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수선소 주인장
풍족하진 않지만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고 자족할 줄 아는 모습만으로 주위를 행복하게 해 주는 이웃이 있다. 의정부 신곡 1동 발곡중학교 앞 사거리에 위치한 가판, 3평 남짓한 구두 수선소 주인장이 바로 그 주인공인데 나의 열혈 팬(?)이기도 하다. (맹렬하게 지지해 주시니 힘이 납니다^^=)
그의 일과는 아침 7시, 일터의 문이 열리면서 시작된다.
오래 전부터 칼같이 지켜온 출근 시간이다. 어기는 법이 없다.
그의 손끝에서 구두는 물론 망가진 우산이나 가방 등이 새롭게 소생하는 모습이 놀랍다. 도장도 파고 문패도 써주는데 예사롭지 않은 장인의 솜씨가 훈장처럼 빛나고 있다.
내게도 승리의 염원을 담아 도장을 하나 파 주었는데 한 눈에 들어오는 녹록치 않은 솜씨였다.
가족의 생계를 걸머지고 허덕이던 예전이면 몰라도 두 자식, 남부럽지 않게 잘 가르쳐 출가까지 시킨 지금은 조금 여유를 가지라는 주위의 채근이 없는 건 아니지만 여전히 좁은 박스 속에서의 고된 일과를 고집하고 있는 그다. 육십 중반에 이르도록 성실하게 살아온 자신의 삶을 자부하는 우직함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예전에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의 책임 때문에, 지금은 손자 손녀의 손에 부담없이 용돈이라도 쥐어줄 수 있는 할아버지가 되기 위해 일을 놓지 못하겠다는 사정을 듣고 보면 틀린 말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저마다 소설책 몇 권 분량의 ‘사연’이라고 자신의 인생을 하소연하지만 신산하기로 따지자면 그 역시 간단치 않은 삶을 살았다. 2살 무렵 아버지를 따라 고향인 목포를 떠나와 용산 천막촌에서 서울 생활을 시작했다. 열악하기 짝이 없는 환경이었지만 고난으로 점철된 인생 전체에 견주면 서곡에 불과했다. 설상가상 빚을 내어 천막에 2층을 조성해서 세를 주는 식으로 삶의 궁핍을 벗어나려던 부친의 ‘꿈’은 느닷없는 화마로 물거품이 되고 말았고 44세의 짧은 삶을 마감케 하는 결정적 계기로 작용했다.
화재로 상계동 집단촌 9평 판자집을 얻어 이주하게 됐지만 화병을 이기지 못한 아버지는 13살부터 17살에 이르는 4형제에게 ‘도둑질 하지 말고 인사 잘하고 착하게 살라’는 유언을 남기고 돌아가셨다.
졸지에 가장을 잃어버린 가족의 삶은 오롯이 그의 짐이 되고 말았으니 그 고생이 오죽했을까 싶다.
선친의 유언을 가슴에 담고 온갖 거친 일을 하며 세상을 살면서도 자신의 삶을 흐트러뜨리지 않으려 노력했다는 그의 말이 틀리지 않다는 생각이다. 동생들을 돌보느라 정작 자신은 초등학교 밖에 나오지 못했다는데 유일한 학교 동창인 당시 친구들과 지금까지 평생 우정을 나누고 있는 근황을 말하면서 웃는 모습이 참으로 진솔해 보였다.
이상이 어느날 눈물을 글썽거리며 그가 내게 털어놓은 고달픈 인생사의 전부다.
그런 식으로 내게 마음을 열더니 열렬한 지지자가 되셨다.
나 역시 자라면서 6.25 때 월남한 이후 실향민으로 고달프고 아프게 살아온 부친의 삶의 궤적을 수없이 들어왔기에 신산한 그의 과거가 남의 일처럼 들리지 않았다. 제법 긴 시간을 먹먹한 가슴으로 경청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그 때는 손을 잡고 들어주는 도리 밖에 없었지만 마음 속으로 다짐한 건 있다.
'이런 분들에게 희망을 주는 정치를 해야겠구나. 이들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 정치를 해야겠구나'
(2012. 3. 15)
...홍문종 생각
2012년 3월 14일 수요일
2011년 6월 5일 일요일
홍문종 생각 - 현충일에
현충일에
56돌 맞는 현충일이다.
