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사여탈권?
권력의 무게중심이 미래권력으로 옮겨가고 있는 정황을 가장 확실히 보여주는 존재가 바로 살생부다.
그 중 붓끝 하나로 정적을 제거하고 계유정란의 종결자로 등극한 한명회의 것은 살생부의 백미(?)로 꼽을 만하다. 실제 사극 흥행의 감초 역할을 비롯 유명세를 타는 역사적 소재이기도 하다.
수양의 왕권 찬탈을 돕기 위한 한명회의 음모로 수많은 충신들이 영문도 모르고 비명횡사했다.
부지불식간의 일이었다. 그들의 아픈 운명에서 냉혹의 극치를 이루는 살생부의 본질을 보게 되는 것 같다.
그 살생부가 또 다시 논란의 중심에서 여의도 정가를 흔들며 많은 이들을 떨게 하고 있다.
드디어 때가 돌아왔구나 싶기도 하다. 이번에는 여당 의원 38을 낙천 대상으로 지목한 명단이다.
선거 때면 여야 가리지 않고 출몰하는 단골메뉴가 된 지 오래지만 그 때마다 소요가 큰 걸 보면 권력에 초연해지지 못하는 인간의 한계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름을 달리한다면 살생부(?)의 존재에도 나름의 의미가 없지 않다.
한명회처럼 처음 한 두 사람의 기획으로 정국운영의 그림이 나오면 팀플레이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사전 정지 작업의 차원에서의 순기능이 있다는 생각이다. 선 스케쥴이나 당의 구조로 봐서 철학과 가치관의 정리가 불가피한 현실은 여야 마찬가지라는 생각이다. 언제나 그런 식으로 대한민국 정치 지형이 짜여져 왔다는 건 불문가지다. 그것이 살생부가 됐건 정국운영의 기초 틀이 됐건 진정성이 전제돼야 한다는 건 물론이다.
권력 이동시마다 살생부 존재가 부각되고 또 그 앞에서 작아지는 사람이 많은 건 자신의 생사여탈이 거기에 달려있다는 걱정 때문일 것이다. 그런 걱정은 공정한 공천 시스템이 담보된다면 깨끗이 사라질 기우에 불과한데도 말이다. 그리고 그 해법은 국민에게 공천권을 되돌려주면 된다.
현재까지 드러난 각 당의 공천 관련 움직임을 보면 국민경선의 범주를 넓히는 등 쇄신과 개혁을 위한 노력의 기미가 엿보인다. 지금까지 국민 앞에서 다짐한 각 정당의 각오로만 본다면 최소한의 기본 양식만 있으면 누구든지 공천 작업에 참여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감이 생기기도 한다. 공천심사위원은 물론 공천심사위원장으로 활동해도 공정하고 선명한 경선이 가능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조금 더 깊은 이면의 정치현실은 ‘낭만은 금물’이라는 경고사인을 주고 있다.
외부인사와 당내 인사 비율을 민감하게 따지는 공천심사위원 인선작업 과정만 해도 그렇다. 공천심사위원장 인선이 초미의 관심사가 되어 공전하는 것만으로도 녹록치 않은 기싸움이 느껴진다.
어떤 형태로든 살생부가 존재하게 될 것이라는 결론이다. 다만 살생부를 기획하는 주체가 선한 철인일 것인가, 악한 독재자일 것인가에 따라 달라질 여파를 주시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여의도에 나갔다가 살생부 문건을 봤다.
수도권 의원들이 명단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터라 아는 이름들이 많았다.
개인적인 소회를 밝히자면 70% 정도는 현실과 동떨어지지 않은 내용이라는 판단이다. 특히 본선에서 실패할 확률까지 감안한다면 신뢰도가 훨씬 높아진다. 살생부 범주가 공천에 국한되지 않고 당선을 선거의 완성으로 보는 시각에서는 더욱 그렇다는 결론이다.
