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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써 말 많으니
의원총회에 참석했다.
아무리 바빠도 의총엔 꼬박꼬박 참석하겠다는 생각이다. 등원하면서 제대로 일하는 국회의원이 되겠다고 개인적으로 다짐한 바 있는데 의총 참석은 이를 실천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국회 개원 일정이 지연되는 바람에 국민들께 야단맞고 있는 처지지만 칭찬받는 19대 국회를 만들겠다는 의욕이 크다. 기필코 사랑받는 정치의 전형적인 본이 되고 싶은 소망이다.
의총은 150여명이나 되는 당 소속 국회의원들을 한 자리에 모이게 하는 빌미가 됐다. 서로의 안부를 묻느라 부산했는데 반가움을 표현하는 방식도 제각각이었다. 앉은 자리 주변으로만 인사를 나누는 사람이 있는 가하면 누군가는 먼 자리까지 찾아가는 적극성을 보였다.
나 역시 미소와 목례로 군중 속에 섞여 들었는데 그 와중에도 관전자가 되어 의총장을 탐색하고 있는 스스로를 보니 웃음이 나왔다.
내가 속한 무리를 국외자의 시선으로 관찰하는 건 내 오래된 습벽이다. 짐작컨대 자주 학교를 옮겨다니며 적응해야 했던 어린 시절 환경과 무관하지 않지 싶다.
실제로 나는 새 환경 정착의 성공 여부는 동료들과의 관계 설정에 달려있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간파하고 있었다. 동료로 섞이기 위해선 개개인의 관심사나 특성부터 파악해야 하고 그들의 얘기를 통해 얻은 정보가 관계를 수월하게 해주는 묘약이 된다는 사실까지도.
의총이 진행되는 동안 단상에서 의욕적으로 의견을 개진하는 동료의원들을 보니 생각이 많아졌다. 초선 당시의 내 모습도 떠올랐다. 처음 국회의원이 된 그 때는 무슨 근거로 세상의 전부를 다 알고 있다는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지금과는 참 많이 다른 모습인데 세월의 무게가 주는 변화만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분명히 달라졌다.
무엇보다 말하기보다 남의 얘기를 듣는 시간이 많아졌고 생각보다 내 자신 잘 알지 못하는 것들이 많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된 것, 심지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것조차 실상은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는 실상을 받아들이고 있는 현실이 그것이다.
다음은 내 관전 안테나에 잡힌 동료의원에 대한 감상평이다.
우선 지도부 반열의 의원님 품평부터.
유머와 따뜻한 너그러움으로 덕장의 면모를 발휘하며 우리를 이끌어주시는 A의원님은 조심성도 좋지만 애매모호하기만 한 화법이 영 불만(?)이다. 답답하고 유약한 느낌이 혹여 흠결있는 품성으로 비춰질 수 있을까 걱정이다. 조만간 강력한 카리스마를 보여줄 때가 있겠지... 기다리는 중이다.
친절하고 자상한 설명으로 해박한 지식이 더 돋보이는 우리의 지장(智將), B의원님 역시 다 좋은데 박력이 떨어진다는 느낌이다. 맹장이나 용장의 풍모를 아쉬워하면서도 괜한 박력 타령이 지나친 욕심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없는 건 아니다.
(감히 하늘같으신 선배님들을 이렇게 평해서 죄송합니다)
발언대에 자주 출몰하는 초선 의원 C는 자기가 올라와 있는 링의 분위기 파악이 아직 덜 된 것 같아 걱정스럽고(동료의원들의 곱지 않은 시선을 모르는 듯) D의원은 자신의 이미지 각인을 위한 조급함 때문에 잘 정제된 개인적 장점들을 고작 ‘인증샷’ 도구로 전락시키는 오류를 범하고 있어 안타깝다. 자기최면에 걸려 정확한 상황 판단이 어려운 지경인 듯 싶다.
E의원은 현장감이 넘치는 제안을 들고 발언대에 섰는데 공감은 가지만 사안의 경중을 계량하지 못해 설득력을 얻지 못했다. 지방의회 정도에서나 관심 끌 사안을 국회에서 제안하니 그저 한담 정도로 흐르는 분위기였다. 아무튼 명확한 의제 설정이 중요하다는 현실을 환기시키는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다.
