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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6월 3일 수요일

홍문종 생각- 경민 회고록 문집 발간에 부쳐

1967년, 유난히도 쌀쌀했던 10월 하순 경.
 
​ 허허벌판 경민중학교 신축 부지에 기초석을 놓는 행사를 지켜보던 그 때를 기억합니다.
 
의욕과 확신에 차있던 홍우준·이연신 설립자를 비롯한 사람들, 그리고 기대와 우려 속에 반신반의 했던 군중들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갑니다.
 
설립자와 동고동락하시던 경민의 기라성 같은 선생님들...
 
지금은 고인이 되신 지동인 교장선생님, 이영환 교장선생님을 비롯, 오상유. 김용일. 양기천 교장선생님....
 
바로 엊그제 일 같은데 어느 새 반세기 세월이 흘렀다니 무상합니다.
 
하지만 교실 대여섯 칸 규모의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건축물로 시작한 경민중학이 유치원과 중고등학교, 대학교 등 7개 학교와 4개 부설교육기관을 망라한 경민학원으로 성장, 의정부와 대한민국의 명실상부한 중추교육기관으로 자리 잡은걸 보면 그저 속절없이 흐르기만 한 세월은 아니지 싶습니다.
 
 
당시 의정부 중학교 1학년생이었던 저는 번창하던 주택사업을 접고 가진 재산을 다 털어 학교를 짓는다고 나선 설립자의 선택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교육을 통해 나라의 미래를 세우겠다’는 소신을 받아들이기엔 너무 어렸던 탓도 있습니다.
 
‘이대로 사업을 하시면 지금보다 훨씬 더 잘 살 수 있을 텐데 (스레이트 지붕 때문에) 닭장이라고 놀림이나 받게 만들고...’
 
그동안 친구들로부터 선망의 대상이 되는 상황을 즐기던 나로서는 졸지에 금맥을 잃고 나락에 떨어진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설립자의 선택은 옳았습니다.
 
버려진 땅으로 외면받던 의정부에서, 미군부대–카바레-부대찌개...이런 상징어로 대표되던 의정부에서 경민중학의 역할은 생각보다 컸습니다.
 
당시 의정부에는 의정부중학교 밖에 없었습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학생들로선 재수, 삼수가 불가피하거나 도중에 학업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경민중학이 이들의 방황에 종지부를 찍게 했습니다.
 
게다가 반쪽된 나라를 하나로 만들고 일제 식민 잔재를 청산한다는 설립이념의 기치 아래 함께 뭉친 선생님들의 열의가 끓어 넘치는 학교였으니 금상첨화였습니다.
 
실제 당시 스레이트 지붕의 교실은 초라했고 포장이 안 된 학교 길은 비만 오면 진흙 범벅이 되기 일쑤였지만 누구도 불평하는 이가 없었습니다.
 
가르침을 주겠다는 교사들의 의욕과 배우겠다는 학생들의 충만한 의지가 한데 어우러져 만족감을 충족시킨 것도 한 이유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왕성한 추진력으로 경민학원을 진두지휘하시던 홍우준 설립자의 연세가 어느 덧 구순을 넘겼습니다.
 
공동 설립자인 이연신 총장님 역시 구순을 코앞에 두고 계십니다.
 
두 분은 아직도 가끔 당시 선생님들의 열정과 헌신을 말씀하시면서 추억에 잠기시곤 합니다.
 
도시락을 못 싸오거나 등록금을 못내는 학생들을 붙잡고 뜨거운 눈물을 흘리던 선생님, 자신의 도시락을 슬그머니 책상위에 올려주거나 박봉을 털어 등록금을 대납해주시던 선생님들의 모습을 추억처럼 떠올리고 또 떠올리십니다.
 
그 때 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뜨거워진다고 하십니다.
 
경민학원 첫 건축물인 경민중학 건물에 대해서도 여간 애착이 많은 게 아니십니다. 대부분의 경민학원 건물이 재건축으로 외형을 달리한 반면, 경민중학 건물만큼은 원형 그대로 보관돼 있는 건 그 애틋함의 발로일 것입니다.
 
 
이제 경민학원의 산 증인이신 교장선생님들의 회고담을 모은 문집이 세상에 나오게 된다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오늘 날 경민을 만들어 낸 주역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모두의 가슴에 담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가난했지만 뜨거움이 살아 숨 쉬던 시절을 되짚으면서 진정한 교육을 위해 고군분투했던 여러분의 헌신을 새기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의 열정과 사명감이 남긴 흔적을 통해 대한민국 교육과 경민학원 미래를 담보하고 견인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도록 하겠습니다.
 
 
 
많이 감사합니다.
 
오늘 날 경민학원이 졸업생 12만을 육박하는 졸업생과 재학생 1만여명에 이르는 규모로 성장하기까지 튼실한 토대를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부디 후학을 위해 남기시는 이 가르침이 이 시대 참교육의 부활을 독려하는 생생한 표징이 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2015. 6.2)
 ...홍문종 생각
 
 
 

2011년 2월 18일 금요일

홍문종 생각 - 졸업, 그 시작의 의미

졸업, 그 시작의 의미

바야흐로 졸업시즌이다.
대한민국 전역이 장사진을 이룬 졸업식 물결로 가득 채워진 느낌이다.
개인적으로도 덩달아 바빠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졸업식장을 넘나들며 소화해야 할 살인적인 ‘축사’ 일정이 어느 결에 정기적인 연례행사가 되고 말았다.
경민학원만 해도 10여개가 넘는 학교기관이 있다. 거기다 인근 학교 졸업식에 까지 불려 다니는 일정을 생각하면 얼마나 숨 가쁜 스케줄을 감당하고 있는지 짐작이 갈 것이다.

