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정성 유감
요즘 들어 부쩍 낯 뜨거운 사건 사고들이 주요 이슈로 다뤄지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벤츠 여검사, 우리들 병원 부부 괌 공항 육탄전, 육군 준장과 보험설계사, 방송인 A의 동영상, 그리고 배우 신성일씨의 연애 후일담에 이르기까지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내용들이 인터넷 메인 화면을 독차지하는 현상이 그것이다.
실제로 컴퓨터 켜기가 겁날 정도로 온 천지가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뉴스들로 넘쳐나고 있다.
신성일 씨의 자서전 ‘청춘은 맨발이다’ 출간 소식만 해도 그렇다. 반세기를 영화인으로 산 원로배우(15대 국회에서 그와 의정활동을 함께 한 인연이 있다)인 만큼 그의 회고록은 대중의 관심을 끌 만한 가치가 있었다. 그러나 그는, 지금은 고인이 된 김모 여인과의 사적 연애사를 자신의 75년 인생을 정리한 자서전의 최정점으로 꼽으면서 스스로의 입지를 좁히는 우를 범했다. 기자간담회를 그녀와의 연애 후일담으로 채웠다. 심지어 그녀가 자신의 아이를 임신했다 낙태한 사실까지도 거리낌없이 밝혔다. 앞뒤 없는 중언부언으로 대중의 조롱을 자처했다.
판매고를 올리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는지 모르지만 명백하게 실패한 전략이었다.
그런데 언론은 그런 신씨의 연애담을 대단한 뉴스거리라도 되는 양 온종일 인터넷 메인 화면에 내 걸었다. 보험설계사가 육군 준장과의 부적절한 관계를 들키자 한강에 뛰어들었다는 기사도 그렇게 얼굴마담이 되어 자극적인 문구와 함께 장시간 언론사 사이트 대문을 지켰다.
기사가치에 대한 고민없이 오로지 네티즌 눈길을 끌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우대한 것이다.
독약이건 마약이건 사회적 파장 따위는 처음부터 고려되지 않은 천박함이 주관하는 이 발상이 대한민국 언론의 현주소다.
아무래도 종편이 출범하면서 가열된 경쟁이 초래한 부작용이지 싶다.
텔레비전 채널이 많아지고 언론이 늘면서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생활까지 기사화 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이것 저것 시시콜콜한 정보가 늘어나는 것까지는 좋은데 우려되는 부분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무엇보다 광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기사가 눈에 띄게 많아졌다. 중소기업, 대기업 할 거 없이 광고압박에 시달리고 있다는 푸념들이다. 예전에는 언론사 영역구분이 확실해서 절도있는 광고 집행이 가능했는데 종편이 끼어들면서 기업마다 언론 눈치를 살피느라 전전긍긍하고 있다는 걱정도 들린다.
그것으로 끝나면 다행이겠는데 인기에 영합해서 자극과 흥미위주로 시청자 입맛에 맞추려는 방송 시도가 늘고 있다고 한다. 이대로 가다간 선정성 경쟁이 언론사 경쟁력의 척도가 되는 건 시간문제라는 생각이다. 선정성 경쟁으로 혼탁해진 언론시장의 피해가 고스란히 국민 몫으로 되돌려질 것을 생각하면 시청율 1% 짜리 종편 방송의 과잉 의욕(?)은 어떤 식으로든 제동이 걸려야 하지 않을까 싶다.
흙탕물을 만드는 건 미꾸라지 한마리다.
결국 비정상적인 소비 수요가 언론의 비정상적인 경쟁구도를 부축인 책임이 크다 할 것이다. 실제로 어지간한 자극에 미동도 않는 입맛이 비정상적인 경쟁구도를 경쟁력으로 착각하게 만든 주범일 수도 있다. 시청자가 됐건 독자가 됐건 선정적인 화면이나 기사에 대한 선호를 줄이지 않는 한 묘안이 없다는 생각이다.
세상에는 잿빛만 존재하는 양 암울한 타이틀이 넘치고 있다.
본질을 흐리고 과장하고 더 나아가 호도까지 하면서 무감각한 사회적 풍토를 조장하고 있다.
뒷거래 야합이 진리인양 양지로 나서 목청을 높이며 판을 주도하는 형국이다.
그런 것들이 합리적인 희망을 뒷전으로 밀어내고 있으니 걱정이다.
그렇지만 어쩌겠는가.
이대로 무너질 수는 없는 일, 정신 차리고 다시 일어서야지.
(2011. 12. 6)
....홍문종 생각
2011년 12월 6일 화요일
2010년 12월 21일 화요일
홍문종 생각 - 말의 독성
말의 독성
우연히 텔레비전에서 낯익은 얼굴을 만났다.
예전에 국회에서 의정활동을 함께 했던 신성일씨였다. 그는 인터뷰를 통해 악플의 폐해와 해악을 말하면서 자제를 호소하고 있었는데 악플에 시달린 경험자의 토로여서인지 꽤나 설득력 있게 들렸다.
