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이번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은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유난한 감회로 다가왔을 것이다.
착취와 억압으로 아프리카를 울렸던 서방세계를 모두 불러들여 안방에서 잔치를 벌인 셈이기 때문이다.
월드컵이 개최되는 한 달여 동안, 오랜 시간을 착취와 억압의 굴레 속에서 유린당했던 뼈아픈 과거사를 떠올리면서 아프리카 사람들의 기분이 어땠을까 싶다.
그리고 그 l주일 뒤에는 아파르트헤이트(흑인차별정책) 철폐 투쟁의 구심점이었던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통령의 92세 생일잔치가 있었다.
전 세계가 이 ‘살아있는 성자’의 생일을 축하했다.
작년부터 만델라의 생일을 '국제 넬슨 만델라의 날(Nelson Mandela International Day)'로 정한 유엔은 올해 그 첫해를 맞아 축구 대회 등 다양한 행사를 마련했다. 만델라 재단도 전 세계 사람들에게 '67분' 동안 봉사할 것을 촉구했다. '67'이라는 숫자는 만델라가 1942년 아프리카민족회의(ANC)에 입당한 이후 인권운동에 헌신해 온 기간을 의미한다. 봉사 활동 확산을 위해 영화에서 만델라 역을 맡았던 미국 배우 모건 프리먼 등 유명 인사들이 요하네스버그에서 케이프타운까지 오토바이로 행진하는 퍼포먼스가 벌어지기도 했다.
독립 50주년의 아프리카가 뜨고 있다.
명실상부한 지구촌의 21세기 경제성장 동력으로 자리를 굳히며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중이다.
인류문명의 발생지였던 자존심을 되찾기 위한 본격적인 용틀임이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얼마 전 세계가 목도했던 월드컵 주최국으로서의 단단한 면모는 우연이 아니다.
이제 아프리카를 무지와 가난, 에이즈, 분쟁으로 피폐해진 죽음의 땅으로 기억하는 이들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검은 대륙을 향한 지구촌의 뜨거운 구애가 연일 줄을 잇는 형국이다. 거액의 차관과 원조를 앞세워 아프리카와의 스킨십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9억 인구의 아프리카는 무궁무진한 수요가 예견되는 여전히 ‘수줍은’ 미래의 소비시장이다. 석유·가스·희귀 금속 등의 천연자원과 관광자원의 보고라는 점도 아프리카의 기대치를 키우는 요인이라고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 거대한 규모의 자원들이 개발의 손길이 미처 닿지 않은 곳 투성이라는 매력이 전 세계의 발길을 아프리카로, 아프리카로 끌어들이고 있는 지도 모른다.
저마다 젯밥에 흑심을 두고 있는 형국이지만 아프리카로선 꽃놀이패임에 틀림없다.
얼마 전 아프리카 독립 50주년을 기념해 케냐와 나이지리아 등 아프리카 46개국에서 100여명의 기업가와 NGO활동가를 백악관으로 초청한 오바마는 ‘아프리카의 미래’를 역설한 바 있다. 지원을 강화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아프리카와의 관계 강화를 위해 사전 포석을 두는 의도가 역력하다.
중국 역시 아프리카 공들이기에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다. 아프리카 수교 50주년을 기념해 중국- 아프리카 포럼회의를 베이징에서 개최하고 아프리카 대륙 53개 국가 정상을 모두 초청한다는 계획이다. 중국정부가 아프리카간의 무역관계를 얼마나 중요시 하고 있는 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 못지 않은 선견지명으로 일찌감치 아프리카에 터를 잡은 일본의 공세 역시 만만치 않은 내공을 보이고 있다. 사업확장에 나선 민간기업의 공격적 투자가 도로 및 원자로 건설, 자동차 생산, 식품 판매 등 전방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거의 전쟁수준으로 전개되고 있는 아프리카 쟁탈전(?) 속에서 지금 우리는 무슨 준비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제 겨우 아프리카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했으니 남들 다 지나간 뒤에 뒷북이나 치는 신세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우주경쟁은 기술력 부족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뒤쳐질 수 밖에 없었다고 하지만 아프리카 경쟁구도에서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조금만 더 적극적인 관심을 투자한다면 얼마든지 역할 할만한 콘텐츠가 우리에게 있기 때문이다.
특히 경공업이나 중공업 분야에 대한 가능성을 타진해 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적극적인 현지 투자와 함께 인도적 차원의 지원을 병행하는 방식으로 우리 만의 경쟁력을 확보하는 접근법을 연구해 보자.
PS, 아, 이 글을 마무리하려는 시점에 삼성전자가 10일 유네스코한국위원회ㆍ한국국제협력단과 아프리카 풀뿌리교육 발전사업인 '브릿지 프로그램'을 공동으로 실행하는 내용의 업무협약을 맺었다는 소식이 들린다. 남아공, 레소토, 르완다, 말라위, 짐바브웨 등 아프리카 5개국의 15개 지역에 한국의 청년지역활동가 15명을 파견해 문맹퇴치 및 지역개발 사업을 돕는 프로그램인데 한국국제협력단이 올해 처음 시행하는 민관협력사업(PPP)의 하나라고 한다. (2010. 8. 9 )
....홍문종 생각
2010년 8월 9일 월요일
홍문종 생각 - 개각
개각
집권 후반기 진용이 드러난 휴일 개각이 화제다.
총리를 비롯한 장관급 10여명이 교체된 최대 규모인 만큼 국민적 관심사도 적지 않은 것 같다.
그동안 정치권에 몸담고 있으면서 여러 번에 걸쳐 개각 과정을 지켜볼 기회가 있었다.
생각해보면 모두를 흡족하게 만들었던 개각의 기억은 없는 것 같다.
오히려 역대 개각 때마다 정치총리니 대독총리, 무마용, 구색용 등 총리 장관직에 대한 각종 별칭과 이런 저런 구설이 따라붙는 현상을 통상적인 관례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였다.
임기를 마친 총리 장관들 중에서도 통치권자의 당초 임명 의도를 충족시킬만한 업적을 남긴 경우가 얼마나 되는가를 돌아보면 딱히 기억에 남는 사례가 없다.
역할의 중요성 때문이라도 내각 구성원의 면면을 결정하는 인선작업은 신중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임시방편이나 논공행상, 코드인사 식의 측면으로 접근하는 인사는 분명한 한계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자주 교체되는 우리와 달리 대통령과 임기를 같이 하는 부처 장관이 많은 미국이 부럽게 느껴질 때가 많다. 대통령과 장관이 함께 나서서 지속적인 정치적 아젠다를 관철시키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는 모습에서 미국을 지탱하는 힘의 근원을 보게 되는 것 같다. 최소한 자신들이 동의한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정부 당국의 끈질긴 열정에 국민들이 우호적인 시선을 보내게 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결과가 아닐까 싶다.
반면 파리목숨에 비교되는 우리 정부 각료의 임기 현실로는 자기 소신을 편다는 자체가 언감생심이다. 총리나 장관들이 개인적 소신보다 자리보전이나 보신 정책에 연연해하다가 대통령 신망도 국민 기대도 만족시키지 못한 채 도중하차 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기 일쑤였다. 국민들에게 일시적인 전시효과나 눈에 보이는 단기적 성과에 급급했다는 질책을 피하지 못하게 되는 결과는 어쩌면 당연한 수순인지 모른다.
모두에게 불행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정관의 치'로 그 업적을 길이 숭상받고 있는 중국 당나라 태종의 성공기가 우리 현실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 중에서 특히 당태종과 그의 부인 장손 황후, 명재상 위징 등의 상관관계를 좀 더 유심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당나라의 융성은 당태종 혼자의 힘이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태종에게 쓴소리로 충언을 아끼지 않는 위징과 남편이 위징의 충언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지혜롭게 내조한 장손황후의 공로를 간과할 수 없다. 또한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적진의 책사 위징의 능력을 알아보고 그를 중용하는 과감한 인사를 단행하거나 부인의 충고를 흘려듣지 않은 당태종 자신의 결단력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다.
