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월 22일 토요일

홍문종 생각 - 눈이 왔어요


눈이 왔어요



- 홍문종 -



눈이 왔어요
장독대 위에


눈이 왔어요
도봉산 위에



하이얀 눈은
하늘의 마음
태양의 마음



눈부신 사랑은
하얗게 빛나고



사랑의 노래는
온천지를 덮고



밤새 오신 눈은
내 마음에 내린 눈은
당신 마음에 내린 눈은



가없는 수평선은
순결의 아름다움



기쁨의 축복은
너의 마음 나의 마음



눈이 왔어요
나의 마음에



눈이 왔어요
너의 마음에도


(2011.01.22)

2011년 1월 20일 목요일

홍문종 생각 - 양지로

양지로

도박의 기원은 인류역사와 근간을 함께 해 왔다.
그리스 신화의 천지창조 과정을 보면 신들이 주사위 내기로 각자 관장할 구역을 나눴고 성경에도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의 옷을 주사위 던지기로 나눠 가진 로마병사에 대한 기록이 있다. 심지어 노르웨이와 스웨덴의 국경은 양국의 왕이 주사위 게임으로 결정됐다고 한다. 우리도 경주 안압지 부근에서 정6면체 주사위가 발견된 적이 있는데 이를 통해 1400년 전 통일신라시대 당시에도 지금과 같은 형태의 주사위로 도박을 한 사실을 밝힌 바 있다.
매국노 이완용과 이지용이 ‘희대의 화투대왕’들로 불릴 정도로 화투에 열중했고 특히 이지용의 저택은 ‘조선에서 가장 거대한 판돈이 오가는 도박장’으로 유명했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혹시 나라 판 죄책감으로 현실을 도피하기 위한 차원은 아니었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감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화투 자체가 우리의 저항의식을 약화시키기 위한 일본의 술수 차원이었던 만큼 매국노들의 적극적인 친일행위일 가능성이 더 클지도 모르겠다.
따지고 보면 도박은 그동안 시대와 지역을 불문하고 생활 속 경험으로 익숙해진 유희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러던 것을 새삼스레 불법, 합법의 잣대로 가르려 하니 모호한 부분도 있다.

원정도박 혐의로 물의를 빚고 해외를 떠돌던 신정환의 귀국으로 또 다시 난리법석이다.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다.
졸지에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할 범법자로 전락한 그의 모습이 많은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다. 초췌해진 모습으로 연신 허리를 굽히며 많이 혼나겠다고 했지만 상황을 돌이킬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같은 날 감사원은 강원랜드 카지노에서 최근 3년간 평일에 60차례 이상 출입하며 상습 도박을 해 온 370여명의 공직자 명단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조만간 3000만원 이상을 써 VIP 회원이 된 이들과 각 기관 회계 담당자나 고위직을 중심으로 자금 출처에 대한 정밀 조사에 들어갈 예정이란다. 그동안 도박에 연루된 연예인이나 공무원 문제가 한 두 번이 아니기 때문에 다음에는 또 무슨 일로 놀라게 될지 모르겠다.

통상적으로 도박을 하게 되는 이유에 대해 흥분과 자극, 일상으로부터의 일탈, 타인과의 사회화, 돈 등을 들고 있다. 스스로 결정하고 권한을 행사하려는 욕구의 실현 차원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면을 들여다보면 다른 이유를 찾게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건
동물도 도박이 주는 쾌감을 느낄 수 있다는 영국발 기사다. 비둘기 실험을 통해 동물들도 커다란 보상에 유혹을 느끼고 기꺼이 위험을 감수함으로써 심장박동수가 최고조로 올라갈 때의 ‘가슴떨림’을 즐기고 있다는 사실이 입증됐다고 하는데 사실이라면 도박에 대한 관념을 새롭게 정리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인간의 고독에 근원적인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실제로 사람들이 더 많이 외롭고 쓸쓸해 하는 것 같다.
세분화되고 전문화되면서 갈수록 복잡다기해지는 사회적 환경이 도박중독을 양산하는 직접적 원인이 아닐까 싶다. 여러 사람이 공통적으로 함께 모여서 일했던 과거와는 달리 동등한 위치에서 독자적으로 저마다 독립된 영역을 처리하는 환경이 늘어나면서 본의 아니게 고립되는 경우가 많아지는 것도 사실이다.

