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단상
교수 연수 차 강원도에 다녀왔다.
애초엔 구제역으로 어려운 지역상황을 감안해서 연수일정을 다음으로 미뤄야 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그러나 오히려 이런 때일수록 많이 찾아주는 게 지역민들을 위해 더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많아 결정된 일정이었다.
매번 갈 때마다 강원도 특유의 에너지로 충만해지는 기분이었지만 이번에는 평소와 많이 다른 분위기였다. 오는 7월 동계올림픽 개최지 결정을 앞두고 IOC의 현지실사가 평창에서 진행된다는데 민망할 정도로 착 가라앉은 모습이었다.
하긴 구제역 파동이나 도지사의 도중하차, 불투명한 지역경제의 불안 등의 우환들이 겹쳤으니 신명날 일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당장 도지사 공백이 가져올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지역민들의 한숨을 깊게 만들고 있었다. 특히 도지사의 도중하차로 알펜시아 리조트의 활로 모색에 제동이 걸리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지역민들을 풀 죽게 하는 가장 큰 이유였다.
어쩌다 보니 알펜시아리조트에서 이번 일정의 여정을 풀게 됐다.
강원도정의 뜨거운 감자로 부각돼 있는 문제의 그 알펜시아 리조트에 말이다.
이용 소감부터 말하자면 실망 그 자체였다.
막대한 건설비용에도 불구하고 외형만 그럴 듯 했지 설비나 규모면에서 지나치게 부실했다. 동계올림픽 시설물로 사용하기에는 미흡하고 눈에 거슬리는 부분이 한 두군데가 아니었다.
무엇보다 슬로프가 짧았고 설질은 평균치 이하였다. 20도가 넘는 강추위 속에서 보드를 타기엔 형편없는 여건 때문에 엄청나게 어려움을 감수할 수 밖에 없었다. 새 건물이었는데 마감재는 지나치게 부실했다.
적어도 동계 올림픽을 제대로 치르려면 상당한 재정비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였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빛 좋은 개살구였다고나 할까.
알펜시아는 ‘세계적 명품’ 최고급 리조트를 지향하는 대관령 일대 4.91km²(약 148만 평)에 공사비 1조6836억원을 쏟아 부어 펼쳐낸 강원도의 야심작이었다. 지방자치단체 역사상 단일 규모로는 최대 사업의 중심체였다.
강원도는 동계올림픽 유치에 대비해 스키점프 경기장과 크로스컨트리 및 바이애슬론 경기장 등을 최신 시설로 지었다. 세계적인 호텔 그룹 인터컨티넨탈호텔과 홀리데이인리조트가 참여했고, 회원제 골프 코스 운영은 골프 매니지먼트회사 트룬골프가 맡았다. 퍼블릭(대중) 골프 코스인 알펜시아700 골프장은 전 세계 유명 코스를 본떠서 만들었다. 2540명을 수용하는 컨벤션센터, 630석 콘서트홀, 3200명 수용 규모의 워터파크 운영은 커닝햄그룹의 조언을 받아 이뤄졌다. 커닝햄은 드림웍스, 유니버설 스튜디오와 워너브러더스 테마파크 등을 만든 회사로서 알펜시아 리조트 명성에 힘을 보탰다.
그렇게 화려한 명성으로 출범했던 리조트였다. 아시아 최대 최고 최상이 되겠다는 포부와 함께 탄생한 리조트였다.
그러던 것이 이자와 운영적자를 합해 연간 600억원의 손실을 안기는 시한폭탄이 되고 말았다.
오늘 날 강원도재정파탄의 원흉으로 지목받는 신세로 전락해버리고 만 것이다.
화려한 출발이 무색할 만큼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알펜시아 리조트는 지금 백척간두에 놓인 신세가 됐다. 재기 가능성도 그다지 커 보이지도 않는다.
이 모두가 위정자의 부실한 정책판단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순간의 판단착오가 전 도민의 고통과 한숨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 암울한 현실은 이 땅의 모든 위정자들이 타산지석으로 가슴에 깊이 새겨야 할 교훈이다. 위정자들이 정책 하나하나를 결정할 때마다 얼마나 많이 공들이고 심사숙고해야 할지, 자신이 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지, 왜 이 모든 일들을 명심해야 하는지를 가슴 깊이 새겨야하겠다.
보드를 타면서 깨닫게 된 귀한 사실 한 가지가 더 있다.
보드타기엔 조금 늙은 나이임에도 프로의 경지에 올라있던 스키대신 보드를 선택한지 어언 5년여다. 이제 비로소 보드타기에서 자유를 얻은 것 같다. 그동안 뇌진탕 정도의 충격은 예사로이 감수하며 부단히 노력한 결과라는 생각이 든다. 가끔씩 스키에 대한 미련이 없는 건 아니지만 정형화된 귀족형태의 스키보다는 청년 같은 자유분망함과 넘치는 스릴이 주는 보드의 매력이 훨씬 큰 것 같다.
이번에도 다리가 뻐근해질 때까지 보드를 즐기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문제는 너무 추운 날씨였다. 답답한 것이 싫어 평소처럼 고글과 마스크를 준비하지 않았다가 낭패를 본 것이다.
찬바람이 얼마나 거센지 고글없이는 눈을 뜰 수 없었고 마스크 없이는 얼굴이 얼어붙어서 도저히 보드를 계속 탈 수 없었다. 별 쓸모없다고 생각했던 장비들이 거센 찬바람 속에서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 똑똑히 알게 된 셈이다.
마찬가지로 작고 사소한 관심이 정말 힘들고 어려운 환경에 처한 이들에게는 결정적인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는 깨달음도 있었다. 한 사람의 작은 정성이 사회 전체를 따뜻하고 살만한 세상으로 만드는 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마음 속에 소중히 담는 계기가 됐다.
일탈을 접고 돌아온 일상은 역시나 숨가쁘게 돌아가고 있다.
빼곡한 업무 목록이 잠시 마음을 누르지만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니만큼 지혜롭게 잘 해결해 나갈 수 있으리라.
강원도 역시 지금의 어려움을 딛고 주어진 난제들을 술술 잘 해결해 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다시금 펄펄나는 강원도의 힘으로 우리를 맞아 주는 환한 미소를 조만간 만날 수 있겠지.
