐진 외로움의 무게가 천근이다.
뭔가 삶의 한 귀퉁이가 불안하게 흔들리는 것 같은 걱정도 무게를 더한다.
타인에 대한 진지한 관심이 갈수록 고갈되는 건 저마다 ‘아무도 내 인생을 책임져주지 않는다‘는 삭막한 구호로 자신을 담금질 하며 고립을 자초하기 때문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무관심이 외로움을 부르고 외로움은 또 고립을 불러 저마다 홀로 스스로 만든 마음의 감옥에 갇혀 몸부림치다 사라지게 되는 것도 결국은 자기 탓인 것을.
점점 다양해지는 사회 속에서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관심을 수용해가는 과정을 통해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문제점들을 어떻게 조화롭게 어우르고  최대치의 행복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것도 큰 의미가 있겠다는 깨달음이다.
표피적이고 자극적인 접근이 아닌 좀 더 진정성 있는 해법으로 다가서는 정치를 지향하겠다. 그렇게 저마다의 노력이 진정성을 인정받을 때 비로소 정치권 소식도 인기 검색어 상위권을 상회하게 될 날이 올 것으로 믿는다.

 
지금 많이 부족하더라도 한나라당의 새로운 출발에  각별한 관심 기울여주시길 당부 드린다.
잘못하면 채찍으로 다스리시고 잘하면 칭찬도 해 주시면서 방황하는 발걸음을 잡아주시라.
대한민국 정치가 올바로 서는데 가장 크게 일조해 주실 분은 다름 아닌 바로 여러분이시다.
민생과 직결된 정책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그 어느 때보다 국민적 관심이 필요한 때가 바로 지금임에랴.                        (2011. 7. 5)                   
                         .....홍문종 생각                     

정치권을 향한 국민의 냉소도 그렇게 겸허히 받아들이겠다고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지는 기분이다.

2011년 7월 4일 월요일

홍문종 생각 -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휴일 오후, 대학로 ‘정미소’에서 보직교수들과 부부동반으로 연극 공연을 관람 했다.
극단 ‘봉’에서 올린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라는 작품이었는데 단장을 비롯해서 출연진으로 경민대 출신들이 대거 참여한 공연이라는 소리를 듣고 힘을 실어주자는 취지로 나선 나들이였다. 폭우에도 불구하고 객석이 들어찰 만큼 인기를 누리고 있는 제자들의 성공(?)을 확인할 수 있어 뿌듯한 시간이기도 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아버지를 바꾼다는 기상천외한 발상에서 출발한 이 연극은 가족과의 불화로 겉도는 이 시대 아버지들의 우울한 군상 등 결코 편치 않은 소재를 재미로 풀어내는 미덕을 발휘하고 있다.
극중 아버지 민신일은 지나친 가부장 사고에 젖어 가족과의 교감을 도외시하는 가장으로 ‘군림하는 아버지 대신 ’좋은 아버지‘를 빌려주겠다’는 공약으로 당선된 동장에 의해 퇴출된다.  이후 그는  ‘진짜 아버지 권리보장 위원회’를 만들어 맞서는 과정을 통해 어려운 가정을 이끌어가면서도 가족의 가치와 책무를 중시하는 그러나 고지식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종국에는 진짜 아버지의 진의를 깨달은 가족들이 다시 모이게 되지만 갈수록 다양해지는 자식과 사회적 요구에 치이게 되는 이 시대 아버지들의 우울함을 적나라하게 환기시키는 작품이라 하겠다. 20세기형 가부장적 사고에 찌들은 독불장군 아버지와 새로운 시대를 요구하는 아들딸들의 21세기 형 사고가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형성된 세대 간 갈등이 결코 간단하지 않은 현실을 짚어준 점도 이 연극의 강점이다. (연극 동호인뿐 아니라 가족 문제 때문에 고민하는 분들에게도 강추하고 싶은 작품이다)
 