어떤 의미로 보면 당나라의 번영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고 충언을 계속한 위징이나 귀에 거슬리는 위징의 쓴 소리를 모두 수용해서 국정에 반영할 줄 알았던 태종의 만남이 이뤄낸 업적이라고 할 수 있다.
기왕에 결정된 개각 내용에 대한 평가는 적절하지 않다는 생각에 언급하지 않겠다.
다만 이번 내각만큼은 대통령과 국정 후반을 책임지고 임기를 같이하는 붙박이 내각으로 성공을 거둘 수 있었으면 싶다. 당나라의 태종과 위징의 관계처럼 이번 개각이 성군과 충신의 결합물로 흡족할만한 성과를 낼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대통령과 각료들이 정치철학과 정치적 신념을 공유할 수 있고 언제 어디서든 서로간의 소통이 어렵지 않는 동반자 관계로 국정 운영이 진행됐으면 좋겠다.
또한 각료 개개인에게도 소신껏 최선을 다해 줄 것을 주문하는 바이다. 임기를 마치고 난 이후 국민 모두가 그 노고를 진심으로 치하하고 오래 기억할 수 있는 각료로 남겠다는 목표치를 세우면 어떨까 싶다.
이번 직책을 개인적인 정치도약의 발판으로 활용하기보다 마지막 경력이라는 생각으로 열과 성을 다하는 각오로 임한다면 정권의 성공에 크게 기여하는 일등공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기왕이면 명품 인선으로 채워진 출발이었으면 싶다.
이번 내각이 정권을 향한 국민의 신망이 넘칠 수 있도록 대통령과 국민사이를 제대로 이어가는 가교 역할을 잘 해낼 수 있기 바란다. 그래서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국민적 존경을 받을 수 있는 총리와 장관의 면면을 자랑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그래야 국민도 행복해질 수 있다. (2010. 8.8)
...홍문종 생각
집권 후반기 진용이 드러난 휴일 개각이 화제다.
총리를 비롯한 장관급 10여명이 교체된 최대 규모인 만큼 국민적 관심사도 적지 않은 것 같다.
그동안 정치권에 몸담고 있으면서 여러 번에 걸쳐 개각 과정을 지켜볼 기회가 있었다.
생각해보면 모두를 흡족하게 만들었던 개각의 기억은 없는 것 같다.
오히려 역대 개각 때마다 정치총리니 대독총리, 무마용, 구색용 등 총리 장관직에 대한 각종 별칭과 이런 저런 구설이 따라붙는 현상을 통상적인 관례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였다.
임기를 마친 총리 장관들 중에서도 통치권자의 당초 임명 의도를 충족시킬만한 업적을 남긴 경우가 얼마나 되는가를 돌아보면 딱히 기억에 남는 사례가 없다.
역할의 중요성 때문이라도 내각 구성원의 면면을 결정하는 인선작업은 신중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임시방편이나 논공행상, 코드인사 식의 측면으로 접근하는 인사는 분명한 한계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자주 교체되는 우리와 달리 대통령과 임기를 같이 하는 부처 장관이 많은 미국이 부럽게 느껴질 때가 많다. 대통령과 장관이 함께 나서서 지속적인 정치적 아젠다를 관철시키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는 모습에서 미국을 지탱하는 힘의 근원을 보게 되는 것 같다. 최소한 자신들이 동의한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정부 당국의 끈질긴 열정에 국민들이 우호적인 시선을 보내게 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결과가 아닐까 싶다.
반면 파리목숨에 비교되는 우리 정부 각료의 임기 현실로는 자기 소신을 편다는 자체가 언감생심이다. 총리나 장관들이 개인적 소신보다 자리보전이나 보신 정책에 연연해하다가 대통령 신망도 국민 기대도 만족시키지 못한 채 도중하차 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기 일쑤였다. 국민들에게 일시적인 전시효과나 눈에 보이는 단기적 성과에 급급했다는 질책을 피하지 못하게 되는 결과는 어쩌면 당연한 수순인지 모른다.
모두에게 불행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정관의 치'로 그 업적을 길이 숭상받고 있는 중국 당나라 태종의 성공기가 우리 현실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 중에서 특히 당태종과 그의 부인 장손 황후, 명재상 위징 등의 상관관계를 좀 더 유심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당나라의 융성은 당태종 혼자의 힘이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태종에게 쓴소리로 충언을 아끼지 않는 위징과 남편이 위징의 충언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지혜롭게 내조한 장손황후의 공로를 간과할 수 없다. 또한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적진의 책사 위징의 능력을 알아보고 그를 중용하는 과감한 인사를 단행하거나 부인의 충고를 흘려듣지 않은 당태종 자신의 결단력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다.
어떤 의미로 보면 당나라의 번영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고 충언을 계속한 위징이나 귀에 거슬리는 위징의 쓴 소리를 모두 수용해서 국정에 반영할 줄 알았던 태종의 만남이 이뤄낸 업적이라고 할 수 있다.
기왕에 결정된 개각 내용에 대한 평가는 적절하지 않다는 생각에 언급하지 않겠다.
다만 이번 내각만큼은 대통령과 국정 후반을 책임지고 임기를 같이하는 붙박이 내각으로 성공을 거둘 수 있었으면 싶다. 당나라의 태종과 위징의 관계처럼 이번 개각이 성군과 충신의 결합물로 흡족할만한 성과를 낼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대통령과 각료들이 정치철학과 정치적 신념을 공유할 수 있고 언제 어디서든 서로간의 소통이 어렵지 않는 동반자 관계로 국정 운영이 진행됐으면 좋겠다.
또한 각료 개개인에게도 소신껏 최선을 다해 줄 것을 주문하는 바이다. 임기를 마치고 난 이후 국민 모두가 그 노고를 진심으로 치하하고 오래 기억할 수 있는 각료로 남겠다는 목표치를 세우면 어떨까 싶다.
이번 직책을 개인적인 정치도약의 발판으로 활용하기보다 마지막 경력이라는 생각으로 열과 성을 다하는 각오로 임한다면 정권의 성공에 크게 기여하는 일등공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기왕이면 명품 인선으로 채워진 출발이었으면 싶다.
이번 내각이 정권을 향한 국민의 신망이 넘칠 수 있도록 대통령과 국민사이를 제대로 이어가는 가교 역할을 잘 해낼 수 있기 바란다. 그래서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국민적 존경을 받을 수 있는 총리와 장관의 면면을 자랑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그래야 국민도 행복해질 수 있다. (2010. 8.8)
...홍문종 생각
2010년 8월 7일 토요일
홍문종생각 - 선생 김봉두
선생 김봉두
뉴스 보기가 겁난다.
공무원의 파렴치한 행각에 관한 소식이 하루도 빠질 날이 없으니 하는 말이다.
오늘은 교육과학기술부와 산하기관인 한국교육과학기술부기획평가원(과기평)이 그 명맥(?)을 이어줬다.
수시로 허위 출장보고나 인쇄비 등을 부풀리는 수법으로 예산을 횡령해서 상급 기관인 교과부 간부에게 성상납을 포함해 수천만원 대의 향응을 제공한 기상천외한 범죄수법이 드러난 것이다. 실제로 고가의 룸살롱 양주, 성상납 등 유흥비로 흥청망청 탕진되거나 외유성 해외 출장비, 심지어 가족을 동반한 간부의 휴가비용으로 지출된 정황 포착되기도 했다. 이런 식으로 1년여 동안 횡령한 금액이 무려 5700만원이나 된다하니 어이가 없다.
게다가 교과부는 당사자의 자술서까지 확보된 공직윤리지원관실 비위사실 통보에도 불구하고 미봉책에 그친 수상한 조처로 눈총을 받고 있다.
이 사건으로 해임된 사람은 자금을 담당했던 연구원 1명에 불과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연루 당사자 중 상당수가 무탈하게 현직을 지키고 있는 것은 물론 여당 정책위원이나 대학 석좌교수로 잘 나가고 있었다. 특히 핵심 연루자가 과기평 징계위원장을 맡기도 했다니 부패 불감증이 만연된 공직사회의 지독한 실체 앞에서 차라리 눈을 감아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혹시나 이번 사건이 세계로 도약하는 대한민국 미래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될 소지가 될까봐 걱정이다.