해마다 현충일이면 그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처절했던 동족상쟁 기록인 6.25의 비극을 떠올리게 된다. (6.25는 세계사적인 관점에서 미국, 중국, 소련 등 열강의 치열한 이해관계가 얽힌 3차 대전이었다)
그러나 애국선열과 전몰장병의 숭고한 호국정신을 추모해야 하는 현충일 본연의 취지가 갈수록 퇴색되고 있는 것 같아 걱정이다. 현충일이 추모보다는 단순히 휴일의 개념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현충일마다 전국에 있는 도로망이 연휴를 즐기려는 차량행렬로 몸살을 앓는 풍경이 반복되는 것도 이 같은 사회적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심지어 현충일의 의미에 대해 슬픈 날인데 잘 모르겠다거나 이순신 장군이 돌아가신 날이냐는 반응을 보이는 초등학생들이 적지 않다는 조사 결과도 있고 보면 대책마련에 좀 더 조급해져야 하지 않을까 싶다.
세계열강에 의해 고착화된 분단의 비극을 끌어안고 있는 우리의 현실을 감안한다면 현충일에 대한 ‘무개념’은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삼아야 마땅하다.
더구나 휴전 상태에 놓여있는 우리의 처지를 생각한다면 더욱 그렇다.
무엇보다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는 열강의 왕성한 탐욕이 문제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우리의 운명을 조종하고 있는 세계 최고의 슈퍼 파워가 건재함을 자랑하고 있는 한 우리의 운신은 여전히 그 폭을 제한받게 돼 있다.
우리는 그런 열강의 이기심을 예멘, 독일, 베트남 등의 분단현실을 통해 익히 경험한 바 있다. 분단을 주도하던 처음과는 달리 분단국의 통일 과정에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그들이었다. 짐작컨대 스스로의 영향력 감소를 원하지 않는 속셈 때문이었을 거라는 생각이다.
G2가 막강한 영향력으로 세계질서를 재편하는 힘의 축으로 작용하고 있는 한 세계정세는 당분간 달라질 게 없다. 그들의 영향력 또한 최소한 반세기 정도는 더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통일 문제에 대한 고민은 이런 관점을 출발선에 놓고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경제적인 여건 등 북한을 월등하게 압도하고 있다는 신념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지만 통일 문제는 좀 더 세심하게 다뤄져야 한다.
기본적으로 종교전쟁 같은 측면에서 해석될 소지에 대한 주의가 그것이다. 오렌지와 사과 중 어떤 과일이 더 맛있느냐는 논쟁처럼 결론이 쉬운 의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특정 체제를 손 들어준다든지 어느 한 쪽으로의 흡수 통일될 가능성이나 또 그것이 실현됐을 때 야기될 내부적인 갈등 문제에까지 충분한 사전 준비가 있어야 하는 이유다.
우리가 지금까지 단골 메뉴로 내세웠던 정당성이나 당위성만의 접근은 아무래도 부족하다. 그보다는 국민적 동의가 전제된 좀 더 거시적인 접근 방식이 있어야겠다.
그동안 관이 주도하던 방식을 민간단체나 시민단체 위주의 학술교류나 종교 교류, 혈연 교류, 동호인 교류 등의 접촉을 추진하는 것도 한 방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세계 시장 진출에 있어서도 상호신뢰 구축으로 남북간이 긴밀하게 협조할 수 있는 이해를 끌어내는 동력으로 작용하게 될 공산이 크다. 세계사적 조류의 충돌로 인한 급진적인 문제 발생 시 반목의 위기를 예방하거나 최소화할 수 있는 강점도 있다. 남북 사이에 소통과 협력이 우선시하는 베이스가 구축되기 때문이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으로 존재하는 우리의 숙명을 직시하자.
호국영령들이 목숨을 바쳐 지켜낸 우리의 현실을 겸허히 받아들이며 감사할 줄 아는 우리가 되어야겠다. 그 감사함을 다가오는 미래 세대에 어떤 식으로 보답해야 할 지에 대한 고민도 잊지 않도록 하자.
그렇게 나라를 지키고 또 좋은 나라를 만들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현충일의 의미를 진중히 새기도록 하자.
(2011. 6. 5)
.....홍문종 생각
56돌 맞는 현충일이다.
