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에게서 길을 찾다
지난 18일(현지시각)은 93번째 맞는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의 생일이었다. ‘아프리카의 정치적 대부’ '살아있는 신화'로 불리는 명성답게 국제사회의 지대한 관심이 쏠리는 분위기였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등이 (생존 인물 중)'우리 시대 최고의 위인'이라는 극찬의 축하 메시지로 그를 기렸고 생일 아침엔 남아공 전국 1200만 명 학생들이 동시에 축가를 부르며 그에 대한 메머드급 애정을 보여주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남아공은 물론 지구촌의 수많은 사람들이 ‘만델라가 67년 동안 국가와 사회를 위해 헌신한 정신을 기려 그의 생일마다 67분 동안 이웃과 사회를 위해 봉사하자는 취지로 유엔이 제정한’ ‘만델라 데이’ 정신을 실행에 옮기는 등 갖가지 축하 이벤트가 이어졌다.
지금의 아프리카로 새롭게 조명받기까지 만델라의 지대한 역할이 있었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아프리카 해방은 그의 삶 전체를 관통하는 희망의 화두였다. 44세에 종신형을 선고받고 27년간 갇혀있으면서도 단 한 번도 바꾸지 않았던 인생의 목표이기도 했다. 72세가 되어서야 감옥에서 석방된 이후 노벨상 수상이나 대통령 당선 등의 봄날을 맞았지만 인종차별 종식을 위한 그의 원초적 몸짓은 멈추지 않았다. 화해와 통합의 통치철학을 근간으로 삼아 모두가 함께 희망을 꿈꾸는 아프리카를 실현시켰다.
그 결과 쿠데타와 내전이 일상화된 아프리카에서도 평화로운 권력 이양이 가능한 현실을 보여줬고 대통령을 그만 둔 이후에도 사회 공헌을 위한 역할에 최선을 다한 그였다.
100년 전 막스베버는 이상적인 직업 정치인이 되려면 ‘자신의 숭고한 뜻을 짓밟는 세상의 어리석고 비열한 도전에 좌절하지 말아야 하고 그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소명의식을 굽히지 말아야 한다. 또 눈앞의 이익에 결코 약해져서는 안되고 가슴 속에는 객관성이 담보된 뜨거운 열정을 품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
만델라야말로 거기에 딱 부합되는 삶을 기록해왔다는 생각이다.
현직을 은퇴하고도 여전히 뜨거운 사랑과 존경을 받고 있는 노정객의 근황이 신선한 자극으로 다가온다. 한 가지 목표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평생을 바친 인간의 아름다움을 향한 세상의 찬가와 굽힐 줄 모르는 신념으로 결국 세상의 변화를 이끌어 낸 리더에게 바치는 존애의 표식이 아낌없이 쏟아지는 모습은 황홀하기까지 하다. 지난한 과거를 딛고 올라선 인간 승리의 결정판 같은, 특히나 아프리카 해방을 위해서 자신의 전부를 건 그의 파란만장한 삶을 떠올리면 더더욱 그렇다.
극한상황을 초월한 인간의 완성도 높은 삶의 결정체를 마주하는 경건함이랄까, 언제나 정치인의 역할을 고민하는 내게는 섬광처럼 스치는 영감의 기운으로 현신하고 있다.
덩달아 괜찮은 정치인으로 묻어가는 느낌이 싫지 않다.
그러나 지극히 인간적인(?) 우리의 정치현실에 고개를 돌리면 속절없이 허전해진다.
드센 기들의 충돌로 하루도 편할 날이 없는 정치판은 오늘도 어김없이 이전투구다.
국민을 볼모로 위악을 쏟아내면서도 아무런 가책이 없다. 서로를 향한 불신을 독화살처럼 쏘아대고 있다.
관심이 가는 건 오로지 정치권력 하나뿐이지 싶다. 불을 향해 자신의 운명을 던지는 불나방의 어리석음이 역력하건만 알바 없다는 식이다.
사심만 가득하니 현실을 직시할 리 만무다. 진심이 없는데 교감이 있을 리 없고 사랑 역시 요원한 얘기에 불과한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게 불행의 시작이라 하겠다.
문득 고 이청준 선생의 소설 ‘당신들의 천국’에서의 ‘외침’이 새삼스런 울림으로 되새겨진다.
“사랑과 신뢰 없는 공동체는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건설되든 항상 ‘당신들의 천국’이다.
오로지 사랑과 신뢰만이 ‘우리들의 천국’을 만든다”
만델라의 성공은 마음을 비우고 진정으로 자신의 민족을 사랑한 그의 헌신에 신뢰로 화답한 민중의 혜안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나도 만델라처럼 사랑과 신뢰를 바탕으로 ‘국민들의 천국’을 만드는 정치인이 되고 싶다.
(2011. 7. 20)
....홍문종 생각
2011년 7월 20일 수요일
2011년 7월 17일 일요일
홍문종 생각 - 올챙이 적을 생각해!!
올챙이 적을 생각해!!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의 법칙(?)이 제일 잘 활용되는 현장을 꼽는다면?
단연 정치권 아닐까 싶다. 형편에 따라 조변석개 하는 인간의 한계를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곳 역시 이곳으로 지목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생각이다.
정치 현장에 있었던 개인적인 경험을 돌이켜봐도 정치적 반사 이익을 노린 정당의 의도에 따라 국회의 전쟁과 평화가 결정된다는 데 이론의 여지가 없다. 싸우는 모양새로만 보면 국회가 최고의 엘리트들이 모인 집단이라는 사실을 잠시 망각하게 될 정도다. 민망하긴 하지만 ‘싸움 솜씨’에 따라 정치력이 평가되는 측면도 있다.