국가의 교육과학기술을 위해 연구하라고 내준 자리에서 공금을 횡령하고 성상납이나 벌이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그 소행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것도 가장 선비정신이 투철해야 할 교과부 공직자들이 말이다. 무엇보다도 국가의 근간이 된 교육을 위태롭게 만들었다는 측면에서도 그 죄가 크다.
교과부의 미온적 대처가 사태의 심각성을 확산시켰다.
어떤 형태로든 연구 용역비를 빼돌리고 그것으로 성상납이 이뤄진 게 확실하게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대충 문제를 덮으려고 했던 교과부의 안일함에 대해 책임의 소재를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한다고 생각한다.
도대체 그 정도의 범죄는 당연하다는 의미인지 아니면 신출귀몰한 답변이나 변명에 구출됐다는 건지 그 의미는 잘 모르겠으나 교육부가 이 문제에 대해 지나치게 소극적인 태도 일변도였던 점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다.
부패는 안된다.
중국의 국민당이 무너진 것도 부패 때문이고 필리핀 마르코스의 오래도록 견고했던 정치적 아성을 몰락시켰던 것도 부패다. 일본의 다나까라고 다를 리 없다.
반면 우리의 박정희 전 대통령이 역사적 재평가 대상으로 부각되고 있는 건 경제부흥 측면이 크지만 비교적 청렴한 행적으로 부패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지 않을까 싶다.
사소한 녹 성분이 무쇠를 녹여버리듯 부패의 독성 역시 치명적이라는 점에서 긴장을 풀 수 없다.
방치했다간 돌이킬 수 없는 지경이 되기 쉽다. 그렇게 되기 전에 막아낼 수 있어야 할 텐데 걱정이 많다.
그리고 또 한가지, 교육분야의 자율성에 대한 해 말하고 싶다. .
국회 있을 당시부터 교과부 규모를 지금의 절반 수준으로 줄이고 현장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그리고 이번 사건은 그 때의 우려가 현실이 된 셈이어서 개인적으로도 소신이 더 선명해지는 것 같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교육에 관해서는 각 학교나 연구기관의 자율성 확대에 대한 부분을 좀 더 활발하게 논의할 필요가 있다. 그 필요성이 더 절실해졌기 때문이다.
사회가 세분화 되어 갈수록 중앙정부의 방만한 통제는 분명 한계가 있다.
전문성 확보 차원에서도 이 참에 ‘자율의 효율성’을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해 보는 게 좋을 듯 싶다.
이번 사건이 얼마 전 EBS에서 본 영화 ‘선생 김봉두’를 떠올리게 한다.
오래 전 개봉돼 호평을 받은 영화인데 뇌물에만 관심있던 부패 교사가 깡촌으로 좌천돼 그곳의 순진무구한 주민들과 어울리면서 참된 교사로 거듭난다는 내용이다.
현실은 영화보다 더 충격적이다. 공직자 공금횡령에 매춘스캔들까지 포함된 부패종합선물 셋트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영화 속 김봉두 선생은 개과천선해서 그야말로 새나라의 교사로 거듭나는 해피앤딩이지만 우리의 현실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걱정이다.
관계당국은 더 이상 눈치보지 말고 여론의 질타가 더 매서워지기 전에 자발적으로 관련자를 일벌백계로 다스려야 한다. 대충 이러다 말겠지 요행수를 바라다간 큰 코 다치는 수가 많다는 것을 앞서의 여러 경험들로 학습했을 것이다.
더 이상 같은 분노와 수치스러움에 시달리고 싶지 않은 국민 좀 생각해 주시압.
(2010.8.6) .....홍문종 생각
뉴스 보기가 겁난다.
공무원의 파렴치한 행각에 관한 소식이 하루도 빠질 날이 없으니 하는 말이다.
오늘은 교육과학기술부와 산하기관인 한국교육과학기술부기획평가원(과기평)이 그 명맥(?)을 이어줬다.
수시로 허위 출장보고나 인쇄비 등을 부풀리는 수법으로 예산을 횡령해서 상급 기관인 교과부 간부에게 성상납을 포함해 수천만원 대의 향응을 제공한 기상천외한 범죄수법이 드러난 것이다. 실제로 고가의 룸살롱 양주, 성상납 등 유흥비로 흥청망청 탕진되거나 외유성 해외 출장비, 심지어 가족을 동반한 간부의 휴가비용으로 지출된 정황 포착되기도 했다. 이런 식으로 1년여 동안 횡령한 금액이 무려 5700만원이나 된다하니 어이가 없다.
게다가 교과부는 당사자의 자술서까지 확보된 공직윤리지원관실 비위사실 통보에도 불구하고 미봉책에 그친 수상한 조처로 눈총을 받고 있다.
이 사건으로 해임된 사람은 자금을 담당했던 연구원 1명에 불과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연루 당사자 중 상당수가 무탈하게 현직을 지키고 있는 것은 물론 여당 정책위원이나 대학 석좌교수로 잘 나가고 있었다. 특히 핵심 연루자가 과기평 징계위원장을 맡기도 했다니 부패 불감증이 만연된 공직사회의 지독한 실체 앞에서 차라리 눈을 감아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혹시나 이번 사건이 세계로 도약하는 대한민국 미래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될 소지가 될까봐 걱정이다.
국가의 교육과학기술을 위해 연구하라고 내준 자리에서 공금을 횡령하고 성상납이나 벌이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그 소행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것도 가장 선비정신이 투철해야 할 교과부 공직자들이 말이다. 무엇보다도 국가의 근간이 된 교육을 위태롭게 만들었다는 측면에서도 그 죄가 크다.
교과부의 미온적 대처가 사태의 심각성을 확산시켰다.
어떤 형태로든 연구 용역비를 빼돌리고 그것으로 성상납이 이뤄진 게 확실하게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대충 문제를 덮으려고 했던 교과부의 안일함에 대해 책임의 소재를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한다고 생각한다.
도대체 그 정도의 범죄는 당연하다는 의미인지 아니면 신출귀몰한 답변이나 변명에 구출됐다는 건지 그 의미는 잘 모르겠으나 교육부가 이 문제에 대해 지나치게 소극적인 태도 일변도였던 점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다.
부패는 안된다.
중국의 국민당이 무너진 것도 부패 때문이고 필리핀 마르코스의 오래도록 견고했던 정치적 아성을 몰락시켰던 것도 부패다. 일본의 다나까라고 다를 리 없다.
반면 우리의 박정희 전 대통령이 역사적 재평가 대상으로 부각되고 있는 건 경제부흥 측면이 크지만 비교적 청렴한 행적으로 부패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지 않을까 싶다.
사소한 녹 성분이 무쇠를 녹여버리듯 부패의 독성 역시 치명적이라는 점에서 긴장을 풀 수 없다.
방치했다간 돌이킬 수 없는 지경이 되기 쉽다. 그렇게 되기 전에 막아낼 수 있어야 할 텐데 걱정이 많다.
그리고 또 한가지, 교육분야의 자율성에 대한 해 말하고 싶다. .
국회 있을 당시부터 교과부 규모를 지금의 절반 수준으로 줄이고 현장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그리고 이번 사건은 그 때의 우려가 현실이 된 셈이어서 개인적으로도 소신이 더 선명해지는 것 같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교육에 관해서는 각 학교나 연구기관의 자율성 확대에 대한 부분을 좀 더 활발하게 논의할 필요가 있다. 그 필요성이 더 절실해졌기 때문이다.
사회가 세분화 되어 갈수록 중앙정부의 방만한 통제는 분명 한계가 있다.
전문성 확보 차원에서도 이 참에 ‘자율의 효율성’을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해 보는 게 좋을 듯 싶다.
이번 사건이 얼마 전 EBS에서 본 영화 ‘선생 김봉두’를 떠올리게 한다.
오래 전 개봉돼 호평을 받은 영화인데 뇌물에만 관심있던 부패 교사가 깡촌으로 좌천돼 그곳의 순진무구한 주민들과 어울리면서 참된 교사로 거듭난다는 내용이다.