달갑진 않지만 악플은 우리처럼 공인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숙명같은 존재가 아닐까 싶다.
새삼 강조하지 않아도 그 후유증이 얼마나 심각한 지는 잘 알려져 있다. 한 개인의 삶을 파괴하는 결정적 빌미가 되기도 한다.
사사로운 감정 해소나 이익을 위한 불순한 동기로 악플을 가동하는 건 죄악에 가깝다. 그 폐해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 악플의 횡포를 극복하지 못한 공인들이 스스로의 삶을 포기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례가 많다. 그야말로 사람을 퇴로 없는 궁지로 몰아넣는 가공의 위력이다.
악플이 인터넷 공간을 통한 사회악이라면 마타도어는 오프라인에서 공인의 삶을 망가뜨리는 주범이다. 마타도어의 덫에 걸리면 법원 판결 등으로 무고가 입증되기 까지는 낙인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다.
특히 선거판에서 정치적 라이벌에 의해 악용되는 경우,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잔인함으로 아프게 한다는 건 나 역시 익히 경험한 바다.
세상을 살다보면 생각도 다르고 사는 방식 역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어느 경우엔 어떻게 저렇게 저런 유형의 삶이 존재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 정도로 너무나 다르다.
그러나 분명한 건 인생에는 딱 떨어지는 ‘모범답안’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급한 결론을 피하고 끝까지 심사숙고하고자 하는 배려가 있어야겠다. 특히 정치인이나 연예인처럼 대중과 호흡을 함께 하는 직종의 사람일수록 더 큰 배려의 보호가 필요하다. 아무리 나와 생각이 다르고 미워도 상대방을 충고하거나 비판하는 데 있어서도 반드시 금도를 넘는 일은 없도록 해야겠다.
악플은 당하는 입장에서는 형틀에 매인 형국이라 하겠다. 애증과 복수로 이어질 것이 불을 보듯 환하다. 결국 중동에서의 분쟁이 911 사태를 야기하는 것처럼 3차 대전의 발단도 크게 이목을 끌지 못하는 소소한 일에서 시작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보복의 역사는 돌고 도는 속성 때문에 단절이 쉽지 않고 계속해서 구원으로 돌게 될 확률이 크다.
무엇보다 남을 해치고자 하는 의도의 악의적 코멘트는 사회를 황폐화시키고 극단적인 반목으로 치닫게 만든다.
악플이나 마타도어 역시 십중 팔구 이런 의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걱정하게 되는 것이다.
역지사지 정신을 우리의 의식세계를 주도하는 귀한 가치로 삼기를 권하는 바다.
어떤 상황이 됐건 한번쯤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잃지 않는다면 그나마 살만한 세상을 유지할 수 있다.
이전의 역사에서도 역지사지가 가능했다면 많은 상황이 달라졌을 것이다.
우선은 링컨이나 김구, 간다, 마틴루터 킹 등 시대적 영웅들이 남기고 간 미완의 삶을 회한으로 바라보지 않아도 됐을 터이고 서로 간에 죽고 죽이는 끔찍한 역사의 서술을 통째로 편집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토록 원하고 바라던 신념에 대한 확고한 확신에도 불구하고 다른 시각에서는 죽이고 싶도록 싫거나 반대하고 싶은 ‘악’의 영역일 수 있다. 오랜 세월이 지난 시점에서 보면 당시 ‘살인’ 감행을 사회정의 구현 차원으로 받아들이던 집단의 정서를 심정적으로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피해자 입장에서는 명백한 살인이고 범죄행각일 수 밖에 없겠다.
그러나 그 어떤 절대 악도 절대 선도 섣불리 재단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다.
다만 이런 분들의 수명이 좀 더 길었다면 우리는 좀 더 살만한 세상을 소유하게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과 미련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다.
너무나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기에 갈등이 없을 수 없다. 최소한 인간의 기본적인 룰과 원칙 위에 모든 소통과 화해가 진행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고 필요이상의 거짓과 과장으로 타인을 아프게 하기를 즐기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때론 아픔이 사람을 성숙시키기는 하지만 그래도 당사자 주변의 가족 친지, 친구들이 느끼게 될 고통을 헤아려 달라고.
말에는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는 힘이 있다.
무심코 던진 돌이 개구리의 삶을 마감시키는 것처럼 말이다.
희망과 격려가 넘치고 에너지를 주는 격려가 필요하다.
특히 가까운 이들의 따뜻한 이해가 실의에 빠진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일을 할 수 있는지 명심하도록 하자.
누가 그랬다.
비난은 적게, 격려는 크게 하라고.
(2010.12.20)
.....홍문종 생각
우연히 텔레비전에서 낯익은 얼굴을 만났다.