(2011.1.30)
... 홍문종 생각
2011년 1월 30일 일요일
2011년 1월 27일 목요일
홍문종 생각 - 의인의 시대
의인의 시대
며칠 전 언덕을 구르는 통학버스를 몸으로 막다가 참변을 당한 한 기사님의 의로운 선행이 있었다. 그의 희생으로 20여명의 인명은 무사했으나 정작 자신은 목숨을 잃고 만 안타까운 사건이다. 그의 의로운 행적이 인터넷 공간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면서 많은 이들이 추모의 염으로 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애도하고 있는 분위기다.
앞서 일본에서 유명을 달리한 아름다운 청년 故이수현군의 삶도 비슷하다.
2001년 1월 26일 일본 유학 중 도쿄 신오쿠보(新大久保)역에서 불귀의 객이 되고만 故 이수현군의 안타까운 사연을 기억하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술이 취해 전철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을 구해내다 참변을 당했는데 그 때 그는 스물여섯 나이에 불과했다.
그의 희생은 이기적이고 폐쇄적인 삶에 익숙해있던 당시 일본사회를 각성시키는 기폭제가 되었다. 많은 일본인들이 감사의 눈물로 그의 삶을 기렸다. 일본 내에 ‘이수현 장학회’가 설립되는 가하면 그의 삶을 조명한 영화 ‘너를 잊지 않을거야’가 한일 합작 영화로 제작되는 등 그를 추모하는 각종 행사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살신성인하는 모든 의로움은 우리에게 있어 시공간을 초월한 기운을 품은 영원불멸의 아우라의 흔적이다.
무엇보다도 희망의 여지를 남긴다는 점에서 귀한 가치라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억하고 기록해서 후대에 계승하고 기려야 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그렇게 해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제 명을 다하지 못했지만 결코 짧다고 할 수 없을 이들의 의로운 삶이 새삼스럽게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명제를 되짚어보게 한다.
톨스토이는 동명의 소설집을 통해 인간의 지위나 부, 권력의 덧없음을 말하는 대신 절대절명적인 ‘사랑’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에 의하면 모든 인간은 그들의 삶을 어우르며 절대적 구심체가 되고 있는 사랑 때문에 살아가고 있다. 사랑에 의해 살아가되 개개인의 역량이 아니라 사랑으로 하나된 동력을 통해 살아가는 힘을 얻게 된다.
그는 또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때는 ‘지금’이고 가장 필요한 사람은 ‘바로 지금 내가 만나는 사람’이고, 가장 중요한 일은 ‘바로 내 옆에 있는 사람에게 잘하는 것’이라는 조언을 남기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는 건 무엇이고 죽는 건 뭔지, 그리고 어떻게 사는 것이 의미있는 삶이 되는 건지 하루종일 내 머리 속을 맴돌며 혼란스럽게 하는 궁금증은 여전히 남아있다.
결국 언젠가 죽게 돼 있다면 그 기간이 30년이든 40년이든 아니면 100년이든 영겹의 세월로 흘러온 인류의 역사성을 생각한다면 굳이 아등바등 거릴 필요도 없지 않을까, 정말 그렇다면 의미있는 삶이나 죽음의 명제에 무슨 무게나 가치를 부여할 수 있겠는가 하는 회의론에 골머리가 썩히고 있는 중이다.
내 자신 스스로의 세계이기에 내 삶의 의미를 찾아야한다는 결론을 깨달으면서도 그런들 영겁의 시간 속에 한 점 티끌의 존재로 소멸되어질 인생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싶은 체념이 빠르게 교차하는 갈등의 연속이다.
아무리 좋은 집이나 옷, 음식이 있다한들, 금력, 권력, 명예가 넘친다 한들, '수명‘의 한계 앞에서 모든 게 신기루가 되고 만다는 사실 역시 그러한 정황을 부축이고 있다.
문득 ‘온 세상을 얻고도 내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 내가 바로 우주이고 세계가 내 안에 있다’는 성경의 의미가 좀 더 확실하게 다가오는 것 같기도 하다.
의문투성이에도 불구하고 인생에서 뭔가 실행되는 그 순간, 의인의 필요충분조건만큼은 분명하고 확실하게 규명돼야 하는 사실은 인정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떤 의미에서 왜 그랬는지가 중요하다기 보다 그 순간, 그렇게 밖에 할 수 없는 일을 자신에게 닥칠 위험을 무릅쓰고 주저함 없이 해냈다는 사실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해야 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설정이다.
살만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이런 의인을 기리고 존경하며 관심을 갖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 사람들이 많이 존재할 때 삶의 길이와 상관없이 더불어 살만한 세상이 되는 게 아닌가 싶다.
어제가 10주기 추모일이었는데 10년 세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뜨거운 마음으로 이수현님의 선행을 기리는 분위기였다는 소식이다. 특히 우리나라보다는 일본에서 그 열기가 더 뜨거웠다는 후문이다.
한 사회나 국가적 삶의 품격은 그에 속한 구성원들이 선하고 의로운 일에 어떤 식의 반응을 보이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이다. 높은 점수로 격려의 박수를 보낼 수 있는 마음가짐이 삶의 품격을 평가하는 중요한 바로미터가 될 수 있다.
우리보다 더 열성적으로 이수현님에 대한 추모열기를 이어가는 일본의 저력에 다시한번 놀라게 된다.
선진국민의 일단을 엿볼 수 있는데 우리가 높이 평가해야 할 부분이다. 외형적으로 드러나는 부의 척도보다 더 중요한 가치이기 때문이다.
작은 일이라도 우리 사회에 긍정적인 일을 한 한사람 한사람을 잘 기억해 내고 감사하고 롤 모델로 삼고 하는 일들을 주저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다. 의인이 관리되는 사회적 시스템을 구축해보자는 소리다.
선진사회일수록 의인이 대접받는다.
우리 사회에 의롭고 선한 일들을 확산하는 데 큰 공을 세운 이들의 삶이 부디 쓸쓸하지 않게 되길 .
( 2011. 1. 27 )
...홍문종 생각
며칠 전 언덕을 구르는 통학버스를 몸으로 막다가 참변을 당한 한 기사님의 의로운 선행이 있었다. 그의 희생으로 20여명의 인명은 무사했으나 정작 자신은 목숨을 잃고 만 안타까운 사건이다. 그의 의로운 행적이 인터넷 공간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면서 많은 이들이 추모의 염으로 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애도하고 있는 분위기다.
앞서 일본에서 유명을 달리한 아름다운 청년 故이수현군의 삶도 비슷하다.
2001년 1월 26일 일본 유학 중 도쿄 신오쿠보(新大久保)역에서 불귀의 객이 되고만 故 이수현군의 안타까운 사연을 기억하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술이 취해 전철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을 구해내다 참변을 당했는데 그 때 그는 스물여섯 나이에 불과했다.
