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리가 제일이다
요즘 들어 신문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는 주요 이슈는 단연 ‘한미 FTA 협상과 안철수 현상’이다.
하나는 ‘국익’을, 또 다른 하나는 ‘대통령 선거’를 모토로 한 의제인데 대한민국 사회의 관심이 온통 이 둘에 쏠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FTA 샅바싸움으로 일촉즉발 전운이 감도는 정치권은 안철수 변수로 요동치는 가운데 선거정국을 시계제로로 밀어붙이는 형국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논란의 와중에 FTA와 안철수를 잇는 ‘끈’ 하나가 생각의 고리를 끊고 튀어 나온다.
반가운 마음에 블로그 주제로 잽싸게 건져 올린다.
한미 FTA는 개혁개방의 관점에서 해석돼야 마땅하다.
역사는 미래를 내다볼 줄 아는 선진의 힘으로 작동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 그만 협상에 종지부를 찍고 또 다른 아젠다 발굴에 관심을 돌려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새 흐름을 막는 걸림돌로 인구에 회자되는 천덕꾸러기로 전락할 요소도 있다. 우리가 대원군의 쇄국정책으로 개방의 기회를 놓쳐 정지돼 있는 동안 일본은 문호를 열고 선진문명을 선점했다. 그렇게 돌이킬 수 없는 우열의 간극이 생성된 것이다.
지금으로선 FTA 협상이 우리에게 어떤 대차대조표를 가져다 줄 지 알 수 없다. 다만 이익과 불이익의 경계가 최대한 공평해지도록 배려하는 독려는 있어야겠다. 이익이 나는 쪽은 불이익 측이 가능성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도록 살펴야할 책무를 지는 것도 좋겠다.
같은 맥락으로 안철수의 역할론을 짚어본다.
그는 자신에게 의미 있고, 재미있고, 잘 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하는 것이 불확실한 21세기를 살아나가는 키워드라고 했다. 그늘지고 힘든 이들을 위해 돈을 쾌척하고 자신의 기량 껏 봉사하는 것을 자신의 사회적 채무로 규정하기도 했다. 세상은 그런 그를 각종 여론조사에서 경쟁력 있는 대선주자로 올려놓고 기대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일련의 행보로 짐작컨대 그 자신의 속뜻과 얼추 맞아떨어지는 진로같다.
그런데 나는 안철수가 자신에게 맞지 않은 길을 선택하고 있다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
4선 국회의원으로 정치판에서 영욕의 길을 걸었던 이태섭 전 국회의원은 미국 MIT에서 촉망받던 과학도였다. 그가 만일 정치가 아닌 과학도의 길을 택했다면 대한민국의 스티브잡스가 될 수도 있었다는 생각을 한다. 한 때 인터넷 대통령으로 추앙받던 문국현 전 유한캠벌리 사장은 국회의원으로서의 꿈을 채 피우기도 전에 범법자의 신분이 됐다.
이왕 얘기 나온 김에 성공한 학자였지만 정치권에서는 별 재미를 보지 못한 이수성,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 등도 같은 맥락에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인물들이다.
안철수 식으로 따진다면 미국의 스티브 잡스나 빌 게이츠가 대통령 후보 0순위로 나섰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현실을 존중하고 지켰다.
정치를 하고 싶었던 스티브 잡스에게 “애플의 스티브 잡스지 정치인 스티브 잡스는 아니라고 만류하며 정치권에 발 들이지 않은 일이 스티브 잡스가 제일 잘한 일이라고 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물론 로스페로나 도널드 캠프 같은 미국 재벌들이 대통령이 되지 못하는 배경으로 남자들의 질투심을 지목하기도 한다. 돈 있으면 됐지 무슨 정치권력까지 넘보냐는 식의 시기심이 있단다.
우리의 현실이라고 다른 것 같지 않다. 실제로 FTA 등 주요 정치현안에 침묵으로 일관하는 그에게 대중이 짜증 섞인 질타와 의혹의 눈초리를 내보이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날카롭고 집요한 질문이 이어질 텐데 그 때마다 침묵이나 미소로 넘길 수는 없는 일이다. 가혹한 채찍질로 그의 말문을 열기 위한 노력들이 시도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정치지도자로서의 소신이나 철학을 밝히라는 요구를 외면하는 일이 계속된다면 대중은 더 이상 그를 연호하지 않게 될 것이다.
인간은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통해 타인을 행복하게 하고 스스로도 행복해질 수 있다. 특히 여태까지 잘 해왔던 일이면 금상첨화다.
내가 만일 안철수의 친구라면 그에게 망설임 없이 권하겠다.
지금껏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가야할 길이라 생각하면 스스럼없이 도전했던 것처럼 그의 길을 가라고. 아무래도 정치보다는 기존의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게 훨씬 나을 거라고.
더구나 FTA 정국에서 대한민국 IT 업계는 5천년 역사 이래 최고의 기회를 맞고 있다. IT의 성공이 대한민국 미래를 결정짓게 된다 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엄청난 경쟁력과 함께 떠오르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 점에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선택은 돋보인다.
내 알기로 반기문 총장이 대통령 적임 후보로 정치권으로부터 러브콜 대상이 됐던 건 지난 정권 때부터의 일이다. 그러나 그는 쇄도하는 유혹에도 불구하고 흔들림 없이 유엔 사무총장 선거에 전심전력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사무총장 연임을 위해 분주하던 올해에도 그의 대통령 출마설이 꼬리를 물었다. 당시 방한 중이던 그는 자리를 함께 한 우리들에게 (사무총장)연임에 방해가 되니 제발 국내 선거에서 거론되지 않게 해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지나놓고 보니 그의 유엔사무총장 연임은 본인을 위해서나 국가를 위해서나 정말 탁월했다. 그가 지금 유엔을 무대로 보여주는 활약상은 한국의 대통령은 물론 그 어떤 정치 지도자보다 더 중요하고 의미있는 일이다.
그의 부친은 교수들이 정치판에 들어가는 것이 좋게 보이지 않는다며 지금까지 존경을 받고 살아온 아들이 정치판에 잘못 들어가 욕을 먹게 될까 노심초사하는 심정을 토로했다. 아들의 성격 자체가 정치판 보다는 공부하고 학생들 가르치는 일에 맞는데 그런 아들을 정치판에서 난리를 쳐서 끌어들여 고민하게 만드는 게 안타깝다는 취지의 발언도 남기셨다.
나도 같은 생각이다.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순진무구(?)하고 창조적 아이디어가 많은 이들에게 무덤이 되고 자긍심이나 자존심 따위는 아랑곳 없는 곳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분명 그의 역할이 있지만 정치권 진입은 좀 더 많은 고민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아직은 설익은 과즙을 맛보는 어설픈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결국은 시행돼야 할 FTA를 잘 추슬러서 우리 사회에 그늘진 곳까지 잘 비춰지도록 노력하는 것처럼 안철수 역시 뭔가 해야한다면 제일 잘 할 수 있는 최적의 자기자리를 찾으라는 조언을 남기고 싶다.
(2011.11.17.)
...홍문종 생각
2011년 11월 17일 목요일
2011년 11월 15일 화요일
홍문종 생각 - 타인능해(他人能解)
타인능해(他人能解)
타인능해(他人能解, '다른 사람도 쌀 뒤주를 열 수 있다'는 뜻)라는 글이 붙어있는 뒤주 이야기를 들어봤는가. 조선 영조 당시 전남 구례지방에서 삼수부사를 지낸 류이주(柳爾胄) 가문의 쌀 뒤주인데 더불어 사는 세상을 실천한 선조들의 아름다운 이웃배려의 단면을 보여주는 실체라고 할 수 있다.
류씨 가문은 쌀 2가마 정도가 들어 갈 수 있는 나무 뒤주에 늘 쌀을 채워두고 누구라도 필요하면 마음놓고 쌀을 가져가도록 했다. 특히 뒤주가 있는 부엌에 출입문 하나를 더 달아내 쌀을 가져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배려한 흔적은 감동이다.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삶을 일상화 했던 선조들의 나눔 문화 현장을 생생이 보여주고 있다.
자랑스러워할만한 유산이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 원장의 통 큰 기부가 화제다.
안철수 연구소 주식의 소유 지분 절반인 1500억 정도의 거금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결단인데 그 신선함 이 많은 이들을 놀라게 하고 있다. 솔선수범해서 이 땅의 폐쇄적 기부문화를 바꾸고자 나섰으니 뜨거운 관심을 한 몸에 받을 만하다.