그렇지 않아도 세대 간 갈등이 임계점을 치달으며 심각한 걱정을 낳고 있는 현실이다.
뒤늦게 인성교육 부재에 대한 자성이 일고 있지만 딱 부러진 대안이  제시되는  것도 아니다. 
세대간 ‘불통’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못하고 불화를 양산해  낸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실제로 자식들에게 있어 부모는 단지 크레딧 카드의 기능으로만 부각될 뿐이고 부모 역시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는 독립된 존재라기보다 자신의 유전인자를 물려받은 소유의 개념으로 자식을 받아들이는 데 더 익숙해 있다.
무엇보다 큰 불행은 불화가 방치되고 있는 현상에 있다고 본다.
관계 개선을 위한 그 어떤 노력도 없이 세대 간 갈등의 골만  깊어지는 형국이다.  ‘지하철 폭행녀’, ‘지하철 막말남’ 등으로 대변되는 사건들만 해도 소통부재로 몸살을 앓고 있는 우리 시대의 병폐를 고스란히 보여 준 유형이라 하겠다.
그런 점에서 오래전부터 효를 만행의 근본으로 가르치고 있는 우리 경민의 교육이념이 새삼  소중해진다.  경민의 효교육이야말로 세대 간 갈등을 좁히기 위한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의 실체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틈만 나면 학생들에게 효에 대한 관념을 구체적으로 심어주고 실질적으로 행동하게 하고 끊임없이 강조해왔던 만큼 효 교육의 메카라는 자부심을 가질 만 하다는 생각이다.
 
우연의 일치인지 유난히 부모님 생각을 많이 떠올린   하루였다.
연극의 주제도 주제였지만 예배시간 목사님 설교 내용도 ‘좋은 부모’에 대한 것이었다.
오후에 잠깐 들른 아프리카 예술박물관에서는 장대비를 불사하고 나들이에 나선 3대의 화기애애한 모습을 목격했는데 깊은 여운을 주는 잔상을 남겼다. 뿐만 아니라 저녁에 다녀온 상가(喪家)에서는 더 이상 곁에 계시지 않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쏟아내는 통한어린 애가에 덩달아 뭉클해지는 기분이었다.
오늘이 어버이 날인가 싶을 정도로 온종일 부모님과 연관된 이벤트의 연속이었다.
 
잠자리에 누우니 요즘 들어 유난히 몸피가 작아진  어머니와  주름살이 부쩍 늘어버린 병상의 아버지 모습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 
속절없이 뜨거워지는 내 눈가의 변화는 내리는 비 탓만은 아니리라.
연극 공연 중 들었던 ‘어버이 사랑’을 꿈에서라도 목 놓아 불러보고 싶은 이 깊은 충동도.
                                                       (2011 .7 .4)             
                                                     ...홍문종 생각            

2011년 7월 3일 일요일

홍문종 생각 - 夏雨 

夏雨 

                                      홍문종


夏가 하하

雨가 운다

하우가 하하운다



비가 온다

사랑도 온다

내 마음도 온다



비가 내려온다

사랑도 내려온다

내 마음도 내려온다



비가 적셔온다

사랑도 적셔온다

내 마음도 적셔온다



비가 퍼붜온다

사랑도 퍼붜온다

내 마음도 퍼붜온다


 
비가 한없이 온다

사랑도 한없이 온다

내 마음도 한없이 온다.

 

여름비가 오는 날

창 밖을 보며

지나가 버린 아쉬운 삶과

다가와 버린 소중한 삶을


 
희노애락 기억들의

오버랩을 보며

너무나 아쉬운 지난 삶이여

너무나 소중한 오는 삶이여


 
여름 비 요동치듯

삶이여 격렬하라

여름비 찬란하듯

삶이여 아름다워라

(2011.7.3)