권재진 청와대 정무수석의 법무장관 내정에 대해 설전을 벌이고 있는 정치권 공방도 별반 다르게 보이지 않는다. 늘 반복되는 현상이긴 하지만 여전히 정론이고 합리적인 설득 논리고 존재가치 자체가 불필요한 현장이다. 정권 교체로 여야 진용만 달라졌을 뿐이다.
상황이나 공수논리는 어찌 그리도 변함이 없는지 마치 참여정부 시절로 ‘back to the future' 했나 헛갈릴 정도다.
참여정부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대선 1년여를 앞두고 문재인 정무수석을 법무장관에 기용하려다 ‘대통령 측근 기용은 대선의 공정성이 훼손될 우려가 있다’는 야당의 강력한 반발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리고 5년이 지난 지금 그 때의 정황이 고스란히 ‘데자뷔’ 되고 있다. 측근 인사를 법무부 장관에 기용하려는 권력의 의지나 이를 방어하고 공격하는 여야 공방의 재현을 통해서다.
이 과정에서 여당은 야당으로, 야당은 여당으로 바뀐 현실 때문에 기존 발언을 부정해야 할 처지에 놓인 발언 당사자들의 입장이 딱하게 됐다. 입으로는 국민을 팔고 정작 자신들을 위해 싸움을 불사했던 실체를 들킨 민망한 현실에서 실명까지 거론되는 마당이니 오죽 할까 싶다. 하긴 사람에 따라 무조건 이기는 것이 미덕인 정쟁의 실상과 선택의 여지가 없는 불가피성을 들어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주는 경우도 있겠지만 말이다.
‘각 당에서 1백 명 씩의 지도자를 뽑아 머리의 크기가 비슷한 사람들끼리 짝을 지어 놓는다. 그런 다음 훌륭한 의사로 하여금 톱으로 머리를 둘로 절반으로 나누어 잘라낸 반쪽을 반대편 정당의 사람에게 붙인다. 이렇게 두 개의 뇌가 하나의 두뇌 속에서 논쟁을 하게 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서로를 잘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하면 세상을 다스리고 감독하기 위해 태어났다고 생각하는 정치인들의 머리에서도 국민이 무척이나 바라는 조화로운 사고와 중용이 생겨나게 될 것이다’
1726년 영국의 작가 조너선 스위프트가 ‘걸리버 여행기’라는 풍자소설을 통해 처방한 일종의 ‘정쟁화해법’인데 기발하다. 달라지지 않은 정치권 행태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황당하긴 하지만 갈수록 개념을 잃어가는 정치권 정쟁의 속내를 꿰뚫고 그들의 몰염치를 향해 일갈하는 작가의 시선이 통쾌하기도 하다.
아무리 첨예한 이해관계(권력 쟁취)가 얽혀있다 하더라도 ‘역지사지’ 철학이 개입된다면 정치판 위상이 조금은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비단 정치권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노사간, 사제지간, 부모자식간 그 어떤 갈등 현장도 역지사지의 놀라운 힘은 기적을 만들어 낼 것이다. 객관성과 공정성을 기반으로 한 공론장이야말로 모든 관계를 풀어낼 수 있는 마법의 열쇠다. 상대방 입장에서 나와 다른 이해관계를 받아들이고 배려한다면 싸우지 않고도 얼마든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고 합일점을 이끌어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상대방을 배려하는 데 있어 더없이 취약한 현실이다.
세계적으로 남다른 교육열을 자랑하면서도 정작 배려에 대해서는 더없이 무관심했던 사회적 풍토와 무관하지 않다. 대통령이 국민의 입장을 먼저 생각했다면, 재벌이 노동자를 먼저 배려했다면, 선생님이 학생을 먼저 존중 했다면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이 위기 국면은 그 양상이 달라져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사회적 지위를 위한 스킬이나 테크닉 못지않게 중요한 인간 존중을 외면해왔던 교육제도의 개선이 시급한 이유다.
역지사지와 배려에 필요한 교육과정은 물론 제도 마련과 전문가 양성을 통해 상식의 대원칙에 부합하는 사회적 틀을 조성하고 이를 생활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더 나아가 인성교육을 KS마크처럼 규격화 하고 검증하는 체계를 통해 인증할 수 있는 제도화 하는 방안을 고려해볼만 하다. 일정한 자격을 인정받고 배출된 우리의 미래 인력들이 국제무대에서 활동할 때 객관적 자료로 활용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뿐만 아니라 역지사지의 포용력은 대한민국의 글로벌 리더십을 위해서도 더 없이 훌륭한 발판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이나 중국 등 동양권은 물론 미국 등 서양 국가와의 교류에서도 상대국 입장을 좀 더 넓고 큰 관점에서 이해하고 받아들이면서 우리의 입장을 전개한다면 더 큰 역할의 대한민국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런 측면에서 역지사지를 위한 훈련은 세계 지도자의 소양을 키우는 중요한 시간인 셈이다.
천리 길도 한걸음부터라고 했다.
그러면 우선 글로벌 리더의 첫 걸음으로 최소한 올챙이 적을 기억하는 개구리부터 되어 보도록 하자.
(2011. 7. 17)
....홍문종 생각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의 법칙(?)이 제일 잘 활용되는 현장을 꼽는다면?
단연 정치권 아닐까 싶다. 형편에 따라 조변석개 하는 인간의 한계를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곳 역시 이곳으로 지목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생각이다.
