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도나
축구를 좋아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라도나를 기억할 것이다.
왼발 하나로 세계 축구를 좌지우지 하는 실력으로 신의 경지라는 호평에도 불구하고 무절제한 사생활과 돌출적 언행으로 인한 끊임없는 불화 때문에 그라운드의 악동으로 빈축을 사던 그를 말이다. 특히 아르헨티나를 월드컵 정상에 끌어올리던 순간의 그를 기억하는 이가 적지 않을 것이다.
마약 중독, 탈세, 폭행 등 온갖 추문을 일으키며 축구계에서 사라지는가 싶었던 마라도나가 남아공 월드컵 무대에 모습을 드러내 눈길을 끌었다. 이번에는 선수가 아닌 아르헨티나를 진두지휘하는 사령탑으로서였다.
독설과 잦은 말실수는 여전했지만 아르헨티나가 우리를 4:1로 꺾을 때만 해도 감독으로서 그의 재기 가능성은 매우 높아 보였다. 그러나 4강을 다투는 독일전에서 마라도나의 화려한 귀환의 꿈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0:4라는 전적으로 힘 한 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제대로 완패를 당한 것이다.
이런 저런 독설로 잘난 척 할 때는 밉상이더니 축 처진 어깨로 귀국길에 오르는 마라도나의 뒷모습이 연민을 느끼게 했다.
마라도나의 퇴락으로 인간의 자신감과 교만의 경계선을 생각하게 된다.
자신감은 인간을 신의 경지에까지 끌어올리기도 하지만 철저히 실패의 나락으로 떨어뜨리기도 한다.
측정하기 힘든 그 경계가 언제나 문제다.
자신감에 대한 호감에도 불구하고 제 위치를 고수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에서 긴장감을 놓을 수 없다. 조금만 넘치면 교만이 되고 또 조금만 부족해도 열등감이 생성되는 특성 때문이다.
결국 교만과 열등감은 자신감의 긍정적 영역을 호시탐탐 엿보는 일란성 쌍둥이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과유불급.
독일과 아르헨티나 전을 보면서 만고불변의 이 진리를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됐다.
예선전에서 단 한 번의 실패도 없어 무적의 함대 같던 아르헨티나가 저조한 기록으로 전력이 많이 약해진 것처럼 보였던 독일에게 처참하게 패한 것은 실력차이가 아니라 그들의 정제되지 않은 자만심에 있었던 것 같다. 비록 축구에 불과하지만 독일과 아르헨티나의 극적인 반전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일상에서도 못 미치는 것도 넘치는 것도 결국은 문제가 되는, 과유불급의 진리를 깨우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자신감이 없어 보이는 사람은 신뢰가 안가고 뭔가를 함께 도모하기 싫어진다. 지나치게 자신감을 보이는 사람 역시 못지않은 우려를 주고, 결과에 있어서도 그다지 신통치 않았다는 점에서 반겨지지 않는 게 사실이다.
골프를 치면서도 과유불급의 교훈을 절감하게 될 때가 많다.
충만한 자신감으로 의욕이 너무 넘치다 보면 '버디' 찬스가 '보기'가 되고, 자신이 없는 날은 지나친 소심함 때문에 쉬운 '파' 찬스를 '보기'로 만든 경험은 나만의 경우가 아닐 것이다.
과유불급이 문제라면 중용이 답이 되겠지만 이 역시 생각처럼 쉽게 얻어지는 ‘경지’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교만이나 열등감으로 인한 결과를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수용하려는 태도 역시 패배의식에 다름 아니다.
그래서 끊임없는 정진과 성찰로 자신의 삶을 체크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자기의 현실을 뛰어넘으려는 시도는 인간에게 있어 더 없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새기게 된다.
현재나 과거의 자신을 점검하고 이를 통해 자신의 미래 지향점을 챙기는 과정이야말로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고 발전을 기약할 수 있다는 기대감을 놓을 수 없는 이유다.
과유불급의 저울추로 삶의 무게를 재어가며 희망의 부피를 키우자고 마음을 다 잡아 보는 이 아침, 새로운 생명력에 힘이 솟는다. (2010.7.6)
...홍문종 생각
2010년 7월 5일 월요일
2010년 6월 19일 토요일
홍문종생각-실패도 자원이다
실패도 자원이다
자책골, 4:1의 대패 등 이번 아르헨티나전은 여러 모로 아쉬움을 남기는 건 사실이다.