스스로를 거물급 정치인으로 우대하려는 인식 때문에 희화화를 자초한 F의원은 완전 코미디다. 자신의 위상(?)을 지나치게 의식한 나머지 발언 내용과 액션의 조화를 깨서 곤혹스러운 처지가 됐다.
반면 적당한 유머와 센스를 섞어가며 정치적 밥상을 먹음직스럽게 차려 좌중을 홀리는 솜씨를 보인 G의원은 확실히 군계일학이었다. 다만 그렇게 명쾌하고 훌륭한 정치적 구상이 있는데도 18대엔 뭐하느라 이슈 파이팅을 하지 않았을까 싶은 아쉬움이 있었다.
나도 모처럼 발언대에 올랐다.
반복된 주제일 수 있지만 그동안 생각해왔던 몇가지 사안에 대해 얘기했다.
언론 노출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일부 의원들의 심각한 언론 중독증 행태를 지적했고 지도부를 동네북처럼 질타하지 말자고도 했다. 출범한 지 며칠 되지도 않은 지도부 불평으로 분란을 자초하기보다 우리가 지도부를 위해 무얼 해 줄 지를 고심하는 쪽이 훨씬 생산적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그동안 오픈프라이머리 경선을 주장해 왔던 대권주자들의 의총 불참을 꼬집었다. 당내 의원들이 다 모인 자리인데도 오픈프라이머리 경선의 당위성을 주장하는 대권주자는 단 한명도 보이지 않아 진정성에 의심이 갈 정도였다.
역시나 뒷맛은 씁쓸했다. 괜히 나섰다 싶었다. .
옛 성현은 '말로써 말 많으니 말 말을까 하노라'하는 가르침으로 말의 부정적 측면을 경계토록 했다.
정치인들이 민감하게 받아들여야 할 가르침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처음 정치에 입문했을 때 관중과의 눈맞춤이 없는 정치인의 연설은 죽은 연설이라는 한 선배 정치인의 가르침을 지금껏 잊지 않고 있다. 정치적 일정이 아니더라도 평소 연설 기회가 많은 내가 매번 처음 연단에 나서는 것처럼 치열한 심정으로 연설에 임하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의총장에서 동료의원들의 신상발언을 들으면서 ‘이들이 단상에 나서 발언하기 전에 충분히 고민했을까? 치열한 준비과정을 거치고 나온 것일까?’ 그런 생각을 했다.
어차피 말의 성찬이 주를 이루는 국회에서 정치인의 발언은 주요 의정활로일 수 밖에 없다.
그렇더라도 다음부터는 조금 더 지켜보면서 더 배우고 더 생각하고 더 준비한 다음에 입을 열어야겠다는 생각이다. 말 잘하는 국회의원보다 의미있는 내용으로 소통과 공감을 이끌어내는 말을 할 줄 아는 국회의원이 되어야겠기에.
그것은 나의 또 다른 다짐이 되었는데 ‘말’의 릴레이로 2시간 훌쩍 넘긴 의총장에서 유일하게 건져 올린 성과물이라고 하면 지나치게 각박한 건가?
(2012. 6. 9)
...홍문종 생각
말
말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다는 생각이다.
또 말에 있어 책임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진정성이나 신중함에 대한 배려가 아닐까 싶다.
우리의 말은 한번 뱉으면 주워 담을 수 없기 때문에 항상 조심해야하고 특별히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공적으로 하는 말은 더더욱 신중할 수 밖에 없다.
직업상 단상 연설이 일상이 되다시피 하는 나 같은 사람은 소재에 대한 고민이 늘 머릿 속을 맴돌고 있다. 왠만큼 반복하면 경지에 오를 만하건만 아무리 많이 반복해도 결코 만만해지지 않는 현실이기도 하다.
주로 공적인 견해를 밝혀야 하는 정치인의 경우, 말에 대해 책임을 묻는 정도가 간단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맹자는 말이 쉬운 것은 결국 그 말에 대한 책임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의 중요성을 강조했는데 그의 말이 백번 옳다. 특히 직업상 하루에도 몇 번씩 축사나 격려사를 해야 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도 예사롭지 않게 들리지 않는다. 적지 않은 정치인들이 순간의 ‘말실수’로 정치생명을 잃는 불운을 당했던 것도 사실이다.