도박중독, 역시 무섭다.
인기 절정에서 아쉬울 것 없던 젊은 연예인의 인생을 단숨에 삼켜버릴 정도의 위력이니 가히 놀라운 독성이다. 한번 빠져들면 헤어나기 어렵고 그 오랜 시간을 통해 끈질긴 생명력으로 버텨온 저력(?)으로 봐서 앞으로 도박이 근절될 가능성도 없어 보인다.
어차피 공존할 수 밖에 없다면 도박을 없애는 것 보다는 운영의 묘미를 살리는 게 더 현명하다는 생각이다. 폐단을 최소화 하는 노하우를 생각해 내는 게 중요하고 지금이 바로 그 시점이 아닌가 싶다.
음성적인 사행사업 근절을 위해 사회전체가 감시자로 나서야 한다. 음지가 아닌 양지에서의 활성화가 부작용을 줄이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도박을 목표로 한 게임과 일반 게임을 별도의 기준으로 관리하고 있는 일본의 경우를 참고해도 좋을 듯하다.

도박을 양지로 끌어올리려는 정부의 의지와 역할이 중요하다.
도박장 출입회수나 베팅액수를 적당히 조절하는 데 있어 철저한 기준을 적용하는 방식으로 관리한다면 도박을 기존과는 많이 다른 개념으로 풀어낼 수 있다는 생각이다. 더구나 국내 도박 환경을 국민오락과 건강, 스트래스 해소라는 관점에 맞춰 접근하면 해외원정도박은 물론 국부 유출을 방지에도 상당부분 도움이 될 수 있다. 감정이나 심리상태, 사회적․ 재정적여건, 신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행동이나 상황을 피하면서 도박을 레크리에이션의 일환으로 허용하고 관리하는 것이다. 문화예술 공간을 넓히는 등의 방법으로 외롭고 지친 사람들에게 탈출구를 만들어주는 배려도 국민을 도박중독으로부터 구해낼 수 있는 적극적인 대처가 될 수 있다.

불법행위를 단죄하고 책임을 묻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최소한 국민들이 지금 무엇 때문에 지쳐있는 건지 알아보기 위해 고민하고, 달래주기 위해 노력하는 정부의 성의가 더 필요할 때다. 관민이 마음을 합해 더 이상 이 땅에서 도박으로 피눈물을 흘리는 일이 없도록 만들어보자.
도박의 양성화까지는 아니더라도 양지로 끌어내는 노력을 시도해보자.


(2011. 1. 20)
.....홍문종 생각


2011년 1월 19일 수요일

홍문종 생각 - 탯줄을 끊자

탯줄을 끊자


일명 ‘맥도널드 할머니’로 불리는 70대 노숙자의 인생유전이 화제가 되고 있다.
노숙 신세이면서도 영자신문을 읽고 고급호텔 사우나나 고급 커피숍과 식당만 선호하는 그녀의 우아한(?) 취향이 세간의 호기심을 자극한 결과다. 더구나 유명대학 메이퀸 출신으로 외교부에 근무한 재원이었던 전력도 유명세를 거들고 있다.
결론을 말하자면 지독한 비극이다.
제대로 된 잠자리도 없이 떠도는 칠순의 그녀는 조만간 백마 탄 왕자가 자신의 배우자로 나타날거라는 믿음을 버리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사람들을 경악케 만드는 건 오늘 날 그녀의 현실이 순전히 어머니의 과잉보호에서 기인했다는 사실이다. 결과적으로 공주처럼 딸을 받들었던 어머니의 헌신적 사랑이 딸의 인생을 나락에 빠뜨리게 된 것이다. 
분별없는 어머니의 헌신이 자식을 얼마나 끔찍하게 망가뜨릴 수 있는지를 생생히 보여준 사례라 할 것이다.


