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로 말하라
지방선거가 코 앞이다.
유권자 한 사람이 8명의 후보(각 지역의 기초단체장이나 교육감을 비롯한 지방의원 등 )를 선택하는 '1인 8표제'가 우리의 선거 역사상 최초로 실행되는 만큼 건국 이래 가장 복잡하게 치르는 선거가 될 전망이다.
규모면에서도 역대 최대다. 실제로 유권자 3880만 명 가운데 예상 후보자가 1만6000여명에 달하고 투표용지도 3억 여장에 이른다고 한다.
정당도 많은데 기호도 '1,2,3,4..'로 나가다 '가나다..'는 또 뭔지 모르겠다며 하나같이 어리둥절해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는 생각이다. 만나는 사람마다 누가 누군지도 모르면서 8명이나 되는 후보를 선택해야 한다는 자체에 부담을 느끼는 표정이 역력한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번 선거에서 반드시 국민으로서의 권리행사가 충실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생각이다. 투표 불참은 단순한 권리 포기의 개념이 아니라 책임이 요구되는 직무유기 관점에서 바라봐야 할 문제고 투표 참여야말로 양질의 국가를 만드는 데 있어 빠져서는 안 될 가장 중요한 요건이기 때문이다.
선거 때마다 투표를 하지 않거나 무관심 속에서 대충 땜질 하듯 선거에 임했던 사람들은 잘못 선출된 후보로 인한 후유증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성실하지 못한 선택으로 잘못된 결과가 나왔다면 마땅히 유권자도 함께 책임의식을 느껴야 한다.
현실이 그다지 녹록한 건 아니지만 국민 저마다 스스로의 선택에 대해 책임을 지겠다는 의식으로 투표에 임해야 할것이다.
투표를 하자.
유권자의 선택은 민주정치의 가장 경력한 권력이고 가장 강력한 힘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20대 젊은이들의 투표참여는 미래의 새로운 가치와 정치비전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
희망을 꿈꾸는 미래의 화두를 ‘투표를 하라’로 정하는 건 어떨까 싶다.
투표 자체가 스스로의 권익을 지켜주는 금과옥조의 가치가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한다. 스스로의 노력과 참여로 자칫 훼손될 지도 모를 가치를 지켜낼 수 있는 힘의 근원이 바로 투표이기 때문이다.
간혹 투표를 안하는 것도 선택이라는 주장을 펴는 사람이 있는가 본데 넌센스에 불과하다. 정책이나 제안에 대한 찬반이나 가부를 묻는 투표라면 몰라도 선거 외면은 민의왜곡에 치명타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운신의 폭이 좁을 수 밖에 없다.
반드시 투표를 해야 한다. 스스로의 권리행사에 소극적 행보를 보이면 보일수록 권력이나 재산을 무기로 하는 기득권층의 횡포로부터 스스로를 지켜낼 힘을 잃게 된다는 냉엄한 현실을 하시라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제대로 된 후보를 선택하는 것은 선거 참여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된 다고 했듯 난립한 후보군 때문에 정신이 혼미해졌다고 해도 각 후보에 대한 정보는 꼼꼼히 살펴야 한다. 학창 시절 입시 공부 하듯 선관위 인쇄물을 통해 우리 지역에 필요한 일꾼의 면모를 낱낱이 살펴보는 것도 당연한 의무 사항 중 하나다. 지역을 위해 필요한 일꾼을 고르기 위해 아무리 많은 시간을 들여 심사숙고해도 나쁘지 않다. 그리고 그것은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의무사항이기도 하다.
특히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 위주로 기억하려는 습성이 있다는 사실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이 같은 특성을 이용하려는 무리들이 반드시 존재한다. 따라서 거짓 정보를 흘려 유권자들의 판단을 특정집단에 유리하도록 호도하려는 의도에 넘어가는 일이 없도록 이들에 대한 경계심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국가 미래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는데 있어 자신의 한 표가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을 인식하고 투표장을 찾기 바란다. 대한민국의 21세기가 어찌 보면 민초들의 ‘사소한 선택’에 따라 결정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결국 민초의 선택은 사소한 선택이 아닌 위대한 선택이 되는 것이다.
그동안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여러 번 있었다. 특히 박빙의 승부를 다투던 선거를 생각해 보면 유권자의 결정에 따라 우리의 근현대사는 또 다른 운명의 길을 가게 됐을지도 모른다.
그런 개연성을 생각하면 개개인의 선거 참여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 건지 저절로 깨달아질 것이다.
21세기 대한민국의 세계사적인 도약은 바로 나의 한 표로부터 시작된다는 사명감으로 투표에 임했으면 한다.
투표로 말하자. 그리고 그 결과에 당당히 책임질 각오도 세우자.
현명한 판단으로 깨끗하고 편안한 세상을 함께 만들어 보자. (2010. 5. 31)
.....홍문종 생각
홍문종 네이버 블로그 : http://blog.naver.com/mjhong2004
2010년 5월 31일 월요일
2010년 5월 30일 일요일
홍문종 생각-31년 만의 외출
31년 만의 외출

오늘은 조금 특별한 콘서트에 다녀왔다.
연극인 윤석화씨가 운영하는 ‘정미소’에서 ‘31년 만의 외출’이라는 부제로 진행된 가수(미대 교수이신데 내게는 이 호칭이 더 정겹다) 정미조씨의 공연을 관람한 것이다.
1,2 층을 가득 메운 관객 대부분이 희끗한 머리, 주름진 얼굴, 두꺼운 안경 등 나이가 들어 보이는 연배들이었다. 나처럼 31년 만에 다시 가수로 무대에 선 정미조씨를 통해 추억 속의 노래를 듣고 싶은 설레임이 역력한 얼굴들이었다. 나를 기준으로 생각해본다면 그녀의 31년 만에 외출에 편승해 추억에 묻히고 싶은 은근한 기대감도 있지 않을까 싶다.
세월이 흘렀어도 그녀의 목소리는 여전히 감미로웠다.
개여울, 휘파람을 부세요, 불꽃 등 귀에 익은 그녀의 히트곡이 지나간 우리의 청춘을 되살아나게 했다. 그것도 모자라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 달구었다.
결코 화려하지 않은 무대의상, 현란하지 않은 무대, 그러면서도 잘 정리되고 절제된 조그만 콘서트가 우리를 통째로 들어 과거의 한복판에 옮겨다 주었다. 충분한 신명으로 즐거운 시간이었다.
그녀는 노래하는 중간 중간 원래 미술학도였는데 노래를 좋아해서 졸업 직후부터 가수로 외도하다가 뒤늦게 프랑스로 유학을 가서 그림공부를 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기도 했다. 평소 예술가로서 음악과 미술의 통합한 퓨전 장르를 통해 자기를 보여주고 꿈을 키워왔는데 이번 무대를 통해 어느 정도 이룰 수 있게 된 것 같아 정말 기쁘다는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예전보다 훨씬 푸근해 보이는 모습이 참으로 좋아 보였다. 쟈니기타를 원어로 부르다가 순간 가사를 잊어버리자 ‘이런 일이 일어날 줄 몰랐다’며 사과하는 넉넉하고 인간적인 면모가 정감을 더해 주는 것 같았다.
그녀의 무대에 빠져있다 보니 2시간여 되는 공연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다.
행복했던 과거로의 여행이었다.
30여년의 공백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프로로서 손색이 없는 기량을 발휘하는 그녀의 모습은 우리 인생의 지평을 넓혀준 의미에서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앞으로도 뭔가 할 수 있는 기회의 시간이 아직은 넉넉하다는 새로운 각성이라고나 할까..
공연이 끝나고 대학로의 한 커피숍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지나간 나의 30년은 무엇이었을까 의미를 더듬어 보았다. 그러고 보니 너무 빠르게 지나간 시간들이었다.