그는 대단한 일을 시작한 셈이다. 진정성을 담보할 수 있다면, 우리 사회 기부문화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고 있는 그의 행보는 칭송 받아 마땅하다는 생각이다.
개인적으로도 반갑다. 무엇보다 그의 이번 쾌척이 대한민국 부자들의 순수한 재산환원 문화를 여는 기폭제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 크다.
기왕에도 사회지도층의 기부행위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별 주목을 받지 못했다.
(기부천사 김장훈씨의 경우는 예외지만) 대부분 강제적이거나 징벌적 의미로 진행된 기부 절차가 도마 위에 오르기 일쑤였던 환경에서 충분히 그럴 만 했다. 특히 재벌가의 경우는 더 그랬다. 공교로운 재산환원 시점으로 구설을 자초했다. 실제 검찰 수사 등으로 위기 국면에 처할 때마다 재벌가가 면피를 위해 재산환원을 처방한 사실은 공개된 비밀이라 할 수 있다.
안원장의 재산 환원이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배경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돼야 한다.
안 원장의 행보가 정치적으로 해석되는 가운데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진정성에 대한 갑론을박이 교차하고 있다. 그의 정치권 진입여부를 두고 많은 이들의 '평론'이 줄을 잇고 있다. 대권행보를 염두에 둔 꼼수라는 지적도 있고 하필이면 지금이냐는 시비도 일고 있다.
이 모든 게 그가 누리고 있는 인기의 무게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누구라도 마찬가지겠지만 절정의 인기, 그거 별 거 아니다. 최대로 부풀려진 상태에서 특별한 대책이 수급되지 않는다면 하강 국면에 접어드는 건 눈 깜짝할 사이다. 정치적 야심과 맞물린다면 더더욱 약간의 어긋남에조차 단번에 평가절하되고 마는 안타까움이 있다.
인기의 허망한 속성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만에 하나 정치적 목적을 염두에 둔 이벤트라면 대중의 독설에 제물이 될 각오를 단단히 해 두는 게 좋을 것이다. 절대로 꼼수가 통할 수 없는 세상이고 호락호락하지도 않은 정치판이다. 선거법 시비나 자기기만이라는 비난에 시달리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재산 헌납 약속과 관련, 꼼수를 부렸다며 호응은 커녕 비난을 받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의 '청계 재단' 이 좋은 반면교사가 되지 않을까 싶다.
생각을 다지게 된다.
특별히 큰일을 하고자 한다면 더더욱 꼼수의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워야겠다고.
(2011. 11. 15)
...홍문종 생각
타인능해(他人能解, '다른 사람도 쌀 뒤주를 열 수 있다'는 뜻)라는 글이 붙어있는 뒤주 이야기를 들어봤는가. 조선 영조 당시 전남 구례지방에서 삼수부사를 지낸 류이주(柳爾胄) 가문의 쌀 뒤주인데 더불어 사는 세상을 실천한 선조들의 아름다운 이웃배려의 단면을 보여주는 실체라고 할 수 있다.
류씨 가문은 쌀 2가마 정도가 들어 갈 수 있는 나무 뒤주에 늘 쌀을 채워두고 누구라도 필요하면 마음놓고 쌀을 가져가도록 했다. 특히 뒤주가 있는 부엌에 출입문 하나를 더 달아내 쌀을 가져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배려한 흔적은 감동이다.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삶을 일상화 했던 선조들의 나눔 문화 현장을 생생이 보여주고 있다.
자랑스러워할만한 유산이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 원장의 통 큰 기부가 화제다.
안철수 연구소 주식의 소유 지분 절반인 1500억 정도의 거금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결단인데 그 신선함 이 많은 이들을 놀라게 하고 있다. 솔선수범해서 이 땅의 폐쇄적 기부문화를 바꾸고자 나섰으니 뜨거운 관심을 한 몸에 받을 만하다.
그는 대단한 일을 시작한 셈이다. 진정성을 담보할 수 있다면, 우리 사회 기부문화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고 있는 그의 행보는 칭송 받아 마땅하다는 생각이다.
개인적으로도 반갑다. 무엇보다 그의 이번 쾌척이 대한민국 부자들의 순수한 재산환원 문화를 여는 기폭제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 크다.
기왕에도 사회지도층의 기부행위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별 주목을 받지 못했다.
(기부천사 김장훈씨의 경우는 예외지만) 대부분 강제적이거나 징벌적 의미로 진행된 기부 절차가 도마 위에 오르기 일쑤였던 환경에서 충분히 그럴 만 했다. 특히 재벌가의 경우는 더 그랬다. 공교로운 재산환원 시점으로 구설을 자초했다. 실제 검찰 수사 등으로 위기 국면에 처할 때마다 재벌가가 면피를 위해 재산환원을 처방한 사실은 공개된 비밀이라 할 수 있다.
안원장의 재산 환원이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배경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돼야 한다.
안 원장의 행보가 정치적으로 해석되는 가운데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진정성에 대한 갑론을박이 교차하고 있다. 그의 정치권 진입여부를 두고 많은 이들의 '평론'이 줄을 잇고 있다. 대권행보를 염두에 둔 꼼수라는 지적도 있고 하필이면 지금이냐는 시비도 일고 있다.
이 모든 게 그가 누리고 있는 인기의 무게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누구라도 마찬가지겠지만 절정의 인기, 그거 별 거 아니다. 최대로 부풀려진 상태에서 특별한 대책이 수급되지 않는다면 하강 국면에 접어드는 건 눈 깜짝할 사이다. 정치적 야심과 맞물린다면 더더욱 약간의 어긋남에조차 단번에 평가절하되고 마는 안타까움이 있다.
인기의 허망한 속성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만에 하나 정치적 목적을 염두에 둔 이벤트라면 대중의 독설에 제물이 될 각오를 단단히 해 두는 게 좋을 것이다. 절대로 꼼수가 통할 수 없는 세상이고 호락호락하지도 않은 정치판이다. 선거법 시비나 자기기만이라는 비난에 시달리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재산 헌납 약속과 관련, 꼼수를 부렸다며 호응은 커녕 비난을 받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의 '청계 재단' 이 좋은 반면교사가 되지 않을까 싶다.
생각을 다지게 된다.
특별히 큰일을 하고자 한다면 더더욱 꼼수의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워야겠다고.
(2011. 11. 15)
...홍문종 생각
2011년 11월 14일 월요일
홍문종 생각 - 화학적 변화라야 한다
화학적 변화라야 한다
신당설이 무성하다.
안철수 신당이니 박세일 신당이니 여야를 막론하고 실체도 불분명한 각종 설들이 그야말로 ‘설설’ 끓고 있는 정국이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치열한 경쟁 국면이 펼쳐지는 정치의 계절이 임박해졌음을 알리는 신호탄에 불과하다. 선거 국면에 출마를 원하는 사람들이 넘치다 보니 기존 정당 외의 수요가 요구되는 건 지극히 자연스런 현상이다. 거기에 국민 신뢰를 잃어버린 현 정치권에 대한 물갈이 요구가 높아진 점도 그 어느 때보다 신당 창당 명분을 뒷받침하고 있는 분위기다.
개인적으로 한국의 정치상황에 다당제가 적합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어차피 국민에 의한 상향식 공천이 어렵다면 다당제야 말로 정당공천의 폐해를 어느 정도 줄 일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다. 유권자로서는 선택의 폭이 늘거나 다양한 욕구를 반영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정치인에게도 좀 더 명확하게 개인적 소신을 펼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다는 점에서 다당제에 긍정적 측면이 많다.
물론 경계해야 할 폐단이 없지는 않다.
다당제로 인해 국론분열이 심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조선 멸망을 초래한 주범으로 지목되는 조선시대 당파 분쟁이 그 좋은 본보기다.
우리 역사를 폄하하기 위한 일본의 의도가 깔려있긴 해도 조선 사회를 피로 물들인 각종 사화의 배경이 되었던 사색당파의 치열한 기싸움은 확실히 문제였다. 건전하지 못한 경쟁심이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 뿐 아니라 조선의 멸망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같은 배를 타고 있는 사람들이 하나의 자리를 놓고 싸울 때 그 싸움은 치열해질 수 밖에 없고 결국 그 치열함이 사람들의 이합집산을 이끄는 동인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지난 역사를 통해서도 분열이 집단이나 개인을 파멸로 이끌었다는 사실을 통감할 수 있다. 그런데도 패착의 결과를 피하지 못하는 불운이 지금껏 반복되고 있으니 정말 아이러니다.