홍문종 생각 - 내려놓기의 비밀

'내려놓기'의 비밀

수사권 조정을 둘러싼 검경 간 오랜 갈등이 일단락되는 분위기다.
경찰관에 대한 검사 지휘의 구체사항을 ‘법무부령’이 아닌 국무회의 심의가 필요한 ‘대통령령’으로 정할 수 있게 하는 내용 등을 담은 형사 소송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됐다.  정치권력이 관여하면  정치적 중립을 훼손하고 국민 권익을 헤치게 된다는 검찰의 항변이 설득력을 얻지 못한 것이다.
검찰의 처지가 말이 아니게 됐다.
무엇보다 찬성 175, 반대 5로 압도적인 표차를 보인 국회 표결 결과는 명백한 검찰의 참패를 선언한 것과 다름없다는 생각이다.   초유의 지도부 공백을 초래한 검찰 간부들의 줄 사표조차 별다른 사회적 반향을 부르지 못한 상황은 추락한 검찰 위상을 반영하는 현실이라 하겠다.   민심을 얻지 못한 권력이 얼마나 보잘 것 없고 허무한 실체인지를 보여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길가는 사람을 붙잡고 대한민국 검찰 권력의 현실을 묻는다면 어떤 반응일까?
모르긴 몰라도 ‘절대 권력’이라는  가차없는 대답이 돌아오지 않을까 싶다.   더 나아가 그동안 검찰이 정치적 중립에 충실했느냐는 질문도 결코 긍정적인 답변을 들을 수 없을 것이라는 짐작이다.
그것이 국민 눈에 비친 검찰의 현실이다.
실제로 검찰은  피의자 인권을 위해 법 전문가적 관점에서 사용하라고 쥐어준 ‘권한’을 자기 보신과 권력 유지를 위한 용도로 남용하는 집단이라는 시각이 국민 의식을 지배하고 있다. 수사권을 둘러싼 검찰 움직임은 국가의 미래와 사회 공동체 발전보다는 조직 이기주의에 빠진 권력 집단의 기득권 수호를 위한 몸부림 정도로 치부한 채 싸늘한 시선을 보내고 있는 게 민심의  실상이다. 
국민 마음이 그러니 설득되지 않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는 생각이다.
결과적으로 검찰은 민심을 얻는데 실패했고  또 그것이 수사권 싸움에서 검찰을 패하게 만든 결정적 요인이기도 하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검찰에 대한  오래된 지적 처럼  ‘절대 권력의 지나친 오만’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우연히 경찰 고위직 간부들을 대상으로 강연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도 검찰의 오만함을 지적하는 푸념이 주를 이루는 분위기였다.
이번 사건만 해도 집단 반발하는 검찰 모습은 사려 깊지 못하다는 생각이다.
사안의 옳고 그름을 가리기에 앞서 권력을 쥔 집단이 대통령이나 국회를 상대로 ‘겁박’을 가하는 모습은 오만불손한 태도로 비춰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두려운 집단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면서 본의 아니게 국민들에게 천근만근의 무거운 무게를  얹어주는 존재로 부각되기에 충분한 정황이었다. 
그런 검찰의 모습이  돈 있는 사람의 미덕은 절제에 있고 힘 있는 사람의 미덕은 겸손에 있다는 선인의 가르침을 떠올리게 한다.  절제와 겸손을 통해 절대 권력이 방만함으로 오만해지는 폐해를 최소화하고자 했던 지혜에 새삼 탄복하게 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김준규 검찰총장은 취임 당시 ‘검찰의 상대는 범죄 그 자체이며 죄를 저지른 사람의 지위나 신분의 높고 낮음 등은 고려하지 않아야 하고 공직 부패와 사회적 비리에 대해서는 일절 관용이 없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바 있다. 우리 사회의 왜곡된 기득권 구조를 허물겠다는 신선한(?) 각오를 드러내기도 했다. 그랬던 그가 사의 표명으로 사법 개혁에 대한 국회 결정에 반발하고 있는 건 심각한 자기모순이 아닐 수 없다.   김 총장이 자신의 초심대로만 매진했어도 검찰조직을 보는 민심의 향배는 지금과는 많이 다른 양상을 보였을 거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비뚤어진 사회정의를 바로잡고 준법정신으로 무장된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는 진정성이 있었다면 무엇보다 먼저 자신의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가장 기초적인 해법을 그가 정녕 몰랐을까 싶기도 하다. 