현실은 영화보다 더 충격적이다. 공직자 공금횡령에 매춘스캔들까지 포함된 부패종합선물 셋트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영화 속 김봉두 선생은 개과천선해서 그야말로 새나라의 교사로 거듭나는 해피앤딩이지만 우리의 현실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걱정이다.
관계당국은 더 이상 눈치보지 말고 여론의 질타가 더 매서워지기 전에 자발적으로 관련자를 일벌백계로 다스려야 한다. 대충 이러다 말겠지 요행수를 바라다간 큰 코 다치는 수가 많다는 것을 앞서의 여러 경험들로 학습했을 것이다.
더 이상 같은 분노와 수치스러움에 시달리고 싶지 않은 국민 좀 생각해 주시압.
(2010.8.6) .....홍문종 생각
2010년 8월 5일 목요일
홍문종 생각 - 오바마의 칭찬
오바마의 칭찬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난 해 1월부터 지금까지 342회의 연설에서 36번(참고로 미국의 주요 동맹국인 호주와 영국은 각각 6회와 9회, 일본과 프랑스는 17회, 싱가포르 1회, 대만 2회 정도다)이나 ‘코리아’를 언급한 것으로 조사됐다는 워싱턴포스트지의 보도가 있었다.
오바마의 잦은 ‘한국 언급’은 한국에 대한 깊은 관심과 믿음이 반영된 결과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특히 오바마는 한국의 교육 시스템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실제로 오바마가 연설 석상에서 ‘코리어 벤치마킹’을 외쳐대는 모습은 그다지 생경하지 않다. 대통령 취임 이후 고국인 아프리카 첫 방문길에 나섰을 당시에는 자신이 태어났을 때만 해도 한국을 능가하던 케냐와 같은 아프리카 국가의 1인당 경제규모가 지금은 완전히 추월당했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아프리카 가나 의회 연설을 통해 ‘한국을 배우라’고 조언한 것도 오바마의 그 같은 심중이 반영된 결과로 해석된다.
본국인 미국은 물론 세계 여러나라를 향해서도 ‘대한민국’을 외쳐주는 오바마 덕분에 세계인에게 대한민국이 소개되는 효과를 톡톡히 본 셈이다. 세계 최강국 대통령의 칭찬이 싫지는 않다. 세계 시장에서 그만큼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다는 자부심에 솔직히 우쭐한 기분이 들 때도 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을 조금만 더 깊게 들여다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일그러진 대한민국의 실체가 곧바로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오바마가 경제발전의 롤모델로 추켜세우고 있는 우리의 경제 실상만 해도 그렇다.
전체적으로 커지고 있는 우리 경제의 파이의 대부분은 중소기업이 아닌 대기업의 몫으로 돌아가기 일쑤다. 금감원의 단속에도 불구하고 공공연하게 불공정 거래가 횡행하고 있다. 이런 불합리한 점들이 우리 경제가 안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점이다.
이를 선결하지 않고는 우리에게 진정한 의미의 경제발전이 존재할 리 없다.
한나라당 홍준표 최고위원도 엊그제 당 회의에서 안을 들여다보면 기층민들의 생활이나 삶의 질은 추락할 대로 추락하고 부의 편중에 대해 아무런 해법도 제시되지 못한 채 3%의 재벌들이 90%의 富를 독식하고 있는 한국 경제발전의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다.
과대포장은 교육현실이라고 다를 바 없다.
우리의 높은 교육열에 대한 오바마의 극찬에도 불구하고 양심상 우리교육에 대해 밝은 전망을 내놓지 못하겠다. 그 많은 후유증을 외면할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세계 제1의 대학 진학률을 자랑하는 건 맞다. 그렇지만 교육의 질을 담보하지 못하는 양적 팽창은 교육현장에 별다른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남다른 교육열은 오히려 학생들의 삶을 노예의 그것으로 전락시키는 주범이 되고 말았다.
독창성 없이 폐쇄적으로 운영되는 우리의 교육현실이 문제되지만 개선의 여지를 찾아볼 수 없다는 게 문제다.
이렇듯 엄청나게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는 우리 교육이 세계인의 부러움을 살만한 가를 생각하면 실소를 금치 못하겠다.
부의 편중현상으로 야기된 빈부갈등과 창의력 부재로 비전제시가 불가능해진 교육현장은 21세기 미래한국을 가로막는 명백한 걸림돌이다.
이를 제거하기 위한 각고의 노력 없이 우리의 미래는 단연코 없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획기적인 대책, 특별히 소외되고 버려졌다고 생각되는 지역에 대한 과감한 인프라 투자 등 정부의 관심이 절실하다. 계층 간의 갈등해소를 위한 해법 차원에서라도 정부당국의 고민이 있어야한다고 본다.
교육현안에 대해서도 남의 일처럼 구경만 할 게 아니라 실질적인 대안마련을 위한 구체적인 움직임이 있어야겠다. 대학이 됐건 중고등학교가 됐건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교육의 다양성 확보를 위해 최대한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교육정책은 어떨까 싶다.
현실을 직시하고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만이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다.
일단은 21세기 대한민국과 개인의 미래를 제대로 개척할 수 있는 자격증에 도전해보자.
다른 사람의 칭찬을 100% 즐길 수 있는 자격을 갖추자. 그것도 행복이니까.
시작이 반이라고 하니 낙관해도 좋을 듯 하다. (2010. 8. 5)
....홍문종 생각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난 해 1월부터 지금까지 342회의 연설에서 36번(참고로 미국의 주요 동맹국인 호주와 영국은 각각 6회와 9회, 일본과 프랑스는 17회, 싱가포르 1회, 대만 2회 정도다)이나 ‘코리아’를 언급한 것으로 조사됐다는 워싱턴포스트지의 보도가 있었다.
오바마의 잦은 ‘한국 언급’은 한국에 대한 깊은 관심과 믿음이 반영된 결과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특히 오바마는 한국의 교육 시스템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실제로 오바마가 연설 석상에서 ‘코리어 벤치마킹’을 외쳐대는 모습은 그다지 생경하지 않다. 대통령 취임 이후 고국인 아프리카 첫 방문길에 나섰을 당시에는 자신이 태어났을 때만 해도 한국을 능가하던 케냐와 같은 아프리카 국가의 1인당 경제규모가 지금은 완전히 추월당했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아프리카 가나 의회 연설을 통해 ‘한국을 배우라’고 조언한 것도 오바마의 그 같은 심중이 반영된 결과로 해석된다.
본국인 미국은 물론 세계 여러나라를 향해서도 ‘대한민국’을 외쳐주는 오바마 덕분에 세계인에게 대한민국이 소개되는 효과를 톡톡히 본 셈이다. 세계 최강국 대통령의 칭찬이 싫지는 않다. 세계 시장에서 그만큼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다는 자부심에 솔직히 우쭐한 기분이 들 때도 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을 조금만 더 깊게 들여다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일그러진 대한민국의 실체가 곧바로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오바마가 경제발전의 롤모델로 추켜세우고 있는 우리의 경제 실상만 해도 그렇다.
전체적으로 커지고 있는 우리 경제의 파이의 대부분은 중소기업이 아닌 대기업의 몫으로 돌아가기 일쑤다. 금감원의 단속에도 불구하고 공공연하게 불공정 거래가 횡행하고 있다. 이런 불합리한 점들이 우리 경제가 안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점이다.
이를 선결하지 않고는 우리에게 진정한 의미의 경제발전이 존재할 리 없다.
한나라당 홍준표 최고위원도 엊그제 당 회의에서 안을 들여다보면 기층민들의 생활이나 삶의 질은 추락할 대로 추락하고 부의 편중에 대해 아무런 해법도 제시되지 못한 채 3%의 재벌들이 90%의 富를 독식하고 있는 한국 경제발전의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다.
과대포장은 교육현실이라고 다를 바 없다.
우리의 높은 교육열에 대한 오바마의 극찬에도 불구하고 양심상 우리교육에 대해 밝은 전망을 내놓지 못하겠다. 그 많은 후유증을 외면할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세계 제1의 대학 진학률을 자랑하는 건 맞다. 그렇지만 교육의 질을 담보하지 못하는 양적 팽창은 교육현장에 별다른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남다른 교육열은 오히려 학생들의 삶을 노예의 그것으로 전락시키는 주범이 되고 말았다.