과유불급의 자식사랑을 걱정하는 목소리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모르긴 몰라도 맥도널드 할머니의 사연을 접하면서 가슴 한쪽이 뜨끔했을 대한민국 어머니들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점점 더 광폭(!)해지는 엄마들의 치마폭 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극성스런 모정에 짓눌려 갈수록 판단 능력을 상실해가는 젊은 세대에 대한 고민은 사회적 파장이 우려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어렸을 적부터 부모 뒷바라지에 익숙해지는 바람에 대학생이 되어도 학점관리나 이성교제 부분까지 부모의 관여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사회에 진출해서도 이직이나 연봉협상을 부모 결정에 맡기는 ‘애어른’이 양산되고 있다.
부모의 리모콘 스케쥴 조종에 익숙해진 아이들은 그저 정신없이 바쁘기만 하다. 너무 바빠서 스스로를 돌아볼 볼 엄두조차 낼 수 없다. 고민이나 반항은 물론 자기 소신 한번 펼쳐보지 못하고 오로지 점수 벌레로만 양육된 학생들이 어떻게 인생을 알 것이며 지혜를 늘릴 수 있겠느냐는 걱정이 넘치는 배경이다.
특히 이른 바 ‘엄친아’들이 몰려 있는 법조계는 그 폐해가 심각하다는 걱정이다. 조금만 민감해져도 문제해결을 어려워하는 젊은 판검사들이 늘고 있는 현실에 대한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실제로 사법부 판검사10명 가운데 4명은 일명 엄마들 치마폭에 쌓여 외고나 특목고 등 강남의 과열 입시경쟁을 뚫고 대학을 가거나 사법고시를 통과한 ‘엄친아’로 알려진 만큼 근거없는 소리는 아닐 것이다. 그런 엄친아들에게 우리 사회의 갈등 해결을 맡기고 판단을 구하는 자체가 넌센스라는 비아냥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라는 생각이다.

교육현장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된다.
일찌감치 예상했던 대로 성공가도를 달리는 학생도 있지만 뜻밖의 학생이 부각되거나 반면, 성공을 확신했어도 실패로 끝나기도 하는 경우가 그것이다. 결국은 그 어떤 것도 성공을 확실하게 담보할 수 있는 게 없는 현실의 반영인 셈이다. 그만큼 다양한 가능성의 세계를 인정해야 하는 의미이기도 하다.
부모의 지나친 개입이 과유불급의 후유증을 남길 수 있는 개연성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돼야 할 것이다. 부모의 과잉보호 속에서 성장한 자녀들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불안이나 우울증을 겪을 확률이 3배나 높다는 학계의 보고도 예사롭게 넘길 부분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스팩만 강요하는 교육구조와 부모의 과잉보호가 자식들을 허깨비로 만들고 있는 무서운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판단내리기를 두려워하고 정해진 길 외에는 엄두를 내지 못하는 온실 속 젊은이들로는 대한민국 미래를 만들 수 없다.
자식을 겁쟁이로 만드는 건 어느 이유로도 사랑이 될 수 없다.
지금으로선 고민과 좌절, 그리고 난관을 두려워하지 않는 인성교육과 아이들의 움켜쥔 숨통을 놓겠다는 부모의 결단만이 위기에 처한 현실을 구하는 처방이 아닐까 싶다.

특별히 대한민국 엄친아의 모친들은 각오를 달리해야 할 것이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새끼를 언덕위에서 굴려 단련시키는 사자의 양육법을 배우는 것도 방법이다.
자식이 귀하면 귀할 수록 모진 세상을 몸으로 맞서 싸울 수 있는 강단을 길러주는 현명함을 보여주길 바란다.
평생 함께 지켜주지도 못할텐데 최소한 자식을 맥도널드 할머니로 만들지 싶지 않다면 순응하라.


탯줄 부터 끊어야 한다.
많이 아프더라도 그게 진정 자식을 위한 길이다.

(2011. 1. 19)
....홍문종 생각

2011년 1월 18일 화요일

홍문종 생각 - 마약, 그 붉은 덫

마약, 그 붉은 덫


마약으로 인한 연예계의 잔혹사가 끊이질 않는다.
이번에는 탤런트 김성민이다.
그는 현재 수차에 걸쳐 마약을 직접 밀반입하고 투약한 혐의로 구속된 상태다.
무너져버린 현실을 붙들고 후회하는 모습이지만 너무 늦었지 싶다.
그의 근황이 전해질 때마다 안타까움으로, 질타와 비난으로 인터넷 공간이 뜨거워진다.
그만큼 대중으로부터 사랑을 많이 받았다는 반증이 아닐까 싶다. 구속되기 한 달 전만 해도 ‘남자의 자격’ 방송을 통해 한국 연예인 최초로 전투기를 탑승하는 당당함을 보여줬던 그이기에 팬들이 느끼는 충격과 배신감이 그만큼 더 큰 것 같기도 하다. 호감도 높은 프로그램의 고정 배역으로 주가를 올리던 와중에 일어난 일인 만큼 뭐가 아쉬워서 그러느냐는 질타가 쏟아지는 것도 무리가 아니라는 생각이다.