대권을 꿈꾸는 이들을 둘러싼 암중모색도 갈수록 치열해지는 기색이다.
후보 흔들기도 본격화되는 조짐이다. 이는 내년에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설 생각을 갖고 있는 이들 모두에게 적용될 일종의 통과의례가 될 것이다.
이회창 전 총재의 실패가 주는 교훈도 챙겨둘 가치가 있다.
주지하다시피 대선 가도에서 이 전 총재가 다 된 밥을 먹지 못한 데는 IJ와 JP 영입 불발이 결정적 패인이었다. JP를 영입하라는 조언은 충정도 출신인 내가 왜 그를 데려와야 하느냐는 스스로의 과신 때문에, IJ 포용론은 결국 찻잔 속 미풍에 그칠 것이라는 잘못된 참모들의 전략이 막아버렸다. 그 결과 이 전 총재는 두 번씩이나 다 된 선거를 놓친 비운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다.
반면, YS 집권이 3당 통합이고 DJ 집권은 DJP 연합의 산물이었다. 이보다 앞서 민주화 물결에도 불구하고 노태우 집권이 가능했던 건 야권 분열이 가져다 준 선물이었다.
이 같은 역사적 정황은 2012년, 큰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이 반드시 명심해야 할 대목이라고 생각한다.
정치권에 대한 국민 불신이 하늘을 찌르는 형국이다.
때만 되면 쇄신과 개혁이라는 화두를 들이밀고도 여전히 쇄신과 개혁을 당면과제로 내세우고 있는 한나라당이나 내부분열로 동력을 상실하고도 통합을 앞세운 정치적 수사로 사분오열로 찢긴 약점을 해소하지 못한 민주당이나 국민 앞에서 궁색하기는 마찬가지다.
기존 정치에 대한 불신이 새 인물에 대한 갈증을 자극하는 현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성급한 반가움이 검증되지 않은 인물에 대한 판단을 흐리게 했고 그 결과 ‘열광적 등장과 실망스러운 퇴장’이 반복됐다. 박찬종 변호사나 문국현 유한킴벌리 전 사장의 좌절을 떠올리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최근 급부상하고 있는 안철수 신당도 성공 여부와 상관없이 비슷한 과정의 산물이라는 생각이다.
오죽하면 실체 없는 신당에 기대게 됐을까를 헤아리면 국민 앞에 한없이 죄스러워지는 마음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미몽에서 깨어나지 못한 정치권의 시대착오적 인식이 안타깝다.
신당 창당이나 명망가 위주의 신진 수혈로 면피하려는 의도로 화를 자초하는 형국이다.
겉모습이 아니라 정신상태가 문제인데 무조건 껍데기만 바꾸려고 한다. 국민은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진정성 있는 정치를 원하고 있는데 인기몰이식 땜방질로 얼렁뚱땅 위기 국면을 넘겨보고자 하는 꼼수가 역력하다.
착각도 이런 착각이 없다.
지금은 인물영입보다는 유능한 인재들이 관심을 갖는 정당으로의 환골탈태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화학적으로 변하지 않으면 국물도 없다는 비장함으로 2012년을 바라봐야 할 것이다.
(2011.11.14.)
....홍문종 생각
신당설이 무성하다.
안철수 신당이니 박세일 신당이니 여야를 막론하고 실체도 불분명한 각종 설들이 그야말로 ‘설설’ 끓고 있는 정국이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치열한 경쟁 국면이 펼쳐지는 정치의 계절이 임박해졌음을 알리는 신호탄에 불과하다. 선거 국면에 출마를 원하는 사람들이 넘치다 보니 기존 정당 외의 수요가 요구되는 건 지극히 자연스런 현상이다. 거기에 국민 신뢰를 잃어버린 현 정치권에 대한 물갈이 요구가 높아진 점도 그 어느 때보다 신당 창당 명분을 뒷받침하고 있는 분위기다.
개인적으로 한국의 정치상황에 다당제가 적합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어차피 국민에 의한 상향식 공천이 어렵다면 다당제야 말로 정당공천의 폐해를 어느 정도 줄 일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다. 유권자로서는 선택의 폭이 늘거나 다양한 욕구를 반영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정치인에게도 좀 더 명확하게 개인적 소신을 펼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다는 점에서 다당제에 긍정적 측면이 많다.
물론 경계해야 할 폐단이 없지는 않다.
다당제로 인해 국론분열이 심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조선 멸망을 초래한 주범으로 지목되는 조선시대 당파 분쟁이 그 좋은 본보기다.
우리 역사를 폄하하기 위한 일본의 의도가 깔려있긴 해도 조선 사회를 피로 물들인 각종 사화의 배경이 되었던 사색당파의 치열한 기싸움은 확실히 문제였다. 건전하지 못한 경쟁심이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 뿐 아니라 조선의 멸망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같은 배를 타고 있는 사람들이 하나의 자리를 놓고 싸울 때 그 싸움은 치열해질 수 밖에 없고 결국 그 치열함이 사람들의 이합집산을 이끄는 동인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지난 역사를 통해서도 분열이 집단이나 개인을 파멸로 이끌었다는 사실을 통감할 수 있다. 그런데도 패착의 결과를 피하지 못하는 불운이 지금껏 반복되고 있으니 정말 아이러니다.
대권을 꿈꾸는 이들을 둘러싼 암중모색도 갈수록 치열해지는 기색이다.
후보 흔들기도 본격화되는 조짐이다. 이는 내년에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설 생각을 갖고 있는 이들 모두에게 적용될 일종의 통과의례가 될 것이다.
이회창 전 총재의 실패가 주는 교훈도 챙겨둘 가치가 있다.
주지하다시피 대선 가도에서 이 전 총재가 다 된 밥을 먹지 못한 데는 IJ와 JP 영입 불발이 결정적 패인이었다. JP를 영입하라는 조언은 충정도 출신인 내가 왜 그를 데려와야 하느냐는 스스로의 과신 때문에, IJ 포용론은 결국 찻잔 속 미풍에 그칠 것이라는 잘못된 참모들의 전략이 막아버렸다. 그 결과 이 전 총재는 두 번씩이나 다 된 선거를 놓친 비운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다.
반면, YS 집권이 3당 통합이고 DJ 집권은 DJP 연합의 산물이었다. 이보다 앞서 민주화 물결에도 불구하고 노태우 집권이 가능했던 건 야권 분열이 가져다 준 선물이었다.
이 같은 역사적 정황은 2012년, 큰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이 반드시 명심해야 할 대목이라고 생각한다.
정치권에 대한 국민 불신이 하늘을 찌르는 형국이다.
때만 되면 쇄신과 개혁이라는 화두를 들이밀고도 여전히 쇄신과 개혁을 당면과제로 내세우고 있는 한나라당이나 내부분열로 동력을 상실하고도 통합을 앞세운 정치적 수사로 사분오열로 찢긴 약점을 해소하지 못한 민주당이나 국민 앞에서 궁색하기는 마찬가지다.
기존 정치에 대한 불신이 새 인물에 대한 갈증을 자극하는 현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성급한 반가움이 검증되지 않은 인물에 대한 판단을 흐리게 했고 그 결과 ‘열광적 등장과 실망스러운 퇴장’이 반복됐다. 박찬종 변호사나 문국현 유한킴벌리 전 사장의 좌절을 떠올리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최근 급부상하고 있는 안철수 신당도 성공 여부와 상관없이 비슷한 과정의 산물이라는 생각이다.
오죽하면 실체 없는 신당에 기대게 됐을까를 헤아리면 국민 앞에 한없이 죄스러워지는 마음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미몽에서 깨어나지 못한 정치권의 시대착오적 인식이 안타깝다.
신당 창당이나 명망가 위주의 신진 수혈로 면피하려는 의도로 화를 자초하는 형국이다.
겉모습이 아니라 정신상태가 문제인데 무조건 껍데기만 바꾸려고 한다. 국민은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진정성 있는 정치를 원하고 있는데 인기몰이식 땜방질로 얼렁뚱땅 위기 국면을 넘겨보고자 하는 꼼수가 역력하다.
착각도 이런 착각이 없다.