독창성 없이 폐쇄적으로 운영되는 우리의 교육현실이 문제되지만 개선의 여지를 찾아볼 수 없다는 게 문제다.
이렇듯 엄청나게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는 우리 교육이 세계인의 부러움을 살만한 가를 생각하면 실소를 금치 못하겠다.
부의 편중현상으로 야기된 빈부갈등과 창의력 부재로 비전제시가 불가능해진 교육현장은 21세기 미래한국을 가로막는 명백한 걸림돌이다.
이를 제거하기 위한 각고의 노력 없이 우리의 미래는 단연코 없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획기적인 대책, 특별히 소외되고 버려졌다고 생각되는 지역에 대한 과감한 인프라 투자 등 정부의 관심이 절실하다. 계층 간의 갈등해소를 위한 해법 차원에서라도 정부당국의 고민이 있어야한다고 본다.
교육현안에 대해서도 남의 일처럼 구경만 할 게 아니라 실질적인 대안마련을 위한 구체적인 움직임이 있어야겠다. 대학이 됐건 중고등학교가 됐건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교육의 다양성 확보를 위해 최대한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교육정책은 어떨까 싶다.
현실을 직시하고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만이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다.
일단은 21세기 대한민국과 개인의 미래를 제대로 개척할 수 있는 자격증에 도전해보자.
다른 사람의 칭찬을 100% 즐길 수 있는 자격을 갖추자. 그것도 행복이니까.
시작이 반이라고 하니 낙관해도 좋을 듯 하다. (2010. 8. 5)
....홍문종 생각
2010년 8월 4일 수요일
홍문종 생각 - 마음의 쓰레기를 비우자
마음의 쓰레기를 비우자
무더위의 연속이다.
날씨 탓인지 요즘 들어 주변 분들의 부음을 부쩍 자주 듣게 되는 것 같다.
덕분에 상가를 찾는 일도 그만큼 빈번해졌다.
지나치게 부풀려진 장제비나 장례 절차 등으로 허례허식이 판을 치는 상가 풍경은 여전하다. 상가를 치장하기 위해 동원되는 수백만원대에 이르는 조화 장식이나 복도에 즐비하게 늘어선 조화 행렬이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된 지 오래다.
그렇더라도 상가가 아니면 만날 수 없는 얼굴을 접하게 되는 등 상가에서만 얻을 수 있는 특별한 덤도 있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것도 상가의 순기능이라고 할 수 있겠다.
상가에서는 다양한 소재가 대화로 거론되는데 인터넷 중독이라고 할 만큼 인터넷 서핑에 열중하고 신문 열독을 통해 세상사에 밝다고 자부하는 나조차 눈이 번쩍 뜨게 하는 내용이 많다.
오늘 다녀온 상가에서는 우리의 부끄러운 휴가문화 실태가 도마 위에 올랐다.
여름 휴가철을 맞아 인파가 몰리고 있는 피서지마다 쌓이는 쓰레기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는데 그 실태가 사못 심각하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피서지라 할 부산 해운대만 해도 하루에 버려지는 쓰레기가 많게는 20톤, 적게는 10톤에 달한다고 하니 괜한 우려는 아닌 듯 싶다. 뿐만 아니라 피서지마다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향락 위주의 음주가무 역시 사회문제의 단골 메뉴가 된 지 오래라는 지적이다.
그런 형국이고 보면 입으로만 선진국민을 자처하는 꼴이어서 얼굴이 뜨거워진다는 우국충정어린 발언도 있었다. 저절로 공감이 가는 현실이었다.
개인적으로도 서구인들의 휴가문화가 우리의 그것과 얼마나 다른지, 합리적으로 운영되고 있는지 익히 경험한 바 있다. 그들은 그야말로 쉰다는 개념이 무엇인가를 확실히 보여주는 휴가를 제대로 즐길 줄 안다. 산책과 독서, 사색 등 재충전하는 시간을 통해 휴가의 진수를 보여주는 그들의 여유로움에서 선진국의 깊은 격조를 느끼게 되고 또 그것이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으로 이어지는 경험은 나만의 것이 아닐 것이다.
최선을 다해 열심히 일하고 주어진 휴식 공간에서는 충실히 충전의 기회를 활용할 줄 아는 그들의 정립된 가치관을 보면서 부러움을 느끼게 된다. 절도있고 합리적인 명품의 격에 대한 선망일지도 모른다.
그것이 그들의 선천적 DNA 영향 때문이라고 하면 할 말이 없다.
그러나 국격이나 민격을 논하기로 하자면 우리가 그들에 비해 뒤떨어질 하등의 이유가 없지 않을까 싶다. 동방예의지국으로 불릴 정도의 격조있는 선비문화의 후예들이 바로 우리 아닌가를 생각하면 말이다.
우리도 물론 일부 상류층 인사들의 경우 참으로 격조있는 그들만의 휴가문화를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몇 사람이 품격을 갖췄다고 해서 별도로 선진 국민을 자처하는 것은 위악이다.
그렇게 될 수도 없다.
우리는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에서 동일한 객체 중 일부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전체의 격이 선진국 대열로 올라가서야 비로소 선진국민이 될 수 있는 일종의 공동운명체인 셈이다.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활성화.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대중을 위한 적극적인 사회참여만큼 국격을 고양시키기에 효과적인 대안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사회지도층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요구되는 시점이다.
얼마 전 박근혜 전대표가 휴가철 읽어야 할 두 권의 책(열국지와 신로마인 이야기)을 소개한 바 있는데 많은 이들이 같은 책을 찾는 모습이었다.(요즘 같은 피서철로는 이례적인 현상이었다)
독서를 하며 휴가를 보내는 건 성숙한 휴가문화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사회 지도층 인사의 간단한 책 소개가 대중의 변화를 견인하는 영향력을 발휘한 것이다.
동일한 방법으로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관심을 보인다면 우리의 휴가문화는 피서지에 쓰레기를 쌓아놓는 게 아니라 마음의 쓰레기를 비우고 재충전 하는 기회로 거듭날 수 있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까지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자기들만의 품격을 위해 노력했다면 앞으로는 대중과 함께 국격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한다. 아무리 궁리한들 독불장군은 존재하지 않는 현실에 순응하자.
오늘도 꼬리를 물고 휴가지로 몰리는 차량대열이 텔레비전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더 이상 피서지의 쓰레기 문제가 우리 사회의 당면한 고민과제로 떠오르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휴가문화 개선을 대한민국의 업그레이드 첫단추로 삼아보는 건 어떨지 여러분의 동참을 기대한다.
우리 모두 저마다의 자리에서 새로운 휴가문화 창출로 대한민국 국격을 올리는 주동자가 되도록 하자.
마음의 쓰레기를 비워서 맨얼굴로도 부끄럽지 않게 진정한 선진국민 대열에 설 수 있는 그날을 향해 다 함께 출발하는 거다. (2010. 8. 4)
....홍문종 생각
무더위의 연속이다.
날씨 탓인지 요즘 들어 주변 분들의 부음을 부쩍 자주 듣게 되는 것 같다.
덕분에 상가를 찾는 일도 그만큼 빈번해졌다.
지나치게 부풀려진 장제비나 장례 절차 등으로 허례허식이 판을 치는 상가 풍경은 여전하다. 상가를 치장하기 위해 동원되는 수백만원대에 이르는 조화 장식이나 복도에 즐비하게 늘어선 조화 행렬이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된 지 오래다.
그렇더라도 상가가 아니면 만날 수 없는 얼굴을 접하게 되는 등 상가에서만 얻을 수 있는 특별한 덤도 있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것도 상가의 순기능이라고 할 수 있겠다.
상가에서는 다양한 소재가 대화로 거론되는데 인터넷 중독이라고 할 만큼 인터넷 서핑에 열중하고 신문 열독을 통해 세상사에 밝다고 자부하는 나조차 눈이 번쩍 뜨게 하는 내용이 많다.
오늘 다녀온 상가에서는 우리의 부끄러운 휴가문화 실태가 도마 위에 올랐다.