그의 희생은 이기적이고 폐쇄적인 삶에 익숙해있던 당시 일본사회를 각성시키는 기폭제가 되었다. 많은 일본인들이 감사의 눈물로 그의 삶을 기렸다. 일본 내에 ‘이수현 장학회’가 설립되는 가하면 그의 삶을 조명한 영화 ‘너를 잊지 않을거야’가 한일 합작 영화로 제작되는 등 그를 추모하는 각종 행사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살신성인하는 모든 의로움은 우리에게 있어 시공간을 초월한 기운을 품은 영원불멸의 아우라의 흔적이다.
무엇보다도 희망의 여지를 남긴다는 점에서 귀한 가치라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억하고 기록해서 후대에 계승하고 기려야 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그렇게 해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제 명을 다하지 못했지만 결코 짧다고 할 수 없을 이들의 의로운 삶이 새삼스럽게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명제를 되짚어보게 한다.
톨스토이는 동명의 소설집을 통해 인간의 지위나 부, 권력의 덧없음을 말하는 대신 절대절명적인 ‘사랑’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에 의하면 모든 인간은 그들의 삶을 어우르며 절대적 구심체가 되고 있는 사랑 때문에 살아가고 있다. 사랑에 의해 살아가되 개개인의 역량이 아니라 사랑으로 하나된 동력을 통해 살아가는 힘을 얻게 된다.
그는 또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때는 ‘지금’이고 가장 필요한 사람은 ‘바로 지금 내가 만나는 사람’이고, 가장 중요한 일은 ‘바로 내 옆에 있는 사람에게 잘하는 것’이라는 조언을 남기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는 건 무엇이고 죽는 건 뭔지, 그리고 어떻게 사는 것이 의미있는 삶이 되는 건지 하루종일 내 머리 속을 맴돌며 혼란스럽게 하는 궁금증은 여전히 남아있다.
결국 언젠가 죽게 돼 있다면 그 기간이 30년이든 40년이든 아니면 100년이든 영겹의 세월로 흘러온 인류의 역사성을 생각한다면 굳이 아등바등 거릴 필요도 없지 않을까, 정말 그렇다면 의미있는 삶이나 죽음의 명제에 무슨 무게나 가치를 부여할 수 있겠는가 하는 회의론에 골머리가 썩히고 있는 중이다.
내 자신 스스로의 세계이기에 내 삶의 의미를 찾아야한다는 결론을 깨달으면서도 그런들 영겁의 시간 속에 한 점 티끌의 존재로 소멸되어질 인생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싶은 체념이 빠르게 교차하는 갈등의 연속이다.
아무리 좋은 집이나 옷, 음식이 있다한들, 금력, 권력, 명예가 넘친다 한들, '수명‘의 한계 앞에서 모든 게 신기루가 되고 만다는 사실 역시 그러한 정황을 부축이고 있다.
문득 ‘온 세상을 얻고도 내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 내가 바로 우주이고 세계가 내 안에 있다’는 성경의 의미가 좀 더 확실하게 다가오는 것 같기도 하다.
의문투성이에도 불구하고 인생에서 뭔가 실행되는 그 순간, 의인의 필요충분조건만큼은 분명하고 확실하게 규명돼야 하는 사실은 인정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떤 의미에서 왜 그랬는지가 중요하다기 보다 그 순간, 그렇게 밖에 할 수 없는 일을 자신에게 닥칠 위험을 무릅쓰고 주저함 없이 해냈다는 사실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해야 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설정이다.
살만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이런 의인을 기리고 존경하며 관심을 갖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 사람들이 많이 존재할 때 삶의 길이와 상관없이 더불어 살만한 세상이 되는 게 아닌가 싶다.
어제가 10주기 추모일이었는데 10년 세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뜨거운 마음으로 이수현님의 선행을 기리는 분위기였다는 소식이다. 특히 우리나라보다는 일본에서 그 열기가 더 뜨거웠다는 후문이다.
한 사회나 국가적 삶의 품격은 그에 속한 구성원들이 선하고 의로운 일에 어떤 식의 반응을 보이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이다. 높은 점수로 격려의 박수를 보낼 수 있는 마음가짐이 삶의 품격을 평가하는 중요한 바로미터가 될 수 있다.
우리보다 더 열성적으로 이수현님에 대한 추모열기를 이어가는 일본의 저력에 다시한번 놀라게 된다.
선진국민의 일단을 엿볼 수 있는데 우리가 높이 평가해야 할 부분이다. 외형적으로 드러나는 부의 척도보다 더 중요한 가치이기 때문이다.
작은 일이라도 우리 사회에 긍정적인 일을 한 한사람 한사람을 잘 기억해 내고 감사하고 롤 모델로 삼고 하는 일들을 주저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다. 의인이 관리되는 사회적 시스템을 구축해보자는 소리다.
선진사회일수록 의인이 대접받는다.
우리 사회에 의롭고 선한 일들을 확산하는 데 큰 공을 세운 이들의 삶이 부디 쓸쓸하지 않게 되길 .
( 2011. 1. 27 )
...홍문종 생각
2011년 1월 25일 화요일
홍문종 생각 - '나의 가장 나종 지닌 것'
'나의 가장 나종 지닌 것'
박완서 선생께서 영면하셨다.
많은 이들의 아쉽고 그립고 안타까운 동동거림을 뒤로 한 채 홀연히 떠나 가셨다. 이 땅의 강퍅한 가슴들까지도 뜨겁게 울리는 위력을 발휘하면서 그렇게 이승과의 인연을 접으셨다.
역시나 선생은 마지막 가는 길도 남다른 흔적을 남기셨다.
소박하게 마지막 길을 가겠다는 고인의 유지에 따라 조사나 추모사 낭독 등 일체의 격식이 배제된 채 진행된 영결식도 그렇고 병마와 싸우면서도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현역이고자 했던 노작가의 ‘직업근성’도 그랬다. 가난한 문인들에게 절대로 부의금을 받지 말라고 신신당부 할 정도로 타인에 대한 따뜻한 배려를 잊지 않았던 어른의 모습으로도 그랬다.
사람이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의 의미가 바로 이런 건가 싶기도 하다.
오랜 만에 반가운 얼굴을 뵙는 모임 자리에서도 온통 타계한 박완서 작가 얘기뿐이다. 연로하신 분들이 많은 모임인데 대부분의 어르신들이 박완서 작가를 잘 알고 계셨다. 뿐만 아니라 서로의 집을 왕래할 정도의 친분으로 개인적인 삶의 공간을 깊숙이 알고 계시는 분들도 적지 않았다.