지금은 인물영입보다는 유능한 인재들이 관심을 갖는 정당으로의 환골탈태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화학적으로 변하지 않으면 국물도 없다는 비장함으로 2012년을 바라봐야 할 것이다.
(2011.11.14.)
....홍문종 생각
2011년 11월 12일 토요일
홍문종 생각 - 야간산행
야간산행
야간 산행 모임에 참여하고 있는데 운영방식이 조금은 독특하다.
매월 1회, ‘月, 日, 時, 分, 秒’가 같은 숫자로 겹치는 특정한 순간, 정상에 도착하는 것을 원칙으로 정했다. 예를 들어 1월이면 ‘1월 1일 1시 1분 1초’, 2월이면 ‘2월 2일 2시 2분 2초‘에 정상을 찍는 식이다.
11월 11일인 어제가 그 D-day였고 행선지는 백운대 정상이었다.
(백운대가 행선지로 낙점된 배경엔 지난 달 산행의 아픈 기억이 작용한 바 크다)
이번에도 아침부터 빗방울이 흩뿌리는 등 심상치 않은 일기가 걱정스럽기도 했지만
지난번과는 달리 산행 내내 신중하고 겸손한 모드를 유지했다.
그리고 드디어 11시 11분 11초에 무사히 고지를 탈환할 수 있었다.
사실 등산이라면 나름 일가견을 가지고 있는 멤버들에게 ‘백운대 정상’ 정도를 고지탈환 운운하는 이 글이 결례가 될지 모르겠다. 그러나 실패로 끝났던 지난 10월의 경험에 비추면 그리 과도한 오류도 아니라는 생각이다.
지난 10월 산행 목표는 10일 밤 10시 10분 10초 백운대 정상에 도달하는 것이었다.
북한산을 출발해서 백운대 정상에 도착하는 일정이었는데 워낙 많이 다녀 익숙한 곳이고 등산에는 모두들 한가락 한다는 자신감 때문이었는지 안개 낀 일기 정도는 간단히 무시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그렇게 아무 문제없다며 감행한 등산이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선두에 나선 사람이 알아서 안내하겠거니 하는 생각으로 무신경하게 따라가다가 길을 놓친 것이다. 4시간여를 헤맸지만 끝내 정상(그리도 쉽게 생각했던)을 포기하는 결과로 끝나고 말았다.
길을 잃게 된 이유를 생각해 봤더니 몇 가지 반성의 여지가 있었다.
지나친 자신감이 화근이었다. 스스로에 대한 과신이 어이없는 실패를 부른 주범이었다.
실제로 사전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았고 안개 등 등반에 적합지 않은 주변 징후를 무시했다. 백운대 정도야 했던 안일함이 초래한 불명예였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리더의 능력이었다.
무리를 인솔 통제하는 리더의 지휘능력이 얼마나 결정적 역할을 하는 지를 다시 깨닫는 계기가 됐다.
어려운 처지에 놓인 우리의 정치 상황에서도 비슷한 경우를 보고 있다.
리더가 길을 잃자, 적지 않은 시간 동안 북한산을 헤매고도 정상에 오르지 못했던 것처럼 국가의 운명 역시 지도자의 역량에 달려있다. 국민의 장래는 두말할 나위가 없다.
지도자에 따라 국민 개개인이 실패할 수도 성공할 수도 있는 기막힌 현실을 간과해서는 안될 일이다.
특히나 대선을 앞두고 있는 우리로서는 지도자 선택에 더 없이 깊은 고민을 해야 할 중차대한 시기다. 이 난국에 대한민국을 세계 지도자 국가 반열에 올려놓는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더구나 쉽지 않은 정치상황을 감안한다면 그 어느 때보다 역량있는 지도자의 출현이 갈급한 상황이다.
때 마침 그동안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이탈리아 베를루스코니 총리의 사임이 결정됐다는 소식이다. 앞서 그리스 총리의 사퇴도 세계인의 주목을 끈 바 있다. 남의 나라 일로만 치부할 수 없는 것이 이탈리아나 그리스가 세계 경제 위기의 지렛대 역할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두들 리더의 교체가 악화일로에 있던 이탈리아 상황을 소생시키는 전환점으로 작용하기를 바라고 있다. 총리가 바뀌고 정치가 바뀐다면 새로운 가능성이 높아질 거라는 기대감이 상승하고 있는 분위기다.
이 역시 지도자의 중요성을 설명하는 대목이 아닐까 싶다.
11월 11일 11시 11분 11시.
그 시각 우리는 백운대 꼭대기 있었다.
그곳에서 기도를 통해 저마다의 소망을 간구했다.
지도자 역할의 중요성에 공감하며 꿈과 희망을 함께 다졌다.
10월의 실패를 털어내고 하산하는 발걸음이 그렇게 가벼울 수 없었다.
우리의 미래를 축복이라도 하는 듯 머리 위를 비추는 밝고 명료한 달빛은 더 없는 반가움이었다.
(2011. 11. 12)
....홍문종 생각
야간 산행 모임에 참여하고 있는데 운영방식이 조금은 독특하다.
매월 1회, ‘月, 日, 時, 分, 秒’가 같은 숫자로 겹치는 특정한 순간, 정상에 도착하는 것을 원칙으로 정했다. 예를 들어 1월이면 ‘1월 1일 1시 1분 1초’, 2월이면 ‘2월 2일 2시 2분 2초‘에 정상을 찍는 식이다.
11월 11일인 어제가 그 D-day였고 행선지는 백운대 정상이었다.
(백운대가 행선지로 낙점된 배경엔 지난 달 산행의 아픈 기억이 작용한 바 크다)
이번에도 아침부터 빗방울이 흩뿌리는 등 심상치 않은 일기가 걱정스럽기도 했지만
지난번과는 달리 산행 내내 신중하고 겸손한 모드를 유지했다.
그리고 드디어 11시 11분 11초에 무사히 고지를 탈환할 수 있었다.
사실 등산이라면 나름 일가견을 가지고 있는 멤버들에게 ‘백운대 정상’ 정도를 고지탈환 운운하는 이 글이 결례가 될지 모르겠다. 그러나 실패로 끝났던 지난 10월의 경험에 비추면 그리 과도한 오류도 아니라는 생각이다.
지난 10월 산행 목표는 10일 밤 10시 10분 10초 백운대 정상에 도달하는 것이었다.
북한산을 출발해서 백운대 정상에 도착하는 일정이었는데 워낙 많이 다녀 익숙한 곳이고 등산에는 모두들 한가락 한다는 자신감 때문이었는지 안개 낀 일기 정도는 간단히 무시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그렇게 아무 문제없다며 감행한 등산이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선두에 나선 사람이 알아서 안내하겠거니 하는 생각으로 무신경하게 따라가다가 길을 놓친 것이다. 4시간여를 헤맸지만 끝내 정상(그리도 쉽게 생각했던)을 포기하는 결과로 끝나고 말았다.
길을 잃게 된 이유를 생각해 봤더니 몇 가지 반성의 여지가 있었다.
지나친 자신감이 화근이었다. 스스로에 대한 과신이 어이없는 실패를 부른 주범이었다.
실제로 사전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았고 안개 등 등반에 적합지 않은 주변 징후를 무시했다. 백운대 정도야 했던 안일함이 초래한 불명예였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리더의 능력이었다.
무리를 인솔 통제하는 리더의 지휘능력이 얼마나 결정적 역할을 하는 지를 다시 깨닫는 계기가 됐다.
어려운 처지에 놓인 우리의 정치 상황에서도 비슷한 경우를 보고 있다.
리더가 길을 잃자, 적지 않은 시간 동안 북한산을 헤매고도 정상에 오르지 못했던 것처럼 국가의 운명 역시 지도자의 역량에 달려있다. 국민의 장래는 두말할 나위가 없다.
지도자에 따라 국민 개개인이 실패할 수도 성공할 수도 있는 기막힌 현실을 간과해서는 안될 일이다.
특히나 대선을 앞두고 있는 우리로서는 지도자 선택에 더 없이 깊은 고민을 해야 할 중차대한 시기다. 이 난국에 대한민국을 세계 지도자 국가 반열에 올려놓는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더구나 쉽지 않은 정치상황을 감안한다면 그 어느 때보다 역량있는 지도자의 출현이 갈급한 상황이다.