정치 현장에 있었던 개인적인 경험을 돌이켜봐도 정치적 반사 이익을 노린 정당의 의도에 따라 국회의 전쟁과 평화가 결정된다는 데 이론의 여지가 없다. 싸우는 모양새로만 보면 국회가 최고의 엘리트들이 모인 집단이라는 사실을 잠시 망각하게 될 정도다. 민망하긴 하지만 ‘싸움 솜씨’에 따라 정치력이 평가되는 측면도 있다.
권재진 청와대 정무수석의 법무장관 내정에 대해 설전을 벌이고 있는 정치권 공방도 별반 다르게 보이지 않는다. 늘 반복되는 현상이긴 하지만 여전히 정론이고 합리적인 설득 논리고 존재가치 자체가 불필요한 현장이다. 정권 교체로 여야 진용만 달라졌을 뿐이다.
상황이나 공수논리는 어찌 그리도 변함이 없는지 마치 참여정부 시절로 ‘back to the future' 했나 헛갈릴 정도다.
참여정부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대선 1년여를 앞두고 문재인 정무수석을 법무장관에 기용하려다 ‘대통령 측근 기용은 대선의 공정성이 훼손될 우려가 있다’는 야당의 강력한 반발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리고 5년이 지난 지금 그 때의 정황이 고스란히 ‘데자뷔’ 되고 있다. 측근 인사를 법무부 장관에 기용하려는 권력의 의지나 이를 방어하고 공격하는 여야 공방의 재현을 통해서다.
이 과정에서 여당은 야당으로, 야당은 여당으로 바뀐 현실 때문에 기존 발언을 부정해야 할 처지에 놓인 발언 당사자들의 입장이 딱하게 됐다. 입으로는 국민을 팔고 정작 자신들을 위해 싸움을 불사했던 실체를 들킨 민망한 현실에서 실명까지 거론되는 마당이니 오죽 할까 싶다. 하긴 사람에 따라 무조건 이기는 것이 미덕인 정쟁의 실상과 선택의 여지가 없는 불가피성을 들어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주는 경우도 있겠지만 말이다.
‘각 당에서 1백 명 씩의 지도자를 뽑아 머리의 크기가 비슷한 사람들끼리 짝을 지어 놓는다. 그런 다음 훌륭한 의사로 하여금 톱으로 머리를 둘로 절반으로 나누어 잘라낸 반쪽을 반대편 정당의 사람에게 붙인다. 이렇게 두 개의 뇌가 하나의 두뇌 속에서 논쟁을 하게 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서로를 잘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하면 세상을 다스리고 감독하기 위해 태어났다고 생각하는 정치인들의 머리에서도 국민이 무척이나 바라는 조화로운 사고와 중용이 생겨나게 될 것이다’
1726년 영국의 작가 조너선 스위프트가 ‘걸리버 여행기’라는 풍자소설을 통해 처방한 일종의 ‘정쟁화해법’인데 기발하다. 달라지지 않은 정치권 행태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황당하긴 하지만 갈수록 개념을 잃어가는 정치권 정쟁의 속내를 꿰뚫고 그들의 몰염치를 향해 일갈하는 작가의 시선이 통쾌하기도 하다.
아무리 첨예한 이해관계(권력 쟁취)가 얽혀있다 하더라도 ‘역지사지’ 철학이 개입된다면 정치판 위상이 조금은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비단 정치권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노사간, 사제지간, 부모자식간 그 어떤 갈등 현장도 역지사지의 놀라운 힘은 기적을 만들어 낼 것이다. 객관성과 공정성을 기반으로 한 공론장이야말로 모든 관계를 풀어낼 수 있는 마법의 열쇠다. 상대방 입장에서 나와 다른 이해관계를 받아들이고 배려한다면 싸우지 않고도 얼마든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고 합일점을 이끌어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상대방을 배려하는 데 있어 더없이 취약한 현실이다.
세계적으로 남다른 교육열을 자랑하면서도 정작 배려에 대해서는 더없이 무관심했던 사회적 풍토와 무관하지 않다. 대통령이 국민의 입장을 먼저 생각했다면, 재벌이 노동자를 먼저 배려했다면, 선생님이 학생을 먼저 존중 했다면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이 위기 국면은 그 양상이 달라져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사회적 지위를 위한 스킬이나 테크닉 못지않게 중요한 인간 존중을 외면해왔던 교육제도의 개선이 시급한 이유다.
역지사지와 배려에 필요한 교육과정은 물론 제도 마련과 전문가 양성을 통해 상식의 대원칙에 부합하는 사회적 틀을 조성하고 이를 생활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더 나아가 인성교육을 KS마크처럼 규격화 하고 검증하는 체계를 통해 인증할 수 있는 제도화 하는 방안을 고려해볼만 하다. 일정한 자격을 인정받고 배출된 우리의 미래 인력들이 국제무대에서 활동할 때 객관적 자료로 활용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뿐만 아니라 역지사지의 포용력은 대한민국의 글로벌 리더십을 위해서도 더 없이 훌륭한 발판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이나 중국 등 동양권은 물론 미국 등 서양 국가와의 교류에서도 상대국 입장을 좀 더 넓고 큰 관점에서 이해하고 받아들이면서 우리의 입장을 전개한다면 더 큰 역할의 대한민국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런 측면에서 역지사지를 위한 훈련은 세계 지도자의 소양을 키우는 중요한 시간인 셈이다.
천리 길도 한걸음부터라고 했다.
그러면 우선 글로벌 리더의 첫 걸음으로 최소한 올챙이 적을 기억하는 개구리부터 되어 보도록 하자.
(2011. 7. 17)
....홍문종 생각
2011년 7월 14일 목요일
홍문종 생각 - 함께 나서자
함께 나서자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해병대 사태’가 갖가지 우려를 낳고 있는 요즈음이다.