남편과 아들을 앞세운 비극적인 개인사를 비롯해서 남들에게 언제나 상냥하고 다정했지만 어딘가 짙은 어두움이 배여 있는 듯한 표정, 쓰라린 가정사를 승화시킨 듯한 주옥같은 작품에 이르기까지 고인에 관한 많은 후일담들이 쏟아졌는데 대부분 수긍이 가는 이야기들이었다. 살을 에는 고통 속에서 진주가 만들어지듯 인생에서의 아름다운 결과물도 숱한 어려움과 역경을 딛고 난 후에야 손에 넣게 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됐다고나 할까.
고인의 사인으로 알려진 담낭암이 화제거리로 대두되는 가운데 비교적 건강했던 고인의 갑작스런 죽음에 대한 안타까움을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방사선 치료의 위험성(?)이 거론되기도 했다. 동병상련의 심정이었을까? 수술 경과가 좋아 거의 완치단계였는데, 본인의 거부에도 불구하고 방사선 치료가 강행되는 바람에 연로하고 병약한 환자가 이를 이기지 못해 명을 재촉했을지도 모른다는 아쉬움들이 터져 나왔다.
그 다음에는 이구동성으로 우리나라 병원과 의료진들의 문제점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의사들의 불친절과 환자에 대한 무관심, 더 나아가 지나친 의료수가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의료 시스템 전반에 관한 성토가 이어졌다. 미국이나 일본의 진료를 받아본 경험을 들어 우리보다 더 값싸고 친절하고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를 철저히 이행하는 외국 의사들의 투철한 직업의식을 예로 들어가며 성토분위기를 고조시켰다.
그러다 결국은 우리가 나름대로 세계사에 족적을 남기기 위해서는 국민들이 고매한 인품까지는 아니더라도 기본적으로 타인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인격을 조성하는 풍토가 필요하다는 얘기로 끝을 맺었다.
어떤 상황에서건, 어떤 인간관계에서건 갑과 을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 때 그 때 입장에 따라 갑이 되기도 하고 을이 되기도 한다. 그런 식으로 보자면 갑의 입장에서 내가 했던 처신이 을의 입장에 처한 내 몫으로 고스란히 되돌려지는 게 아닐까 싶다. 특정 상황에서 내가 받은 대접이 섭섭하다고 느껴지는 순간, 섭섭함에 방점을 두기보다 내가 남들을 서운하게 하지 않았나부터 돌아보는 자세가 우선돼야 하는 이유다.
수 많은 사람들이 이 박완서 선생과의 이별을 아쉬워하는 것도 결국은 그녀가 세상에 뿌린대로 거두는 결과에 다름 아닐 것이다.
모임에서 돌아오면서 내 모습을 돌아보았다.
나는 얼마나 남을 배려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남의 입장을 얼마나 존중하고 또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가. 어르신들에게 성토대상이 된 의료진처럼 시간에 쫓긴다는 이유만 내세워 그저 하고 싶은 대로 또는 판단하는 대로 주변인(학생이 됐건 지역구민이 됐건)들을 일방통행식으로 밀어붙이지지는 않았나.
그렇게 해서 내가 얻은 결론은 우리가 미래사회의 희망을 이야기하려면 각 개인마다 완성된 인격체로서 성숙한 시민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어떤 의도로 사용하느냐에 따라 독약도 되고 구명약도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나 자신은 물론 주변의 지인들과 함께 한번쯤 주제삼아 생각해 볼 계기를 마련해봐야겠다는 결심으로 마음가짐을 새롭게 다잡아본다.
세상을 살면서 이왕이면 좋은 종자의 씨앗을 뿌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나 역시 많은 이들의 아쉬움 속에서 내 생의 마지막을 맞게 되기를 소망한다.
그러기 위해선 내 인생을 가치있게 만들기 위해 '나의 가장 나종 지닌 것'을 늘 갈고 닦는 노력의 끈을 놓지 말아야겠지.
그나저나 그토록 그리워하던 아들과 남편 곁으로 가셨으니 선생님, 많이 행복하시겠지요?
(2011. 1. 25)
....홍문종 생각
박완서 선생께서 영면하셨다.
많은 이들의 아쉽고 그립고 안타까운 동동거림을 뒤로 한 채 홀연히 떠나 가셨다. 이 땅의 강퍅한 가슴들까지도 뜨겁게 울리는 위력을 발휘하면서 그렇게 이승과의 인연을 접으셨다.
역시나 선생은 마지막 가는 길도 남다른 흔적을 남기셨다.
소박하게 마지막 길을 가겠다는 고인의 유지에 따라 조사나 추모사 낭독 등 일체의 격식이 배제된 채 진행된 영결식도 그렇고 병마와 싸우면서도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현역이고자 했던 노작가의 ‘직업근성’도 그랬다. 가난한 문인들에게 절대로 부의금을 받지 말라고 신신당부 할 정도로 타인에 대한 따뜻한 배려를 잊지 않았던 어른의 모습으로도 그랬다.
사람이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의 의미가 바로 이런 건가 싶기도 하다.
오랜 만에 반가운 얼굴을 뵙는 모임 자리에서도 온통 타계한 박완서 작가 얘기뿐이다. 연로하신 분들이 많은 모임인데 대부분의 어르신들이 박완서 작가를 잘 알고 계셨다. 뿐만 아니라 서로의 집을 왕래할 정도의 친분으로 개인적인 삶의 공간을 깊숙이 알고 계시는 분들도 적지 않았다.
남편과 아들을 앞세운 비극적인 개인사를 비롯해서 남들에게 언제나 상냥하고 다정했지만 어딘가 짙은 어두움이 배여 있는 듯한 표정, 쓰라린 가정사를 승화시킨 듯한 주옥같은 작품에 이르기까지 고인에 관한 많은 후일담들이 쏟아졌는데 대부분 수긍이 가는 이야기들이었다. 살을 에는 고통 속에서 진주가 만들어지듯 인생에서의 아름다운 결과물도 숱한 어려움과 역경을 딛고 난 후에야 손에 넣게 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됐다고나 할까.
고인의 사인으로 알려진 담낭암이 화제거리로 대두되는 가운데 비교적 건강했던 고인의 갑작스런 죽음에 대한 안타까움을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방사선 치료의 위험성(?)이 거론되기도 했다. 동병상련의 심정이었을까? 수술 경과가 좋아 거의 완치단계였는데, 본인의 거부에도 불구하고 방사선 치료가 강행되는 바람에 연로하고 병약한 환자가 이를 이기지 못해 명을 재촉했을지도 모른다는 아쉬움들이 터져 나왔다.