빠른 걸음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젊은이들의 모습을 창 밖을 통해 내다보니 덩달아 에너지가 솟는 것 같았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정말 제대로 살아야겠다는 다짐과 함께 앞으로 다가올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도 일깨워주었다. 아름다운 추억의 시간들처럼 미래의 공간 역시 아름다울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래를 함께 엮어나갈 사람들에 대한 기대감이 또 다른 기쁨과 설레임으로 나의 행복 지수지수를 마구마구 높여주는 밤이다. (2010.5.31)
....홍문종 생각
홍문종 네이버 블로그 : http://blog.naver.com/mjhong2004

오늘은 조금 특별한 콘서트에 다녀왔다.
연극인 윤석화씨가 운영하는 ‘정미소’에서 ‘31년 만의 외출’이라는 부제로 진행된 가수(미대 교수이신데 내게는 이 호칭이 더 정겹다) 정미조씨의 공연을 관람한 것이다.
1,2 층을 가득 메운 관객 대부분이 희끗한 머리, 주름진 얼굴, 두꺼운 안경 등 나이가 들어 보이는 연배들이었다. 나처럼 31년 만에 다시 가수로 무대에 선 정미조씨를 통해 추억 속의 노래를 듣고 싶은 설레임이 역력한 얼굴들이었다. 나를 기준으로 생각해본다면 그녀의 31년 만에 외출에 편승해 추억에 묻히고 싶은 은근한 기대감도 있지 않을까 싶다.
세월이 흘렀어도 그녀의 목소리는 여전히 감미로웠다.
개여울, 휘파람을 부세요, 불꽃 등 귀에 익은 그녀의 히트곡이 지나간 우리의 청춘을 되살아나게 했다. 그것도 모자라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 달구었다.
결코 화려하지 않은 무대의상, 현란하지 않은 무대, 그러면서도 잘 정리되고 절제된 조그만 콘서트가 우리를 통째로 들어 과거의 한복판에 옮겨다 주었다. 충분한 신명으로 즐거운 시간이었다.
그녀는 노래하는 중간 중간 원래 미술학도였는데 노래를 좋아해서 졸업 직후부터 가수로 외도하다가 뒤늦게 프랑스로 유학을 가서 그림공부를 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기도 했다. 평소 예술가로서 음악과 미술의 통합한 퓨전 장르를 통해 자기를 보여주고 꿈을 키워왔는데 이번 무대를 통해 어느 정도 이룰 수 있게 된 것 같아 정말 기쁘다는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예전보다 훨씬 푸근해 보이는 모습이 참으로 좋아 보였다. 쟈니기타를 원어로 부르다가 순간 가사를 잊어버리자 ‘이런 일이 일어날 줄 몰랐다’며 사과하는 넉넉하고 인간적인 면모가 정감을 더해 주는 것 같았다.
그녀의 무대에 빠져있다 보니 2시간여 되는 공연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다.
행복했던 과거로의 여행이었다.
30여년의 공백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프로로서 손색이 없는 기량을 발휘하는 그녀의 모습은 우리 인생의 지평을 넓혀준 의미에서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앞으로도 뭔가 할 수 있는 기회의 시간이 아직은 넉넉하다는 새로운 각성이라고나 할까..
공연이 끝나고 대학로의 한 커피숍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지나간 나의 30년은 무엇이었을까 의미를 더듬어 보았다. 그러고 보니 너무 빠르게 지나간 시간들이었다.
빠른 걸음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젊은이들의 모습을 창 밖을 통해 내다보니 덩달아 에너지가 솟는 것 같았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정말 제대로 살아야겠다는 다짐과 함께 앞으로 다가올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도 일깨워주었다. 아름다운 추억의 시간들처럼 미래의 공간 역시 아름다울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래를 함께 엮어나갈 사람들에 대한 기대감이 또 다른 기쁨과 설레임으로 나의 행복 지수지수를 마구마구 높여주는 밤이다. (2010.5.31)
....홍문종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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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5월 29일 토요일
홍문종 생각 - 막말 STOP!!
막말 STOP!!
6.2 지방선거가 막바지를 치닫고 있다.
선거열기가 가열되면서 더 거칠어지는 정치판의 막말 퍼레이드가 금도를 넘고 있는 느낌이다. 독설과 막말이 난무하고, 폭로 고발이 줄을 잇는 선거 현장이 우리의 정치수준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급기야 정치가 최소한 게임의 룰조차 갖추지 못할 정도가 되었나 싶은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물론 '전부가 아니면 전무'인 제로섬 게임인 선거의 특성을 감안할 때 그 다급함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특히나 선거판에 있어서 막말이 일시적으로 지지층을 하나로 결집시키는 효과를 발휘한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박의 극치를 달리고 있는 현 정치권의 막말 수위는 위기감마저 들게 하는 게 사실이다.
지난 92년 14대 대선 당시 법무장관을 비롯한 부산의 기관장들이 부산시내 복집에서 특정후보를 돕기 위해 모였다가 위기에 처한 사건이 있었다. 당시 현장을 도청한 테입이 공개됐기 때문이다. 그 때 궁지에 몰린 후보를 구해내고 대선 결과에도 영향을 주었던 말이 ‘우리가 남이가’였다. 이후 국론분열의 주범인 지역감정을 자극하는 대표적 유행어로 조금은 불명예스러운 선례로 회자되고 됐지만 차라리 이 정도는 그래도 요즘의 질 낮은 막말에 비하면 수준있는 정치선동이 아닐까 싶다.
막말은 단시간 내에 사람들을 흥분시키고 집단의식에 빠지게 하는 등 극적인 선동효과가 있는 대신 그 후유증 또한 만만하지 않다. 언어폭력으로 인한 상흔이 꽤 오랜 기간 기억에 남기 때문이다.
순식간에 대중을 달아오르게 선동할 수 있는 막말의 효과를 알고 있을수록 유혹의 강도는 더 심하게 다가오기 마련이다. 순간의 감정으로 본다면 마약에 빠지는 중독자의 심정이 그렇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다수의 선거를 치렀던 나 역시 유세현장에 설 때마다 막말을 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 적이 많았음을 고백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임있는 사회지도층 인사일수록 자신의 말이 가져올 사회적 파장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막말로 선동가나 독설가로서 자리매김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개인적인 진로에 치명타가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사실도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실제로 잘못 뱉은 말 한마디 때문에 두고두고 인구에 회자되면서 우리사회를 이끌어 지도층 인사로서의 역할을 제지당한 정치인 사례가 적지 않다.
정치가 존재하는 한 국민을 내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선동은 불가피하다.
막말 또한 우리 선거판에서 쉽게 사라지게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막말은 순화돼야 마땅하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생산적인 소통이 가능하도록 역량을 길러내는 노력은 지속돼야 한다.
장기적으로 분열을 치유할 수 있는 정치판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희망을 가져야 한다.
정치권의 막말은 저마다의 지지층을 설득할 수 있고 소통를 가능하게 하고 결집시킬 수 있는 힘이 있다. 그러나 그 뿐이다. 그 힘이 상대 진영으로 넘어가는 순간 반발과 노여움을 촉발시키는 분열의 가치로서만 존재하게 돼 있다. 방어심리는 또 상대 진영을 겨냥한 또 다른 막말을 탄생시키고 치명타를 날리기 위해 기회를 엿보게 되는 악순환의 반복을 초래하게 돼 있다.
정치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나라를 다스리는 일. 국가의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며 행사하는 활동으로, 국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상호 간의 이해를 조정하며, 사회 질서를 바로잡는 따위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정의돼 있다.
현실 정치의 문제점은 국민의 인간다운 삶과 상호이해 조정, 사회질서 바로잡는 역할보다는 권력획득과 유지에 방점을 두기 때문에 발생하는 부작용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오로지 이겨야한다는 다급함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못할 지경에 이르다 보니 정치 수준이 점점 막가파로 전락되고 있는 것이다.
권력에 눈이 멀어 말조차 다스리지 못하고 대화와 타협이 실종된 정치판에서 애꿎은 국민들만 고통을 당하고 있는 형국이다.