그 와중에 근절되지 않는 구조적인 악습이 그 원인이라는 군 인권센터 등의 구체적 조사결과가 나와 주목된다. 강화도 총기 난사 사건을 비롯한 군인들의 연이은 자살(해병대만 해도 이달 들어 7번째) 과정에 심각한 수준의 인권 침해가 있었다는 것이다. 휴가병과 전역자를 대상으로 한 조사의 피해사례 유형만 해도 30가지나 된다니 그 정도가 얼마나 심각한 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새삼스럽게 그 잔혹하고 엽기적이기까지 한 가혹행위 정황을 옮기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러나 사건 발생 당시 총기 사건의 배경으로 지목됐던 ‘기수 열외’의 충격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한 현실을 생각하면 위기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
1971년 경, 미국 스탠퍼드 대학에서 시행했던 ‘인간의 심리변화를 알아보기 위한 가상 실험’을 소재로 만든 영화 ‘엑스페리먼트’가 떠오른다. 당초 14일 예정의 실험이었는데 6일을 넘기기도 전에 살인사건이 벌어지는 등 인간의 정상 궤도를 넘는 이상 증세를 보여 급기야 실험을 중단하고 만 결론의 영화다.
이 영화를 보면 과연 인간에게 자유의지라는 게 존재하는가라는 회의에 빠지게 된다. 솔직히 그동안 신봉하던 ‘성선설’에 대한 확신까지도 마구 흔들리게 하는 충격을 줬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실험에 참여하기 직전까지만 해도 지극히 이성적이고 이타적 자세를 견지하던 사람이 그 짧은 사이에 살인을 저지를 만큼 본래의 자아를 상실하게 되는 현실이다. 환경에 지배될 수 밖에 없는 인간의 나약한 한계를 절감하게 되는 씁쓸함을 맛보게 했다.
영화에서 진행된 실험상황을 비인간적인 집단 논리에 매몰된 병영 내 현실과 비교하면 보인다. 인간이 개인이 아닌 집단 속에 들어 있을 때 얼마나 더 많이 잔혹해지는지, 얼마나 빠르게 환경의 지배를 받아들이게 되고 집단 체면에라도 걸린 듯 자신의 본심을 잃어버리게 되는지 알게 된다.
영화 속 가상 감옥과 통제 일변도인 병영의 현실이 다르지 않다는 전제가 허용된다면 인간이 환경에 지배되어가는 과정도 군대나 감옥(실험에서 설정한 소재)이나 차이가 분명 없게 돼 있다. 이는 가학적 상황에 반응하는 인간의 심리 표출이 비슷한 여건의 각각 다른 환경에서 보여주는 결과가 크게 다르지 않은 이치와 같다.
발본색원, 엄중처벌. 병영문화의 체질 개선....
사건 사고가 터질 때마다. 제시되는 처방의 형태가 달라지지 않는 현실이 고민이다.
어제 오늘에 국한된 문제가 아닌 만큼 근원적인 해법이 있어야 할 텐데 큰일이다.
때 마침 해병대 사령관이 이번 사태에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했다는 얘기가 들리지만 이 역시 근본적인 치유책과는 거리가 한참 멀다는 생각이다.
더구나 병영 내 가혹행위 정황이 갈수록 교묘해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
자살도 그렇고 총기 난사 사고도 그렇고 근절되지 않는 구타와 가혹행위도 그렇고.
병영문화에 어둠을 드리우는 이 주범들을 도대체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답이 안 보인다.
도무지 근절될 기미가 없다.
아무리 병영 문화 개선을 위해 대책을 마련한다 해도 결국은 본질의 문제 아닐까 싶다.
선임병의 보상심리가 부적절한 병영 내 문제를 유지하는 고리의 시작일 수도 있다. 살아 온 환경이 각기 다른 선ㆍ후임병의 인식 차이가 충돌하게 되면서 가학과 피가학의 질서를 생성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 고참이 신병을 비정상적으로 괴롭히는 ‘가학’들이 개인주의가 극대화된 환경에서 양육된 아이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트라우마를 남기는 악순환을 우선적인 문제로 지목할 만하다.
지구촌 유일의 분단국으로 존재하는 우리로서는 강한 군병력이 요구되는 현실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렇다고 엄격한 훈련이나 질서를 강요하는 식의 지휘체계를 강군 구축의 수단으로 내세우는 건 21세기에 맞지 않다.
특히 구타와 가혹행위, 그리고 집단 따돌림 등의 저해요소를 관행으로 수용하자는 식의 논리로 군 개혁을 이루고자 한다면 일찌감치 포기하는 게 낫다. 자칫 도로에 그칠 공산이 크다.
강군 건설에는 기존의 구태한 병영문화를 근원적으로 바꾸겠다는 확고한 실천의지가 기본이다. 가혹행위가 됐건 왕따 문화가 됐던 지속적인 교육과 인간에 대한 현실적 이해를 통해 내가 싫은 것은 남에게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근본도리를 알게 해서 불행한 사태를 사전에 방지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
합리적인 병영생활도 강군을 만드는 데 바람직한 처방전이 될 수 있다. 효율적인 지름길을 안내해 주는 충직한 이정표의 도움을 받는 쏠쏠한 재미를 생각해 봄직하다. 비상식적이고 비인간적으로 밀어붙이는 기계적인 트레이닝 과정은 영화같은 가상세계에서는 어떨지 모르지만 실전에서는 강군은커녕 원치 않은 부작용만 초래하게 된다는 사실도 명심할 일이다.