때 마침 그동안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이탈리아 베를루스코니 총리의 사임이 결정됐다는 소식이다. 앞서 그리스 총리의 사퇴도 세계인의 주목을 끈 바 있다. 남의 나라 일로만 치부할 수 없는 것이 이탈리아나 그리스가 세계 경제 위기의 지렛대 역할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두들 리더의 교체가 악화일로에 있던 이탈리아 상황을 소생시키는 전환점으로 작용하기를 바라고 있다. 총리가 바뀌고 정치가 바뀐다면 새로운 가능성이 높아질 거라는 기대감이 상승하고 있는 분위기다.
이 역시 지도자의 중요성을 설명하는 대목이 아닐까 싶다.
11월 11일 11시 11분 11시.
그 시각 우리는 백운대 꼭대기 있었다.
그곳에서 기도를 통해 저마다의 소망을 간구했다.
지도자 역할의 중요성에 공감하며 꿈과 희망을 함께 다졌다.
10월의 실패를 털어내고 하산하는 발걸음이 그렇게 가벼울 수 없었다.
우리의 미래를 축복이라도 하는 듯 머리 위를 비추는 밝고 명료한 달빛은 더 없는 반가움이었다.
(2011. 11. 12)
....홍문종 생각
2011년 11월 10일 목요일
홍문종 생각 - 주먹을 펴자
주먹을 펴자
정치권이 갑자기 과감하고 담대해졌다.
청와대 사과와 당 쇄신 요구에 목청을 높이는 정치적 소신들이 튀어나오고 있다.
그토록 이름을 올리고 싶어하던 감투에도 더 이상 미련을 두지 않는 초연한 모습들이다.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이유가 있었다.
선거의 계절이 도래한 것이다. 그리고 수명을 다해가는 권력의 끝자락이면 의례껏 출몰하는 선상탈출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었다.
사분오열하는 정치판을 을 바라보는 심정이 조마조마하다.
선수들이 오월동주와 동상이몽으로 활로를 모색하는 건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건만 4년마다 반복되는 똑같은 레퍼토리에 식상한 탓일까?
이를 지켜보는 국민 눈총이 그 어느 때보다 험악하다. 당연한 결과지만 그렇지 않아도 보기 싫은 정치판을 더 혐오스럽게 만들게 되지나 않을까 걱정이 된다.
위기 국면을 맞은 정치권을 질타하는 말들이 홍수를 이루고 있다.
가히 백가쟁명의 시대라 할 만하다.
그러나 대부분 대안 없는 비판에 그치고 마는 아쉬움이 있다.
정치권이 국민적 공감과 호응을 얻는 집단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구체적인 대안과 이를 실천하고자 하는 정치 당사자의 적극적인 의지가 필요하다는 걸 모르지는 않을텐데 눈 앞의 현실은 요원하기만 하다. 쇼맨십만 남발하는 정치인들에게 머리 꼭대기에 올라앉아 자신들의 속내를 꿰뚫고 있는 국민이 보일 리 없다.
기득권을 버리고자 하는 진정성 차원의 문제 해결이 진척을 보지 못하는 게 오늘 날 정치추락의 근본원인이라고 생각한다. 탐욕을 배제한 진정성만이 위기에 빠진 정치를 구할 수 있다.
그러나 정작 정치인들에게서 진정성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니 걱정이다.
정치판을 구하려면 당 후보를 선택하는 공천권을 당원과 국민에게 돌려주는 것이 급선무다.
가장 비민주적 행태의 공천시스템을 가동하고 있는 우리의 정치 환경이 가장 선결해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
물론 정당의 공천권 행사가 정당 정치의 근간을 이루는 주요 명제라는 걸 부인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보 선택은 당 대표나 당의 유력 주자의 의중에 따라 좌우되는 지금과 같은 체제로는 국민 관심을 끌어낼 수 없다. 이는 오래 전부터 품어온 개인적 소신이다.
기득권이 얼마나 큰 권력이고 얼마나 달콤한 유혹인가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포기’만이 유일한 답이라는 주장을 접고 싶지 않다. 그 거대한 권력을 포기하는 순간, 정치판이 확실히 바뀔 수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분명 엄청난 카타르시스와 함께 하는 국민적 공감대는 물론 정치권에 신선한 활로를 열어주는 위대한 작업의 시작이 될 수 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고령자 물갈이론’이 등장했다.
쇄신 운동의 단골 메뉴인 만큼 새삼스럽지 않지만 정치발전을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생각이다. 충분한 논의를 거쳐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근거를 바탕으로 한 접근이 아니라 특정 집단이나 개인을 겨냥한 일방적이고 인위적인 기준에 의해 급조된 혐의가 짙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설득력 있는 기준을 만드는 데 실패한 정황이 역력하다. 해당자들의 반발로 당내 분위기가 어수선해지는데도 선뜻 나서서 이를 설득하거나 반박하는 움직임 자체가 전무하다.
가장 큰 이유는 정당성을 뒷받침할만한 이론 작업이 부실한 탓이 아닐까 싶다.
미국의 경우, 오바마나 클린턴, 그보다 훨씬 앞선 세대의 케네디 등 젊은 나이에 대통령이 되어 미국 전역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은 사람들이 물론 있다. 하지만 70세에 대통령이 된 레이건 등 고령의 나이에 국가 발전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얻고 있는 사례들이 더 많다.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 역시 죽는 순간까지 상원의원으로서의 소임을 다했고 국방장관을 지냈던 서먼드는 100살까지 상원의원을 했다.
저마다의 특성과 강점이 한데 어우러질 때 효과가 가장 크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특히 정치는 노장청의 어울림이 집단적 시너지로 작동하는 특성이 더 강한 분야다.
노인세대에는 젊음과 패기만으로 도저히 모방할 수 없는 경륜의 에너지가 있고 노익장이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역동성은 청년세대가 보유하고 있는 나름의 강점이다. 저마다의 영역에서 나름의 기량을 인정받은 이들이 국민과 당원의 지지를 받아 투입된다면 정치판이 지금처럼 국민에게 외면 받는 수모를 겪지 않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정치 발전을 위한 또 하나의 해결책으로 ‘정부통령제와 4년 중임제’를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다.
대통령 1인에 몰려있는 권력 체계가 정치발전의 걸림돌이 되는 현실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이런 정치 환경에서 권한을 나누거나 보완할 수 있는 부통령제를 도입한다면 완충지대를 형성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솔직히 있다. 부통령이 보완재나 대체재로 대통령의 통치영역을 보조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 역할이 더 많다고 본다. 물론 선출직인 부통령에 대해 대통령처럼 탄핵절차를 거치지 않고는 파면되지 않는 지위의 보장이 있어야겠다.
부통령제가 정착된다면 4년 중임제에 대한 부담은 자동으로 해소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정책의 안정적인 정착을 위해 4년 중임제 역시 빠른 시일 내에 결론을 내야 할 의제라고 생각한다.
이밖에도 내각제는 정부통령제 체제에서 대통령과 부통령 사이의 갈등으로 나라가 크게 혼란스러워 질 수 있다는 걱정을 해소할 수 있는 또 다른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각제가 실시될 경우 재벌 기업 등의 자본이 의회를 장악하거나 파벌 보스의 영향력이 확대 등 또 다른 우려를 낳을 수 있다. 후보선출 과정에서 국민에 의한 공천과 정치자금의 투명성 확보에 만전을 기한다면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정치는 분명 변해야 한다.
그러나 어영부영 제스처로 넘기려는 꼼수는 처음부터 버리는 게 좋을 것이다.
지금까지 국민들에게 줬던 실망과 혐오감을 상쇄시킬 만큼 강력한 매력이 담은 쇄신책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때만 되면 선상탈출의 일환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기에 잠시 고민해 봤다.
누군가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한마음이 된다면 이루지 못할 바도 아닐 터, 나부터라도 움켜 쥔 주먹을 펴겠다.
(2011. 11. 10)
...홍문종 생각
정치권이 갑자기 과감하고 담대해졌다.
청와대 사과와 당 쇄신 요구에 목청을 높이는 정치적 소신들이 튀어나오고 있다.
그토록 이름을 올리고 싶어하던 감투에도 더 이상 미련을 두지 않는 초연한 모습들이다.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이유가 있었다.
선거의 계절이 도래한 것이다. 그리고 수명을 다해가는 권력의 끝자락이면 의례껏 출몰하는 선상탈출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었다.
사분오열하는 정치판을 을 바라보는 심정이 조마조마하다.