누군가의 공작이다, 친박이 친이 진영을, 친이가 친박 진영을 음해하려는 의도다, 오래 전 작성됐다, 누군가 상상력으로 장난했다 등등 공천 살생부를 둘러싼 갖가지 설이 난무하지만 결국은 추론에 불과하다. 분명한 것은 이번 공천 살생부 역시 선거 때면 늘 이런 저런 형태로 모습을 드러냈다가 부질없이 소멸됐던 음모의 일환이라는 사실이다. 일희일비 하는 자체가 부질없다는 생각이다. 그야말로 각각의 이해관계에 따라 들어가기도 하고 빠지기도 하는 불확실한 실체에 매달려 체통을 잃고 일희일비하는 선량들의 몰골은 그다지 유쾌하지 않다.
아직도 현실을 깨닫지 못하고 공천권을 내려놓지 못하는 무지몽매한 탐욕에 갇혀 있는 정치권이 문제다.
오랜 경고에도 불구하고 자멸의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의 발길이 어지럽다.
공천의 진정한 주인은 국민이다.
국민이 만든 살생부가 정치권의 생사여탈을 좌우하는 게 진정한 정치다.
좋건 싫건 바람직하건 바람직하지 못하건 국민의 본뜻을 충실하게 옮겨지는 진정한 대의정치 현장에서 미력하나마 내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꿈꾸며 삭풍이 몰아치는 여의도를 떠나왔다.
(2012. 1.27)
....홍문종 생각
2012년 1월 27일 금요일
2010년 5월 3일 월요일
홍문종 생각- 혁명 당하기 전에
혁명 당하기 전에
공기의 수용 한계를 초과했는데도 계속해서 부풀려지고 있는 풍선을 바라보는 불안감.
요즘의 정당 정치를 지켜보는 느낌이 그렇다. 언제 뻥 터질지 몰라 전전긍긍하게 만드는 시한폭탄 같기도 하다.
솔직히 지방선거 후보공천 과정에서 혹시나 이번만큼은 좀 다르지 않을까 기대를 걸었다. 시작 때부터 정당들마다 하도 개혁공천! 공천혁명! 구호들을 쏟아내기에 솔깃해진 탓도 있다.
그러나 결과는 꽝이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의 정당 공천은 한 마디로 정리하면 ‘엉망진창’이었다. 원칙도 없고 명분도 없는 ‘역시나’의 결론을 매듭지어 가는 공천 결과는 보기에도 민망했다. 책임정치를 구현하겠다는 정당의 의지는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인맥공천, 헌금공천 별별 소리가 다 들리고 있다. 지역 국회의원에게 현금 2억원을 공천 헌금으로 바치려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영어의 몸이 된 현역 군수 이야기나 여론조사기관과 짜고 여론을 조작하다가 군 단위 지역 기초단체장과 지방의원들이 피선거권을 잃는 사태는 차라리 코미디였다. 탈당과 무소속 출마 등 경선 불복 사태가 당사자를 힐난하는 것으로 다 설명이 되는건지 모르겠다.
국민을 외면하고 자기들만을 위한 행태로 정치를 퇴보시킨 책임 소재는 분명히 가려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정치권은 스스로의 말로를 재촉하고 있다.
지방자치 발전을 위한 역량이 필요한 선거에 지역과 주민은 안중에 없이 중앙 권력의 공천권 횡포만 활개를 치는 형국이다. 지역과 주민을 위한 인재발굴보다는 정당의 기득권 유지를 위한 홍위병 간택의 장이 되고 말았으니 하는 말이다.
도를 넘는 오만함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특별히 믿는 구석이 없지 않고서는 도저히 이럴 수는 없다. 유권자를 무시하고 그 권리를 왜곡시키는 정당 공천은 차라리 없애는 게 낫다.
국가와 국민의 안위를 조금이라도 걱정한다면 이렇게 무모한 공천으로 정치판이 흔들리는 일은 없었을 거라는 생각이다.
국민에게 버림받은 일본 자민련의 몰락에서 우리 정당 정치의 미래를 본다.
무소속 돌풍에 이어 군소정당 돌풍을 예고하며 유권자의 냉엄한 심판을 받고 있는 일본의 정치 현실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실제로 무소속 후보들이 판을 휩쓰는 파란이 일어났는가 하면 오랜 여당이었던 자민련 대신 민주당이 선택되기도 했다. 유권자가 똑똑한 자기판단을 통해 자신들의 권익을 침해하는 기존 정당들에게 경고장을 보낸 결과였다. 유권자의 힘으로 권력 지형을 뒤바꿔 버린 것이다.