여름 휴가철을 맞아 인파가 몰리고 있는 피서지마다 쌓이는 쓰레기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는데 그 실태가 사못 심각하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피서지라 할 부산 해운대만 해도 하루에 버려지는 쓰레기가 많게는 20톤, 적게는 10톤에 달한다고 하니 괜한 우려는 아닌 듯 싶다. 뿐만 아니라 피서지마다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향락 위주의 음주가무 역시 사회문제의 단골 메뉴가 된 지 오래라는 지적이다.
그런 형국이고 보면 입으로만 선진국민을 자처하는 꼴이어서 얼굴이 뜨거워진다는 우국충정어린 발언도 있었다. 저절로 공감이 가는 현실이었다.
개인적으로도 서구인들의 휴가문화가 우리의 그것과 얼마나 다른지, 합리적으로 운영되고 있는지 익히 경험한 바 있다. 그들은 그야말로 쉰다는 개념이 무엇인가를 확실히 보여주는 휴가를 제대로 즐길 줄 안다. 산책과 독서, 사색 등 재충전하는 시간을 통해 휴가의 진수를 보여주는 그들의 여유로움에서 선진국의 깊은 격조를 느끼게 되고 또 그것이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으로 이어지는 경험은 나만의 것이 아닐 것이다.
최선을 다해 열심히 일하고 주어진 휴식 공간에서는 충실히 충전의 기회를 활용할 줄 아는 그들의 정립된 가치관을 보면서 부러움을 느끼게 된다. 절도있고 합리적인 명품의 격에 대한 선망일지도 모른다.
그것이 그들의 선천적 DNA 영향 때문이라고 하면 할 말이 없다.
그러나 국격이나 민격을 논하기로 하자면 우리가 그들에 비해 뒤떨어질 하등의 이유가 없지 않을까 싶다. 동방예의지국으로 불릴 정도의 격조있는 선비문화의 후예들이 바로 우리 아닌가를 생각하면 말이다.
우리도 물론 일부 상류층 인사들의 경우 참으로 격조있는 그들만의 휴가문화를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몇 사람이 품격을 갖췄다고 해서 별도로 선진 국민을 자처하는 것은 위악이다.
그렇게 될 수도 없다.
우리는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에서 동일한 객체 중 일부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전체의 격이 선진국 대열로 올라가서야 비로소 선진국민이 될 수 있는 일종의 공동운명체인 셈이다.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활성화.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대중을 위한 적극적인 사회참여만큼 국격을 고양시키기에 효과적인 대안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사회지도층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요구되는 시점이다.
얼마 전 박근혜 전대표가 휴가철 읽어야 할 두 권의 책(열국지와 신로마인 이야기)을 소개한 바 있는데 많은 이들이 같은 책을 찾는 모습이었다.(요즘 같은 피서철로는 이례적인 현상이었다)
독서를 하며 휴가를 보내는 건 성숙한 휴가문화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사회 지도층 인사의 간단한 책 소개가 대중의 변화를 견인하는 영향력을 발휘한 것이다.
동일한 방법으로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관심을 보인다면 우리의 휴가문화는 피서지에 쓰레기를 쌓아놓는 게 아니라 마음의 쓰레기를 비우고 재충전 하는 기회로 거듭날 수 있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까지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자기들만의 품격을 위해 노력했다면 앞으로는 대중과 함께 국격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한다. 아무리 궁리한들 독불장군은 존재하지 않는 현실에 순응하자.
오늘도 꼬리를 물고 휴가지로 몰리는 차량대열이 텔레비전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더 이상 피서지의 쓰레기 문제가 우리 사회의 당면한 고민과제로 떠오르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휴가문화 개선을 대한민국의 업그레이드 첫단추로 삼아보는 건 어떨지 여러분의 동참을 기대한다.
우리 모두 저마다의 자리에서 새로운 휴가문화 창출로 대한민국 국격을 올리는 주동자가 되도록 하자.
마음의 쓰레기를 비워서 맨얼굴로도 부끄럽지 않게 진정한 선진국민 대열에 설 수 있는 그날을 향해 다 함께 출발하는 거다. (2010. 8. 4)
....홍문종 생각
2010년 8월 2일 월요일
홍문종 생각 - '투캅스; 이야기
'투캅스' 이야기
배우 안성기와 박중훈이 능청스런 명품 연기로 콤비를 이뤘던 ‘투캅스’는 재미있게 봤던 영화 중 하나다. 그런데 오늘 텔레비전 뉴스를 통해 만난, 영화가 아닌 현실에서 맹활약(?) 중인 ‘투캅스’들은 씁쓸함을 남긴다.
경찰과 불법업소 주인 사이의 먹이사슬로 얽힌 뒷거래에 관한 사건인데 발단은 유흥업소를 운영하면서 세금 43억여만원을 포탈하고 미성년자를 고용해 성매매를 알선한 죄로 업주가 구속되면서부터다. 이런 불법행위에도 불구하고 10여 년간 경찰의 단속대상이 되지 않은 사실이 불거지면서 무려 66명의 경찰이 관련 혐의로 감찰 조사를 받은 것이다.
그 결과 6명의 경찰이 해임되거나 파면되고 33명이 감봉 또는 견책조치 됐는데 이마저도 ‘제식구 감싸기’라는 질타를 받고 있으니 경찰 체면이 말이 아닌 상황이다.
불법을 단속해야 할 경찰이 문제 업소와 결탁해 뒤를 봐주는 ‘유착형 비리’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사행성 게임장 업소를 대상으로 단속 부서 요원들이 업주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단속 정보를 사전에 유출시키는 방법으로 보호하는 정도는 새삼 놀랄 일도 아닐 정도고 심지어 폭력조직이 운영하는 안마시술소에서 금품을 받아온 경찰이 성매매 신고자의 신원을 유출시켜 보복폭행을 당하게 하는 일까지 있으니 그 치부의 수위가 어느 정도인지는 짐작할 만하다.
문제는 이처럼 망가진 경찰조직이 우리사회의 원천적 자본이랄 수 있는 신뢰에 직접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측면이다. 실제로 우리의 신뢰지수는 크게 나빠져 있는 상황이다. 세계가치관조사(World Value Survey) 결과 한국인은 10명 중 3명만이 남을 믿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이는 신뢰지수가 가장 높은 스웨덴(6.8명)의 절반에도 못 미치고, 중국(5.2명), 베트남(5.2명)보다도 낮은 수치다.
우리 사회의 불신의 정도가 얼마나 심각해져 있는지 짐작 할 수 있을 것이다.
부패경찰의 타락상에 대한 사회적 지탄은 상상 이상이다.(그 중에 묵묵히 자기 본분을 지키며 최선을 다하는 분들이 없는 건 아니다) 이래놓고 무슨 수사권 독립을 얘기하고 있느냐는 개탄의 목소리 앞에서 자신들을 위한 항변에 나설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지 궁금하다.
국회에서 행정자치위원회 활동을 통해 경찰 업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3D직종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불분명한 출퇴근 시스템이나 머리와 몸을 동시에 쓰면서 받는 스트래스 등을 생각한다면 너무나 힘든 직업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래서 경찰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경찰을 적극 옹호하는 親경찰론자였던 내가 오늘만큼은 그들을 변명해 줄 아무 말도 찾을 수 없었다. 나 자신의 치부를 들킨 것 처럼 부끄러웠다.
그러나 타락했기 때문에 권한을 축소하거나 박탈하는 식의 대응은 적절한 해법이 아니라고 본다.
개선의 여지없이 외면한다고 해서 저절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미운자식 떡하나 더 주는 심정으로 더 적극적인 관심과 자극으로 경찰의 환골탈태를 유도하는 게 민주시민의 역할이 아닐까 싶다.
그런 관점에서 평소 경찰조직을 거듭나도록 하기 위한 방안으로 가지고 있는 개인적 소신을 피력하고자 한다.
무엇보다도 경찰의 분권화와 봉급 인상 문제가 가장 시급하다고 생각한다.
업무량에 비해 지나치게 미흡한 박봉이 부패에 둔감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판단 때문이다. 처우개선으로 경찰의 사기가 진작된다면 업무에 대한 자긍심이 부패의 자정지수를 높이게 되는 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 다음 관건은 자치경찰제 도입과 시행이다.