선수들이 오월동주와 동상이몽으로 활로를 모색하는 건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건만 4년마다 반복되는 똑같은 레퍼토리에 식상한 탓일까?
이를 지켜보는 국민 눈총이 그 어느 때보다 험악하다. 당연한 결과지만 그렇지 않아도 보기 싫은 정치판을 더 혐오스럽게 만들게 되지나 않을까 걱정이 된다.
위기 국면을 맞은 정치권을 질타하는 말들이 홍수를 이루고 있다.
가히 백가쟁명의 시대라 할 만하다.
그러나 대부분 대안 없는 비판에 그치고 마는 아쉬움이 있다.
정치권이 국민적 공감과 호응을 얻는 집단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구체적인 대안과 이를 실천하고자 하는 정치 당사자의 적극적인 의지가 필요하다는 걸 모르지는 않을텐데 눈 앞의 현실은 요원하기만 하다. 쇼맨십만 남발하는 정치인들에게 머리 꼭대기에 올라앉아 자신들의 속내를 꿰뚫고 있는 국민이 보일 리 없다.
기득권을 버리고자 하는 진정성 차원의 문제 해결이 진척을 보지 못하는 게 오늘 날 정치추락의 근본원인이라고 생각한다. 탐욕을 배제한 진정성만이 위기에 빠진 정치를 구할 수 있다.
그러나 정작 정치인들에게서 진정성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니 걱정이다.
정치판을 구하려면 당 후보를 선택하는 공천권을 당원과 국민에게 돌려주는 것이 급선무다.
가장 비민주적 행태의 공천시스템을 가동하고 있는 우리의 정치 환경이 가장 선결해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
물론 정당의 공천권 행사가 정당 정치의 근간을 이루는 주요 명제라는 걸 부인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보 선택은 당 대표나 당의 유력 주자의 의중에 따라 좌우되는 지금과 같은 체제로는 국민 관심을 끌어낼 수 없다. 이는 오래 전부터 품어온 개인적 소신이다.
기득권이 얼마나 큰 권력이고 얼마나 달콤한 유혹인가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포기’만이 유일한 답이라는 주장을 접고 싶지 않다. 그 거대한 권력을 포기하는 순간, 정치판이 확실히 바뀔 수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분명 엄청난 카타르시스와 함께 하는 국민적 공감대는 물론 정치권에 신선한 활로를 열어주는 위대한 작업의 시작이 될 수 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고령자 물갈이론’이 등장했다.
쇄신 운동의 단골 메뉴인 만큼 새삼스럽지 않지만 정치발전을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생각이다. 충분한 논의를 거쳐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근거를 바탕으로 한 접근이 아니라 특정 집단이나 개인을 겨냥한 일방적이고 인위적인 기준에 의해 급조된 혐의가 짙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설득력 있는 기준을 만드는 데 실패한 정황이 역력하다. 해당자들의 반발로 당내 분위기가 어수선해지는데도 선뜻 나서서 이를 설득하거나 반박하는 움직임 자체가 전무하다.
가장 큰 이유는 정당성을 뒷받침할만한 이론 작업이 부실한 탓이 아닐까 싶다.
미국의 경우, 오바마나 클린턴, 그보다 훨씬 앞선 세대의 케네디 등 젊은 나이에 대통령이 되어 미국 전역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은 사람들이 물론 있다. 하지만 70세에 대통령이 된 레이건 등 고령의 나이에 국가 발전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얻고 있는 사례들이 더 많다.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 역시 죽는 순간까지 상원의원으로서의 소임을 다했고 국방장관을 지냈던 서먼드는 100살까지 상원의원을 했다.
저마다의 특성과 강점이 한데 어우러질 때 효과가 가장 크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특히 정치는 노장청의 어울림이 집단적 시너지로 작동하는 특성이 더 강한 분야다.
노인세대에는 젊음과 패기만으로 도저히 모방할 수 없는 경륜의 에너지가 있고 노익장이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역동성은 청년세대가 보유하고 있는 나름의 강점이다. 저마다의 영역에서 나름의 기량을 인정받은 이들이 국민과 당원의 지지를 받아 투입된다면 정치판이 지금처럼 국민에게 외면 받는 수모를 겪지 않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정치 발전을 위한 또 하나의 해결책으로 ‘정부통령제와 4년 중임제’를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다.
대통령 1인에 몰려있는 권력 체계가 정치발전의 걸림돌이 되는 현실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이런 정치 환경에서 권한을 나누거나 보완할 수 있는 부통령제를 도입한다면 완충지대를 형성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솔직히 있다. 부통령이 보완재나 대체재로 대통령의 통치영역을 보조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 역할이 더 많다고 본다. 물론 선출직인 부통령에 대해 대통령처럼 탄핵절차를 거치지 않고는 파면되지 않는 지위의 보장이 있어야겠다.
부통령제가 정착된다면 4년 중임제에 대한 부담은 자동으로 해소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정책의 안정적인 정착을 위해 4년 중임제 역시 빠른 시일 내에 결론을 내야 할 의제라고 생각한다.
이밖에도 내각제는 정부통령제 체제에서 대통령과 부통령 사이의 갈등으로 나라가 크게 혼란스러워 질 수 있다는 걱정을 해소할 수 있는 또 다른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각제가 실시될 경우 재벌 기업 등의 자본이 의회를 장악하거나 파벌 보스의 영향력이 확대 등 또 다른 우려를 낳을 수 있다. 후보선출 과정에서 국민에 의한 공천과 정치자금의 투명성 확보에 만전을 기한다면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정치는 분명 변해야 한다.
그러나 어영부영 제스처로 넘기려는 꼼수는 처음부터 버리는 게 좋을 것이다.
지금까지 국민들에게 줬던 실망과 혐오감을 상쇄시킬 만큼 강력한 매력이 담은 쇄신책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때만 되면 선상탈출의 일환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기에 잠시 고민해 봤다.
누군가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한마음이 된다면 이루지 못할 바도 아닐 터, 나부터라도 움켜 쥔 주먹을 펴겠다.
(2011. 11. 10)
...홍문종 생각
2011년 11월 8일 화요일
홍문종 생각 - 권위를 회복해야
권위를 회복해야
중국 당국이 산업화로 야기된 사회적 부작용에 적극 대응하는 모습이다.
5년 안에 효자 100만 명 만들기 운동으로 사회적 물의를 빚고 있는 각종 패륜 범죄를 퇴치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인데 오죽하면 그런 방안까지 내놓게 됐을까 싶다.
중국의 고심이 단순한 남의 일로만 생각되지 않는다. 우리 역시 비슷한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는 처지이기 때문일 것이다.
인정하기 싫지만 우리 주변에도 패륜범죄가 그 검은 뿌리를 내린 지 오래다.
부모를 때리고 심지어 살해까지 하는 충격적인 극단의 패륜행각이 드물지 않다. 노인공경의 미풍양속도 빠른 속도로 그 당위성을 상실해가는 모습이다. 더 충격적인 건 붕괴된 교권이 목도되는 교육현장이다. 학생이 교사를 폭행과 희롱의 대상으로 삼는 사건이 더 이상 놀랍지 않을 만큼 만연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며칠 전만 해도 여중생이 교사의 머리채를 잡았다는 보도가 있었다.
물질만능주의와 지나친 경쟁 환경이 초래한 우리시대의 슬프고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 이르게 됐을까 참담한 심정이다.
부모에 대한 효가 최대의 가치로 존중받고 스승이 무한한 존경과 신뢰의 대상이었던, 장유유서의 사회적 규범이 소통의 통로가 되어 중심을 잡아주던 시절에는 꿈에도 생각 못할 사건 사고들이 날마다 넘치고 있다. 풍요로운 물질에도 불구하고 해소되지 않는 갈증이 인간을 성마르게 몰아간 결과와 무관하지 않다. 부모에게 자식이, 스승에게 제자가, 어른에게 어린 사람들이 공포의 대상이 되고 있는 이 믿기지 않는 현실을 설명할 도리가 없다.
그렇게 우리 사회에서 어른의 가르침이 사라지고 있는 건 대단히 불행한 일이다.
봉변이 두려워 부당한 행실을 지적하고 바로잡아야 할 훈육이 그 역할을 포기하면서 기존 규범의 가치를 무너뜨리고 있다.