그렇더라도 박주영에게 자책골의 책임을 추궁하는 건 사리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어떻게든 잘해보려고 최선을 다하기 위해 문전에서 상대선수와 뒤엉켜 있다가 당한 불운인데 무엇으로 그를 나무랄 수 있겠는가.
이런 차에 '자책골은 박주영의 잘못이 아니'라며 박주영의 불운을 위로한 홍명보 감독의 격려 글이 눈길을 끈다. 그는 자신의 후배이기도 한 선수들에게 ‘세계 최강 팀과 경기하려면 한국은 투지를 갖고 싸워야 한다’며 ‘투지가 이들과의 격차를 좁힐 수 있는 한국팀의 유력한 무기라는 조언과 함께 이제부터 시작이니 실망하지 말고 평상심을 찾아 16강 진출 기회를 당부했는데 구구절절 옳은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외국 출장길에서 외국인들과 함께 아르헨티나 전을 지켜보았다. 나도 모르게 상대진영의 세계적인 선수 메시나 왕년의 스타이자 '신의 손'이라 불리우는 마라도나 감독에게 자꾸 눈길이 갔다. 그들의 플레이는 전 세계 축구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만큼 충분히 멋졌고 막강했다.
아르헨티나 팀은 세계적인 강팀이다. 아무리 자책골이 있었어도 아르헨티나가 우리에게 버거운 상대가 아니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4:1이라는 스코어는 어쩌면 우리가 넘을 수 없는 아르헨티나의 장벽이 숫자로 구체화된 현실인지 모른다.
우리보다 강팀을 만나 대등한 경기를 펼쳤던 우리 팀의 이전 경과들을 비교해보면 이번 아르헨티나전은 아무래도 승부욕,오기, 투지, 열정 등으로 표현되는 우리의 내공부족이 문제였다는 생각이다. 강팀에 대한 강박감이 수비위주의 소극적 플레이로 연결되는 바람에 선수들의 기량이 충분히 활용되지 못한 건 아니었는지.
역사에서도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을 것 같은 ‘다윗과 골리앗’의 승부에서 다윗이 이기는 경우가 있었는데 약체 진영이 거대한 장벽과도 같은 상대에게 아무 두려움 없이 최선을 다해 싸움에 임하는 투지를 보였을 때였던 것 같다. 이번 강호 브라질과의 예선전에서 2:1로 석패한 북한 팀에 지구촌 축구팬들이 아낌없는 갈채를 보내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인생의 한 시점에서 지옥을 경험하기 마련이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실패없이 성공만으로 자신의 인생을 채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런 측면에서 미국 와튼스쿨의 아르닉 교수가 우리에게 주는 충고는 충분히 새겨들을 만 하다는 생각이다.
아르닉 교수는 한국의 미래는 벤처가 중요한데 한국인들이 지나치게 몸을 사리는 게 문제인데 우리에게 실패를 격려하는 문화가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실패한 사람을 패배자로 간주하지 않고 격려해야 더 많은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고 누군가 먼저 실패한 것은 비슷한 시도를 하는 사람에게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도록 해주는 방패막이가 된다는 의미에서도 실패는 비난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된다는 가르침이었다.
아르닉 교수가 지적한 우리의 문제점이 박주영에 대한 자책골 비난심리에 고스란히 투영돼 있다.
그동안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박주영의 축구 인생에서 이번 아르헨티나 전은 그렇지 않아도 최악의 기억 일 것이다. 그런 그에게 위로는 커녕 모든 실패에 대한 책임을 전가하는 건 횡포다.
일하다 보면 접시 깨뜨릴 수 있다. 접시 깼다고 나무라는 풍토라면 우리에게 더 이상의 미래는 없음을 알아야 한다.
우리의 다음 발전은 자신의 취약점을 알고 그 문제점을 인정하는 것에서 기대할 수 있다. 단점을 보완해야 더 나은 미래를 기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르헨티나전에서 패배할 수 밖에 없었던 건 실력 부족때문이다. 인정해야 하는 현실이다. 실력이 부족해서 진 경기를 자꾸만 다른 이유를 대면서 이리저리 걸고 넘어지는 건 성숙하지 못한 태도다.
응원 열기가 부족한 팀 실력을 채워주는 건 아니다. 월드컵 축구 경기가 팀 실력과 상관없이 승패를 가르기나 하는 것처럼 비이성적 행태를 계속하다간 우리의 미래는 좌절되고 말 것이다.