가관인 것은 가히 막말의 본산지라고 해도 좋을 정치인들이 지상파 예능프로그램에서 비속어를 남발했다고 특정 연예인을 지목해서 공개적으로 퇴출을 요구한 일이다. 가히 자기 눈의 들보를 두고 남의 티끌을 지목하는 격이어서 여론의 비웃음을 사기도 했다.
정치인 스스로도 같은 잣대로 ‘수신’할 기회를 갖는다면 정치권 정화에 엄청난 도움이 될 텐데.
혹여 막말이 지나친 과신과 자만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할 때다.
분서갱유의 진시황이나 역발산기개세의 항우가 왜 초라한 최후를 맞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야 했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최소한 국민을 두려워하는 의식만큼은 저버리지 말자.
국민의 희망을 담는 정치인이 되도록 노력하자. (2010. 5.29)
....홍문종 생각
홍문종 네이버 블로그 : http://blog.naver.com/mjhong2004
6.2 지방선거가 막바지를 치닫고 있다.
선거열기가 가열되면서 더 거칠어지는 정치판의 막말 퍼레이드가 금도를 넘고 있는 느낌이다. 독설과 막말이 난무하고, 폭로 고발이 줄을 잇는 선거 현장이 우리의 정치수준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급기야 정치가 최소한 게임의 룰조차 갖추지 못할 정도가 되었나 싶은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물론 '전부가 아니면 전무'인 제로섬 게임인 선거의 특성을 감안할 때 그 다급함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특히나 선거판에 있어서 막말이 일시적으로 지지층을 하나로 결집시키는 효과를 발휘한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박의 극치를 달리고 있는 현 정치권의 막말 수위는 위기감마저 들게 하는 게 사실이다.
지난 92년 14대 대선 당시 법무장관을 비롯한 부산의 기관장들이 부산시내 복집에서 특정후보를 돕기 위해 모였다가 위기에 처한 사건이 있었다. 당시 현장을 도청한 테입이 공개됐기 때문이다. 그 때 궁지에 몰린 후보를 구해내고 대선 결과에도 영향을 주었던 말이 ‘우리가 남이가’였다. 이후 국론분열의 주범인 지역감정을 자극하는 대표적 유행어로 조금은 불명예스러운 선례로 회자되고 됐지만 차라리 이 정도는 그래도 요즘의 질 낮은 막말에 비하면 수준있는 정치선동이 아닐까 싶다.
막말은 단시간 내에 사람들을 흥분시키고 집단의식에 빠지게 하는 등 극적인 선동효과가 있는 대신 그 후유증 또한 만만하지 않다. 언어폭력으로 인한 상흔이 꽤 오랜 기간 기억에 남기 때문이다.
순식간에 대중을 달아오르게 선동할 수 있는 막말의 효과를 알고 있을수록 유혹의 강도는 더 심하게 다가오기 마련이다. 순간의 감정으로 본다면 마약에 빠지는 중독자의 심정이 그렇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다수의 선거를 치렀던 나 역시 유세현장에 설 때마다 막말을 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 적이 많았음을 고백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임있는 사회지도층 인사일수록 자신의 말이 가져올 사회적 파장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막말로 선동가나 독설가로서 자리매김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개인적인 진로에 치명타가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사실도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실제로 잘못 뱉은 말 한마디 때문에 두고두고 인구에 회자되면서 우리사회를 이끌어 지도층 인사로서의 역할을 제지당한 정치인 사례가 적지 않다.
정치가 존재하는 한 국민을 내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선동은 불가피하다.
막말 또한 우리 선거판에서 쉽게 사라지게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막말은 순화돼야 마땅하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생산적인 소통이 가능하도록 역량을 길러내는 노력은 지속돼야 한다.
장기적으로 분열을 치유할 수 있는 정치판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희망을 가져야 한다.
정치권의 막말은 저마다의 지지층을 설득할 수 있고 소통를 가능하게 하고 결집시킬 수 있는 힘이 있다. 그러나 그 뿐이다. 그 힘이 상대 진영으로 넘어가는 순간 반발과 노여움을 촉발시키는 분열의 가치로서만 존재하게 돼 있다. 방어심리는 또 상대 진영을 겨냥한 또 다른 막말을 탄생시키고 치명타를 날리기 위해 기회를 엿보게 되는 악순환의 반복을 초래하게 돼 있다.
정치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나라를 다스리는 일. 국가의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며 행사하는 활동으로, 국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상호 간의 이해를 조정하며, 사회 질서를 바로잡는 따위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정의돼 있다.
현실 정치의 문제점은 국민의 인간다운 삶과 상호이해 조정, 사회질서 바로잡는 역할보다는 권력획득과 유지에 방점을 두기 때문에 발생하는 부작용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오로지 이겨야한다는 다급함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못할 지경에 이르다 보니 정치 수준이 점점 막가파로 전락되고 있는 것이다.
권력에 눈이 멀어 말조차 다스리지 못하고 대화와 타협이 실종된 정치판에서 애꿎은 국민들만 고통을 당하고 있는 형국이다.
가관인 것은 가히 막말의 본산지라고 해도 좋을 정치인들이 지상파 예능프로그램에서 비속어를 남발했다고 특정 연예인을 지목해서 공개적으로 퇴출을 요구한 일이다. 가히 자기 눈의 들보를 두고 남의 티끌을 지목하는 격이어서 여론의 비웃음을 사기도 했다.
정치인 스스로도 같은 잣대로 ‘수신’할 기회를 갖는다면 정치권 정화에 엄청난 도움이 될 텐데.
혹여 막말이 지나친 과신과 자만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할 때다.
분서갱유의 진시황이나 역발산기개세의 항우가 왜 초라한 최후를 맞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야 했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최소한 국민을 두려워하는 의식만큼은 저버리지 말자.
국민의 희망을 담는 정치인이 되도록 노력하자. (2010. 5.29)
....홍문종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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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5월 27일 목요일
홍문종 생각 - 우리 게 아니다
우리 게 아니다
쾌청한 날씨가 쪽빛 물감을 풀어놓은 듯 청명한 하늘로 우리를 온통 설레게 했던 하루였다.
13년 만에 가장 맑은 날씨였다고 해서 화제가 만발하기도 했다.
중요한 점심약속을 끝내고 앞산을 바라보다가 하늘의 구름이 너무 멋지다는 메시지에 이끌려 도봉산에 뛰어 올랐다.
2시간 남짓한 등산 내내 파란 하늘과 흰구름 그리고 나무들이 쏟아내는 녹색 향연에 취해 너무나 행복했다. 오늘처럼 도봉산 자락에 사는 것을 감사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산에 오르니 나처럼 푸른 하늘의 유혹에 넘어간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그들은 하나같이 행복한 표정으로 일년내내 이런 풍광을 함께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주고 받았다. 나도 물론 같은 심정이었다.
문득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도봉산은 어릴 때부터 자주 오르던 산이다. 그 때는 이 정도의 맑은 시계는 지극히 당연한 일상이어서 특별하지 않았다. 지금으로선 상상할 수조차 없겠지만 가다가 목이 마르면 개울물에 갈증을 해결할 정도로 안전한 마실거리였다. 산소 공급을 받는 것처럼 코를 벌름거리게 하는 맑은 공기도 그랬다.
그러나 지금은 모처럼 보게 된 맑은 하늘이 화제가 될 만큼 우리의 주변 환경이 정말로 많이 변했다. 각박해진 우리의 삶만큼이나 황폐해졌다. 이대로 가다간 자연호흡도 옛이야기 속에서나 찾아보게 될 지도 모른다. 대기 중 공기 오염으로 일상생활을 하면서도 산소마스크를 상용하게 되는 재앙이 오지 말라는 법도 없기 때문이다.
끔찍한 상상이지만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공포다.
그동안 누누이 강조했지만 환경은 우리 것이 아니다.
후대에게 잠시 빌려쓰고 있을 뿐이다. 소중하게 다루다가 돌려줘야 할 책무가 우리에게 있다.