이미 등을 돌린 민심을 향해 아무리 크게 외친들 들릴 리 없다.
검찰을 편들어주지 않고 고립무원에 빠뜨린 민심의 준엄한 심판을 받은 셈이다.  최소한 움켜쥔 손을 펴기만 했어도 독립성과 중립성을 지키겠다는 검찰의 항변은 좀 더 많은 원군을 확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애타게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도 지금보다 훨씬 수월하게 국민에게 전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작금의 어수선한 현실이 아픈 자화상이 되어 가슴을 친다.  종국에는 스스로의 숨통을 옥죄며 표류하게 될 그 뻔한 결말조차 예측할 수 없는 인간의 한계가  슬픔으로 다가온다. 
 재벌은 재벌대로 제 성에 찰 때까지 고집을 부리고 있고 정치권은 정치권대로 검찰은 검찰대로, 심지어 학생들마저도 자기들 뜻대로 하려는 움직임 밖에 보이지 않는다. 국가의 명운은 안중에 없이 저마다 주인 행세로 분주하지만 정작 마음 둘 곳은 찾지 못해 서성거리고 있는 모습들이 안타깝다.
아마도 브레이크 없는 벤츠를 지켜보는 불안감이 이런 기분 아닐까 싶기도 하다. 각 집단마다 자기 성찰과 깨달음을 통해 거듭나고자 하는 의지를 가동시켜한다는 조급함이 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희망을 품을 수 있는 여지가 조금은 남아있기에 아직은 늦지 않았다는 생각이다.
 희망을 품자, 공공의 선을 충족시킬 수 있는 공정사회를 위해 사욕의 질주를 멈추면 최소한 지금보다는 더 행복하고 조화로운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다.  
가능성의 포자를 퍼뜨리는 주체로 나서자,  아무리 민감한 이슈라도 그때 마다 사익에 방점을 두기보다 역지사지의 관점으로 풀고자 하는 노력이 가동된다면 구성원들의 삶의 질 향상에도 크게 보탬이 될 수 있다.  동행하는 삶과 함께 양보와 타협을 통해 업무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다. .
 그렇게 '내려놓기'  비밀 풀기에 돌입해서 건강한 대한민국을 세워 보도록 하자. 
우리가 할 수 있다.                   (2011.  7.  2)            
                                                ....홍문종 생각              

2011년 6월 30일 목요일

홍문종 생각 - 임재범 퍼포먼스

임재범 퍼포먼스


유학 간 아들이 방학이라 집에 잠깐 들렸다.
그런데 아이를 보는 순간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마음에 한 30초 동안 망설여야 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경지로 변신(?)한 아들의 헤어스타일과 의상이 반가움보다는 당혹스러움을 먼저 안겨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내 내가 지는 것으로 결론을 냈다. 젊었기 때문에 세상에 대한 답답함과 나름대로의 평가를 머리 모습이나 입은 옷으로 표출한 것이겠거니 싶어서였다.
받아들이기로 마음을 정하자 평화가 찾아들었다. 경직된 분위기를 예상했다가 긴장이 풀리는 지 머쓱해 하는 아들의 표정에도 순간적으로 스치는 안도의 기색이 역력했다.

'나는 가수다‘로 재기에 성공한 가수 임재범씨가 이번에는 콘서트 퍼포먼스로 여론의 중심에 서 있다. 공연 중 행해졌던 나치복장 퍼포먼스에 대한 갑론을박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것이다.
경제적 가치가 100억이 넘는다는 콘서트에 쏠리는 대중의 관심이 무리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몰취향, 후진미감이라며 임재범을 향해 독설을 날리는 진중권씨(그의 글을 읽었지만 생각은 다르다)에 맞서 인기 작곡가 김형석씨가 음악에 맞는 퍼포먼스일 뿐이라는 옹호로 설전을 벌이는가 하면 경희대 이택광 교수 같은 이는 한국정서로는 생뚱맞지만 rock 정신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시각을 개진하기도 한다.
진중권씨의 비판도 김형석씨의 옹호도 이택광 교수의 포용도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근거로 하고 있기는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십인십색의 주장들이 대중의 혼란을 가중시키는 부담으로 작용하는 게 사실이다.