예전에 국회에서 의정활동을 함께 했던 신성일씨였다. 그는 인터뷰를 통해 악플의 폐해와 해악을 말하면서 자제를 호소하고 있었는데 악플에 시달린 경험자의 토로여서인지 꽤나 설득력 있게 들렸다.
달갑진 않지만 악플은 우리처럼 공인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숙명같은 존재가 아닐까 싶다.
새삼 강조하지 않아도 그 후유증이 얼마나 심각한 지는 잘 알려져 있다. 한 개인의 삶을 파괴하는 결정적 빌미가 되기도 한다.
사사로운 감정 해소나 이익을 위한 불순한 동기로 악플을 가동하는 건 죄악에 가깝다. 그 폐해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 악플의 횡포를 극복하지 못한 공인들이 스스로의 삶을 포기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례가 많다. 그야말로 사람을 퇴로 없는 궁지로 몰아넣는 가공의 위력이다.
악플이 인터넷 공간을 통한 사회악이라면 마타도어는 오프라인에서 공인의 삶을 망가뜨리는 주범이다. 마타도어의 덫에 걸리면 법원 판결 등으로 무고가 입증되기 까지는 낙인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다.
특히 선거판에서 정치적 라이벌에 의해 악용되는 경우,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잔인함으로 아프게 한다는 건 나 역시 익히 경험한 바다.
세상을 살다보면 생각도 다르고 사는 방식 역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어느 경우엔 어떻게 저렇게 저런 유형의 삶이 존재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 정도로 너무나 다르다.
그러나 분명한 건 인생에는 딱 떨어지는 ‘모범답안’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급한 결론을 피하고 끝까지 심사숙고하고자 하는 배려가 있어야겠다. 특히 정치인이나 연예인처럼 대중과 호흡을 함께 하는 직종의 사람일수록 더 큰 배려의 보호가 필요하다. 아무리 나와 생각이 다르고 미워도 상대방을 충고하거나 비판하는 데 있어서도 반드시 금도를 넘는 일은 없도록 해야겠다.
악플은 당하는 입장에서는 형틀에 매인 형국이라 하겠다. 애증과 복수로 이어질 것이 불을 보듯 환하다. 결국 중동에서의 분쟁이 911 사태를 야기하는 것처럼 3차 대전의 발단도 크게 이목을 끌지 못하는 소소한 일에서 시작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보복의 역사는 돌고 도는 속성 때문에 단절이 쉽지 않고 계속해서 구원으로 돌게 될 확률이 크다.
무엇보다 남을 해치고자 하는 의도의 악의적 코멘트는 사회를 황폐화시키고 극단적인 반목으로 치닫게 만든다.
악플이나 마타도어 역시 십중 팔구 이런 의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걱정하게 되는 것이다.
역지사지 정신을 우리의 의식세계를 주도하는 귀한 가치로 삼기를 권하는 바다.
어떤 상황이 됐건 한번쯤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잃지 않는다면 그나마 살만한 세상을 유지할 수 있다.
이전의 역사에서도 역지사지가 가능했다면 많은 상황이 달라졌을 것이다.
우선은 링컨이나 김구, 간다, 마틴루터 킹 등 시대적 영웅들이 남기고 간 미완의 삶을 회한으로 바라보지 않아도 됐을 터이고 서로 간에 죽고 죽이는 끔찍한 역사의 서술을 통째로 편집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토록 원하고 바라던 신념에 대한 확고한 확신에도 불구하고 다른 시각에서는 죽이고 싶도록 싫거나 반대하고 싶은 ‘악’의 영역일 수 있다. 오랜 세월이 지난 시점에서 보면 당시 ‘살인’ 감행을 사회정의 구현 차원으로 받아들이던 집단의 정서를 심정적으로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피해자 입장에서는 명백한 살인이고 범죄행각일 수 밖에 없겠다.
그러나 그 어떤 절대 악도 절대 선도 섣불리 재단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다.
다만 이런 분들의 수명이 좀 더 길었다면 우리는 좀 더 살만한 세상을 소유하게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과 미련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다.
너무나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기에 갈등이 없을 수 없다. 최소한 인간의 기본적인 룰과 원칙 위에 모든 소통과 화해가 진행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고 필요이상의 거짓과 과장으로 타인을 아프게 하기를 즐기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때론 아픔이 사람을 성숙시키기는 하지만 그래도 당사자 주변의 가족 친지, 친구들이 느끼게 될 고통을 헤아려 달라고.
말에는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는 힘이 있다.
무심코 던진 돌이 개구리의 삶을 마감시키는 것처럼 말이다.
희망과 격려가 넘치고 에너지를 주는 격려가 필요하다.
특히 가까운 이들의 따뜻한 이해가 실의에 빠진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일을 할 수 있는지 명심하도록 하자.
누가 그랬다.
비난은 적게, 격려는 크게 하라고.
(2010.12.20)
.....홍문종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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