규모의 차이는 있지만 졸업식 풍경은 거의 다 비슷하다는 생각이다.
여전히 진부하고 또 여전히 새로운 기운이 넘치는 절묘한 조화로움이 졸업식을 떠 받치고 있다.
가장 진부함을 드러내는 건 아무래도 축사 부분이다.
대부분 고정된 틀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졸업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로 시작해서 희망, 미래, 비전, 포기하지 않는 삶의 목표 설정 등으로 이어지다가, ‘인생의 성공 여부는 얼마나 많이 벌었나, 얼마나 큰 권력을 쌓았나, 얼마나 명예를 높였나가 아니라 얼마나 인간다운 삶을 살았느냐에 달려있다’(내 단골 레퍼토리이기도 하다)로 마무리되기 일쑤인데 오래 전과 비교해서 별반 달라진 게 없는 느낌이다.
반면 졸업식마다 매번 주인공이 바뀌고 주변 환경과 여건의 변화로 생동감 넘치는 졸업현장은 신선도 높은 새로움을 제공한다. 개인에 대한 시대적 요구가 달라지고 그런 만큼 세상을 향해 첫걸음을 떼는 졸업생들에게 사회에 대한 합리적인 관심기준을 주문하는 합리적인 현실을 만나는 반가움을 맛보이는 곳이기도 하다.
진부와 참신이 공존하는 아이러닉한 공간이라고나 할까.

진부함을 벗지 못한 축사로는 졸업생들에게 구체적이고 확실한 목표의식을 심어주기에 역부족이지 싶다. 유행이 지나쳐 상투적이 된, 새로운 시대에 부응하는 독창성이니 창조성이니 하는 언급들만으로는 진정한 삶의 가치를 알게 하기는커녕 무지개만 쫓는 오류를 부축일 수도 있다는 걱정이 있다.
그래서 졸업식 축사에 나설 때마다 많이 고민하게 된다.
짧은 시간 동안 전하고자 하는 나의 의도가 (졸업생들에게)온전히 이해될 수 있는 건지, 그리고 그것이 새로운 가능성과 미래를 준비하는 그들에게 아주 작은 보탬이라도 되고 있는 건지 명확한 가늠이 쉽지 않다.

그래서 가끔씩 내 자신의 졸업식을 돌이켜보기도 한다.
초중고 시절의 교장선생님들과 담임선생님들의 당부 말씀들을 떠올리다 보면 우리를 바르게 가르치시고자 했던 은사님들의 노심초사를 조금은 더 이해하게 되는 것 같다.
대학과 대학원 졸업식 축사 중에서 각별한 기억이 되어 내 삶의 고비마다 큰 힘을 발휘하는 당부 말씀들이 있다.
김상협 총장님의 '지성과 야성론’도 있고 88년 美 대선 당시 하버드 출신 민주당 대통령 후보였던 듀카키스의 ‘unbelievable people' 등도 특별히 여운을 남기는 축사다. 하버드 졸업시장에서 ’세상에 던져진 여러분들에게 뭔가 확실하고 분명한 방향타를 제시하지 못하고 그저 잘해만 달라고 부탁하는 안타까운 심정을 이해해 달라‘는 취지로 심금을 울렸던 총장님 말씀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있는 나만의 '명 축사'다.

지금은 나 자신 역시 대학 총장 직함으로 졸업식을 치르고 있는 입장이다. 그래서인지 오래 전에는 철없이 놓치고 말았던 은사님의 ‘속울음’이 내포하는 깊은 뜻이 헤아려지는 것 같다.
특별히 세상 일이 더 어려워진 요즈음이고 보니 제자들에게 확실하고 분명한 방향타를 제시해주지 못하고 일방통행식 단어 몇 마디로 눙치고 있다는 자괴감이 적지 않다.
졸업식을 마치고 학교를 떠나는 제자들이 물가에 내놓는 어린아이처럼 보인다.
예전에 내 은사님들이 그러셨던 것처럼 제자들을 위한 기도 제목을 세우게 된다. 그리고 간절히 간구한다. 한발은 과거에, 나머지 한발은 미래에 의지하고 과거와 미래를 잘 조율하면서 현명함으로 이 어려운 현실을 잘 헤쳐 나갈 수 있게 해 달라고 매달려보지만 선생의 도리가 충분하지 못했다는 자책을 내려놓기엔 미흡하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인생은 어차피 기차길 처럼 두 개의 레일 위에서 존재하는 과정인 것을.
한 쪽 레일에서는 세상 밖에서 진행되는 수많은 일들을 지켜보고 또 다른 레일에서는 깨우치고 배려하고 지탱하고 붙잡는 인간 내면의 존립기반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나만으로는 그 누구도 도리 없음을 받아들이고 삶의 질서에 순응해야한다는 생각이다.

사랑하는 제군들이여,
이제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걸음마를 시작한 그대들의 졸업을 축하한다.
그러나 푸른 그대들이여,
세속적인 성공 개념에 스스로를 가두지 말 일이다.
자신의 삶을 운용하는 이는 스스로 밖에 없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된다.
용맹스러운 실천과 우주를 품는 지혜로 이 넓디넓은 세계를 한 가슴에 받아 안길 바란다.
자, 시작이다.


(2011. 2. 18)
......홍문종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