선거 때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정당공천을 얻어내려는 우리와는 다르게 일본의 경우 정당 공천은 인기가 없다. 대부분의 후보가 무소속 출마를 선호한다. 유권자가 신뢰를 잃은 정당을 외면해기 때문이다.
이 같은 기류는 지방의회 장악을 목표로 하는 지역 정당 창당 움직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성공 여부는 두고 봐야겠지만 지방분권, 지방주권 시대를 견인하겠다는 새로운 정치실험에 유권자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건 사실이다.
정말로 국민을 두려워하는 공천이 이뤄져야 한다.
더 이상 ’사천‘으로 얼룩진 내홍에 정치를 희생양으로 삼아선 안될 일이다.
정치권이 당리당략의 꼼수로 튕기는 속셈을 국민이 모른다고 생각하지 말라. 국민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이대로는 안된다. 지금으로선 투명한 공천 시스템으로 상향식 공천을 정착시키는 일이 가장 적절한 해법이 될 듯 싶다.
국민에게 혁명 당하는 불상사를 당하기 전에 정신을 차려야한다.(2010.5.4)
....홍문종 생각
홍문종 네이버 블로그 : http://blog.naver.com/mjhong2004
공기의 수용 한계를 초과했는데도 계속해서 부풀려지고 있는 풍선을 바라보는 불안감.
요즘의 정당 정치를 지켜보는 느낌이 그렇다. 언제 뻥 터질지 몰라 전전긍긍하게 만드는 시한폭탄 같기도 하다.
솔직히 지방선거 후보공천 과정에서 혹시나 이번만큼은 좀 다르지 않을까 기대를 걸었다. 시작 때부터 정당들마다 하도 개혁공천! 공천혁명! 구호들을 쏟아내기에 솔깃해진 탓도 있다.
그러나 결과는 꽝이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의 정당 공천은 한 마디로 정리하면 ‘엉망진창’이었다. 원칙도 없고 명분도 없는 ‘역시나’의 결론을 매듭지어 가는 공천 결과는 보기에도 민망했다. 책임정치를 구현하겠다는 정당의 의지는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인맥공천, 헌금공천 별별 소리가 다 들리고 있다. 지역 국회의원에게 현금 2억원을 공천 헌금으로 바치려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영어의 몸이 된 현역 군수 이야기나 여론조사기관과 짜고 여론을 조작하다가 군 단위 지역 기초단체장과 지방의원들이 피선거권을 잃는 사태는 차라리 코미디였다. 탈당과 무소속 출마 등 경선 불복 사태가 당사자를 힐난하는 것으로 다 설명이 되는건지 모르겠다.
국민을 외면하고 자기들만을 위한 행태로 정치를 퇴보시킨 책임 소재는 분명히 가려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정치권은 스스로의 말로를 재촉하고 있다.
지방자치 발전을 위한 역량이 필요한 선거에 지역과 주민은 안중에 없이 중앙 권력의 공천권 횡포만 활개를 치는 형국이다. 지역과 주민을 위한 인재발굴보다는 정당의 기득권 유지를 위한 홍위병 간택의 장이 되고 말았으니 하는 말이다.
도를 넘는 오만함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특별히 믿는 구석이 없지 않고서는 도저히 이럴 수는 없다. 유권자를 무시하고 그 권리를 왜곡시키는 정당 공천은 차라리 없애는 게 낫다.
국가와 국민의 안위를 조금이라도 걱정한다면 이렇게 무모한 공천으로 정치판이 흔들리는 일은 없었을 거라는 생각이다.
국민에게 버림받은 일본 자민련의 몰락에서 우리 정당 정치의 미래를 본다.