어떤 제도에서도 10%의 부패는 불가피할 지 모른다. 자치경찰제가 조직의 부패를 축소시키는데 기여할 수 있는 효과가 크다고 기대하진 않는다. 다만 자치경찰제 도입이 경찰조직의 대민 서비스에 대한 의식구조를 바꿔주고 그 질을 높일 수 있는 보완책의 일환으로는 활용 가치가 크다고 보기 때문에 자치경찰제 정착을 주장하는 바이다.
반면에 경찰대학은 한시라도 빨리 폐지돼야 한다는 쪽이다. 특히 혈연 지연 학연 등으로 움직이는 현상이 일상화 되어있는 우리의 사회적 구조에서는 경찰대학의 독식현상이 바람직하지 않게 보이는 건 사실이다. 구성원끼리의 긍정적인 경쟁구도를 위해서도 경찰대학 제도는 폐지돼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경찰의 제한적인 수사권도 걸림돌이다. 독과점 방지 차원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다. 이번 기회에 ‘수사권 이양’ 문제를 적극적으로 검토되었으면 좋겠다. 검찰과 경찰, 고비처 등의 조직이 서로 견제하고 경쟁하는 구도가 돼야 사정 기능도 강화할 수 있고 대국민 서비스의 질도 개선될 수 있다.
견제와 협력을 통한 책임과 의무가 만들어내는 환상의 콤비 플레이를 기대하는 건 지나친 낙관이려나?
당분간 국민의 뇌리 속에 박힌 경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어쩔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일부 경찰에 해당되겠지만 국민에게 준 상처는 정말로 많은 시간이 흐른 후에야 온전하게 치유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더라도 이를 해소하려는 지속적인 노력은 이어져야 한다. 각오와 결기의 중무장과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경찰 스스로 해결해내야 할 몫이라는 점을 잊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경찰이 민중의 지팡이인 본연의 모습으로 태어날 수 있기를 바란다.
부디 기대한다. (2010. 8. 2)
....홍문종 생각
배우 안성기와 박중훈이 능청스런 명품 연기로 콤비를 이뤘던 ‘투캅스’는 재미있게 봤던 영화 중 하나다. 그런데 오늘 텔레비전 뉴스를 통해 만난, 영화가 아닌 현실에서 맹활약(?) 중인 ‘투캅스’들은 씁쓸함을 남긴다.
경찰과 불법업소 주인 사이의 먹이사슬로 얽힌 뒷거래에 관한 사건인데 발단은 유흥업소를 운영하면서 세금 43억여만원을 포탈하고 미성년자를 고용해 성매매를 알선한 죄로 업주가 구속되면서부터다. 이런 불법행위에도 불구하고 10여 년간 경찰의 단속대상이 되지 않은 사실이 불거지면서 무려 66명의 경찰이 관련 혐의로 감찰 조사를 받은 것이다.
그 결과 6명의 경찰이 해임되거나 파면되고 33명이 감봉 또는 견책조치 됐는데 이마저도 ‘제식구 감싸기’라는 질타를 받고 있으니 경찰 체면이 말이 아닌 상황이다.
불법을 단속해야 할 경찰이 문제 업소와 결탁해 뒤를 봐주는 ‘유착형 비리’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사행성 게임장 업소를 대상으로 단속 부서 요원들이 업주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단속 정보를 사전에 유출시키는 방법으로 보호하는 정도는 새삼 놀랄 일도 아닐 정도고 심지어 폭력조직이 운영하는 안마시술소에서 금품을 받아온 경찰이 성매매 신고자의 신원을 유출시켜 보복폭행을 당하게 하는 일까지 있으니 그 치부의 수위가 어느 정도인지는 짐작할 만하다.
문제는 이처럼 망가진 경찰조직이 우리사회의 원천적 자본이랄 수 있는 신뢰에 직접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측면이다. 실제로 우리의 신뢰지수는 크게 나빠져 있는 상황이다. 세계가치관조사(World Value Survey) 결과 한국인은 10명 중 3명만이 남을 믿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이는 신뢰지수가 가장 높은 스웨덴(6.8명)의 절반에도 못 미치고, 중국(5.2명), 베트남(5.2명)보다도 낮은 수치다.
우리 사회의 불신의 정도가 얼마나 심각해져 있는지 짐작 할 수 있을 것이다.
부패경찰의 타락상에 대한 사회적 지탄은 상상 이상이다.(그 중에 묵묵히 자기 본분을 지키며 최선을 다하는 분들이 없는 건 아니다) 이래놓고 무슨 수사권 독립을 얘기하고 있느냐는 개탄의 목소리 앞에서 자신들을 위한 항변에 나설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지 궁금하다.
국회에서 행정자치위원회 활동을 통해 경찰 업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3D직종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불분명한 출퇴근 시스템이나 머리와 몸을 동시에 쓰면서 받는 스트래스 등을 생각한다면 너무나 힘든 직업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래서 경찰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경찰을 적극 옹호하는 親경찰론자였던 내가 오늘만큼은 그들을 변명해 줄 아무 말도 찾을 수 없었다. 나 자신의 치부를 들킨 것 처럼 부끄러웠다.
그러나 타락했기 때문에 권한을 축소하거나 박탈하는 식의 대응은 적절한 해법이 아니라고 본다.
개선의 여지없이 외면한다고 해서 저절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미운자식 떡하나 더 주는 심정으로 더 적극적인 관심과 자극으로 경찰의 환골탈태를 유도하는 게 민주시민의 역할이 아닐까 싶다.
그런 관점에서 평소 경찰조직을 거듭나도록 하기 위한 방안으로 가지고 있는 개인적 소신을 피력하고자 한다.
무엇보다도 경찰의 분권화와 봉급 인상 문제가 가장 시급하다고 생각한다.
업무량에 비해 지나치게 미흡한 박봉이 부패에 둔감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판단 때문이다. 처우개선으로 경찰의 사기가 진작된다면 업무에 대한 자긍심이 부패의 자정지수를 높이게 되는 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 다음 관건은 자치경찰제 도입과 시행이다.
어떤 제도에서도 10%의 부패는 불가피할 지 모른다. 자치경찰제가 조직의 부패를 축소시키는데 기여할 수 있는 효과가 크다고 기대하진 않는다. 다만 자치경찰제 도입이 경찰조직의 대민 서비스에 대한 의식구조를 바꿔주고 그 질을 높일 수 있는 보완책의 일환으로는 활용 가치가 크다고 보기 때문에 자치경찰제 정착을 주장하는 바이다.
반면에 경찰대학은 한시라도 빨리 폐지돼야 한다는 쪽이다. 특히 혈연 지연 학연 등으로 움직이는 현상이 일상화 되어있는 우리의 사회적 구조에서는 경찰대학의 독식현상이 바람직하지 않게 보이는 건 사실이다. 구성원끼리의 긍정적인 경쟁구도를 위해서도 경찰대학 제도는 폐지돼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경찰의 제한적인 수사권도 걸림돌이다. 독과점 방지 차원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다. 이번 기회에 ‘수사권 이양’ 문제를 적극적으로 검토되었으면 좋겠다. 검찰과 경찰, 고비처 등의 조직이 서로 견제하고 경쟁하는 구도가 돼야 사정 기능도 강화할 수 있고 대국민 서비스의 질도 개선될 수 있다.
견제와 협력을 통한 책임과 의무가 만들어내는 환상의 콤비 플레이를 기대하는 건 지나친 낙관이려나?
당분간 국민의 뇌리 속에 박힌 경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어쩔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일부 경찰에 해당되겠지만 국민에게 준 상처는 정말로 많은 시간이 흐른 후에야 온전하게 치유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더라도 이를 해소하려는 지속적인 노력은 이어져야 한다. 각오와 결기의 중무장과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경찰 스스로 해결해내야 할 몫이라는 점을 잊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경찰이 민중의 지팡이인 본연의 모습으로 태어날 수 있기를 바란다.