늦은 나이에 군에 입대해 어린 사병들과 같이 생활해 본 개인적 경험으로는 서로를 존중해주는 인격적 대우의 중요성을 강조할 만하다고 본다. 극단적인 상황에 놓이더라도 이성적인 분위기 속에서 차분히 해결할 수 있는 일도 인격적으로 무시당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면 지극히 비상식적인 폭력에 노출되고 만다는 것을 깊이 명심할 일이다.
바람직한 군 문화 조성에 민관이 도울 수 있다면 함께 팔 걷어 부치치겠다는 의지가 중요하다.
훌륭한 병영 문화가 대한민국을 좋은 나라로 만드는 데 있어 학교 못지않은 중요한 기반이 된다는 '진리'를 무기삼아 말이다.
자, 함께 나서자. (2011. 7. 13)
....홍문종 생각
2011년 7월 13일 수요일
홍문종 생각 - 인내의 리더십
인내의 리더십
새로운 지도부를 선출한 한나라당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특히 사무총장 인선으로 불거진 내홍이 봉합될 여지를 보이지 않아 여간 걱정스러운 게 아니다.
급기야 측근을 사무총장에 기용하려는 대표와 이에 반발하는 두 최고위원 간의 기 싸움이 합일점을 찾지 못한 가운데 결국 대표 강행으로 사무총장 임명이 표결로 처리되는 전무후무한 사태가 벌어졌다.
신임 대표의 리더십 부재를 걱정하는 당내 중진들의 질책이 쏟아지는 상황이 전개되기도 했다.
오늘따라 유난히 크게 눈에 들어오는 ‘새로운 한나라당’이라는 캐치프레이즈가 무색하고 부끄러워진다.
물론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속사정은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또 다시 한나라당에 대한 우려를 키우고 있는 민심의 현장은 더 잘 보고 있기에 조바심이 생긴다. 친 한나라당 성향 쪽에서는 ‘과연 내년의 중요한 대소사를 잘 이끌어갈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으로 불안해하고 있고, 반대 진영에서는 ‘그럼 그렇지’하는 비아냥과 기대감(?)으로 한나라당 지도부의 불화를 반기는 분위기다.
적진을 향해 화력을 모아도 시원찮은 판에 헤게모니 다툼으로 에너지를 소진하고 있는 모습이 정말로 딱하다. 설마 ‘봉숭아 학당’이라는 세간의 조롱을 ‘애칭’으로 즐기는 건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다.
며칠이나 됐다고 벌써부터 리더십 구설에 휩싸인 당사자로선 억울하고 답답한 일단이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짧지 않은 인생을 살아오면서 이런 저런 조직의 수장을 맡을 기회가 많았던 만큼 (고하를 막론하고 그 지위들이 내게 ‘수혜’의 의미였던 적은 거의 없다. 오히려 결단을 요구받는 압박감에 고민했던 기억이 더 많다) 화려함 뒤에 감춰진 리더의 고독한 눈물을 모르지 않는다.
그렇더라도 홍준표 대표가 조금은 더 인내하는 모습을 보였어야 한다는 생각에 아쉽다.
정말로 자신만의 개혁정치를 하고 싶다면 지금으로선 탕평인사가 최선인 현실을 그는 외면했다. 탕평인사를 단행하고 이를 무기삼아 개혁과 보수의 가치를 밀고 나가는 게 자신의 꿈에 근접할 수 있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 될 텐데 성마름을 너무 원색 그대로 표출하는 실책을 범하고 말았다.
서민을 보살피고 경제를 살리는 정치를 지향해야 한다는 바람직한 방향설정 (남이 가지 않은 길을 통해 국민 지지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이슈를 짚어낸 홍 대표 특유의 순발력이 돋보이는 측면이기도 하다)에도 불구하고 손쉬운 하책을 선택했기 때문에 실기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정제되지 않은 조급함 때문에 훌륭한 의도가 묻히고 있는 상황이다.
또 지나치게 솔직하고 직설적인 언행이 장애물이 되고 있는 현실을 직시할 필요도 있다. 이제는 개인의 개성에 치중해서는 안될 집권 여당 대표로서의 의전을 요구받는 처지임을 잊어서는 안되겠다.
언행 하나하나를 왜 태산처럼 무겁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깊은 성찰과 자각이 시급하다.
구성원의 의욕을 북돋아 조직의 성공을 이끌어내는 게 리더의 역량이라면 강압적이기보다는 구성원 저마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감성의 리더십이 우위라는 생각이다.
리더십의 성패는 리더가 구성원의 자발적 충성을 얼마만큼 이끌어낼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국 구성원과의 관계에서 드러나는 리더의 역량에 달려있는 셈이다. 갈수록 ‘섬김의 리더십’이 중요시되는 사회적 분위기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그런 점에서 리더의 ‘성마른 결론’은 독이 될 수 밖에 없다.
구성원 간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현장을 조정해 본 개인적 경험으로도 ‘인내와 시간 그리고 기다림’ 이 세 가지 키워드가 성공적 리더십의 왕도라는 결론이다.
설사 밀어붙여야 할 상황이 되었다 해도 시간을 두고 좀 더 기다릴 줄 아는 리더의 인내심이 필요하다. 관전자들이나 관계자들이 납득하고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분위기가 조성될 때까지 말이다.
그래야 어떤 결정이 내려지든 그 결정에 힘이 실릴 수 있다.
대표와 지도부의 리더십 성패에 따라 구성원의 운명이 결정되는 만큼 새 지도부의 성공적인 안착을 기원한다. 그러면서도 자꾸 걱정을 놓지 못하겠다.
우리 지도부가 국민은 둘째치고라도 당내 여론을 어떻게 수습하고 해결할지에 대해 생각하면 솔직히 걱정이 앞선다. 나 한 사람이 아니라 주위의 많은 당원들이 걱정하고 지적하는 사항이기도 하다.