무소속 돌풍에 이어 군소정당 돌풍을 예고하며 유권자의 냉엄한 심판을 받고 있는 일본의 정치 현실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실제로 무소속 후보들이 판을 휩쓰는 파란이 일어났는가 하면 오랜 여당이었던 자민련 대신 민주당이 선택되기도 했다. 유권자가 똑똑한 자기판단을 통해 자신들의 권익을 침해하는 기존 정당들에게 경고장을 보낸 결과였다. 유권자의 힘으로 권력 지형을 뒤바꿔 버린 것이다.
선거 때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정당공천을 얻어내려는 우리와는 다르게 일본의 경우 정당 공천은 인기가 없다. 대부분의 후보가 무소속 출마를 선호한다. 유권자가 신뢰를 잃은 정당을 외면해기 때문이다.
이 같은 기류는 지방의회 장악을 목표로 하는 지역 정당 창당 움직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성공 여부는 두고 봐야겠지만 지방분권, 지방주권 시대를 견인하겠다는 새로운 정치실험에 유권자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건 사실이다.
정말로 국민을 두려워하는 공천이 이뤄져야 한다.
더 이상 ’사천‘으로 얼룩진 내홍에 정치를 희생양으로 삼아선 안될 일이다.
정치권이 당리당략의 꼼수로 튕기는 속셈을 국민이 모른다고 생각하지 말라. 국민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이대로는 안된다. 지금으로선 투명한 공천 시스템으로 상향식 공천을 정착시키는 일이 가장 적절한 해법이 될 듯 싶다.
국민에게 혁명 당하는 불상사를 당하기 전에 정신을 차려야한다.(2010.5.4)
....홍문종 생각
홍문종 네이버 블로그 : http://blog.naver.com/mjhong2004
2010년 4월 30일 금요일
홍문종 생각- 진정한 승리는?
진정한 승리는?
선거 때마다 반복되는 일이지만 선거현장엔 늘 엇갈리는 당락의 희비가 있기 마련이다.
그것이 공천이 됐건 본선이 됐건, 시의원을 뽑는 선거가 됐건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됐건 절차나 대상은 다를지 몰라도 나타나는 ‘현상’은 변함이 없다.
필연적 과정임에도 불구하고 낙선(낙천)은 매번 당사자들의 적응이 쉽지 않은 부분이기도 하다. 낙선 인사가 느끼는 충격의 강도가 어느 정도인지는 개인적 경험을 통해서도 익히 알고 있는 바다.
지금껏 여러 선거 과정(내 선거는 물론 정치 선배인 가친의 선거부터 학급의 반장선거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을 통해 만만치 않은 내공을 쌓았다고 자부하는 나로서도 막상 선거에서 떨어지고 나서 한참을 힘들어 했던 경험이 있다. 좌절, 허탈, 모멸,,,형언할 수 없는 각종 고통들이 급기야 대인공포증까지 몰고 쳐들어왔던 당시의 상황은 ‘두려움’으로 각인돼 있다. 참기도 힘들고 지우기도 어려웠던 참으로 고통스런 시간이었다.
낙선한 인사에게 ‘인간사 새옹지마’라는 선인의 식견을 위로삼아 전하고 싶다.
한 때의 불운이 한 인간의 생애를 규정짓는 마침표가 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역사에서도 일시적인 패배자가 위대한 승리자가 되어 역사의 중앙무대로 돌아오는 것을 수없이 보아왔다. 링컨이나 레이건, 김대중 전 대통령 등이 한 두 번의 일시적 패배에 좌절하고 포기했다면 그들의 오늘 날이 과연 존재할 수 있었겠는가. 역사의 승자로 기록되는 기회가 주어졌겠는가.
승자와 패자의 위치가 반드시 당대의 실적대로 확정되는 게 아닌 사례를 역사의 자취에서도 흔히 만나게 된다. 일시적 패배가 영구적인 승리로 굳혀지는 경우가 있는 반면 사상누각의 ‘3일천하’로도 일시적 승리를 누렸던 사례를 통해 역사가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게 무엇인가를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실제로 필리핀을 오래 통치해 왔던 마르코스는 현실에서는 승자였지만 역사는 그를 패자로 기억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의 이기붕, 미국의 닉슨 등 결국 일시적 승리자 였을 뿐 영구한 승자의 반열에 들지 못했던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당대에는 패배자로 기록됐지만 훗날 진정한 승자로 존경받는 인물도 허다하다. 심복 부르투스에 의해 비명에 간 시저나 안두희에게 암살당한 백범 김구 선생의 얼굴이 떠오른다. 특히 대통령 출마조차 해보지 못하고 비명에 간 김구 선생의 경우, 그 어떤 정치인보다 역사의 당당한 승자로 추앙받고 있는 현실을 목도하게 된다.