박주영의 자책골이 없었다면 이길 수 있는 게임을 놓치기라도 한 것처럼 몰아가는 억지는 이제 그만 두어야 한다.
세상사 모든 게 마음대로 안된다고 해도 도저히 넘을 수 없을 것 같은 장애물들이 우리 앞을 가로막고 있다고 해도 끊임없이 도전하면 반드시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다.
세계사 속에 한 단계 더 전진하기 위해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특히 청년세대에 필요한 것은 열정과 투지다. 그것만 있으면 지금의 패배는 결코 두려워할 일이 아니다.
미래에 대한 가능성으로 오늘의 패배마저도 여유롭게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런 혜안이 우리의 젊은이들에게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 우선 실패를 귀하게 받아들이는 훈련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다.
나이지리아 전에서의 화이팅을 기대하며 박주영을 비롯한 우리의 태극 전사들에게 열과 성을 다한 성원을 보낸다.
......'대한민국~ 짝짜짝 짝짝" (2010. 6. 19)
....홍문종 생각
자책골, 4:1의 대패 등 이번 아르헨티나전은 여러 모로 아쉬움을 남기는 건 사실이다.
그렇더라도 박주영에게 자책골의 책임을 추궁하는 건 사리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어떻게든 잘해보려고 최선을 다하기 위해 문전에서 상대선수와 뒤엉켜 있다가 당한 불운인데 무엇으로 그를 나무랄 수 있겠는가.
이런 차에 '자책골은 박주영의 잘못이 아니'라며 박주영의 불운을 위로한 홍명보 감독의 격려 글이 눈길을 끈다. 그는 자신의 후배이기도 한 선수들에게 ‘세계 최강 팀과 경기하려면 한국은 투지를 갖고 싸워야 한다’며 ‘투지가 이들과의 격차를 좁힐 수 있는 한국팀의 유력한 무기라는 조언과 함께 이제부터 시작이니 실망하지 말고 평상심을 찾아 16강 진출 기회를 당부했는데 구구절절 옳은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외국 출장길에서 외국인들과 함께 아르헨티나 전을 지켜보았다. 나도 모르게 상대진영의 세계적인 선수 메시나 왕년의 스타이자 '신의 손'이라 불리우는 마라도나 감독에게 자꾸 눈길이 갔다. 그들의 플레이는 전 세계 축구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만큼 충분히 멋졌고 막강했다.
아르헨티나 팀은 세계적인 강팀이다. 아무리 자책골이 있었어도 아르헨티나가 우리에게 버거운 상대가 아니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4:1이라는 스코어는 어쩌면 우리가 넘을 수 없는 아르헨티나의 장벽이 숫자로 구체화된 현실인지 모른다.
우리보다 강팀을 만나 대등한 경기를 펼쳤던 우리 팀의 이전 경과들을 비교해보면 이번 아르헨티나전은 아무래도 승부욕,오기, 투지, 열정 등으로 표현되는 우리의 내공부족이 문제였다는 생각이다. 강팀에 대한 강박감이 수비위주의 소극적 플레이로 연결되는 바람에 선수들의 기량이 충분히 활용되지 못한 건 아니었는지.
역사에서도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을 것 같은 ‘다윗과 골리앗’의 승부에서 다윗이 이기는 경우가 있었는데 약체 진영이 거대한 장벽과도 같은 상대에게 아무 두려움 없이 최선을 다해 싸움에 임하는 투지를 보였을 때였던 것 같다. 이번 강호 브라질과의 예선전에서 2:1로 석패한 북한 팀에 지구촌 축구팬들이 아낌없는 갈채를 보내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인생의 한 시점에서 지옥을 경험하기 마련이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실패없이 성공만으로 자신의 인생을 채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런 측면에서 미국 와튼스쿨의 아르닉 교수가 우리에게 주는 충고는 충분히 새겨들을 만 하다는 생각이다.
아르닉 교수는 한국의 미래는 벤처가 중요한데 한국인들이 지나치게 몸을 사리는 게 문제인데 우리에게 실패를 격려하는 문화가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실패한 사람을 패배자로 간주하지 않고 격려해야 더 많은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고 누군가 먼저 실패한 것은 비슷한 시도를 하는 사람에게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도록 해주는 방패막이가 된다는 의미에서도 실패는 비난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된다는 가르침이었다.