16대 국회가 끝나갈 무렵, 국회의장단 일원으로 북 구라파를 다녀온 적이 있다. 그 때 함께 갔던 선배 정치인 모씨가 대중을 향해 연설을 하다가 구체적인 생각이나 단어가 떠오르지 않으면 대충 아무 이름이나 둘러대고 넘어가는 게 현명하다는 조언을 내게 해 준 적이 있다. 연설을 듣는 대중에게 중요한 건 사람 이름 등 개인 인적 사항이 중요한 게 아니라 내용이 중요하다는 인식의 발로였다.
그런데 서생 출신인 나는 그 선배 정치인과는 다른 생각을 적용하며 살고 있다. 직업적 특성 때문인지 주요 사안의 ‘팩트여부’를 상당히 세심하게 따지는 편이고 또 확신이 서지 않을 경우 사용하지도 않는다.
오늘 축사자로 참석한 방송통신 대학 입학식장에서 있었던 해프닝에도 이 같은 나의 기질이 유감없이 발휘됐다고 볼 수 있다.
문제의 발단은 나보다 먼저 축사에 나선 분이 통신대 신입생들에게 오바마 관련 에피소드를 인용하면서 오바마가 하버드 대학을 나왔고 예일 법대에서 법학박사를 학위를 받았다고 잘못된 (하버드가 아닌 콜럼비아대 출신이었고 예일대가 아닌 하버드 로스쿨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는데)에피소드를 인용하면서부터 시작됐다.
그 것이 그냥 넘길 수 있는 단순한 오류가 아니라는 판단이 들면서 나를 딜레마(이를 바로 잡을 것이냐 말 것이냐에 대한)에 빠뜨린 것이다.
고민이 시작됐다. 무엇보다 그 자리가 방통대 신입생들의 입학식이었기 때문에 교육의 연장선 차원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더구나 당사자가 다른 곳에서도 반응이 좋았다며 앞으로 계속 이 소재를 인용하겠다는 뜻을 밝힌 점도 나의 초조함을 자극했다. 지금 바로잡지 않으면 이 자리에 참석한 학생들은 물론 축사 당사자도 계속해서 오류를 정정할 기회를 갖지 못하게 된다는 위기감(?) 같은 게 순간적으로 내 마음을 급하게 만든 것이다.
그래서 오바마는 컬럼비아 대학 출신이고 예일 대는 간적이 없고 하버드에서 법학박사를 받았다고 오류를 정정했다.
그러나 막상 오류를 정정하고 나니 마음이 불편했다. 평소 다른 사람과의 대립각을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이 파격적인 결행이 부담을 주는 건 너무나 당연할 터였다.
분위기가 싸해지지 않도록 무형의 노력으로 나름 최선을 다했고 예의로 배려한다고 애를 썼지만 혹시 받아들이는 쪽에서 언짢게 생각하면 어쩌나 싶기도 하고 평소 내가 알고 있는 바대로라면 화를 낼 인품은 아니라는 확신이 들기도 했다.
그러다 생각의 단초를 제공하고 빠르게 공감대를 형성시키는 에피소드의 장점에도 불구하고 한번 잘못된 인용이나 해석이 제2, 제3의 오류를 범하게 할 수 있는 전파력을 생각할 때 특별히 책임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바로잡는 건 옳은 행동이었다는 결론으로 오늘의 찜찜함을 털어냈다.
나 자신 역시 지금까지 혹여 허언에 불과한 말의 성찬으로 다른 이들을 실망시킨 적이 없었는지 스스로를 점검했다.
과유불급이라고 잘못 인용된 에피소드가 본뜻을 왜곡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겠다.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을 말의 중요성이다.(2011. 2.26)....홍문종 생각
패륜녀
서울의 중견 대학인 K대학이 달갑지 않은 '유명세‘로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였다.
재학 중인 한 여학생이 엄마뻘인 교내 미화원 아주머니께 입에 담지 못할 폭언으로 패악을 부렸다가 이른 바 ‘00대 패륜녀’라는 이름으로 인터넷에 등극(?)했기 때문이다.