미국의 카터 역시 재임기에는 실패한 대통령으로 낙인찍힌 인물이다. 그러나 지금의 그가 승자의 반열에 들어있다는 데 이견을 제시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확실히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는 하지만 행동하는 양심의 기억으로 남는 진실이 더 오랜 생명력으로 인류의 역사를 지배한다는 주장이 맞는 것 같다.
낙선은 인생의 종지부가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기 바란다.
일시적 패배를 재충전과 재도약의 기회로 삼을 줄 아는 사람만이 자기인생과 역사의 진정한 승자가 될 수 있다.
승자는 승자대로 지금 승자의 위치에 있더라도 맑은 날 우산을 준비하는 심정으로 앞으로 정치인생에서 예상되는 난관과 고비에 대비하는 성숙함을 갖출 것을 조언하고 싶다. 그래야 진정한 승자의 위치를 구축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지난 번 지방 선거에서 공천을 받고 당선이 된 사람 중 지금은 영어의 몸이 되어있거나 오히려 당시 선거에서 실패한 사람들보다 못한 처지에 놓여있는 경우가 많다. 그들의 현실을 직시하고 반면교사로 명심해야 한다.
천안함 사태로 전 국민이 깊은 슬픔에 빠져있는 이 때 한가하게 선거 이야기만 하는 것 같아서 죄송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안함 사태가 어느 후보에게 유리하고 불리한지를 따지는 걸 보면 선거의 계절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2010. 4.30)
....홍문종 생각
홍문종 네이버 블로그 : http://blog.naver.com/mjhong2004
선거 때마다 반복되는 일이지만 선거현장엔 늘 엇갈리는 당락의 희비가 있기 마련이다.
그것이 공천이 됐건 본선이 됐건, 시의원을 뽑는 선거가 됐건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됐건 절차나 대상은 다를지 몰라도 나타나는 ‘현상’은 변함이 없다.
필연적 과정임에도 불구하고 낙선(낙천)은 매번 당사자들의 적응이 쉽지 않은 부분이기도 하다. 낙선 인사가 느끼는 충격의 강도가 어느 정도인지는 개인적 경험을 통해서도 익히 알고 있는 바다.
지금껏 여러 선거 과정(내 선거는 물론 정치 선배인 가친의 선거부터 학급의 반장선거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을 통해 만만치 않은 내공을 쌓았다고 자부하는 나로서도 막상 선거에서 떨어지고 나서 한참을 힘들어 했던 경험이 있다. 좌절, 허탈, 모멸,,,형언할 수 없는 각종 고통들이 급기야 대인공포증까지 몰고 쳐들어왔던 당시의 상황은 ‘두려움’으로 각인돼 있다. 참기도 힘들고 지우기도 어려웠던 참으로 고통스런 시간이었다.
낙선한 인사에게 ‘인간사 새옹지마’라는 선인의 식견을 위로삼아 전하고 싶다.
한 때의 불운이 한 인간의 생애를 규정짓는 마침표가 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역사에서도 일시적인 패배자가 위대한 승리자가 되어 역사의 중앙무대로 돌아오는 것을 수없이 보아왔다. 링컨이나 레이건, 김대중 전 대통령 등이 한 두 번의 일시적 패배에 좌절하고 포기했다면 그들의 오늘 날이 과연 존재할 수 있었겠는가. 역사의 승자로 기록되는 기회가 주어졌겠는가.