아르닉 교수가 지적한 우리의 문제점이 박주영에 대한 자책골 비난심리에 고스란히 투영돼 있다.
그동안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박주영의 축구 인생에서 이번 아르헨티나 전은 그렇지 않아도 최악의 기억 일 것이다. 그런 그에게 위로는 커녕 모든 실패에 대한 책임을 전가하는 건 횡포다.
일하다 보면 접시 깨뜨릴 수 있다. 접시 깼다고 나무라는 풍토라면 우리에게 더 이상의 미래는 없음을 알아야 한다.
우리의 다음 발전은 자신의 취약점을 알고 그 문제점을 인정하는 것에서 기대할 수 있다. 단점을 보완해야 더 나은 미래를 기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르헨티나전에서 패배할 수 밖에 없었던 건 실력 부족때문이다. 인정해야 하는 현실이다. 실력이 부족해서 진 경기를 자꾸만 다른 이유를 대면서 이리저리 걸고 넘어지는 건 성숙하지 못한 태도다.
응원 열기가 부족한 팀 실력을 채워주는 건 아니다. 월드컵 축구 경기가 팀 실력과 상관없이 승패를 가르기나 하는 것처럼 비이성적 행태를 계속하다간 우리의 미래는 좌절되고 말 것이다.
박주영의 자책골이 없었다면 이길 수 있는 게임을 놓치기라도 한 것처럼 몰아가는 억지는 이제 그만 두어야 한다.
세상사 모든 게 마음대로 안된다고 해도 도저히 넘을 수 없을 것 같은 장애물들이 우리 앞을 가로막고 있다고 해도 끊임없이 도전하면 반드시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다.
세계사 속에 한 단계 더 전진하기 위해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특히 청년세대에 필요한 것은 열정과 투지다. 그것만 있으면 지금의 패배는 결코 두려워할 일이 아니다.
미래에 대한 가능성으로 오늘의 패배마저도 여유롭게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런 혜안이 우리의 젊은이들에게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 우선 실패를 귀하게 받아들이는 훈련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다.
나이지리아 전에서의 화이팅을 기대하며 박주영을 비롯한 우리의 태극 전사들에게 열과 성을 다한 성원을 보낸다.
......'대한민국~ 짝짜짝 짝짝" (2010. 6. 19)
....홍문종 생각
2010년 6월 15일 화요일
홍문종 생각- 월드컵의 꿈
월드컵의 꿈
다시 월드컵이다.
‘대~한 민국! 짝짝짝 짝짝!!’ 대지를 울리는 구호가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의 뜨거운 기억을 고스란히 되살려놓는다. 월드컵 사상 첫 4강 진출의 신화를 쓴 태극전사들의 활약으로 그 여름 우리 모두 함께 행복했었다.
대륙을 누비는 우리 태극전사들의 겁 없는 질주, 정말 자랑스럽다.
주눅들지 않는 그들의 당당함이 대한민국 전역에 희망폭탄을 터뜨리고 있다.
FIFA 랭킹 13위(우리는 47위)짜리 그리스를 2:0으로 가볍게 접수한 우리다.
그 저력과 기세라면 아르헨티나도 나이지리아도 가뿐히 제치고 우리의 월드컵 역사를 다시 쓸 수 있게 될 것 같은 기대감을 지울 수 없다. 그만큼 우리 축구의 국제적 위상이 커진 것이다.
월드컵 축구에서 우리가 이런 기대감을 갖게 되기까지 그동안 우리 축구가 걸어왔던 역사를 돌아보면 눈물겹다.
1954년 첫 출전한 월드컵 예선전에서는 미군 군용기를 얻어 타고 가느라 개막식도 보지 못했다. 헝가리, 터키를 상대해서 치룬 예선은 각각 9:0. 7:0으로 대패해 월드컵 사상 최다골 허용 기록을 보유하게 된 우리다. 그나마 서독과의 경기는 체류비 때문에 기권했고 그 다음 1958년 월드컵에는 FIFA의 거절로 예선 참가조차 좌절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그 후 22년 만인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처음 본선에 진출했고 2002년 주최국으로 세계 4위에 오르는 파란의 주인공이 됐던 걸 생각하면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축구가 지금에 이르는 동안 보이지 않은 많은 이들의 땀과 열정이 있었을 것이다. 참으로 고단한 그 먼 길을 포기하지 않고 걸어올 수 있도록 다독이며 뒷받침 해 준 인내와 자원의 손길이 있었을 것이다. 세상 모든 일에 기적 같은 공짜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축구 하나를 키우는 데도 혹독한 훈련과정을 참아낼 수 있는 승부근성과 역량있는 사령탑, 뛰어난 경기운용 전략, 화수분처럼 소요되는 재화, 끝없는 기다림의 세월 등 이루 다 표현할 수 없는 사연들이 쌓이는데 하물며 국가 차원의 일들은 오죽하랴 싶은 생각이 든다.