그 다음에는 이구동성으로 우리나라 병원과 의료진들의 문제점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의사들의 불친절과 환자에 대한 무관심, 더 나아가 지나친 의료수가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의료 시스템 전반에 관한 성토가 이어졌다. 미국이나 일본의 진료를 받아본 경험을 들어 우리보다 더 값싸고 친절하고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를 철저히 이행하는 외국 의사들의 투철한 직업의식을 예로 들어가며 성토분위기를 고조시켰다.
그러다 결국은 우리가 나름대로 세계사에 족적을 남기기 위해서는 국민들이 고매한 인품까지는 아니더라도 기본적으로 타인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인격을 조성하는 풍토가 필요하다는 얘기로 끝을 맺었다.
어떤 상황에서건, 어떤 인간관계에서건 갑과 을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 때 그 때 입장에 따라 갑이 되기도 하고 을이 되기도 한다. 그런 식으로 보자면 갑의 입장에서 내가 했던 처신이 을의 입장에 처한 내 몫으로 고스란히 되돌려지는 게 아닐까 싶다. 특정 상황에서 내가 받은 대접이 섭섭하다고 느껴지는 순간, 섭섭함에 방점을 두기보다 내가 남들을 서운하게 하지 않았나부터 돌아보는 자세가 우선돼야 하는 이유다.
수 많은 사람들이 이 박완서 선생과의 이별을 아쉬워하는 것도 결국은 그녀가 세상에 뿌린대로 거두는 결과에 다름 아닐 것이다.
모임에서 돌아오면서 내 모습을 돌아보았다.
나는 얼마나 남을 배려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남의 입장을 얼마나 존중하고 또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가. 어르신들에게 성토대상이 된 의료진처럼 시간에 쫓긴다는 이유만 내세워 그저 하고 싶은 대로 또는 판단하는 대로 주변인(학생이 됐건 지역구민이 됐건)들을 일방통행식으로 밀어붙이지지는 않았나.
그렇게 해서 내가 얻은 결론은 우리가 미래사회의 희망을 이야기하려면 각 개인마다 완성된 인격체로서 성숙한 시민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어떤 의도로 사용하느냐에 따라 독약도 되고 구명약도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나 자신은 물론 주변의 지인들과 함께 한번쯤 주제삼아 생각해 볼 계기를 마련해봐야겠다는 결심으로 마음가짐을 새롭게 다잡아본다.
세상을 살면서 이왕이면 좋은 종자의 씨앗을 뿌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나 역시 많은 이들의 아쉬움 속에서 내 생의 마지막을 맞게 되기를 소망한다.
그러기 위해선 내 인생을 가치있게 만들기 위해 '나의 가장 나종 지닌 것'을 늘 갈고 닦는 노력의 끈을 놓지 말아야겠지.
그나저나 그토록 그리워하던 아들과 남편 곁으로 가셨으니 선생님, 많이 행복하시겠지요?
(2011. 1. 25)
....홍문종 생각
2011년 1월 23일 일요일
홍문종 생각 - 머피의 법칙
머피의 법칙
한국 축구가 그동안의 슬럼프를 딛고 신년 벽두부터 효자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강호 이란을 상대로 연장 승부 끝에, 드디어 아시안컵 4강 진출 티켓을 거머쥔 것이다.
대표 팀의 쾌거가 국민들에게 크나큰 위안이 되고 있는 것 같다.
축구 이야기에 모두들 행복해하는 모습이다. 이 기세를 몰아 25일 일본과의 결전은 물론 결승전까지 휩쓸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인지 만나는 사람들마다 기대감에 들떠있는 분위기다.
새벽 1시 훨씬 이전부터 축구 경기를 보려고 텔레비전 앞에 진을 치고 기다렸다.
그러나 정작 경기 과정을 꼼꼼히 지켜보진 못했다. 경기가 중계되는 내내 비몽사몽 졸다 깨기를 반복했기 때문이다.
골이 터지는 결정적 장면도 놓치고 말았다.
졸다가 “윤빛가람 선수가 한골을 넣었습니다” 하는 소리에 눈을 번쩍 떴을 때는 이미 상황이 끝나 버린 후였다.
아쉬워 하며 잠이 들었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재방영 중이었다.
‘이번만큼은’ 하면서 텔레비전 화면에 집중하고 있었는데 역시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교회 갈 시간이 임박해져서 준비하다가 또 다시 윤빛가람 선수가 골을 넣는 장면을 놓쳐버렸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인생을 살면서 놓치지 말아야 하는 순간을 놓친 경험이 상당히 많다.
이상하게도 더 중요한 일일수록 그 순간을 놓치고 발을 동동 구르던 경우가 적지 않다.
큰 아들의 출산 순간을 놓쳤고 인생의 스승으로 모셨던 장인어른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가장 친한 친구의 결혼식과 그 부친의 장례일정을 함께 하지 못했다.
이루고자하는 의지에도 불구하고 번번이 놓쳐 버렸던 인연의 순간들은 지금 생각해도 아쉬움이 크다.
축구를 제대로 못 봤다고 하자 “앞으로 재방영을 수십 번 하게 될 텐데 대수냐”는 주변의 반응이다.
하긴 지금까지 살면서도 생방송 보다는 재방송에 더 익숙해 있었다. 그랬으면서 난색을 보인 내가 새삼스러웠다. 그저 잠시 잊고 있었을 뿐인데.
절대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일들을 놓친 경험에는 인간의 한계를 돌아보게 하는 덤이 준비돼 있다. 인생의 어떤 부분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깨달음이나 저마다의 삶이 개인의 주관보다는 거대하고 절대적인 무엇인가에 끌려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그것이다.
인간에게 삶의 균형을 찾아주고자 하는 신의 배려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인생의 과정에서 스스로에 대해 만족하고 자신감을 갖는 일 못지않게 중요한 게 있다.
그것은 바로 겸손함이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는 인생의 속성을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는 혜안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결정적인 순간을 놓쳤을 때 찾아드는 허탈감과 무력감의 압박으로 벗어나는 것도 중요하다. 벗어나는 노력없이 그 정도에서 멈추게 된다면 스스로의 가능성에 빗장을 거는 무지와 다를 바 없다. 소중한 가치를 간과하는 어리석음을 저지르게 될 수도 있다.