그런 의미에서 4대강 문제를 생각하면 답답함부터 밀려온다.
솔직히 전문성이 없기에 어떤 결론을 내릴 수 있는 처지는 아니다. 그러나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환경은 될 수 있으면 손대지 않고 자연 그대로를 보호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생각은 하고 있다.
많은 국민들이 환경 파괴를 우려하면서 4대강 개발을 반대하고 있다. 환경단체는 물론 천주교, 기독교, 불교를 총망라한 종교단체들까지 이구동성으로 정부의 제고를 요구하고 있는 마당이다. 급기야 오늘은 이례적으로 산중 선원에 묻혀 참선 수행에만 정진해 온 스님들까지 4대강 사업을 질타하고 나섰다는 소식이 들린다.
목사님과 신부님들이 단식농성으로 반대의사를 표명하고 다수의 국민 여론이 반대하고 있다면 나름대로 이유가 있을 텐데 정부는 이들의 반대 목소리에 귀를 생각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우격다짐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지 싶다. 아무리 훌륭한 정책이라도 국민이 그토록 반대한다면 한번쯤 민심의 외침에 귀를 기울이고 설득부터 하는 게 우선순위가 아닐까 생각한다.
지금 정부가 아무리 4대강 사업이 국민들의 삶의 질을 높여주는 친환경사업이라고 홍보해도 제대로 먹히지 않는 것도 선결해야 할 문제를 외면한 데서 오는 당연한 결과일지 모른다.
인간의 개발이 자연환경과 생태 파괴를 초래할 가능성은 상수로 존재한다. 그런 측면에서 4대강 개발에 대한 신중한 접근은 아무리 세심해도 부족하지 않다. 만에 하나 돌이킬 수 없는 재앙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1%라도 있다면 백번이고 천번이고 다시 살펴야 한다. 일시적 안위에 연연할 범주가 아니기 때문이다.
저녁 산책길에 달을 보니 너무나도 밝고 깨끗하고 아름답다. 너무 아름다워서 처연한 느낌마저 든다.
오늘 보는 이 달을 우리 후대들도 똑같은 여건에서 바라볼 수 있을까....
아름다운 금수강산을 천년만년 보호하고 싶다는 바람은 나만의 뜻만이 아닐 것이다.
우리 강산을 잘 지키고 보존해서 후대에 떳떳한 입장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기도로 오늘 하루를 마감한다. (2010.5.27)
....홍문종 생각
홍문종 네이버 블로그 : http://blog.naver.com/mjhong2004
쾌청한 날씨가 쪽빛 물감을 풀어놓은 듯 청명한 하늘로 우리를 온통 설레게 했던 하루였다.
13년 만에 가장 맑은 날씨였다고 해서 화제가 만발하기도 했다.
중요한 점심약속을 끝내고 앞산을 바라보다가 하늘의 구름이 너무 멋지다는 메시지에 이끌려 도봉산에 뛰어 올랐다.
2시간 남짓한 등산 내내 파란 하늘과 흰구름 그리고 나무들이 쏟아내는 녹색 향연에 취해 너무나 행복했다. 오늘처럼 도봉산 자락에 사는 것을 감사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산에 오르니 나처럼 푸른 하늘의 유혹에 넘어간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그들은 하나같이 행복한 표정으로 일년내내 이런 풍광을 함께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주고 받았다. 나도 물론 같은 심정이었다.
문득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도봉산은 어릴 때부터 자주 오르던 산이다. 그 때는 이 정도의 맑은 시계는 지극히 당연한 일상이어서 특별하지 않았다. 지금으로선 상상할 수조차 없겠지만 가다가 목이 마르면 개울물에 갈증을 해결할 정도로 안전한 마실거리였다. 산소 공급을 받는 것처럼 코를 벌름거리게 하는 맑은 공기도 그랬다.
그러나 지금은 모처럼 보게 된 맑은 하늘이 화제가 될 만큼 우리의 주변 환경이 정말로 많이 변했다. 각박해진 우리의 삶만큼이나 황폐해졌다. 이대로 가다간 자연호흡도 옛이야기 속에서나 찾아보게 될 지도 모른다. 대기 중 공기 오염으로 일상생활을 하면서도 산소마스크를 상용하게 되는 재앙이 오지 말라는 법도 없기 때문이다.
끔찍한 상상이지만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공포다.
그동안 누누이 강조했지만 환경은 우리 것이 아니다.
후대에게 잠시 빌려쓰고 있을 뿐이다. 소중하게 다루다가 돌려줘야 할 책무가 우리에게 있다.
그런 의미에서 4대강 문제를 생각하면 답답함부터 밀려온다.
솔직히 전문성이 없기에 어떤 결론을 내릴 수 있는 처지는 아니다. 그러나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환경은 될 수 있으면 손대지 않고 자연 그대로를 보호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생각은 하고 있다.
많은 국민들이 환경 파괴를 우려하면서 4대강 개발을 반대하고 있다. 환경단체는 물론 천주교, 기독교, 불교를 총망라한 종교단체들까지 이구동성으로 정부의 제고를 요구하고 있는 마당이다. 급기야 오늘은 이례적으로 산중 선원에 묻혀 참선 수행에만 정진해 온 스님들까지 4대강 사업을 질타하고 나섰다는 소식이 들린다.
목사님과 신부님들이 단식농성으로 반대의사를 표명하고 다수의 국민 여론이 반대하고 있다면 나름대로 이유가 있을 텐데 정부는 이들의 반대 목소리에 귀를 생각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우격다짐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지 싶다. 아무리 훌륭한 정책이라도 국민이 그토록 반대한다면 한번쯤 민심의 외침에 귀를 기울이고 설득부터 하는 게 우선순위가 아닐까 생각한다.
지금 정부가 아무리 4대강 사업이 국민들의 삶의 질을 높여주는 친환경사업이라고 홍보해도 제대로 먹히지 않는 것도 선결해야 할 문제를 외면한 데서 오는 당연한 결과일지 모른다.
인간의 개발이 자연환경과 생태 파괴를 초래할 가능성은 상수로 존재한다. 그런 측면에서 4대강 개발에 대한 신중한 접근은 아무리 세심해도 부족하지 않다. 만에 하나 돌이킬 수 없는 재앙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1%라도 있다면 백번이고 천번이고 다시 살펴야 한다. 일시적 안위에 연연할 범주가 아니기 때문이다.
저녁 산책길에 달을 보니 너무나도 밝고 깨끗하고 아름답다. 너무 아름다워서 처연한 느낌마저 든다.
오늘 보는 이 달을 우리 후대들도 똑같은 여건에서 바라볼 수 있을까....
아름다운 금수강산을 천년만년 보호하고 싶다는 바람은 나만의 뜻만이 아닐 것이다.
우리 강산을 잘 지키고 보존해서 후대에 떳떳한 입장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기도로 오늘 하루를 마감한다. (2010.5.27)
....홍문종 생각
홍문종 네이버 블로그 : http://blog.naver.com/mjhong2004
2010년 5월 26일 수요일
홍문종 생각-심금을 울려라
심금을 울려라
기질은 어쩔 수 없나보다.
정치현장에서 비껴서 있으면서도 거의 정당 선거대책본부장 수준으로 선거상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선거 분위기는 좀처럼 달아오르는 것 같지 않다. 선거에 출마하는 지인들 때문에 수도권 일대의 다양한 지역을 둘러볼 수 있었는데 어느 지역이라고 할 것 없이 후보들만 일방적으로 분주할 뿐 정작 유권자의 관심이나 호응은 싸늘함 그 자체였다. 거리마다 그물망처럼 얽혀있는 현수막 행렬과 마이크의 떠들썩한 소음이 무색할 정도로 가라앉는 분위기여서 안타까움마저 자아낸다.
일단은 박물관에 전시해도 서운하지 않을 구태의연한 선거운동 방식에 그 원인이 있지 않을까 싶다.