해마다 현충일이면 그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처절했던 동족상쟁 기록인 6.25의 비극을 떠올리게 된다. (6.25는 세계사적인 관점에서 미국, 중국, 소련 등 열강의 치열한 이해관계가 얽힌 3차 대전이었다)
그러나 애국선열과 전몰장병의 숭고한 호국정신을 추모해야 하는 현충일 본연의 취지가 갈수록 퇴색되고 있는 것 같아 걱정이다. 현충일이 추모보다는 단순히 휴일의 개념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현충일마다 전국에 있는 도로망이 연휴를 즐기려는 차량행렬로 몸살을 앓는 풍경이 반복되는 것도 이 같은 사회적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심지어 현충일의 의미에 대해 슬픈 날인데 잘 모르겠다거나 이순신 장군이 돌아가신 날이냐는 반응을 보이는 초등학생들이 적지 않다는 조사 결과도 있고 보면 대책마련에 좀 더 조급해져야 하지 않을까 싶다.
세계열강에 의해 고착화된 분단의 비극을 끌어안고 있는 우리의 현실을 감안한다면 현충일에 대한 ‘무개념’은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삼아야 마땅하다.
더구나 휴전 상태에 놓여있는 우리의 처지를 생각한다면 더욱 그렇다.
무엇보다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는 열강의 왕성한 탐욕이 문제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우리의 운명을 조종하고 있는 세계 최고의 슈퍼 파워가 건재함을 자랑하고 있는 한 우리의 운신은 여전히 그 폭을 제한받게 돼 있다.
우리는 그런 열강의 이기심을 예멘, 독일, 베트남 등의 분단현실을 통해 익히 경험한 바 있다. 분단을 주도하던 처음과는 달리 분단국의 통일 과정에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그들이었다. 짐작컨대 스스로의 영향력 감소를 원하지 않는 속셈 때문이었을 거라는 생각이다.
G2가 막강한 영향력으로 세계질서를 재편하는 힘의 축으로 작용하고 있는 한 세계정세는 당분간 달라질 게 없다. 그들의 영향력 또한 최소한 반세기 정도는 더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통일 문제에 대한 고민은 이런 관점을 출발선에 놓고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경제적인 여건 등 북한을 월등하게 압도하고 있다는 신념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지만 통일 문제는 좀 더 세심하게 다뤄져야 한다.
기본적으로 종교전쟁 같은 측면에서 해석될 소지에 대한 주의가 그것이다. 오렌지와 사과 중 어떤 과일이 더 맛있느냐는 논쟁처럼 결론이 쉬운 의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특정 체제를 손 들어준다든지 어느 한 쪽으로의 흡수 통일될 가능성이나 또 그것이 실현됐을 때 야기될 내부적인 갈등 문제에까지 충분한 사전 준비가 있어야 하는 이유다.
우리가 지금까지 단골 메뉴로 내세웠던 정당성이나 당위성만의 접근은 아무래도 부족하다. 그보다는 국민적 동의가 전제된 좀 더 거시적인 접근 방식이 있어야겠다.
그동안 관이 주도하던 방식을 민간단체나 시민단체 위주의 학술교류나 종교 교류, 혈연 교류, 동호인 교류 등의 접촉을 추진하는 것도 한 방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세계 시장 진출에 있어서도 상호신뢰 구축으로 남북간이 긴밀하게 협조할 수 있는 이해를 끌어내는 동력으로 작용하게 될 공산이 크다. 세계사적 조류의 충돌로 인한 급진적인 문제 발생 시 반목의 위기를 예방하거나 최소화할 수 있는 강점도 있다. 남북 사이에 소통과 협력이 우선시하는 베이스가 구축되기 때문이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으로 존재하는 우리의 숙명을 직시하자.
호국영령들이 목숨을 바쳐 지켜낸 우리의 현실을 겸허히 받아들이며 감사할 줄 아는 우리가 되어야겠다. 그 감사함을 다가오는 미래 세대에 어떤 식으로 보답해야 할 지에 대한 고민도 잊지 않도록 하자.
그렇게 나라를 지키고 또 좋은 나라를 만들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현충일의 의미를 진중히 새기도록 하자.
(2011. 6. 5)
.....홍문종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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