한 배에 올라있는 공동체라는 숙명의식 때문이겠지.
부디 슬기롭게 백가쟁명의 어려운 위기를 잘 극복하고 봉합해서 좋은 결실을 맺는 리더십을 기대한다.
(2011. 7.13)
...홍문종 생각
2011년 7월 11일 월요일
홍문종 생각 - 여름 소낙비
여름 소낙비
홍문종
소낙비 여름례
인생에 축복세
힘차게 내려라
가슴에 적셔라
대지를 품어라
잊었던 사랑의 전설처럼
떠나간 이별의 여정처럼
아쉬워 몸서리 떨며
그리워 냉가슴 치며
전율로 온몸을 덮어
반백년 구비구비 돌아
찰나의 짧은순간 만나
영겁의 모퉁이서 이별
기쁨과 환희의 찬가들
슬픔과 눈물의 라퀴엠
어디선가 만났다가
어디론가 떠나버릴
무엇인가 되었다가
무엇인지 모르게될
너와나의 인생유전
여름비여 세게 내려라
하늘에서 진노 와르릉
대지에서 화답 차르르
인간세상 놀라 화들짝
삼라만사 감사 후아우
설레임
기다림
꿈을꿈
만나암
삶
지침
지루함
진짜 이별
삶
희망
백일몽
정말 만남
소낙비
내리고
소나기
멈추고
여름 소낙비
(2011.07.12)
2011년 7월 10일 일요일
홍문종 생각 - 짝퉁, 게 섯거라!
짝퉁, 게 섯거라!
중국의 짝퉁시장을 가 본 사람은 안다.
그곳의 짝퉁 업계가 얼마나 엄청난 규모와 다양성으로 가동되고 있는지, 마치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라도 만들어 낼 수 있을 듯한 기세로 얼마나 활기차게 판을 주도하고 있는지.
세계의 수많은 브랜드들이 중국의 짝퉁 시장을 경고하고 있고, 이를 근절시키기 위한 수고가 이어지고 있지만 중국의 짝퉁 시장 기세가 꺾이게 될 것 같지는 않다. 솔직히 중국에서 짝퉁 근절을 기대하는 자체가 현실적으로 이미 어려운 일이 됐는지도 모른다.
일상용품부터 식용재료에 이르기까지 일단 그 왕성한 레이더망에 포착되면 그 어떤 제품이 되었건 짝퉁 모델로 낙점되는 운명에 직면하게 된다. 심지어 스타벅스나 맥도날드 등 세계적인 업체조차도 교묘한 유사상호 조작으로 명성을 더하고 있는 중국 짝퉁업계의 재물이 되는 상황이다.
정교하게 만들어진 짝퉁들은 이 방면의 프로조차도 구분이 힘들 정도로 놀라운 기술력을 자랑하고 있다. 특히 세계의 정품 유통시장을 교란할 만큼 엄청난 조직력과 치밀함을 보이는 짝퉁시장 배후에 중국 정부가 있는 건 아닌지 의혹을 살 지경이다.
어렸을 때 아버지께서 사 주신 고급 손목시계 생각이 난다.
당시로서는 몹시 귀한 물품이었던 만큼 내 손목에 걸려있는 시계를 한번만 찰 수 있게 해 달라는 친구들의 요청이 쇄도하는 건 너무도 당연했다.
그러나 시계와의 인연은 짧게 끝나고 말았다. 교회 발표회 때 꼭 시계를 차고 무대에 서고 싶다는 친구에게 빌려준 이후 시계가 내게 다시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버지께 혼날 것이 두려웠던 나는 궁여지책으로 친구가 구해 온 프라스틱 시계(달라시계라고 불리던 헐값의 짝퉁 시계였다)를 대신 차고 다니다가 어느 날 드디어 시계의 행방을 묻는 아버지의 추궁에 답을 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 그리고 얼결에 대답한다는 것이 ‘더 좋은 시계여서 바꿔 차고 다닌다’고 둘러댄 거짓말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되는 어린 나의 꼼수를 모를 리 없으셨을 텐데 아버지의 반응은 의외로 담담했다. 그러면서 “나쁜 사람이 좋은 사람을 대신할 수 없고 나쁜 물건이 좋은 물건을 대신할 수 없다. 사람들이 급하게 구색을 맞추거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우선 당장 손쉬운 방법을 생각하기 쉬운데 결국 자기 자신을 속이는 행위가 되어 낭패를 초래하게 된다”는 말씀으로 훈육하셨다.
짝퉁은 시장에만 있는 게 아니다.
정치판에도 짝퉁들이 넘친다.
때 마침 신문을 보니 유력 대선 주자를 팔아 호가호위하려는 정치판 짝퉁들에 대한 우려를 표명한 기사가 눈에 띈다. 해당 정치인을 팔아 사람들을 모아 세를 얻으려 하거나 스케쥴 핑계를 대며 참석 일정이 취소됐다는 거짓말로 국민을 기망하거나 함께 찍은 사진을 내세워 핫라인이 가동되는 측근을 자처하는 짝퉁들이 우글거린다는 내용인데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단골메뉴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후죽순으로 범람하는 짝퉁들의 진상이 난무하는 현실은 걱정스럽다.정치하는 사람으로서 심히 우려하게 되는 부분이다.
정품 보호를 위해서는 짝퉁 근절이 가장 근원적인 해결책이라고 생각한다. 유혹을 이기지 못해 사사로운 이익을 취하거나 값싼 허영심을 만족시키고자 하는 욕심을 버려야만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향 싼 종이에선 향내가 나고, 생선 싼 종이에선 비린내가 난다는 옛말이 있다.