교사가 학생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제자가 교사를 다스리는 분위기로 바뀌고 있다는 지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일단은 문제 학생을 피하고 보자는 처세가 대세를 이루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자식의 몫으로 당연시 되던 부모 부양도 새로운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부모가 자식을 상대로 ‘생활비를 달라’고 소송을 제기하는 가슴 아픈 세태와 마주치게 되는 현실이 그것이다.
그렇게 되기까지 점차적으로 권위가 상실되는 사회적 역할이 컸다.
정보통신 발달은 지식이 더 이상 어른들만의 고유 영역이기를 허용하지 않았다. 웹 검색 기술이 지식의 보유량을 결정짓는 주요 수단이 되면서 어른 보다 ‘똑똑한 아이들’을 양산하는 창구가 됐다. 상대적으로 ‘무식한 어른’이 경륜의 권위에 묻어가는 무임승차가 봉쇄되기도 했다.
권위의 실종은 더 이상 존중받을 수 없다는 신뢰 상실의 판정을 의미한다.
주변에서도 단 한 번의 실수로 추풍낙엽 신세가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만큼 엄격한 잣대가 준용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인기 절정의 강호동이 탈세혐의로 정상의 자리를 내놓게 된 것도 그에게 부여된 권위를 지키지 못한 반작용의 여파라고 할 수 있다.
권위의 결벽적인 속성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 할 것이다.
패륜을 비롯한 반사회적 행각들은 반드시 바로잡혀야 할 대상이다.
그 중 권위의 신뢰 회복은 빼놓을 수 없는 실천적 요소로 구성원 저마다의 책무의식에 대한 소명감이 그 해법이 아닐까 싶다. 모든 문제점을 남탓에서 출발할 게 아니라 무조건 스스로를 탓하는 관점으로 시작한다면 의외로 수월하게 답을 찾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인간은 어차피 서로의 관계 속에서 각자의 삶을 영위하는 사회적 동물이다. 그러나 인간의 개성이나 창의성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최소한의 질서조차 희화화하는 행위를 영웅시 하는 풍조는 지양해야 할 것이다. 반면,
최대한 많은 이들의 자유와 행복을 보장하기 위해선 개인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법도나 금도의 세심한 역할이 막중하다. 그렇지 못할 경우 흐트러진 사회가 될 것이고 그 흐트러진 한 부분이 사회의 전체 기반을 흔드는 결정타가 될 수도 있음이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인구 밀도가 높고 개인의 욕구가 다른 사람과 상충될 가능성이 많은 상황일수록 기본적인 공공질서에 대한 관심은 아무리 많아도 결코 부족하지 않다.
서로를 존중하며 사라진 권위를 회복하자,
단 조급증은 치명적인 독약임을 명심할 일이다.
(2011. 11. 8)
...홍문종 생각
중국 당국이 산업화로 야기된 사회적 부작용에 적극 대응하는 모습이다.
5년 안에 효자 100만 명 만들기 운동으로 사회적 물의를 빚고 있는 각종 패륜 범죄를 퇴치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인데 오죽하면 그런 방안까지 내놓게 됐을까 싶다.
중국의 고심이 단순한 남의 일로만 생각되지 않는다. 우리 역시 비슷한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는 처지이기 때문일 것이다.
인정하기 싫지만 우리 주변에도 패륜범죄가 그 검은 뿌리를 내린 지 오래다.
부모를 때리고 심지어 살해까지 하는 충격적인 극단의 패륜행각이 드물지 않다. 노인공경의 미풍양속도 빠른 속도로 그 당위성을 상실해가는 모습이다. 더 충격적인 건 붕괴된 교권이 목도되는 교육현장이다. 학생이 교사를 폭행과 희롱의 대상으로 삼는 사건이 더 이상 놀랍지 않을 만큼 만연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며칠 전만 해도 여중생이 교사의 머리채를 잡았다는 보도가 있었다.
물질만능주의와 지나친 경쟁 환경이 초래한 우리시대의 슬프고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 이르게 됐을까 참담한 심정이다.
부모에 대한 효가 최대의 가치로 존중받고 스승이 무한한 존경과 신뢰의 대상이었던, 장유유서의 사회적 규범이 소통의 통로가 되어 중심을 잡아주던 시절에는 꿈에도 생각 못할 사건 사고들이 날마다 넘치고 있다. 풍요로운 물질에도 불구하고 해소되지 않는 갈증이 인간을 성마르게 몰아간 결과와 무관하지 않다. 부모에게 자식이, 스승에게 제자가, 어른에게 어린 사람들이 공포의 대상이 되고 있는 이 믿기지 않는 현실을 설명할 도리가 없다.
그렇게 우리 사회에서 어른의 가르침이 사라지고 있는 건 대단히 불행한 일이다.
봉변이 두려워 부당한 행실을 지적하고 바로잡아야 할 훈육이 그 역할을 포기하면서 기존 규범의 가치를 무너뜨리고 있다.
교사가 학생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제자가 교사를 다스리는 분위기로 바뀌고 있다는 지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일단은 문제 학생을 피하고 보자는 처세가 대세를 이루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자식의 몫으로 당연시 되던 부모 부양도 새로운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부모가 자식을 상대로 ‘생활비를 달라’고 소송을 제기하는 가슴 아픈 세태와 마주치게 되는 현실이 그것이다.
그렇게 되기까지 점차적으로 권위가 상실되는 사회적 역할이 컸다.
정보통신 발달은 지식이 더 이상 어른들만의 고유 영역이기를 허용하지 않았다. 웹 검색 기술이 지식의 보유량을 결정짓는 주요 수단이 되면서 어른 보다 ‘똑똑한 아이들’을 양산하는 창구가 됐다. 상대적으로 ‘무식한 어른’이 경륜의 권위에 묻어가는 무임승차가 봉쇄되기도 했다.
권위의 실종은 더 이상 존중받을 수 없다는 신뢰 상실의 판정을 의미한다.
주변에서도 단 한 번의 실수로 추풍낙엽 신세가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만큼 엄격한 잣대가 준용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인기 절정의 강호동이 탈세혐의로 정상의 자리를 내놓게 된 것도 그에게 부여된 권위를 지키지 못한 반작용의 여파라고 할 수 있다.
권위의 결벽적인 속성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 할 것이다.
패륜을 비롯한 반사회적 행각들은 반드시 바로잡혀야 할 대상이다.
그 중 권위의 신뢰 회복은 빼놓을 수 없는 실천적 요소로 구성원 저마다의 책무의식에 대한 소명감이 그 해법이 아닐까 싶다. 모든 문제점을 남탓에서 출발할 게 아니라 무조건 스스로를 탓하는 관점으로 시작한다면 의외로 수월하게 답을 찾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인간은 어차피 서로의 관계 속에서 각자의 삶을 영위하는 사회적 동물이다. 그러나 인간의 개성이나 창의성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최소한의 질서조차 희화화하는 행위를 영웅시 하는 풍조는 지양해야 할 것이다. 반면,
최대한 많은 이들의 자유와 행복을 보장하기 위해선 개인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법도나 금도의 세심한 역할이 막중하다. 그렇지 못할 경우 흐트러진 사회가 될 것이고 그 흐트러진 한 부분이 사회의 전체 기반을 흔드는 결정타가 될 수도 있음이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인구 밀도가 높고 개인의 욕구가 다른 사람과 상충될 가능성이 많은 상황일수록 기본적인 공공질서에 대한 관심은 아무리 많아도 결코 부족하지 않다.
서로를 존중하며 사라진 권위를 회복하자,
단 조급증은 치명적인 독약임을 명심할 일이다.
(2011. 11. 8)
...홍문종 생각
2011년 11월 6일 일요일
홍문종 생각 - 운수 좋은 날
운수 좋은 날
살다보면 의외에 곳에서 저마다의 ‘허식’을 무너뜨리는 진리와 맞닥뜨릴 때가 있다.
아마도 오늘의 경험이 그런 경우가 아닐까 싶다.
세속적인 욕심을 쫓다 보면 본의 아니게 본질을 호도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나 유권자의 표심에서 자유롭지 않은 정치인의 입장에서는 그 정도가 더욱 심할 수 밖에 없다. 삶의 질 차원에서 정치관련 직업군이 높은 평점을 받지 못하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오늘의 삶은 ‘고품질’로 자랑할 만하다.
모처럼 횡재한 기분이 들만큼 만족스런 일과였다.
두 곳의 일정을 통해 선물처럼 받은 ‘깨달음’ 때문이다.