벽보건 현수막이건 선거운동원이건 유세차량이건 심지어 후보자 당사자까지도 천편일률적인 동작과 구호만 반복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렇게 빈약한 선거운동으로 유권자의 관심을 얻을 리 만무라는 생각이다. 누가 누군지 구분도 되지 않을뿐더러 뻔한 속셈을 꿰뚫고 있을 유권자에게 어필은커녕 짜증을 유발할 게 너무나 뻔해 실망스러웠다.
내가 경험했던 미국의 선거문화는 지상 최고의 쇼였다.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아이디어로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그들의 선거운동 방식은 호기심과 흥미를 미끼로 유권자의 관심을 주도하는 식으로 운영됐다. 이어지는 프로그램은 어떤 기발한 이벤트로 전개될까 하는 기대감이 선거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키는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방식으로 전개됐다.
우리에게도 선거가 유권자에게 스트레스의 주범이 아닌 카타르시스의 순기능으로 환영받을 때가 과연 오기나 할까 싶다. 툭하면 할 수 없고 안되는 이유 투성이인 우리의 선거법이나 경찰, 검찰, 법원이 선거판을 주도하는 우리로서는 고비용이고 돈 많은 후보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는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미국식 선거문화가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정체된 우리의 선거현장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선거를 축제로 만들지 못하게 막는 규제일변도인 현행 선거법부터 바꿔야 한다 . 출마자나 유권자 모두가 최대한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축제처럼 즐길 수 있는 선거풍토를 정착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정치 미래는 어두울 수 밖에 없다. 일반적인 법 상식과 유리된 선거법이 주도하는 한 국민을 볼모로 한 음모가 활개 치는 혹세무민의 절망만 난무하게 될 것이다. 정치에 대한 혐오는 국민 불신을 초래하게 돼 있다. 의혹에 가득 찬 현실은 출마자에게도 국민들에게도 희망을 앗아가 버린다.
개인적으로도 정치 중심에 서게 된다면 가장 먼저 이 문제부터 해결하고 싶다.
이번 선거를 국민과 함께 하고 싶다면 입후보자 저마다 국민의 심금을 울릴 수 있는 감동 선거 전략을 모색할 것을 주문하고 싶다.
잦은 충격에 시달리다보니 이제는 웬만한 일에는 쉽사리 마음을 열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잘 알지만 그래도 이보다 더 효과적인 선거운동은 없을 것이다. 리어커나 오토바이 등 저마다의 형편에 맞는 이동수단으로 천편일률적인 유세차량 수요를 줄이는 것만으로도 유권자의 눈길을 끌어당길 수 있는 훌륭한 선거전략이 될 수 있다. 똑같이 반복되는 확성기 소음과 흥미를 끌지 못하는 율동 보다는 유권자의 호감을 이끌어 낼 방도라고 나는 확신한다.
실제로 역대 선거 국면에서 순전히 목욕탕 가서 노인 등을 밀어서 당선된 후보가 있는 가하면 좀 더 오래 전에는 노인잔치로 노인표를 공략하는 전략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된 정치인이 있다. 선거 기간 내내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유세로 국회에 입성한 정치인도 국민에게 다가가는 감동의 노하우를 일찌감치 간파한 케이스다.
사소하지만 거대한 성공의 지름길을 보장하는 선거전략의 키워드는 누가 뭐래도 ‘감동’이다.
지난 16대 대선이 끝나고 정치평론가와 홍보전문가들이 각 후보 진영의 홍보전략 효과를 분석한 바 있다.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기타를 치면서 눈물을 흘리는 당시 노무현 후보의 감동 전략이 뻣뻣한 왕손 이회창의 엘리트 전략을 무너뜨렸다고 평가했다. .
15대 대선에서도 비슷한 예가 있었다.
이인제 . 이회창, 김대중 세 후보가 참석한 텔레비전 토론회 말미에 마지막 심정을 말하는 자리에서 " 두사람은 달리 기회가 있지만 저는 마지막입니다"라는 당시 김대중 후보의 호소가 최소한 수십만표를 움직였다고 평가된 바 있다.
국회의원 선거에서 유력 정당후보 틈새에 끼여 선거운동을 하던 한 군소정당 후보의 경우 비오는 합동 유세현장에서 연단에 올라 "여당 후보A는 낙선해도 사장이 될 수 있고 야당 후보 B는 부자집 아들이 될 수 있지만 군소정당 저 C는 떨어지면 죽습니다. 저 좀 살려주세요. 저 좀 살려주세요"라고 읍소했다. 박빙의 승부였지만 C가 당선되었다.
감동은 연출해 낼 수도 있고 잠시의 눈속임으로 만들어질 수 있다. 그러나 가짜는 조만간 그 실체를 드러내게 돼 있다. 오래동안 큰 울림으로 사람들의 심금을 지배할 수 있는 건 진정성 있는 감동 뿐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유권자의 심금을 울리는 감동의 선거전략을 펴라.
특히나 피 말리는 접전의 귀로에 서 있는 후보에게는 금과옥조 같은 당부가 될 것이다.(2010 .5.26)
....홍문종 생각
홍문종 네이버 블로그 : http://blog.naver.com/mjhong2004
기질은 어쩔 수 없나보다.
정치현장에서 비껴서 있으면서도 거의 정당 선거대책본부장 수준으로 선거상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선거 분위기는 좀처럼 달아오르는 것 같지 않다. 선거에 출마하는 지인들 때문에 수도권 일대의 다양한 지역을 둘러볼 수 있었는데 어느 지역이라고 할 것 없이 후보들만 일방적으로 분주할 뿐 정작 유권자의 관심이나 호응은 싸늘함 그 자체였다. 거리마다 그물망처럼 얽혀있는 현수막 행렬과 마이크의 떠들썩한 소음이 무색할 정도로 가라앉는 분위기여서 안타까움마저 자아낸다.
일단은 박물관에 전시해도 서운하지 않을 구태의연한 선거운동 방식에 그 원인이 있지 않을까 싶다.
벽보건 현수막이건 선거운동원이건 유세차량이건 심지어 후보자 당사자까지도 천편일률적인 동작과 구호만 반복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렇게 빈약한 선거운동으로 유권자의 관심을 얻을 리 만무라는 생각이다. 누가 누군지 구분도 되지 않을뿐더러 뻔한 속셈을 꿰뚫고 있을 유권자에게 어필은커녕 짜증을 유발할 게 너무나 뻔해 실망스러웠다.
내가 경험했던 미국의 선거문화는 지상 최고의 쇼였다.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아이디어로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그들의 선거운동 방식은 호기심과 흥미를 미끼로 유권자의 관심을 주도하는 식으로 운영됐다. 이어지는 프로그램은 어떤 기발한 이벤트로 전개될까 하는 기대감이 선거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키는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방식으로 전개됐다.
우리에게도 선거가 유권자에게 스트레스의 주범이 아닌 카타르시스의 순기능으로 환영받을 때가 과연 오기나 할까 싶다. 툭하면 할 수 없고 안되는 이유 투성이인 우리의 선거법이나 경찰, 검찰, 법원이 선거판을 주도하는 우리로서는 고비용이고 돈 많은 후보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는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미국식 선거문화가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정체된 우리의 선거현장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선거를 축제로 만들지 못하게 막는 규제일변도인 현행 선거법부터 바꿔야 한다 . 출마자나 유권자 모두가 최대한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축제처럼 즐길 수 있는 선거풍토를 정착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정치 미래는 어두울 수 밖에 없다. 일반적인 법 상식과 유리된 선거법이 주도하는 한 국민을 볼모로 한 음모가 활개 치는 혹세무민의 절망만 난무하게 될 것이다. 정치에 대한 혐오는 국민 불신을 초래하게 돼 있다. 의혹에 가득 찬 현실은 출마자에게도 국민들에게도 희망을 앗아가 버린다.
개인적으로도 정치 중심에 서게 된다면 가장 먼저 이 문제부터 해결하고 싶다.