학교도 학교지만 해당 여학생도 큰일이다. 신중치 못한 발언의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하게 생겼으니 말이다.
순식간에 퍼져나가는 인터넷 속성에 힘입어 천하의 패륜녀로 매장될 위기에 처한 이 여학생 사례는 말이 갖는 폭력성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만든다.
일찍이 선인들이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거나 침묵은 금이고 명언은 은이라며 특별히 언어사용의 신중함을 강조했던 것도 엇나간 말의 후유증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이번 사건만 해도 애당초 예의를 갖추고 부탁했더라면 별 문제 없이 지나갔을 사소한 발단이 한 여학생을 사회적 공분 대상으로까지 몰고 갔다. 만만치 않은 말의 파괴력을 간접 체험인 셈이다. 새삼 어휘선택에 신중해져야겠다는 각성과 재무장의 필요성을 절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본질적인 고민은 제대로 된 ‘인간’을 길러내지 못한 우리 사회 전체의 책무의식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땅의 동량들을 ‘인간’으로 만들어야 할 당사자 중 한사람으로서 크나큰 책임감에 통감하고 있다. 아무래도 가장 직접적인 문제는 훈육이 사라진 우리의 ‘교육현장’에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고 못해도 좋으니 그저 공부만 잘하면 된다는 부축임이 우리들의 미래 세대를 훼손시킨 주범임에 틀림없다. 권력이나 재물, 명예 이전에 사람이 되는 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가르치기는커녕 기능과 능력만 강요하는 속살 없는 교육이 우리의 젊은 동량들을 ‘괴물’로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미 우리 사회 전체가 그 부작용에 상당부분 시달리고 있는 중인 것도 사실이다.
재난이나 사소한 손실에는 민감하면서도 정작 그 보다 훨씬 더 큰 재앙에는 발등의 불이 떨어져도 무감각해 있는 허망한 현실에 대한 자기 반성이 필요하다.
괴물이 주도하는 대한민국 사회- 그 끔찍한 결과는 생각하기도 싫다.
학력수준의 인플레로 온 국민의 고학력화에도 불구하고 인성 부재로 ‘후유증’이 돌출하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학력’이 ‘참 인간’을 충족하는 우선 조건이 아닌 건 틀림없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경제를 비롯한 전반적인 분야의 업그레이드만으로 대한민국 위상이 높아지는 건 아니다. 무엇보다 구성원의 질적 수준이 따라줘야 가능한 일이다.
이를 높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뭐니뭐니해도 사제지간의 인성 교류가 아닐까 싶다. 훈육과 교육이 함께 하는 인성교류를 통해 올바른 가치관이나 긍정적 사고가 정착될 수 있도록 훈련시키는 것이 구성원의 자질을 높일 수 있는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는 이제부터라도 인성과 훈육에 초점을 맞춘 교육으로 개선되지 않으면 ‘든 사람’ ‘난 사람’ 양성에는 성공할지 몰라도 ‘된사람’ 교육은 요원하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게 하는 요인이다.
어찌됐건 된사람을 만들지 못하는 교육은 죽은 교육이다. 죽은 교육을 가지고는 대한민국의 21세기를 결코 장담할 수 없다는 불안감이 이번 ‘패륜녀’ 사태를 그냥 지나칠 수 없게 하는 이유인 것 같다.
어쩌면 이를 계기로 인성교육의 중요성이 대두될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을 품어본다.
우리의 교육현장이 진일보 할 수 있는 기폭제가 될 수 있도록 우리 모두의 정성과 관심이 필요한 때다.
힘있고 능력있고 많이 배운 사람들이 사회를 이런 식으로 이끌어 간다면 반목과 갈등은 더 커질 수 밖에 없고 대한민국의 핑크빛 미래는 기대할 수 없다.
우리 사회 전체가 어디서 무슨 일을 하던 어떤 지위에 있건 소득이 얼마건 누구나 사람다운 대접을 받으며 사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건 너무나 중요한 시대적 요구다.
외면하지 말자. (2010 .5.19)
....홍문종 생각홍문종 네이버 블로그 : http://blog.naver.com/mjhong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