당초 그곳을 인도한 사람들의 의도와는 다른 결론이었지만 내 자신에게도 평화를 주는 양질의 시간이 됐다.
양로원을 찾았다.
명색은 외로운 노년의 삶을 위로해드리겠다는 것이었지만 정작 어르신들의 환심을 사기 위한 속내가 따로 있는 방문이었다.
그러나 해맑은(?) 표정으로 우리 일행을 반기는 모습을 뵙는 순간 가슴에 파동이 일었다. 세월의 굴곡을 고스란히 담은 얼굴에 환한 미소를 지으며 기뻐하시는 모습에 그동안 선거 때마다 표를 얻고자 어르신들을 현혹했던 지난 행적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말로는 오늘의 대한민국을 일궈낸 주역이라고 추켜세웠으면서 얼마나 그에 걸 맞는 대접을 해드렸나를 생각하니 부끄럽고 죄스런 마음에 고개를 들 수조차 없었다.
순식간에 양심의 기운이 내 마음을 지배했다.
그래서 욕심을 내려놓고 진심으로 어르신들을 위한 시간을 보냈다.
크게 많은 것을 해드릴 수 없었지만 천진난만한 마음으로 어르신들과 코드를 맞추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나의 미래를 위해 필요한 분들이라는 생각을 접고 가없는 희생으로 우리의 오늘을 이룩하신 노고에 대해 진심어린 마음으로 감사를 전했다.
그리고 수능을 앞두고 부모님들이 밤새워 기도하는 곳이 있다고 해서 찾아갔다.
이 역시 개인적인 욕심 때문에 결례를 무릅쓰고 찾게 된 곳이었는데 뜻하지 않게 마음을 정화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됐다.
밤 12시가 넘은 시간인데도 대낮처럼 밝은 공간엔 발 디딜 틈 하나 없이 들어찬 사람들이 저마다 소원하는 바를 뇌는 소리가 산 전체를 울리고 있었다. 순간 아차 싶었지만 어차피 온 거 한번 부딪혀 보자 하는 심정으로 비집고 들어섰는데 누구도 일별을 주지 않았다. 하기야 자식의 수능을 위한 기원 외에는 그 어떤 것도 안중에 없는 그들 앞에서 얼쩡거리려고 했던 자체가 무모한 일이었다.
잠시 어떻게 처신할지 몰라 멀거니 서 있다가 그들의 기도하는 분위기에 빠져들었다.
이 두 일정은 세속적 관점으로 보면 들인 공에 비해 별반 효과를 내지 못한 평점 이하의 투자였다. 그러나 뭔가 가슴을 가득 채우는 듯한 뿌듯한 행복감과 해탈의 경지에라도 이른 듯한 포만감은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깨달음을 안겨줬다. 모처럼 실속 있는 삶의 주인이 된 만족감까지 생각한다면 이윤이 큰 장사(?)를 한 셈이다.
자신의 이득이나 기쁨이 아닌 오로지 타인을 위한 정성은 그 상대가 국가와 민족이 됐건 자기 자식이 됐건 그 숭고하고 진지한 열정 앞에 고개를 숙이게 된다.
특히 이들의 이타적인 삶은 입만 열면 이타적인 삶은 물론 국가와 민족 그리고 후대를 위한 미래를 부르짖는 정치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생각을 했다.
정치인들이 최소한 이들만큼 자신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정성을 쏟았다면 분명 세상의 많은 것들이 달라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정치권의 솔직한 반성이 절실해진다.
정치권의 진심어린 반성이 허공에 흩어진 수많은 약속들을 제 자리에 돌려놓을 수 있다면 모든 이들의 삶도 그만큼 행복하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오늘 깨달은 이 진리가 잠자리에 드는 이 순간을 더 없이 행복하게 한다.
따뜻한 기운이 내 가슴에 별처럼 쏟아지는 느낌이다.
(2011. 11. 5)
....홍문종 생각
살다보면 의외에 곳에서 저마다의 ‘허식’을 무너뜨리는 진리와 맞닥뜨릴 때가 있다.
아마도 오늘의 경험이 그런 경우가 아닐까 싶다.
세속적인 욕심을 쫓다 보면 본의 아니게 본질을 호도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나 유권자의 표심에서 자유롭지 않은 정치인의 입장에서는 그 정도가 더욱 심할 수 밖에 없다. 삶의 질 차원에서 정치관련 직업군이 높은 평점을 받지 못하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오늘의 삶은 ‘고품질’로 자랑할 만하다.
모처럼 횡재한 기분이 들만큼 만족스런 일과였다.
두 곳의 일정을 통해 선물처럼 받은 ‘깨달음’ 때문이다.
당초 그곳을 인도한 사람들의 의도와는 다른 결론이었지만 내 자신에게도 평화를 주는 양질의 시간이 됐다.
양로원을 찾았다.
명색은 외로운 노년의 삶을 위로해드리겠다는 것이었지만 정작 어르신들의 환심을 사기 위한 속내가 따로 있는 방문이었다.
그러나 해맑은(?) 표정으로 우리 일행을 반기는 모습을 뵙는 순간 가슴에 파동이 일었다. 세월의 굴곡을 고스란히 담은 얼굴에 환한 미소를 지으며 기뻐하시는 모습에 그동안 선거 때마다 표를 얻고자 어르신들을 현혹했던 지난 행적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말로는 오늘의 대한민국을 일궈낸 주역이라고 추켜세웠으면서 얼마나 그에 걸 맞는 대접을 해드렸나를 생각하니 부끄럽고 죄스런 마음에 고개를 들 수조차 없었다.
순식간에 양심의 기운이 내 마음을 지배했다.
그래서 욕심을 내려놓고 진심으로 어르신들을 위한 시간을 보냈다.
크게 많은 것을 해드릴 수 없었지만 천진난만한 마음으로 어르신들과 코드를 맞추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나의 미래를 위해 필요한 분들이라는 생각을 접고 가없는 희생으로 우리의 오늘을 이룩하신 노고에 대해 진심어린 마음으로 감사를 전했다.
그리고 수능을 앞두고 부모님들이 밤새워 기도하는 곳이 있다고 해서 찾아갔다.
이 역시 개인적인 욕심 때문에 결례를 무릅쓰고 찾게 된 곳이었는데 뜻하지 않게 마음을 정화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됐다.
밤 12시가 넘은 시간인데도 대낮처럼 밝은 공간엔 발 디딜 틈 하나 없이 들어찬 사람들이 저마다 소원하는 바를 뇌는 소리가 산 전체를 울리고 있었다. 순간 아차 싶었지만 어차피 온 거 한번 부딪혀 보자 하는 심정으로 비집고 들어섰는데 누구도 일별을 주지 않았다. 하기야 자식의 수능을 위한 기원 외에는 그 어떤 것도 안중에 없는 그들 앞에서 얼쩡거리려고 했던 자체가 무모한 일이었다.
잠시 어떻게 처신할지 몰라 멀거니 서 있다가 그들의 기도하는 분위기에 빠져들었다.
이 두 일정은 세속적 관점으로 보면 들인 공에 비해 별반 효과를 내지 못한 평점 이하의 투자였다. 그러나 뭔가 가슴을 가득 채우는 듯한 뿌듯한 행복감과 해탈의 경지에라도 이른 듯한 포만감은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깨달음을 안겨줬다. 모처럼 실속 있는 삶의 주인이 된 만족감까지 생각한다면 이윤이 큰 장사(?)를 한 셈이다.
자신의 이득이나 기쁨이 아닌 오로지 타인을 위한 정성은 그 상대가 국가와 민족이 됐건 자기 자식이 됐건 그 숭고하고 진지한 열정 앞에 고개를 숙이게 된다.
특히 이들의 이타적인 삶은 입만 열면 이타적인 삶은 물론 국가와 민족 그리고 후대를 위한 미래를 부르짖는 정치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생각을 했다.
정치인들이 최소한 이들만큼 자신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정성을 쏟았다면 분명 세상의 많은 것들이 달라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정치권의 솔직한 반성이 절실해진다.
정치권의 진심어린 반성이 허공에 흩어진 수많은 약속들을 제 자리에 돌려놓을 수 있다면 모든 이들의 삶도 그만큼 행복하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오늘 깨달은 이 진리가 잠자리에 드는 이 순간을 더 없이 행복하게 한다.
따뜻한 기운이 내 가슴에 별처럼 쏟아지는 느낌이다.
(2011. 1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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