이번 선거를 국민과 함께 하고 싶다면 입후보자 저마다 국민의 심금을 울릴 수 있는 감동 선거 전략을 모색할 것을 주문하고 싶다.
잦은 충격에 시달리다보니 이제는 웬만한 일에는 쉽사리 마음을 열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잘 알지만 그래도 이보다 더 효과적인 선거운동은 없을 것이다. 리어커나 오토바이 등 저마다의 형편에 맞는 이동수단으로 천편일률적인 유세차량 수요를 줄이는 것만으로도 유권자의 눈길을 끌어당길 수 있는 훌륭한 선거전략이 될 수 있다. 똑같이 반복되는 확성기 소음과 흥미를 끌지 못하는 율동 보다는 유권자의 호감을 이끌어 낼 방도라고 나는 확신한다.
실제로 역대 선거 국면에서 순전히 목욕탕 가서 노인 등을 밀어서 당선된 후보가 있는 가하면 좀 더 오래 전에는 노인잔치로 노인표를 공략하는 전략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된 정치인이 있다. 선거 기간 내내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유세로 국회에 입성한 정치인도 국민에게 다가가는 감동의 노하우를 일찌감치 간파한 케이스다.
사소하지만 거대한 성공의 지름길을 보장하는 선거전략의 키워드는 누가 뭐래도 ‘감동’이다.
지난 16대 대선이 끝나고 정치평론가와 홍보전문가들이 각 후보 진영의 홍보전략 효과를 분석한 바 있다.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기타를 치면서 눈물을 흘리는 당시 노무현 후보의 감동 전략이 뻣뻣한 왕손 이회창의 엘리트 전략을 무너뜨렸다고 평가했다. .
15대 대선에서도 비슷한 예가 있었다.
이인제 . 이회창, 김대중 세 후보가 참석한 텔레비전 토론회 말미에 마지막 심정을 말하는 자리에서 " 두사람은 달리 기회가 있지만 저는 마지막입니다"라는 당시 김대중 후보의 호소가 최소한 수십만표를 움직였다고 평가된 바 있다.
국회의원 선거에서 유력 정당후보 틈새에 끼여 선거운동을 하던 한 군소정당 후보의 경우 비오는 합동 유세현장에서 연단에 올라 "여당 후보A는 낙선해도 사장이 될 수 있고 야당 후보 B는 부자집 아들이 될 수 있지만 군소정당 저 C는 떨어지면 죽습니다. 저 좀 살려주세요. 저 좀 살려주세요"라고 읍소했다. 박빙의 승부였지만 C가 당선되었다.
감동은 연출해 낼 수도 있고 잠시의 눈속임으로 만들어질 수 있다. 그러나 가짜는 조만간 그 실체를 드러내게 돼 있다. 오래동안 큰 울림으로 사람들의 심금을 지배할 수 있는 건 진정성 있는 감동 뿐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유권자의 심금을 울리는 감동의 선거전략을 펴라.
특히나 피 말리는 접전의 귀로에 서 있는 후보에게는 금과옥조 같은 당부가 될 것이다.(2010 .5.26)
....홍문종 생각
홍문종 네이버 블로그 : http://blog.naver.com/mjhong2004
2010년 5월 24일 월요일
홍문종 생각 - 사랑
사랑
어제는 어머니 사랑 때문에 온종일 구름에라도 올라탄 양 행복했었단 이야기를 블로그를 통해 자랑했었다. 그 때문이었나? 오늘 아침 어머니는 예고도 없이 어제보다 더 거한 식탁을 차려놓고 이 아들을 부르셨다. 어머니 성화에 다이어트고 뭐고 다 팽개치고 포식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참으로 이상한 건 평소 아침밥을 먹지 않는 습관을 가진 내가 전날 밤 늦은 귀가로 인한 피곤에도 불구하고 어머니 호출 한 방에 단걸음에 달려가 엄청난 양의 아침 식사를 한 사실이다.
어머니와 나 사이를 잇는 사랑의 힘으로 밖에 해석할 수 없는 ‘체험’이다.
모처럼 유유자적하게 보낸 휴일은 색다른 경험을 줬다.
텔레비전 드라마와 케이블 방송의 영화를 봤는데 각각 다른 특성을 가진 남녀 간 사랑의 형태를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된 것이다.
변심해서 유부녀가 된 첫사랑과 재회한 남자가 부모의 만류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사랑을 완성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치열한 사랑(#1), 천진난만하고 알콩달콩한 신혼부부의 순수하고 싱그러운 사랑(#2), 오랜 외도로 방황하다 돌아온 병들고 나이든 남편을 받아들이는 관용과 포용의 미가 돋보이는 노부부의 사랑(#3), 처음엔 뜨악한 관계였는데 공동의 목표물을 향해 어려움을 함께 뚫고 나가는 동안 싹트게 된 사랑을 투쟁을 통해 지켜나가는 연인의 사랑(#4), 외부에 장애요인이 생겼을 때 뿌리 째 흔들리는 취약한 부부의 사랑 (#5) 등 무려 다섯 종류의 서로 다른 형편의 사랑을 하루 동안 간접 경험한 셈이다.
그렇게 우연히 접하긴 했지만 그동안 사랑에 대해 특히 남녀 간 사랑의 정서에 무심했던 나의 무지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순간이기도 했다.
사랑이 뭘까?
솔직히 단순하게 정리할 수 있는 부모와 자식, 신과 인간 사이의 사랑과는 달리 남녀사이를 지배하는 사랑의 개념은 특별히 복잡하다. 사랑의 자극이 어디서 시작해서 어떤 경로를 거치는 건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을 만큼 애매한 것도 사실이다. 주위에 사랑이 널려있고 늘 사랑을 말하는 우리의 일상이지만 사랑의 실체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싶다.
인간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다양한 수단을 통해 숱하게 사랑을 얘기해 왔으면서 정작 이토록 헤메고 있는 상황이라니.
흔히 말하듯 남녀 간의 사랑은 광풍에 불과한 것이고 영원히 지속되기 어려운 존재인지, 신기루에 불과한 것인지 등에 대한 궁금증들이 공허해진 머릿 속을 온통 헤집어 놓는다. 생각에 빠져들수록 해답을 구하고 싶은 조급증이 일었다. 이번 기회에 사랑을 제대로 정리해두지 않으면 왠지 시대에 뒤떨어질 것 같은 위기감이 나의 노력을 독촉했다.
그래서 사랑이 무엇일까 생각했다. 시인이라도 된 양 폼을 잡고 촛불을 켜거나 섹소폰을 만지작거리거나 선인장 가시에 손가락을 찔려 자극해 보기도 했다. 펜도 만져보고 초코렛까지 입에 넣어가며 용을 썼으나 어렴픗 미동만 전달될 뿐이었다.
정작 사랑의 구체적 실체를 얻어낸 건 다른 시도를 통해서였다. 설레임, 기다림, 희열, 포용 등의 단어들을 퍼즐삼아 조합하다가 비로소 사랑의 개념을 손안에 쥘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분야의 프로가 아닌 입장이기에 조심스럽긴 하지만 사랑은 개인의 적극적인 의지가 가장 강력하게 작동되는 상황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서로의 교감을 통해 간격과 차등을 없애고 진정성을 확보해서 동일한 자아로 자리매김 할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사랑이었다. 각각 개인의 공간을 유지한 채 서로의 세계를 알아가는 과정 같은 것이었다. 세상에서 둘도 없는 든든한 지지자가 되어 서로를 지키고자 하는 의지력이 작동되는 배경도 사랑의 시작으로 얻을 수 있는 부수적 산물이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
그동안 대한민국 수많은 사람들을 붙잡고 있던 ‘사랑타령’을 웃기는 얘기라고 일축했던 나의 무지함을 반성하고자 한다.
누군가에게 사랑받을 때 느끼는 안정감과 만족감이 행복의 근원이라는 점에서 사랑의 존재 가치는 충분하다. 둘 사이를 관통하는 떨림의 순간, 가슴 깊숙한 울림으로 절정에 이르는 사랑의 화음은 신이 인간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심이라고 생각한다.