그런 상황에 접할 때마다 스스로를 다스리고 감정을 조절하는 힘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어차피 염원한 대로 살지도 못하는 인생이다.
생애를 그르치지 않으면서 다시 도약하려는 가능성을 만드느냐가 더 없이 중요하다.
실체 없는 추측에 지배받는 일이 없도록 정신 바짝 차려야겠다.
앞으로의 삶도 거기에 초점을 두고 살겠다. .
이번 일본전에서만큼은 우리선수들의 선전을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고 다짐해본다.
(2011. 1. 23)
....홍문종 생각
한국 축구가 그동안의 슬럼프를 딛고 신년 벽두부터 효자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강호 이란을 상대로 연장 승부 끝에, 드디어 아시안컵 4강 진출 티켓을 거머쥔 것이다.
대표 팀의 쾌거가 국민들에게 크나큰 위안이 되고 있는 것 같다.
축구 이야기에 모두들 행복해하는 모습이다. 이 기세를 몰아 25일 일본과의 결전은 물론 결승전까지 휩쓸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인지 만나는 사람들마다 기대감에 들떠있는 분위기다.
새벽 1시 훨씬 이전부터 축구 경기를 보려고 텔레비전 앞에 진을 치고 기다렸다.
그러나 정작 경기 과정을 꼼꼼히 지켜보진 못했다. 경기가 중계되는 내내 비몽사몽 졸다 깨기를 반복했기 때문이다.
골이 터지는 결정적 장면도 놓치고 말았다.
졸다가 “윤빛가람 선수가 한골을 넣었습니다” 하는 소리에 눈을 번쩍 떴을 때는 이미 상황이 끝나 버린 후였다.
아쉬워 하며 잠이 들었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재방영 중이었다.
‘이번만큼은’ 하면서 텔레비전 화면에 집중하고 있었는데 역시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교회 갈 시간이 임박해져서 준비하다가 또 다시 윤빛가람 선수가 골을 넣는 장면을 놓쳐버렸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인생을 살면서 놓치지 말아야 하는 순간을 놓친 경험이 상당히 많다.
이상하게도 더 중요한 일일수록 그 순간을 놓치고 발을 동동 구르던 경우가 적지 않다.
큰 아들의 출산 순간을 놓쳤고 인생의 스승으로 모셨던 장인어른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가장 친한 친구의 결혼식과 그 부친의 장례일정을 함께 하지 못했다.
이루고자하는 의지에도 불구하고 번번이 놓쳐 버렸던 인연의 순간들은 지금 생각해도 아쉬움이 크다.
축구를 제대로 못 봤다고 하자 “앞으로 재방영을 수십 번 하게 될 텐데 대수냐”는 주변의 반응이다.
하긴 지금까지 살면서도 생방송 보다는 재방송에 더 익숙해 있었다. 그랬으면서 난색을 보인 내가 새삼스러웠다. 그저 잠시 잊고 있었을 뿐인데.
절대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일들을 놓친 경험에는 인간의 한계를 돌아보게 하는 덤이 준비돼 있다. 인생의 어떤 부분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깨달음이나 저마다의 삶이 개인의 주관보다는 거대하고 절대적인 무엇인가에 끌려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그것이다.
인간에게 삶의 균형을 찾아주고자 하는 신의 배려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인생의 과정에서 스스로에 대해 만족하고 자신감을 갖는 일 못지않게 중요한 게 있다.
그것은 바로 겸손함이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는 인생의 속성을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는 혜안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결정적인 순간을 놓쳤을 때 찾아드는 허탈감과 무력감의 압박으로 벗어나는 것도 중요하다. 벗어나는 노력없이 그 정도에서 멈추게 된다면 스스로의 가능성에 빗장을 거는 무지와 다를 바 없다. 소중한 가치를 간과하는 어리석음을 저지르게 될 수도 있다.
그런 상황에 접할 때마다 스스로를 다스리고 감정을 조절하는 힘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어차피 염원한 대로 살지도 못하는 인생이다.
생애를 그르치지 않으면서 다시 도약하려는 가능성을 만드느냐가 더 없이 중요하다.
실체 없는 추측에 지배받는 일이 없도록 정신 바짝 차려야겠다.
앞으로의 삶도 거기에 초점을 두고 살겠다. .
이번 일본전에서만큼은 우리선수들의 선전을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고 다짐해본다.
(2011. 1. 23)
....홍문종 생각
홍문종 생각 - 눈이 나린다
눈이 나린다
홍 문 종
홍 문 종
눈이 나린다
추억 속의 눈도 내린다
눈 사람
눈 싸움
눈 사랑
눈 이별
그리고
눈 이슬
하얀 눈이 나린다
추억 속의 하얀도 내린다
하얀 수건
하얀 칼라
하얀 치아
하얀 입김
그리고
하얀 기억
이름모를 추억이 내린다
추억 속에 모두가 내린다
흙색 장대
회색 안개
홍색 낙엽
갈색 폭풍
그리고
검정 가슴
덧없이 흘러버린 세월에
속절없이 가버린 세월에
눈이 내린다
비가 내린다
낙엽이 구른다
상념도 따라 구른다
그리고
그리고.....
추억 속의 하얀도 내린다
하얀 수건
하얀 칼라
하얀 치아
하얀 입김
그리고
하얀 기억
이름모를 추억이 내린다
추억 속에 모두가 내린다
흙색 장대
회색 안개
홍색 낙엽
갈색 폭풍
그리고
검정 가슴
덧없이 흘러버린 세월에
속절없이 가버린 세월에
눈이 내린다
비가 내린다
낙엽이 구른다
상념도 따라 구른다
그리고
그리고.....
(2011.1.23)
2011년 1월 22일 토요일
홍문종 생각 - 카라
카라
여성 그룹 ‘카라’가 소속사와의 갈등으로 해체 위기에 처해있다.
5명의 멤버 중 3명이 소속사에 계약해지를 전격 통보하면서 활동중단 사태를 맞고 있는 것이다.
일본 언론은 연일 이들의 불화설을 대서특필하며 비상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들이 돈 문제로 해체될 지도 모른다는 등 관련 소식을 주요이슈로 다루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모습이다. 가창력을 바탕으로 한 특유의 엉덩이춤으로 인기몰이를 하며 일본 내 신한류 열풍의 주역으로 자리를 굳힌 카라의 위상과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아이돌 그룹이 소속사와의 갈등으로 활동을 중단한 예가 적지 않다. 얼마 전 한류열풍 속에서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던 동방신기도 소속사와의 불화로 해체된 바 있다. 카라 역시 이들의 전철을 밟게 될까 걱정이다. 이를 빌미로 신한류 열풍을 방해하는 기류가 형성될 가능성도 긴장되기는 마찬가지다.