과연 임재범 콘서트의 나치 퍼포먼스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퍼포먼스는 퍼포먼스로 감상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이다.
임재범이 나치복장으로 무대 위에 나선 자체를 나치에 대한 증오와 자유의지를 치열하게 분출하는 Rock 정신으로 해석하거나 그야말로 예술적 가치가 떨어지는 몰취향으로 판단할 수있다. 개인적 판단에 따라 각각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어느 것이건 별 다른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
예술의 해석과정에서 가장 비중있게 반영돼야 할 부분은 예술가의 의도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생각하기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여지가 너무나 많다는 측면도 간과할 수 없다. 같은 대상을 모델로 해도 해당 아티스트의 의도에 따라 전혀 다른 시각으로 해석되는 작품을 흔히 만나게 되는 이유다.
그런 측면에서 임재범의 나치복장 논란이 공연미학 담론 수준에서 정리되는 게 옳다는 생각이다. 솔직히 가수의 공연무대에까지 이데올로기적 잣대를 들이대 불화를 조장하는 건 지나친 치졸함이다.

개인적으로 임재범을 좋아한다.
그렇기 때문일까? 이번 퍼포먼스 논란을 대하는 그의 태도에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카리스마 있는 락무대를 꾸미기 위한 연출 차원에서 Rock의 자유 정신을 갈구하는 기획이었다’는 소속사의 입장 발표가 있기는 했다. 하지만 임재범이 소속사 뒤로 숨은 것처럼 보인다는 점에서 미완의 대응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임재범 자신이 직접 나서서 자신의 철학을 당당하게 설명하는 기회로 활용했더라면 훨씬 더 좋았을거라는 생각에 자꾸만 미련이 남는다.
무대에서의 퍼포먼스 그 자체일 뿐 철학이나 사상이 반영된 게 아니라고 주장하던가 Rock 정신의 자유로움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이었다고 하던가, 그야말로 팬을 즐겁게 해주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던가.
어떤 내용이라도 상관없다. Rocker로서의 확고한 신념이 반영된, 명확한 자기 철학의 결과물을 담은 설명이면 그저 족하다는 생각이다.
그의 거친 음색에 매료됐듯 거침없이 세상을 여는 그의 당당한 행보를 기대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소녀시대, 동방신기....
유럽을 강타한 K-POP 열풍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한껏 부풀리는 요즈음이다.
그러나 철학이 부재한 표피적인 접근에 불과하다면 K-POP의 미래는 결코 긴 생명력을 갖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불안한 예측을 내놓을 수 밖에 없다.
K-POP 성공이 어릿광대 놀음에 불과한 일시적 자극으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라도 깊이 있는 철학적 고민이 불가피하다는 생각이다.
클래식이 아니고도 시대를 관통하는 노래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아침이슬이나 친구 등 7080 세대의 심금을 울리는 주옥같은 노래들도 그렇고 my way, yesterday, imagine, sound of silence, epitaph 등 동서양을 넘나들며 오랜 생명력을 과시하는 노래들을 보면 시대정신이 농축된 철학을 담고 있다는 공통점을 볼 수 있다. 세월이 지날수록 오히려 더 선명한 매력으로 가슴을 파고들게 하는 노래의 원천적 배경에 철학이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임재범이여,
자신의 철학이 용납한다면 뭐든 하고 싶은 대로 해라.
아주 오래 남는 가수가 되길 바란다.