사랑 하자. 인생을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사랑의 힘에 의지해서 어두운 터널을 무사히 통과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사랑을 꿈꾸면서 좋은 세상을 함께 만들며 사는 삶도 기대할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날로 척박해져 가는 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 으뜸 단어가 ‘사랑’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자.
깊은 밤, 어둠을 가르는 빗줄기를 우산으로 막으며 생각한다. 오늘 수확한 이 깨달음을 블로그 독자께 아낌없이 드리겠다고. 그것도 사랑이다. 내 사랑을 받아주시라. (2010. 5.24)
....홍문종 생각
홍문종 네이버 블로그 : http://blog.naver.com/mjhong2004
어제는 어머니 사랑 때문에 온종일 구름에라도 올라탄 양 행복했었단 이야기를 블로그를 통해 자랑했었다. 그 때문이었나? 오늘 아침 어머니는 예고도 없이 어제보다 더 거한 식탁을 차려놓고 이 아들을 부르셨다. 어머니 성화에 다이어트고 뭐고 다 팽개치고 포식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참으로 이상한 건 평소 아침밥을 먹지 않는 습관을 가진 내가 전날 밤 늦은 귀가로 인한 피곤에도 불구하고 어머니 호출 한 방에 단걸음에 달려가 엄청난 양의 아침 식사를 한 사실이다.
어머니와 나 사이를 잇는 사랑의 힘으로 밖에 해석할 수 없는 ‘체험’이다.
모처럼 유유자적하게 보낸 휴일은 색다른 경험을 줬다.
텔레비전 드라마와 케이블 방송의 영화를 봤는데 각각 다른 특성을 가진 남녀 간 사랑의 형태를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된 것이다.
변심해서 유부녀가 된 첫사랑과 재회한 남자가 부모의 만류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사랑을 완성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치열한 사랑(#1), 천진난만하고 알콩달콩한 신혼부부의 순수하고 싱그러운 사랑(#2), 오랜 외도로 방황하다 돌아온 병들고 나이든 남편을 받아들이는 관용과 포용의 미가 돋보이는 노부부의 사랑(#3), 처음엔 뜨악한 관계였는데 공동의 목표물을 향해 어려움을 함께 뚫고 나가는 동안 싹트게 된 사랑을 투쟁을 통해 지켜나가는 연인의 사랑(#4), 외부에 장애요인이 생겼을 때 뿌리 째 흔들리는 취약한 부부의 사랑 (#5) 등 무려 다섯 종류의 서로 다른 형편의 사랑을 하루 동안 간접 경험한 셈이다.
그렇게 우연히 접하긴 했지만 그동안 사랑에 대해 특히 남녀 간 사랑의 정서에 무심했던 나의 무지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순간이기도 했다.
사랑이 뭘까?
솔직히 단순하게 정리할 수 있는 부모와 자식, 신과 인간 사이의 사랑과는 달리 남녀사이를 지배하는 사랑의 개념은 특별히 복잡하다. 사랑의 자극이 어디서 시작해서 어떤 경로를 거치는 건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을 만큼 애매한 것도 사실이다. 주위에 사랑이 널려있고 늘 사랑을 말하는 우리의 일상이지만 사랑의 실체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싶다.
인간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다양한 수단을 통해 숱하게 사랑을 얘기해 왔으면서 정작 이토록 헤메고 있는 상황이라니.
흔히 말하듯 남녀 간의 사랑은 광풍에 불과한 것이고 영원히 지속되기 어려운 존재인지, 신기루에 불과한 것인지 등에 대한 궁금증들이 공허해진 머릿 속을 온통 헤집어 놓는다. 생각에 빠져들수록 해답을 구하고 싶은 조급증이 일었다. 이번 기회에 사랑을 제대로 정리해두지 않으면 왠지 시대에 뒤떨어질 것 같은 위기감이 나의 노력을 독촉했다.
그래서 사랑이 무엇일까 생각했다. 시인이라도 된 양 폼을 잡고 촛불을 켜거나 섹소폰을 만지작거리거나 선인장 가시에 손가락을 찔려 자극해 보기도 했다. 펜도 만져보고 초코렛까지 입에 넣어가며 용을 썼으나 어렴픗 미동만 전달될 뿐이었다.
정작 사랑의 구체적 실체를 얻어낸 건 다른 시도를 통해서였다. 설레임, 기다림, 희열, 포용 등의 단어들을 퍼즐삼아 조합하다가 비로소 사랑의 개념을 손안에 쥘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분야의 프로가 아닌 입장이기에 조심스럽긴 하지만 사랑은 개인의 적극적인 의지가 가장 강력하게 작동되는 상황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서로의 교감을 통해 간격과 차등을 없애고 진정성을 확보해서 동일한 자아로 자리매김 할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사랑이었다. 각각 개인의 공간을 유지한 채 서로의 세계를 알아가는 과정 같은 것이었다. 세상에서 둘도 없는 든든한 지지자가 되어 서로를 지키고자 하는 의지력이 작동되는 배경도 사랑의 시작으로 얻을 수 있는 부수적 산물이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
그동안 대한민국 수많은 사람들을 붙잡고 있던 ‘사랑타령’을 웃기는 얘기라고 일축했던 나의 무지함을 반성하고자 한다.
누군가에게 사랑받을 때 느끼는 안정감과 만족감이 행복의 근원이라는 점에서 사랑의 존재 가치는 충분하다. 둘 사이를 관통하는 떨림의 순간, 가슴 깊숙한 울림으로 절정에 이르는 사랑의 화음은 신이 인간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심이라고 생각한다.
사랑 하자. 인생을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사랑의 힘에 의지해서 어두운 터널을 무사히 통과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사랑을 꿈꾸면서 좋은 세상을 함께 만들며 사는 삶도 기대할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날로 척박해져 가는 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 으뜸 단어가 ‘사랑’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자.
깊은 밤, 어둠을 가르는 빗줄기를 우산으로 막으며 생각한다. 오늘 수확한 이 깨달음을 블로그 독자께 아낌없이 드리겠다고. 그것도 사랑이다. 내 사랑을 받아주시라. (2010. 5.24)
....홍문종 생각
홍문종 네이버 블로그 : http://blog.naver.com/mjhong2004
2010년 5월 23일 일요일
홍문종 생각- 어머니의 축제
어머니의 축제
주말이면 대체로 어머니를 찾아 간다. 어머니께서 준비하신 축제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주인공은 나다. 일주일에 한번 꼴로 개최되는 이 주말 페스티벌에서 가장 빛을 발하는 메뉴는 단연코 ‘엄마표 식탁’이다. 오늘 아침만 해도 군침이 넘어가는 간장게장과 알이 꽉 찬 조기구이가 눈에 확 들어오는 식탁에서 밥 한그릇을 뚝딱 해치웠다. 그 순간 그 어떤 보약의 효능에 견줄 수 없는 ‘영양’을 공급받는 기분이었다. 그러면서 이런 호사를 누릴 수 있는 나는 참으로 복이 많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절감했다.
어머니와 나누는 대화 역시 빠질 수 없는 이 축제의 메인 메뉴다.
어머니와의 대화를 통해 늘 느끼는 바이지만 어머니가 관심을 보이는 대화 주제는 팔순이 넘는 연세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밀하고 총기가 넘친다. 특히 아들의 정치적 성장을 염원하시는 어머니는 평소 신문의 정치면은 물론 사설까지 섭렵하는 모니터링 실력으로 해박한 정치적 감각을 보이신다. 거의 정치 평론가 수준의 견해를 피력하실 때가 많아 듣는 나를 깜짝 놀라게 할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
어머니 걱정의 태반은 거의 다 아들인 나와 관련된 문제다. 실제로 내 문제가 어머니 관심사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오늘도 내 얼굴에 드리운 주름살과 건강문제에 관심을 보이셨다. 그 밖에도 손녀 딸 결혼문제 등 일상적인 얘기부터 천안함 사태로 인한 정치적인 상황에 이르기기까지 총체적인 주제로 어머니와 대화를 나눴다.