부디 기대한다. (2010. 8. 2)
....홍문종 생각
2010년 8월 1일 일요일
홍문종 생각 - 준비하는 삶
준비하는 삶
코미디계의 대부, 원맨쇼의 달인.
가식없는 웃음 제조기로 만인의 사랑을 받던 원로 코미디언 백남봉 선생이 영면했다. 아직도 50대 젊은이 같은 영정 사진 속 모습만으로는 선생의 유고가 실감나지 않는다.
70년대와 80년대를 주름답던 선생의 구수한 입담을 추억으로 공유하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그 시절 장안을 휘어잡던 선생의 성대묘사나 팔도사투리 구사는 명품 코미디의 진수로 누구나 한번쯤 흉내내기에 도전해 본 기억이 있을 법하다.
전성기가 지나간 이후에도 자신의 달란트로 남을 위한 삶을 살았던 흔적들이 그의 부재를 아쉽게 한다. 투병 중에도 삶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을 만큼 희극인으로서의 자긍심이 유난했다는 후일담이 그와의 빠른 이별을 안타깝게 한다.
죽음 앞에서 예외가 되는 삶은 없다. 너나없이 모든 사람은 죽게 돼 있다.
인생의 여정 역시 죽음을 향한 타임 스케쥴에 불과하다. 앞서 간 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결국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도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한 줌 흙으로 사라져야 하는 숙명의 한계를 알았기에 현인들은 제대로 된 삶의 중요성을 그토록 강조했던 것 같다.

이른 바 ‘삶의 내신’ 관리를 잘해야 한다.
그것은 세상에 족적을 남기는 특별한 사람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평범한 사람들 입장에서는 재벌도 아니고 권력가도 아닌 나의 삶이 무슨 의미가 있겠나 싶겠지만 모든 인간이 다 평등하다는 관점에서 보자면 역사에 남을 자기 기록에 대한 책임의식에 경중이 있을 수 없다.
때문에 자신의 평생 행적이 유리알처럼 투명하게 공개되는 기준 하에 평가될 것임을 염두에 두고 사는 것은 우리 인생에서 대단히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역사적 평가를 의식하고 자기 생활 하나하나에 최선을 다한 삶은 그렇지 못한 삶에 비해 훨씬 더 정제된 결과물을 남기게 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그것은 재물이나 권력의 무게보다 더 높은 가치로 평가된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도 평소 나 자신이 역사에 어떤 인물로 평가될 것인가에 촉각을 세우는 편이다. 나를 대표하는 말이나 글 그리고 행적이 어떤 식으로 역사에 기록될까를 생각하면 정말로 잘 살아야겠다는 각오를 하루에도 몇 번씩 다지게 된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지극히 유한한 삶의 일정을 의식하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은 것 같다. 주위에서도 상당수의 사람들이 자신만은 특별한 삶의 주인공이라는 생각으로 사는 모습을 보게 된다. 불로초를 구하던 진시황제의 탐욕과 집착이 얼마나 헛된 결말이었는지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헛된 욕망은 여전히 절제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아무리 움켜쥐어 봐야 결국은 빈손으로 돌아가게 돼 있는 삶의 철칙을 안다면 그토록 흉한 모습으로 스타일을 구기면서까지 속내를 드러내는 일은 없었을 텐데 또 다른 측면의 인간적 한계이지 싶다.
건강, 재물, 권력.... 결국은 신기루다.
시간이 되면 그 누구도 지킬 수 없는 그 허무한 휘발성을 조금이라도 일찍 깨닫는 것이 인생에서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자각하자.
어떻게 자신의 삶을 운용했는지에 따라 저마다의 인생 등급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그러고 보면 많은 이들로부터 가슴에서 우러난 애틋한 조문을 받으며 떠나는 백남봉 선생의 삶은 행복한 결말을 지었다고 볼 수 있다.
그의 성공적인 생애에 박수를 보내며 충실한 삶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을 가슴 속에 내려 놓는다. 쉼 없는 자기 성찰을 통해 나 역시도 한 점 후회없는 삶을 살겠다는, 나의 매 순간순간이 훗날 어떤 식의 평가로 이어질지를 한시도 잊지 않고 살겠다는 그런 다짐 말이다. ( 2010. 7. 31)
....홍문종 생각
코미디계의 대부, 원맨쇼의 달인.
가식없는 웃음 제조기로 만인의 사랑을 받던 원로 코미디언 백남봉 선생이 영면했다. 아직도 50대 젊은이 같은 영정 사진 속 모습만으로는 선생의 유고가 실감나지 않는다.
70년대와 80년대를 주름답던 선생의 구수한 입담을 추억으로 공유하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그 시절 장안을 휘어잡던 선생의 성대묘사나 팔도사투리 구사는 명품 코미디의 진수로 누구나 한번쯤 흉내내기에 도전해 본 기억이 있을 법하다.
전성기가 지나간 이후에도 자신의 달란트로 남을 위한 삶을 살았던 흔적들이 그의 부재를 아쉽게 한다. 투병 중에도 삶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을 만큼 희극인으로서의 자긍심이 유난했다는 후일담이 그와의 빠른 이별을 안타깝게 한다.
죽음 앞에서 예외가 되는 삶은 없다. 너나없이 모든 사람은 죽게 돼 있다.
인생의 여정 역시 죽음을 향한 타임 스케쥴에 불과하다. 앞서 간 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결국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도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한 줌 흙으로 사라져야 하는 숙명의 한계를 알았기에 현인들은 제대로 된 삶의 중요성을 그토록 강조했던 것 같다.

이른 바 ‘삶의 내신’ 관리를 잘해야 한다.
그것은 세상에 족적을 남기는 특별한 사람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평범한 사람들 입장에서는 재벌도 아니고 권력가도 아닌 나의 삶이 무슨 의미가 있겠나 싶겠지만 모든 인간이 다 평등하다는 관점에서 보자면 역사에 남을 자기 기록에 대한 책임의식에 경중이 있을 수 없다.
때문에 자신의 평생 행적이 유리알처럼 투명하게 공개되는 기준 하에 평가될 것임을 염두에 두고 사는 것은 우리 인생에서 대단히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역사적 평가를 의식하고 자기 생활 하나하나에 최선을 다한 삶은 그렇지 못한 삶에 비해 훨씬 더 정제된 결과물을 남기게 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그것은 재물이나 권력의 무게보다 더 높은 가치로 평가된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도 평소 나 자신이 역사에 어떤 인물로 평가될 것인가에 촉각을 세우는 편이다. 나를 대표하는 말이나 글 그리고 행적이 어떤 식으로 역사에 기록될까를 생각하면 정말로 잘 살아야겠다는 각오를 하루에도 몇 번씩 다지게 된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지극히 유한한 삶의 일정을 의식하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은 것 같다. 주위에서도 상당수의 사람들이 자신만은 특별한 삶의 주인공이라는 생각으로 사는 모습을 보게 된다. 불로초를 구하던 진시황제의 탐욕과 집착이 얼마나 헛된 결말이었는지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헛된 욕망은 여전히 절제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아무리 움켜쥐어 봐야 결국은 빈손으로 돌아가게 돼 있는 삶의 철칙을 안다면 그토록 흉한 모습으로 스타일을 구기면서까지 속내를 드러내는 일은 없었을 텐데 또 다른 측면의 인간적 한계이지 싶다.
건강, 재물, 권력.... 결국은 신기루다.
시간이 되면 그 누구도 지킬 수 없는 그 허무한 휘발성을 조금이라도 일찍 깨닫는 것이 인생에서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자각하자.
어떻게 자신의 삶을 운용했는지에 따라 저마다의 인생 등급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그러고 보면 많은 이들로부터 가슴에서 우러난 애틋한 조문을 받으며 떠나는 백남봉 선생의 삶은 행복한 결말을 지었다고 볼 수 있다.
그의 성공적인 생애에 박수를 보내며 충실한 삶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을 가슴 속에 내려 놓는다. 쉼 없는 자기 성찰을 통해 나 역시도 한 점 후회없는 삶을 살겠다는, 나의 매 순간순간이 훗날 어떤 식의 평가로 이어질지를 한시도 잊지 않고 살겠다는 그런 다짐 말이다. ( 2010. 7.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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