그렇지 않아도 카라와 소녀시대 등 한국 걸 그룹의 일본 내 활약을 시기하는 일본 내 움직임이 신경쓰이던 차였다. 이들 걸그룹을 폄하하는 만화까지 등장할 정도로 한류열풍에 대한 노골적인 반감이 고조되는 와중이었다.
심지어 이번 카라 사태가 한류 열풍에 악영향을 줄 거라고 노골적으로 선동하는 일본 언론의 속보이는 행태도 있었다. 동방신기에 이어 카라도 소속사와 전속계약 해지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다는 기사에는 '한국 연예계에서 걸핏하면 전속 계약을 둘러싸고 갈등이 불거지는 이유가 뭐냐'고 비판하는 일본 네티즌의 댓글이 100여 건씩 달리기도 했다.
연예인과 매니지먼트 소속사 사이의 갈등과 분란이 우리에게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우리보다 매니지먼트 문화가 먼저 도입된 미국에서도 지극히 흔히 접할 수 있는 광경의 하나였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비틀즈나 아바는 물론 사이먼 앤 카펑클, 비지스 등 거의 모든 그룹들이 해체와 재결합 과정을 거쳤다. 그렇다고 해도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연예계 자체의 특성으로 치부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특별히 놀랄 대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것이다.
더구나 그동안 우리에게 있어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상당히 취약한 분야였다. 지금도 몇 개 그룹을 빼고는 열악한 가운데 운영되는 매니지먼트 회사가 수두룩하다. 노예계약이나 성추문 등의 스캔들로 여론의 불신을 자초하는 경우도 유난히 많았다. 그럴 때마다 메니지먼트 문화의 변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비등해지곤 했지만 특별한 변화 없이 지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니지먼트 필요성은 날로 증가하는 추세다. 한류 열풍의 세계화 정착을 위해서도 좀 더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매니지먼트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무엇보다도 민감하고 독특한 특성을 보이는 연예인의 직업세계를 감안할 때 서로가 충족할 수 있는 메니지먼트가 되기 위해서는 난이도 높은 현실을 감내하겠다는 남다른 각오가 필요하다고 할 것이다.
특별히 개개인의 사적 영역에서도 매니지먼트의 필요성이 절실해지고 있다.
갈수록 개인주의가 굳어져 가는 조짐이다. 누구에게도 간섭받기 싫어하고 누구도 존경하기 싫어하는 풍토가 자연스럽게 자리잡고 있는 추세다. 그렇게 개인적 삶만 조명되다보니 ‘우리’라는 공동체 개념은 점점 본래의 기능을 상실해가고 있다. 가족의 순혈주의가 형성하는 끈끈한 유대감도 찾아보기 힘들어지고 있다. 물론 개인의 개성이 전문성 강화 측면으로 보면 강점으로 작용될 수도 있다. 그러나 전인적 인격이나 사회성 결여는 인간의 삶을 그만큼 각박하게 고립시킨다는 면에서는 마냥 환영할 수만도 없다는 생각이다.
그런 점에서 균형감각을 갖춘 매니지먼트가 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은 결코 적지 않다.
연예인처럼 전문적인 매니지먼트가 아니더라도 현명하고 성실하게 조언해주는 조력자의 존재가 한 개인의 삶에 미치는 순기능은 생각보다 크다. 스승이 됐건 친구가 됐건 그 때 그 때마다 함께 포커스를 맞추고 점검하고 돕는 우군 개념의 멘토링은 인간의 삶을 바꾸는 참으로 소중한 기회가 된다.
해가 더해질수록 허둥거림이 늘어나고 인생의 무상함이 절감된다.
빠르게 바뀌는 세상에 적응하려다 보면 우리 같은 사람들도 상당히 난감한 경우가 많다.
급기야 혼자서 살 수 없다고 고백할 수 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는 것은 시간 문제다. 결국 누군가 자기가 속한 영역에서 제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멘토링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노예계약, 전격해체, 배후설, 영구퇴출 등 서로를 향한 독한 말로 치닫는 카라와 소속사 간의 갈등국면이 어떤 식으로 결론이 나게 될지 모를 일이다. 소속사의 부실관리가 잘못인지 멤버 부모들의 과욕이 문제인지 아니면 경쟁업체의 ‘빼내기’가 문제인지 원인을 둘러싼 각종 예측들이 넘치고 있지만 지금으로서 파악 할 수 있는 정확한 내용은 없다.
그러나 분명한 건 지금 이 순간에도 한류를 저지하려는 보이지 않는 집단의 음모가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우물쭈물 하고 있는 사이에 한류는 퇴조하고 카라그룹의 주가 역시 떨어지게 될지도 모른다. 이어지는 제2 제3의 카라에 의해서 뒷전으로 밀려날 가능성이 많다.
어차피 요즘처럼 아이돌 그룹의 짧은 유효기간을 감안하게 되면 그런 상황은 상당한 구체성을 띄고 반복될 수도 있다. 새로운 가능성이 밀고 올라오고 또 그들만의 새로운 가능성에 열광하는 지금까지의 패턴을 보면 말이다.
문제는 얼마나 정확한 현실인식을 갖고 있느냐에 미래가 달려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신뢰와 배려도 사태를 해결하는 데 있어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어떤 형식으로든 잘 재정비된 카라의 모습을 보고싶다. 한류열풍 전도사로서 왕성한 그들의 활동을 기대한다.
지나친 탐욕이 꿩도 매도 다 놓쳤던 과거지사가 많다.
타산지석, 반면교사의 계기로 삼기 바란다.
(2011. 1. 22)
....홍문종 생각
여성 그룹 ‘카라’가 소속사와의 갈등으로 해체 위기에 처해있다.
5명의 멤버 중 3명이 소속사에 계약해지를 전격 통보하면서 활동중단 사태를 맞고 있는 것이다.
일본 언론은 연일 이들의 불화설을 대서특필하며 비상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들이 돈 문제로 해체될 지도 모른다는 등 관련 소식을 주요이슈로 다루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모습이다. 가창력을 바탕으로 한 특유의 엉덩이춤으로 인기몰이를 하며 일본 내 신한류 열풍의 주역으로 자리를 굳힌 카라의 위상과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아이돌 그룹이 소속사와의 갈등으로 활동을 중단한 예가 적지 않다. 얼마 전 한류열풍 속에서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던 동방신기도 소속사와의 불화로 해체된 바 있다. 카라 역시 이들의 전철을 밟게 될까 걱정이다. 이를 빌미로 신한류 열풍을 방해하는 기류가 형성될 가능성도 긴장되기는 마찬가지다.