승자와 패자의 위치가 반드시 당대의 실적대로 확정되는 게 아닌 사례를 역사의 자취에서도 흔히 만나게 된다. 일시적 패배가 영구적인 승리로 굳혀지는 경우가 있는 반면 사상누각의 ‘3일천하’로도 일시적 승리를 누렸던 사례를 통해 역사가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게 무엇인가를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실제로 필리핀을 오래 통치해 왔던 마르코스는 현실에서는 승자였지만 역사는 그를 패자로 기억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의 이기붕, 미국의 닉슨 등 결국 일시적 승리자 였을 뿐 영구한 승자의 반열에 들지 못했던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당대에는 패배자로 기록됐지만 훗날 진정한 승자로 존경받는 인물도 허다하다. 심복 부르투스에 의해 비명에 간 시저나 안두희에게 암살당한 백범 김구 선생의 얼굴이 떠오른다. 특히 대통령 출마조차 해보지 못하고 비명에 간 김구 선생의 경우, 그 어떤 정치인보다 역사의 당당한 승자로 추앙받고 있는 현실을 목도하게 된다.
미국의 카터 역시 재임기에는 실패한 대통령으로 낙인찍힌 인물이다. 그러나 지금의 그가 승자의 반열에 들어있다는 데 이견을 제시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확실히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는 하지만 행동하는 양심의 기억으로 남는 진실이 더 오랜 생명력으로 인류의 역사를 지배한다는 주장이 맞는 것 같다.
낙선은 인생의 종지부가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기 바란다.
일시적 패배를 재충전과 재도약의 기회로 삼을 줄 아는 사람만이 자기인생과 역사의 진정한 승자가 될 수 있다.
승자는 승자대로 지금 승자의 위치에 있더라도 맑은 날 우산을 준비하는 심정으로 앞으로 정치인생에서 예상되는 난관과 고비에 대비하는 성숙함을 갖출 것을 조언하고 싶다. 그래야 진정한 승자의 위치를 구축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지난 번 지방 선거에서 공천을 받고 당선이 된 사람 중 지금은 영어의 몸이 되어있거나 오히려 당시 선거에서 실패한 사람들보다 못한 처지에 놓여있는 경우가 많다. 그들의 현실을 직시하고 반면교사로 명심해야 한다.
천안함 사태로 전 국민이 깊은 슬픔에 빠져있는 이 때 한가하게 선거 이야기만 하는 것 같아서 죄송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안함 사태가 어느 후보에게 유리하고 불리한지를 따지는 걸 보면 선거의 계절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2010. 4.30)
....홍문종 생각
홍문종 네이버 블로그 : http://blog.naver.com/mjhong2004
2010년 4월 6일 화요일
홍문종 생각- 공천
공천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이 지자체 후보 공천 작업으로 분주한 분위기다.
개인적으로 정치권에 몸 담은 인연 때문인지 예사로이 지나치게 되지 않는다. 천안함 비보로 경황없는 정국이긴 하지만 지자체 일꾼을 뽑는 지방선거에 대한 관심의 끈을 늦출 수 없다는 다급함 마저 있다.
무엇보다 인재선발이 중요하다.
정당 공천 작업의 긍극적인 목표는 지역에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인재를 제대로 선발하는 데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능한 인재 선택이 지역 발전은 물론 주민 삶의 질 향상에까지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단초가 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공천 과정에 끼어드는 잡다한 ‘욕망’에 있다.
많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각 지역 위원장 의중에 따라 좌지우지 되는 지명 공천이 관행으로 남아있는 정치 풍토가 화근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출마자들이 지역을 담당하는 위원장 의중에 따라 결정되는 게 다반사다. 그 결과 후보 개인의 역량이 우선 고려 되지 못하고 ‘사천’이 이뤄지기 일쑤다.
청탁과 유혹이 명징한 판단을 농단하는 결말이 되고 만다.
‘공천장사’라는 용어도 낯설지 않다. 한 자리 공천에 깜짝 놀랄 액수의 검은 돈들이 오가다 법망에 걸려 신세를 망치는 일도 종종 목격하게 되는 것도 이 판의 특징이다.
그래서 공천 때만 되면 누구한테 공천헌금 얼마를 바쳤다, 누구 라인이다. 윗선(그것도 큰 집)의 관심사안이다 등등의 ‘아리송한 은어’들이 난무하기 마련이다. 국민은 안중에도 없이 스스로에게 초점을 맞춰 공천의 당위성을 설명하는 억지가 난무한다. 그 결과 비민주적 공천에 승복할 수 없다는 반발이 야기되기도 한다.