김성민처럼 잘나가던 연예인들이 마약으로 패가망신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관련된 뉴스 화면마다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김성민의 해맑은(?) 모습이 넘치고 있어 돌이킬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진 그의 현실을 실감나게 한다.
그들이 공통적으로 보이는 특성이 있는데 부질없는 야심이나 쾌락에 몰입하고 있는 모습이 그것이다. 좋은 악상이나 활기찬 연기, 무대 위의 열정을 구한다는 명목도 그렇지만 막연한 쾌락에 자신의 전부를 던져버리는 경우도 있어 아쉬움을 남긴다.
마약의 폐해는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인위적으로 단절하기도 어렵지만 퇴폐적이고 비생산적인 환각상태의 치명성 때문에라도 금기시 할 대상이다.
돈이나 권력, 쾌락을 지향하는 욕구가 우리 삶의 근간을 위협할 개연성은 크다. 딱히 마약이 아니어도 그에 버금가는 폐해와 독성만큼은 뒤지지 않는다. 물론 적당히 잘 조절한다면 생의 활력이나 의미를 더할 수 있다는 계산이 통한다는 측면에서 마약과 차별성을 둘 수도 있지만 과도할 경우, 이 역시 파멸을 이끄는 결론으로는 마약과 크게 다르지 않다.

마약 연예인의 선배 격인 부활의 김태원은 마약을 끊을 수 있는 2가지 방법으로 감옥에 가거나 몸에 이상이 생기는 상황을 들었다. 그만큼 어렵다는 뜻일 텐데 그 말을 듣는 순간 정치를 그만두려면 감옥에 가거나 죽는 수밖에 없다고 자조하던 정치인 A의 모습이 떠올랐다. 일단 빠져들면 못 말리는 상황이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정치는 마약과 같다’는 말이 정치권 안팎으로 공공연히 떠돌고 있는 게 사실이다. 자신의 전부를 갉아 먹혀도 아무것도 깨닫지 못할 만큼 영혼이 마비되는 그 치명적 독성으로 치자면 마약이나 정치나 다를 바 없는 속성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상상을 뛰어넘는 거대하고 황홀한 경지를 동경해오면서 우리는 스스로의 근원을 잃어버렸다. 우리의 삶을 지탱해 주던 순수성이나 소박함을 버리고 과장과 허황된 삶에 매몰돼버리고 만 것이다. 마약 같은 보조물에 의지해서라도 자기 자신을 과대포장하고 싶은 욕구가 지뢰밭으로 남아있는 삶이 얼마나 허망한지 조차 모르고 있었던 셈이다.

결국은 개인의 능력이나 한계를 뛰어넘는 영역에 대한 지나친 동경이 문제였다.
다행인 것은 인간이 쾌락만을 추구하고 고통을 피하려드는 나약한 존재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얼마든지 억압의 사슬을 풀고 독립된 삶의 영역을 재건해 낼 지혜와 용기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마약, 그 붉은 덫으로부터 영원히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희망을 갖자.
희망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소박한 삶의 원형을 복구하는 데 그 답이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의식주가 됐건 정신, 문화가 됐건 허황된 욕심부터 배제시키는 정지작업이 필요하다.
그 다음엔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기 위한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면 된다.
자기절제의 힘을 믿고 불도저처럼 밀고 나가되, 스스로의 각성이나 주변의 충고 또는 강압적인 제도적 장치를 이용한 브레이크 장착은 필수 사항이니 잊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오늘의 블로그는 마약에 빠진 연예인 뿐 아니라 정치권 인사들을 향한 충정을 담은 만큼 한번쯤 귀 기울여 들어주시길 당부하고 싶다.