본가를 다녀오면 어김없이 에너지 충전소에 들렀다 나온 기분이 든다. 오늘도 어머니의 사랑을 온 몸에 채우고 나오니 마치 천하라도 다스릴 것 같은 자신감이 하늘을 찌를 듯한 기세가 느껴진다.
언제나 변함없는 후원자로 아낌없이 부어주시는 어머니 사랑에 힘입은 결과다.
언젠가 야구장에서 사랑에 빠진 청춘남녀가 관중석에서 자신들의 사랑을 공중파를 통해 알리고 싶은 욕구로 ‘00과 @@는 서로 사랑한다’는 내용의 피켓을 들고 서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그것은 누군가 사랑하거나 (부모 자식간이든 연인간이든) 종교에 헌신하게 될 때 특정한 대상을 향한 자발적인 사랑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과 기침은 감출 수 없다고 하던데 사랑을 드러내고 또 자랑하고 싶은 건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능인 듯 싶다. 나 역시 어머니 때문에 행복해진 이 마음을 온 천하에 자랑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해지는 충동을 느끼면서 사랑에 빠진 감정이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의 감동을 전달하고 싶어서 어쩔 줄 모르게 되는 감정에서 세상을 지배하는 강력한 힘의 근원을 감지하게 되는 것 같다. 어머니의 사랑으로 들뜬 마음을 세상에 자랑하고 싶어 하듯 사랑이나 종교를 통해 얻게 된 감동도 많은 이들에게 광고하고 싶어하고 전하고 싶어한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가장 바람직하고 강력한 에너지의 근원이 된다.
우선 스스로를 움직이고 주변을 움직일 수 있는 자발적인 영향력을 담고 있는 막강한 에너지의 놀라운 힘을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자발성이 갖는 강력한 에너지의 새로운 발견이기도 하다.
선거 국면에 있어서도 가장 확실한 당선의 원동력으로 작용하는 건 자발성이다.
예수가 열두제자에게 심어준 신앙적인 확신이 바탕이 되어-열두제자의 목숨 건 포교활동에 힘입어- 오늘 날 기독교가 완성되었듯 선거에서도 후보의 정치적 확신을 심장에 담은 선거운동원들이 자발적인 움직임이 유권자의 표심을 자극하는 가장 파괴력 있는 선거운동이 된다.
뭐가 됐든 조건으로 움직이는 사회적 풍토를 감안할 때 자발적 동기로 움직인다는 건 그만큼 귀한 가치를 내포한다. 실제로 한걸음 간격에도 본래의 취지가 무색할 정도로 목적을 뛰어넘는 조건행렬이 지뢰밭처럼 널려있으니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그나마 아직은 어머니의 사랑이나 남녀 간의 사랑이나 종교의 신앙 등으로 인한 감동에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의 파동을 느낄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
주체할 수 없는 감동을 세상에 알리고 싶어하는 그 힘이 세상을 바꾸고 희망을 품게 해주는 메시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사랑의 힘’이다. (2010. 5.23)
....홍문종 생각
홍문종 네이버 블로그 : http://blog.naver.com/mjhong2004
주말이면 대체로 어머니를 찾아 간다. 어머니께서 준비하신 축제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주인공은 나다. 일주일에 한번 꼴로 개최되는 이 주말 페스티벌에서 가장 빛을 발하는 메뉴는 단연코 ‘엄마표 식탁’이다. 오늘 아침만 해도 군침이 넘어가는 간장게장과 알이 꽉 찬 조기구이가 눈에 확 들어오는 식탁에서 밥 한그릇을 뚝딱 해치웠다. 그 순간 그 어떤 보약의 효능에 견줄 수 없는 ‘영양’을 공급받는 기분이었다. 그러면서 이런 호사를 누릴 수 있는 나는 참으로 복이 많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절감했다.
어머니와 나누는 대화 역시 빠질 수 없는 이 축제의 메인 메뉴다.
어머니와의 대화를 통해 늘 느끼는 바이지만 어머니가 관심을 보이는 대화 주제는 팔순이 넘는 연세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밀하고 총기가 넘친다. 특히 아들의 정치적 성장을 염원하시는 어머니는 평소 신문의 정치면은 물론 사설까지 섭렵하는 모니터링 실력으로 해박한 정치적 감각을 보이신다. 거의 정치 평론가 수준의 견해를 피력하실 때가 많아 듣는 나를 깜짝 놀라게 할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
어머니 걱정의 태반은 거의 다 아들인 나와 관련된 문제다. 실제로 내 문제가 어머니 관심사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오늘도 내 얼굴에 드리운 주름살과 건강문제에 관심을 보이셨다. 그 밖에도 손녀 딸 결혼문제 등 일상적인 얘기부터 천안함 사태로 인한 정치적인 상황에 이르기기까지 총체적인 주제로 어머니와 대화를 나눴다.
본가를 다녀오면 어김없이 에너지 충전소에 들렀다 나온 기분이 든다. 오늘도 어머니의 사랑을 온 몸에 채우고 나오니 마치 천하라도 다스릴 것 같은 자신감이 하늘을 찌를 듯한 기세가 느껴진다.
언제나 변함없는 후원자로 아낌없이 부어주시는 어머니 사랑에 힘입은 결과다.
언젠가 야구장에서 사랑에 빠진 청춘남녀가 관중석에서 자신들의 사랑을 공중파를 통해 알리고 싶은 욕구로 ‘00과 @@는 서로 사랑한다’는 내용의 피켓을 들고 서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그것은 누군가 사랑하거나 (부모 자식간이든 연인간이든) 종교에 헌신하게 될 때 특정한 대상을 향한 자발적인 사랑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과 기침은 감출 수 없다고 하던데 사랑을 드러내고 또 자랑하고 싶은 건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능인 듯 싶다. 나 역시 어머니 때문에 행복해진 이 마음을 온 천하에 자랑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해지는 충동을 느끼면서 사랑에 빠진 감정이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의 감동을 전달하고 싶어서 어쩔 줄 모르게 되는 감정에서 세상을 지배하는 강력한 힘의 근원을 감지하게 되는 것 같다. 어머니의 사랑으로 들뜬 마음을 세상에 자랑하고 싶어 하듯 사랑이나 종교를 통해 얻게 된 감동도 많은 이들에게 광고하고 싶어하고 전하고 싶어한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가장 바람직하고 강력한 에너지의 근원이 된다.
우선 스스로를 움직이고 주변을 움직일 수 있는 자발적인 영향력을 담고 있는 막강한 에너지의 놀라운 힘을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자발성이 갖는 강력한 에너지의 새로운 발견이기도 하다.
선거 국면에 있어서도 가장 확실한 당선의 원동력으로 작용하는 건 자발성이다.
예수가 열두제자에게 심어준 신앙적인 확신이 바탕이 되어-열두제자의 목숨 건 포교활동에 힘입어- 오늘 날 기독교가 완성되었듯 선거에서도 후보의 정치적 확신을 심장에 담은 선거운동원들이 자발적인 움직임이 유권자의 표심을 자극하는 가장 파괴력 있는 선거운동이 된다.
뭐가 됐든 조건으로 움직이는 사회적 풍토를 감안할 때 자발적 동기로 움직인다는 건 그만큼 귀한 가치를 내포한다. 실제로 한걸음 간격에도 본래의 취지가 무색할 정도로 목적을 뛰어넘는 조건행렬이 지뢰밭처럼 널려있으니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그나마 아직은 어머니의 사랑이나 남녀 간의 사랑이나 종교의 신앙 등으로 인한 감동에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의 파동을 느낄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
주체할 수 없는 감동을 세상에 알리고 싶어하는 그 힘이 세상을 바꾸고 희망을 품게 해주는 메시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사랑의 힘’이다. (2010. 5.23)
....홍문종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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