솔직히 공천권을 쥐고 있는 지역 위원장도 ‘을'의 처지에서 공천에 매달리던 때가 불과 얼마 전 일이다. 그 때는 중앙당 입김을 배제돼야 한다며 지역 유권자에 의한 공천을 그리도 주장하더니 막상 기득권이 되어 처지가 달라지면 예전 생각은 까맣게 잊어버린 모습들이다.
공정한 공천 기준과 룰 적용에 따른 정당한 경쟁이 보장된다면 더 할 나위없을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현실적인 그림은 영 그렇지 못하다.
선거 과정을 이용해 ‘잇속’을 채우려는 의도가 사라지지 않는 한 선거 개혁의 실현은 여전히 요원한 과제로 남게 될 공산이 크다.
흔히 정당에서는 금권선거나 유력계층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되는 폐단을 들어 유권자 선택에 의한 공천의 문제점을 말하곤 한다. 그렇다면 그런 개연성이 높은 지역이나 그런 문제가 야기된 지역에 대해서는 전략공천 특히 여성 전략 공천 지역으로 분류하면 간단히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런 것들이 대한민국 비리 정치의 본판을 주도하는 모순의 실체다.
모든 공천서류를 쥐어틀고 앉아 밀실에서 결정하는 공천은 받은 사람이나 못받은 사람이나 정당성 확보가 여의치 않은 건 마찬가지다.
그렇게 당선이 된 사람들은 공천 본류를 따라 ‘헌금’하고 또 다른 줄에서는 돈벌이를 위한 충성 대오를 형성하는 데 혈안이 되는 악순환을 피할 수 없다. 결국은 조롱거리로 전락될 개연성이 큰 도박같은 운명이 펼쳐지게 돼 있다.
‘투명한 공천’은 그동안 일관되게 주장해 왔던 ‘공천’에 대한 개인적인 철학이요 소신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도 기회만 주어진다면 대한민국 공천제도를 개혁하고 싶은 욕구가 가슴을 뛰게 한다.
다시 정치를 시작 할 수 있다면 다른 건 몰라도 공천제도 만큼은 바꿔야 하고 여기에 반드시 일조를 하고 싶다.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니다. 공천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사람들이 최대한 국민의 뜻을 반영하는 공천이 되도록 스스로의 권한을 포기하면 간단히 해결될 문제다. 공천 작업이 개인권력이나 집단 권력 유지를 위한 도구화 되는 일이 없도록 하자는 거다. 그렇게 된다면 정치가 지금처럼 냉소적 대상이 아니라 국민으로부터 사랑받는 집단으로 거듭날 수 있게 될 것이다.
더 이상 선거 때마다 ' 이번 선거만큼은 깨끗하고 공정하고 원칙이 있고 투명한 과정을 통해서 모든 국민들로부터 박수를 받을 수 있는 공천과정을 보여주겠다'는 다짐이 헛구호로 끝나지 않도록 하자.
공천 권한을 유권자에게 돌려주고 선거 선진화를 이루면 된다.(2010. 4.6)
....홍문종 생각
홍문종 네이버 블로그 : http://blog.naver.com/mjhong2004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이 지자체 후보 공천 작업으로 분주한 분위기다.
개인적으로 정치권에 몸 담은 인연 때문인지 예사로이 지나치게 되지 않는다. 천안함 비보로 경황없는 정국이긴 하지만 지자체 일꾼을 뽑는 지방선거에 대한 관심의 끈을 늦출 수 없다는 다급함 마저 있다.
무엇보다 인재선발이 중요하다.
정당 공천 작업의 긍극적인 목표는 지역에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인재를 제대로 선발하는 데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능한 인재 선택이 지역 발전은 물론 주민 삶의 질 향상에까지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단초가 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공천 과정에 끼어드는 잡다한 ‘욕망’에 있다.