(2011. 1. 18)
.....홍문종 생각

2011년 1월 16일 일요일

홍문종 생각 - 무상복지에 관한 고찰

무상복지에 관한 고찰


정치권의 복지논쟁이 뜨겁다.
무상급식에 이어 의료, 보육분야에 이르기까지 보편적 무상복지 확대를 주장하는 민주당과, 결국 나라를 망하게 할 무책임한 포퓰리즘 공약에 불과하다는 한나라당 반발이 맞서는 형국이다.
민주당의 '무상시리즈‘가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한 일이라면 그 때는 정치권이 초당적으로 협조하는 게 도리일 것이다. 국민 모두가 골고루 행복해질 수 있다는데 쌍수를 들어 환영할 일일 테니 말이다.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는데 식비, 교육비, 의료비를 무상으로 다 해결해주는 국가 정책을 마다할 하등의 이유가 없는 것이다.


때 마침 저녁 시간에 TV에 덴마크의 유럽식 복지시스템을 소개하는 다큐프로가 방영됐다. 확실히 차원이 다른 복지개념이었는데 우리 현실과 맞물려서인지 해당 프로그램이 대번에 장안의 화제로 부상하는 분위기다.
무상교육과 무상의료는 물론 65세 이상 전국민을 대상으로 연금지급이 실행되고 있는 덴마크에서는 교육현장에 성적 서열 자체가 존재하지 않기로 유명하다. 남들과 경쟁하지 않고, 차별받지 않고 적성에 따라 직업을 정할 수 있기 때문에 국민들의 행복지수가 그 어느나라보다 높다. 입시지옥과 각졸 사회적 차별과 격차에 시달리는 우리 국민들에게는 가히 꿈의 나라로 느껴질 만한 환경이다.
하지만 덴마크의 환상적(?) 복지 환경이 우리에게 그림의 떡으로 그칠 가능성이 농후하다. 여러 측면에서 양 국 사이에 단순한 벤치마킹만으로 해결될 수 없는 구조적 차이가 분명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 조세부담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소득의 50%가 세금) 덴마크는 인구도 적고 정부에 대한 신뢰도나 세금의 투명성이 제대로 자리를 잡은 반면, 우리에게는 여전히 난제로 남아있다. 전형적 자본주의인 우리와 다른 사회주의 국가의 강점일 수도 있겠지만 명백하게 다른 상황이다.
무엇보다 근래 들어 덴마크의 사회복지시스템이 전반적인 개편 요구에 직면해 있는 현실도 주목해야 할 부분이 아닌가 싶다. 복지비용의 추가 부담이나 국제경쟁력, 노동력 확보 등을 위한 자구책을 보완해야 하는 현실적 문제에 봉착해 있는 자체가 항구적인 무상복지의 허구를 입증하고 있다고 보는 게 맞다. 결국 핵심이 ‘무상’의 현실성에 있음을 감안한다면 무상복지가 안고 있는 현실적 한계를 드러내는 또 다른 반증인 셈이다.


교육현장에 있으면서 또 다른 측면의 복지수요에 대한 갈증을 느끼게 되는 경우가 많다.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여건 때문에 자신의 꿈을 포기할 수 밖에 없는 학생들 이야기다. 그들의 고충을 모두 해결해주고 거둬주고 싶지만 개인이 나서기엔 역부족이다.
무상복지도 좋지만 이들에 대한 관심을 확대시키기 위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무상의 의미를 최대한 확보하는 것도 한 방안이 될 수 있겠다. 적어도 어려운 환경 때문에 가능성 있는 인재가 좌절하도록 버려지는 일만은 막을 수 있도록 말이다.
물론 우선 당장 효율적 측면으로만 보자면 마이너스인 결과는 정책을 입안하거나 수행해야 하는 입장에서 고민거리다. 장기적으로도 끝까지 존속될 수 없는 점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지나치게 정책의 효율성만 따지는 것도 국민적 합의, 특별히 사회적 빈곤 층이나 약자 층의 동의를 얻어내기가 쉽지 않다는 점에서 어려움이 예상된다.
그렇다면 절충이 최고의 전략이 될 수 있겠다. 기득권은 효율성보다는 노블리스 오블리제에 입각해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과 배려의 폭을 넓히고 없는 사람 입장에서는 사회적 효용성이 떨어지면 가정이나 국가 경쟁력 기반이 취약해지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는 사실에 대한 공감대를 확보하는 일이 중요하다 할 것이다.
결국 세상일엔 공짜는 없다는 명제에 보다 충실해질 필요가 있다.