모든 일이 하루아침에 이룰 수 없다는 현실을 한국 축구의 노정을 통해 새삼 확인하게 된다.
오늘 날 우리 축구가 월드컵 무대에 써 올린 신화처럼 우리의 국격도 세계무대에서 그렇게 당당해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정치는 물론 각 분야의 업그레이드 문제부터 선결돼야 한다.
그렇게 되기 위해 히딩크 감독처럼 한국사회 어느 곳에도 빚진 바 없고 사심없는 제안이 가능하며 실천할 수 있는 뚝심과 저력을 갖춘 인재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세계 각 지역에 흩어져 있는 우리의 인재를 발굴하고 그들을 통해 정보를 수집하는 일도 국가 경쟁력을 강화하는 과정에 없어서는 안될 요소라고 생각한다. 이런 것들을 총괄 할 수 있는 좀 더 거시적이고 합리적인 안목도 아쉽다.
각 나라의 명성이나 국익을 대변하는 기능에 있어 축구의 역할이 점점 커지고 있다. 그렇더라도 축구가 우리의 모든 것이라도 되는 양 축구에 목숨걸고 축구에 일희일비하는, 균형감각을 잃은 모양새는 생각의 여지가 있다고 본다. (오래 전 일이긴 하지만 실제로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축구경기가 전쟁으로 비화된 일도 있고 보면 기우로 넘길 일만은 아니다)
대한민국 전체로 볼 때 축구가 우리 사회의 중요한 이벤트인 건 맞다. 그러나 축구는 축구일 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핵심사안은 될 수 없다는 평상심으로 축구경기를 즐기는 성숙함이 필요하다. 한참 축구 열기가 달아오르고 있는 시점에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새겨듣길 바란다.
우리의 붉은 악마에 대해서도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
그 세가 100만 여명에 달한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좀 더 긍정적인 에너지로 유지되었으면 좋겠다. 그들이 자신들의 처음 동력이었던 순수한 열정을 잃는 순간, 약속시간을 넘긴 신데렐라 마차처럼 될 수 있음을 잊지 말라고 조언하는 바다. 그나저나 일부 정치권이나 기업들이 붉은 악마의 결집력을 저마다의 이익을 위한 도구로 쓰려고 철없는 입질을 멈추지 않는 것 같아 걱정이다.
내일 모레, 아르헨티나와의 격돌을 앞두고 있다.
당연히 아르헨티나의 장벽을 뚫을 수 있을 것 같은 근거없는 기대감에 충만해 있는 요즈음이다.
날마다 우리의 태극전사들에게 이겨달라는 응원 에너지를 보내며 떨리는 가슴을 가다듬는다.
내 생전에 우리가 월드컵 무대에서 세계를 제패하는 영광의 순간을 볼 수 있었으면 정말 좋겠다. (2010. 6.15)
.....홍문종 생각
다시 월드컵이다.
‘대~한 민국! 짝짝짝 짝짝!!’ 대지를 울리는 구호가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의 뜨거운 기억을 고스란히 되살려놓는다. 월드컵 사상 첫 4강 진출의 신화를 쓴 태극전사들의 활약으로 그 여름 우리 모두 함께 행복했었다.
대륙을 누비는 우리 태극전사들의 겁 없는 질주, 정말 자랑스럽다.
주눅들지 않는 그들의 당당함이 대한민국 전역에 희망폭탄을 터뜨리고 있다.
FIFA 랭킹 13위(우리는 47위)짜리 그리스를 2:0으로 가볍게 접수한 우리다.
그 저력과 기세라면 아르헨티나도 나이지리아도 가뿐히 제치고 우리의 월드컵 역사를 다시 쓸 수 있게 될 것 같은 기대감을 지울 수 없다. 그만큼 우리 축구의 국제적 위상이 커진 것이다.