짝퉁이 절대 명품을 대신할 수 없는 이유에 대한 설명이 될 수 있겠다.정치 발전을 위해서도 짝퉁들의 호가호위를 막는 일이 얼마나 중차대한 사명인지를 많은 이들이 이해하고 동조할 수 있었으면 한다. 세상을 어느 정도 살아본 지금, 그 옛날 손목시계 사건 당시 아버지께서 전하고자 하셨던 의중을 다 알아들을 수 있게 된 것처럼 말이다.
우리 삶에 짝퉁이 끼어들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짝퉁 변별법’을 가르쳐 드리겠다.
유난히 큰 목소리로 허장성세를 부리거나 기름지거나 때깔이 좋거나 또 무엇인가 과시하지 못해 안달을 부리거나.... 이런 치들은 가짜일 확률이 높다.
유력 정치인일수록 많은 사람을 만날 수 밖에 없다. 특히 선거 때는 손에 붕대를 감을 정도로 악수하고 사진 찍히는 일이 일상화 돼 있는 상황이다. 그런 만큼 악수 한번 하고 사진 한번 찍었다고 특별한 인연임을 내세우는 인간일수록 짝퉁일 가능성이 높다.
특별히 경계 경보로 관리해야 할 가짜들이니 조심하길 바란다.
(2011. 7.10)
...홍문종 생각
중국의 짝퉁시장을 가 본 사람은 안다.
그곳의 짝퉁 업계가 얼마나 엄청난 규모와 다양성으로 가동되고 있는지, 마치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라도 만들어 낼 수 있을 듯한 기세로 얼마나 활기차게 판을 주도하고 있는지.
세계의 수많은 브랜드들이 중국의 짝퉁 시장을 경고하고 있고, 이를 근절시키기 위한 수고가 이어지고 있지만 중국의 짝퉁 시장 기세가 꺾이게 될 것 같지는 않다. 솔직히 중국에서 짝퉁 근절을 기대하는 자체가 현실적으로 이미 어려운 일이 됐는지도 모른다.
일상용품부터 식용재료에 이르기까지 일단 그 왕성한 레이더망에 포착되면 그 어떤 제품이 되었건 짝퉁 모델로 낙점되는 운명에 직면하게 된다. 심지어 스타벅스나 맥도날드 등 세계적인 업체조차도 교묘한 유사상호 조작으로 명성을 더하고 있는 중국 짝퉁업계의 재물이 되는 상황이다.
정교하게 만들어진 짝퉁들은 이 방면의 프로조차도 구분이 힘들 정도로 놀라운 기술력을 자랑하고 있다. 특히 세계의 정품 유통시장을 교란할 만큼 엄청난 조직력과 치밀함을 보이는 짝퉁시장 배후에 중국 정부가 있는 건 아닌지 의혹을 살 지경이다.
어렸을 때 아버지께서 사 주신 고급 손목시계 생각이 난다.
당시로서는 몹시 귀한 물품이었던 만큼 내 손목에 걸려있는 시계를 한번만 찰 수 있게 해 달라는 친구들의 요청이 쇄도하는 건 너무도 당연했다.
그러나 시계와의 인연은 짧게 끝나고 말았다. 교회 발표회 때 꼭 시계를 차고 무대에 서고 싶다는 친구에게 빌려준 이후 시계가 내게 다시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버지께 혼날 것이 두려웠던 나는 궁여지책으로 친구가 구해 온 프라스틱 시계(달라시계라고 불리던 헐값의 짝퉁 시계였다)를 대신 차고 다니다가 어느 날 드디어 시계의 행방을 묻는 아버지의 추궁에 답을 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 그리고 얼결에 대답한다는 것이 ‘더 좋은 시계여서 바꿔 차고 다닌다’고 둘러댄 거짓말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되는 어린 나의 꼼수를 모를 리 없으셨을 텐데 아버지의 반응은 의외로 담담했다. 그러면서 “나쁜 사람이 좋은 사람을 대신할 수 없고 나쁜 물건이 좋은 물건을 대신할 수 없다. 사람들이 급하게 구색을 맞추거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우선 당장 손쉬운 방법을 생각하기 쉬운데 결국 자기 자신을 속이는 행위가 되어 낭패를 초래하게 된다”는 말씀으로 훈육하셨다.
짝퉁은 시장에만 있는 게 아니다.
정치판에도 짝퉁들이 넘친다.
때 마침 신문을 보니 유력 대선 주자를 팔아 호가호위하려는 정치판 짝퉁들에 대한 우려를 표명한 기사가 눈에 띈다. 해당 정치인을 팔아 사람들을 모아 세를 얻으려 하거나 스케쥴 핑계를 대며 참석 일정이 취소됐다는 거짓말로 국민을 기망하거나 함께 찍은 사진을 내세워 핫라인이 가동되는 측근을 자처하는 짝퉁들이 우글거린다는 내용인데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단골메뉴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후죽순으로 범람하는 짝퉁들의 진상이 난무하는 현실은 걱정스럽다.정치하는 사람으로서 심히 우려하게 되는 부분이다.
정품 보호를 위해서는 짝퉁 근절이 가장 근원적인 해결책이라고 생각한다. 유혹을 이기지 못해 사사로운 이익을 취하거나 값싼 허영심을 만족시키고자 하는 욕심을 버려야만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향 싼 종이에선 향내가 나고, 생선 싼 종이에선 비린내가 난다는 옛말이 있다.