정치권의 복지경쟁은 복지수요에 대한 요구에 관심이 확대되는 측면에서 바람직하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당리당략을 위한 정치적 공세로 활용하려는 의도는 일찌감치 포기하는 게 좋을 것이다. 거센 역풍에 직면하게 될 수도 있음이다.
어떤 수준의 복지체계를 세울 것인지, 어떤 정책적 대안들이 필요할 것인지에 대한 정치권의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 바로 지금이 아닐까 싶다. 세계무대에서의 경쟁력 확보를 위한 무상복지의 적정 수위와 책임지겠다는 마음의 준비까지 총체적인 마침표를 찍어야 할 시간이 된 것이다.
솔직히 정치권의 무상복지 논란을 지켜보면서 편치 않은 심정이다.
정치권의 그릇된 경쟁이 국민들의 마음을 강퍅하게 만들었다는 자책감 때문이다.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지난 지방 선거에서 무상급식에 대한 개인 의지와 상관없이 반대 입장을 표명할 수 없었다는 고백을 수없이 들었다. 주변 기세에 눌려 찬성하건 반대하건 무상급식을 반대할 수 없었다는 토로들이 입맛을 쓰게 했다.


무상복지의 주체는 누가 뭐라고 해도 국민이다.
더 이상 대책없는 무상지지로 표계산만 해대는 정치인에 휘둘리는 일이 없도록 하는 건 국민 몫이다. 헛공약으로 국회의원 자리를 꿰차는 불상사가 없도록 국민 저마다 납세자의 권리를 강화할 일이다.
혜안을 넓힐 일이다.


(2011. 1. 16)
.....홍문종 생각

2011년 1월 15일 토요일

홍문종 생각 - 역사의 선택

역사의 선택

요 며칠 몇 권의 역사책에 꽂혀 지냈다.
역사에는 만약에’라는 가정법이 통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역사적 정황을 재구성해 보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는 사실을 일찍이 터득한 바 있다. 그런 식의 역사 들여다보기로 망중한의 긴장을 푸는 건 나만의 휴식 노하우이기도 하다. 실제로 역사 기록을 살피다 상상한 것 이상의 영감을 전달받을 때도 많다.
인생은 끝없는 선택의 반복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이 인간의 삶인 것이다.
그 반향이 미치는 영향력 때문에 결코 소홀해질 수 없는 원천적 부담이 역사의 물꼬를 틀어쥐고 지울 수 없는 상흔으로 남게 되는 경우가 많다. 사안의 경중이나 옳고 그름과 상관없이 역사의 노정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게 되는 ‘순간의 선택’이 적지 않다. 작게는 개인의 소소한 삶에서부터 크게는 인류전체의 명운이 바꾸는 선택에 이르기까지 숱한 ‘선택의 순간’이 반복되는 과정의 연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
꽤 오랫동안 사랑받았던 국산 전자제품 광고 카피다. 그런데 역사의 현장에서는 이보다 훨씬 더 절박하게 선택을 요구받고 있다. 선택의 딜레마가 상존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역사의 당연한 귀결이 아닐까 싶다. 살아가면서 숱한 선택의 기로에 설 수 밖에 없는 인생의 본질을 떠올리면 절로 그런 생각이 든다.
단종복위 운동을 꾀하다 세조에게 목숨을 잃은 ‘사육신 사건’만 해도 그렇다.
세조를 몰아내고 단종을 복위시키려던 집현전 학자들의 충절은 거사가 사전에 실패하는 바람에 집현전 학자들은 물론 단종의 명운까지 재촉하는 불행을 초래했다. (뜻을 같이했던 ‘김질’이 부담감을 이기지 못하고 (장인 정창손에게) 토설하는 바람에 발각되고 말았다)
애초부터 거사에 김질을 가담시키지 않았다면, 아니 김질이 좀 더 책임감 있고 담대한 사람이었다면 어땠을까? 김질보다는 그의 사람됨을 알아보지 못한 안목의 부재부터 탓해야 하지 않을까? 여러 궁금증들이 꼬리를 물지만 모르긴 몰라도 지금과는 상당히 다른 방향성으로 역사의 물줄기가 흘러가게 되지 않았을까 싶다.