많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각 지역 위원장 의중에 따라 좌지우지 되는 지명 공천이 관행으로 남아있는 정치 풍토가 화근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출마자들이 지역을 담당하는 위원장 의중에 따라 결정되는 게 다반사다. 그 결과 후보 개인의 역량이 우선 고려 되지 못하고 ‘사천’이 이뤄지기 일쑤다.
청탁과 유혹이 명징한 판단을 농단하는 결말이 되고 만다.
‘공천장사’라는 용어도 낯설지 않다. 한 자리 공천에 깜짝 놀랄 액수의 검은 돈들이 오가다 법망에 걸려 신세를 망치는 일도 종종 목격하게 되는 것도 이 판의 특징이다.
그래서 공천 때만 되면 누구한테 공천헌금 얼마를 바쳤다, 누구 라인이다. 윗선(그것도 큰 집)의 관심사안이다 등등의 ‘아리송한 은어’들이 난무하기 마련이다. 국민은 안중에도 없이 스스로에게 초점을 맞춰 공천의 당위성을 설명하는 억지가 난무한다. 그 결과 비민주적 공천에 승복할 수 없다는 반발이 야기되기도 한다.
솔직히 공천권을 쥐고 있는 지역 위원장도 ‘을'의 처지에서 공천에 매달리던 때가 불과 얼마 전 일이다. 그 때는 중앙당 입김을 배제돼야 한다며 지역 유권자에 의한 공천을 그리도 주장하더니 막상 기득권이 되어 처지가 달라지면 예전 생각은 까맣게 잊어버린 모습들이다.
공정한 공천 기준과 룰 적용에 따른 정당한 경쟁이 보장된다면 더 할 나위없을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현실적인 그림은 영 그렇지 못하다.
선거 과정을 이용해 ‘잇속’을 채우려는 의도가 사라지지 않는 한 선거 개혁의 실현은 여전히 요원한 과제로 남게 될 공산이 크다.
흔히 정당에서는 금권선거나 유력계층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되는 폐단을 들어 유권자 선택에 의한 공천의 문제점을 말하곤 한다. 그렇다면 그런 개연성이 높은 지역이나 그런 문제가 야기된 지역에 대해서는 전략공천 특히 여성 전략 공천 지역으로 분류하면 간단히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런 것들이 대한민국 비리 정치의 본판을 주도하는 모순의 실체다.
모든 공천서류를 쥐어틀고 앉아 밀실에서 결정하는 공천은 받은 사람이나 못받은 사람이나 정당성 확보가 여의치 않은 건 마찬가지다.
그렇게 당선이 된 사람들은 공천 본류를 따라 ‘헌금’하고 또 다른 줄에서는 돈벌이를 위한 충성 대오를 형성하는 데 혈안이 되는 악순환을 피할 수 없다. 결국은 조롱거리로 전락될 개연성이 큰 도박같은 운명이 펼쳐지게 돼 있다.
‘투명한 공천’은 그동안 일관되게 주장해 왔던 ‘공천’에 대한 개인적인 철학이요 소신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도 기회만 주어진다면 대한민국 공천제도를 개혁하고 싶은 욕구가 가슴을 뛰게 한다.
다시 정치를 시작 할 수 있다면 다른 건 몰라도 공천제도 만큼은 바꿔야 하고 여기에 반드시 일조를 하고 싶다.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니다. 공천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사람들이 최대한 국민의 뜻을 반영하는 공천이 되도록 스스로의 권한을 포기하면 간단히 해결될 문제다. 공천 작업이 개인권력이나 집단 권력 유지를 위한 도구화 되는 일이 없도록 하자는 거다. 그렇게 된다면 정치가 지금처럼 냉소적 대상이 아니라 국민으로부터 사랑받는 집단으로 거듭날 수 있게 될 것이다.
더 이상 선거 때마다 ' 이번 선거만큼은 깨끗하고 공정하고 원칙이 있고 투명한 과정을 통해서 모든 국민들로부터 박수를 받을 수 있는 공천과정을 보여주겠다'는 다짐이 헛구호로 끝나지 않도록 하자.
공천 권한을 유권자에게 돌려주고 선거 선진화를 이루면 된다.(2010. 4.6)
....홍문종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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