그렇지 않아도 카라와 소녀시대 등 한국 걸 그룹의 일본 내 활약을 시기하는 일본 내 움직임이 신경쓰이던 차였다. 이들 걸그룹을 폄하하는 만화까지 등장할 정도로 한류열풍에 대한 노골적인 반감이 고조되는 와중이었다.
심지어 이번 카라 사태가 한류 열풍에 악영향을 줄 거라고 노골적으로 선동하는 일본 언론의 속보이는 행태도 있었다. 동방신기에 이어 카라도 소속사와 전속계약 해지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다는 기사에는 '한국 연예계에서 걸핏하면 전속 계약을 둘러싸고 갈등이 불거지는 이유가 뭐냐'고 비판하는 일본 네티즌의 댓글이 100여 건씩 달리기도 했다.
연예인과 매니지먼트 소속사 사이의 갈등과 분란이 우리에게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우리보다 매니지먼트 문화가 먼저 도입된 미국에서도 지극히 흔히 접할 수 있는 광경의 하나였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비틀즈나 아바는 물론 사이먼 앤 카펑클, 비지스 등 거의 모든 그룹들이 해체와 재결합 과정을 거쳤다. 그렇다고 해도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연예계 자체의 특성으로 치부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특별히 놀랄 대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것이다.
더구나 그동안 우리에게 있어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상당히 취약한 분야였다. 지금도 몇 개 그룹을 빼고는 열악한 가운데 운영되는 매니지먼트 회사가 수두룩하다. 노예계약이나 성추문 등의 스캔들로 여론의 불신을 자초하는 경우도 유난히 많았다. 그럴 때마다 메니지먼트 문화의 변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비등해지곤 했지만 특별한 변화 없이 지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니지먼트 필요성은 날로 증가하는 추세다. 한류 열풍의 세계화 정착을 위해서도 좀 더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매니지먼트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무엇보다도 민감하고 독특한 특성을 보이는 연예인의 직업세계를 감안할 때 서로가 충족할 수 있는 메니지먼트가 되기 위해서는 난이도 높은 현실을 감내하겠다는 남다른 각오가 필요하다고 할 것이다.
특별히 개개인의 사적 영역에서도 매니지먼트의 필요성이 절실해지고 있다.
갈수록 개인주의가 굳어져 가는 조짐이다. 누구에게도 간섭받기 싫어하고 누구도 존경하기 싫어하는 풍토가 자연스럽게 자리잡고 있는 추세다. 그렇게 개인적 삶만 조명되다보니 ‘우리’라는 공동체 개념은 점점 본래의 기능을 상실해가고 있다. 가족의 순혈주의가 형성하는 끈끈한 유대감도 찾아보기 힘들어지고 있다. 물론 개인의 개성이 전문성 강화 측면으로 보면 강점으로 작용될 수도 있다. 그러나 전인적 인격이나 사회성 결여는 인간의 삶을 그만큼 각박하게 고립시킨다는 면에서는 마냥 환영할 수만도 없다는 생각이다.
그런 점에서 균형감각을 갖춘 매니지먼트가 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은 결코 적지 않다.
연예인처럼 전문적인 매니지먼트가 아니더라도 현명하고 성실하게 조언해주는 조력자의 존재가 한 개인의 삶에 미치는 순기능은 생각보다 크다. 스승이 됐건 친구가 됐건 그 때 그 때마다 함께 포커스를 맞추고 점검하고 돕는 우군 개념의 멘토링은 인간의 삶을 바꾸는 참으로 소중한 기회가 된다.
해가 더해질수록 허둥거림이 늘어나고 인생의 무상함이 절감된다.
빠르게 바뀌는 세상에 적응하려다 보면 우리 같은 사람들도 상당히 난감한 경우가 많다.
급기야 혼자서 살 수 없다고 고백할 수 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는 것은 시간 문제다. 결국 누군가 자기가 속한 영역에서 제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멘토링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노예계약, 전격해체, 배후설, 영구퇴출 등 서로를 향한 독한 말로 치닫는 카라와 소속사 간의 갈등국면이 어떤 식으로 결론이 나게 될지 모를 일이다. 소속사의 부실관리가 잘못인지 멤버 부모들의 과욕이 문제인지 아니면 경쟁업체의 ‘빼내기’가 문제인지 원인을 둘러싼 각종 예측들이 넘치고 있지만 지금으로서 파악 할 수 있는 정확한 내용은 없다.
그러나 분명한 건 지금 이 순간에도 한류를 저지하려는 보이지 않는 집단의 음모가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우물쭈물 하고 있는 사이에 한류는 퇴조하고 카라그룹의 주가 역시 떨어지게 될지도 모른다. 이어지는 제2 제3의 카라에 의해서 뒷전으로 밀려날 가능성이 많다.
어차피 요즘처럼 아이돌 그룹의 짧은 유효기간을 감안하게 되면 그런 상황은 상당한 구체성을 띄고 반복될 수도 있다. 새로운 가능성이 밀고 올라오고 또 그들만의 새로운 가능성에 열광하는 지금까지의 패턴을 보면 말이다.
문제는 얼마나 정확한 현실인식을 갖고 있느냐에 미래가 달려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신뢰와 배려도 사태를 해결하는 데 있어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어떤 형식으로든 잘 재정비된 카라의 모습을 보고싶다. 한류열풍 전도사로서 왕성한 그들의 활동을 기대한다.
지나친 탐욕이 꿩도 매도 다 놓쳤던 과거지사가 많다.
타산지석, 반면교사의 계기로 삼기 바란다.
(2011. 1. 22)
....홍문종 생각
홍문종 생각 - 눈이 왔어요
눈이 왔어요
- 홍문종 -
눈이 왔어요
장독대 위에
눈이 왔어요
도봉산 위에
하이얀 눈은
하늘의 마음
태양의 마음
눈부신 사랑은
하얗게 빛나고
사랑의 노래는
온천지를 덮고
밤새 오신 눈은
내 마음에 내린 눈은
당신 마음에 내린 눈은
가없는 수평선은
순결의 아름다움
기쁨의 축복은
너의 마음 나의 마음
눈이 왔어요
나의 마음에
눈이 왔어요
너의 마음에도
(2011.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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