히틀러가 자신의 재능을 살려 예술가의 길을 걸었다면 그의 말로는? 마리 앙뜨와네뜨가 철없는 사치대신 국민의 아픔을 품을 수 있는 왕비의 역량을 갖춘 존재였다면 프랑스 혁명의 기로는? 장개석이 모택동을 이길 수 있었다면 오늘 날 중국의 운명은? 신라대신 고구려나 백제가 삼국을 통일했다면? 구한말, 대원군이 쇄국정책 대신 개방책을 선택하고 이완용 등이 매국노가 아닌 애국자의 길을 선택했다면 우리의 일제강점기는? 6.25사변이 남북 통일을 이룰 수 있었다면?
그런 식으로 생각하다 보면 역사 현장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아쉬움이 너무 많다. 세계사는 물론 우리 역사에서도 예외가 없다. 과거 뿐 아니라 현재 진행되고 있는 사안 중에서도 훗날 아쉬움의 역사로 평가될 일들이 적지 않다는 생각이다.
겸허한 마음으로 국민 여론에 귀를 기울이려는 위정자의 노력이 역사의 아쉬움을 줄이는 한 방안이 아닐까 싶다.
특히 4대강 사업이나 무상 급식 등 국민적 합의가 도출되지 않은 사안들에 대해서는 더 세심한 배려가 있어야겠다. 매 사안마다 후대의 평가에 무게를 두고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임한다면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희망을 잃고 싶지 않다.

2012년은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있는 중요한 시점이다.
각양각색의 아이디어와 출마자들의 핑크빛 공약 등이 2011년을 특별히 백가쟁명시대로 만들 것 같은 예감이다.
더 이상 역사를 거스르는 어리석음을 자초하는 일이 없어야 할텐데 무방비상태로 휩쓸리게 될까봐 걱정이다. 걔 중에는 분명 이틈을 타고 역사의 흐름을 유린할 불순세력들이 들어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구시대 낡은 사고의 포퓰리즘적 산물이 역사의 행간을 어지럽히면서 활개를 치는 무리에 속지 않도록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일이다.
무엇보다도 선거로 지도자를 선출하는 일이 얼마나 결정적인 의미를 담은 선택인지를 인식해야 하는 중요한 시점이다. 이미 저질러놓고 뒤늦게 후회해봤자 인생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건 지금까지 경험한 학습효과로 충분하다.
옥석을 구분하는 지혜로운 안목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인지에 대해서도 깊이 명심할 일이다.

더 이상 구차한 후회와 반성에 매달리는 과거를 양산해서는 안되겠다.
후회를 줄일수록 밝은 미래는 당연히 내 것이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도록 하자. 역사를 되돌릴 수는 없지만 용기를 가지고 역사를 직면한다면 되돌릴 필요가 없게 된다고 한 마야 안펠로우의 조언을 모두의 가슴에 담자.
그렇게 2011년을 국운 상승의 기회로 삼고 그 여세를 몰아 2012년을 대한민국이 거듭나는 원년으로 만들어 버리자.
우리의 힘으로.