월드컵 축구에서 우리가 이런 기대감을 갖게 되기까지 그동안 우리 축구가 걸어왔던 역사를 돌아보면 눈물겹다.
1954년 첫 출전한 월드컵 예선전에서는 미군 군용기를 얻어 타고 가느라 개막식도 보지 못했다. 헝가리, 터키를 상대해서 치룬 예선은 각각 9:0. 7:0으로 대패해 월드컵 사상 최다골 허용 기록을 보유하게 된 우리다. 그나마 서독과의 경기는 체류비 때문에 기권했고 그 다음 1958년 월드컵에는 FIFA의 거절로 예선 참가조차 좌절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그 후 22년 만인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처음 본선에 진출했고 2002년 주최국으로 세계 4위에 오르는 파란의 주인공이 됐던 걸 생각하면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축구가 지금에 이르는 동안 보이지 않은 많은 이들의 땀과 열정이 있었을 것이다. 참으로 고단한 그 먼 길을 포기하지 않고 걸어올 수 있도록 다독이며 뒷받침 해 준 인내와 자원의 손길이 있었을 것이다. 세상 모든 일에 기적 같은 공짜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축구 하나를 키우는 데도 혹독한 훈련과정을 참아낼 수 있는 승부근성과 역량있는 사령탑, 뛰어난 경기운용 전략, 화수분처럼 소요되는 재화, 끝없는 기다림의 세월 등 이루 다 표현할 수 없는 사연들이 쌓이는데 하물며 국가 차원의 일들은 오죽하랴 싶은 생각이 든다.
모든 일이 하루아침에 이룰 수 없다는 현실을 한국 축구의 노정을 통해 새삼 확인하게 된다.
오늘 날 우리 축구가 월드컵 무대에 써 올린 신화처럼 우리의 국격도 세계무대에서 그렇게 당당해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정치는 물론 각 분야의 업그레이드 문제부터 선결돼야 한다.
그렇게 되기 위해 히딩크 감독처럼 한국사회 어느 곳에도 빚진 바 없고 사심없는 제안이 가능하며 실천할 수 있는 뚝심과 저력을 갖춘 인재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세계 각 지역에 흩어져 있는 우리의 인재를 발굴하고 그들을 통해 정보를 수집하는 일도 국가 경쟁력을 강화하는 과정에 없어서는 안될 요소라고 생각한다. 이런 것들을 총괄 할 수 있는 좀 더 거시적이고 합리적인 안목도 아쉽다.
각 나라의 명성이나 국익을 대변하는 기능에 있어 축구의 역할이 점점 커지고 있다. 그렇더라도 축구가 우리의 모든 것이라도 되는 양 축구에 목숨걸고 축구에 일희일비하는, 균형감각을 잃은 모양새는 생각의 여지가 있다고 본다. (오래 전 일이긴 하지만 실제로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축구경기가 전쟁으로 비화된 일도 있고 보면 기우로 넘길 일만은 아니다)
대한민국 전체로 볼 때 축구가 우리 사회의 중요한 이벤트인 건 맞다. 그러나 축구는 축구일 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핵심사안은 될 수 없다는 평상심으로 축구경기를 즐기는 성숙함이 필요하다. 한참 축구 열기가 달아오르고 있는 시점에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새겨듣길 바란다.
우리의 붉은 악마에 대해서도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
그 세가 100만 여명에 달한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좀 더 긍정적인 에너지로 유지되었으면 좋겠다. 그들이 자신들의 처음 동력이었던 순수한 열정을 잃는 순간, 약속시간을 넘긴 신데렐라 마차처럼 될 수 있음을 잊지 말라고 조언하는 바다. 그나저나 일부 정치권이나 기업들이 붉은 악마의 결집력을 저마다의 이익을 위한 도구로 쓰려고 철없는 입질을 멈추지 않는 것 같아 걱정이다.
내일 모레, 아르헨티나와의 격돌을 앞두고 있다.
당연히 아르헨티나의 장벽을 뚫을 수 있을 것 같은 근거없는 기대감에 충만해 있는 요즈음이다.
날마다 우리의 태극전사들에게 이겨달라는 응원 에너지를 보내며 떨리는 가슴을 가다듬는다.
내 생전에 우리가 월드컵 무대에서 세계를 제패하는 영광의 순간을 볼 수 있었으면 정말 좋겠다. (2010. 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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