(2011. 6.30)
....홍문종 생각

홍문종생각 - 임재범 퍼포먼스

임재범 퍼포먼스


유학 간 아들이 방학이라 집에 잠깐 들렸다.
그런데 아이를 보는 순간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마음에 한 30초 동안 망설여야 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경지로 변신(?)한 아들의 헤어스타일과 의상이 반가움보다는 당혹스러움을 먼저 안겨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내 내가 지는 것으로 결론을 냈다. 젊었기 때문에 세상에 대한 답답함과 나름대로의 평가를 머리 모습이나 입은 옷으로 표출한 것이겠거니 싶어서였다.
받아들이기로 마음을 정하자 평화가 찾아들었다. 경직된 분위기를 예상했다가 긴장이 풀리는 지 머쓱해 하는 아들의 표정에도 순간적으로 스치는 안도의 기색이 역력했다.
'나는 가수다‘로 재기에 성공한 가수 임재범씨가 이번에는 콘서트 퍼포먼스로 여론의 중심에 서 있다. 공연 중 행해졌던 나치복장 퍼포먼스에 대한 갑론을박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것이다.
경제적 가치가 100억이 넘는다는 콘서트에 쏠리는 대중의 관심이 무리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몰취향, 후진미감이라며 임재범을 향해 독설을 날리는 진중권씨(그의 글을 읽었지만 생각은 다르다)에 맞서 인기 작곡가 김형석씨가 음악에 맞는 퍼포먼스일 뿐이라는 옹호로 설전을 벌이는가 하면 경희대 이택광 교수 같은 이는 한국정서로는 생뚱맞지만 rock 정신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시각을 개진하기도 한다.
진중권씨의 비판도 김형석씨의 옹호도 이택광 교수의 포용도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근거로 하고 있기는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십인십색의 주장들이 대중의 혼란을 가중시키는 부담으로 작용하는 게 사실이다.
과연 임재범 콘서트의 나치 퍼포먼스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퍼포먼스는 퍼포먼스로 감상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이다.
임재범이 나치복장으로 무대 위에 나선 자체를 나치에 대한 증오와 자유의지를 치열하게 분출하는 Rock 정신으로 해석하거나 그야말로 예술적 가치가 떨어지는 몰취향으로 판단할 수있다. 개인적 판단에 따라 각각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어느 것이건 별 다른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
예술의 해석과정에서 가장 비중있게 반영돼야 할 부분은 예술가의 의도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생각하기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여지가 너무나 많다는 측면도 간과할 수 없다. 같은 대상을 모델로 해도 해당 아티스트의 의도에 따라 전혀 다른 시각으로 해석되는 작품을 흔히 만나게 되는 이유다.
그런 측면에서 임재범의 나치복장 논란이 공연미학 담론 수준에서 정리되는 게 옳다는 생각이다. 솔직히 가수의 공연무대에까지 이데올로기적 잣대를 들이대 불화를 조장하는 건 지나친 치졸함이다.


개인적으로 임재범을 좋아한다.
그렇기 때문일까? 이번 퍼포먼스 논란을 대하는 그의 태도에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카리스마 있는 락무대를 꾸미기 위한 연출 차원에서 Rock의 자유 정신을 갈구하는 기획이었다’는 소속사의 입장 발표가 있기는 했다. 하지만 임재범이 소속사 뒤로 숨은 것처럼 보인다는 점에서 미완의 대응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임재범 자신이 직접 나서서 자신의 철학을 당당하게 설명하는 기회로 활용했더라면 훨씬 더 좋았을거라는 생각에 자꾸만 미련이 남는다.
무대에서의 퍼포먼스 그 자체일 뿐 철학이나 사상이 반영된 게 아니라고 주장하던가 Rock 정신의 자유로움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이었다고 하던가, 그야말로 팬을 즐겁게 해주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던가.
어떤 내용이라도 상관없다. Rocker로서의 확고한 신념이 반영된, 명확한 자기 철학의 결과물을 담은 설명이면 그저 족하다는 생각이다.
그의 거친 음색에 매료됐듯 거침없이 세상을 여는 그의 당당한 행보를 기대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소녀시대, 동방신기....
유럽을 강타한 K-POP 열풍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한껏 부풀리는 요즈음이다.
그러나 철학이 부재한 표피적인 접근에 불과하다면 K-POP의 미래는 결코 긴 생명력을 갖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불안한 예측을 내놓을 수 밖에 없다.
K-POP 성공이 어릿광대 놀음에 불과한 일시적 자극으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라도 깊이 있는 철학적 고민이 불가피하다는 생각이다.
클래식이 아니고도 시대를 관통하는 노래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아침이슬이나 친구 등 7080 세대의 심금을 울리는 주옥같은 노래들도 그렇고 my way, yesterday, imagine, sound of silence, epitaph 등 동서양을 넘나들며 오랜 생명력을 과시하는 노래들을 보면 시대정신이 농축된 철학을 담고 있다는 공통점을 볼 수 있다. 세월이 지날수록 오히려 더 선명한 매력으로 가슴을 파고들게 하는 노래의 원천적 배경에 철학이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임재범이여,
자신의 철학이 용납한다면 뭐든 하고 싶은 대로 해라.
아주 오래 남는 가수가 되길 바란다.                   

(2011. 6.30)....홍문종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