(2011. 1. 15)
.....홍문종 생각

2011년 1월 10일 월요일

홍문종 생각 - 다잉 메시지

다잉 메시지


때 아닌 ‘다잉 메시지’ 논란이 신년 벽두를 달구고 있다.
살해된 피해자가 범인에 대한 정보를 살인현장에 남겨놓는다는 통상적 의미가 아닌, 이유를 알 수 없는 동물들의 떼죽음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향방.....지구촌 곳곳에서 동물들의 집단 의문사 사태가 이어지면서 그 원인과 배경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십만, 수천, 수백 단위의 새 떼의 주검이 하늘에서 떨어지거나 수백만 마리의 각종 물고기떼의 집단폐사가 지구촌 전역에서 일어나고 있다. 수만 마리의 꽃게들과 찌르레기, 그리고 꿀벌들이 대량으로 집단폐사 됐다는 소식도 들린다. 심지어 중국 광저우에서는 수천마리의 지렁이들이 연일 아스팔트 위로 기어오르는 기현상도 벌어지고 있다.
우리나라 형편도 심각하기는 마찬가지다. 의문사 정황은 아니지만 지난해 여름, 괴질 바이러스로 인한 토종벌 90%의 집단 폐사로 토종벌 농가를 도탄에 빠뜨리더니 이번에는 구제역과 AI 조류독감이 쓰나미처럼 전국의 축산 농가를 휩쓸고 있다.
공상과학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 진행 중인 현실로 말이다.
동물들의 떼죽음이 우리들에게 뭘 전하고자 하는지 답을 얻기가 쉽지 않다.
비밀정부의 실험 때문이라는 식의 음모론도 있고 사라진 마야문명이 예고했던 2012년 지구 종말론이 대두되기도 한다. 급격한 기후변화로 인한 생태계 파괴나 강력한 지구자기장, 방사능 성분의 중성자 별 출몰 등 갖가지 억측도 나름의 근거를 가지고 떠돌고 있다.
그렇게 동물들의 ‘다잉 메시지’에 대한 해석이 분분한 가운데 동물의 수난이 인간에게 악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는 전문가의 경고가 설득력을 발휘하고 있다. 먹이사슬 최정점에 서 있는 인간이 다음 표적이 될 거라는 관측이 근심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문득 인간이 지구의 주인을 자처하지만 실상 인간보다 3억년 먼저 지구를 접수한 개미를 부각시키던 언론보도가 떠오른다.따지고 보면 인간은 그동안 대책없이 무모했고 지나치게 오만했고 또 몰염치했던 것 같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허명아래 자연의 희생을 많이도 착취했다. 자연은 손을 내밀기만 하면 그저 속절없이 주고 또 주는 존재라는 근거없는 믿음은 무슨 자신감에서였는지.
그러다 인간의 이기심을 더 이상 용납하지 않는 자연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져내리고 있는 형국이다. 자연의 본격적인 반격에 허를 찔린 채 쩔쩔매는 그 나약함이 인간의 본질일지도 모른다.
‘사랑해’를 생각한다.
‘사랑해’는 집에서 기르고 있는 강아지 이름이다. 맨 처음 아들의 손에 들려 들어올 때만 해도 별 주목을 받지 못했던 사랑해는 10여년이 지난 지금은 당당한 가족구성의 일원이 됐다.
세월이 지나면서 사랑해의 영특함이 계속 탄복하게 만든다. 눈치가 너무나 빤해서 자기가 발 벗고 누울 장소를 기가 막히게 알아낸다. 집안 전체를 돌아다니길 좋아하면서도 제가 싫어하는 사람이 있으면 일체 나오지도 않고 짖지도 않는 모습을 보면 인간보다 못하지 않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나만 해도 녀석의 배변 뒤치닥거리를 기꺼이 해 줄 정도로 친밀한 존재다. 심지어 잠자리에 찾아와 내 곁에 살포시 기대고 자는 모습을 보면 개와 인간이라기 보다 동등한 생명체로서의 진한 교감이 느껴질 때가 많다. 혹여 이번 사태가 동물들이 그런 영특함으로 우리에게 지금 지구와 인간의 위기를 전하고자 하는 의리의 발로라면 대단히 무서운 일이다. 필경 굉장히 좋지않은 징후임에 틀림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좌절은 금물이다.
위기를 호기로 바꾸는 것은 각자의 역량에 달려있다.
이제부터라도 자연에 대한 지금까지의 이기심을 버리고 새로운 관계로 거듭나면 된다. 일종의 경외심으로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동반자 개념으로 그들을 새롭게 받아들이자는 말이다. 심지어 그들을 위해 기꺼이 방패막이가 되겠다는 각오까지도 블사할 필요가 있다.
자연의 위기를 최소화 하기 위한 각고의 노력을 통해 그동안 무모하게 훼손시킨 자연 앞에 성의를 표시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다잉 메시지를 리빙 메시지로 바꿀 수 있다는 신념을 갖자.
그것이 지금 우리가 실천해야 할 가장 절실한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2011. 1. 10)
....홍문종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