짝퉁이 절대 명품을 대신할 수 없는 이유에 대한 설명이 될 수 있겠다.정치 발전을 위해서도 짝퉁들의 호가호위를 막는 일이 얼마나 중차대한 사명인지를 많은 이들이 이해하고 동조할 수 있었으면 한다. 세상을 어느 정도 살아본 지금, 그 옛날 손목시계 사건 당시 아버지께서 전하고자 하셨던 의중을 다 알아들을 수 있게 된 것처럼 말이다.
우리 삶에 짝퉁이 끼어들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짝퉁 변별법’을 가르쳐 드리겠다.
유난히 큰 목소리로 허장성세를 부리거나 기름지거나 때깔이 좋거나 또 무엇인가 과시하지 못해 안달을 부리거나.... 이런 치들은 가짜일 확률이 높다.
유력 정치인일수록 많은 사람을 만날 수 밖에 없다. 특히 선거 때는 손에 붕대를 감을 정도로 악수하고 사진 찍히는 일이 일상화 돼 있는 상황이다. 그런 만큼 악수 한번 하고 사진 한번 찍었다고 특별한 인연임을 내세우는 인간일수록 짝퉁일 가능성이 높다.
특별히 경계 경보로 관리해야 할 가짜들이니 조심하길 바란다.
(2011. 7.10)
...홍문종 생각
2011년 7월 8일 금요일
홍문종 생각 - 지금부터 시작이다
지금부터 시작이다
온 국민이 하나가 되어 오랜 염원을 이뤄냈다는 흥분 때문일까?
2018 동계올림픽 평창 유치의 생생한 감격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하루였다.
역시나 뜻이 있으면 길을 찾게 돼 있다는 만고의 진리를 다시금 절감했다.
한두 번 잘못됐다고 해서 쉽게 포기하지 말아야겠다는 삶의 의지도 새삼 다졌다.
평창의 성공은 무슨 일이 됐건 뜻을 세우고 최선을 다하면 종국에는 좋은 결실을 맺게 되는 실체를 보여줬다.
이를 계기로 대한민국 국운이 트일 거라는 기대감에 설레게 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는 생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사안에서 성공이 좌초될까 걱정이 앞서는 게 사실이다.
평창의 기적을 완성시키기 위한 대장정의 진짜 출발은 지금부터다.
동계올림픽 유치 성공은 서막에 불과할 뿐이다.
이 거대한 국가 프로젝트를 성공시키려면 더 없이 철저한 준비와 실천을 기본 약속으로 하는 재무장이 있어야겠다. 성공하면 대한민국 역량을 세계만방에 떨칠 수 있는 더 없이 좋은 기회가 되겠지만 생각만 갖고 될 일이 아니기에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2018년 동계올림픽이 개최되는 그 날까지 앞으로 남은 7년을 어떤 노력으로 채우느냐에 따라 지금까지의 공력들이 제대로 된 결실을 맺게 돼 있다.
그런데 들려오는 소문들은 그다지 생산적이지 않은 게 사실이다. 평창 주변 땅 73% 외지인 소유고 기존의 시설 공사는 근시안적이고 부실하게 진행됐다는 소문들이 공공연하게 돌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솔직히 걱정을 안할 수 없다.
60조의 경제 효과 운운하며 들떠있는 기대감은 지나치게 막연하다.
자칫 위험천만한 일장춘몽으로 끝날 공산이 크다.
기왕에도 막대한 재원이 투자됐고 앞으로도 적지 않은 재정 투입을 필요로 하는 대규모 국가사업인 만큼 보다 신중하고 꼼꼼한 판단력이 요구되는 건 당연하다. 그런 점에서 앞서 동계 올림픽을 개최했던 도시(일본의 나가노나 캐나다의 밴쿠버 등)들이 재정위기에 상태에 빠져 있는 현실을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올림픽 유치를 성사시킨 주역들이 2018년 올림픽을 실질적으로 치러낼 면면과 동일하지 않을 현실도 고려해야 할 주요 변수 중 하나다. 처음 동계올림픽을 유치하겠다는 계획 단계부터 실행에 옮기고 또 추진해서 열매를 따는 역할에 이르기까지 단계적으로 주도면밀하게 세분화된 역할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필요한 이유다.
성공한 이후라도 논공행상에 따른 잡음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또 다른 문제거리가 불거질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혹여 이번 올림픽 유치 결과물을 개인의 입신양명을 위한 자원으로 활용하려거나 생색내려는 사심은 일찌감치 거두는 게 좋다.
사마란치니 자크로케니 세계 스포츠계를 주름잡는 거물급의 영향력을 익히 경험한 바 있다.
이번 유치 과정에서도 절감한 바지만 이제는 우리도 전문성을 갖춘 스포츠 지도자 양성에 관심을 가질 시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 세계 스포츠계를 제패하기 위해서는 실력있는 차세대 리더들이 대한민국을 본산으로 배출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야 할 것이다. 우리에게 그런 인재들이 많을수록 국제 스포츠 무대에서 대한민국 영향력이 커지게 된다. 무엇보다 이번처럼 국가 전체가 달려들지 않고도 해결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게 되는 격이다.
하나 더 욕심을 부린다면 이번 기회에 우리도 세계적인 스포츠 브랜드를 갖게 되었으면 싶은 바람이 있다. 토종 브랜드를 키우거나 브랜드 인수 작업을 통해서라도 휴대폰이나 자동차처럼 일등 기술로 스포츠 업계를 장악하게 되는 그날을 기대한다.
비약하니까 더 비약이 되는데 통일이 되어 설질이 좋은 백두산이나 묘향산에서 동계 올림픽 세계 대회를 한 번 더 개최할 수 있는 기회가 내 생에 이뤄질 수 있기를 소망한다.
잊지 말자.
평창 동계 올림픽이 절반의 성공으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부터의 노력이 더없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2011. 7. 8)
....홍문종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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